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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편산학계몽 권중(新編算學啓蒙 卷中)

    과학기술문화재 | 문헌

     조선전기 성종 연간에 주세걸의 산학서(算學書)를 을해자로 찍어낸 것으로 추정되는 수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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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전기 성종 연간에 주세걸의 산학서(算學書)를 을해자로 찍어낸 것으로 추정되는 수학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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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보물 1217호. 주세걸의 산학서(算學書)를 조선 전기 성종 때 을해자로 찍어낸 것으로 추정되는 책이다. 총 3권3책 중 1책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신편산학계몽』은 흔히 『산학계몽(算學啓蒙)』이라 한다. 주세걸은 『산학계몽』 외에 『사원옥감(四元玉鑑)』(1303)을 출판하였다. 이 두 산서는 중국 수학사에서 가장 뛰어난 업적 중의 하나로, 고차연립방정식을 포함한 방정식론과 유한급수론에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중국에서 『산학계몽』은 전하지 않고, 『사원옥감』은 너무 간략하게 저술되어 제대로 읽히지 못하여, 19세기 초까지 중국 산학의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 세종대부터는 『산학계몽』이 조선의 산학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주어 조선과 중국의 산학은 다른 역사를 갖게 되었다.
    주세걸에 대한 정보는 조원진(趙元鎭)이 쓴 『산학계몽』의 서문과, 막약(莫若)과 조이(祖頤)가 쓴 『사원옥감』의 서문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는 뛰어난 수학자인 동시에 교육자이었다. 13세기 중국 수학은 남북으로 나누어져 발전하는데, 북부에 속한 주세걸은 남부 수학자들과 교류하여, 당시 중국 수학 전체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책이『산학계몽』이라 할 수 있다.
    조선은 초기부터 취재(取材)과목으로 『산학계몽』을 선택하고, 세종 자신도 『산학계몽』을 연구하였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세종 12년 10월 23일)에 나타난다. 이순지(李純之, 1406~1465)가 『산학계몽』을 연구한 것이 그의 『교식추보법(交食推步法)』(1458)에 나타난다. 그러나 『산학계몽』의 서문 일부와 가장 중요한 문(門)인 방정정부(方程正負)주 01)와 개방석쇄(開方釋鎖)를 인용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세조실록』(세조 6년 6월 16일)에 의하면, 세조대에 와서는 이미 『산학계몽』이 거의 이용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피폐된 조선 산학을 재건하기 위하여 김시진(金始振, 1618~1667)이 1660년 『산학계몽』 중간본을 출판하여, 여러 필사본이 전해지고 있다. 이 중의 하나가 중국에 전해져 나사림(羅士琳)이『사원옥감세초(四元玉監細草)』(1835)를 교정·출판하게 되었는데, 이 시기에 『산학계몽』이 재조명되었다.
    『산학계몽』은 총괄과 3권으로 되어있다. 총괄은 승제법, 도량형과 환산, 원주율, 유리수체, 증승개방법 등 기본 사항을 포함하고 있다.
    상권의 8문(門)은「종횡인법문(縱橫因法門)」·「신외가법문(身外加法門)」·「유두승법문(留頭乘法門)」·「신외감법문(身外減法門)」·「구귀제법문(九歸除法門)」·「이승동제문(異乘同除門)」·「고무해세문(庫務解稅門)」·「절변호차문(折變互差門)」으로 총123문이고, 중권의 7문은 「전무형단문(田畝形段門)」·「창돈적속문(倉仔積粟門)」·「쌍거호환문(雙據互換門)」·「구차분화문(求差分和門)」·「차분균배문(差分均配門)」·「상공수축문(商功修築門)」·「귀천반율문(貴賤反率門)」으로 총71문이다.
    하권의 5문은 「지분제동문(之分齊同門)」·「퇴적환원문(堆積還源門)」·「영부족술문(盈不足術門)」·「방정정부문(方程正負門)」·「개방석쇄문(開方釋鎖問)」으로 총 75문으로 되어있다.
    상권의 처음 5문은 승제법으로 자연수부터 시작하여 소수, 복명수를 포함한 곱셈과 이의 역연산으로 나눗셈을 구조적으로 다루고 있다. 나머지 3문은 비례와 이를 이용한 1차방정식을 취급한다.
    중권은 평면도형의 넓이와 입체도형의 부피를 「전무형단문」·「창돈적속문」·「상공수축문」에서 다루고, 「쌍거호환문」·「차분균배문」·「귀천반율문」은 구장산술의 속미, 최분, 균수장에 도입된 이론을 응용하는 문제들을 다루고 「구차분화문」은 2원 1차연립방정식으로 두 미지수의 합이나 차가 주어진 방정식을 포함하는 것이다.
    하권의 「지분제동문」·「영부족술문」·「방정정부문」은 구장산술의 방전장, 영부족장, 방정장에 도입된 이론을 다룬다. 송·원 시대 수학의 큰 특징은 방정식론과 유한급수론의 발전이다. 방정식론은 방정식의 구성과 해법, 유한급수론은 등차급수에서 시작하여 삼각타, 사각타, 계차수열의 합 등을 다룬다.
    「퇴적환원문」은 이 둘을 연결하여 유한급수의 합을 구하고, 또 역으로 방정식을 구성하는 법을 취급한다. 방정정부문의 마지막 두 문제는 구고술과 연립방정식을 함께 취급하는 문제로 전통적인 방법과 천원술을 이용하여 방정식을 구성하는 것을 대비하여 천원술의 장점을 보여준다.
    「개방석쇄문」은 34문으로 이루어진 방정식론이다. 먼저 제곱근부터 네제곱근을 구하는 법을 보이고, 나머지 문제는 천원술을 이용하여 방정식을 구성하는 것을 보인다. 증승개방법을 써서 해를 구하는 과정에 나타나는 번법(飜法)을 나타내었지만, 증승개방법이라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다. 주세걸은 다만 곱셈을 증승이라 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의의와 평가
    천원술은 이야(李冶)와 주세걸이 취급하였다. 주세걸의 업적은 잊혀지고 명의 수학자들은 이야의 업적을 받아들이지 않고, 매각성(梅瑴成, 1681~1763)은 천원술과 차근방비례가 같다고 잘못 주장하여 18세기 말까지 중국에서 천원술은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홍정하(洪正夏, ?~1684) 등에 의하여 『산학계몽』의 천원술이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마련되어 방정식론은 중국보다 앞서게 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正員으로 들어있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김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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