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군 ()

대동여지도 중 충청남도 공주, 연기, 대전 부분
대동여지도 중 충청남도 공주, 연기, 대전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충청남도 동부에 위치했으며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에 편입된 군.
정의
충청남도 동부에 위치했으며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에 편입된 군.
개관

동쪽은 충청북도 청원군, 서쪽은 공주시, 남쪽은 대전광역시, 북쪽은 천안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7°08′∼127°22′, 북위 36°25′∼36°42′에 위치한다. 면적은 361.39㎢이고, 인구는 7만 8,645명(2008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7개 면, 209개 리가 있었다. 군청은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읍 신흥리에 있었다.

자연환경

군의 북부 조치원읍 북쪽으로 차령산맥(車嶺山脈)의 지맥이 지나가나, 운주산(雲住山, 460m)·국사봉(403m) 등을 제외하고는 오랜 삭박작용(削剝作用)을 받은 저산성구릉지가 대부분이다.

이들 산지 사이로 금남면에서 발원한 삼성천(三城川)이 북류하여 금강(錦江)에 합류해, 전의면에서 발원한 조천(鳥川)이 남동류하여 충청북도 진천군·음성군에서 발원한 미호천(美湖川)과 합쳐져 남류하다가 금강에 유입한다.

금강은 군의 남부를 서류하여 공주시로 흘러간다. 이들 하천 유역에는 비옥한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어서 곡창지대를 이룬다. 특히, 미호천 유역의 평야는 충청북도의 청원·진천을 거쳐 음성에 이르기까지 연결되어 매우 넓은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다.

지질은 군의 대부분이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후는 연평균기온 12.4℃, 1월 평균기온 ·1.4℃, 8월 평균기온 25.1℃로 한서의 차가 큰 대륙성기후를 나타내며, 연강수량은 1,750.9㎜이다.(2008년 기준)

역사

인접한 공주군 장기면 석장리에서 1964년 구석기유적이 발견되어 이 군도 구석기를 포함한 선사시대의 유적권 내에 들어간다고 본다. 이곳은 백제 초부터 백제 강역에 속하여 376년(근구수왕 2)에는 적현성(赤峴城)이었고 그 뒤 두잉지현(豆仍只縣)이었으며, 백제 말에는 주류성(周留城)이었다는 설도 있다. 삼국통일 후인 757년(경덕왕 16)에 연기현(燕岐縣)으로 고치고 연산군(燕山郡)의 영현으로 삼았다.

지금의 전의(全義)는 백제 때 구지현(仇知縣)이었는데, 당나라가 백제를 친 다음 구지(久遲)로 고치고 동명주(東明州)의 영현으로 삼았다. 같은 해에 금지(金池)로 고쳤으며 대록군(大麓郡 : 지금의 천안시 목천면)의 영현으로 삼았다. 전동면의 운주산성(雲住山城)은 신라 때 전주부(全州府)가 있었던 곳으로 경덕왕 때 부를 폐하고 대록군의 영현으로 삼았다.

940년(태조 23)에 금지현을 전의현으로 고치고 뒤에 청주에 소속시켰다. 연기현은 1018년(현종 9)청주에 영속시켰다가 1172년(명종 2) 감무를 임명했으며, 뒤에는 목주감무(木州監務)를 겸하게 하였다. 태조 때 이도(李棹)가 왕을 보호하여 금강을 건네주었으므로 왕이 그 공로를 가상히 여겨 ‘도(棹)’라는 이름을 내렸으며, 벼슬이 태사삼중대광(太師三重大匡)에 이르렀다.

1291년(충렬왕 17) 합단(哈丹 : 거란)이 침입하자 원나라 세조에게 군대를 요청하고 한희유(韓希愈)·김흔(金忻) 등이 나가 정좌산(正左山) 아래에서 합단을 무찔렀다. 그 전공을 기념하여 정좌산은 원수산(元帥山)이라 불렀다.

고려 말의 전서(典書) 임난수(林蘭秀)는 고려가 무너지자 이 곳 삼기촌(三岐村)에 은둔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조선시대에 세종은 그의 정절을 기려 삼기촌 나성(羅城)에 신장(申檣)이 쓴 ‘임씨가묘(林氏家廟)’라는 사액을 내리고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비문으로 신도비를 세웠다.

1395년(태조 4)전의현에 처음으로 감무가 임명되었다. 1397년 목주감무와 분리하여 연기현에도 감무가 임명되었다. 1414년(태종 14)전의현과 연기현을 합쳐서 전기(全岐)라 하였고, 1416년 다시 연기현과 전의현을 분리하여 각각 현감을 두었다. 그 해에 연기향교와 전의향교가 창건되어 중국의 4성5현(四聖五賢)과 우리나라 18현을 모셨다.

1680년(숙종 6)연기현은 문의(文義)에 병합되었다가 1685년 분리, 복구되었다. 1716년안경신(安景信)·안경정(安景精) 등이 합호서원(合湖書院)을 창건하고 고려 말의 학자인 안향(安珦 : 安裕)의 영정을 모셨다. 병자호란 때 통훈대부 한성부 참군(參軍) 박천붕(朴天鵬)과 그의 아들 4형제가 청주에서 적병과 싸우다 5부자가 모두 전사하였다. 그들의 충성을 기려 1897년 동면에 오부자충신문을 세웠다.

1895년공주부 연기군·전의군으로 개편되었고 1896년에는 충청남도 연기군·전의군이 되었다. 1909년에 연기군은 전의면 일원과 공주군 일부를 편입하여 7개 면을 두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전의는 연기군에 병합되었다.

1920년 7월북면의 일부를 조치원면에, 일부를 서면에 소속시켰다. 1931년 4월조치원면이 읍으로 승격하여 1읍 6면이 되었다. 1940년 7월서면의 반암·신동·내창·동리 등 4개 리를 조치원읍에 편입시켰다.

고종 때 시종원주사였던 홍일섭(洪日燮)은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뒤 3월 30일에는 조치원 장날을 기하여 만세시위를 주동했으며, 일경에게 붙잡힐 때까지 독립운동에 투신한 우국열사로 손꼽힌다.

오강표(吳剛杓)는 1905년 을사조약에 조인한 오적(五賊)의 죄상을 상소했으나 관찰부에서 각하를 당하자 산중에 은거하다가 1910년 국권상실의 소식을 듣고 공주향교 명륜당에 들어가 자결하였다. 그의 순절비(殉節碑)가 남면 갈운리에 있다.

1973년 7월 1일공주군 장기면 나성리·송원리가 남면에, 반포면 도암리·성덕리·영곡리가 금남면에 편입되었다. 1986년 11월 1일전의면에 소정(小井)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87년 1월 1일전동면의 신방리·영당리·양곡리·달전리·금사리·다방리가 전의면에 편입되고, 7월 1일에는 서면에 봉암(鳳巖)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95년 1월 1일소정출장소가 면으로 승격했으며, 3월 1일동면 갈산리가 충청북도 청원군 부용면으로, 청원군 강외면 심중리가 연기군 전동면에 편입되었고, 7월 1일에는 동면 문주리 일부가 서면 봉암리에 편입되었다. 2005년 3월 18일에는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공포되었다. 그리하여 연기군의 2,063만평의 토지가 행정중심복합도시에 포함되었다. 이후 2010년 12월 「세종시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공포됨에 따라 2012년 6월 충청남도 연기군이 폐지되고 2012년 7월 1일 세종특별자치시에 편입되었다.

유물·유적

금남면 봉기리·장재리, 남면 월산리 일대에서 남방식 고인돌이 발견되었고, 서면 봉암리에서 동검(銅劍)과 동과(銅戈), 금남면 석삼리·대평리·반곡리, 남면 종촌리 등지에서 민무늬토기가 출토되었다.

서면에는 기룡리봉수대(起龍里烽燧臺)가 있으며, 남면 보통리·월산리·갈운리 등지에는 백제고분군들이 산재해 있다. 산성으로는 전동면 청송리의 연기운주산성(충청남도 기념물, 1989년 지정)과 송성리의 연기이성(충청남도 기념물, 1989년 지정)·연기금이성(충청남도 기념물, 1989년 지정)을 비롯해, 소정면 고등리의 고려산성(高麗山城)과 소정리의 증산성(甑山城), 남면 연기리의 당산성(唐山城), 동면 명학리의 황우산성(黃牛山城)·망경산성(望京山城) 등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삼한고찰(三韓古刹)이라고 전하는 비암사(碑巖寺)에서 계유명전씨아미타불삼존석상(국보, 1962년 지정)·기축명아미타여래제불보살석상(보물, 1963년 지정)·미륵보살반가석상(보물, 1963년 지정)이 출토되었으며, 조치원읍 서창리서광암에서 서광암계유명삼존천불비상(국보, 1962년 지정) 발견· 조사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또한, 전의면 다방리의 비암사극락보전(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8년 지정)·비암사삼층석탑(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 소정면의 대곡리삼층석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서면 월하리의 연화사(蓮花寺)에 소장된 무인명석불상부대좌(보물, 1978년 지정)·세종시 연화사 칠존불비상(보물, 1978년 지정), 서면 고복리의 신흥사부도·석연사석조여래입상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 남면 연기리의 연기향교(충청남도 기념물, 1997년 지정) 연기향교대성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전의면 읍내리의 전의향교(충청남도 기념물, 1997년 지정), 전의향교대성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동면 합강리의 합호서원(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이 있고, 사우로는 금남면 달전리에 문절사(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조치원읍 봉산리에 봉산영당(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이 있고, 문절사는 금남면 달전리에 있는 사우로, 매죽헌성삼문(成三問)을 향사하고 있으며,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인 최용소(崔龍蘇)의 진영을 봉안하여 매년 봄·가을에 향사하고 있다.

그 밖에 남면 고정리에 어서각(御書閣)이 있는데, 어서각은 이 고장 출신인 고려 말의 문신 강순룡(康舜龍) 등에게 내린 교지류를 보관한 곳으로, 조선시대 태조·영조·정조의 어필을 봉안하고 있다. 1743년(영조 19)에 건립되었다고 하는 이 서각은 1984년에 개축되었다. 나성리에 독락정(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등이 있다.

그 밖의 문화재로 남면 갈운리에 오강표의 묘(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서면 신대리에 홍일섭의 묘(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금남면 도암리에 화순최씨 참판공 재실(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97년 지정)이 있다. 그 밖에 조선시대의 문신 홍연경(洪延慶)의 5세(世) 7효(孝)를 기리는 서면 기룡리의 효교비(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84년 지정), 김경여신도비(金慶餘神道碑) 등이 있다.

전의면 금사리에 사기소(砂器所)가 있다.

조치원읍 봉산리의 연기 봉산동 향나무(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 남면 양화리의 양화리 은행나무(충청남도 기념물, 2001년 지정) 금남면 감성리의 연기백로서식지(충청남도 기념물, 1989년 지정)는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연기향교와 전의향교가 있다. 남면 연기리에 있는 연기향교는 1416년(태종 16)에 창건되어 고종 때 중수되었으며, 전의면 읍내리의 전의향교는 1416년에 창건되어, 1684년(숙종 10)에 중수되었다. 이 밖에도 1651년(효종 2)에 창건된 봉암서원(鳳巖書院)은 이 지방의 유일한 사학교육기관으로서 교육에 힘쓰다가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4년에 윤준식(尹俊植)과 한일동(韓日東)이 서면 봉암리이락당(二樂堂)에 설립한 기양학교(岐陽學校)가 최초이다. 이는 1908년임동훈(林東勳)·이학준(李鶴俊)·장경순(張景淳)·한일동 등이 건립한 배달학교(培達學校)로 흡수되었으며, 배달학교는 다시 1912년에 일제의 식민지교육정책에 의해 연기공립보통학교로 강제 개편되었다. 그 뒤 점차 1면1교의 교육체제가 갖추어지면서 학교 수가 증가하였다.

2008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유치원 19개 원, 초등학교 16개 교, 중학교 7개 교, 고등학교 3개 교와 고려대학교 조치원 캠퍼스, 홍익대학교 조치원 캠퍼스, 대전가톨릭대학교가 있다.

또한, 1962년에 조치원문화원이 설립되어 도원문화제를 비롯한 각종 문화행사를 주관하고 기관지 『문화시보(文化時報)』를 발간, 향토문화의 계승과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종교기관은 불교사찰 97개, 유교교당 1개, 천주교교당 2개, 개신교교회 100개, 천도교교당 1개, 원불교교당 1개교, 대종교 1개교, 기타종교 5개교가 있다.

민속

이 고장의 민속놀이로는 윷놀이·널뛰기·연날리기·줄다리기·달맞이·풍년빌기·그네뛰기·씨름·칠석놀이·숨바꼭질·돌치기·땅빼앗기·고누 등을 들 수 있다. 이 가운데 풍년빌기는 조치원을 중심으로 널리 전승되었던 대표적인 민속놀이이다.

정월보름날 자루에 벼 1∼2되를 넣어 벼장대〔禾竿〕라 부르는 장대 끝에 매달고, 그 벼장대를 마을의 공동마당 등 적당한 장소에 세운다. 이 때 벼장대가 넘어지지 않도록 장대 꼭대기에 세 가닥의 새끼를 묶고 이를 세 방향으로 내려뜨려 그 끝을 지상에 박은 말목에 잡아맨다.

그 뒤 2월 1일 정오쯤 마을사람들이 벼장대 아래에 모여 농악을 울리며 벼장대를 내리고 풍년을 기원하면서 주식(酒食)을 즐긴다. 칠석놀이는 7월 7일 마을사람들이 함께 마을의 길을 닦고, 공동우물을 퍼내어 우물바닥을 깨끗이 청소한 다음 술과 안주를 차려놓고 농악을 울리며 하루를 즐기는 놀이이다.

이 고장에서 비교적 연대가 오래 된 동제는 소정면 대곡리 대사동(大寺洞)의 장승제이다. 400여 년 동안 행해져 왔다고 하는 이 장승제는 윤년 1월 14일 해질 무렵에 거행된다.

장승제를 지내려면 먼저 제물을 준비할 고양주〔供養主〕 1명과, 제의를 주관할 제주 1명, 축문을 읽을 축관 1명을 선정해야 한다. 이 중 고양주와 제관은 일체 부정이 없는 사람 중에서 제일에 생기복덕(生氣福德)이 맞는 사람을 택한다. 선정된 고양주와 제관은 그 날부터 매일 냉수로 목욕을 하며 부정한 행동을 일절 금한다.

제일이 되면 남상(男像)·여상(女像)의 장승을 조각하여 마을 입구에 세우고 제를 지낸다. 제물로는 쌀 3되 3홉으로 지은 흰무리와 쌀가루부침·제주(祭酒)가 마련되고, 그 밖에 과일·육류 등도 진설된다. 제사에서는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빌며, 제사가 끝나면 별도로 마련한 흰무리를 주민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준다. 그 떡을 먹으면 3년 동안 액을 물리치고 무사히 지낼 수 있다고 한다.

설화·민요

이 고장에는 오뉘힘내기전설·장자못전설·말무덤전설·효행전설 등과 관련이 있는 지명유래담이 다수 전해오고 있다. 그 가운데 ‘조치원’이라는 지명이 신라시대의 최치원(崔致遠)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즉, 최치원이 이곳에 시장을 개설하고 상업을 권장하여 ‘최치원시장’이라고 불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와전되어 ‘조치원’이 되었다는 것이다.

뱀골과 관련된 지명전설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아버지와 외딸이 살고 있었는데 밤마다 정체 모를 남자가 나타나 딸과 동침하고 사라지고는 하더니 급기야는 딸이 임신을 하고 말았다. 이에 아버지가 딸에게 시켜 실이 달린 바늘을 남자의 옷에 꿰어놓도록 하였다. 다음 날 그 실을 따라가 보니 소리산 꼭대기에 뱀 한 마리가 죽어 있었다. 그래서 그 골짜기를 뱀골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며느리바위 전설」의 내용은 이러하다. 옛날 어느 부잣집에 중이 시주를 왔는데 인색한 집주인이 퇴비를 퍼주었다. 이것을 지켜본 마음씨 착한 며느리가 몰래 쌀을 시주하였다. 며칠 후 그 중이 와서 며느리 보고 “산으로 피하되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일러주었다.

산으로 피하던 며느리는 뒤에서 천둥·벼락이 치자 그만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마을은 큰 연못으로 변하고 있었다. 뒤를 돌아다본 며느리는 바위로 변해 버렸는데, 그 바위를 ‘며느리바위’라고 한다.

서면 쌍류리의 「한치마봉전설」은 오누이힘내기전설로, 힘겨루기에서 패한 딸의 무덤이라고 하는 돌무덤이 지금도 남아 있다. 남면의「느랑이고개전설」은 고려의 장수 한희유와 김흔이 거란을 맞아 싸워 이 고개에서 대승을 거두었다는 이야기이다.

공주 쪽으로 도망가는 거란족을 추격, 섬멸하니 적의 시체가 30여 리에 널려 있었다. 그 뒤 시체가 널려 있는 고개라 하여 ‘느랑이고개’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 밖에도 김유신(金庾信) 장군의 애마가 묻혀 있다는 「말봉산 말무덤전설」, 「재백이 바위전설」 등 많은 설화가 구전된다.

이 고장은 농업이 주종을 이루는 지역으로 전승되는 민요도 역시 농업노동요가 많다. 즉, 「모심기노래」·「논매기노래」·「타작노래」 등이 대표적이다. 「모심기노래」를 보면 “……만수산 꼭대기 구름모았다 쏘나기 삼형제 거기들었다/어헐럴럴 상사듸야/여봐라 농부말들어 느마지기 왼뱀이가 반달만치 남었다 어서바삐 심고가세.……”와 같다.

「논매기노래」는 “얼럴럴 상사듸여/이농사를 얼른지어/나라에 상납하고/부모처자 먹고살고/……/아침들 푸른들판/보기만하여도 배가불러/……”와 같다. 「타작노래」는 “에헤야∼/에헤야∼/저건너 갈미봉에 비들어온다/에야∼헤∼/에헤∼헤∼에야헤∼/오옴∼들로나가세.……”와 같다.

‘옹헤야’로 후렴을 넣는 「보리타작노래」를 보면 “……/오륙월에/옹헤야/수확하여/옹헤야/이와같이/옹헤야/타작해서/옹헤야/웅게둥게/옹헤야/재여놓고/옹헤야/삼동삼춘/옹헤야/양식함세/옹헤야/……”처럼 노동이 단순, 간단하기 때문에 형식도 단순하다.

이러한 노동요 외에 「상여소리」와 같은 장례의식요가 있고, 「베틀가」·「시집살이노래」·「장타령」·「떡타령」 등의 민요가 있다. 그런데 “오라버니 오라버니/오라버니 있어서/누룩으로 담을치고/명지전대 울띠맷나/내집에는 없어서/나무전대 울띠맷나/포록쪼록 뜯던 나물/……”(「시집살이 노래」), “오늘도 하심심하니/베틀이나 날아볼까/에헤야 베짜는/아가씨 사랑노래/베틀에 수심만지노라/……”(「베틀노래」), 그리고 「장타령」 등의 민요는 전승력이 미약한 편이다.

산업·교통

논과 밭의 비율은 63 : 37로 논의 면적이 많아 벼농사가 발달되었다.

수산업은 농업으로 주로 쌀·콩·팥·잎담배·채소·복숭아·사과 등을 생산한다. 특히, 조천·삼성천·미호천 유역의 미작농업과 서면 구릉지의 복숭아, 전동면의 잎담배, 금남면의 사과·채소 재배가 유명하다.

경부고속국도가 개통된 이후에는 수송수단의 향상에 힘입어 원예농업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 제조업은 소규모의 섬유·작물·금속기계 공업이 조치원읍을 중심으로 행해지고 있으며, 남면에서는 피혁공업이 활발하다.

상업활동은 군내에 조치원장·전의장·대평리장이 있다. 4·9일에 열리는 조치원장은 주변의 평야에서 나오는 쌀의 거래가 많았으나 중간상인들에 의해 생산지에서 직접 거래가 이루어지면서 시장성이 낮아지고, 대신 농산물인 무·고추·오이·참외·복숭아·표고·양송이 등과, 가축시장에서 소가 거래되고 있다. 최근 조치원장은 점차 상설화되는 추세 속에서 의류·식료품·생활필수품·일용잡화 등이 수시로 거래되고, 상설상가가 형성되어 있다.

2·7일에 열리는 전의장에서는 고추·잎담배 등이 주로 거래되며, 양야리장의 뒤를 이어 형성된 대평리장(大平里場)은 2·7일에 열리는데, 대전·청주·천안 등 인접도시의 도시권 확장에 따라 그 기능이 점차 쇠퇴하고 있다.

교통은 조치원읍을 중심으로 천안시와 충청북도 청원군 강외면으로 통하는 1번 국도, 청주시로 통하는 36번 국도, 공주시 의당면으로 통하는 604번 지방도 등이 교차하고 있고,

경부선 철도가 지나면서 소정리역·전의역·전동역·조치원역·내판역 등이 들어서 있어서 도로와 철도 모두 편리하다. 특히, 최근 확장된 36번 국도는 조치원에서 경부고속국도의 청주 인터체인지로 진입하는 주요도로이다.

이 밖에 조치원읍 일대에는 경부고속철도의 조치원역이 설치될 예정이고, 인근의 충청북도 청원군 강외면 오송리 일대에도 오송역이 설치될 예정이어서, 교통은 더욱 편리해질 전망이다.

관광

이 고장은 예로부터 연기팔경이라고 일컬을 만큼 경관이 아름다우며, 곳곳에 특산물과 문화재가 분포해 있고, 철도와 도로 교통이 모두 편리해 새로운 전원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조치원읍을 중심으로 넓은 지역에 걸쳐 복숭아과원이 발달해 있어 복사꽃이 필 무렵에는 아름다운 전원풍경을 자아낸다.

또한, 조치원읍 봉산리의 자단향수는 여름철의 피서지로 유명하며, 서면 봉암리의 봉암방죽은 낚시터로 잘 알려져 있다. 그 밖에 동면 예양리의 충신문(忠臣門)과 전의면 다방리의 비암사에도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읍·면
  1. 조치원읍(鳥致院邑)

군의 동부 중앙에 위치한 읍. 면적 13.55㎢, 인구 3만 6,964명(2008년 현재). 읍 소재지는 교리이다. 본래 연기군 북쪽이 되므로 북일면(北一面)이라 하여 신동·반암·죽내 등 11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북이면(北二面)의 월계·월하 등 17개 리와 충청북도 청주군 서강외일하면(西江外一下面) 일부를 병합해 북면(北面)으로 개칭하였다.

그 뒤 조치원을 중심으로 크게 성장하여 1917년에 조치원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서면에 넘겨주고 조치원리만 독립, 조치원면이 되었으며, 1931년에 읍으로 승격하였다. 1940년에 서면의 반암·신동·내창·동리 등 4개 리를 편입하였다.

지형상 북서부의 구릉성 산지와 남동부의 저지로 구분되며, 조천이 읍의 동부를 남류한다. 조천 양안에는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으며, 조치원 중심부가 이곳에 위치한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조천 연안의 평야지역에서 벼농사가 행해지며, 읍의 외곽지역에서는 복숭아·사과 등의 과수농업과 원예농업이 활발하다. 제조업은 제사를 중심으로 하는 섬유공업과 농산물가공업이 발달하였다.

교통은 경부선 철도가 읍의 중앙을 통과하고 여기에서 충북선이 분기되고 있으며, 서울∼부산간 국도가 읍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가운데, 조치원∼청주간 국도가 분기되고 있어서 매우 편리하다. 충청북도와 인접해 있으며, 북부와 서부지역에 산이 있고 동쪽에는 강이 흐르고 있어서 생활권이 동쪽의 충청북도 청주시·청원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문화유적은 봉산리에 봉산영당이 있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향나무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4개 교, 중학교 2개 교, 고등학교 2개 교와 대학교 2개 교가 있다. 교(校)·원(元)·상(上)·평(平)·정(貞)·명(明)·남(南)·침산(砧山)·신흥(新興)·죽림(竹林)·신안(新安)·봉산(鳳山)·서창(瑞倉)·반암(磻巖) 등 14개 리가 있다.

  1. 금남면(錦南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73.72㎢, 인구 1만 246명(2008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용포리이다. 본래 공주군 명탄면(鳴灘面)과 양야리면(陽也里面)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금강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하여 금남면으로 개칭하고 연기군에 편입되어 감성·금천 등 23개 리를 관할하다가 1973년에 공주군 반포면의 도암·성덕·영곡 등 3개 리를 병합하였다.

면의 경계를 따라 꾀꼬리봉(271m)·금병산(金屛山, 372m) 등이 솟아 있으며, 중앙부에는 비학산(飛鶴山)·서대산(西大山, 252m) 등이 솟아 있어 구릉지를 형성하고 있다. 삼성천과 용수천(龍秀川)이 북서류하여 면의 북쪽 경계를 이루는 금강에 흘러들어가며, 이들 하천유역에는 비옥한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포도·배·복숭아 등 주로 과수 재배가 활발한 편이다. 특히, 포도는 군내 제1의 생산량을 나타내고 있으며, 맛이 좋기로도 유명하다. 교통은 서울∼부산간 국도가 면의 서부를 남북으로 관통하고, 신탄진과 연결되는 지방도가 동서로 지나고 있어서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달전리에 병산사·문절사, 반곡리에 진시택비(陳時澤碑), 발산리에 효자 강협정문(康協旌門), 영대리에 이경억묘(李慶億墓)의 신도비, 봉기리와 장재리에는 남방식지석묘, 신촌리에 남근석, 감성리에 연기백로서식지가 있다. 금천리에서는 인조진주의 가공과 약초 재배가 이루어지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용포(龍浦)·발산(鉢山)·감성(柑城)·두만(斗滿)·용담(龍潭)·봉기(鳳起)·석교(石橋)·축산(丑山)·금천(金川)·영치(永峙)·남곡(南谷)·황룡(黃龍)·반곡(盤谷)·석삼(石三)·영대(永垈)·달전(達田)·박산(朴山)·대박(大朴)·부용(芙蓉)·장재(長在)·호탄(壺灘)·신촌(新村)·대평(大平)·도암(道巖)·성덕(聖德)·영곡(靈谷) 등 26개 리가 있다.

  1. 남면(南面)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53.39㎢, 인구 5,406명(2008년 현재). 면 소재지는 종촌리이다. 본래 연기군 남쪽이 되므로 남면이라 하여 수산·국사·대천 등 3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군내면(郡內面)의 9개 리와 공주군 삼기면 노은리(老隱里) 등을 병합, 1973년에 장기면 나성리와 송원리를 편입하였다.

면내에 높은 산은 없고, 국사봉(國師峰, 214m)을 비롯해 200m 내외의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산지 사이로 연기천(燕岐川)과 종촌천(宗村川)이 흘러 면의 동부에서 각각 미호천과 금강에 합류하며, 미호천은 남류하여 면의 남부 경계를 서류하는 금강에 유입한다. 이들 하천 유역에는 비옥한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평야지대에서 벼농사가 행해지며, 그 밖에 각종 채소·들깨·참깨 등이 재배된다. 최근에는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채소 재배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평야지대 주변의 낮은 구릉지에는 뽕나무 밭과 황색잎담배 재배지가 조성되어 있다. 또한, 구릉지 곳곳에는 일제시대부터 조성되어온 복숭아과원이 산재해 있으며, 여기에서 생산되는 복숭아는 군내의 복숭아 가공공장으로 공급된다.

교통은 서울∼부산간 국도가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며, 종촌리에서 공주·부여로 통하는 국도가 연결되어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연기리에 당산성과 연기향교, 고정리에 어서각, 양화리에 숭모각, 갈운리에 오강표의 묘와 순절비·성지(城址), 방축리에 숭덕사(崇德祠),그리고 나성리에 독락정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종촌(宗村)·연기(燕岐)·보통(洑通)·눌왕(訥旺)·수산(水山)·고정(高亭)·갈운(葛雲)·방축(方丑)·진의(眞義)·송담(松潭)·양화(陽化)·월산(月山)·나성(羅城)·송원(松院) 등 14개 리가 있다.

  1. 동면(東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29.43㎢, 인구 4,619명(2008년 현재). 면 소재지는 내판리이다. 본래 연기군 동쪽이 되므로 동이면(東二面)이라 하여 양인·인동·송리 등 16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동일면(東一面)의 이현·용호·용계 등 18개 리와 충청북도 청주군 서강내 이상면의 이천동을 병합해 10개 리로 개편되었다.

면의 남부에 노적산(露積山, 153m)·출동산(出東山, 148m)·황우산(黃牛山, 196m), 북부에 아미산(蛾眉山, 139m)이 솟아 있어서 산간구릉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면의 동남부를 흐르는 백천천(白川川)과 면의 서부를 흐르는 미호천 유역에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평야지대에서 쌀과 미나리 등 채소가 생산된다. 평야 주변의 구릉지에서는 들깨·참깨·왕골 등의 특용작물과 황색잎담배 그리고 사과·배·복숭아·포도·감 등의 과일이 재배되고 있다. 특히, 복숭아는 일제강점기초 부터 과원을 이루어 재배되어 왔으며, 다량이 군내 가공공장으로 공급된다. 각 농가에서 소·돼지·산양·토끼·닭·오리 등의 사육도 활발하고, 양봉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교통은 경부선 철도가 면의 중앙을 지나며, 조치원∼청원간 지방도가 이와 병행하여 지나고 있어서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합강리에 합호서원, 예양리에 오부자충신문이 있고, 명학리에 황우산성, 송룡리에 마애불과 구서당가(舊書堂家)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내판(內板)·문주(文舟)·용호(龍湖)·합강(合江)·명학(鳴鶴)·응암(應巖)·노송(老松)·예양(禮養)·송룡(松龍) 등 9개 리가 있다.

  1. 서면(西面)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54.67㎢, 인구 8,654명(2008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성제리이다. 본래 연기군 서쪽이 되므로 서면이라 하여 기룡·호교·동산 등 32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군내면의 3개 리와 북이면의 봉암리를 병합해 9개 리로 개편되었고, 1920년에 북면이 폐지되면서 조치원리를 제외한 지역을 병합하였다. 1940년에 반암·신동·내창·동리 등 4개 리가 조치원읍에 편입되었다.

면의 북서부에 신림령(新林嶺)이 있고 북부에 오봉산(五峰山, 262m)이 있으나 대체로 저평한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면의 동부에 미호천이 흐르며, 미호천 유역에 비옥한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일제강점기 초부터 조성되기 시작한 복숭아과원이 많아 군내 최대의 생산지가 되고 있다. 여기서 생산된 복숭아는 군내의 가공공장에 다량 공급되며, 나머지는 서울과 지방 여러 곳으로 반출된다. 그러나 최근에는 토지생산성의 상대적 저하, 경쟁산지의 출현, 유통구조상의 문제, 과수의 노령화 등으로 인해 과원경영에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교통은 조치원과 공주를 연결하는 지방도가 군의 북부를 지나며, 면내 각 지역으로 통하는 도로가 연결되어 있어서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고복리에 신흥사부도, 월하리에 연화사 무인명석불상부대좌와 칠존석불상, 기룡리에 봉수대와 효교비가 있고, 그 밖에 신대리에 애국지사 홍일섭의 묘와 홍일섭을 기리는 독립의열사숭모비(獨立義烈士崇慕碑)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성제(性濟)·월하(月河)·쌍전(雙錢)·기룡(起龍)·신대(新垈)·용암(龍巖)·국촌(菊村)·와촌(瓦村)·쌍류(雙流)·청라(靑羅)·부동(釜洞)·고복(高福)·봉암(鳳巖) 등 13개 리가 있다.

  1. 소정면(小井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16.47㎢, 인구 3,413명(2008년 현재). 면 소재지는 소정리이다. 본래 전의면 지역이었으나 1986년전의면 소정출장소가 1995년에 면으로 승격하였다.

북부에 고려산(高麗山, 307m)이 있고, 서부에는 전의면의 국사봉에서 발원한 곡교천(일명, 고분다리천)이 천안의 풍세천으로 흐르면서 유역에 좁은 평야가 전개되고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쌀·보리와 무·당근·고추·파·수박·참외 등의 채소, 참깨·들깨·땅콩, 과일 등의 특용작물, 사과·복숭아·포도·배 등의 과일이 생산된다. 가축은 소·돼지·산양·닭이 사육된다.

교통은 철도의 경부선이 면의 서부를 지나고, 국도 1호선이 철도와 나란히 지나고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고등리에 고려산성, 대곡리에 성지와 삼층석탑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소정(小井)·운곡(雲谷)·대곡(大谷)·고등(高登) 등 4개 리가 있다.

  1. 전동면(全東面)

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57.73㎢, 인구 4,551명(2008년 현재). 면 소재지는 노장리이다. 본래 전의군 동쪽이 되므로 동면이라 하여 상로장·중로장 등 2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소서면의 상사기소 등 23개 리, 남면의 심천 등 23개 리를 병합해 전의의 동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전동면으로 개칭하고 연기군에 속하게 되었다. 그 뒤 1986년에 신방·달전·양곡·영당·금사·다방 등 6개 리를 전의면에 넘겨주었다.

망경산(望京山, 385m)·오봉산·운주산 등이 면계를 따라 위치하고 차령산맥의 영향으로 면의 대부분이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조천이 면의 중앙을 남동류하면서 유역에 좁은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복숭아·사과·배·감·자두·포도 등의 과일과 들깨·참깨 등의 특용작물이 많이 재배된다. 교통은 경부선 철도와 서울∼부산간 국도가 면의 중앙을 동서로 관통하며, 지방도들이 연결되어 있어서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청송리와 미곡리에 운주산성(충청남도 기념물, 1989년 지정), 송성리에 충정사를 비롯해 연기이성(충청남도 기념물, 1989년 지정)과 연기금이성(충청남도 기념물, 1989년 지정), 청람리에 청람사지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노장(蘆長)·봉대(鳳臺)·청송(靑松)·보덕(寶德)·송곡(松谷)·석곡(石谷)·청람(靑藍)·송정(松亭)·미곡(美谷)·송성(松城)·심중(深中) 등 11개 리가 있다.

  1. 전의면(全義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62.40㎢, 인구 7,597명(2008년 현재). 면 소재지는 읍내리이다 본래 전의군 소재지이므로 군내면이라 하여 동부·서부 등 10개 리를 관할하였다.

1895년에 전의군에 편입된 충청북도 청주군 덕평면의 9개 리와 천안군 소동면의 5개 리를 편입해 전의면으로 개칭되면서 연기군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북면의 상로곡·중로곡 등 19개 리와 대서면의 천서 등 14개 리가 편입되었다. 1986년전동면의 신방·달전·양곡·영당·금사·다방 등 6개 리를 편입하였다.

면의 북부에 운주산(雲住山, 460m), 서부에 국사봉이 솟아 있으며, 대부분 지역이 200∼300m 내외의 구릉지대를 이루고 있다. 조천이 중앙부를 흐르면서 유역에 좁지만 비옥한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평야지대에서는 벼농사가 행해지며, 각종 채소도 재배된다. 최근에는 비닐하우스를 이용한 채소재배가 증가하고 있다. 구릉지대에서는 복숭아·사과·배·포도·감 등의 과일과 참깨·들깨·땅콩 등의 특용작물이 재배되고 있으며, 그 밖에 황색잎담배가 많이 재배되어 군내 제일의 생산지가 되고 있다. 또한, 소·돼지·닭·토끼의 사육이 활발하며, 일부 농가에서는 오리·칠면조·산양도 사육하고 있다.

교통은 경부선 철도가 면의 중앙을 동서로 관통하고 있으며, 서울∼부산간의 국도가 이와 병행하여 지나고 있어서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읍내리에 전의향교, 다방리에 비암사극락보전·비암사삼층석탑과 다방리석상(多方里石像)이 있다. 이 밖에 양곡리에 금이산성, 신방리에 이성산성, 서정리·봉대리에 성지, 관정리에 사관정, 금사리에 요지(窯址)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읍내(邑內)·관정(觀亭)·노곡(老谷)·신정(新井)·동교(東校)·서정(西亭)·유천(柳川)·원성(元省)·신흥(新興)·신방(莘芳)·달전(達田)·양곡(陽谷)·영당(靈堂)·금사(金沙)·다방(多方) 등 15개 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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