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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시(榮州市)

인문지리행정지명

 경상북도의 최북단에 위치한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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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경상북도의 최북단에 위치한 시.
영역닫기영역열기개관
동쪽으로는 봉화군, 서쪽으로는 충청북도 단양군, 남쪽으로는 안동시와 예천군, 북쪽으로는 강원도 영월군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 동경 128°25′23″~128°44′41″, 북위 36°41′32″~37°03′46″에 위치하며, 면적은 669.27㎢이고, 인구는 10만 9735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9개 면, 9개 행정동(13개 법정동), 199개 행정리(94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경상북도 영주시 휴천동에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자연환경
소백산맥이 북서쪽 시계를 따라 달리고 있어, 북서부에는 선달산(先達山, 1,236m)·어래산(御來山, 1,064m)·형제산(兄弟山, 1178m)·국망봉(國望峰, 1,421m)·소백산(小白山) 비로봉(1,440m)·제일연화봉(第一蓮花峰, 1,394m) 등 소백산맥의 연봉들이 솟아 있다.
또한, 그 지맥으로 남쪽에 있는 시루봉·집봉(543m) 등과 연결되며, 용처럼 생긴 바위와 옛 성이 있는 용암산(龍巖山, 637m), 꼭대기에 비봉산성(飛鳳山城)과 적석고분(積石古墳)이 있는 비봉산(飛鳳山, 420m), 배나무고개·삼거리현·갈가리치(葛加里峙) 등의 고개가 있어 산맥의 동·서 양 지역을 연결하는 대마산(大馬山, 375m)과 원적봉(圓寂峰, 961m)·이자산(二子山, 605m) 등의 산이 이어져 있다.
반면에 남동부에는 소백산에서 발원하는 남원천(南院川)·죽계천(竹溪川)·감천천(甘泉川) 등의 하천유역에 침식분지가 발달되어 있다. 죽계천은 순흥면의 국망봉에서 발원해 시의 북서부를 관통해 남동류하며, 내죽리의 소수서원을 지나 죽계구곡을 이루고, 단산면 동원리에서 단산천과 합류한다.
그리고 다시 남류해 창진동에서 남원천과 합류하고 문수면의 중앙을 관류해 월호리에서 내성천으로 흘러든다. 하천의 넓은 유역에는 넓은 평야가 전개되고 있다.
감천천은 천부산에서 발원해 용암산·시루봉·집봉·주마산으로 이어지는 남북방향의 긴 산맥 산기슭을 따라 남류하다가 하촌리에 이르러 연평천(硯坪川)이 되며, 예천군 감천면의 서부를 돌아 남동류해 예천군 보문면 간방리에서 내성천으로 흘러든다.
토질은 대부분이 사질양토로 각종 농산물이 잘 자라며, 특히 북부 산악지대는 사양토이기 때문에 배수가 잘되어 인삼, 사과 등의 생육에 적절한 곳이다.
경상북도 최북단의 내륙 산악지대에 위치하여 대륙성기후의 특징인 한서의 기온차가 뚜렷한 편이다. 계절적으로 봄과 가을이 짧으며 1월 평균기온은 -2.9℃ 안팎이며, 8월의 평균기온은 24.5℃이를 나타낸다. 최저기온은 -16.2℃이고 최고기온은 35.5℃를 나타낸다. 연평균기온 10.8℃이고, 연강수량은 약 1,515㎜이다. 겨울(12~2월)의 강수량은 108.3㎜로서 전체 강수량의 7.1%의 비율을 차지하고 여름(6~8월)의 강수량은 744㎜로서 전체 강수량의 49%를 차지하는 다우지역이다. 여름에는 한 달에 10일정도 비가 오고, 겨울에는 한 달에 4일 정도 비가 온다.
영역닫기영역열기역사
선사유적은 많이 조사되지 않아 사람이 언제부터 살았는지 알 수 없다. 청동기시대의 유물·유적이 휴천동·가흥동, 안정면 안심리와 풍기읍 등에서 발견되어 이 시기에 이미 사람이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청동기인의 활발한 활동에 의해 이 지역에서도 일찍부터 소국(小國)주 01)이 형성되었는데, 진한 12국의 하나인 기저국(己柢國)이 풍기읍에 비정되고 있다. 1세기 말에서 2세기 초에 신라 파사이사금에 의해 이 지역이 공략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신라지배집단의 이동과정에서 있었던 일로 짐작된다.
그 뒤 이 지역은 고구려의 영역에 들어가 내이군(奈已郡)·급벌산군(及伐山郡)이 되었다가 신라에 병합되어 내이군·급벌산군은 그대로 유지되고, 기목진(基木鎭)이 새로 설치되었다.
500년(소지마립간 22) 왕이 이 곳에 행차해 벽화(碧花)와의 전설을 남기기도 했고, 676년(문무왕 16)에는 의상(義湘)이 왕명을 받아 부석사(浮石寺)를 창건하였다. 757년(경덕왕 16) 지방제도 개편 때 내이군은 내령군(奈靈郡)으로, 급벌산군은 급산군(及山郡)으로 개명되어 삭주(朔州)에 포함되었다.
후삼국의 쟁패기에 이 곳은 후고구려의 세력권에 들어가 궁예(弓裔)가 부석사에 행차한 설화가 전해진다. 고려 통일 이후 안동부의 관할지역이 되었는데 내령군은 강주(剛州)로, 급산군은 흥주(興州)로, 기목진은 기주현(基州縣)으로 개명되었다.
강주에는 995년(성종 14)에 도단련사(都團練使)가 파견되었으나, 1018년(현종 9) 이 지역 모두가 다시 안동부의 속읍이 되었다. 1143년(인종 21)강주가 순안현(順安縣)이 되어 현령이 파견되자 흥주도 이에 예속되었는데, 순안현은 1259년(고종 46) 김인준(金仁俊)의 공으로 인해 지영주사(知榮州事)로 승격되었다.
흥주와 기주는 1172년(명종 2)에 감무가 파견되었다. 흥주는 충렬왕 때 흥녕현(興寧縣), 충숙왕 때 지흥주사(知興州事), 충목왕 때 순흥부(順興府)로 승격되었다. 기주는 감무가 폐지되고 다시 안동부에 속했으나, 1390년(공양왕 2) 감무가 설치되면서 안동부의 속읍인 은풍현(殷豊縣)을 속현으로 두었다. 고려 후기에 안향(安珦)·안축(安軸)·정운경(鄭云敬)·정도전(鄭道傳) 등과 같은 사대부들이 배출되었다.
1413년(태종 13) 군현 등급의 조정에 따라 영주와 기주는 영천군·기천현이 되었고 순흥부는 도호부로 되었으며, 기천현은 1450년(세종 32)은풍현으로 합해 풍기군(豊基郡)으로 승격되었다.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당시의 호구수는 영천군이 377호 5,902인, 순흥부가 284호 3,599인, 풍기군이 160호 1,511인이었다고 한다. 토지는 대부분 척박했고, 풍속은 근검해 누에고치의 재배와 같은 생업에 힘썼다고 한다.
순흥부는 1457년(세조 3) 금성대군(錦城大君)과 부사 이보흠(李甫欽)의 단종복위 기도 때문에 부가 폐지되고 영역이 영천·풍기·봉화 등에 분속되었다. 그 뒤 고을사람들이 계속된 상소에 따라 1683년(숙종 9)에 부활되었다.
그러나 1829년(순조 29) 강상지변(綱常之變)이 일어나 한때 현으로 강등되었다. 1729년(영조 5)풍기군도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연루되어 역적의 출생지라 하여 한때 현으로 강등되었다.
1894년 8도제 시행 당시에는 경상도 영주군·풍기군·순흥부이었다가, 1895년 갑오개혁에 의해 23부제가 실시되자, 세 지역 모두 군이 되어 안동부에 소속되었다. 1896년의 13도제 실시에 의해 경상북도 영주군·풍기군·순흥군으로서 4등군이 되었다.
1906년 일부 면들이 봉화군에 이속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군면통폐합시 3개 군이 되어 영주군을 이루었고, 일부 지역이 봉화군·예천군에 다시 할양되었다. 1940년영주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한말에 소흥학교(紹興學校)·안정학교(安定學校) 등이 차례로 건립되어 근대적 교육활동이 활발히 일어났으며, 항일의병운동도 계속 일어나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1919년 3·1운동 때는 3월 20일에서 4월 11일까지 영주면·풍기면·하리면·장수면 등지에 만세시위운동이 계속 일어났다.
8·15 광복 이후 지역분할 정도의 행정구역 개편만 이루어지다가 1973년 7월 1일풍기면이 읍으로 승격했고, 1980년 4월 1일영주읍이 시로 승격함에 따라 영주시와 영풍군이 분리되었다. 1995년 1월 1일 도농통합에 따라 영주시와 영풍군이 통합되어 새로운 영주시가 되었다.
1998년 1월 19일봉현면 오현리의 일부가 대촌리에 편입, 같은 해 8월 20일에는 이산면 운문리의 일부가 평은면 금광리에 편입, 이산면 석포리의 일부가 이산면 신암리에, 평은면 평은리의 일부가 강동리에 각각 편입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유물·유적
낙동강 상류에 위치하며 내륙교통의 요지로서 유적이 많다. 선사시대의 유적으로는 가흥동의 영주가흥리암각화(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48호)를 비롯해, 휴천동의 휴천리 지석 및 입석(경상북도 기념물 제24호), 순흥면의 순흥읍내리벽화고분(사적 제313호)·읍내리고분군, 안정면의 용산고분군, 고현동의 고분군 등이 있다.
성지로는 구성산성(龜城山城)·고현성지·상을곡성지(上乙谷城址)·갈산성지·봉암성지(鳳巖城址)·순흥읍성지(順興邑城址)·비봉산성지 등이 있다.
사찰로는 부석사와 희방사(喜方寺)·성혈사(聖穴寺)·진월사(陳月寺)·흑석사 등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부석면 북지리의 부석사무량수전앞석등(浮石寺無量壽殿·石燈, 국보 제17호)·부석사무량수전(국보 제18호)·부석사조사당(국보 제19호)·부석사소조여래좌상(浮石寺塑造如來坐像, 국보 제45호)·부석사조사당벽화(국보 제46호)·부석사삼층석탑(보물 제249호)·부석사삼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0호)·부석사당간지주(보물 제255호)·부석사고려각판(浮石寺高麗刻板, 보물 제735호)·부석사원융국사비(浮石寺圓融國師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7호)·영주북지리석조여래좌상(보물 제220호)이 있다.
그리고 이산면 석포리의 흑석사목조아미타불좌상병복장유물(黑石寺木造阿彌陀佛坐像幷腹藏遺物, 국보 제282호)·흑석사석조여래좌상(黑石寺石造如來坐像, 보물 제681호), 영풍두월리약사여래석불(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23호), 가흥동의 영주리석불입상(榮州里石佛立像, 보물 제60호)·영주가흥리마애삼존불상(榮州可興里磨崖三尊佛像, 보물 제221호)을 들 수 있다.
또한, 순흥면의 영주석교리석불상(榮州石橋里石佛像, 보물 제116호)·영주읍내리석조여래좌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48호)·영주읍내리석불입상(榮州邑內里石佛立像,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5호), 이산면의 영주신암리마애삼존석불(榮州新巖里磨崖三尊佛像, 보물 제680호)이 있다.
아울러, 풍기읍 삼가리의 영풍비로사석아미타 및 석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996호)·비로사진공대사보법탑비(毘盧寺眞空大師普法塔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호)·영주삼가동석조당간지주(榮州三街洞石造幢竿支柱,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호), 문수면의 영풍월호리마애석불좌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43호), 영주상망동석불좌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77호), 풍기읍 수철리에 백룡사석조여래좌상(白龍寺石造如來坐像,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82호)이 있다.
이 밖에도 순흥면 내죽리의 숙수사지당간지주(宿水寺址幢竿支柱, 보물 제59호), 순흥면 덕현리의 성혈사나한전(聖穴寺羅漢殿, 보물 제832호), 배점리의 초암사삼층석탑(草庵寺三層石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6호)·초암사동부도(草庵寺東浮屠,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8호)·초암사서부도(草庵寺西浮屠,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9호), 풍기읍 수철리의 희방사동종(喜方寺銅鍾,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26호)이 있다.
유교문화재와 고건축물로는 풍기읍 교촌리의 풍기향교(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1호), 하망동의 영주향교대성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3호), 순흥면 내죽리의 소수서원(紹修書院, 사적 제55호), 이산면 용상리의 칠성루 및 휴계재사(七星樓―休溪齋舍,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74호)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이산면 신암리의 우금촌두암고택(友琴村斗巖古宅,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81호), 문수면 석문리의 종릉재사(鍾陵齋舍,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8호), 두월리의 괴헌고택(槐軒古宅,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65호), 문수면 수도리의 해우당고택(海愚堂古宅,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2호)·만죽재고택(晩竹齋古宅,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3호) 등도 포함된다.
다음으로, 장수면 화기리의 인동장씨종택(仁同張氏宗宅,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98호), 단산면 병산리의 섬모당(瞻慕堂,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15호), 평은면 천본리의 군자정(君子亭,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6호), 영주동의 가학루·구학정·반구정·영훈정·제민루 등을 들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순흥면 내죽리에 안향의 초상화인 회헌영정(晦軒影幀, 국보 제111호)와 공자(孔子)와 72현 및 제후가 차례로 앉은 모습을 그린 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大成至聖文宣王殿座圖, 보물 제485호) 및 주세붕영정(周世鵬影幀, 보물 제717호) 등이 있다.
아울러 안정면 용산리에 회헌개모영정(晦軒改摹影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37호), 서총대친림연회도(瑞?臺親臨宴會圖,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38호), 배점리에 배순정려비(裵純旌閭碑,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9호), 읍내리에 순흥척화비(順興斥和碑,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42호) 등이 있다.
그 밖에 장수면 화기리에 인동장씨선세홍백패(仁同張氏先世紅白牌, 보물 제501호)·장말손영정(張末孫影幀, 보물 제502호)·장말손유품(보물 제881호)·장말손종가소장고문서(張末孫宗孫家所藏古文書, 보물 제1005호)·적개공신장말손상훈교서(敵愾功臣張末孫賞勳敎書, 보물 제604호), 풍기읍 동부리의 영풍장도장(榮豊粧刀匠,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5호), 순흥면 읍내리의 사현정(四賢井, 경상북도 기념물 제69호)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영풍안정면의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273호), 영풍순흥면의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274호), 단산면의 갈참나무(천연기념물 제285호) 등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영주향교·풍기향교·순흥향교가 있다. 1358년(공민왕 17)에 창건한 영주향교는 1433년(세종 15)·1577년(선조 10)·1739년(영조 15)에 중수했으며, 그 뒤에도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풍기향교의 설치시기는 알 수 없다. 그러나 1542년(중종 37)에 현 위치로 이건했다가 1682년(숙종 8)에 옛 자리로 옮겼다. 그 뒤 1735년에 현 풍기읍 교촌리로 옮겼으며, 1858년(철종 9)에 대대적인 중수를 하였다.
여말선초에 건립한 순흥향교는 1683년에 복설해 1685년에 완성하였다. 그 뒤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현재는 순흥면 청구리에 있다. 서원으로는 1543년(중종 38) 주세붕(周世鵬)이 세운 백운동서원은 우리 나라 서원의 효시이다.
이 서원은 순흥면 내죽리에 있는데, 1550년(명종 5)에 이황의 건의로 소수서원이라 사액되어 사액서원의 효시가 되었다. 그 외에도 1665년(현종 6)에 우계서원, 1654년(효종 5)에 삼봉서원, 1691년에 장암서원, 1708년에 우곡서원, 1621년에 구산정사 등을 세웠다.
아울러 1703년에 사계서원, 1662년에 욱양서원, 1674년에 의산서원, 1618년(광해군 10)에 단계서원, 1610년에 견일사, 1676년에 기영사, 1676년에, 1719년에 성인단 등을 세웠으나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모두 철폐되었고, 소수서원만 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근대 교육기관인 초등학교로는 1908년에 풍기공립보통학교(풍기초등학교의 전신)가 처음으로 설립되었다. 그리고 1911년에 영주공립보통학교 외에 14개의 학교가 개교되었으나 중등학교는 광복 후에 설립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8개교, 중학교 11개교, 고등학교 9개교, 경북전문대학교와 동양대학교가 있다. 문화공간으로는 일반공연장 1개, 영화관 2개, 시민회관 2개, 문화원 1개, 도서관 3개, 문화재 92개(국가지정문화재·국보 7, 보물 21, 사적 3, 천연기념물 3, 중요민속자료 1, 경상북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25, 기념물 1, 민속자료 4, 무형문화재 7, 문화재자료 20)가 있다.
문화행사로는 매년 1월 1일에 소백산 눈꽃축제를 시작으로, 6월에는 소백산 철죽제, 9월에는 단산포도축제와 부석사 화엄축제 그리고 10월에는 부석사과축제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영주시의 대표적인 축제는 1984년부터 매년 10월에 풍기인삼조합주최로 개최되는 ‘풍기인삼전진대제’가 있다. 종교기관은 개신교 교회 119개, 천주교 성당 4개, 불교 사찰 76개가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민속
이 고장의 민속놀이로는 용꼬리따기·씨름·줄다리기 등이 있다. 그 중 용꼬리따기는 이 지역의 대표적인 고유향토민속놀이로서 1987년도 소백문화제에서 발굴, 시연되었다.
이 놀이는 임진왜란 당시 백성들의 호국정신을 드높이고 단결을 꾀해 서울 동남문 안으로 왜적이 쳐들어오지 못하게 막은 데서 유래되었다. 청룡패·황룡패의 두 패로 나뉘어서 서로의 꼬리를 따내는 방식으로 진행되며, 앞 대장은 부하장병을 잃지 않기 위해 적을 막으며 최선을 다한다.
청룡·황룡을 구성하는 50명씩과 영기·용기를 드는 사람들과 각 팀의 사기를 높이는 농악패로 이루어진다. 농악에 맞추어 청룡·황룡이 앞장서고 영기·용기·농악패가 뒤따른다.
청룡·황룡 구성인은 차례로 앉았다 섰다 하며 용을 파도처럼 넘실거리게 한 후 ‘와’ 하는 함성과 함께 “동동동동 동대문을 열어다오/ 남남남남 남대문을 열어다오/……” 하는 노래를 선창과 후창으로 나누어 하며 서로 꼬리를 따낸다.
청룡·황룡 대장은 양팔을 벌려 자기편을 보호하고 꼬리 부분의 사람들은 안 떨어지려고 마구 껴안고 도망친다. 결국 떨어진 졸개들은 도망치고 졸개를 잃은 대장까지 사기가 저하되고 남은 용이 더 따일까 봐 도망친다. 그러나 끝내 지쳐 배를 내놓고 자빠져 죽는시늉을 한다. 이긴 편에서는 함성을 올리며 승리를 기뻐한다.
그리고 순흥면의 줄다리기는 이 고장의 대표적인 민속놀이이다. 이 놀이의 기원은 단종복위 모의로 인해 순흥도호부가 폐부되었다가 1683년(숙종 9)에 복설되었던 것을 경축하기 위한 행사에서 시작되었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이 행사는 규모가 매우 커서 처음에는 성하(城下)와 성북(城北)이 대결을 벌이다가 이후에는 순흥의 동·서부가 대결을 하였다. 정초에 마을 원로들이 행사에 관한 사항을 구체적으로 결정하면 집집마다 짚을 갹출해 공동으로 동아줄을 만든다.
줄은 원줄·종줄·꼬리줄로 되어 있으며, 원줄은 직경이 2.5m 가량 된다. 서부줄은 암줄이라 하고 동부줄은 수줄이라 하며, 두 줄을 잇는 비녀목은 2m쯤 되는 참나무를 사용한다. 줄은 상하지 않도록 잘 보관하는데 여자가 줄을 밟거나 넘어가면 끊어진다 해 접근을 막는다.
경기는 횃불을 켜고 야간에 한다. 먼저 포·과주를 놓고 간단히 고사를 지낸 후 징을 치거나 총성을 울림으로써 경기를 시작한다. 여자들은 원칙적으로 참가가 금지되어 있으나 불리하면 끼여들어 합세하며, 때로 응원을 하는 농악팀도 끼여들기도 한다.
그리고 승자의 조세를 패자가 전담하기도 했다 하며 승자는 원줄을 나누어 잘라서 지붕에 올려놓으면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이 밖에도 굿농악이 특징인 사천농악과 지신굿밟기가 있다.
이 지방의 대표적인 동제로는 단산면 옥대리에 있는 두렛골 서낭당에서 지내는 서낭제를 들 수 있다.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죽임을 당한 금성대군을 당신으로 모시고 제사를 드린다.
이 때 양반들의 제를 당신이 부정하다 해 받지 않았으므로 일반 민중들에게 제사가 이양되었다. 정월 보름에 지내는 제는 규모가 크고 엄숙하게 거행하며, 까다로운 금기를 엄격히 지킨다.
제관은 정월 초사흘부터 매일 3회 목욕재계한다. 더구나 삼족내에 복상이나 임신한 가족이 있거나, 집안의 짐승이 새끼를 배거나 산후중인 사람은 제관이 될 수 없다. 또한, 제물로 구입한 소는 ‘양반님’이라 부르며 경어를 쓴다.
소를 잡아 콩팥·간·골·천엽 등은 서낭당에, 뒷발은 산신각에 놓고 석되 서홉의 쌀로 만든 백설기, 삼채 삼색과 새양미 등을 진설한다. 14일에 소를 잡고 산신각에 먼저 고사지낸 뒤 15일 새벽 2시에 제를 지낸다.
영역닫기영역열기설화·민요
이 고장에는 사찰연기설화·지명유래담·자연물에 관한 전설 등이 전한다. 부석면의 부석사는 신라 때 의상이 창건한 절로 연기설화가 전해진다. 의상은 입산한 지 8년 만에 뜻을 품고 당나라로 갔는데 양주에서 병을 얻어 성의 수위장집에 묵게 되었다.
그런데 그 집의 딸 선묘가 의상에게 연정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의상이 완쾌되어 떠나던 날 선묘는 귀국할 때 꼭 다시 들러달라고 부탁하였다. 의상은 지상사에서 지엄대사 밑에서 수학하다가 당나라가 신라를 침범하려는 것을 알고 서둘러 귀국하였다.
도중에 선묘의 집에 들렀으나 마침 출타중이어서 만나지 못하였다. 뒤늦게 이를 안 선묘가 의상을 뒤쫓아와 바다 저 멀리 사라지는 배를 보고 만들어두었던 옷을 던지며 축원하니 해풍이 일어 의상에게 날라다주었다.
선묘는 이어 용이 되어 의상의 귀국을 돕게 해달라며 바다에 몸을 던졌다. 용이 된 선묘의 호위를 받으며 무사히 귀국한 의상은 당나라의 침략 의도를 알리고 방비하게 하였다. 그 뒤 사찰을 건립하라는 왕명을 받고 봉황산에 터를 잡으려 했으나 먼저 자리를 잡은 이교도들 때문에 뜻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 때 용이 큰 바위를 세 차례나 공중에 들어올렸다 놓으니, 이교도들이 겁을 먹고 굴복하였다. 이 자리에 건립한 것이 부석사이다. 그리고 그 큰 바위는 무량수전 서편 암벽 밑에 자리잡고 있다. 선묘룡은 수호신으로 안좌했는데 무량수전 주불 밑에서 석등까지 뻗쳐 있어 비늘 모습까지 아련하게 석룡으로 남아 있다.
이산면의 산기슭에 있는 바위는 홈이 패어 원래 술이 흘러내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나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흘러내리는 술을 마시고 그늘 아래 쉬어가곤 하였다. 그런데 두 잔 이상을 마시면 안 된다는 금기가 있었다. 어느 날 만취한 행인이 이곳에 들러 여러 잔을 연거푸 마시고 죽고 말았다. 그 뒤부터는 술바위에서 술이 흐르지 않았고 그 흔적만 남게 되었다.
또한, 휴천동의 뒷산에는 뚜껍바위 혹은 뚜껑바위·갓바위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어 이름만큼이나 다양한 전설이 전하고 있다. 조선 초에 송석이라는 아이가 10리 떨어진 문정동에 글공부를 하러 다녔다. 그 아이는 바보 같아서 언제나 아이들의 놀림을 받았다.
어느 날 서당의 연못 옆에서 잠이 든 아이는 못 속의 잉어를 먹으면 힘이 난다는 스승의 말이 생각나 그대로 하였다. 그랬더니 과연 장수가 되어 그 힘이 조정에까지 알려졌다. 대추나무를 뽑아내고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들어올리는 등 그의 힘은 대단하였다.
그러자 이를 두려워한 간신들은 모함하기에 이르렀고, 집안에서도 화를 면하려고 그를 죽이려 하였다. 어느 날 송장사는 어머니에게 겨드랑이의 잉어비늘을 떼어내면 죽게 된다고 실토하였다. 어머니는 간신들의 모함에 빠져 송장수가 자는 사이에 비늘을 떼어내고 말았다.
그가 죽은 지 며칠 안 되어 그를 태우려던 용마가 등에 갑옷을 싣고 못둑을 돌며 울다가 갑옷을 뚜껍바위에 놓고 사라져버렸다. 지금도 이 바위를 헤치려고 하면 우뢰가 치고 소나기가 내린다.
일설에는 힘이 센 장사가 살았는데, 악행만 골라 하므로 사람들이 힘을 모아 그 장사를 죽였고, 이후 그의 무덤 앞에 백마가 울고 가더니 그의 갑옷이 바위 속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이 밖에도 지네바위·금계바위 등의 전설, 배점의 지명유래담, 방석사·희방사의 내력, 안정면의 조개섬 모양의 지형에 따른 사연 등이 전한다.
이 고장에는 남요(男謠)와 부요(婦謠)가 고루 전승되고 있으나 대개 노동요들이다. 이들 노래는 구성상 선소리(매김소리)와 받음소리로 이루어지는 것이 있고 사설조로 된 형태가 있다.
「논매기노래」·「모심기노래」·「보리타작노래」·「목도소리」·「상여소리」 등은 매김소리를 가진 것이고 「길쌈노래」는 아낙네가 길쌈할 때 부르는 사설조의 노래이다. 남요인 「모심기노래」를 보면, 다음과 같다.
“바다같은 이논배미 반달만큼 남았구나/ 니가무슨 반달이고 그믐초생이 반달이지/ 멈아멈아 정심멈아 점심참이 늦어간다/ 아흔아홉칸 정지밟아 돌고보니 늦었구나/……/ 서마지기 이논배미 반달같이도 새겨낸다/ 그게무슨 반달이고 그믐초승이 반달이지/ 샛별같은 저정심보게 반달같이도 떠나온다/ 그게 무슨야 반달이고 그믐초승이 반달이지.”
즉, 선소리와 받음소리가 서로 호응되는 형태를 보인다. 또한, 부요로서의 사설조노래인 「바늘노래」는 바늘을 소재로 해 그 모습·성질·행동 등을 의인화해 그 덕목(德目)을 노래하고 있다.
“금생여수 내가날제 흙가운데 내가있어/ 생긴대로 두게되면 무용지물 되올것을 / 조물용이 시키신가 성인님이 가르친가/ 울어내고 쓸어내어 풀미간에 녹여내어/ 굵은바마치 잔마치에 백련정금 뽑아내어/ 대장놈의 묘한 솜씨 이상케도 만들었네/ 입끝이는 날카우니 촉바른말 잘하는가/ 몸둥이가 꼿꼿하니 마음조차 곧겠구나/ 귓구멍이 뚫렸으니 오른말로 듣겠구나/ 빽빽한걸 잘뚫으니 슬기조차 있을게요/ 부러지기 일쑤하니 결단성도 있을게요/ 바른길로 찾아가서 그른노릇 안할게요/ 꼬박꼬박 절을하니 예절일랑 배웠는가/반들반들 빛이나니 행실학업 닦았는가.”
이 지방에 전래되는 민요는 양적으로도 비교적 풍부하며, 그 가운데도 내륙민요가 가지는 형식과 내용을 특징으로 갖고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산업·교통
산지가 많은 편이지만 침식분지도 발달해 논농사와 밭농사 모두 활발하다. 총경지면적은 154.96㎢이고 경지율은 23.2%이다. 그 가운데 논이 76.1㎢로 약 49.1%를 차지하고 밭이 78.9㎢로 약 50.9%를 각각 차지하며, 논농사가 밭농사가 비슷하게 이루어진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등이며, 잎담배, 인삼 등 특용작물의 재배가 활발하다. 또한 지황·목단·백작약·시호 등의 약초재배도 많이 한다. 그리고 도시가 발달함에 따라 무·배추 등의 소채류와 사과·배 등 과실류의 생산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풍기에서 산출되는 인삼은 널리 알려져 있으며, 소백산록의 유기물이 풍부한 토양에서 재배되기 때문에 내용조직이 충실하고 유효사포닌 함량이 높다. 그 외 특산물로는 맑고 청정한 소백산록에서 자라 육질이 우수하고 위생적으로 생산된 소백산한우, 소백산약초, 품질이 우수한 국산콩을 원료로 해 발효도가 높고 맛이 뛰어난 순흥메주가 있다.
이 곳은 강원도 남부, 경상북도 북부, 충청북도 동부지역의 풍부한 임산자원과 편리한 교통을 조건으로 해 목재·펄프·제재와 관련된 산업이 발달하였다. 특히, 임산물은 봉현면·부석면·단산면·풍기읍·순흥면에서 많이 생산된다.
인근의 강원도 영월·삼척 지역의 석탄광산이 개발됨에 따라 관동지방의 지하자원을 영남지방으로 연결하는 수송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광업관련회사의 진출이 뚜렷이 나타난다.
그리고 장수면 성곡리에서는 질 좋은 장수화강암이 산출되고 이를 재료로 한 석재(石材) 가공업이 발달하였다. 장수화강암은 그 암질이 매우 단단하고 깨끗하며 내부에 틈이 없어 풍화작용에 강하다.
더구나 수분의 침투가 어려워서 이끼가 잘 끼지 않을 뿐더러, 철분 등 광물질의 함량이 적고 등립질(等粒質)의 조직을 가지고 화강섬록암(花崗閃綠岩) 계통이 우세해 회색 및 담회색으로 미려하다.
화강암 고유의 방향성·치밀성·견고성을 고루 갖추어 절단이 용이하며 조각이 쉽고 작은 글자를 각자(刻字)한 경우에도 주변이 마모되지 않아 석조품의 석재로서 가치가 크다. 1960년대 이후 석재의 반출량이 크게 증가하자 1969년 회사가 설립되어 석재채굴을 본격화하였다.
그 뒤 석재수출회사가 들어서서 대량채굴을 하고 있으며, 석재가공산업도 발달해 다양한 상품이 생산된다. 1994년 현재 광구수는 35개로 가행광구는 11개이며, 이산면에 1개, 평은면에 1개, 부석면에 9개가 있다. 이산면·평은면에서는 주로 규석이, 부석면에서는 장석이 생산된다. 이 후 2000년을 기점으로 광구수는 7개(가행광구 2개, 미가행광구 5개)로 줄어들었고, 2004년 이산면의 금속 광물의 미가행광구 1개와 문수면에 기타 광물의 가행 광구 1개만 남아 있다가 2007년 이후 광구가 모두 없어지고 생산이 중단되었다.
그리고 풍기읍을 중심으로 인조견직조공업도 활발하다. 1994년 현재 농공단지는 모두 5단지로 면적은 98만 165㎡에 총 66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또한 도시가 발달함에 따라 각종 상업 및 서비스업이 발달하였다. 그 후 1996년도에 1개 단지가 새롭게 조성되어 6단지가 되었고, 면적은 115만 8766㎡에 총 65개 업체에 1,909명의 종업원이 있다. 단지의 수는 변함이 없으나 면적은 넓어져 2008년에는 119만 2509㎡, 60개 업체 2,045명의 종업월이 있다. 영주지방산업단지에는 77개 업체에 171명의 종업원이 있다.
상업활동은 1830년대에 반구(盤邱)·봉풍(?豊)·평은(平恩)·영정원·풍기·순흥·오천장이 3·8일, 영주읍내장이 2·7일 등의 5일장과 변곡(?谷)·장동(樟洞) 등의 10일장이 있었다. 이 곳에서는 주로 농산물과 인삼·과일·소·임산물이 거래되었다.
1950년대까지는 시장상황에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경제개발 및 교통통신의 발달과 도시화로 인해 상설점포가 증가하는 반면, 정기시장은 차츰 쇠퇴하는 추세다.
영주장도 1965년 상설시장으로 변해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1984년 정기시장으로서는 폐지되었다. 사설시장인 영주중앙시장은 1982년 상설시장으로 되었다. 1989년에는 풍기·순흥·단산·소천·노좌 등 5개의 5일장이 공설시장으로 열리고 있었다.
그 밖에 농협연쇄점과 1개의 상설소매시장과 2개의 사설시장이 개설되어 있었다. 1994년 현재 풍기·순흥·단산·부석 등의 4개의 정기시장과 풍기·하망·영주·휴천 등 4개 일반시장이 분포하고 있다. 1997년에 시장이 하나 사라져 시장의 수는 7개가 되었으나 2003년에 다시 시장의 수는 8개가 되었다. 2008년에는 풍기읍에 6곳, 시내 14곳을 합쳐 모두 20곳에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교통은 국도 5호·28호·36호선이 시내에서 교차하고 철도의 중앙선과 경북선도 시내에서 갈라져 편리하다.
영역닫기영역열기관광
소백산맥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낙동강의 여러 지류가 시내를 흐르고 있어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자연 관광자원뿐만 아니라 귀중한 문화적 자원도 함께 갖추고 있는 소백산권의 산악관광지이다.
유명한 관광지로는 소백산국립공원의 희방사·희방폭포와 소수서원·부석사 등이 있다. 희방사와 희방폭포는 소백산의 가장 유서 깊은 골짜기인 희방골에 있는데, 희방폭포는 해발 900m쯤에 있는 폭포로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28m가 된다. 특히, 여름에는 하얀 물보라와 쏟아지는 우렁찬 물소리가 더위를 쫓아버린다.
희방폭포에서 300m 가량 더 오르면 희방사가 있다. 연화봉 아래의 희방사는 643년(신라 선덕여왕12)에 두운대사가 창건하였다. 월인석보·훈민정음의 판목을 보관해 오고 있었는데 6·25전쟁 때 UN군에 의해 불타버렸다.
이 외에도 소백산천문대와 비로사·초암사·성혈사 등 조용한 산사들이 있으며, 비로봉에서 흘러내린 물이 풍기읍 삼가리·욱금리·금계리에 이르는 금선계곡은 맑고 차가운 물, 아기자기한 폭포, 깨끗한 연못 등으로 인해 여름 피서지로 적격이다.
소백산은 언제 올라도 울창하고 아름다운데, 특히 ‘소백산철쭉제’ 무렵에 오르면 철쭉 향기를 흠뻑 마실 수 있다. 소수서원은 본래 숙수사(宿水寺)라는 신라시대 창건된 큰 사찰이 있던 곳이다.
그런데 억불숭유정책으로 번영하지 못하던 이 절을 주세붕이 헐어내고 서원을 건립하였다. 그래서 서원입구의 송림 속에 숙수사지 당간지주가 있으며, 경렴정(景濂亭)에서 마주 보이는 죽계(竹溪) 건너편에 경자암(敬字巖)이 있다.
소수서원 경내에는 명륜당·전사청·일신재·직방재·동몽재·서장각 등의 건물이 있다. 그리고 영정각에는 국보 제111호인 안향의 영정과 대성지성 문선왕 지선도가 있다. 아울러 이황의 친필인 성학십도(聖學十圖)병풍과 보물인 주세붕영정 등이 보존되어 있다.
소수서원 서쪽으로는 국망봉에서 발원한 죽계구곡이 흘러내리며, 동북쪽으로 14㎞ 떨어진 부석면 북지리 봉황산(鳳凰山, 819m) 기슭에는 부석사가 있다. 676년(문무왕 16)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절의 중심건물인 부석사무량수전은 고려 중기 목조건물로서 우리 나라 옛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손꼽힌다.
그 밖에 부석사무량수전앞석등·부석사조사당·부석사소조여래좌상·부석사조사당벽화·영주북지리석조여래좌상·삼층석탑·당간지주·고려각판 등의 문화재가 보존되어 있다. 경내에 들어서면 가파른 108계단을 올라야만 사바의 번뇌(煩惱)를 깨치고 전망이 툭 트이며 아미타여래가 사는 극락세계로 인도된다.
아울러 안정면 단촌리와 순흥면 태장리의 느티나무, 단산면 병산리의 갈참나무 등이 유명하다. 그리고 도심의 영주동 한복판에 마치 거북모양을 한 나지막한 구성산이 있고, 산에는 옛날의 산성터가 있으며 구성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지금은 옛 성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고, 시민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이 곳에 오르면 시가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며, 공원의 정상에는 가학루가 있고, 동쪽으로 동구대, 가학루 아래에 서구대와 구학정이 있으며, 구성산 서쪽에 영훈정이 있다.
영주 시내에서 예천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2㎞쯤 가다 보면 길 오른쪽으로 남쪽의 산이 끝나는 곳에 층을 이룬 커다란 바위가 있다. 그리고 이 바위에 높게 영주가흥리마애삼존불상이 부조되어 있다. 이 밖에 가흥동에는 제민루가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읍·면
1. 풍기읍(豊基邑)
시의 서북단에 위치한 읍. 면적 75.94㎢, 인구 1만 1851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성내리이다. 본래 신라 때는 기목진, 고려 초에는 기주현이라 하였다. 1018년(현종 9)에 지금의 안동인 길주(吉州)에 속하게 되었다. 1172년(명종 2)에 감무(監務)를 두고 안동부 속현이 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기천현으로 개칭하고 별호를 영정(永定) 또는 안정 순화소정이라 하며 현감을 두고 은풍의 고적아현(古蹟牙縣)을 소관하였다. 문종 때 문종의 태실을 은풍현으로 모시자 은풍과 기천의 이름을 따서 풍기라고 하고 군으로 승격시켰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영주군에 병합되어 풍기면으로 되었고 1973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0년영주시와 영풍군이 분리됨에 따라 영풍군에 속하였다. 그 뒤 1995년 두 시·군이 통합된 새로운 영주시에 소속되었다. 읍의 동쪽과 남쪽은 노인봉(老人峰, 377m) 등 300∼400m 내외의 저산성산지로 둘러싸인 분지에 취락이 발달하였다.
서북쪽은 소백산맥을 분수령으로 중부지방과 경계를 이루며 연화봉·도솔봉 등 고산준령이 잇달아 있다. 예로부터 바람 많고 돌 많고 여자가 많아 ‘내륙의 제주도’라고 하였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이며, 특산물로 인삼과 사과의 재배가 활발하다.
특히, 풍기인삼은 산삼의 약효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질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 외 토마토·무·마늘·사과의 재배와 돼지·개·꿀벌의 사육이 성하다. 또한, 은행·대추·잣·목이버섯·연료·약초·산수유 등의 임산물도 많이 생산되며, 성내리에 생사와 명주·인견 등을 생산하는 직물공장들이 있다.
총경지면적은 10.3㎢로 전체 면적의 13.6%, 임야는 56.86㎢로 전체 면적의 74.9%, 기타는 전체 면적의 11.5%를 차지한다. 경지 중 논이 6.09㎢ 59.1%를 차지하고 밭이 4.21㎢로 40.9%를 차지해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교통은 단양·영주·안동을 잇는 중앙선 철도와 국도가 읍의 남부를 동서방향으로 통과하고 있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교촌리에 풍기향교, 수철리에 희방사와 희방폭포, 금계리에 금선계곡, 삼가리에 비로사가 있다. 그리고 소백산에 제이연화봉과 국립천문대천체관측소가 있다.
교육기관은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2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고 동양대학교가 있다. 행정구역은 30개 행정리, 14개 법정리(성내(城內)·동부(東部)·서부(西部)·창락(昌樂)·금계(金鷄)·백(白)·교촌(校村)·백신(白新)·미곡(味谷)·삼가(三街)·수철(水鐵)·산법(山法)·욱금(郁錦)·전구(前邱)), 195개 반, 59개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2. 단산면(丹山面)
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92.26㎢, 인구 2,16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옥대리이다. 조선시대에는 순흥부 부석면과 동원면(東圓面)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두 면을 합해 단산면으로 개편해 영주군에 속하게 하였다.
1980년 영주시와 영풍군의 분리로 영풍군에 속했다가, 1995년 두 시·군이 통합된 새로운 영주시에 소속되었다. 면의 남부에는 300m 전후의 구릉성 산지가 분포하고 이들 구릉성 산지 사이를 단산천이 남류하며, 하천연안에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북쪽 면계에는 형제봉을 포함하는 1,000m 이상의 소백산맥 고봉이 솟아 있어 옥대리 부근은 전형적인 산간분지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겉보리이나 사과·복숭아 등의 과일과 인삼재배가 활발하고, 특산물로 들깨·약초·송이버섯 등이 산출된다.
특히, 수박·호박·파·고추·무가 많이 생산되며, 과일로는 사과·감이 유명하다. 그리고 옥대리 모산마을에서는 인삼이 많이 생산된다. 밤·목이버섯·약초 등의 임산물의 생산이 많으며, 한우·젖소·산양·토끼·닭·꿀벌의 사육도 활발하다.
총경지면적은 12.11㎢로 전체 면적의 13.1%, 임야는 73.81㎢로 전체 면적의 80%, 기타는 전체 면적의 6.9%를 차지한다. 경지 중 논이 7.7㎢ 63.6%를 차지하고 밭이 4.41㎢로 36.4%를 차지해 논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교통은 면의 중앙부를 동서로는 평은∼풍기간의 지방도가, 남북으로는 장수∼단산간의 군도가 통과하고 있을 뿐이어서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구구리에 구고사(九皐祠)와 홍씨집안의 효자정문, 사천리에는 백산서원이 있다. 그 외 좌석리의 연화동석폭포와 옥대리의 거인상(巨人像) 등이 있다.
교육기관은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행정구역은 19개 행정리, 8개 법정리(옥대(玉帶)·병산(屛山)·마락(馬落)·단곡(丹谷)·좌석(坐石)·동원(東元)·사천(沙川)·구구(九邱)), 51개 반, 38개 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3. 문수면(文殊面)
시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41.26㎢, 인구 2,16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적동리이다. 본래 영주군 적포면(赤布面)과 권선면(權先面)의 지역이었다. 그 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두 면을 병합하고 문수원(文殊院)이 있으므로 문수면이라고 하였다.
1980년영주시가 신설되면서 적서리가 영주시에 편입되고, 문수면은 영풍군에 속하였다. 그 뒤 1983년평은면 수도리가 문수면에 편입되었다가 1995년 두 시·군이 통합된 새로운 영주시에 소속되었다.
면의 대부분이 100m 전후의 낮은 구릉성 산지로 되어 있으며, 서천(西川)이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류하고 있으나 연안에 충적평야가 발달하지는 않았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등의 주곡 이외에 수수·조·콩·팥 등의 잡곡과 고구마·감자 등의 서류 등의 생산이 많다. 특히 서류는 군내 1위를 차지한다.
그리고 배추·무·고추·마늘·수박·참외·토마토·오이·호박 등의 소채류와 배·감 등의 과일이 생산된다. 아울러 산나물·대추·약초·연료 등의 임산물 생산과 한우사육이 많이 이루어진다.
총경지면적은 13.92㎢로 전체 면적의 33.8%, 임야는 21.94㎢로 전체 면적의 53.3%, 기타는 전체 면적의 12.9%를 차지한다. 경지 중 논이 4.69㎢ 33.7%를 차지하고 밭이 9.23㎢로 66.3%를 차지해 밭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교통은 면의 북동단을 마산∼중강진간의 국도가 지나고 있으며, 중앙부에는 중앙선과 예천∼문수간의 군도가 남북방향으로 통과하고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권선리에 난고서당(蘭皐書堂), 적동리에는 문수원 터가 있으며 만방리 신방마을 입구에 자연석정(自然石井)이 남아 있다. 권선리에 반남박씨(潘南朴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은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행정구역은 16개 행정리, 9개 법정리(적동(赤東)·승문(繩門)·만방(萬芳)·권선(權先)·월호(月呼)·벌사(伐賜)·탄산(炭山)·수도(水島)·조제(助梯)) 47개 반, 43개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4. 봉현면(鳳峴面)
시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51.90㎢, 인구 3,118명(2015년 현재). 면소재지는 오현리이다. 본래 와룡면(臥龍面)과 노좌면(魯佐面)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두 면을 합하였다.
그리고 유전동 봉고개[鳳峴]의 이름을 따서 봉현면이라고 하였다. 1980년영주시와 영풍군의 분리로 영풍군에 속하였다. 그 뒤 다시 1995년영풍군과 영주시가 통합되면서 새로운 영주시에 소속되었다.
면의 동쪽 경계에 용암산·시루봉·집봉으로 이어지는 산맥이 달리고 있고, 이와 평행으로 서쪽 경계에도 소백산맥의 묘적봉·옥녀봉·자구산 등이 솟아 있다. 이 두 산맥 사이의 면 중앙부에는 감천천의 좁고 긴 산간분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북동부에는 남원천 주변에 넓은 충적평야가 전개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등이며, 이 밖에 마늘·사과·메밀 등의 작물이 주로 생산된다. 과일류로는 배·사과·감·복숭아의 산출이 많으며 인삼도 많이 재배한다. 밤·호두·대추·도토리 등 임산물의 생산량이 많다. 특히, 두산리 주칫골에는 질그릇을 칠하는 주치가 다량 생산된다.
총경지면적은 10.53㎢로 전체 면적의 20.3%, 임야는 35.51㎢로 전체 면적의 68.4%, 기타는 전체 면적의 11.3%를 차지한다. 경지 중 논이 5.65㎢ 53.7%를 차지하고 밭이 4.88㎢로 46.3%를 차지해 밭농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교통은 감천∼풍기간의 군도가 면의 동부에 치우쳐 있을 뿐이어서 불편한 편이다. 교육기관은 초등학교 2개 교가 있다. 행정구역은 18개 행정리, 7개 법정리(오현(梧峴)·두산(斗山)·대촌(大村)·한천(寒泉)·노좌(魯佐)·유전(柳田)·하촌(下村)) 56개 반, 40개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5. 부석면(浮石面)
시의 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91.69㎢, 인구 3,394명(20158년 현재). 면 소재지는 소천리이다. 본래 순흥부 이부석면(二浮石面)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영주군에 속하면서 세 면을 합해 부석사의 이름을 따서 부석면이라고 하였다.
1980년영주시와 영풍군의 분리로 영풍군에 속했다가, 1995년 두 시·군이 통합된 새로운 영주시에 소속되었다. 면의 남부에는 구릉성 산지가 분포하고 이 산지 사이를 낙화암천(落花巖川)의 본류가 흐르면서 양안(兩岸)에 대상의 충적평야를 이루고 있다.
임곡천(林谷川)과 사문천(沙文川)이 낙화암천에 합류하는 소천리는 전형적인 산간분지이다. 그러나 북부는 소백산맥에 속하는 선달산·회암령(回巖嶺)·어래산 등이 솟아 있는 산악지대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등이며, 이 밖에 옥수수·콩·팥·녹두 등의 잡곡·두류와 당근·들깨·고추·사과·배·자두 등의 작물이 많이 재배된다. 일부 지역에서는 약용작물로 지황·목단·백작약 등을 재배한다. 또한, 밤·호두·잣·대추·은행·약초·산수유 등의 임산물이 생산되며, 젖소·돼지·산양·닭 등의 사육과 양봉이 성하다.
총경지면적은 17.7㎢로 전체 면적의 19.3%, 임야는 67.53㎢로 전체 면적의 73.7%, 기타는 전체 면적의 7%를 차지한다. 경지 중 논이 8.78㎢ 49.6%를 차지하고 밭이 8.92㎢로 50.4%를 차지해 논농사와 밭농사가 비슷한 비율을 이루고 있다.
교통은 면의 중앙을 평은∼풍기간의 지방도가 동서로 관통하고, 소천리에서 갈라지는 임동∼부석간의 지방도가 남부에 나 있으나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북지리의 부석사 경내에 무량수전·조사당·석단·무량수전앞석등·삼층석탑·당간지주·조사당벽화·소조여래좌상·석조여래좌상 등이 있다.
교육기관은 초등학교 1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행정구역은 22개 행정리, 10개 법정리(소천(韶川)·남대(南大)·북지(北枝)·임곡(林谷)·노곡(魯谷)·용암(龍巖)·우곡(愚谷)·상석(上石)·감곡(甘谷)·보계(寶溪)) 78개 반, 66개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6. 순흥면(順興面)
시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54.36㎢, 인구 2,335명(2015년 현재). 면소재지는 읍내리이다. 고구려시대에는 잉산군(媵山郡)이라 했으며, 고려 충목왕 때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조선 세조 때 금성대군사변(錦城大君事變)으로 부가 폐지되었다가 1683년(숙종 9)에 순흥부로 복구되었다. 1896년에 군으로 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순흥부에 속하던 수식면(水息面)·화천면(花川面)·수민단면(壽民丹面)을 봉화군으로 편입시키고, 나머지 지역을 순흥면으로 개편해 영주군에 속하게 하였다.
1980년 영주시와 영풍군의 분리로 영풍군에 속했다가 1995년 두 시·군이 통합된 새로운 영주시에 소속되었다. 면의 남동부에는 구릉성 산지가 발달하고 이 구릉성 산지 사이를 죽계천이 흘러 넓은 충적평야를 형성하며, 북서부는 소백산맥의 국망봉·소백산 등이 솟아 있는 산지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등이며, 이밖에 무·배추·호박·우엉 등의 소채류가 생산된다. 또한, 사과·복숭아·자두 등의 과일류와 밤·은행 등의 임산물도 생산된다. 태장 메주공장에서는 유명한 순흥메주를 생산하고 있다.
총경지면적은 9.3㎢로 전체 면적의 17.1%, 임야는 40㎢로 전체 면적의 73.6%, 기타는 전체 면적의 9.3%를 차지한다. 경지 중 논이 6.16㎢ 66.2%를 차지하고 밭이 3.14㎢로 33.8%를 차지해 논농사와 밭농사가 비슷한 비율을 이루고 있다.
교통은 평은∼풍기간의 지방도가 면의 동부에 치우쳐서 북동∼남서방향으로 지난다. 그리고 석교리에서 갈라진 영주∼순흥간의 군도가 이 면과 영주방면을 잇고 있으나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내죽리의 소수서원 내에 회헌영정·대성지성문선왕전좌도·주세붕영정·숙수사지당간지주 등이 있다. 읍내리에 벽화고분이 있으며, 문화유산과 민속행사가 잘 보전되어 있어 민속자료가 전시된 순흥전시관이 있다.
이 밖에 석교리에 석불상, 읍내리에 벽화고분, 내죽리에 금성단(錦城壇), 배점리에 초암사가 있다. 태장리 하태마을의 느티나무는 유명하며, 등산로로 이용되는 소백산·국망봉 등의 명산도 있다.
교육기관은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행정구역은 18개 행정리, 8개 법정리(읍내(邑內)·태장(台庄)·지동(池洞)·석교(石橋)·내죽(內竹)·청구(靑邱)·배점(裵店)·덕현(德峴)) 56개 반, 36개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7. 안정면(安定面)
시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3.68㎢, 인구 3,306명(2015년 현재). 면소재지는 신전리이다. 본래 풍기읍 동촌면(東村面)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생현면(生峴面)과 영주면(榮州面)의 일부를 병합하고 풍기의 옛 이름을 따서 안정면이라 하였다.
1980년아지리가 영주시로 편입되고, 이 면은 영풍군에 속했으며, 1983년파지리가 장수면으로 편입되었다. 1995년영주시와 영풍군이 통합된 새로운 영주시에 소속되었다. 면의 남서부는 용암산·시루봉·집봉으로 이어지는 산맥으로 가려져 있으나 면의 대부분은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있다.
면의 중앙을 동서로 관류하는 남원천유역에 넓은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고, 죽계천의 지류를 따라 평야가 전개되어 있으나 그 밖의 지역은 산지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로서, 군내 생산량이 가장 많다.
그 외 가지·마늘·미나리·들깨·당근·상추 등 소채류의 재배가 활발하다. 신전리와 봉암리에서는 사과·포도 등의 과수경작을 많이 한다. 한우·젖소·돼지·닭·메추리 등의 가축이 사육되고 있다. 여륵리의 점촌에는 예로부터 옹기굴이 있었다고 한다.
총경지면적은 14.88㎢로 전체 면적의 34.1%, 임야는 22.31㎢로 전체 면적의 51.1%, 기타는 전체 면적의 14.8%를 차지한다. 경지 중 논이 9.7㎢ 65.2%를 차지하고 밭이 5.18㎢로 34.8%를 차지해 논농사와 밭농사가 비슷한 비율을 이루고 있다.
교통은 면의 중앙을 마산∼중강진간의 국도와 중앙선이 동서방향으로, 장수∼단산간의 군도가 남북방향으로 통과해 단양·영주 등지와 연결하고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용산리에 용산강당(龍山講堂), 생현리 봉화곡에는 봉화터가 있다.
교육기관은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행정구역은 23개 행정리, 14개 법정리(신전(新田)·생현(生峴)·봉암(鳳巖)·용산(龍山)·여륵(汝勒)·묵(墨)·내줄(內茁)·일원(逸園)·안심(安心)·옹암(甕巖)·단촌(丹村)·대평(大坪)·오계(梧溪)·동촌(東村)), 85개 반, 43개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8. 이산면(伊山面)
시의 중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53.30㎢, 인구 2,83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원리이다. 본래 영천군 이산면(伊山面)·어화면(於火面)·말암면(末巖面)·임지면(林只面)이던 것을 1634년(인조 12)에 통합해 이산면이라고 하였다.
1906년에 임지면은 봉화군으로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산면·어화면·말암면 등을 병합해 이산면이 되었다. 1973년봉화군 상운면 내림리와 두월리가 이 면에 편입되었고, 1980년에는 영주시와 영풍군이 분리됨에 따라 영풍군에 속하였다.
그리고 조암리와 원리 일부가 영주시로 편입되었다. 1983년원리 일부가 다시 영주시로 편입되었다. 1995년 영주시와 영풍군이 통합된 새로운 영주시에 소속되었다.
면의 대부분은 200∼300m의 구릉성 산지로 되어 있으며, 최고봉은 면의 중앙에 있는 박봉산(璞峰山, 390m)이다. 내성천이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관류하며, 신암리석포리 부근에만 다소 넓은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로 군내 2위를 차지하며, 보리·메밀·콩·팥·녹두와 고구마·감자의 생산이 많다. 이 외에 오이·참외·수박·고추·시금치·무·파·당근 등의 소채류의 생산이 많고 한우와 돼지사육이 행해진다. 원리는 철도와 국도에 인접하고 마을 앞 수원(水源)을 이용해 생사·섬유·제지 등의 공업이 들어서 있다.
총경지면적은 16.8㎢로 전체 면적의 31.5%, 임야는 30.42㎢로 전체 면적의 57%, 기타는 전체 면적의 11.5%를 차지한다. 경지 중 논이 8.07㎢ 48%를 차지하고 밭이 8.73㎢로 52%를 차지해 논농사와 밭농사가 비슷한 비율을 이루고 있다.
교통은 면의 중앙부에 임동∼부석간의 지방도가 동서로 통과하고, 북서·남서의 면계를 따라 대천∼울진간의 국도와 마산∼춘천간의 국도가 있다. 북부에는 영주∼봉화간의 군도가 지나고 있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내림리에 이산서원, 석포리에 흑석사가 있다. 원리에는 안동권씨(安東權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은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행정구역은 19개 행정리, 9개 법정리(원(院)·신암(新巖)·지동(池洞)·석포(石浦)·용상(龍上)·신천(新川)·운문(雲文)·내림(內林)·두월(斗月)), 64개 반, 54개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9. 장수면(長壽面)
시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42.06㎢, 인구 2,49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반구리이다. 본래 영주군 두전면(豆田面)과 호문면(好文面)으로, 1683년(숙종 9)에 순흥부로 귀속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두 면을 합해 장수면이라 하고 영주군에 속하게 되었다. 1980년영풍군으로 되었으며, 1983년안정면 파지리를 편입하였다. 1995년 영주시와 영풍군이 통합된 새로운 영주시에 소속되었다.
면의 대부분은 200m 전후의 구릉성 산지이고, 북서쪽 경계에 최고봉인 집봉이 솟아 있다. 집봉은 북으로 시루봉·용암산, 남으로 주마산으로 이어지는 산맥을 이룬다. 옥계천(玉溪川)과 그 지류가 면 전역에 걸쳐 산지를 개석하고 좁은 곡저평야를 형성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로, 군내 3위를 차지한다. 조·보리·수수·옥수수·팥 등의 잡곡과 오이·토마토·가지·호박 등의 소채류와 복숭아·배 등의 과일류가 많이 생산되고, 참깨·땅콩 등의 특용작물도 많이 생산된다. 장수참기름과 하수오이는 특산품으로 유명하며, 한우·돼지·젖소·사슴·개 등의 사육도 이루어진다.
총경지면적은 13.5㎢로 전체 면적의 32.1%, 임야는 22.04㎢로 전체 면적의 52.4%, 기타는 전체 면적의 15.5%를 차지한다. 경지 중 논이 7.24㎢ 53.6%를 차지하고 밭이 6.26㎢로 46.4%를 차지해 논농사와 밭농사가 비슷한 비율을 이루고 있다.
교통은 면의 동부를 경북선이, 중앙부를 영주∼포항간의 국도가 북동·남서방향으로 통과한다. 그리고 서부에는 장수∼단산간의 군도가 북부지방을 연결하고 있어 편리하다. 명승지로는 갈산리의 만성재, 샛골 북쪽에 있는 샛골약수터 등이 있다.
문화유적은 화기리에 인동장씨선세홍백패·장말손영정·적개공신장말손상훈교서 등이 있다. 교육기관은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행정구역은 20개 행정리, 8개 법정리(반구(盤邱)·두전(豆田)·갈산(葛山)·파지(芭芝)·성곡(星谷)·화기(花岐)·소룡(小龍)·호문(好文)), 66개 반, 40개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10. 평은면(平恩面)
시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62.36㎢, 인구 1,56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금광리이다. 본래 영천군(榮川郡)의 천상리(川上里)·진혈리(辰穴里) 등을 포함하는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영주군 평은면으로 개편되었다. 1980년 영주시와 영풍군이 분리됨에 따라 영풍군에 속하였다. 그리고 1983년수도리가 문수면으로 편입되었다. 1995년 영주시와 영풍군이 통합된 새로운 영주시에 소속되었다.
주로 산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동쪽에 박달산(博達山)·봉수산(峰遂山, 570m)·용암산 등을 잇는 비교적 높은 산지가 있고, 남쪽에는 불로봉(不老峰, 482m)이 있으며, 서쪽과 북쪽을 향해 고도가 점차 낮아진다.
서쪽 경계를 따라 남류하던 내성천은 면의 남서부에 이르러 심한 감입곡류를 형성하고, 그 활주사면에 취락이 입지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등이다. 이 밖에 수수·조·콩 등의 잡곡과 참깨·땅콩 등의 특용작물과 포도·자두·감·복숭아·호박 등의 소채류와 과일이 고루 생산된다.
밤·버섯·연료·산나물 등의 임산물이 많이 생산되며 유지작물의 재배도 성하다. 한우·오리·개 등의 사육도 행해지며, 오운리 쇳골과 평지촌에서는 특용작물로 약초·고추 등을 재배한다. 용혈리 유점(鍮店) 마을에는 유기점이 있다.
총경지면적은 12.33㎢로 전체 면적의 19.9%, 임야는 43.25㎢로 전체 면적의 69.7%, 기타는 전체 면적의 10.4%를 차지한다. 경지 중 논이 4.69㎢로 38%를 차지하고 밭이 7.64㎢로 62%를 차지해 밭농사가 높은 비율을 이루고 있다.
교통은 마산∼춘천간의 국도와 중앙선 철도가 면을 북서·남동 방향으로 지나며, 국도에서 갈라진 평은∼풍기간의 지방도가 북부의 봉화군과 연결되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강동리에 동호정·석문정이 있으며, 그리고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으로 가다가 머물렀다는 왕머리[王留里]가 유명하다.
금광리에는 인동장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은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행정구역은 14개 행정리, 7개 법정리(금광(金光)·평은(平恩)·강동(江東)·지곡(芝谷)·오운(梧云)·천본(川本)·용혈(龍穴)), 47개 반, 40개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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城邑國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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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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