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군 ()

예천군읍지
예천군읍지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경상북도 북서부에 위치한 군.
정의
경상북도 북서부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안동시, 서쪽은 문경시, 남쪽은 상주시 · 의성군, 북쪽은 영주시와 충청북도 단양군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8°15′∼128°37′, 북위 36°27′∼36°51′에 위치한다. 면적은 661.16㎢이고, 인구는 28,148세대 55,221명(2024년 2월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개 읍, 10개 면, 281개 행정리(173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충효로에 있다.

자연환경

지형은 소백산맥이 충청북도와 경계를 이루어 군의 북부는 높이 1,000m 이상의 산지가 연속되어 있다. 동쪽과 서쪽의 군계에도 높은 산이 많으며, 남쪽으로 가면서 높이가 점차 낮아져 구릉지로 변한다.

화강암(花崗岩) 산지가 많아, 예천군에서도 북부의 높고 험준한 산맥의 능선부(稜線部)는 편마암류(片麻岩類)로 이뤄져 있으나 중 · 남부의 화강암지대는 내성천(乃城川) · 한천(漢川) 등 하천의 침식작용으로 분지와 저지(低地)가 발달하였다.

대표적인 산으로는 동쪽에 주마산(走馬山, 556m) · 학가산(鶴駕山, 870m) · 보문산(普門山, 643m), 서쪽에 국사봉(國師峰, 728m) · 왕의산(339m) · 용문산(龍門山, 782m) · 매봉(865m), 남쪽에 건지봉(乾芝峰, 421m) · 나부산(羅浮山, 330m)이 있다.

북쪽에 묘적봉(妙積峰, 1,148m) · 자구산(子求山, 784m) · 가재봉(佳載峰, 851m) · 저수재(850m), 중앙에는 망월봉(望月峰, 424m) · 육녀봉(六女峰, 257m) · 매봉산(341m) · 백마산(白馬山, 383m) · 부용봉(芙蓉峰, 688m) 등이 솟아 있다.

하천은 내성천(乃城川)이 봉화군 봉성면의 문수산(文殊山, 1,206m)에서 발원하여 봉화읍 삼계리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오울하천(梧鬱河川)과 합류한다. 그리고 봉화읍 문단리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낙화암천(洛花巖川)과 영주시 이산면 신천리에서 서쪽으로 흐르는 용각천(龍角川)과 각각 합류한다.

또한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에서 수도리로 흐르는 서천(西川)과 합류할 때까지 심한 곡류로 예천군으로 흘러들어 감천면 장산리로 흐르는 옥계천(玉溪川)과 만난다. 그런 뒤 효자면 옥녀봉(玉女峰)에서 발원하여 면의 동부를 지나 하리면 · 용문면 · 예천읍을 거쳐 개포면 경진리로 흐르는 한천(漢川)과 호명읍 담암리에서 합류한다.

그리고 용궁면 향석리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기천(箕川) · 금천(錦川)과 합류한 뒤 풍양면 삼강리에서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이들 하천 연안에는 충적평야가 발달하여 농경지로 이용된다.

이 군은 내륙에 위치해 한서의 차가 큰 대륙성기후가 뚜렷하다. 연평균기온 12.6℃, 1월 평균기온 -0.4℃, 8월 평균기온 25.7℃로 여름과 겨울의 기온차는 약 26℃에 달하며, 연강수량은 1,122.0㎜이다.

역사

선사시대의 유물 · 유적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그 당시는 어떠했는지 잘 알 수 없다.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점차 발견되는 점으로 보아 이 시기에 사람이 많이 거주했던 것 같다.

일찍부터 소국(小國, 城邑國家)이 형성되어 변진 미리미동국(弁辰彌離彌凍國)이 이 곳에 비정되고 있다. 이 나라의 행방은 알 수 없지만 예천지역은 신라의 영역에 들어가 수주군(水酒郡: 지금의 예천읍) 축산현(竺山縣: 지금의 용궁면)이 되었다.

757년(경덕왕 16) 수주군은 예천군으로 이름이 바뀌어 영안현(永安縣: 지금의 안동시 풍산읍) · 가유현(嘉猷縣: 지금의 문경시 산양면) · 은정현(殷正縣: 지금의 안동시 풍천면) · 안인현(安仁縣) 등을 영현으로 삼아 다스렸다.

후삼국의 쟁패기에 이 지역은 일찍이 견훤의 세력권에 들어갔다. 그러나 927년(태조 10) 왕건이 친히 용주(龍州: 지금의 용궁면) · 근품성(近品城: 지금의 문경시 산양면) 지역을 함락하여 고려에 편입시켰다. 그 뒤 예천군은 보주(甫州)로 개칭되었고, 1018년(현종 9) 안동부의 속현이 되었다.

1172년(명종 2) 태자의 태(胎)를 안치한 것으로 기양현(基陽縣)으로 승격되었다. 1204년(신종 7) 남도초토병마사(南道招討兵馬使) 최광의(崔匡義)가 경주의 신라부흥군과 이 곳에서 싸워 승리한 것으로 인해 지보주사(知甫州事)로 다시 승격되었다.

축산현은 995년(성종 14) 용주로 개편되어 자사(刺史)가 임명되었으나 1005년(목종 8)에 폐지되었고, 1012년 용궁군(龍宮郡)으로 고쳐져 상주목에 속하였다. 용궁군은 1172년 감무(監務)가 파견되어 속군의 위치를 벗어났다. 고려 말에는 홍건적 토벌에 공을 세운 이방실(李芳實)이 개선하다가 김용(金鏞)의 모함으로 이 곳에서 피살되었다.

고려 후기의 읍격(邑格)을 그대로 유지하던 보주는 1413년(태종 13) 보천군(甫川郡)으로 고쳐졌다가 1416년 다시 예천군이 되었다. 용궁현은 1413년 감무를 현감으로 고쳤다. 당시의 토지와 풍속에 대해서는 예천군이 비옥 · 척박이 반반이나 평이하였고, 용궁현은 척박하였으나 화목하였다고 한다.

호구 수는 『경상도지리지』에 의하면 예천군이 1,092호 1만 1613명, 용궁현이 396호 4,545명이었다. 예천군의 권씨 · 윤씨가 관료로 중앙에 많이 진출했다고 한다. 윤상(尹祥) · 권맹손(權孟孫) · 권오복(權五福)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임진왜란 때 용궁현감 우복룡(禹伏龍)이 예천 · 용궁의 향병(鄕兵)을 이끌고 6월 15일 용궁으로 진격해 온 적장 요시가와(吉川廣家)의 군대를 무찔러 이 지역은 적으로부터 무사하였다. 이 때 이유(李愈) · 이응(李應) 등의 의병투쟁도 있었다. 한편, 예천군은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연루되어 1729년(영조 5)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738년에 군으로 환원되었다.

1895년 예천군과 용궁군으로 편제되어 안동부에 속하였다. 1896년 예천군은 3등군, 용궁군은 4등군이 되어 경상북도에 속하였다. 1906년 동로면과 화장면을 문경군에, 다인면을 비안군에 편입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용궁군이 예천군에 통합되는 동시에 안동군에서 감천면을, 풍기군에서 상리면과 하리면을 편입하였다. 1937년 예천면이 예천읍으로 승격되었다.

근대에 들어와 신교육이 보급됨에 따라 유지들이 남명학교(南明學校)를 세워 인재 양성에 노력했으며 항일의병투쟁에도 적극 참여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는 4월 1일부터 12일까지 군 내 각지의 장날에 수많은 주민들이 모여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1945년 광복 후에도 관할 행정구역 내의 부분적인 이동이 있었을 뿐 큰 변화는 없었다. 1950년 6·25전쟁 때 공산군 1,000여 명이 7월 28일 보문면을 공격해 오자 홍종관(洪鍾寬) 등 경찰 7명이 끝까지 분투하다가 장렬히 전사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1973년 개포면 상동이 예천읍에 편입되었다. 1983년 2월 15일에는 보문면 고평동이 예천읍에, 보문면 마촌동이 감천면에 편입되었다. 1987년 1월 1일 용문면 두인동이 두천동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988년 5월 1일 동을 리(里)로 개칭하였으며, 1989년에는 감천면 미석리 일부가 영풍군 장수면에 편입되었다. 1990년 1월 1일 예천읍의 대심1리가 대심1리와 대심3리로 분리되었으며, 1999년 4월 10일 유천면의 연천리가 연천 1리와 연천 2리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00년 10월 1일 호명읍 월포리 일부가 예천읍 청복리로 편입되었다. 2016년 2월 1일 상리면은 효자면으로, 하리면은 은풍면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유물 · 유적

선사시대 유적으로는 마제석기가 출토된 용문면의 고인돌군이 있고, 예천읍 백전리에는 삼국시대의 석실분이 있다.

국방에 관한 유적으로는 용궁면의 향석리토성(鄕石里土城)과 예천읍 서본리의 흑응산성(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이 있다. 그리고 학가산성 · 예천봉수(醴泉烽燧) 등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우리나라 최고의 목각탱화가 용문면 내지리의 용문사에 있다. 용문사 경내에는 예천 용문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 1989년 지정), 예천 용문사 팔상탱(보물, 2001년 지정), 예천 용문사 영산회괘불탱(보물, 2005년 지정), 높이 4.2m의 원기둥을 주축으로 한 팔각의 대장경 보관대인 용문사윤장대와 용문사 대장전(국보, 2019년 지정), 세조가 용문사의 잡곡세를 감면해 준 교지인 예천 용문사 감역교지(보물, 1981년 지정), 예천 용문사 천불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010년 지정)가 있다.

이 밖에도 확실한 축조 연대(1010년, 고려 현종 1년)를 알 수 있는 예천읍 남본리의 개심사지 오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이 있다. 그리고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예천 동본리 삼층석탑(보물, 1965년 지정), 통일신라 후기의 전형적인 삼층석탑인 감천면 증거리의 한천사 삼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이 있다.

그 밖에 보문면의 예천 간방리 삼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4년 지정), 수계리의 보문사 극락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8년 지정) · 보문사 삼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4년 지정), 은풍면의 탑동석탑, 지보면의 지보리석탑, 용궁면의 향석리삼층석탑 등이 있다.

불상으로는 동양 최고(最古)의 철불로 9세기 중엽에 제작된 감천면 증거리의 한천사 철조여래좌상(보물, 1977년 지정)이 있다. 용문면 선리에는 청룡사 석조여래좌상(보물, 1965년 지정) · 청룡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1965년 지정)이 있다.

그 밖에도 예천읍의 예천 동본리 석조여래입상(보물, 1965년 지정), 동본리의 동악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풍양면의 예천 흔효리 석조여래입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와룡리의 예천 와룡동 석조여래입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용궁면의 예천 향석리 석조여래좌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보문면의 예천 승본동 석불입상(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98년 지정), 유천면의 화전동석불좌상 등이 있다.

한편, 효자면 명봉리에 명봉사 경청선원 자적선사능운탑비(보물, 2010년 지정)와 명봉사 문종대왕 태실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4년 지정)가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용궁면 향석리의 용궁향교(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 무이리의 무이서당(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7년 지정), 예천 청주정씨 재실(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99년 지정)이 있다. 그리고 예천읍 백전리에 예천향교(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왕신리에 신천서원(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이 있다.

그 밖에도 호명읍 내신리에 노봉서원(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보문면 미호리에 이정사(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 · 미산학사(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지보면 만화리에 만의서재, 용문면 저곡리에 예천 야옹정(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87년 지정), 원류리에 예천 함양박씨 희이재사(경상북도 유형문화재, 2015년 지정)가 있다.

정자로는 죽림리에 초간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호명읍 백송리에 선몽대, 풍양면 와룡리에 용두정 등이 있다.

초간정은 「대동운부군옥」의 저자 권문해(權文海)가 1582년(선조 15)에 지은 정자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870년 권문해의 유고를 보관하기 위해 현 위치에 재건하였다. 울창한 소나무숲 사이에 점점이 놓인 기암괴석과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맑은 물이 절경을 이룬다.

그 밖에 예천읍 고평리에 임진왜란 때의 공신인 정탁(鄭琢)의 초상화인 정탁 초상(보물, 1968년 지정), 정탁 문적 - 약포유고 및 고문서(보물, 1968년 지정), 약포사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이 있다. 그리고 보문면 미호리의 윤별동묘(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 예천읍 왕신리의 김영열 좌명공신교서 및 회맹록(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98년 지정)이 있다.

고건축물로는 용문면 죽림리에 예천권씨 초간종택 별당(보물, 1967년 지정), 예천 예천권씨 초간공파 종택(중요민속자료, 1984년 지정), 예천권씨 병암정 및 별묘(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003년 지정), 예천권씨 영사당종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003년 지정), 구계리에 의성김씨 남악종택(경상북도 민속자료, 1988년 지정), 대저리에 미산고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상금곡리에 추원재 및 사당(경상북도 민속자료, 1988년 지정) · 반송재 고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92년 지정)이 있다.

그리고 저곡리에는 춘우재 고택(경상북도 민속자료, 1993년 지정) · 연곡고택(경상북도 민속자료, 1993년 지정), 풍양면 삼강리에 삼강강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88년 지정), 유천면 율현리에 예천 물체당 고택(중요민속자료, 1984년 지정), 호명읍 송곡리에 연안이씨 별좌공 종택(경상북도 민속자료, 1987년 지정), 용문면 상금곡리 의 상금곡사괴당고택(경상북도 문화재자료, 1997년 지정), 예천 읍사무소(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001년 지정), 은풍면 부초리에 함포재사(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003년 지정), 용궁면 덕계리에 예천 덕계리 관물당(경상북도 문화재자료, 2004년 지정)이 있다.

또한, 용문면 죽림리에는 대동운부군옥목판 및 고본(보물, 1986년 지정) · 초간일기(보물, 1986년 지정)가 보존되어 있다.

무형문화재로는 예천읍 통명리에 예천통명농요(중요무형문화재, 1985년 지정), 남본리에 예천궁장(경상북도 무형문화재, 1980년 지정), 풍양면 공덕리에 예천공처농요(경상북도 무형문화재, 1986년 지정)가 있다.

명승으로는 용궁면 대은리의 예천 회룡포(명승, 2005년 지정)가 있으며, 천연기념물로 감천면 천향리의 석송령(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 용궁면 금남리의 예천 금남리 황목근(천연기념물, 1998년 지정), 용문면 상금곡리의 예천 금당실송림(천연기념물, 2006년 지정), 용문면의 예천 죽림리 향나무(경상북도 기념물, 1995년 지정)와 예천 사부리 소나무(경상북도 기념물, 1995년 지정) 등이 있다.

교육 · 문화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는 예천읍 백전리에 예천향교, 용궁면 향석리에 용궁향교가 있었다. 예천향교는 1398년(태조 7)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1418년에 김겸(金謙)이 현산(峴山: 지금의 서본리 지고개)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용궁향교는 1398년에 창건되었는데, 1400년(정종 2)과 1592년에 소실된 것을 중건하였다.

서원으로는 1472년(성종 3) 보문면 옥천리에 임춘(林椿)을 제향하기 위해 세운 옥천서원(玉泉書院)이 있다. 그리고 1701년(숙종 27)용궁면 무이리에 전원발(全元發)을 기리기 위해 설립한 소천서원(蘇川書院)이 있다.

용궁면 월오리의 기천서원(箕川書院)은 안준(安俊) · 이구(李構) · 이문흥(李文興) · 문근(文瑾) · 문환(文瓘) 등을 향사하기 위해 1699년(숙종 25)에 정사(精舍)로 건립된 것이다. 1703년에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이 밖에도 1794년(정조 18) 호명읍 내신리에 세운 노봉서원이 있다. 보문면 미호리에는 1670년(현종 11)에 김이도가 미산학사를 건립하여 후학을 양성하였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7년 예천초등학교가 최초로 예천읍 서본리에서 개교하였다. 1912년에는 용궁초등학교가, 1922년에는 지보초등학교 등이 개교하였다. 1922년 당시 청년회 회장이었던 김석희(金碩熙)가 주도하고 유도회(儒道會)가 후원해 대창학원(大昌學院)이 예천향교 자리에서 개교하였다. 1935년 사단법인이 되었으며, 광복 후 대창중고등학교로 발전하였다. 1928년 설립된 예천공립농업보습학교는 광복 후 예천농업고등학교와 예천중학교로 발전하였다.

현재 초등학교 12개교, 중학교 9개교, 고등학교 3개교와 경북도립대학교가 있다.

문화시설로는 공공 공연장, 군민회관, 목지회관, 공공도서관, 2개의 전수회관이 있다. 전수회관은 예천읍 통명리의 통명농요전수교육관과 풍양면 공적리의 공처농요전수교육관이다.

예천문화원 주관으로 1999년부터 매년 군민의 날(10월16일)을 기념하여 예천문화제가 다양한 기획행사 및 군민 체육대회와 함께 군민제전으로 열리고 있다. 그리고 매년 2월 중 대보름민속놀이, 매년 5월 초순경 산나물축제, 매년 5~6월경 예천 아리랑제, 통명농요발표공연, 매년 단오전후로 하여 토종닭싸움대회, 매년 8월초순 예천읍 한천일원에서 민물고기잡이축제, 매년 10월경 공처농요발표공연, 청단놀음 등의 문화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민속

이 고장의 민속놀이로는 청단놀음 · 제애밟기 · 도해따기 · 마당굿 · 별신굿 등이 있다. 청단놀음은 무언극으로, 무용에 가까운 탈놀이이다. 외마치, 살풀이 장단, 세마치 가락으로 연주되는 농악에 맞추어 여덟째 놀음판까지 벌어진다.

첫 놀음판인 광대판놀음에서는 두 사람의 광대가 북을 매달고 치다가, 주지놀음판에서는 두 명의 주지관대가 잡귀를 쫓고 복을 부르는 춤을 춘다. 행의놀음판에는 양반 · 광대가 나오고, 학춤에 이어지는 지연광대놀음에서는 춘하추동과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네 명의 광대가 풍농을 기원하는 춤을 춘다.

이어 계속되는 파계승놀음은 쪽박광대를 보고 중광대가 파계하는 내용이다. 일곱째 놀음판인 바라춤은 여승광대가 풍년을 기원하는 춤이다. 마지막 여덟째 놀음판은 무동놀음으로 어른의 어깨에 아이가 올라서서 추는 춤이다. 이렇게 진행되는 청단놀음은 초여름이나 팔월 보름에 한천가에서 휘장을 치고 연행되었다.

제애밟기는 놋다리밟기와 비슷한 것으로 다리밟기라고도 한다. 정월 보름날 밤에 여자들이 인원에 제한 없이 즐기는 놀이이다. 여자들이 앞사람의 허리를 잡고 모두 일렬로 엎드린 뒤 한 사람이 양쪽에 선 두 사람의 부축을 받아 엎드린 사람의 등과 어깨를 밟고 걸어간다. “이제아가 누제안고/ 나랏님의 목제알세……”라고 노래를 부르며 논다.

등을 밟고 지나간 사람은 앞으로 가서 다시 엎드리고 뒤에 있는 사람이 일어나 등을 밟게 되어 모두 등을 밟으며 놀이는 계속된다. 제애밟기는 팀을 나누어 허리를 안고 이어져 있는 행렬을 끊어 버리는 도해따기와 술래가 꼬리를 따는 꼬리따기놀이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고장은 비교적 전통문화를 잘 간직하고 있어서 지금까지 동제를 지내는 마을이 많은 편이다. 동제를 지내는 날은 주로 정월 보름 자정이다. 신체는 당집과 당나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동제 때 모시는 신은 마을마다 다른데 산신령 · 골맥이 · 서낭인 경우가 많다.

동제를 지내면서 동민이 기원하는 것은 주로 마을의 평안과 농사의 풍요로, 이는 안정성에 대한 갈구와 생업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제관은 보통 3일 간 정신(淨神)하며 내림대로 결정되는 것이 보통이다. 제수 장만에 드는 경비는 집집마다 추렴하여, 공동체 의식을 고취하는 기회가 된다.

대부분의 마을에서 동제를 지낸 뒤 음복을 하는데, 이 때 제관의 노고를 치하하며 마을일을 의논하기도 한다. 예천군 내에서 동제를 지내는 마을은 유천면 고림리, 지보면 도장리 · 지보리, 용문면 상금곡리 · 죽림리 · 구계리 · 하금곡리, 호명읍 오천리 서당마을, 예천읍 통명리 등 여러 곳이 있다.

설화 · 민요

이 고장에는 신원설화(伸寃說話) · 효자설화 · 풍수설화 · 인물설화 · 의구설화(義狗說話)와 정만서 등의 시정잡배설화가 전한다. 신원설화로는 용문면에 살던 박정시(朴廷蓍)가 태안군수로 부임하여 남긴 이야기가 있다. 조선 후기에 박정시는 부임한 군수가 모두 첫날밤에 죽었던 태안의 군수로 부임하게 되었다.

기품과 지략이 뛰어난 박군수는 동헌을 대낮처럼 밝혀 놓고 앉아 있었는데, 삼경 즈음에 촛불이 한꺼번에 꺼지고 소복 입은 여자가 울음소리와 더불어 나타났다. 박군수는 목에 칼을 꽂은 채 피를 흘리는 여인에게 “사불범정(邪不犯正)인데, 귀신이 어찌 이곳에 왔느냐.”고 호통을 쳤다.

여인은 원귀로서 신원을 하려고 나타났는데, 그 때마다 원님이 죽어 뜻을 이루지 못했다며 사연을 말하였다. 5년 전 태안군수가 된 아버지를 따라 이 곳에 와서 아전에게 겁탈당하고 칼에 찔려 오동나무 속에 거꾸로 처박혀 원귀가 되어 썩지도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다음 날 새 군수를 장사 지낼 준비를 하고 들어오는 이속들에게 오동나무를 베게 하니 과연 칼이 꽂힌 시체가 나왔다. 군수는 정성 들여 장사를 지내 주고 당시의 살인범을 처형하였다. 범인을 처형하던 날 밤 여인이 현몽하여 오동나무로 거문고를 만들라고 하였다.

이에 박군수는 거문고 세 개를 만들어 두 개를 조정에 바치고, 한 개는 가지고 고향인 용문면 금당실로 돌아왔다. 그 뒤 거문고는 국가와 집안에 애경사가 있을 때는 소리를 내어 미리 알려주었다. 그러나 실수로 거문고 줄을 끊어 버린 뒤에는 울지 않았다고 한다.

의구설화는 오배기재 의구총(義狗塚)의 유래이다. 200년쯤 전에 호명읍 형호리에 박준룡이라는 늙은 선비가 개를 끔찍이 사랑하다가 죽었다. 그런데 개는 주인이 병든 날부터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방문 밖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상주들이 죽은 아버지의 산소를 구하려 애쓰는데, 쭈그리고 앉았던 개가 상주의 옷자락을 물고 오배기재로 이끌었다. 개가 주저앉아 끙끙거리는 곳은 남향으로 햇살이 포근히 비치고 있었다. 상주는 개가 잡아 준 터에 장사를 지냈다.

주인의 상여가 떠나던 날 개도 죽어 버리고 말았다. 상주들은 아버지의 산소 아래 죽은 개를 묻고 의구총이라 불렀다. 명당을 쓴 탓인지 후손이 번창하여 형호리의 밀양박씨가 거의 박준룡의 후손이라고 한다.

그 밖에 효자로 유명한 도씨(都氏) 성을 가진 이가 음력 5월에도 홍시를 얻고 겨울철에도 수박을 얻어 병든 어머니를 봉양했다는 설화가 있다. 그리고 물이 나와 묘를 쓰지 못하는 명당자리에 놋젓가락을 넣어 멀리 논 밑으로 물을 빼낸 다음 묘를 쓴 박풍수의 설화 등이 전한다.

이 고장에 전승되는 주된 민요는 농업노동요이다. 예천읍 통명리의 통명농요는 모심기소리, 모를 다 심고 논에서 나오면서 부르는 소리, 논매기소리, 논을 다 매고 나오면서 부르는 소리, 논밭에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부르는 소리로 구분된다.

모심기소리의 한 부분을 들어보면 “모야 모야 노랑모야 너 언제 커서 열매가 맺힐래, 이달 크고 새달 커서 칠팔월에 열매나 맺지”와 같이 흥겨운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노래는 1979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바 있다.

노래를 할 때는 앞소리꾼(선소리 1명)이 있어 사설(가사)을 부르며, 뒷소리는 나머지 모든 사람들이 함께 부른다. 뒷소리는 사설이 없고 다만 “아부레이 수나, 이이도 어이 수여”등의 후렴구만 반복한다. 통명농요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풍양면 공덕리도 농요가 유명하다. 모심기소리 · 논매기소리 · 걸채소리 · 타작소리로 구분된다. 논매기소리는 진사대 · 짜른사대 · 어루사대 · 햇소리로 나뉘어 있고, 햇소리는 긴햇소리와 짜른햇소리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특색이다. 또, 이 마을의 농요는 이웃마을의 농요와 섞이지 않고, 이 마을에만 전해 내려오는 순수함과 소박함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다른 어느 곳에도 없이 예천지방에서만 전하는 소리로 「홍소리」가 있다. 다른 민요처럼 앞소리와 뒷소리는 있지만 앞소리에도 사설 없이 “오호∼호이에 호에∼에∼헤에∼”라는 소리만 함께 반복하였다.

이 소리는 새신랑이 결혼식을 올리러 신부집으로 갈 때 신랑의 동행인 중에서 한 사람이 앞소리를 하고 다른 사람들이 뒷소리를 하며 부르던 것이다. 이 소리는 1910년대까지 불렸으나 현재는 아는 사람이 없고 녹음테이프로만 전해지고 있다. 이 밖에 「베틀노래」 · 「징금이타령」 · 「시집살이노래」 · 「진주낭군」 등의 노래가 전하고 있다.

산업 · 교통

논농사 위주의 농업을 하는 지역이다. 2008년 현재 총경지면적은 183.32㎢로 경지율은 27.7%이다. 그 가운데 논이 112.61㎢로 총경지면적의 61.4%를 차지하고 밭은 70.71㎢로 38.6%를 차지하여 논농사가 조금 우세하다. 낙동강유역은 홍수 피해가 잦았으나, 1975년 안동댐이 준공된 뒤 홍수와 가뭄 대비가 가능해져 경지활용률이 높아졌다.

쌀생산량이 경상북도 내에서 수위를 차지할 정도로 많고 품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주요 농산물로는 보리 · 콩 · 고추 · 담배 · 누에고치 · 사과 · 참깨 · 땅콩 · 인삼 · 감 · 닥나무 등이 많이 생산된다. 쌀과 보리는 용궁면 · 풍양면 · 지보면 · 호명읍에서, 고추는 용문면 · 감천면에서, 누에고치는 지보면 · 예천읍에서 많이 생산된다.

사과는 감천면 · 효자면 · 지보면, 참깨는 지보면, 땅콩은 지보면 · 풍양면, 감은 은풍면에서 예로부터 많이 생산되었다. 특히 곶감인 은풍준시(殷豊蹲枾)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진상품이었다. 그리고 산지인 감천면 · 보문면 · 효자면 · 은풍면에서는 인삼 · 잎담배 등의 특용작물이 많이 재배된다.

또한 한우 · 젖소 · 돼지 · 닭 · 사슴 · 개 · 오리 등을 사육하며, 특히 한우는 농가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예천의 우시장은 그 규모가 도내에서 김천 다음으로 상위급에 속한다.

특산물로는 전국최대 잠업단지인 예천에서 직접생산하여 가공한 누에제품, 해발 600여m의 소백산 토종 호두로서 질 좋은 무공해식품인 상리호도, 해발 300∼600여m의 소백산맥 기슭에서 재배되며 품질이 좋아 캐나다로 수출되는 예천사과가 있다. 그리고 낙동강변의 사질 토양에서 자란 무공해 토종 참깨로 가공해 향과 맛이 뛰어난 참기름, 밥맛이 좋아 임금님 수라상에 올렸다는 쌀로서 용궁면에서 유기농법으로 생산한 용궁진상미, 소백산 기슭의 맑은 물과 깨끗한 자연, 풍부한 초자원이 잘 형성된 최적지에서 사육되는 예천참우 등이 있다.

2008년 현재 임야 면적은 전체 면적의 54.4%를 차지한다. 입목 축적량은 2,571,547㎥, 임산물 생산량은 370,825㎏으로 호두 · 버섯 · 산나물 등의 임산물 생산이 많다. 공업은 자연 지하자원이 부족하고 경제적으로 이를 뒷받침할 여건이 부적합해 2차 산업은 예나 지금이나 발달하지 못했다. 그러나 기초가 빈약하지만 식료품 · 비금속광물제품 · 화학제품을 제조하는 공장들이 있다.

2008년 현재 광구수는 총 22개로 7개의 광구가 가행중이며 고령토만을 산출한다. 예천농공단지는 12만 9000㎡의 면적에 총 9개 업체가 입주해 있고, 211명의 종업원이 있다. 전통적인 제조업으로는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궁장이 만든 예천국궁이 특산품으로 유명하다.

상업활동으로는 1770년(영조 46)에 유등천장(柳等川場), 화음장(華陰場), 예천과 용궁의 읍내장이 있었다. 1830년경에는 유등천장, 예천과 용궁의 읍내장을 비롯하여 사천장(沙川場) · 보통장(甫通場) · 오천장 · 신운장(信雲場) · 북면장(北面場) · 소야장(蘇野場) · 백곡장(白谷場) 등의 5일장이 있었다.

1928년경에는 금곡(金谷) · 우곡(愚谷)의 2개 장이 늘었고, 1957년 하리 · 청향장이 개설되었다. 예천 · 용문 · 우곡 · 감천 · 용궁 · 개포 · 신풍 · 마전 · 풍양 · 입암 · 유천 등의 5일장이 공설로 열리는데, 여기에서는 주로 고추 · 마늘 · 양파 · 깨 · 채소 등이 거래된다. 특히 우곡 · 감천 · 용문장은 고추와 채소, 용궁장은 소가 많이 거래된다.

2008년 현재 예천읍의 예천장이 2·7일, 용문면의 용문장이 5·10일, 감천면의 감천장과 지보면의 마전장이 1·6일, 용궁면의 용궁장이 4·9일, 풍양면의 풍양장이 3·8일에 열리는 등 정기시장 5개와 예천상설시장 1개가 있다.

도로는 영주∼의성 간과 안동∼문경 간 국도가 예천읍을 중심으로 발달해 있으며, 시 · 군도가 각 면으로 뻗어 있다. 철도는 경북선 철도가 군의 중앙을 지나 문경∼영주로 연결되어 편리하다.

관광

북부에 1,000m 이상의 소백산맥 연봉이 솟아 있고, 군 내에는 이보다 낮은 수려한 산들이 자리하며, 군 중앙을 내성천이 흘러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곳이다. 유명한 관광지로는 용문면 내지리의 용문사, 효자면 명봉리의 명봉계곡, 보문면 산성리의 학가산, 감천면 천향리의 석송령, 용궁면 대은리의 의성포가 있다.

고려 초에 두운선사(杜雲禪師)가 용문산에 창건했다는 용문사에는 대장경을 보호하기 위해 지은 대장전과, 안에 경전을 넣어 두고 손잡이로 돌려가며 불경을 외는 장치인 윤장대 등의 문화재가 있다. 그리고 절 주위의 거목 숲이 매우 깊어 장관을 이루며, 가을의 단풍과 겨울의 설경도 뛰어나다.

용문사 인근에는 소헌왕후(昭憲王后)와 문효세자(文孝世子)의 태실비(胎室碑)가 있다. 명봉계곡은 소백산맥 기슭의 깊은 골짜기에 열려 있다. 숲이 울창하고 계곡물이 맑으며 고즈넉하기 그지없어 자연 그대로의 산수가 절경을 이룬다. 이 계곡에 명봉사가 있다.

명봉사는 법당과 요사채만 남아 있는 작고 쇠락한 절이지만 경내에는 소나무 · 전나무 · 느티나무 등의 아름드리 거목이 있고,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境淸禪院慈寂禪師凌雲塔碑)와 명봉사 사적비, 문종대왕(文宗大王) 태실비가 있다.

예천 · 안동 · 영주에 걸쳐 있는 학가산은 산세가 특색이 있으며 약수와 동굴이 있다. 또한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몽진 왔을 때 쌓은 길이 약 1.5㎞의 학가산성도 있어 관광지로 적합하다.

천연기념물인 석송령(石松靈)은 감천면 천향리의 석평마을 어귀에 있다. 수령이 600년 가량으로 추정되고 키는 10여m이며, 가지는 동서로 32m, 남북으로 22m 정도 퍼져 있다. 동신목 구실을 하며 매년 정월 대보름날 동신제를 지낸다.

예천의 물도리마을, 즉 의성포에서는 유유히 흐르던 내성천이 갑자기 방향을 돌려 둥글게 곡선을 그리며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기이한 광경을 볼 수 있다. 감천면의 수락대(水落臺), 보문면의 보문사삼층석탑, 호명읍의 선몽대, 그리고 유천면 죽안리의 죽안지 및 용문면 두천리의 운암지 등의 낚시터가 있다.

예천온천은 감천면 관현 · 천향리 일대로 지난 1998년 온천지구로 지정받았으며, pH 9.52∼10.25의 강알칼리인 중탄산나트륨(HCO3· Na) 단순천으로 수질이 매우 부드러운 것이 특징으로 우수한 온천이다. 그밖에도 감천면 덕율리의 예천천문과학문화센터, 예천군 보문면 우래리의 학가산우래자연휴양림, 미호천 유원지 등이 있다.

지역축제로는 2000년부터 5월에 개최되는 산나물 채취 행사와 2002년부터 8월에 개최되는 민물고기잡이 체험행사가 있다.

읍 · 면
  1. 예천읍(醴泉邑)

군의 중앙에 위치한 읍. 면적 47.38㎢, 인구 1만 7337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노하리이다. 본래 예천군의 소재지로서 동읍내면(東邑內面) · 서읍내면 · 남읍내면 · 북읍내면으로 나뉘었는데, 군청이 북쪽이므로 북읍면(北邑面)이라 하여 노상 · 노하 등 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동읍면의 갈두 · 응동 등 7개 리와 남읍면의 4개 리, 서읍면의 5개 리, 그 외 몇몇 지역 일부를 병합하여 예천면으로 통합, 개칭되어 1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37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개포면 상리가, 1984년보문면 고평리가 편입되었다. 1990년에 예천읍 대심1리를 대심1리와 대심3리로 분리되었고, 2000년 호명읍 월포리(월촌마)가 편입되었다.

소백산맥의 지맥인 육녀봉 · 매봉산(341m)의 줄기가 북부지역을 둘러싸고, 남서부에는 100m 전후의 구릉지가 펼쳐져 있다. 읍의 남부에 한천이 남쪽으로 흘러 하천 유역에 비교적 비옥한 평야가 발달하였다.

총 경지면적 18.35㎢로 38.7%, 임야면적 18.69㎢로 39.5%, 기타 21.8%로 이루어져 있다. 경지 중 밭이 7.96㎢로 43.4%를, 논이 10.39㎢로 56.6%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내성천을 중심으로 풍부한 수자원을 보유하고 있고, 구릉지가 많아 농업이 발달되었으며,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고추 · 담배 · 배추 · 모시 · 참깨 등의 특용작물이 생산된다. 한우 · 젖소 · 돼지 · 사슴 · 개 · 산양 등의 가축 사육도 이뤄지고 있다. 주요 특산물로는 쪽파, 영지버섯, 양잠(누에), 시설채소 등이 있다. 읍민의 약 60%가 시내 지역에 거주하며, 그중 약 40%가 상업에 종사하고 있다.

경북선 철도가 읍을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다. 포항∼영주, 당진∼안동 간 국도가 시가지를 관통하고, 예천∼단양 간 지방도가 산간지와 연결되어 안동 · 영주 · 문경 간 삼각지대의 중간 위치로서 경상북도 북부지방 교통의 요충지이다.

문화유적은 남본리에 개심사지오층석탑 · 관풍루 · 남산사, 동본리에 삼층석탑 · 석조여래입상 · 동악사석조비로자나불상, 고평리에 약포영정과 약포유고 및 문서 등이 있다. 그리고 서본리 덕봉산에 흑응산성, 대심리에 고분군, 백전리에 석실고분과 예천향교, 왕신리에 신천서원 등이 있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 통명농요을 비롯하여 청단놀음 궁도등 전통문화가 잘 보존되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 중학교 3개 교, 고등학교 2개 교와 경북도립대학교가 있다. 노하(路下) · 노상(路上) · 백전(栢田) · 동본(東本) · 남본(南本) · 서본(西本) · 대심(大心) · 석정(石井) · 지내(池內) · 상(上) · 왕신(旺新) · 청복(淸福) · 통명(通明) · 우계(愚溪) · 갈구(葛九) · 생천(生川) · 용산(龍山) · 고평(高坪) 등 18개 리가 있다.

  1. 감천면(甘川面)

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65.03㎢, 인구 2,93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포리이다. 본래 감천현 지역으로 1018년(현종 9)에 안동도호부의 속령인 감천현으로 내려왔다.

1895년 지방 관제 개정에 따라 예천군 감천면이 되어 상관 · 하포 등 2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보문면의 진양(眞陽) · 평고(平古) · 지과(知過) 등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14개 리로 개편되었다. 1984년에는 보문면 마촌리를 편입하였다.

면의 동부와 남부는 구릉성 산지이지만 북부와 서부는 소백산맥의 지맥인 높은 산지로서 부용봉 · 주마산 등이 솟아 있다. 내성천의 지류가 면의 중앙부를 남서류하면서 구릉성 산지 사이를 개석하고 있다.

총 경지면적은 21.05㎢로 32.4%, 임야면적은 35.81㎢로 55.1%, 기타 12.5%로 이뤄져 있다. 경지 중 밭이 11.02㎢로 52.4%를 차지하고 논이 10.03㎢로 47.6%를 차지하여 밭농사가 조금 우세하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이며, 고추 · 배추 · 사과 · 잎담배 · 인삼 등이 많이 재배된다. 면의 동부지역은 산간구릉지로 미곡, 고추, 담배, 참깨가 주재배 작목이며 서부지역은 소백산맥에 위치하여 중심부로 석관천이 흐르며 인삼, 사과, 시설채소, 축산이 주소득원이다. 특히 진평리의 인삼은 질이 좋아 예로부터 궁궐에 진상하였다.

도로는 영주∼포항 간 국도가 면의 동부를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통과하고 있다. 감천∼풍기 간 군도가 포리에서 갈라져 이 면을 북부지방과 연결하지만 교통은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증거리의 한천사에 철조여래좌상과 삼층석탑이 있고, 현내리에 봉산서당(鳳山書堂)이 있다. 천향리에는 수령 약 600년의 삿갓 모양을 한 소나무 반송[石松靈]이 있다. 현내리의 감천(甘泉)은 샘이 깊지 않으면서도 양이 많고 맛이 좋으며, 대맥리의 천수(天水)는 이 물로 한약을 달이면 약효가 신효하다고 한다. 명승지로는 덕률리의 수락대(水落臺)가 물이 맑고 기암괴석이 아름답다. 관현 · 천향리 일대에 예천온천이, 감천면 덕율리에는 천문관과 예천어린이우주과학관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포(浦) · 덕률(德栗) · 관현(官峴) · 천향(泉香) · 진평(眞坪) · 벌방(閥芳) · 미석(美石) · 돈산(敦山) · 유(酉) · 대맥(大麥) · 수한(水閑) · 현내(縣內) · 증거(增巨) · 장산(獐山) · 마촌(馬村) 등 15개 리가 있다.

  1. 개포면(開浦面)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은 36.24㎢, 인구 1,80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음리이다. 본래 예천군 지역으로 한천(漢川)과 내성천(乃城川)이 남동쪽을 둘러싸고 흘러 노포리면(盧浦里面)이라 하였다.

한말 고종 때 개포면으로 개칭되어 도장 · 승동 · 우감 등 12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궁군의 북상면(北上面)을 병합하여 13개 리로 개편되었다. 1973년상리를 예천읍에 편입시켰다.

지형상 남부와 북부로 구분되는데, 남부는 해발 200m 정도의 동서 방향 구릉성 산지이고 북부는 100m 이하의 구릉지이다. 내성천이 면의 남쪽 경계를 흐르고 그 연안에 범람원이 분포해 있으나 넓지는 않다. 한천과 내성천 유역이 전형적인 농경지대이며, 면 소재지를 중심으로 동서간 생활권이 분산되고 있다.

총경지면적은 12.67㎢로 35.0%, 임야면적은 15.48㎢로 42.8%, 기타 22.3%로 이뤄져 있다. 경지 중 밭이 5.59㎢로 44.1%를 차지하고 논이 7.08㎢로 55.9%를 차지하여 논농사가 조금 우세하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이다. 잠업주산단지의 조성으로 누에치기와 생사의 생산이 많고, 참깨를 비롯한 유지작물과 고추 · 마늘 재배도 활발하다. 돼지 등의 가축을 사육하고 있다. 특산물로는 개포 풋고추, 동송 부추가 있다.

교통은 경북선 철도와 당진∼안동 간 국도가 면의 북서부를 지나고, 용궁∼경진 간 군도가 면을 동서로 가로질러 인접 지방과 연결되지만 지세가 고르지 못해 교통이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경진리에 개원정, 장송리에 장화재(長華齋)가 있다. 경진리에는 신안주씨(新安朱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은 없다. 신음(新陰) · 금(琴) · 경진(京津) · 동송(冬松) · 풍정(楓井) · 이사(伊泗) · 우감(牛甘) · 가곡(佳谷) · 황산(黃山) · 장송(長松) · 입암(立巖) · 갈마(葛麻) 등 12개 리가 있다.

  1. 보문면(普門面)

군의 동쪽 끝에 위치한 면. 면적은 64.83㎢, 인구 1,79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미호리이다. 본래 예천군 지역으로 보문사의 이름을 따 보문면이라 하여 마촌 · 옥천 · 어등 등 20개 이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승도면과 동음면의 일부, 감천면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보문면으로 통합 · 개칭되었다. 1984년고평리가 예천읍으로, 마촌리가 감천면으로 이관되었다.

면의 남동부는 학가산 · 보문산 등의 산지로 구성되었고, 북서부는 해발 200m 전후의 구릉지가 발달하였다. 구릉지 사이를 내성천 및 그 지류인 옥계천이 흘러 남서쪽 경계에 집단적 범람원을 이루고 있다. 총경지면적은 13.19㎢로 20.4%, 임야면적은 44.14㎢로 68.2%, 기타 11.4%로 이뤄져 있다. 경지 중 밭이 7.63㎢로 57.8%, 논이 5.56㎢로 42.2%여서 밭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이며, 잎담배 · 고추 등의 생산도 많다. 약초 · 퇴비원료 · 산나물 등의 임산물이 생산되며 한우 · 젖소 등을 사육하고 있다. 특산물로 학가산 기슭에서 재배하는 인삼 · 더덕 · 산수박 · 전통메주 및 담북장, 고구마, 호박 등이 있다. 특히 학가산의 인삼은 학삼(鶴蔘)이라고 하여 그 품질의 우수함이 널리 알려져 있다.

교통은 내성천을 따라 경북선 철도가 지나며, 중앙고속도로 IC가 위치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수계리의 보문사 경내에 극락전 · 삼층석탑, 산성리에 학가산성 · 능인굴(能仁窟) · 옥천서원, 간방리에 예천간방동삼층석탑, 미호리에 이정사 · 미산학사가 있다. 미호리 내성천가에는 예로부터 낚시터로 전해 오는 청심대(淸心臺)와 수령 400년 된 떡갈나무가 있다. 또한 학가산에 위치하고 있는 우래자연휴양림이 있다.

교육기관은 없다. 미호(眉湖) · 신월(新月) · 우래(友來) · 산성(山城) · 승본(繩本) · 간방(澗芳) · 오신(五信) · 수계(首溪) · 옥천(玉泉) · 독양(篤陽) · 기곡(基谷) · 작곡(鵲谷) · 오암(烏巖) 등 13개 리가 있다.

  1. 효자면(孝子面)

군의 북쪽 끝에 위치한 면. 면적 67.33㎢, 인구 2,71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도촌리이다. 본래 풍기군 지역으로 은풍현의 위쪽이 되므로 상리면이라 하여 고항 · 도촌 · 사동 등 18개 이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영주군 상리면이 되었다가 1923년 행정구역 변경에 의하여 예천군에 편입되었다. 2016년 2월 1일 상리면은 효자면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면의 대부분이 소백산맥 및 그 지맥으로 구성된 험준한 산지이다. 동쪽에는 옥녀봉(玉女峰, 890m) · 자구산(子求山, 784m) 등을 잇는 연봉, 서쪽에는 매봉(865m), 북서부에는 높이 1,000m 이상의 산과 중앙에는 가재봉(佳載峰) 등의 높은 산이 있다. 면의 동부에는 한천의 상류가 직선상으로 남류하고, 서부에는 그 지류가 남동류하여 산지를 개석하고 있을 뿐 평야는 거의 없다.

총 경지면적은 10.76㎢로 16.0%, 임야면적은 53.67㎢로 79.7%, 기타 4.3%로 이뤄져 있다. 경지 중 밭이 7.03㎢로 65.3%를 차지하고, 논이 3.73㎢로 34.7%여서 밭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고랭지에서 생산되는 사과는 전국제일의 품질을 자랑하며, 특용작물로 약초(오가피,광활)등이 많이 생산된다. 이 외에 쌀 · 약초 · 인삼 · 잎담배 · 사과 · 감 등과 호두 · 대추 · 섬유원료 · 약초 · 산나물 등의 임산물도 생산된다. 토끼 등의 가축도 사육하고 있다. 특산물로는 상리사과, 호두, 오가피, 마늘, 왕갓 곶감이 있다.

교통은 면의 중앙을 예천∼단양 간 지방도가 남북으로 관통하고, 동부에 치우쳐서 하리∼풍기 간 군도가 지나는 정도이므로 불편하다. 문화유적은 명봉리 명봉사 내에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 · 문종대왕태실비 · 어림성지(御臨城址)가 있다.

명승지로는 두성리 왕곡마을에 두성폭포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도촌(道村) · 사곡(沙谷) · 명봉(鳴鳳) · 용두(龍頭) · 두성(斗星) · 초항(草項) · 고항(古項) · 백석(白石) · 석묘(石墓) · 보곡(甫谷) 등 10개 리가 있다.

  1. 용궁면(龍宮面)

군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은 31.79㎢, 인구 2,87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읍부리이다. 조선시대에는 본래 용궁현청이 향석리에 있었는데 1856년(철종 7) 큰 장마로 내성천과 낙동강이 넘쳐서 현청이 떠내려갔다.

다음 해에 읍터를 금산(琴山) 아래로 옮기고 신읍면(新邑面)이라 하여 동부 · 북부 · 서부 등 2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읍면의 무동 · 지동 · 대은 등과 일부 지역을 병합해 용궁면으로 고쳐서 11개 리로 개편하였다.

면의 북쪽 경계에 왕의산(王衣山, 339m), 남쪽 경계에 용비산이 솟아 있을 뿐 면의 대부분은 해발 100m 안팎의 구릉지이다. 금천의 지류인 기천이 면을 흘러 합류점 부근에 범람원을 형성한다. 그리고 면 남부에서 곡류하는 내성천의 합류점 부근에도 넓은 범람원이 전개되어 경지율이 군내에서 가장 높다.

총경지면적은 14.06㎢로 44.3%, 임야면적은 10.51㎢로 33.1%, 기타 22.7%로 이뤄져 있다. 경지 중 밭이 5.40㎢로 38.4%를, 논이 8.66㎢로 61.6%를 차지해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고추 · 깨 등도 많이 생산된다. 돼지 등의 가축을 사육하고 있다. 면민 80%정도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 특산물로는 용궁 진상미, 하우스 수박, 표고버섯 등이 유명하다.

월오리의 절골은 감나무가 많아 곶감산지로 유명하다. 무지리의 지동은 닥나무가 많아 예로부터 한지를 만드는 지소(紙所)가 있었으나 지금은 닥나무 껍질만을 생산한다.

가야리 화미동 뒷산의 암석은 석질이 매우 좋아 석공예가 발달하였다. 읍부리에는 농산물과 한지 원료인 닥나무가 많이 생산되어 각종 농산물 가공 및 제지 공장이 있다.

경북선 철도와 당진∼영덕 간 국도가 면 중앙부를 관통하고, 용궁∼경진 간 군도가 동부지방을 연결하여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향석리에 용궁향교 · 세심루와 석조여래좌상 · 석불좌상 · 삼층석탑 등이 있다. 비룡산성 내에는 비룡산봉수대가 있다. 이 밖에 무이리에 무이서당 · 소천서원, 월오리에 기천서원, 덕계리에 도명천(都命天)과 명찬(命燦) 형제의 쌍효각(雙孝閣), 가야리에 국파강당(菊坡講堂)이 있다. 무이리에 여주이씨(驪州李氏), 가야리에 축산김씨(竺山金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읍부(邑部) · 금남(琴南) · 가야(佳野) · 무이(武夷) · 향석(鄕石) · 대은(大隱) · 무지(舞紙) · 산택(山澤) · 월오(月梧) · 송암(松巖) · 덕계(德溪) 등 11개 리가 있다.

  1. 용문면(龍門面)

군의 서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71.27㎢, 인구 2,57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상금곡리이다. 본래 예천군 지역으로 맛질의 이름을 따서 저곡면이 되어 상금곡 · 선동 · 하금곡 등 1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저곡면과 유리동면을 통합하여 용문사의 이름을 따서 용문면이 되었다. 1987년두인리(杜仁里)를 두천리(杜川里)로 개칭하였다.

북부와 서부에는 소백산맥의 지맥에 속하는 매봉(865m) · 국사봉(國師封, 728m) 등이 면 경계를 이루며 솟아 있고 남동부로 가면서 높이가 점차 낮아진다. 동쪽 경계에는 망월봉(望月峰, 424m), 남쪽 경계에는 백마산(白馬山, 383m) · 육녀봉(六女峰, 257m) 등이 있다. 따라서 지형상 북부 산지와 남부의 구릉지 및 평지로 구분된다. 한편, 한천이 면의 동부를 남류하면서 남부에 넓은 평지를 형성한다.

총 경지면적은 17.02㎢로 23.9%, 임야면적은 47.87㎢로 67.3%, 기타 8.8%로 이뤄져 있다. 경지 중 밭이 6.71㎢로 39.4%를 차지하고 논이 10.31㎢로 60.6%여서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고추 · 배추의 생산이 많다. 호두 · 도토리 · 섬유원료 등의 임산물이 생산되며 한우 · 사슴 · 산양 · 꿀벌 등의 가축을 사육하고 있다. 특산물로는 금당꿀이 있다.

교통은 예천∼단양 간 지방도가 면 동부를 관통하고 동로∼예천 간 군도가 면의 동서교통을, 유천∼용문 간 군도가 남북교통을 맡고 있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내지리의 용문사 경내에는 대장전 · 윤장대 · 교지와 자운루가 있으며, 선리에 청료사석조여래좌상 · 청룡사석조비로자나불좌상, 죽림리에 예천권씨종가별당이 있다. 그 밖에 성현리에 고분(古墳)과 상금곡리에 반송재고택 · 지석묘가 있으며, 대저리에 미산고택이 있다. 명승지로는 죽림리에 초간정, 성현리에 병암정, 저곡리에 야옹정, 원류리에 감로루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상금곡(上金谷) · 하금곡(下金谷) · 성현(省峴) · 덕신(德新) · 방송(芳松) · 노사(蘆沙) · 구계(九溪) · 죽림(竹林) · 직(直) · 두천(杜川) · 사부(沙夫) · 내지(內地) · 원류(院流) · 선(仙) · 능천(能川) · 대저(大渚) · 저곡(渚谷) · 하학(下鶴) 등 18개 리가 있다.

  1. 유천면(柳川面)

군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은 38.72㎢, 인구 3,08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가리이다. 본래 예천군 지역으로 버드내가 있으므로 유등천면이라 하여 가리 · 화지 · 고산 등 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유등천면(柳等川面) · 당동면(堂洞面) · 지서아면(只西牙面) 등 3개 면을 병합하여 유천면으로 개칭하였다.

지형상 남북으로 뚜렷이 구분되는데, 서부는 산지이고 남부는 해발 100m 안팎의 낮은 구릉성 산지이다. 북부는 백마산(白馬山, 383m) · 국사봉(國師峰, 728m) 등의 산들이 솟아 있으며, 이 면은 이들 산지에 둘러싸인 산간 침식 분지이다. 그리고 한천의 지류인 유천이 북부 산지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흐르고 구릉성 산지 사이에 하계망을 펼쳐 산지를 개석하고 있다.

총 경지면적은 14.05㎢로 36.3%, 임야면적은 17.75㎢로 45.8%, 기타 17.9%로 이뤄져 있다. 경지 중 밭이 5.84㎢로 41.6%를, 논이 8.21㎢로 58.4%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이며, 고추 · 깨의 생산이 많다. 개 · 산양 · 토끼 등 가축을 사육한다. 특산물로는 표고버섯과 땅콩 등이 있다.

교통은 면의 남부에 경북선 철도와 당진∼영덕 간 국도가 통과해 이 면을 예천 · 문경과 연결하고, 북부에는 유천∼용문 간 군도가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성평리에 이장서(李章瑞) 부부의 효열각(孝烈閣), 사곡리에 최효자와 강열부의 정려(旌閭)가 있다. 이 밖에 송지리 샛골의 선돌, 고림리의 왕신당(王新堂), 율현리의 물체당, 초적리의 석신 · 목신 · 산신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가(佳) · 화지(花枝) · 고산(孤山) · 성평(星坪) · 광전(廣田) · 손기(蓀基) · 수심(水深) · 송전(松田) · 중평(中坪) · 죽안(竹岸) · 마천(麻川) · 화전(花田) · 사곡(沙谷) · 고림(高林) · 송지(松芝) · 율현(栗峴) · 매산(梅山) · 연천(蓮泉) · 용암(龍巖) · 초적(草笛) 등 20개 리가 있다.

  1. 지보면(知保面)

군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은 78.47㎢, 인구 3,16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소화리이다. 본래 용궁군 내하면(內下面)의 지역으로 도경 · 익장 · 지보 · 소동 등 11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상면(內上面) 율리 · 신전 등 16개 리를, 신상면(申上面) 암천 등 12개 리와 그 외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지보암의 이름을 따서 지보면이라고 개칭하고 예천군에 편입되었다.

면 동부를 제외하면 전면이 낙동강 본류와 내성천으로 둘러싸여 하안에 충적평야가 발달하였다. 전체적으로 구릉성 산지이나 북서부가 높고 남동부가 낮다.

총경지면적은 23.23㎢로 29.6%, 임야면적은 40.78㎢로 52.0%, 기타 18.4%로 이뤄져 있다. 경지 중 밭이 8.59㎢로 37.0%를, 논이 14.64㎢로 63.0%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다. 참깨 · 고추 · 마늘 · 양파 등을 많이 생산하고 사과 · 감 등의 과일도 많이 난다. 한우 · 돼지 · 개 등의 가축도 사육한다. 특산물로는 참기름이 있다.

교통은 예천읍에서 16㎞ 떨어진 영주∼포항을 잇는 28번 국도와 안동∼상주간 916번 지방도가 관통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만화리에 만의서재, 도장리 · 도화리 부근의 산에 월탄고분(月灘古墳), 지보리에 익장석탑(益庄石塔)과 놋쇠로 만든 거사탑(去思塔), 신풍리에 정충각(旌忠閣)이 있다. 신풍리에는 파평윤씨(坡平尹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소화(所華) · 마전(麻田) · 지보(知保) · 도장(道庄) · 도화(道化) · 신풍(新豊) · 대죽(大竹) · 암천(巖川) · 어신(漁薪) · 송평(松坪) · 수월(首月) · 상월(上月) · 만화(晩華) · 매창(梅倉) · 마산(馬山) 등 15개 리가 있다.

  1. 풍양면(豊壤面)

군의 남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은 63.24㎢, 인구는 3,71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낙상리이다. 본래 용궁군 지역으로 군의 남쪽이 되므로 남하면(南下面)이라 하여 우망 · 운교 · 별곡 등 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상면(南上面)의 신흥 · 양정 등 13개 리와 비안군(比安郡) 현서면(縣西面)의 직신 · 신풍 등 15개 리, 문경군 영순면의 8개 리를 병합하고, 고려시대부터 전해 온 풍양부곡(豊壤部曲)의 이름을 따서 풍양면이 되었다.

이 면은 동쪽에서 지보면의 경계를 따라 흐르는 낙동강, 예천 방면에서 내성천, 문경시 동로 쪽에서 금천이 삼강리에서 합류하여 면의 서쪽 경계를 따라 남류하므로 북쪽과 서쪽은 낙동강에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동쪽과 남쪽은 해발 200m 안팎의 산지로 이뤄져 있다. 남쪽 경계에 건지봉이 있다. 면 내부에는 구릉성 산지와 낙동강의 범람원이 교차하고, 특히 남부에 범람원이 넓게 펼쳐져 있다. 수자원이 풍부하여 미곡생산의 최적합지로, 삼강리 대단위 양수장 설치로 비옥한 토질의 수리안전답으로 형성하고 있다.

총 경지면적은 22.35㎢로 35.4%, 임야면적은 28.01㎢로 44.3%, 기타 20.3%로 이뤄져 있다. 경지 중 밭이 5.85㎢로 26.2%를, 논이 16.5㎢로 73.8%를 차지하여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고추 · 잎담배의 생산도 많다. 한우 · 돼지 등의 가축 사육이 이뤄진다. 청운리 사기점마을은 옹기를 굽던 곳이다. 특산물로는 풍양가지, 배, 칡소가 있다.

교통은 낙동∼다인 간 지방도와 상주∼풍산 간 지방도, 문경∼풍양 간 군도가 면의 중앙부에서 방사상으로 나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흔효리에 석불입상, 와룡리에 용두정 · 석조여래입상, 삼강리에 삼강구당과 삼강민속박물관이 있다. 명승으로는 영주 · 봉화에서 내려오는 내성천, 문경에서 내려오는 금천, 태백에서 내려오는 낙동강이 합류하고 팔공산과 문경의 주흘산, 영월의 일월산이 마주치는 곳이어서 경치가 매우 아름다운 삼강주막이 있다. 우망리에는 황새 · 왜가리 등의 철새도래지가 있으며, 동래정씨(東萊鄭氏) 동족마을이 있다. 삼강리에는 청주정씨(淸州鄭氏) 동족마을이 있다. 그밖에 황금산패러글라이딩장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낙상(洛上) · 우망(憂忘) · 청곡(靑谷) · 흔효(欣孝) · 흥천(興川) · 청운(靑雲) · 하풍(河豊) · 삼강(三江) · 오지(梧枝) · 풍신(豊申) · 괴당(槐堂) · 고산(高山) · 효갈(孝葛) · 공덕(公德) · 와룡(臥龍) 등 15개 리가 있다.

  1. 은풍면(殷豊面)

군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은 34.54㎢, 인구 1,47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우곡리이다. 본래 풍기군 지역으로 은풍현의 아래쪽이 되므로 하리면이라 하여 금곡 · 덕천 · 초용 등 2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0개 리로 개편하여 영주군에 속하게 되었다. 1923년 행정구역 변경에 의해 상리면과 함께 다시 예천군에 편입되었다. 2016년 2월 1일 하리면은 은풍면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소백산맥의 영향으로 면의 대부분이 산지이다. 동쪽 경계에 부용봉이 있으며, 면 중앙을 한천이 남류하면서 국부적으로 좁은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총 경지면적은 9.12㎢로 26.5%, 임야면적은 22.27㎢로 64,6%, 기타 8.9%로 이뤄져 있다. 경지 중 밭이 4.45㎢로 47.5%를 차지하고, 논이 4.67㎢로 51.2%를 차지하며 논농사와 밭농사를 비슷한 비율로 짓는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등 주곡 이외에 잎담배와 인삼이 많이 산출된다. 사과 · 감 등의 과일도 많이 생산된다. 호두 · 잣 · 도토리 · 은행 · 산수유 · 산나물 등의 임산물이 생산되며, 양봉도 한다. 특히, 동사리의 은풍준시는 이 고장의 특산품이다. 탑리 한감(汗甘)마을에는 닥나무가 많이 자생하여 이 껍질로 한지를 생산한다.

면의 중앙을 예천∼단양 간 지방도가 남북으로 통과하고, 우곡리에서 갈라져 나온 하리∼풍리 간 군도가 면의 북부를 지나지만 교통은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탑리에 삼층석탑 · 석불좌상 · 덕봉사지(德奉寺址), 시항리 부용봉 중턱에 연화사(蓮華寺), 우곡리에 세덕사(世德祠)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우곡(愚谷) · 탑(塔) · 동사(東沙) · 은산(殷山) · 송월(松月) · 금곡(金谷) · 오류(五柳) · 율곡(栗谷) · 부초(芙草) · 시항(矢項) 등 10개 리가 있다.

  1. 호명읍(虎鳴邑)

군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62.32㎢, 인구 20,840명(2023년 12월 31일 현재). 면 소재지는 오천리이다. 본래 예천군 지역으로 범우리의 뜻을 따서 호명읍이라 하여 본동 · 포저 등 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위라면과 양산면 · 신당면 등을 합하여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2000년 10월 1일 호명읍 월포리 일부가 예천읍 청복리로 편입되었다.

면의 북동부에 산지가 있을 뿐 대부분 지역이 구릉성 산지 및 구릉지이다. 내성천이 중앙을 남서류하고 한천 하류에 집단적인 농경지가 펼쳐져 있다. 총 경지면적은 18.91㎢로 30.3%, 임야면적은 32.25㎢로 51.8%, 기타 17.9%로 이뤄져 있다. 경지 중 밭이 7.55㎢로 39.9%를 차지하고 논이 11.36㎢로 60.1%를 차지하며 논농사가 주류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이며, 고추 · 깨 · 잎담배 등의 산출도 많다. 한우 · 닭 · 오리 등의 가축 사육도 많이 한다. 특산물로는 금싸라기참외가 있다.

문화유적은 내신리에 노봉서원, 종산리에 고산서원(古山書院), 월포리에 오천서당, 직산리에 대지재사, 황지리에 약포사당이 있다. 백송리의 노송이 울창한 우암산 언덕에 선몽대가 있다. 그리고 원곡리 고름장마을은 고려장(高麗葬)을 한 곳으로 지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내신리에 평산신씨(平山申氏) 동족마을이 있다.

도로는 면의 북동부 · 북서부를 당진∼안동 간 국도와 여주∼포항 간 국도가 통과하며, 금성∼예천 간 지방도와 풍산∼호명 간의 군도가 중앙에서 십자로 교차하여 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교육기관은 초등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오천(浯川) · 본포(本浦) · 원곡(原谷) · 송곡(松谷) · 금릉(金陵) · 한어(閑漁) · 담암(淡巖) · 직산(稷山) · 본(本) · 형호(衡湖) · 황지(黃池) · 백송(白松) · 산합(山合) · 종산(宗山) · 월포(月浦) · 내신(內新) 등 16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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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통계연보』(경상북도, 2005)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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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자원총람』(한국관광공사, 1985)
『한국지지』(건설부국립지리원, 1985)
『내고장 예천』(예천군, 1984)
『경상북도사』(경상북도사편찬위원회, 1983)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79)
『경상북도향토자료지』(경상북도교육위원회, 1972)
예천군(www.ycg.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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