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전라남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당제와 당굿은 정월 보름날 이루어진다. 장좌리는 통일신라시대 청해진(淸海鎭)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이 장좌리에는 두 곳에 당이 있다.
하나는 마을 안 사장(射場)의 당나무〔堂樹〕인 귀목나무이고, 다른 하나는 마을 앞 200∼300m 거리의 조그만 섬 장도라는 곳에 있는 당집이다. 사장거리는 크게 중시되지는 않고 당집에서의 제향이 끝나면 간단히 사장굿을 칠 뿐이다. 중요하게 여기는 당은 장도의 당집이며, 섬의 정상에 후박나무와 동백나무가 숲을 이룬 곳에 위치해 있다.
당집은 동향으로 앉아 마을을 등지고 바다를 향해 있다. 본래는 초가였으나 1940년에 기와로 지붕을 바꾸고 크게 수리하였다.
당집 안에는 판자로 짠 상이 세 개 놓여 있는데, 가운데는 주신(主神)인 송징장군(宋徵將軍), 우측은 정년장군(鄭年將軍), 좌측은 혜일대사(慧日大師)를 모시는 제상이다. 그런데 1982년부터 이곳에 새로 장보고(張保皐)를 모시게 되었다.
당시 남도문화제에 이곳 당제가 출연하면서 이곳과 관련이 있는 인물로 그를 추배(趨拜:허리를 굽히고 나아가 절을 함)하게 되었는데, 그후 계속해서 장보고까지 4위의 당신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당제의 주신인 송징 장군은 삼별초에 속한 역사적 인물이라고 구전되고 있으나 그대로 믿기 어렵기 때문에, 송징이 장보고의 우의적(寓意的) 명칭일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부신인 정년은 장보고의 부장이었던 역사적 인물이고, 혜일 대사는 마을 근처에 절을 짓고 포교를 했던 고려조의 승려이다.
장좌리 당제의 전체적인 절차는 ‘제관 선출-당집 제례-샘굿-당수 제례-음복-갯제’의 순서로 진행된다. 제관으로는 당주(堂主)와 집사(執事)를 선정하는데, 마을회의 격인 대동공회(大同公會)에서 까다롭고 엄격한 기준을 거쳐 선정된다.
당주는 1주일 전쯤부터 엄격한 금기를 지키며, 당샘 청소, 제수 장만, 당집 청소 등의 준비를 한다. 보름날 새벽 마을회관에서 풍물패가 굿을 알리면 당굿이 시작된다. 제관이 앞장서고 풍물패가 길굿을 치면서 당집에 오른다. 당집에서의 제사는 유교식 제차에 의해 이루어진다.
당집 제례가 끝나고 아침식사를 마치면 풍물패가 당 주위를 왼쪽으로 세 바퀴를 달음질쳐 돌고 나서 옆 보리밭에서 날당산굿을 친다.
갈 之(지)자로 열을 지어 하산을 해 바닷가에 내려와서는 배를 타고 흥겹게 뱃굿을 치며 마을로 돌아온다. 이어 마을 앞 바닷가에 접해 있는 공동 우물에서 샘굿을 치고 부근의 귀목나무에서 사장굿을 친다. 이렇게 한 다음 당주 집으로 가서 음복을 하며 흥겹게 논다. 당제와는 별도로 보름날 밤에는 갯제를 모신다.
장도 입구의 바닷가에 각 가정에서 상을 하나씩 차려 내와서 길게 늘어놓고 개인별로 소원을 빈다. 이것은 주로 부녀자들에 의해서 진행되며 김 · 미역 등이 잘 되게 해달라고 빈다. 장좌리 당제 · 당굿의 특징은 역사적 인물을 당신(堂神)으로 모신다는 점이다.
전남 지방의 당제는 당산할아버지와 당산할머니를 모시는 것이 보편적인데, 이곳에서는 특정의 역사적 인물을 당신으로 모시고 있다.
다른 특징으로 제당의 이중구조(二重構造)를 들 수 있다. 송징을 비롯한 인물 신을 모시는 당집이 하나의 제당이라면, 마을에 있는 당수들이 다른 하나의 신체로 모셔지고 있어 제당의 편성이 복합적이다.
세번째의 특징으로는 풍물굿이 부각된다는 점이다. 들당산굿 · 날당산굿 · 뱃굿 · 샘굿 · 사장굿 · 마당밟기 등에서 풍물굿이 다양하고 풍부하게 연행되는 특징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