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은 진안군, 서쪽은 김제시 · 익산시, 남쪽은 임실군 · 정읍시, 북쪽은 충청남도 금산군과 논산시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6°59′∼127°22′, 북위 35°07′∼36°02′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821.05㎢이고, 인구는 9만 5303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3개 읍, 10개 면, 496개 행정리(106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인후동에 있었으나 2012년 6월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용진읍 운곡리로 이전하였다.
노령산맥이 통과하여 군의 서부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산지에 속한다. 동부지역은 노령산맥의 주능선이 북북동∼남남서방향으로 지나면서 높은 산지를 이루어 인접시 · 군과 경계를 이룬다.
북동쪽과 동의 높은 산들은 옥천층군의 변성암류이며, 군의 동쪽 노령산맥의 주봉(主峰)인 운장산은 중생대 백악기의 퇴적암 · 응회암으로 되어 있다. 주변은 백악기 말의 불국사화강암의 관입체로 이루어져 있다. 이들 산지를 제외한 군의 나머지 넓은 지역은 중생대의 편마상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주요 산은 북동쪽과 동쪽에 대둔산(大屯山, 878m) · 천등산(天燈山, 707m) · 선녀봉(仙女峰, 666m) · 선치봉(仙治峰, 759m) · 칠백이고지(701m) · 왕사봉(718m) · 운장산(雲長山, 1,126m) · 연석산(硯石山, 917m) · 원등산(遠登山, 713m) · 만덕산(萬德山, 762m) 등이 있다. 남부에는 고덕산(高德山, 603m) · 오봉산(五峰山, 513m) · 갈미산(葛尾山, 541m) · 경각산(鯨角山, 660m) · 모악산(母岳山, 794m) 등이 솟아 있다.
군의 북동쪽과 동쪽의 산지는 금강과 만경강의 분수계가 된다.
만경강의 본류인 고산천은 원등산 동쪽의 동상면 사봉리 무지동에서 발원하여 동상저수지 · 대아저수지로 흘러든 뒤, 경천저수지에서 흘러오는 지류와 고산면에서 합류하여 봉동읍을 지나 삼례읍에 이른다.
고산천은 만덕산 북쪽의 소양면 신촌리에서 발원하여 소양면 · 용진읍을 지나온 소양천(所陽川)과 상관면 용암리 슬치(瑟峙)에서 발원하여 전주시를 북쪽으로 관통하는 전주천과 삼례읍에서 합류하여 만경강으로 흘러든다. 그 밖에 군의 북부를 서쪽으로 흐르는 장선천(長仙川)은 논산저수지로 흘러들어 논산천의 지류가 된다.
기후는 대체로 남부내륙형에 속하지만, 북동부 산악지대와 서부의 평야지대 사이에 큰 차이가 있다. 연평균기온 13℃, 1월 평균기온 -0.3℃, 8월 평균기온 27℃ 이며, 연강수량은 1,300㎜내외이다.
구석기 · 신석기시대의 유물 · 유적이 발견된 바는 없으나 청동기시대의 유물인 고인돌이 해안지대인 고창 · 부안지방에 밀집해 있다. 그것이 만경강 · 동진강을 거쳐 내륙의 봉동읍 은하리 등지에 산재하여 있다. 이로 보아 이 지방에도 초기의 농경문화가 형성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 곳은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영토였다. 555년(백제 위덕왕 2) 완산주(完山州)가 설치되었으나 565년 주가 폐지되었다. 660년(의자왕 20) 백제가 무너진 뒤 신라에 병합되어 685년(신문왕 5) 완산주가 설치되었다.
이때부터 지방 행정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 뒤 757년(경덕왕 16) 전주(全州)로 바뀌었고, 완산정(完山停)이 설치되어 군사상의 중심지로도 중요시 되었다.
통일신라시대 열반종(涅槃宗)의 근본도량인 경복사(景福寺)는, 이 고장 불교문화의 발전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892년(진성여왕 6) 견훤(甄萱)이 완산에 후백제를 건국하였으며, 936년(태조 19) 멸망할 때까지 45년간 후백제의 영토가 되었다.
936년 전주가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로 바뀌었다가 940년 다시 전주로 복구되었다. 983년(성종 2) 전주목이 설치되어 지방관의 파견과 함께 경학박사와 의학박사가 파견되어 지방의 문화도시로 성장하였다.
993년 완산이 승화(承化)로 개명되었고 절도안무사(節度安撫使)가 설치되었다. 995년 전국이 10도 12주로 나뉠 때 강남도(江南道)에 속하게 하고 순의군(順義軍)이라 칭해졌다.
1005년(목종 8) 전주절도사가 파견되었고, 1018년(현종 9) 전국적인 지방제도 개편 때 안남대도호부(安南大都護府)로 승격되었으나 1022년 다시 전주목으로 개칭되었다. 1012년 거란의 침입 때 현종이 나주에 파천하였다가 개경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주에서 7일간 머물렀다. 1182년(명종 12) 무인집권기에 사회가 혼란해지자 전주성에서 죽동(竹同)을 중심으로 한 관노들이 난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1355년(공민왕 4) 전라도안렴사였던 정지상(鄭之祥)이 원의 사신인 야사불화(埜思不花)를 감금시킨 사건 때문에 부곡으로 강등되었으나, 이듬해 다시 완산부로 승격되었다. 호남지방의 인후부로서 전공주도(全公州道)와 산남도(山南道)에 속한 많은 역참(驛站)이 있었던 곳으로, 교통상의 요지였다.
1392년(태조 1) 이 지방은 풍패지향(豊沛之鄕: 태조의 고향)으로 중시되어 완산유수부(完山留守府)로 승격되었다. 1403년(태종 3) 전주부로 개칭되어 조선 말기까지 변동이 없었으나 그 영역은 고려시대보다 축소되었다.
1410년 조선 태조의 수용(睟容)을 봉안한 어용전(御容殿)이 창건되어 진전(眞殿)이라 불리다가, 1442년(세종 24) 경기전(慶基殿)으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당시 이 곳의 호구는 1,565호, 5,829인이었다. 1439년 전주사고(全州史庫)가 설치되었다. 임진왜란 때는 손홍록(孫弘祿) · 안의(安義) 등이 태조의 어용과 전주사고의 전적을 내장산으로 옮겨 보존하다가 다시 묘향산으로 옮겼다.
현존하는 『조선왕조실록』이 전주사고본이다. 1441년 전주향교가 창건되었다. 1589년(선조 22) 이 곳 출신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사건이 일어났다.
임진왜란 때는 이복남(李福男) · 황박(黃璞) · 정담(鄭湛) 등이 웅치(熊峙)에서, 권율(權慄) · 황진(黃進) · 공시억(孔時億) 등이 이치(梨峙)에서, 경상도로부터 전라도로 진격하는 왜군을 맞아 싸워 물리쳤다. 정유재란 때는 왜군이 전주부성에 입성하여 경기전 등을 파괴하였다. 병자호란 때는 당시 전라감사였던 이시방(李時昉)이 호소사(號召使) 정홍명(鄭弘溟)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청주 · 과천전투에서 승리하였다.
1734년(영조 10) 전주부성이 개축되었고, 1771년 조경묘(肇慶廟)가 창건되어 전주이씨의 시조인 이한(李翰)의 위패가 봉안되었다. 1812년(순조 12) 남고산성(南固山城)이 중건되었다. 1791년(정조 15) 이 곳의 천주교 신도였던 윤지충(尹持忠)이 어머니의 장례를 천주교 의식에 따라 지냄으로써 외종형 권상연(權尙然)과 함께 사형당했는데, 이 사건을 계기로 천주교 박해가 시작되었다.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 전주성이 일시 함락되기도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산군이 통합되어 전주군이 설치되었다. 1935년 전주읍이 전주부로 승격됨에 따라 전주군이 완주군으로 개칭되어 15개 면을 관할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3월 13일에는 천도교도와 기독교도가, 14일에는 기전여학교 학생이 중심이 되어 만세운동을 전개하는 등 5월까지 모두 21회의 시위운동이 있었다. 1929년 전주∼이리간 철도가 개통되었다.
근대의 항일투사로는 유지명(柳志明) · 유중화(柳重和) · 이유종(李宥鍾) · 백낙구(白樂九) 등이 있다. 그 밖에 이 지방의 3·1운동을 지휘하였던 김인전(金仁全), 독립선언문을 배포하였던 전태순(全泰順), 천주교를 전도하다가 순교한 손선지(孫善智), 서예가 이광렬(李光烈) · 최규상(崔圭祥) 등이 있다.
1956년 7월 8일 삼례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57년 11월 6일 초포면 · 우전면과 조촌면 · 용진면 · 상관면의 일부가 전주시로 편입되었다. 1966년 10월 26일 운주면에 강천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73년 7월 1일에는 봉동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용진면 일부가 전주시로 편입되었고, 익산군 왕궁면 온수리 일부가 삼례읍에 편입되었다. 1983년 2월 15일에 상관면 대성리 · 색장리와 용진면 산정리 일부가 전주시로 편입되었고, 김제군 백구면 도덕리 일부와 이서면 원동리가 조촌면에 편입되었다.
1985년 10월 1일 조촌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가 1987년 1월 1일 전주시에 편입되었고, 1989년 4월 1일 운주면 경천출장소가 경천면으로 승격되었다. 1990년 8월 1일이서면 중리 · 상림리가 전주시에 편입되었고, 1994년 12월 26일에는 김제군 용지면 금평리의 일부가 이서면에 각각 편입되었다. 2015년 용진면이 용진읍으로 승격되었다.
구이면 덕천리 지석묘군을 비롯하여 원덕리 지석묘, 고산면 읍내리 지석묘군이 있다. 이서면 상림리에서 출토된 유병동검(有柄銅劍), 소양면 대흥리 석관묘에서 출토된 마제석검, 봉동읍 제내리의 무등리입석(전북특별자치도 민속자료, 1973년 지정) 등 선사시대의 유물이 다수 출토되고 있다.
백제 말기 횡혈식 석실로 추정되는 봉동읍 둔산리 고분과 조선 태조의 넷째 아들인 회안대군(懷安大君) 방간(芳幹)과 부인 김해김씨의 묘가 있다.
산성으로는 1675년(숙종 1) 축성된 소양면 산리의 위봉산성(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1974년 지정)과 비봉면 내월리 · 대치리의 대치산성(大峙山城), 화산면의 고성산성(古城山城) · 산성동산성, 운주면의 산북리산성 · 만수산성(萬壽山城) · 길마재산성, 용진읍의 구억리산성, 고산면의 백현산성(栢峴山城) · 이전리산성(泥田里山城) 등이 있다.
봉수대는 동쪽으로 고중리산성, 남쪽으로는 대불리봉수대에 연결되며, 서쪽으로는 운주면 금당리에 용계산성이 내려다보이는 탄치봉수대(炭峙烽燧臺)로 연결된다.
도요지로는 고려청자의 퇴화형식으로 조선 분청자(粉靑磁)의 특수한 지방형식을 보여주는 운주면 완창리 분청자요지, 소양면 화심리 분청자요지, 봉동읍 용암리 분청자요지 등이 있다.
사찰로는 경천면 가천리에 화암사(花巖寺), 소양면 대흥리에 송광사(松廣寺)가 있으며, 그 외로 위봉사(威鳳寺), 구이면 원기리에 대원사(大院寺), 소양면 죽절리에 단암사(丹巖寺) 등이 있다. 사지로는 운주면에 안심사지(安心寺址), 고산면 삼기리에 봉림사지(鳳林寺址), 구이면 평촌리에 경복사지(景福寺址) 등이 있다.
그 밖의 불교 유산으로는 1976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구이면 원기리의 대원사 용각부도 · 1976년 전라북도 민속자료(현, 전북특별자치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된 대원사 목각사자상 · 대원사오층석탑, 소양면 대흥리에 위봉사 보광명전(보물, 1977년 지정) · 1976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위봉사요사, 1974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경천면 가천리의 화암사 동종 · 화암사 극락전(보물, 1980년 지정) · 화암사 우화루(보물, 1980년 지정) · 1981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화암사 중창비가 있다.
또한 1971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소양면 대흥리의 송광사 십자각 · 1971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송광사 일주문 · 1971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송광사 사적비 · 송광사 석가여래좌상(보물, 1974년 지정) · 완주 송광사 대웅전(보물, 1996년 지정) · 완주 송광사 종루(보물, 1996년 지정) · 1992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송광사 동종 · 1979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수만리마애석불이 있다.
또한 1984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용진읍 간중리의 진묵대사부도, 1984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운주면 완창리의 안심사 계단 및 승탑군 · 1984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안심사 사적비 등이 있다.
유교 유산으로로는 고산면 읍내리에 고산향교와 1985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고산향교 대성전과 명륜당이 있다. 서원과 사우로는 봉동읍 구만리에 봉강서원(鳳岡書院), 구미리에 구호서원(龜湖書院)을 비롯하여 삼례읍 후정리에 호산서원(湖山書院), 비봉면 내월리에 봉양서원(鳳陽書院), 용진읍 구억리에 용진원(龍津院), 구이면 평촌리에 보광사(葆光祠) 등이 있다.
무형유산으로는 도지정무형유산으로 용진읍 간주리의 전통불교 의식무용인 영산작법이 있다. 영산작법은 1998년 전라북도 무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정자로는 1990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현,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구이면 두현리에 남계정이 있다.
노거수로는 용진읍 상삼리 용교마을의 수령 600년 된 느티나무와 구이면 청평마을의 느티나무, 고산면 읍내리의 느티나무 등이 있다.
전적지로는 임진왜란 때 권율장군이 전라 향병 1,500명을 지휘하여 왜장 고바야카와 다카카게[小早川隆景]가 이끄는 왜군을 물리친 운주면 산북리의 이치전적지(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1976년 지정), 소양면 신촌리의 웅치전적지(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1976년 지정) 등이 있다. 또한 한국 최초의 성당이었다고 하는 화산면 승치리의 되재성당이 있고, 1868년 순교한 천주교도들의 무덤인 천호산의 ‘천주교순교자묘’가 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고산향교(高山鄕校)가 있다. 이 향교는 고산면 읍내리에 1397년(태조 6)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01년(선조 34) 현재의 자리에 중건되었다.
서원으로는 1730년(영조 6) 봉동읍 구미리에 창건되어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 1904년 다시 구호단(龜湖壇)을 만들고 1970년 사당을 세운 구호서원을 비롯하여, 호산서원(湖山書院)이 삼례읍 후정리에 설립되어 정몽주(鄭夢周) · 송시열(宋時烈) · 김수항(金壽恒) 등을 배향하였다. 1754년(영조 30) 봉강서원(鳳岡書院)이 봉동읍 구만리에 창건되어 이방간(李芳幹) · 이헌구(李憲球)를 배향하였다.
학천사(鶴川祠)는 1768년 구이면 원기리에 정수홍(鄭守弘) · 정곤(鄭坤) · 정달서(鄭達恕) · 정임(鄭任) 등을 배향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양곡사(洋谷祠)는 1668년(현종 9) 비봉면 수선리에 건립되어 담양국씨(潭陽鞠氏)를 배향하였다. 고산면 삼기리의 백현사(柏峴祠)는 구영(具瑩)을 배향하였다. 이들 서원들은 1868년 대원군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그 뒤 각각 복설되었다.
그 밖에 1780년(정조 4) 황희(黃喜) 등을 배향한 용진원(龍進院)이 용진읍 구억리에 창설되었다. 1668년(현종 9)화산면 종리에 천곡사(泉谷祠)가 창건되어 임윤성(任尹聖)을 배향하였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3년 설립된 삼례제일교회의 목사 장경태(張敬泰)가 교회재단으로 1908년에 세운 사립기독영흥학교(私立基督永興學校)가 있다. 이 학교는 1917년 사립영신학교(私立永新學校)로 개칭되었고 1967년 공립학교로 개편되었으며, 1969년 삼례중앙국민학교로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10년 윤우병(尹佑炳) · 오병덕(吳秉德) 등에 의하여 설립된 화산의숙(華山義塾)이 있다. 1909년에는 고산향교 앞에 있던 정안당(靜安堂)에 김낙구(金洛九)에 의해 사립봉양학교가 설립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9개교, 중학교 14개교, 고등학교 8개교, 특수학교 1개교 및 우석대학교, 한일장신대학교, 백제예술대학교가 있다.
문화시설로는 완주문화원(完州文化院)이 있어 지방문화의 진흥에 이바지하고 있다.
이 고장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봉동읍의 난장(亂場)과 기세배 등을 들 수 있다.
봉동읍의 난장은 옛날 고산천(高山川) 근방의 숲에 도깨비들이 우글거려 이들의 장난에 의해 하천이 자주 범람하고 둑이 터졌다. 그래서 도깨비들의 기를 꺾기 위해 난장을 열어서 판을 누르고 씨름판을 벌여 사람들의 힘을 과시한 데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난장은 농한기인 음력 7월 20일경에 매년 개장되었는데 경비는 이 곳의 상인들과 지방유지들이 부담하였다. 장기리의 예전 사장(射場)터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난장이 시작되면, 씨름판 및 각종 놀이판이 벌어지고 시전(市廛)과 음식점 · 술집 등이 개설되어 5∼10일 동안 성황을 이룬다. 이 행사는 1960년까지 존속되었다.
기세배는 봉동읍의 10여 개 마을이 농기를 앞세우고 한 자리에 모여 합동으로 세배를 나누는 것이다. 기세배는 형제순서에 따라 형마을의 농기 앞에서 아우마을의 농기가 ‘순례요’라는 구령에 맞추어 깃대를 숙여 절을 하는 것인데, 이 기세배가 다 끝나면 기놀이와 풍물놀이를 하며 하루를 즐긴다.
봉동읍 율소리의 산신제와 고산의 기우제가 유명하다. 마을 뒷산의 토끼 봉산신이 수호신인 율소리에서는 마을 남쪽에 호산(虎山)이 있어서 산신제를 소홀히 하면 호환과 질병 · 흉년 등이 든다고 믿어 정성껏 산신제를 지낸다. 음력 정월 초엿새가 정례지만 부정이 있을 경우 연기하고 길일을 택한다.
마을에서 가장 깨끗한 사람을 제주로 선택하는데 제주는 12월 20일경부터 목욕재계하고 근신을 하며, 섣달 그믐날부터는 산신당에 불을 켜고 당산나무와 당에 금줄을 두르고 황토를 펴서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다. 제수비용은 풍물을 치고 걸립을 돌아 마련하는데 산가(産家), 상가(喪家), 부정이 낀 집 등은 피한다.
제수로는 돼지머리와 삼색과실 · 떡 · 술 등을 쓰며 제기(祭器)는 새로 구입한 것이라야 한다. 제는 당산수에서 먼저 지낸 다음 산신당에서 지내는데, 삼헌(三獻)을 하고 마을호수대로 촛불을 켜 호주성명을 불러가며 일일이 소지를 올린다. 제가 끝나면 술과 음식을 나누어 먹고 풍물을 치며 논다.
고산의 기우제는 여느 기우제와는 달리 운주면 가천리에 있는 화암사(花巖寺)의 괘불탱화(掛佛幀畫)를 노천에 내걸고 승려가 불경을 외우면서 비내림을 기원하는 기우불공(祈雨佛供)이다.
이 기우제의 특징은 한번 기우제를 시작하면 일정한 시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탱화가 비에 젖을 만큼 흡족한 비가 내릴 때까지는 거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기우제는 일제강점기까지 계속되었지만 근래에는 아직 행해진 일이 없다.
이 고장에는 효자나 성씨(姓氏)에 얽힌 인물전설을 비롯하여 지명전설과 동물전설이 많이 전해오고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위봉사와 효자범전설」 · 「벌명당과 발산소씨(鉢山蘇氏)전설」 · 「용마골 호랑이전설」 · 「걸치기재와 쉰진바위전설」 등이 있다.
「위봉사와 효자범전설」은 까다로운 식성을 가진 어머니를 극진히 모신 효자의 이야기이다. 그 효자는 위봉사에 있는 스님의 도움으로 호랑이로 둔갑하여 산짐승을 잡아다가 어머니의 식성을 만족시키고는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도술이 적혀 있는 책을 불태워버리는 바람에 효자는 인간으로 변신하지 못하고 호랑이로 남아 있어야 했지만, 어머니의 반성과 정성스런 불공으로 다시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벌명당과 발산소씨전설」은 명당자리에 얽힌 이야기이다. 옛날 산꼭대기의 명당리마을에 효성이 지극한 부부가 살고 있었다. 이들 부부가 부모님의 묘자리를 쓰는데 명당자리를 찾게 해달라고 극진히 정성을 드리니, 도승이 나타나 좋은 자리를 가르쳐 주었다.
부부는 도승의 말을 좇아 묘를 쓰고 그 북쪽 30리 밖인 익산군 금마면에 가서 살게 되었는데, 도승의 예언대로 집안이 번창하여 거족(巨族)을 이루었다. 이들이 바로 발산소씨의 조상이라 한다.
「용마골호랑이전설」은 장수가 되지 못한 아기의 이야기이다. 사십이 넘도록 자식이 없던 부부가 늘그막에 옥동자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방안에서 훨훨 날아다니는 등 기이한 행동을 했으므로 부부는 후환이 두려워 이 아이를 죽인 뒤 양지바른 곳에 묻었다. 뒤에 아기의 넋은 호랑이가 되어 용마골로 내려와 용소와 운장산을 넘나들며 장수가 못 된 한을 달랬다고 한다.
「걸치기재와 쉰진바위전설」은 이서면의 걸치기재에 얽힌 이야기이다. 오랜 옛날 이서면이 바다였을 때 모악산 쉰진바위에 선착장이 있었다.
언젠가 선녀와 선관들이 쉰진바위에 배를 대고 유람을 하다가 걸치기재에 배가 부닥치는 바람에 모두 익사하고 말았다. 이에 옥황상제가 애통해하며 걸치기재를 깎아내고 바닷물을 서해로 쫓아 이 곳을 구릉으로 만들어버렸다.
이 밖에도 성씨(姓氏)에 얽힌 구석린이란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영조 때 구석린(仇錫麟)이라는 사람이 부모의 상을 당하고 6년 동안 시묘(侍墓)살이를 했는데 호랑이가 함께 시묘를 하는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이 사실을 고산현감이 조정에 알리자 임금은 사람의 성씨에 원수 구(仇)자를 쓰는 것은 옳지 않으니 구(具)자로 바꾸라고 하여 그 때부터 구석린(具錫麟)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다.
이 군은 전주시를 둘러싸고 있어 예로부터 다른 군에 비해 개방적이었으나 아직도 구전되는 민요가 많아 예향의 본성을 잃지 않고 있다. 이 고장에서 많이 불리던 민요로는 「밤따는 처녀노래」 · 「아기보는 노래」 · 「꽃방구타령」 등을 들 수 있으며, 농업노동요로서는 「베틀가」 · 「모심기노래」 · 「김매기노래」 등이 있다.
「밤따는 처녀노래」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앞뒷동산에 밤따는 처녀야/ 밤 한송이만 던져주오/ 오월백이를 던져줄까요/ 청춘백이를 던질까요/ 오월백이도 내사싫소/ 청춘백이도 내사싫소/ 당신은 처녀 나는 총각/ 처녀총각이 노다가 가세/ 기러기 잡어 술안주하고/ 막걸리 걸러서 부어나먹세.”여기서 기러기는 결혼식 때 쓰는 목안(木雁)을 이르는 말이므로 은근한 수작이며, 막걸리로 합환주를 삼아 같이 살자는 얘기가 아닐까 한다. 이처럼 민요에는 환유적 표현도 많다.
「아기보는 노래」는 아기를 달래며 부르는 노래다. “딸아딸아 막내딸아/ 네 먹고 곱게곱게커서/ 오동나무 수자장/ 보화장식에 걸어줌세/ 둥기둥기 내딸아가.”
「꽃방구타령」은 “강원도라 금강산밑에/ 지추캐는 저소년아/ 너그집이 어디간디/ 해는다 갔는디/ 가지않고 지추만캐느냐/ 우리집을 알을라면/ 시레명당 돌아가서/ 구름같이 솟을현디/ 안개같이 자욱현디/ 삼간초당을 너덜이짓고/ 꼬방꼬방 자꼬방안의/ 지추닷말 묻었드니/ 요내동생 봉액이란년이/ 잡년인지 숩년인지/ 서당한놈 두눈에 걸고/ 지추닷말 다퍼냈네……”로 진행하여 후반부에서는 소년의 거동을 묘사하고 있다.
이 밖에도 단지 항아리들을 의인화한 「장꽝노래」와 고된 시집살이에 지친 여인이 남편 몰래 시부모 몰래 머리 깎고 중이 되었다는 비극적인 내용을 담은 「시집살이노래」 · 「한탄요」 등 많은 노래가 전한다.
산지가 많아 15.6%의 낮은 경지율을 보이며, 논은 고산천의 곡구인 봉동에서부터 서쪽으로 발달한 만경평야와 만경강의 지류인 소양천 · 전주천의 연안에 주로 분포한다.
고산천 수계에 조성된 동상저수지 · 대아리저수지 · 경천저수지는 만경평야의 주요 수원이 된다. 고산천변의 고산면 어우리에는 군산까지 60㎞가 넘는 대간선수로의 취수구가 있다.
다른 농업지역과 마찬가지로 주요 농산물은 쌀 · 콩 · 보리 등 식량작물이다. 그러나 노령산지가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군의 지형적 특징으로 인해 식량작물 외에도 산간지대에서 밤 · 감 · 대추 · 곶감 등이 많이 생산된다.
산간지대인 운주면 · 경천면 · 화산면 · 비봉면 · 동상면 · 고산면 등 고산천 상류의 골짜기에서는 감 · 곶감 · 대추 · 밤 · 콩 등이 많이 생산된다.
특히, 동상면은 감 · 곶감의 주산지이며 표고버섯도 많이 재배하고, 경천면은 대추의 주산지이다. 또한, 전주시와 인접한 구릉지대에서는 과일과 채소 등 근교농업이 발달하였다.
군의 서부와 남부의 구릉지에서는 밭농사가 활발하여 무 · 배추 외에 고추 · 생강 · 양파 · 파 · 마늘 등 조미채소와 복숭아 · 배 · 사과 등 과수의 재배가 활발하다.
일찍부터 생강을 재배하기 시작하여 전국제일의 주산지이기도 하였던 봉동읍은 오늘날에도 생강주산지이며, 고산면은 육쪽마늘로 유명하다.
구릉지가 많은 이서면은 채소작물 외에도 과수재배가 활발하여 전주백도로 유명한 복숭아와 배 · 사과의 생산이 많으며, 잎담배 재배도 한다. 또한, 비봉면은 수박산지로 유명하며, 충청남도 금산군의 금산읍과 가까운 경천면에서는 인삼재배가 성하다.
축산업은 점차 기업화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한우 · 젖소 · 돼지 · 닭 등이 많이 사육된다.
광업은 부진하여 규석 · 고령토 · 석회석 등이 비봉면 · 구이면 등에서 약간 생산될 뿐이다. 그 동안 공업발전은 매우 낙후되어 있었지만, 공업은 동봉읍에 완주산업단지와 전주과학산업연구단지가 조성되고, 이서면에 이서농공단지가 조성되는 등 발전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공업발전은 전주시 · 익산시 등 도시지역과 호남고속도로와의 양호한 접근성에 의한 것이다.
2008년 현재 광업 · 제조업의 사업체 수는 204개이며 월평균 종사자수는 12,379명에 이른다. 업종에서도 섬유 · 제지 등의 경공업 중심에서 화학 · 조립금속 · 기계 등 중화학공업의 비중이 증가하는 현상을 보여왔다. 중화학공업은 1990년대 초에 조성된 완주산업단지에 현대자동차사가 입지하면서 발전의 전기를 맞게 되었다. 용진읍에는 조선맥주사가 입지해 있다.
군의 전통산업인 한지 · 화선지 · 장판지 등의 제지업은 오늘날 크게 쇠퇴했지만 소양면 송광리를 중심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크게 발전했던 정미업도 삼례읍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상업기능의 많은 부분은 인접한 전주시에 의존하여 삼례읍 · 봉동읍 등 읍급지역과, 전주시에서 멀리 떨어진 산간지대에 속한 운주면 · 고산면에서만 정기시장이 개설된다. 삼례읍과 봉동읍의 경우 1980년대까지만 해도 각각 상설시장이 개설되어 있었으나 시내버스로 전주시와 연결되기 때문에 점차 그 기능이 축소되어 현재에는 정기시장만이 남게 되었다. 시가지에 발달한 상가에서 생활필수품의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고산면과 운주면은 전주시로부터 비교적 거리가 멀어 다른 면 소재지에서 개설되던 정기시장들이 사라진 것과는 달리, 아직도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삼례읍 삼례장이 3·8일, 봉동읍 봉동장이 5·10일, 고산면 고산장이 4·9일에 각각 열리는데, 주요 거래 품목은 생강 · 딸기 · 고추 · 감 등이다.
교통은 도로가 전주시를 중앙에 두고 있어 전주시를 중심으로 짜여진 시내버스망에 의해 군내 각 지역과 연결된다. 외부 지역과의 연결은 전주시를 기점으로 한 도로망을 통해 이루어져 비교적 편리하다. 또한, 전북 익산시와 경북 포항시를 동서로 잇는 익산포항고속도로와 2010년부터 부분적으로 개통을 시작한 순천완주고속도로가 완주군을 지나고 있다. 철도의 경우, 전라선 철도가 삼례역 · 신리역 · 죽림온천역을 통과하며, 삼례읍에는 호남고속도로 삼례 인터체인지가 있다.
노령산맥의 주봉들인 운장산 · 만덕산 · 모악산 · 대둔산 등의 산악으로 둘러싸여 곳곳에 빼어난 경승지가 있고, 유서 깊은 고적들이 산재해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전주 · 익산 · 대전 등의 도시들이 주변에 발달하고 있고 도시민을 위한 휴양, 휴식처인 유원지들이 많아 볼거리가 많다.
운주계곡과 대둔산도립공원은 대둔산의 빼어난 산세를 배경으로 조성된 도립공원이다.
대둔산은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친 남한의 소금강으로 일컬어지는 명산이다. 높이 878m의 마천대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산줄기가 뻗어 암산과 수목이 한데 어울려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운주에서 대둔산을 찾아드는 길목의 절경은 한폭의 그림이다.
대둔산을 넘어 충남의 진산(珍山)을 넘어가는 이치(梨峙)고개는 임진왜란 때 권율장군이 왜적이 이치를 넘어 호남평야로 진출하는 것을 막아 곡창인 호남은 저들의 노략질에서 무사할 수 있었다. 해가 저물어 갈 때 이치고개에서 바라보는 대둔산의 경치는 대단히 아름답다.
개척탑에 이르는 등산로는 가파르기로 이름나 있고, 금강구름다리 · 삼선줄다리 · 약수정 · 개척탑에 이르는 곳에는 리프트시설이 되어 있다. 산 아래에는 관광객을 위한 각종 편의시설과 숙박시설 · 식당 · 주차장 등이 완비되어 있고 호텔에는 온천장이 있다.
경천면의 경천저수지와 동상면의 대아저수지와 동상저수지는 산간계곡을 막아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1920년대에 축조되었다. 이 저수지를 일주하는 관광도로를 타고 저수지 주변의 풍치를 관광하는 코스는 일품이다.
주변에는 자연수목림지역도 개발되어 있다. 동상면 주천계곡에서 운장산(雲長山)을 끼고 진안군의 운일암 · 반일암 계곡으로 나가는 도로는 경치가 좋은 드라이브 코스이다.
소양면의 송광사는 이름 있는 고찰이다. 주변에는 송광자연의 집과 수련장이 있다. 북쪽으로 위봉산과 위봉산성 · 위봉사 · 위봉폭포를 지나 내려가면 동상저수지가 나온다. 그 주변의 경관은 빼어나다.
구이저수지와 모악산을 한눈에 보는 경치 또한 일품이고, 최근에는 전주 · 순창 · 담양 국도에서 고개 넘어 임실군으로 가는 도로들이 개설되어 운암호(玉井湖) 호반을 관광할 수 있다.
완주군 고산천 상류의 많은 계곡들은 박해시대의 천주교 성지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다. 군내에는 화심온천 · 죽림온천 · 왕궁온천 등이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진안으로 넘어가는 모래재는 굴곡이 심하고 수려한 주변 경치를 가진 재이다.
군에서는 현재 국도별 · 계절별로 다양한 코스로 여행할 수 있는 테마여행을 안내하고 있다.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읍. 면적 46.05㎢, 인구 2만 6009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장기리이다. 본래 전주군 지역으로 봉상면이라 하여 신봉 · 명탄 · 고천 · 명덕 등 62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우동면과 익산군 우북면의 일부가 병합되어 봉상과 우동의 이름을 따서 봉동면으로 불렸다. 1973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고산천이 산간지대를 벗어나 삼례 이하로 펼쳐지는 넓은 평야지대에 접어든다. 이 곳에서 분기된 많은 세천들이 흐르면서 형성된 넓은 충적평야의 두수부(頭水部)에 위치하고 있다.
그 결과 고산천의 수권을 장악할 수 있어서 이하 지역에 대한 관개수리상의 요충지가 되었다. 또한 이 곳은 교통로들이 마주치는 결절점(結節点)이어서 지역중심지로 성장하게 되었다.
1924년 이후 하천 개수공사의 실시로 인공제방이 축조되었고 상류의 어은리에 취수문이 만들어져 전북농조 관할 몽리 지역으로 향한 간선수로가 여기에서 시발하고 있다.
드넓은 평야지대를 중심으로 미작농업이 중심이고 지대가 높아 논을 만들기 어려운 곳에서는 생강이 생산되어 봉동생강으로 그 성가를 올리고 있다.
온실재배를 통한 채소류의 근교농업이 매우 활발하다. 최근에는 전주 제 3 공단의 신설로 자동차공업과 부품 공업지대가 설치되어 가동되고 있다. 전주시의 영향권에 들어 생활 전반이 전주에 의존하고 있다.
교통은 전주 · 고산 · 서대전을 연결하는 국도가 지나고 봉동∼삼례간, 전주 · 봉동 · 익산을 연결하는 도로가 교차하고 호남고속도로와 연결되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제내리에 무등입석, 용암리에 분청자요지, 구미리에 구호서원 등이 있다. 구만리는 전주이씨 동족마을이다.
장기(場基) · 제내(堤內) · 장구(長久) · 구암(九巖) · 둔산(屯山) · 용암(龍巖) · 은하(隱下) · 율소(栗所) · 낙평(洛平) · 성덕(成德) · 구미(九尾) · 고천(高川) · 신성(新城) · 구만(九萬) 등 14개 리가 있다.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읍. 면적 28.61㎢, 인구 1만 5315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삼례리이다. 본래 전주군 지역으로 오백조면(五百條面)이라 하여 수계 · 청계 · 신포 등 44개 리를 관할하다가 1895년(고종 32년) 창덕면(昌德面)으로 개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우서면(紆西面) · 우동면 · 봉상면 · 우북면, 익산군 춘포면의 일부가 병합되면서 옛날 역참시대의 삼례역 이름을 따라 삼례면으로 불렸다. 1956년 읍으로 승격되었고, 1973년 익산군 왕궁면 온수리 일부가 편입되었다.
고산천이 소양천 · 주천 · 전주천과 합류하여 만경강 본류를 형성하는 합류점에 발달해 있다. 주변지역은 모두 광활한 충적평야지대로 미작농업의 중심지이다.
삼례교를 건너 전북농조의 제2취수문이 있어 원래는 농업용수를 취수하여 후정리쪽으로 관류시켰으나 근년에는 물의 오염이 심하여 취수를 못하고 있다. 삼례역을 중심으로 가로가 길게 뻗어 양편으로 시가지를 형성하고 있다.
미작농업과 보리 · 콩이 생산되고 근교농업의 발달로 온실재배가 성하다. 고속도로를 통한 서울지역으로의 반출이 활발하다. 공업은 삼례역과 후정리일대에 소규모의 화학 · 섬유 · 제지공장이 있다.
교통은 전라선 철도의 중요 지역이고, 호남고속도로의 인터체인지가 있다. 전주 · 금마 · 익산, 삼례 · 봉동 · 대전, 삼례∼동익산 등지로 연결되는 교통로가 사통팔달하고 있다. 전주의 영향권에 드는 생활권이 형성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후정리에 호산서원과 비비정이 있다.
삼례(參禮) · 후정(後亭) · 어전(於田) · 해전(海田) · 신금(新金) · 석전(石田) · 구와(舊瓦) · 신탁(新卓) · 수계(岫溪) · 하(下)등 10개 리가 있다.
군의 동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38.90㎢, 인구 1,02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경천리이다. 본래 조선 말까지 고산군 관할로 있다가 1935년 운주면에 속하게 되었다.
1966년에 경천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86년에 운주면에서 업무가 독립되었다. 1989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군의 최북단 일부와 경천저수지의 하단지역을 관할하게 되었다.
전주로부터 30㎞ 떨어져 있으면서 고산천의 좁은 하안충적지와 산지로 둘러싸인 주변 지형을 가지고 있다. 화산면에 속하는 경천저수지가 이 평야일대에 관개용수를 공급한다. 경지면적이 전체면적의 9.2%에 불과하고 대부분 임야로 구성되어 대부분이 영세농이다.
주곡작물 생산보다는 특용작물 생산과 관상수, 묘목재배, 대추 · 밤 · 감 등의 유실수 재배가 발달하고 있다. 이들 유실수 재배지는 전주 · 대전간 국도)의 고산천 하상에 발달해 있다.
이 일대에서는 예로부터 운주면 · 화산면 · 경천면 · 동상면을 중심으로 곶감의 생산으로 유명하였다. 가을에는 운주장 · 고산장을 중심으로 전국에 곶감을 출하하는 장으로 유명하다.
전주 · 운주 · 서대전을 연결하는 도로가 통과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가천리에 화암사 중창비 · 우화루 · 동종 · 극락전 등이 있으며, 경천리에 산성, 용복리에 열녀문이 있다. 경천(庚川) · 가천(佳川) · 용복(龍伏) 등 3개 리가 있다.
군의 중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69.58㎢, 인구 4,80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읍내리이다. 본래 고산군 지역으로 읍내가 되므로 군내면 또는 현내면이라 하여 자포 · 어덕 · 관동 등 24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남면과 서면의 봉곡리가 병합되어 고산 고을의 이름을 따서 고산면이 되었다.
안수산(安睡山, 554m) · 동성산 · 운암산 등이 있어 산세가 매우 험준하다. 고산천을 따라 약간의 하천충적지가 발달하여 니전리에서 고산 읍내리 쪽으로는 대아저수지 쪽 계곡의 충적평야와 더불어 상당히 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어 중요한 미작농업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만경강은 이 곳 니전리부터 넓게 트인 들판을 형성해 나간다.
농산물은 쌀을 비롯하여 담배 · 마늘 · 생강 · 딸기 등의 온실재배와 산록경사지를 이용한 대추 · 밤 · 감의 생산이 많고 곶감생산은 유명하다. 고산천변에는 여름철에 피서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대아저수지 쪽으로는 많은 위락시설과 전문식당들이 확대되어 전주주변의 위락단지화 되어 가고 있다. 용담댐에서 지하터널로 도수되어 온 물로 수력발전하는 발전시설이 들어설 예정이다.
문화유적은 신덕리에 백현산성, 이전리에 산성 · 봉림사지, 읍내리에 고인돌 · 고산향교가 있다. 읍내(邑內) · 서봉(西峰) · 율곡(栗谷) · 어우(於牛) · 남봉(南峰) · 화정(花亭) · 양야(陽也) · 성재(聖才) · 오산(五山) · 삼기(三奇) · 소향(小向) 등 11개 리가 있다.
군의 남쪽에 위치한 면. 면적 88.08㎢, 인구 5,91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원기리이다. 본래 전주군 지역으로 구이곡면이라 하여 상보 · 하보 · 평촌 등 48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난전면의 일부가 병합되었다.
비교적 험준한 산세를 가진 모악산 · 경각산(鯨角山, 660m) · 국사봉(543m) · 오봉산(513m) 등으로 돌러싸여 면의 대부분이 산지이고 산지사이의 좁은 곡저평야와 전주쪽으로 삼천천유역에 비교적 넓은 충적평야가 전개되고 있다.
농업이 주산업이고 쌀 · 담배 · 고추 · 감 · 대추 등이 생산되고 있다. 도로는 전주 · 순창 · 담양을 연결하는 국도가 종단한다. 인근의 상관면과 임실군 신평면, 김제시 봉남면 등지로 통하는 지방도가 나 있다. 이 면은 전주시 생활권에 있어 구이저수지 · 사찰 · 암자 · 모악산 등산로 등이 있어 관광지로 유명하다.
문화유적으로서 평촌리 태실마을은 예종의 태실이 설치되었던 곳이다. 원기리의 대원사(大院寺)에는 대원사 용각부도 · 목각사자상 · 오층석탑 등이 있다. 항가리에는 마애석불좌상, 평촌리에는 경복사지, 두현리에는 남계정이 있다.
항가(亢佳) · 평촌(平村) · 광곡(光谷) · 덕천(德川) · 두현(斗峴) · 원기(元基) · 계곡(桂谷) · 백여(白如) · 안덕(安德) 등 9개 리가 있다.
군의 동쪽 노령산지의 산간에 위치한 면. 면적 106.52㎢, 인구 1,16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월리이다. 본래 고산군 지역으로 고산읍내의 동쪽이 되므로 동상면이라 하여 은천 · 산천 · 운곡 등 21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주군 동상면으로 개칭되었다. 1935년 완주군 동상면이 되었다.
노령산맥의 주봉인 운장산을 비롯하여 연석산(硯石山, 920m) · 원등산(遠登山, 713m) 등이 있어 면 전체가 험준한 산악으로 구성되어 있어 오지 중의 하나이다. 1920년대에 동상면 산간계곡을 막아 동상저수지와 대아리저수지가 축조되어 전북 농조관개 수리조직의 수원이다.
전체면적의 88%가 임야지대로 되어 있고 농경지는 적어 면적에 비해 인구가 매우 적다. 농업이 주산업이나 전작을 중심으로 잡곡생산과 포고버섯 · 산채나물 등 산간산업에 의존하고 있다. 산야에 감나무가 많이 식재되어 감과 곶감의 생산이 많다. 가을철에는 고산장에서 거래한다. 농가마다 감을 널어 말리는 곶감 건조대를 가지고 있다.
교통은 동상 · 대아저수지의 일주도로에 의존하며 최근에는 진안군 주천면 운일암 · 반일암과 운장산을 거쳐 넘어가는 도로가 개통되어 불편을 덜게 되었다. 물과 산을 곁들인 수려한 경관으로 새로운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수만리에 마애석불, 대아리의 관봉에는 관봉봉수대지가 있다.
신월(新月) · 사봉(詞峰) · 수만(水滿) · 대아(大雅) 등 4개 리가 있다.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4.62㎢, 인구 2,07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소농리이다. 본래 고산군 지역으로 고산읍내의 서쪽이 되므로 서면이라 하여 천호 · 명곡 · 내월 등 22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서면 · 북상면 · 북하면이 병합되면서 비봉산의 이름을 따서 비봉면으로 개편되었다. 1935년 완주군 비봉면이 되었다. 1987년 수선리 일부가 화산면에 편입되었다.
노령산맥의 서사면에 위치하여 비봉산 · 봉실산 등 산지가 많은 산간 오지이다. 전체면적의 79%가 산지이다. 농경지는 비봉계곡을 따라 좁은 곡저평야가 발달하고 그 곳을 중심으로 논농사와 배추 · 고추 · 콩 · 옥수수가 재배되고 여름철에는 수박단지가 조성되어 질이 우수한 수박이 생산되어 경향 각지로 출하된다. 산록 완사면에는 감 · 밤 · 과실 · 담배 · 축산 등이 이루어진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홍주석(紅朱石)이 매장되어 있고, 비봉숫돌이 생산된다. 옛날에는 비봉탄광에서 소량의 석탄이 생산되었으나 현재는 생산되지 않는다. 도로는 전주 · 고산 · 진산 · 서대전을 통하는 국도에서 비봉계곡으로 들어가는 도로가 개설되었고, 면 소재지에서 호남고속도로 익산인터체인지로 나가는 도로가 있다.
문화유적은 내월리와 대치리에 대치산성, 이전리에 산성, 내월리에 봉양서원, 수선리에 양곡서원이 있다. 천호산 기슭에는 천주교 순교자 묘소와 성당 · 공소 등이 있다. 소농(所農) · 봉산(鳳山) · 내월(內月) · 대치(大峙) · 백도(百島) · 이전(泥田) · 수선(水仙) 등 7개 리가 있다.
군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68.61㎢, 인구 4,93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리이다. 본래 전주군 지역으로 남관진의 북쪽이 되므로 상관면이라 하여 월암 · 신흥 · 쌍정 등 36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부남면과 부동면 일부가 편입되었다. 1930년 상관면 9개 리가 전주면으로 편입되었다. 1935년 완주군 상관면이 되었다. 1957년 면의 일부가 전주로 편입되었고, 1983년 대성리 · 색장리가 전주시로 편입되었다.
예부터 전주시로 들어오는 남쪽 관문이다. 만덕산(萬德山, 762m) · 고덕산이 있어 대부분 지역이 험준한 산지를 이룬다. 이 산간계곡을 전주천이 흘러 하안에 충적평야가 형성되고 이 평야가 주 거주처이다.
이 유역을 따라 교통로와 취락, 농경지들이 발달하여 주민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한다. 주곡농업과 과수재배, 딸기 · 포도 등의 생산, 축산업을 하는 전형적인 근교농업과 낙농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남원∼전주간의 국도변을 따라 죽림온천 · 은석골 등이 있어 새로운 관광유원지로 발전하고 있다.
교통은 전라선 철도와 6차선으로 남원∼전주간의 도로가 정비되어 교통이 편하고 최근에는 전주시 우회도로가 개설되어 더욱 편리해졌다. 문화유적은 마치리에 정수사, 신리에 경복사지, 용암리에 만마관성지가 있다.
신(新) · 죽림(竹林) · 용암(龍巖) · 의암(衣巖) · 마치(馬峙) 등 5개 리가 있다.
군의 동쪽에 위치한 면. 면적 94.10㎢, 인구 6,49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황운리이다. 본래 전주군 지역으로 소양면이라 하여 대흥 · 송광 · 백운 등 59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우정리가 진안군 부귀면으로 편입되었다. 1935년에 완주군 소양면이 되었다.
산지가 많은 지형으로 종남산(宗南山) · 원등산 · 입봉 · 만덕산 · 두리봉 등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그 중앙을 소양천이 관류하고 양안에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전 면적의 83% 정도가 산지를 이루어 임야로 되어 있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 · 보리와 온실재배를 통한 채소재배, 전주복숭아 등의 과수재배, 관상수재배 등 전형적인 근교농업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전주의 교외지대이다. 특산물로는 한지를 생산하고 있다.
교통은 진안 · 전주 · 무주를 연결하는 국도가 있다. 문화유적으로 대흥리의 송광사 경내에는 송광사십자각 · 일주문 · 사적비 · 대웅전이 있다. 그리고 위봉사와 위봉산성지가 있으며, 신촌리에 웅치전적비, 화심리에 산성, 죽절리에 단암사 등이 있다.
황운(黃雲) · 신교(新橋) · 명덕(明德) · 죽절(竹節) · 대흥(大興) · 해월(海月) · 화심(花心) · 신촌(新村) · 신원(新元) 등 9개 리가 있다.
군의 중앙에 위치한 읍. 면적 38.50㎢, 인구 7,715명(2015년 현재). 2015년 10월 용진면이 용진읍으로 승격되었으며 읍 소재지는 용흥리이다. 본래 전주군 지역으로 용진면이라 하여 순지 · 덕산 · 용복 등 67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초곡면의 일부가 병합되었다.
1935년 전주읍이 부로 승격되면서 완주군 용진면이 되었다. 1957년과 1973년 면의 일부가 전주시로 편입되었고 1983년 산정리 일부가 전주시로 편입되었다.
동쪽은 종남산 · 서대산 등 300∼600m의 산지로 되어 있으나 소양천변에는 넓은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농업이 주산업이고 온실재배를 통한 채소류의 생산이 활발하여 근교농업지대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
구릉지쪽에서는 복숭아 · 배 등의 과수재배, 관상수 재배, 양돈 · 양계를 하는 축산업이 발달하고 있고 식당 등 서비스업종이 도로변을 따라 확대되고 있다.
교통은 전주∼진안간의 도로와 전주 · 봉동 · 고산 · 대전 도로 사이에 입지하여 군도가 연결하는 관계로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간중리에 봉서사, 구억리에 산성, 용진원 등이 있다. 상운(上雲) · 상삼(上三) · 구억(九億) · 용흥(龍興) · 간중(澗中) · 운곡(雲谷) · 신지(新池) 등 7개 리가 있다.
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91.79㎢, 인구 2,05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장선리이다. 본래 고산군 지역으로 옛 운제현의 동쪽 위가 되므로 운동상면이라 하여 승치 · 미서 · 미남 등 24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운동하면의 일부, 운서하면 일부가 병합되어 전주군에 통합되었다.
1935년 운동하면과 운선면이 합쳐져 완주군 운주면이 되었다. 1966년 경천리에 경천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89년 경천출장소가 경천면이 되어 경천 · 가천 · 용복 등 3개 리를 관할하게 되었다.
북동쪽의 대둔산 주변은 500∼800m의 고산지대이며, 금강지류인 장선천(長仙川) 계곡에 약간의 평야가 있고 대부분 산지이다. 생활권이 만경강수계와 금강수계를 중심으로 나뉘어진다. 농업이 주산업이나 곡물의 생산은 적고 산간에서 밤 · 곶감 · 대추 · 감 등이 생산되고 있다. 근래는 인삼 · 담배 등이 생산되고 있다.
교통은 전주∼대전간을 연결하는 국도와 운주에서 논산을 잇는 도로가 발달해 있으나 불편하다. 문화유적은 고당리의 숯고개(炭峴)와 산성 · 봉수대, 산북리에는 임진왜란시 격전지인 이치전적지와 산성이 있다.
대둔산도립공원에 관광업이 발달해 있다. 장선(長仙) · 완창(完昌) · 산북(山北) · 구제(九梯) · 고당(姑堂) · 금당(金塘) 등 6개 리가 있다.
군의 서쪽에 위치한 면. 면적 33.85㎢, 인구 1만 482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상개리이다. 본래 전주군 지역으로 옛 이성현의 서쪽이 되므로 이서면이라 하여 상회 · 하회 · 원등 등 32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이남면 · 이동면 · 우림면, 김제군의 동면 · 모촌면 · 금구면 일부가 편입되었다.
1935년 전주읍이 부로 승격되고 전주군이 완주군으로 개칭되면서 완주군 이서면이 되었다. 1983년 원동리가 조촌면에 편입, 1990년 중리 · 상림리가 전주시에 편입되었다.
면의 남부에 약간의 산지가 있고 대부분 구릉성평야를 이루고 북부는 화강암이 심층풍화되어 적황색토의 낮은 구릉이 연속되어 있다. 농업이 주산업이고 쌀의 생산과 전주시의 근교농업지대로 채소류와 참외 · 수박 · 고추 등이 생산된다. 구릉지에는 야산이 개발되어 사과 · 복숭아 등 과수원과 양계 · 양돈을 하는 축산업이 발달하고 있다. 전주시의 교외생활권에 들어간다.
교통은 전주 · 김제 · 부안간의 국도와 호남고속도로가 지난다. 문화유적으로 상림리에서 중국식 동검 26기가 발견되었다. 상개(上開) · 금평(金坪) · 갈산(葛山) · 이성(伊城) · 용서(龍棲) · 은교(銀橋) · 이문(伊門) · 남계(南溪) · 반교(盤橋), 금계(金溪) 등 10개 리가 있다.
군의 최북단에 위치한 산지로 된 면. 면적 70.84㎢, 인구 2,96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화평리이다. 본래 고산면 지역으로 옛 운제현의 서쪽이 되므로 운서하면이라 하여 석천 · 학항 · 부현 등 19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운서상면 · 운서하면 · 운동상면 일부가 통합되어 화산면으로 개편되었다. 1935년 전주읍이 부로 승격되고 전주군이 완주군으로 개칭되면서 완주군 화산면이 되었다.
작봉산(418m) · 옥녀봉(410m) · 까치봉(456m) 등으로 둘러싸여 산지지형을 이루고 있다. 경지율은 25% 내외이며 고산천변에 충적평야가 발달하고 있다. 고산천 상류의 경천저수지는 관광지이며 중요한 관개용수 공급원이다. 농업이 주산업이고 산간에서 감 · 곶감 · 밤 · 대추 등이 많이 생산된다.
교통은 전주∼대전간의 국도는 화산면으로 가는 도로가 두 길이 있고 충청남도 연무읍과도 연결된다. 문화유적으로는 화평리에 고성산성 등이 있다.
화평(花坪) · 화월(花月) · 춘산(春山) · 운곡(雲谷) · 우월(牛月) · 운산(雲山) · 와룡(臥龍) · 종(宗) · 승치(升峙) · 성북(城北) · 운제(雲梯) 등 11개 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