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충청남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가로 3.2m, 세로 2.1m. 형산리에 속한 원형산ㆍ구수동ㆍ주교에 본디 각각 용대기, 즉 농기가 있었으나 가장 오래된 원형산 마을의 농기는 6ㆍ25 때 분실되어 현재 구수동과 주교에만 남아 있다.
주교에 보관된 것은 깃폭에 ‘광서(光緖) 17년’이라 씌어 있어 1891년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고, 구수동의 것은 ‘갑신(甲申)’이라고만 씌어 있는데, 이는 깃폭의 낡은 정도로 보아 1824년으로 추정된다.
본디 용기 또는 용대기라 불리는 농기는 대개 어느 마을에나 있어온 것이지만 구수동의 농기는 특별히 오래 된 것이어서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깃폭에는 ㄹ자 모양의 한 마리 용이 그려져 있고, 깃폭 주위에는 검은 천으로 지네발이 붙어 있으며, 그 외 외형상의 뚜렷한 특이점은 별로 없다. 지금은 천이 낡고 색이 바래 사용을 하지 않고 보존만 하고 있으며, 필요시 모조품으로 대용하고 있다.
오래된 용대기가 잘 보존되어온 것처럼, 형산리에는 풍장과 농기가 중심이 된 행사도 많아 정월보름 당산제, 두레풍장 논맬 때, 백중 무렵의 호미걸이 풍장(풍물) 등의 마을 행사 때에는 의례 농기가 앞세워지고 기에 잔을 올리는 절차가 있었다.
뿐만 아니라 2월 초하루는 농사가 시작되는 날이라 하여, 역시 마을의 큰 마당에서 용대기를 세워놓고 술잔을 올린 뒤(술을 잔에 따라 깃대 밑에 부움) 풍물을 치며 놀았다.
이 마을에서 농기가 이처럼 오래 보존된 데에는 마을 공동체놀이가 잦았던 것도 한 이유라 할 수 있다. 형산리는 이 용대기의 의의를 살려 1981년 용대기놀이를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출품하여 문공부장관상을 받았다. 그리고 1982년에는 민속자료로 지정되었으며, 같은 해에 용대기보존회가 결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