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공학 ()

고리 원자력발전소
고리 원자력발전소
과학기술
개념
핵분열 및 핵융합반응에서 얻어지는 원자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과 방사성동위원소의 산업적 응용을 연구하는 학문.
정의
핵분열 및 핵융합반응에서 얻어지는 원자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과 방사성동위원소의 산업적 응용을 연구하는 학문.
내용

모든 물질은 많은 원자의 모임이며,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電子)로 구성되어 있다.

원자핵은 양성자(陽性子)와 중성자(中性子)가 핵력(核力)에 의하여 결합된 입자덩어리로서, 자연에 존재하는 가장 무거운 원소인 우라늄원자핵(U235)은 92개의 양성자와 143개의 중성자로 안정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외부에서 중성자를 조사(照射)하면 우라늄원자핵은 두 개의 가벼운 핵으로 쪼개지는데, 이 현상을 핵분열이라고 한다.

이때 분열핵들은 중성자 과잉상태가 되어 잉여중성자를 방출함으로써 안정된 상태로 돌아가려고 한다. 이렇게 방출된 중성자들이 다시 우라늄원자핵에 조사되면 핵분열반응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핵분열반응은 한번에 약 200MeV 정도의 에너지를 생성하는데, 연쇄반응에 의하여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짧은 시간에 다량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이에 반하여 수소나 헬륨 등 자연에서 가장 가벼운 원소들의 원자핵을 결합시킬 때에도 질량 결손에 의한 에너지가 방출되는데, 이 과정을 핵융합반응이라고 한다. 핵융합반응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양전하(陽電荷)에 의한 원자핵 사이의 전기적 척력(斥力)이 극복되어야 하며, 이는 원자핵의 운동에너지의 증가, 즉 기체의 온도 상승을 통하여 달성될 수 있다. 태양이 꺼지지 않고 계속 빛과 열을 발할 수 있는 것은 수소가 끊임없이 지구로부터 공급되기 때문이며, 만일 지구상에서 핵융합반응이 성공된다면 무한한 에너지원을 얻게될 것이다.

원자력은 이러한 핵분열 및 핵융합 에너지를 일컬으며, 이를 산업적으로 응용하기 위해 연구하는 학문이 원자력공학이다.

학문분야

원자력공학은 크게 핵분열 분야와 핵융합 분야로 구분할 수 있다.

⑴ 핵분열분야

원자력발전에 관계된 물리·화학 및 기초이론, 원자로 설계 및 노심해석(爐心解析), 동력학, 안정성연구 및 열수력학(熱水力學), 원자로재료연구와 핵분열시 부산물로 방출되는 방사선의 방어·처리·응용 등을 주제로 하는 방사화학, 방사선공학,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하는 산업적 응용·연구 등이 포함된다. 이밖에도 기본적인 핵물질의 자료산출과 평가분석, 핵계측계통의 설계와 측정기술 등 여러 공학분야에 원자력이 응용되고 있다.

⑵ 핵융합분야

이 분야는 아직 상용화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으나 다소 긍정적인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꾸준한 진전을 이루고 있다. 강한 자기장(磁氣場)을 이용한 플라즈마 밀폐 방법과 레이저 가열을 통한 관성(慣性)핵융합 방법이 가장 유망한 기술로서 인정받고 있다. 또한 전기·자기장 연구를 비롯하여 플라즈마(Plasma) 유동 해석, 초전도체 연구, 레이저 응용 연구, 고온에 견딜 수 있는 장치 및 재료 연구, 외부가열을 위한 가속기 및 안테나 제작, 플라즈마 진단기술 개발 등의 분야가 총망라된 종합과학으로서 발전하고 있다.

발전과정

⑴ 시대별

1942년 미국의 페르미(Fermi, E.)에 의하여 최초로 원자의 불이 점화되었고, 우라늄 핵분열에 의하여 생성되는 대량의 에너지가 처음 인류에 선보인 것은 불행히도 제2차 세계대전을 종결시키기 위하여 일본에 투하된 원자폭탄이었다. 전후 원자력의 가공할 파괴력을 본 과학자들은 막대한 에너지를 평화적으로 이용하려는 노력을 계속하여 원자력발전을 성공시켰고, 의료·농업·공업 등 산업에도 널리 응용되기 시작하였다.

원자력이 국내에 처음 소개된 것은 1955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국제회의가 제네바에서 개최되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다. 이때 세 명의 과학자가 참가하였고, 이듬해 문교부 기술교육국 산하에 원자력과를 설치하였다. 원자력의 필요성을 느낀 이승만(李承晩) 대통령은 원자력요원의 양성을 지원하였고, 1차적으로 네 명의 원자력연수생들을 미국 알곤국립연구소에 파견하였다. 동시에 장기적인 원자력 인력양성을 위하여 1958년 4월 한양대학교에 40명 정원으로 원자력공학과를 신설하였고, 이듬해 서울대학교에서 20명을 모집하였다.

그러나 원자력공학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연구용 원자로의 설치 이후부터이다. 1957년 미국정부의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계획’의 하나로 35만달러의 원조를 얻어 실험용 원자로인 TRIGA Mark-2를 구입하였는데, 이 원자로는 내자 약 40만달러를 더 들여 1962년 3월 첫 불을 켜게 되었다. 이 원자로를 이용하여 물리·화학·생물분야의 기초실험들이 수행되었고, 방사선과 방사성동위원소가 산업적으로 이용되면서 보건물리·의학·농학분야에 원자력이 응용되는 계기가 되었다.

1968년 원자력발전소의 건설계획이 구체화되면서 원자력의 공학적 이용이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원자력발전소의 설계와 운전경험이 거의 없었으므로 첫 발전소는 미국 웨스팅하우스의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으나 차츰 필요한 연구분야를 인식하게 되었고, 원자력연구가 순수과학으로부터 응용과학으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계적으로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이 일어나자 원자력발전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요구되었고, 국내원자력발전소 건설계획도 급증하게 되었다. 이러한 추세에 부응하여 1979년 경희대학교에 원자력공학과를 신설하였고, 1984년에는 제주대학교에 방사선공학과, 1985년에는 조선대학교에 원자력공학과를 설립하였다. 또한 전문요원의 양성을 목표로 서울대학교의 대학원 정원이 1979년에 20명으로 증원되었고, 1982년에는 과학기술원의 기계공학부내에 원자력공학과를 신설하게 되었다.

⑵ 분야별

핵분열분야는 초기 소규모의 실험이 행해지다가 1969년 TRIGA Mark-2의 출력이 100kW에서 2.5배 증강되고, 1972년에는 2MW출력의 새로운 연구용원자로를 도입하면서 연구단위가 확장되기 시작하였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국내의 연구진들은 기초적이고 순수과학에 가까운 원자력이론연구를 주로 하였고, 원자력발전분야라고 하여도 핵연료주기분석 위주의 경제성 연구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부터 원자력발전소의 도입으로 본격적으로 원자로심해석방법의 개발을 서두르게 되었고, 원자로설계공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됨으로써 이에 수반되는 전기공학·화학공학·금속공학·재료공학·계측공학 등 모든 공학부문에서 괄목할 만한 연구가 진행되어 원자력공학이 종합과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또 원자력공학의 산업적 이용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원자력발전 외에 원자력선(原子力船) 등의 교통기관에 이용되고, 생성열을 지역난방, 공업적 증기생산, 바닷물의 담수화 등에 이용하게 되었다. 갑상선암·인후암·백혈병 등의 진단과 치료에 방사성동위원소가 활용되고, 농작물의 품종개량·식품저장·살균 등 농업적 이용이 급증하였으며, 비파괴검사 등 라디오그래프 외에 플라스틱 등 합성섬유의 개량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전 망

지하자원의 고갈이 예상되고 있는 현시점에서 인류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인 대체에너지원의 개발에서 현재 가장 선두주자가 바로 원자력이다. 이러한 인류의 숙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원자력공학이 넘어야 할 고비는 고속증식로(高速增殖爐)의 완성과 핵융합로의 개발이다.

고속증식로는 원자력발전의 효율을 최대로 하면서 동시에 소모된 연료보다 더 많은 양의 새로운 연료를 생산하는 이상적인 원자로이다. 아직까지 냉각재 등 미해결된 문제가 많이 남아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실험단계를 지나 이미 상업화시키고 있다. 국내에서도 고속증식로의 개발에 힘쓰고 있으며 21세기 초에는 도입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핵융합로의 개발은 아직 상용화 단계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으나 국제적인 협력 연구가 본격화되는 2000년대 초반에는 상당한 진전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950년대부터 시작된 핵융합로에 대한 연구는 198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 일본 등의 연구를 통해 성공적인 성과를 얻었다.

국내에서도 1979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주반지름 65cm, 부반지름 15cm, 출력 0.5KeV의 소형 토카막(Tokamak)장치를 건설하여 핵융합반응을 실험하는데 많은 연구진이 참여하고 있으며 원자력 연구소 및 한국과학기술원, 기초과학지원연구소를 중심으로 지속적인 연구가 수행되고 있다.

연구기관 및 학회

원자력공학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연구소로는 대덕연구단지내의 한국원자력연구소가 있다. 1958년 <원자력법>이 공포되고 원자력원(原子力院)이 발족된 이래, 이듬해 2월에 원자력연구소가 3부 11과로 설립되었고, 1973년 민영화되면서 그 명칭이 한국원자력연구소로 바뀌었다가 1980년에 한국에너지연구소로, 1989년 다시 한국원자력연구소로 환원되었다.

원자력시설의 안전성을 규제하기 위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설립되었다. 1981년 12월에 한국원자력연구소 내에 원자력안전센터가 발족되었으며, 1987년 6월에는 원자력연구소의 부설기관으로 확대 개편되었다가, 1990년 12월에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법이 통과되면서 독립 기구로 설립되어 원자력발전소의 인허가업무 등을 담당하게 되었다.

한편, 한국원자력학회는 1969년 2월 18명의 발기인에 의하여 창설되어 첫 논문집을 같은해 9월에 발간하였다. 그 뒤 매년 6회에 걸친 학회지를 발간하고, 봄·가을로 원자력학회를 개최하여 현재 1,000여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다. 이밖에도 한국전력주식회사(지금의 한국전력공사)를 주축으로 원자력산업회의가 1970년 12월에 창설되어 국내 산업체간에 원자력관계 기술정보를 교환하고 원자력전문가 초청, 국제기관과의 협조를 돕고 있으며, 산학협동의 창구가 되고 있다. 그 외에 핵융합 연구와 관련하여 한국물리학회 플라즈마 분과, 한국 가속기 및 플라즈마 연구학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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