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가잡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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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가잡영 / 본문 첫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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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위항시인 정남수 · 최기남 등 6인의 시 210수를 수록하여 1660년에 간행한 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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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 위항시인 정남수 · 최기남 등 6인의 시 210수를 수록하여 1660년에 간행한 시집.
내용

1권 1책. 운각필서체자(芸閣筆書體字). 정남수(鄭柟壽)·최기남(崔奇男)·남응침(南應琛)·정예남(鄭禮男)·김효일(金孝一)·최대립(崔大立) 등 6인의 시를 모은 것으로 절구(絶句)·고시(古詩)·율시(律詩)·오언(五言)·칠언(七言)·장단구(長短句) 등 각 체를 모아 실었기 때문에 ‘육가잡영’이라 이름하였다. 1660년(현종 1) 저자들에 의하여 간행되었다. 정담수와 남응침이 주축이 되었다.

권두에 이경석(李景奭)이 1658년(효종 9)에 쓴 서문이 있고, 권말에 1660년에 서호산인(西湖山人)이 쓴 발문이 있다. 시 261수가 실려 있다. 오언고시·칠언고시·삼오칠언·오언율시·칠언율시·육언율시·삼언절구·사언절구·오언절구·육언절구·칠언절구·집구절구(集句絶句)·회문절구(回文絶句)·칠언배율 등의 각종 시형이 등장하고 있다. 정남수의 시 52수, 최기남의 시 53수, 남응침의 시 43수, 정예남의 시 21수, 김효일의 시 41수, 최대립의 시 51수 등이 수록되어 있다.

≪육가잡영≫은 위항시인들의 시를 모은 것으로는 최초의 시집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뒤에 나오는 ≪해동유주 海東遺珠≫·≪소대풍요 昭代風謠≫ 등의 본격적인 위항시선집과는 달리 동인지적인 성격을 띤 것이 특징이다.

정남수는 호가 행림(杏林)으로, 태의동추(太醫同樞)를 지냈다. 서문에서 이경석은 그의 시를 일컬어 “풍정(風情)이 뛰어나고 호기가 치솟는다.”고 하면서 시재가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였다. 최기남은 호가 구곡(龜谷)으로, 사대부들 사이에 널리 이름을 얻었다. 그는 ≪육가잡영≫에 가장 많은 시를 수록하고 있다. 간행하는 데 주역을 담당하였던 남응침은 호가 송파(松坡)로 태의(太醫)를 지냈다. 이경석으로부터 “시어가 풍부하고 시의(詩意)가 원만하다.”는 평을 받았다.

정예남은 호가 서주(西疇)이며 의학교수(醫學敎授)를 지냈다. 김효일은 호가 국담(菊潭)이며 금루관(禁漏官)을 지냈다. 최대립은 호가 창애(蒼崖)로 역관을 지냈다. 뛰어난 시재를 지녔으며, 홍세태(洪世泰) 등과 함께 낙사시사(洛社詩社)의 구성원이었다.

≪육가잡영≫은 위항문학의 초기를 대표하는 업적이다. 다음 세대의 위항시인들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이후 약 200년간 활발하게 전개된 위항문학은 개인적인 창작활동보다는 무리를 지어 시사에 참여하거나 동인그룹을 형성함으로써 더욱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직접적으로는 이들의 문하에서 또는 이들의 자손에 의하여 다음 세대의 위항문학이 더욱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조선평민문학사』(구자균, 문조사, 1948)
「육가잡영해제(六家雜詠解題)」(『여항문학총서(閭巷文學叢書)』 6, 여강출판사,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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