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군 ()

대동여지도 중 충청북도 괴산, 음성 부분
대동여지도 중 충청북도 괴산, 음성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충청북도 북서단에 위치한 군.
정의
충청북도 북서단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충주시·괴산군, 서쪽은 경기도 안성시, 남쪽은 진천군, 북쪽은 경기도 이천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7°26′∼127°47′, 북위 36°50′∼37°09′에 위치한다. 면적은 520.30㎢이고, 인구는 9만 6396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개 읍, 7개 면, 328개 행정리(115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에 있다.

자연환경

북단의 서쪽 경기도와의 경계부에서 차령산맥(車嶺山脈)이 백족산(白足山, 420m)·임조산(林鳥山, 328m)·팔성산(八星山, 387m)·마이산(馬耳山, 472m)·덕성산(德城山, 610m) 등을 이루면서 남서 방향으로 뻗어 있다.

북쪽의 오갑산(梧甲山, 609m)에서 분기한 노령산맥(蘆嶺山脈)은 원통산(遠通山, 651m)·수리산(愁離山, 606m)·수레이산(679m)·부용산(芙蓉山, 644m)·큰산(510m)·가섭산(迦葉山) 등을 이루면서 남쪽으로 뻗어 있고, 동쪽에는 비교적 낮은 백마산(465m)·삼신산(400m)·수정산(393m)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부용산을 분수령으로 세 개의 하천이 흐르고 있는 데, 남사면에서 미호천(美湖川)이 발원하여 부윤천(富潤川)과 초평천(草坪川)을 합류해 진천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동사면에서는 음성천(陰城川)이 발원해 남류하면서 갑산천(甲山川)과 구안천(九安川)을 합류해 음성평야를 형성하고 있으며, 서사면에는 응천(鷹川)이 발원하여 북류하면서 하곡평야를 이루고 청미천(淸美川)과 합류해 남한강에 흘러든다.

3대 강의 상류부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하천의 규모가 작고 수량이 부족해 관개에 문제가 많다. 특히, 미호천 유역의 대소면·삼성면·맹동면·금왕읍 등의 곡창지대는 관개사업이 숙원사업이 되었다.

그리하여 미호천 유역에 농업종합개발사업을 벌여, 응천 상류에 용계(龍溪)·무극(無極)·금석(金石)의 3개 댐을 축조해 도수터널로 미호천 상류로 관개수를 역류시키고, 초평천 상류에 맹동(孟洞)댐을 축조해 이 물을 소속리산(小俗離山)의 도수터널로 서부의 곡창지대에 공급하게 되었다.

음성천 유역의 음성분지는 전형적인 분지로서 북동쪽의 가섭산(迦葉山, 710m), 남쪽의 국사산(國師山, 410m), 서쪽의 노령산맥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삼정들은 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으며, 진천평야는 그 절반이 음성군 관내에 속하는 곡창지대이다.

연평균 기온은 10.2℃, 1월 평균기온 -5.1℃, 8월 평균기온 23.1℃이며, 연교차는 28.2℃ 에 달하는 대륙성기후를 나타내고 있다. 연강수량은 1,192㎜로, 여름철에 집중다우 현상을 보여 홍수가 심한 편이다.

역사

구석기 시대의 유물·유적은 아직 발견된 바 없으나 인근의 제천시와 청주시에서 유물이 발견되고 있어 이곳에서도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신석기시대의 유물·유적은 감곡면 등지에서 발견되었으므로 신석기시대에는 사람이 살았던 것으로 믿어진다.

일찍이 이곳은 진국(辰國)의 땅으로서 삼한시대에는 마한 54국 중 지침국(支侵國)에 속했다. 현재 이 지방에서 전해 내려오는 ‘솟대’는 마한시대의 국가 풍속인 소도(蘇塗)에서 연유된 것이다.

삼국시대에는 처음 백제의 땅이었으나 뒤에 고구려의 영토가 되어 잉홀현(仍忽縣)이라 불렸는데, 노음죽현(奴音竹縣 : 지금의 이천시 장호원읍)에 속했다가 금물노군(今勿奴郡: 지금의 진천군)에 이속되었다. 그 뒤 신라의 영토가 되었고 757년(경덕왕 16) 음성현(陰城縣)으로 개칭되어 한주(漢州) 흑양군(黑壤郡: 지금의 진천군)의 속현이 되었다.

995년(성종 14) 중원도(中原道) 진주(鎭州) 음성현이 되었고, 1018년(현종 9) 양광도(楊廣道) 충주목에 속했다가 뒤에 감무를 두었다. 1356년(공민왕 5) 충청도 국원경(國原京) 음성현으로 개편되었다.

1413년(태종 13) 현감이 파견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당시 이곳의 호구는 171호 726인이었다. 1560년(명종 15) 음성향교가 설립되었고, 1602년 백운서원(白雲書院)이 설립되어 후에 운곡서원(雲谷書院)으로 개칭되었다. 1592년(선조 25) 현이 폐지되어 청안현(淸安縣)에 편입되었다가 1618년(광해군 10) 주민의 진정으로 지금의 음성읍과 원남면을 관할하는 음성현으로 복구되었다.

임진왜란을 전후로 왜적을 방어하기 위해 수정산성(水精山城)과 설성산성(雪城山城)을 쌓았다. 1662년(현종 3) 괴산군에 병합되어 폐현되었다가 이듬해 복구되었다. 인물로는 태조와 친분이 두터워 태종의 명을 받아 함흥차사(咸興差使)로 갔다가 희생당한 박순(朴淳),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 때 끝까지 저항하고 순절한 남연년(南延年) 등이 있다.

1895년 충주부 음성군이 되었고, 1896년 충청북도 음성군이 되었다. 같은 해 지금의 감곡면(당시 충주부 소속)에 충청북도에서는 가장 먼저 천주교가 들어와 최초의 성당이 세워졌다. 1906년 충주군 금왕면·생극면·대소면·맹동면·삼성면·감곡면 등 6개 면이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충주군 소이면의 일부가 편입되었다.

1919년 3·1운동 때 3월 18일 음성읍에서 수천 명의 군중이 만세시위를 벌였다. 3월 20일 맹동면에서는 김동환(金東煥)의 주동으로 수백 명이 만세시위를 벌였다. 4월 1일과 2일에는 삼성면·감곡면·대소면·금왕면 등지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특히 4월 1일 소이면에서는 김을경(金乙卿)·이중곤(李重坤) 등의 주동으로 수백 명이 모여 주재소를 포위하는 등 격렬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1930년 당시의 호구는 1만 3718호, 7만 3930명이었다.

1956년 7월 8일 음성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73년 7월 1일 생극면 도신리 일부가 금왕면에, 중원군 신니면 광월리 무수마을 일부가 음성읍에, 괴산군 불정면 문등리가 소이면에 편입되었고, 금왕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유물·유적

원남면 보룡리와 상로리에서 돌칼과 돌화살촉이 나온 바 있고, 감곡면 오행리에는 선돌이 있다.

음성읍 사정리, 삼성면 청룡리·선정리, 대소면 부윤리, 소이면 갑산리·비산리 등지에서 삼국시대의 토기 조각이 발견된 바 있다.

산성으로는 음성읍 읍내리의 수정산성(水精山城, 일명 할미성), 신천리와 읍내리의 토성터, 대소면의 성본리 토성터, 삼성면의 망이산성(望夷山城), 원남면의 하로리 산성(일명 할애비성, 烏城山城), 생극면의 팔성리 산성과 병암리 이진봉산성(夷陣峰山城), 소이면의 갑산리 토성터 등이 있다. 봉수대가 음성읍의 가섭산(迦葉山)과 삼성면의 망이산에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음성읍 읍내리의 음성 읍내리 오층모전석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75년 지정), 음성 읍내리 삼층석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 용산리의 상봉악사지와 가섭사 석가여래좌상, 감우리 성주사지의 부도와 불상, 평곡리 사지의 관세음보살상과 비로자나불좌상, 소이면 비산리의 음성 미타사 마애여래입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과 마애불, 후미리 사지의 탑부재, 갑산리 사지의 석탑, 중동리 사지의 탑부재·연화대좌, 맹동면 본성리의 미륵불, 쌍정리의 삼층석탑, 원남면 덕정리의 화사, 보룡리 사지의 석불, 금왕읍의 금석리 사지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음성읍 읍내리의 음성향교(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 삼성면 용성리의 운곡서원(충청북도 문화재자료, 1990년 지정), 생극면 팔성리의 지천서원이 있다.

그리고 대소면 오류리에는 박순(朴淳)을 봉안한 박충민공 사당, 감곡면 문촌리에 옥산사, 원남면 조촌리에 태교사(충청북도 문화재자료, 1987년 지정), 음성읍 용산리에 충룡사, 금왕읍 도청리에 도장사 등이 있다.

생극면 방축리에 있는 음성 권근 삼대 묘소 및 신도비(충청북도 기념물, 1980년 지정)에는 권근(權近)·권제(權踶)·권람(權擥)의 묘와 신도비, 그리고 문충공 사우가 있다. 문충공 사우는 조선건국공신으로 찬성사(贊成事)·대제학을 역임한 권근을 봉안한 사우로, 그의 묘는 원래 경기도 광주군 오포면에 있었는데, 그의 아들 준(蹲)이 1444년(세종 26)에 이곳 현감으로 부임해 묘를 이장하고 사당을 세웠다.

금왕읍 유촌리에는 민발(閔發)의 묘와 신도비, 감곡면 영산리에는 경녕군 부인 김씨 묘소(충청북도 기념물, 1994년 지정)가 있다.

감곡면 오궁리에는 신후재 초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6년 지정)이 보존되어 있으며, 음성읍 읍내리에는 남충장공시고목판(충청북도 유형문화재, 2002년 지정)이 있다.대소면 대풍리의 한독의약박물관에는 의방유취 권201(보물, 1996년 지정)·향약제생집성방 권4~5(보물, 1996년 지정)·구급간이방 권6(보물, 1996년 지정)이 보관되어 있다.

고가옥으로는 감곡면 영산리에 음성 잿말 고택(중요민속문화재, 1984년 지정)과 음성 공산정 고택(중요민속문화재, 1984년 지정), 생극면에 음성 팔성리 고가(충청북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가 있다.

이 밖에 금왕읍 용계리에 산제당이 있으며, 음성읍 감우리에는 1950년 7월 7일 무극리전투에서 적군을 섬멸한 전적을 기리는 전승비가 있다. 읍내리에는 경호정이 있는데, 1934년에 건립되었으며 인풍정이라고도 한다. 정자 옆에는 삼층탑·독립기념비 등의 기념물이 있다.

감곡면 왕장리에 음성 감곡성당 소장유물(충청북도 유형문화재, 2002년 지정), 원남면 마송리에 음성 마송리 석장승(충청북도 민속문화재, 2002년 지정)이 있다.

이곳에는 천연기념물인 황새(천연기념물, 1968년 지정)가 날아들기도 한다. 생극면 팔성리에는 수령 약 500년 된 비자나무와 회화나무가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1560년(명종 15) 음성읍 신천리에 창건된 음성향교가 있었으며, 이 밖에 운곡서원(雲谷書院)과 지천서원(知川書院)이 있다. 삼성면 용성리에 있는 운곡서원은 1602년(선조 35)에 충주목사 정구(鄭逑)가 백운서당을 해체하고 건립한 백운서원을 모체로 1661년(현종 2)에 설립하였다. 1676년(숙종 2)에 사액되었으나, 흥선대원군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1894년에 재건되었다.

생극면 팔성리에 있는 지천서원은 중종 때 이조참판 김세필(金世弼)이 기묘사화로 낙향해 살았던 곳으로 후에 서원이 되었다. 이 또한 흥선대원군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1906년에 재건되었다. 사우로는 옥산사·태교사·충룡사·도장사·도통사 등이 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881년 향교 내에 설립되었다가 1909년에 정식 인가된 사립광명학교(私立光明學校)가 최초이며, 1911년에 음성공립보통학교가 되었다. 1906년에는 조동환(趙東煥)이 무극 사립보통학교(無極私立普通學校)를 설립했는데, 이듬 해사립통명학교(私立通明學校)로 되었다.

그 뒤 1면 1교의 교육체제를 갖추게 되었고, 중등교육기관으로 1939년 2년제의 음성농업실습학교(陰城農業實習學校)가 설립되었다. 교육기관으로는 2015년 현재 초등학교 22개교, 중학교 10개교, 고등학교 4개교, 특수학교 1개교와 강동대학교·극동대학교가 있다.

또한 1958년에 음성문화원이 설립되어 설성문화제(雪城文化祭) 등의 지방문화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1964년에 설립된 음성군향토문화연구소에서는 사지(寺誌)를 비롯한 많은 자료를 발간해 향토문화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민속

이 고장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거북놀이’를 들 수 있다. 충청북도의 거북놀이는 음성과 진천의 일부 지역에만 분포되어 있는 집단놀이로 30년 전에 중단되었다가 1972년 윤병준(尹秉俊)의 노력으로 재연되었다.

놀이패는 모두 30∼40명 정도이다. 수숫잎이나 볏짚을 엮어 거북으로 가장한 사람과 방망이수건에 등거리와 잠방이를 입고 오쟁이를 짊어진 질라아비(길라잡이), 두루마기에 정자관을 쓰고 지팡이와 부채를 든 광대, 남자가 분장한 각시, 방망이수건에 등거리와 잠방이를 입은 머슴들, 그리고 농악대로 구성된다.

이들 놀이패는 추석날 밤이 되면 붉은 바탕에 여의주와 황룡을 그린 용기(龍旗)를 앞세우고 질라아비의 안내로 집집을 다니며 논다. 대문 앞에서 이들이 수문장굿을 벌이면 주인이 나와 맞아들이는데, 집 안에 샘이 있으면 샘굿을 하고 샘이 없으면 조왕굿을 한 다음 마당굿과 도량굿을 한다.

보통 한 집에서 40분 정도 놀며 주인은 음식을 잘 차려 이들을 대접해 보낸다. 이 거북놀이는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풍년을 감사하는 추보제(秋報祭)의 의식이라 여겨진다. 이 밖의 민속놀이로 장치기·횃불놀이 등이 있었으나 전승되지 않고 있다.

음성읍 평곡리·소여리와 생극면 병암리 등지의 산신제가 유명하다. 평곡리의 산신제는 정월 초순에 길일을 잡아 생기복덕에 맞는 제주와 축관, 공양주를 선정해 오성산(烏城山)에 있는 당집에서 유교식으로 지낸다. 제물은 돼지와 메·과일 등을 진설하는데, 돼지는 제장에서 잡아야 하고 메도 제장에서 숯불로 지은 것이라야 한다.

산신제를 지내기 3일 전부터 동네 입구에는 금줄을 쳐 부정을 막으며, 설날부터 제일 사이에 부정한 것을 본 사람은 다른 곳에 갔다가 제가 끝난 뒤에 돌아온다. 제관들은 제사 전날 당집 옆에 있는 별당(別堂)에서 합숙하면서 근신한다.

소여리의 산신제도 이와 비슷하나 산신제를 지내는 날 집집마다 불을 켜놓아야 하는 것이 특징이다. 병암리의 산신제에서는 제주가 산제를 지낸 다음, 그 영험을 알기 위해 대동소지(大同燒紙)라고 하여 한지(韓紙)를 태우는데, 종이가 잘 타면 산신이 만족한 것이므로 마을에 행운이 온다고 믿는다.

설화·민요

이 고장의 설화로는 지명유래전설과 역사적 인물과 관련된 전설이 많이 전승되고 있다. 소이면 비산리의 「생바위전설」은 다음과 같다. 옛날 이곳 절에 늙은 주지와 젊은 상좌들이 불도를 닦고 있었는데, 상좌 한 명이 열심히 참선해 득도(得道)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를 시기한 주지가 벼랑의 바위에 앉아 참선하는 그 상좌를 절벽 아래로 밀어버렸다.

그러나 상좌가 절벽으로 떨어지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우아한 풍악소리가 들리고 영롱한 빛이 내려와 상좌를 감싸더니 잠시 후 상좌는 연꽃에 앉아 생황(笙篁)을 불면서 승천하고 주지는 그 자리에서 죽었다는 전설이다.

맹동면의 「통골모기전설」은 강감찬(姜邯贊)과 관련된 전설로 다른 지방에서도 비슷한 내용으로 전승되고 있다. 장군이 군사를 이끌고 이곳에 이르러 잠을 자게 되었는데 모기의 극성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이에 장군이 제일 큰 모기를 잡아 주둥이를 뽑고 부적(符籍)에 싸서 태워버렸는데 그 뒤로 이곳에는 모기가 없다는 전설이다.

삼성면 백운산(白雲山)에는 「유월샘전설」이 전한다. 심한 가뭄이 들어 먹을 물조차 없어 사람들이 죽어가자 사람들이 우물가에서 유월 한 달 동안만이라도 물이 나오게 해달라고 빌었더니 물이 솟아올라 해갈이 되었다. 그런데 칠월 초하루가 되니 우물물이 말라버렸다. 그 뒤로 매년 유월 초하루가 되면 샘이 솟았다가 유월 말이 되면 물이 말라버려서 ‘유월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금왕읍의 「말무덤전설」은 임진왜란 때 상주판관(尙州判官)을 지낸 권길(權吉)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권길이 충주에서 왜군을 맞아 싸우다가 죽었는데, 그의 말이 총상을 입고도 죽은 권길의 옷을 물어다가 고향의 부인에게 전하고 죽자 부인이 자기 옷으로 장례를 치르고 말무덤을 만들어주었다.

이 밖에도 사람들이 만지기만 해도 바람을 일으킨다는 금왕읍의 「꽃너미고개 바람부처전설」을 비롯해, 효행전설·장자못전설·단혈패망전설 등이 전승되고 있으며, 권근에 얽힌 인물전설이 전하고 있다.

이 고장에는 「모찌기노래」·「모심기노래」·「김매기노래」·「뱃노래」 등의 노동요가 있으며, 유희요 또는 의식요로서 「거북이노래」와 함께 다양한 타령이 불리고 있다. 「모찌기노래」는 선소리꾼이 느린 중중모리로 메기면 여럿이 “밀쳤네 떨쳤네 떠들썩하더니 또한춤”이라는 사설로 받는다.

“이 모판에 자란 모를/ 밀쳤네 떨쳤네 떠들썩하더니 또한춤/ 한춤두춤 놀지말고 이모저모 얼렁쩌세/ (받는 소리)/ 이모를다 얼렁쪄서 저기논에 던져보세/ (받는 소리)/ 한춤두춤 시어보지말고 이모저모 얼렁찌세…….”라고 부른다.

「모심기노래」는 강원도 서남지방과 같이 「아랑성」을 부르는데 가락은 세마치장단이다. “……이모거모를 심더래두 입구자루만 심어를 주셔요/ 이논빼미 얼렁심고 장구배미로 넘어를 가셔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게.”라고 부른다. 받는 소리를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라리 어얼사 아라송아”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금소리」 또는 「지금매노래」라는 초벌김매기소리는 “여기영차 뒤엄매야” 또는 “에이위 어기영차 지금매야”라고 받는 소리를 한다. 「대호리」라는 이듬매기소리는 중중모리장단으로 “어라 금실 대호리야”라는 받는 소리를 한다. “……여기저기 하더래두 덩이만슬슬 굴려줘요/ 어라 금실 대호리야……이산저산 건내보니 그늘은점점 쫓아오네…….”라고 부른다.

세벌김매기소리인 「방아소리」는 “에이어라 방아호”라는 사설로 받는데 비교적 흥겨운 가락이다. “……이방아가 누방안가/ 에이어라 방아호/ 강태공이 조작방아/ 에이어라 방아호/ 얼렁얼렁 방아를찧어야/ 에이어라 방아호/ 이웃집에 마실가지…….”라고 부른다.

“어싸 어싸”라고 받는 소리를 하는 「뱃노래」는 “……같이가자 펄친가자/ 어싸 어싸/ 우리지방을 펄친가자……충주지방이 가깝구나 암반내가 달랬구나 에야디야/ 어싸 어싸……”와 같이 부른다.

그리고 7월부터 8월 추석 전후까지 농신(農神)과 용신(龍神)에 대한 기농(祈農)놀이에서 부르는 「거북이노래」가 있다. 타령으로 「화투풀이」·「중타령」·「방아방아」·「창부타령」·「숫자풀이」 등이 전승되고 있다.

산업·교통

이 군의 토지 이용은 총 520.30㎢ 중 임야 274.87㎢, 논 77.44㎢, 밭 64.18㎢, 대지 13.16㎢ 등으로 논이 밭보다 약간 많은 편이다. 농업용수로는 무극·금정·원남·용원 등의 저수지가 있어 음성평야를 비롯해 이 지역에 관개용수를 제공하고 있다.

식량작물의 생산량은 미곡 3만 189M/T, 두류 1.1M/T, 잡곡 30M/T, 서류 26M/T을 나타내고 있다. 두류는 콩·팥·녹두 등, 서류는 감자·고구마 등을 생산하고 있다. 채소류로는 배추·무·상추·시금치·오이·수박·참외·당근 등이 생산되고, 특산물은 미백복숭아·사과·포도·참외·수박·고추·인삼 등이 재배되고 있다.

미백복숭아는 감곡면에서 연간 4,270M/T, 음성사과는 4,300M/T, 삼성포도는 970M/T, 생극참외는 2,650M/T, 대소수박은 3,350M/T, 음성고추는 금왕읍·소이면·원남면·맹동면 등지에서 2,500M/T, 음성인삼은 음성읍·금왕읍 등지에서 805M/T를 생산하고 있다.

축산업은 한우·젖소·돼지·사슴·개·산양·닭·오리·토끼 등 다양한데 이 중 한우가 주종을 이루고 있고, 임산물로는 도토리·밤·대추·버섯·산나물 등이 생산된다. 광구수는 총 25개소이고 가행 1개소이다.

공업단지로는 음성읍 1개소, 금왕읍 2개소, 소이면 1개소, 맹동면 1개소, 대소면 2개소, 삼성면 2개소, 감곡면 1개소 등 총 10개 단지에 123개 입주업체가 있다. 관내에 화학·섬유·고무·플라스틱 업체 164개소, 조립금속·기계장비 업체 113개소, 식료품·담배 업체 101개소, 비금속광물 업체 44개소, 섬유·의복·가죽 업체 43개소 등 총 687개 업체에 종업원이 2만 1927명이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다.

상업활동으로는 음성장·금왕장·삼성장·감곡장·대소장 등 5개의 정기시장이 있으나 대소면의 대소장은 사실상 정기시장의 기능이 상실되었다. 음성읍은 군청 소재지로서 슈퍼마켓을 비롯해 각종 상점 등이 있는 고차 중심지의 성격을 띠고 있다. 따라서 2·7일에 열리는 음성장은 기존의 중심지 기능과 상호 경합 또는 보완관계를 가지면서 주변지역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금왕읍과 감곡의 오행리 역시 소형 슈퍼마켓 등이 있는 중심지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5·10일에 개시되는 금왕장과 4·9일에 개시되는 감곡장의 기능은 정체 상태에 있다. 감곡장은 청미천(淸美川)을 사이에 두고 장호원과 행정적인 경계로 분리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공동의 생활권을 이뤄 경기도 이천시와 세력권이 경합되고 있다.

삼성면의 삼성장은 최근의 교통수단 발달과 소비자의 생활수준 향상으로 정기시장의 기능이 쇠퇴하고 있는데 1·6일에 개시된다. 주요 거래품목은 농산물로서 고추·참깨·수박·복숭아 등이다.

시장의 이동상인들은 대부분 한 주기의 시장 개시일 중 하루 이상 시장을 방문하지 않으며, 시장 방문을 하지 않는 날에는 서울이나 지역의 중심시장인 청주나 충주에서 상품을 구입하고 있고, 그 밖에는 농사일을 하는 등 겸업하는 영세상인들이다.

철도의 충북선이 통과해 음성·소이·보천 등의 3개 역이 있고, 서울∼이천∼충주∼문경을 잇는 국도 3호선와 둔포∼평택∼장호원∼제천∼정선을 잇는 국도 38호선이 북부지역을 통과하고 있으며 음성∼연풍 간의 국도와 음성∼금왕, 생극∼진천 간의 지방도 등이 있어 교통은 매우 편리하다. 또한, 군의 서단 부근에 중부고속도로가 통과하고 있어 서울∼청주 간의 교통이 편리해 청주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도 적지 않으며, 2015년 완공·개통한 평택제천고속도로가 음성군을 지나고 있다.

관광

차령산맥과 노령산맥의 준봉들이 높이 솟아 있고 부용산을 분수령으로 부윤천(富潤川)과 음성천·응천 등이 흐르고 있고, 산수가 수려하여 많은 명승지를 이루고 있다. 예로부터 이름 있는 명승지로는 음성팔경(陰城八景)·생동팔경(笙洞八景)·오갑팔경(梧甲八景)·비선팔경(飛仙八景)·하촌팔경(荷村八景) 등이 있다.

대표적으로 음성팔경은 음성읍을 중심으로 한 팔승경(八勝景)으로 ① 가섭사(迦葉寺)의 저녁 종소리 ② 문수산의 아침 노을 ③ 용바위 냇가에 빨래하는 아낙네 모습 ④ 봉악골 나무꾼의 구성진 어랑타령 ⑤ 까치섬 들판의 농부의 노랫소리 ⑥ 토계울 냇가의 고기잡이와 풀피리 소리 ⑦ 수정산(水精山) 골짜기의 시원한 바람 ⑧ 오리정(梧里亭)의 비갠 뒤 하늘에 뜬 달 등을 말하고 있다.

음성읍 소여리의 무극전적국민관광지는 6·25 때 민족 수난의 역사를 격전지에 기념비로 조성해 국가안보의 산 교육장 겸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주요 관광자원으로는 음성읍 읍내리의 오층모전석탑과 음성향교·삼층석탑, 감곡면 영산리의 김주태 가옥·공산정 고가, 오궁리의 신후재영정, 소이면 비산리의 마애여래불상, 삼성면 용성리의 운곡서원, 원남면 조천리의 태교사, 생극면 방축리의 양촌 권근의 3대 묘소 등이 있다. 그리고 원남면 마송리와 주봉리의 백마산은 수석이 절묘하고 경치가 아름다워 소금강이라 불리우고 있다.

읍·면
  1. 금왕읍(金旺邑)

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읍. 면적 71.37㎢, 인구 2만 1621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무극리이다. 본래 충주군 금목면(金目面)의 능동(陵洞)·지십리(之十里)·기령(寄靈)·묵방(墨防) 등 35개 리, 법왕면(法旺面)의 본리·응대(應垈)·후평(後平)·신평(新坪)·강구(康衢) 등 24개 리(里)의 관할지역으로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맹동면의 개현(介峴) 일부와 소탄면(所呑面) 한삼(汗三), 천기면(川岐面)의 금정, 두의면(豆衣面)의 산직(山直)·신대(新垈), 경기도 음죽군 상률면(上栗面)의 팔성(八星)·석교리(石橋里)의 일부를 병합해 금목과 법왕의 이름을 따서 금왕면이 되었다. 1973년 금왕읍으로 승격되었으며, 생극면 도신리를 편입하여 정생리라고 하였다.

동쪽은 소백산맥으로 산간지대이고, 서남부는 진천분지의 상단부이며, 북부는 구릉지대를 형성하여 북쪽의 응천과 남쪽 미호천의 분수령이 되고 있다. 용계·무극·금석 등의 댐을 축조해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 이외에 각종 채소·고추·잎담배·인삼 등을 생산하고 있다. 금속광 9개소에서 금을 생산하며, 금왕읍 농공단지가 있어 여러 가지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읍 중심지에서 음성∼장호원, 대소∼무극, 무극∼용문, 무극∼진천 간 지방도와 무극∼생극 간 군도가 교차하고, 동부에 청주∼충주, 북부에 서울∼충주 간 국도가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금석리에 사지, 도청리에 도장사와 고분이 있다.

무극리(無極里)·정생리(井生里)·금석리(金石里)·육령리(六靈里)·백야리(白也里)·용계리(龍溪里)·봉곡리(蓬谷里)·유촌리(柳村里)·삼봉리(三峰里)·유포리(柳浦里)·오선리(梧仙里)·도청리(道晴里)·내송리(內松里)·각회리(覺悔里)·쌍봉리(雙峰里)·신평리(新坪里)·행제리(杏堤里)·본대리(本垈里)·내곡리(內谷里)·사창리(社倉里)·구계리(九溪里)·호산리(湖山里) 등 22개 리가 있다.

  1. 음성읍(陰城邑)

군의 중앙 동부에 위치한 읍. 면적 86.37㎢, 인구 1만 8439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읍내리이다. 본래 음성군 지역으로서 동도면(東道面)이라 해 수현(水峴)·월곡(月谷)·중산(中山)·용추(龍楸) 등 1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근서면(近西面)의 사정·감우·악주·소여 등 9개 리, 남면(南面)의 하로리(下老里) 일부, 맹동면의 중삼리(中三里) 일부와 충주군 사이면(沙伊面) 충원리(忠元里) 일부를 병합하여 음성면이 되었으며, 1956년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73년 중원군 신니면 광월리 무수마을의 일부가 음성읍에 편입되었다.

북부에 부용산(芙蓉山, 644m), 서쪽에 소속리산(小俗離山, 432m)·암솔(322m)·사향산(謝香山, 342m)·큰산(510m), 동쪽에 가섭산(加葉山, 710m)·수정산(水精山, 394m)·가막산(485m) 등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다.

부용산에서 발원한 음성천이 분지 상단에 위치한 음성읍의 중심부를 통과하여 음성평야를 관개하면서 구안천과 합류하며 동쪽으로 흐르고 있다. 서부지역은 돌고개에서 발원한 초천천(草川川)과 보현산에서 발원한 동음천이 삼생리 앞에서 합류해 주봉천(住鳳川)으로 흘러 들어간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 외에 채소·고추·사과 등의 재배가 활발하고, 잎담배 생산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총면적 6만 7,653㎡의 음성농공단지가 있어 화학·섬유·고무·플라스틱·식료품·담배 등을 생산하고 있다.

읍 중앙부에 충주∼청주 간의 충북선 철도와 국도가 남북으로 뻗어 있고, 동쪽의 괴산과 서쪽 장호원 간의 지방도가 교차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읍내리에 수정산성·오층모전석탑·삼층석탑·음성향교와 무극전적국민관광지(無極戰跡國民觀光地), 감우리에 성주사 부도와 불상, 평곡리에는 사지가 있다.

읍내리(邑內里)·평곡리(平谷里)·석인리(碩人里)·한벌리(閑筏里)·용산리(龍山里)·감우리(甘雨里)·사정리(沙丁里)·소여리(所余里)·신천리(新泉里)·초천리(草川里)·동음리(冬音里)·삼생리(三生里) 등 12개 리가 있다.

  1. 감곡면(甘谷面)

군의 최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69.43㎢, 인구 1만 99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오향리이다. 본래 충주군 지역으로서 가미실의 이름을 따서 감미곡면(甘味谷面)이라 하고 원당·선곡(仙谷)·외주(外舟)·내주(內舟) 등 14개 리를 관할하다가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충주군 거곡면(居谷面)의 신대·오근·행공 등 26개 리와 경기도 음죽군(陰竹郡) 하율면(下栗面) 총곡리(叢谷里) 일부와 동면의 노평리(老坪里)를 병합하여 감미(甘味)와 거곡(巨谷)의 이름을 따서 감곡면이 되었다.

동쪽 면계에 오갑산·원통산·행덕산(行德山, 448m)·수레이산 등 준봉이 병풍처럼 줄지어 있다. 서쪽에는 부용산에서 발원한 응천이 북류하면서 궁장들·원당들 등의 하곡평야를 이루고 있어 동고서저의 지형을 나타내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미곡을 비롯해 고추·마늘·사과·복숭아 등을 생산하며, 특히 감곡의 미백복숭아는 전국 제일의 품질을 자랑한다. 가행되는 광구는 없으며 석회석 생산 역시 중단되었다. 면의 서단은 서울∼청주 간 국도와 지방도가 교차하고 있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영산리의 김주태 가옥·공산정 고가, 오궁리의 신후재영정 등이 있다.

오행리(梧杏里)·원당리(元堂里)·주천리(舟川里)·영산리(嶺山里)·상평리(桑坪里)·월정리(月亭里)·오궁리(梧弓里)·왕장리(旺場里)·단평리(丹坪里)·상우리(上隅里)·문촌리(文村里)·사곡리(沙谷里) 등 12개 리가 있다.

  1. 대소면(大所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38.17㎢, 인구 1만 639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오류리이다. 본래 충주군 지역으로서 고려 때 대조곡처(大鳥谷處)가 있었으므로 그 이름을 따서 대조곡면이라 하여 생동(生洞)·태치(泰峙)·소당(韶堂)·석격(石格) 등 10개 리를 관할하다가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충주군 소탄면(所呑面)의 본리·성산·부윤·상대 등 6개 리, 사다산면(沙多山面)의 오산·오중·오하 등 15개 리, 삼기면(三岐面)의 법평리·용산리 일부와 진천군 만승면 검리·사산리·광동리의 각 일부를 병합해 대조곡(大鳥谷)과 소탄(所呑)의 이름을 따서 대소면이 되었다.

전지역이 침식에 약한 화강암과 편마암으로 이루어져 곳곳에 구릉성 산지가 있을 뿐 대부분이 평야이다. 구릉지대 사이로 동류하는 시내는 부윤천이 되어 남류하고, 서류하는 하천은 미호천이 되어 남류하고 있다. 1977년 미호천 농업종합개발사업으로 수리안전답이 많아 군 내의 곡창지대가 되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미곡을 비롯해 고추·담배·인삼 등을 생산하고 있고, 농공단지가 있어 화학·섬유·고무·플라스틱과 조립금속·기계장비·섬유·의복·가죽·식료품·담배 등의 여러 가지 제품을 생산한다. 북부에는 금왕∼광혜원 간의 지방도와 삼성면 덕정리∼맹동면 간의 군도가 교차하여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오류리의 박순(朴淳)의 충신문, 성본리의 토성지가 있다.

오산리(梧山里)·성본리(城本里)·부윤리(富潤里)·수태리(水台里)·태생리(泰生里)·소석리(韶石里)·삼정리(三井里)·미곡리(美谷里)·오류리(五柳里)·삼호리(三湖里)·내산리(內山里)·대풍리(大豊里) 등 12개 리가 있다.

  1. 맹동면(孟洞面)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34.68㎢, 인구 9,94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쌍정리이다. 본래 고려시대 정천군(程川郡)의 일부로 편입되었으나 조선시대에 충주부 관할에 속해 맹골의 이름을 따서 맹동면이라 하며 인곡·송동(松洞)·하묵(下墨)·마운(麻云) 등 2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06년에 음성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진천군 소답면(所畓面)의 용소리 일부를 병합하였다.

동부는 소속리산·덕솔(360m)·암솔(322m)·함표산(咸瓢山, 339m) 등이 솟아 있어 산악지대를 이루고 있고, 서부는 낮고 평평한 구릉지대를 형성하면서 진천평야와 연결되고 있다. 군자리의 덕솔 서쪽에서 발원한 세천(細川)이 통정리 알봉(180m)·알랑산(209m) 아래를 지나 원남면에서 서류하는 주봉천(住鳳川)과 합류하여 초평천으로 흘러든다.

대부분이 구릉지대이나 미곡 생산을 주로 하고 있다. 관개수리를 위해 인곡리의 대곡(大谷)·새태배기 저수지, 쌍정리의 배미·선평 저수지, 봉현리의 봉암저수지, 신돈리의 돈덕저수지 등 소규모 저수지가 많이 축조되었다. 1977년에는 미호천 농업종합개발사업으로 농업용수가 해결되었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을 비롯해 고추·인삼 등을 많이 재배하고 한우를 많이 사육한다. 또한, 화학·섬유·고무·플라스틱·조립금속·식료품·담배 등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면의 중앙부는 금왕읍 무극리에서 진천행 버스가 운행되어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쌍정리의 쌍룡사(雙龍寺)·삼층석탑, 군자리의 김종립(金宗立) 충신문, 본성리의 미륵불 등이 있다. 쌍정리(雙呈里)·인곡리(仁谷里)·마산리(麻山里)·봉현리(鳳峴里)·용촌리(龍村里)·신돈리(新敦里)·본성리(本城里)·두성리(斗城里)·군자리(君子里)·통동리(通洞里) 등 10개 리가 있다.

  1. 삼성면(三成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50.59㎢, 인구 7,98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덕정리이다. 본래 충주군 지역으로서 가래실의 이름을 따서 지내면(枝內面)이라 하여 금정(金井)·덕지(德地)·가동(加東) 등 1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충주군 천기면(川岐面)의 송선·신대·금정·율산 등 11개 리, 두의곡면(豆衣谷面)의 하리·구정·능동 등 9개 리, 대조곡면(大鳥谷面)의 태치리(泰峙里) 일부와 사다산면(沙多山面) 신목리(新目里)를 병합해 삼성면이라 했다.

서쪽 경기도와의 경계에는 마이산·죽림산(竹林山, 345m)·백운산(白雲山, 346m) 등이 솟아 있는 차령산맥이 남주하고 있다. 동부는 구릉성 평야이며 중앙부는 준평원을 이루고 있다. 천평리·선정리·덕정리·대정리·대야리·용대리 등을 잇는 구릉지는 동서의 분수령이 되어 동쪽은 한강수계, 서쪽은 금강수계의 발원지가 되고 있다.

대사리에서 남류하는 모리내가 미호천으로 흘러들고, 미호천이 면의 중앙부에서 남류해 이 지역에 넓은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1977년 미호천 농업종합개발사업으로 수리안전답이 이루어져 대소면과 함께 군 내의 곡창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미곡을 중심으로 한 주곡농업이 발달하였고 각종 채소와 참깨·들깨 등의 특용작물이 많이 생산된다. 2개의 농공단지에서 화학·섬유·고무·플라스틱 등을 생산하고 있다. 중앙에 군도가 동서로 가로질러 이천과 금왕을 연결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용성리의 백운사지(白雲寺址)·운곡서원, 능산리의 고분 등이 있다.

덕정리(德井里)·선정리(仙井里)·청룡리(淸龍里)·상곡리(上谷里)·천평리(泉坪里)·용성리(龍城里)·양덕리(良德里)·대사리(大寺里)·대정리(大井里)·능산리(陵山里)·대야리(大也里)·용대리(龍垈里) 등 12개 리가 있다.

  1. 생극면(笙極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56.04㎢, 인구 4,82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양리이다. 본래 충주군 지역으로서 생골의 이름을 따서 성동면(省洞面)이라 하여 박조(朴鳥)·품곡(品谷)·송림(松林)·야곡(冶谷) 등 1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06년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전 충주군 무극면(無極面)의 신촌·도관·곤암 등 8개 리와 금목면(金目面) 신대리, 적동면(笛洞面) 곤지리(昆池里) 일부를 병합해 생동(笙洞)과 무극(無極)의 이름을 따서 생극면이 되었다. 1945년 면사무소를 도신리에서 신양리로 이전하였고 1975년 도신리가 금왕읍으로 편입되었다.

서부는 임조산·팔성산·마날봉(161m)·우등산(禹登山, 227m)·진골뒷산(207m) 등이 솟아 있다. 동부는 수리산(606m)·수레이산(679m)·부용산 등이 높이 솟아 있으며, 중앙부는 구릉평야를 이루고 있다. 응천은 면의 중앙부를 관통하여 북류하면서 청미천에 흘러들고 청미천 유역에는 하곡평야가 발달해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미곡 외에 무·배추 등의 채소류와 복숭아·사과·참외·인삼 등의 재배가 활발하다. 소규모의 제조업체에서 식료품·화학·섬유·고무·플라스틱 등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장호원∼충주 간의 국도와 무극∼생극 간의 지방도가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방축리의 권근(權近) 3대 묘소와 문충공 사우, 팔성리의 지천서원·성지, 차평리의 이구령(李龜齡) 충신문, 병암리의 성지 등이 있다.

신양리(新陽里)·임곡리(林谷里)·방축리(防築里)·차곡리(車谷里)·차평리(車坪里)·팔성리(八聖里)·오생리(五笙里)·생리(笙里)·송곡리(松谷里)·도신리(道新里)·병암리(屛巖里)·관성리(館城里) 등 12개 리가 있다.

  1. 소이면(蘇伊面)

군의 동단에 위치한 면. 면적 48.89㎢, 인구 3,11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대장리이다. 본래 충주군 지역으로서 사이포(沙伊浦)의 이름을 따서 사이포면 또는 사이면(沙伊面)이라 하여 금정(金井)·충원(忠元)·삼고(三古)·도남(道南) 등 1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소파면(蘇坡面)의 후미일리·이리·삼리·사리 등 16개 리, 군내면(郡內面) 석인리(碩人里) 일부를 병합해 소파(蘇坡)와 사이(沙伊)의 이름을 따서 소이면이라 하여 음성군에 편입되었다. 1973년 괴산군 불정면 문등리를 편입하였다.

북부지역은 가섭산(加葉山, 710m)·어래산(御來山, 383m)이, 남부지역은 가막산(485m)·국사산(國師山, 410m)·용고개(360m) 등이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고, 중앙부는 음성천이 동류하여 넓은 하곡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평야지대는 경지정리가 이루어져 기계화 영농이 발달하여 미곡을 비롯한 잎담배·인삼·고추 등의 재배가 활발하다. 농공단지에서는 조립금속·기계장비 등의 제품을 생산한다. 북부지역에는 청주∼충주 간 국도와 충북선 철도가 있고, 음성∼괴산 간 지방도가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비산리 미타사의 마애불상군, 후미리의 석탑, 중동리의 사지와 고분, 갑산리의 석탑과 토성지, 권길(權吉) 충신문 등이 있다. 대장리(大長里)·후미리(厚美里)·중동리(中洞里)·갑산리(甲山里)·봉전리(鳳田里)·금고리(金古里)·충도리(忠道里)·비산리(碑山里)·문등리(文等里) 등 9개 리가 있다.

  1. 원남면(遠南面)

군의 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64.72㎢, 인구 3,08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보천리이다. 본래 충주읍 내에서 서쪽으로 멀리 있으므로 원서면(遠西面)이라 하여 용동·보천·조촌·팽암 등 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면의 상로·하로·상당 등 8개 리와 근서면(近西面)의 삼생동(三生洞) 일부, 맹동면의 단월동(丹月洞)과 하삼리(下三里)의 각 일부, 청안군(淸安郡) 북면의 연치리(硯峙里) 일부, 진천군 초평면의 삼치리(三峙里) 일부를 병합해 원서면과 남면의 이름을 따서 원남면이 되었다.

북부는 암솔(322m)·사향산(謝香山, 342m)·가막산(485m), 남부는 백마산(白馬山, 455m)·오대산(吾垈山, 380m)·국사산(國師山, 410m) 등이 동서로 이어져 있다. 오대산과 보덕산(普德山, 509m) 중간의 행치(杏峙)는 한강수계와 금강수계의 분수령이 되고 있다.

구안천(九安川)은 행치에서 동류하여 음성읍 평곡리에서 음성천에 합류하고, 주봉천(住鳳川)은 서류하여 보천천(甫川川)과 조촌천(助村川)을 합쳐 진천군 초평면에서 초평천으로 흘러들고 있는데, 구안천과 조촌천은 산간계곡을 흐르면서 유역에 좁은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 잎담배·사과·인삼 등의 재배가 활발하다. 중앙부에는 청주∼충주를 연결하는 충북선 철도와 국도가 남북으로 달리고 있고, 하당∼구간의 지방도와 보천∼삼룡 간의 군도가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조천리의 태교사, 덕정리의 화사(花寺), 마송리의 법화사(法華寺), 상당리의 피금정(披襟亭), 보천리의 난정(蘭亭), 상로리의 남정연(南廷年) 충신문, 하로리의 토성지, 보룡리의 석불, 삼룡리의 장충범(張忠範) 묘와 신도비 등이 있다.

보천리(甫川里)·보룡리(普龍里)·문암리(文巖里)·조촌리(助村里)·덕정리(德亭里)·삼룡리(三龍里)·하로리(下老里)·상로리(上老里)·하당리(下唐里)·상당리(上唐里)·구안리(九安里)·마송리(馬松里)·주봉리(住鳳里) 등 13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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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북도지』(충청북도지편찬위원회, 1975)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70)
음성군(www.es21.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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