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소정(小庭)·송석(松石). 대구보통학교를 거쳐 대구협성학교(중학과정) 2년을 수료한 뒤 1908년 경성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 1년을 다니다가 중퇴하였다. 다시 도쿄청산학원 중학부에 입학, 4학년 때 퇴학하였다. 1922년에 귀국하여 백아회(白雅會: 성격이 분명하지 않은 일종의 문학동호회)를 결성하였다. 그 뒤 향리에서 오상순(吳相淳)·이장희(李章熙)·백기만(白基萬)·이상화(李相和) 등과 교유하면서 시작 생활을 하다가 심장병을 얻어 32세에 요절하였다.
이근상은 1925년에 「불종(佛鐘)이 울려온다」라는 시를 쓰면서 문단 생활을 시작하였고, 사망할 때까지 시 10편, 시조 4편, 한시 11편, 평론 1편, 단편희곡 1편과 추도문 1편을 남겼다. 이 작품들의 대부분은 미발표 작품으로 후손들이 보관하고 있는 필사본(두루마리)에 담겨 있고, 그 중 3편의 시와 1편의 추도문만 『동아일보』에 발표되었다.
이근상의 작품에 나타난 경향은 다음 몇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는 「겨울비의 밤거리」·「통곡합니다」 등에서 보이는 감상성이 짙은 낭만시로, 이는 1920년대 시단의 일반적 경향이다.
둘째는 「삼위예찬(三位禮讚)」·「원단(元旦)」 등에 나타난 민족감정과 인간성 중시의 경향이다. 특히, 인간성 중시의 경향은 이근상의 평론 「문사(文士)와 유탕병(遊蕩病)」에 잘 나타나 있으며, 이는 당시 팽배하였던 문학에 있어서의 퇴폐주의를 공박한 글이다. 이러한 휴머니즘 정신은 당시 일본 문단에서의 자연주의를 뒤이은 『백화파(白樺派)』 문학의 영향으로 풀이할 수 있는데, 그와 함께 이근상은 셰익스피어(Shakespeare,W.)·아리시마(有島武郎)·괴테(Goethe,J.)를 사숙하기도 하였다.
셋째는 시조 「선죽교(善竹橋)」 등에 나타난 충효사상과 대부분의 한시에 나타난 서경풍(敍景風)의 한정(閑情)인데, 몇몇 시에서 보인 민족감정을 노래한 시에 비하면 복고적이고 퇴영적이라 할 수 있다.
이근상 문학은 내용이나 형식의 완미(完美)에 앞서 짧은 생애를 문학에 바쳤다는 것과, 불과 10년 정도의 문필 생활에서 각종 장르에 걸친 27편의 작품을 남겼다는 점에서 우리의 근대 초창기 시단에서 중요하게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