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재 ()

이민재
이민재
인물
해방 이후 『식물생리학』, 『약용식물학』, 『일반식물학』 등을 저술한 학자. 식물학자.
이칭
창암(滄巖)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17년
사망 연도
1991년
본관
전주(全州)
출생지
함경북도 회령
정의
해방 이후 『식물생리학』, 『약용식물학』, 『일반식물학』 등을 저술한 학자. 식물학자.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창암(滄巖). 함경북도 회령 출생. 이용석(李容碩)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윤선정(尹善貞)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39년 경성약학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에서 식물학을 전공하였다. 1942년 만주국 국무원 총무처 고등관시보로 임명되었고, 광복까지 만주국 대륙과학원 부연구관과 신경의과대학(新京醫科大學)에서 강의를 하면서 교육과 연구에 힘을 기울였다.

1945년 귀국하여 경성약학전문학교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1947년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교수직을 맡아 자연과학교육의 틀을 마련하면서 본격적인 생물학교육을 시작하였다. 6·25전쟁 후에는 대학교육의 재건은 물론, 한국식물학회와 한국생물과학협회 창립에 참여하여 생물학 연구의 장을 마련하였으며, 대한약학회의 발전에도 힘을 기울였다.

1961년 문교부차관 직을 맡아 교육제도 발전과 교육행정 개선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한편 UNESCO 한국위원회 위원,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문화재위원회 위원, 원자력원 원자력위원, 자연보존협회 이사,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이사, 한국식물학회 회장, 한국생물과학협회 회장 등을 맡아 국내외 학술활동을 활발히 하면서 기초학문과 관련분야 육성에 힘을 기울였다.

1976년 서울대학교 식물학과 교수에서 아주공과대학 학장으로 선임되면서 아주대학을 발전시켰고, 1978년 강원대학교 총장에 취임하여 강원대학교가 오늘과 같이 발전할 수 있는 기틀 마련에 공헌을 하였다.

1982년부터 10년간 한국자연보호중앙협의회 회장에 선임되어 종래부터 가지고 있던 자연보호와 환경보전의 철학을 국민에게 고취하고 이를 위한 행정적 발전에 힘을 기울였다. 저서로는 『식물생리학』·『약용식물학』·『일반식물학』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광복 후부터 자연과학 교육과 연구, 그리고 국내외의 학술활동 등의 공로로, 1960년 녹조근정훈장·대한약학회상을 받았으며, 1965년 대한민국학술원상, 1969년 5·16민족상, 1970년 국민훈장 동백장 및 모란장, 1971년 하은생물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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