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개풍군 여하면 하현리 출신. 6·25전쟁기인 1952년 10월 13일 제7사단 3연대 9중대장으로 크리스마스고지(강원도 양구군 수입면 내리)전투에서 중공군의 증강된 2개 중대병력의 3면 포위공격을 받고 혈전을 거듭하다가 중대원과 함께 전사하였다.
중공군 604연대는 1952년 10월 13일 크리스마스고지를 탈취한 후 여세를 몰아 크리스마스고지 남쪽 100미터 지점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이순호 대위의 9중대 진지를 재차 공격해 왔다. 크리스마스고지는 제7사단 전선 가운데서 가장 북단에 위치한 돌출진지로서 적의 주저항선인 이은산에 이르는 통로상의 요지이다.
때문에 사단 방어의 요충지인 1090고지의 전초 역할을 하였다. 적은 9중대 진지에 800여 발의 각종 포탄을 집중한 후, 21시 10분경 증강된 2개 중대 규모의 병력으로 3면을 포위하고 공격해 왔다. 이에 9중대의 이순호 대위는 1소대를 오른쪽 1선에, 3소대를 중앙에, 2소대를 왼쪽 1선에 배치하여 사주 방어태세로 전환시켰다.
진지고수를 위한 결사태세를 갖추었던 것이다. 그러나 적은 중대 정면 일부를 돌파하고 중대 배후의 감제고지를 점령하여 퇴로를 차단하고 포위망을 압축해 왔다. 이에 이순호 대위는 화기소대장에게, 이미 소대장이 후송되어 분산된 3소대를 수습하여 중대 정면의 적을 격퇴하도록 하였다.
자신은 중대본부 요원과 화기소대의 일부 병력을 직접 지휘하여 수류탄을 투척하여 적 10명을 사살하여 격퇴하였다. 그러나 이순호 대위는 그만 대퇴부에 중상을 입었다. 적은 일시 물러났다가 다시 병력을 증원하여 9중대를 집중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전투는 약 2시간 30분 동안 계속되었다. 전투 중에 9중대 병력은 거의 전멸되었다. 이순호 대위도 적의 총탄에 전사하였다. 이순호 대위는 전사하였으나 10월 14일 새벽 3시경 11중대가 적을 역습하여 격멸하고 9중대 진지를 회복하였다.
이미 1951년 8월 20일에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바 있는 이순호 대위는 전사 후 소령으로 추서되었다. 또 1952년 12월 2일에 충무무공훈장과 같은 해 12월 30일에 을지무공훈장이 수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