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활 ()

법제·행정
인물
국민회의 회장, 정부정책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이승만의 측근으로서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정치인.
이칭
몽촌(夢村)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7년
사망 연도
1986년
본관
영천(永川)
출생지
함경남도 고원
정의
국민회의 회장, 정부정책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이승만의 측근으로서 대통령 당선에 기여한 정치인.
개설

본관은 영천(永川). 호는 몽촌(夢村). 함경남도 고원 출생.

생애 및 활동사항

1931년에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 정경학부를 졸업하였다.

귀국하여 대한사라는 출판사를 경영하면서 사회활동을 하다가, 1945년 광복이 되자 한국민족대표 후원회 상임위원으로 위촉되면서 이승만(李承晩)과 인연을 맺게 되어 그 뒤 이승만의 측근으로 활약하였다.

그리하여 1946년 대한민국독립촉성국민회 사무총장으로 임명되어 신탁통치반대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하였으며, 1947년 전국중앙정부수립추진위원회의 총무위원장과 정부의 지방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되어 중앙정부의 수립과 아울러 지방자치를 가능하게 하기 위한 지방선거의 계획과 관리를 위하여 노력하였다.

1950년 국민회의 총장 및 회장으로 선출되었으며, 1953년 휴전반대투쟁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 전국적 규모의 휴전반대운동을 주도하였다. 또한 그해 시행되었던 대통령선거에서는 이승만의 선거사무장이 되어 그의 당선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으며, 그 뒤에는 국무총리급인 정부정책위원으로 임명되어 국정에도 관여하였다.

그해 10월 김병로(金炳魯)·이인(李仁) 등과 같이 유엔인권위원회 산하의 비정부기관인 국제인권옹호한국연맹을 창설하여, 죽을 때까지 회장으로 활약하면서 인권사상의 앙양과 인권침해의 구제 등을 위하여 많은 노력을 하였다.

특히 사할린교포귀환운동을 비롯하여 미국·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동포들의 법적 지위향상과 권익신장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이러한 공로로 1976년 한양대학교에서 명예법학박사학위를, 1984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각기 수여받았다.

저서로는 『자유대한』·『민족통일』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한국의 인권」(일본법무성발행, 1971)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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