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군 ()

대동여지도 중 전라북도 임실, 정읍 부분
대동여지도 중 전라북도 임실, 정읍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전북특별자치도 중남부에 위치한 군.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중남부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진안군 · 장수군 · 남원시, 서쪽은 정읍시, 남쪽은 순창군, 북쪽은 완주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7°05′∼127°27′, 북위 35°27′∼35°47′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597.34㎢이고, 인구는 3만 271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1개 면, 256개 행정리(131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임실읍 이도리에 있다.

자연환경

대부분이 노령산맥의 동사면을 이루는 산지이며, 남동방향으로 해발 250m 내외의 고원성 분지가 형성되어 남원까지 이어진다.

기반암은 중생대 백악기에 속하는 진안층군의 퇴적암류가 분포하며, 동남쪽으로 편마상화강암 · 편마암 · 대보화강암 등이 나타난다. 오수면 · 삼계면 일대의 오수천 연안은 기반암인 화강암이 심층풍화되어 형성된 분지지역으로 구릉성 지형을 이루면서 오수천을 따라 순창군과 이어지는데, 군 전체가 섬진강 상류에 속한다.

군의 북부에 오봉산(五峰山, 513m) · 경각산(鯨角山, 660m) · 옥녀봉(玉女峰, 578m) · 갈미봉(葛尾峰, 540m) · 치마산(567m) 등이 완주군, 동부에는 방미산(569m) · 성수산(聖壽山, 876m)이 진안군과, 영태산(靈台山, 666m)이 장수군과, 서부에는 묵방산(墨方山, 538m)이 정읍시와 경계를 이룬다.

남서부에는 회문산(回文山, 775m) · 원통산(遠通山, 604m)이 있다. 그밖에 백이산(白夷山, 754m) · 백제산(白弟山, 531m) · 응봉(鷹峰, 609m) · 봉화산(烽火山, 468m) 등이 있다.

임실읍은 해발고도 240m 내외의 고원성(高原性)소분지를 이루며, 삼계면 일대는 해발고도 100∼250m의 고원을 이룬다. 오수면에는 해발고도 130m 내외의 넓은 평야가 오수천 연안에 발달해 있으며, 봉화산과 응봉에 의해 임실읍과 경계를 이룬다.

진안군 백운면에서 발원한 섬진강 본류는 관촌면 방수리로 흘러들어 오원천(烏院川)을 이루며, 오원천은 군의 북부를 서남류해 운암호(雲巖湖, 또는 옥정호(玉井湖) · 갈담저수지라고도 함)에 모이고, 군의 서남부를 통과해 순창군으로 흘러든다. 군의 남동부를 흐르는 오수천은 순창군에서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연평균기온 11.0℃, 1월 평균기온 -2.5℃, 8월 평균기온 25℃이며, 연강수량은 1,400㎜ 내외의 남부내륙형 기후구에 속한다. 그러나 운암면 · 강진면 등은 해발고도가 높은 산지로 고랭지기후를 보인다.

역사

구석기 · 신석기시대의 유물 · 유적은 발견된 바 없으며, 청동기시대의 유물인 지석묘는 운암면의 쌍암리 · 사량리 등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54부족국가 중 대석색국(大石索國)이 지금의 청웅면 구고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로서 임실군이라 칭해 완산주(完山州)에 속하였다. 당시 돌평현(堗坪縣)은 백제의 군사적 요충지로서 중요시되었으며, 청웅성지(靑雄城址)를 비롯한 많은 성지가 지금도 남아 있다. 삼국통일 후 이 지방은 국방상 요충지로서의 위치를 잃어 한적한 마을이 되었다.

940년(태조 23) 전국의 지방제도를 개편할 때 남원부에 속했으며, 1172년(명종 2) 감무를 두었다. 1382년(우왕 8) 황보림(皇甫琳)이 경상도로부터 전주지방에 침입하려던 왜구를 관촌(館村)과 남관(南關)고개에서 물리쳤다. 고려시대에 확립된 역참제도에 있어서 남원도(南原道)에 속한 오수역(獒樹驛)은 전라남북도 각 지방을 연결하는 군사 및 교통상의 중심지였다.

1413년(태종 13) 임실군이 현으로 되어 현감이 파견되었으며, 임실향교가 창건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당시 임실현의 호구는 138호, 803인이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양대박(梁大樸)이 선비들을 모아서 의병을 조직해 운암면 장곡(長谷) 일대에서 왜병 1,200명을 섬멸했으며, 그 뒤 진산전투(珍山戰鬪)에 참가했다가 전사하였다. 1686년(숙종 12) 영천서원(寧川書院)이 사액되었고, 신안서원(新安書院) 등 많은 서원이 세워졌다.

1894년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이 지방은 남원을 중심으로 한 전라좌군에 속해 김개남(金開男)의 지휘 아래 적극 가담하였다. 패총95년 지방관제가 개편됨에 따라 남원부 임실군으로 승격되었으며, 1896년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이 되었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에 격분한 이석용(李錫庸)은 성수면 상이암(上耳巖)에서 각지에서 모여든 의병으로 호남의병창의동맹(湖南義兵倡義同盟)을 조직해 진안군 마이산(馬耳山)에 본부를 설치하고 일본 헌병대와 싸우며 항일구국투쟁을 전개하였다.

1906년 남원군 지사면 · 둔남면 · 오지면 · 석현면 · 아산면이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상동면 · 하동면이 성수면으로, 남면 · 둔남면이 둔남면으로, 하신덕면과 원신평 일부가 신덕면으로, 오지면 · 석현면 · 아산면이 삼계면으로, 상북면 · 하북면이 오천면으로 되었으며, 영계면이 순창군으로 편입되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곳에서는 임실 천도교구를 통해 독립선언서가 배부되었으며, 3월 10일둔남면 오수리에서의 만세운동을 시발로 군 전역에 확산되었다. 1935년오천면이 관촌면으로 개칭되었다.

1950년 6·25 때 산간지방이었기 때문에 큰 피해를 입지는 않았으나 낙동강전선에서 패배한 공산군들이 지리산에 숨어서 인근 주민을 약탈함으로써 피해가 심하였다. 6·25 당시 이 지방을 지키다 산화한 군인 · 경찰 등 1,255구의 영령이 충혼탑에 모셔져 있다.

1965년 운암면에 하운암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79년 임실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83년 남원군 덕과면 금암리가 둔남면에, 1987년에는 정읍군 산내면 종성리 일부가 강진면에 편입되었다. 1990년에 관촌면 금성리가 임실읍에 편입되고, 1992년에 둔남면이 오수면으로 개칭되었다.

1994년 12월 12일 삼계면 신정리 · 망정리가 임실읍에, 1997년 2월 6일에는 임실군 지사면 영천리 · 방계리 일부가 장수군에, 장수군 산서면 사상리 일부가 임실읍에 각각 편입되었다. 1998년 8월 1일 임실군 오수면 둔덕리 · 용두리의 일부가 남원시에, 남원시 사매면 서도리의 일부가 임실군에 각각 편입되었다.

유물 · 유적

지석묘로는 운암면의 쌍암리지석묘군을 비롯해 학암리 · 마암리 · 사량리와 신평면 용암리 등에 지석묘군이 있으며, 신덕면 조월리 석분묘와 청웅면 구고리 성터에서는 돌칼이 출토되었고, 삼계면 오지리 양지마을에서는 신석기시대의 마제석기로 추정되는 돌도끼 등 많은 선사시대의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성터로는 백제시대 변성(邊城)으로서 군량미를 저장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관촌면의 봉미산성지(鳳尾山城址), 같은 시대 돌평현의 군사적 요충지였던 청웅성지 · 원평리성지 등이 있다.

봉수대로는 남쪽으로 교룡산성(蛟龍山城)과 북쪽으로 완주군과의 경계인 관촌면 슬치리를 연결했던 임실읍 대곡리의 두치봉수대(斗峙烽燧臺)가 있다.

도요지로는 신덕면 신흥리와 관촌면 신전리의 백자요지, 관촌면 상월리 · 회봉리의 분청사기요지가 있다.

사찰로는 529년(성왕 7)에 창건된 신흥사(新興寺)를 비롯해 도통사(道通寺) · 운수사(雲水寺) 등이 있으며, 사지로는 중기사지(中基寺址) · 선압사지(仙押寺址) · 백련사지(白蓮寺址) · 수락사지(水落寺址) 등이 있다.

그 밖의 주요 불교문화재로는 신평면 용암리진구사지의 임실진구사지석등(보물, 1963년 지정) · 임실 진구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1977년 지정), 오수면 오수리석불(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대명리의 해월암(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삼계면의 학정리석불(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임실읍 성가리의 죽림암(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1984 지정), 임실이도리미륵불상(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1993년 지정), 성수면 성수리의 상이암부도(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1986년 지정) · 상이암부도(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 관촌면 상월리의 신흥사대웅전(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1413년(태종 13)에 세워진 임실읍 이도리의 임실향교대성전(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1619년(광해군 11)에 창건되고 1686년(숙종 12) 사액된 지사면 영천리의 영천서원(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방계리의 주암서원(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임실읍 신안리의 신안서원(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청웅면 구고리의 학정서원(鶴亭書院), 삼계면 삼은리의 강촌사(江村祠), 성수면 양지리의 소충사(昭忠祠) 등의 서원과 사우(祠宇)가 있다.

둔덕리의 이웅재고가(전북특별자치도 민속자료, 1977년 지정), 삼계면 후천리의 노동환가옥(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1986년 지정), 덕치면 회문리의 설보(雪洑) 등이 있다. 그리고 정자로는 삼계면 어은리에 육우당(六友堂), 산수리에 만취정(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1983년 지정), 세심리에 사가정(四嘉亭) · 세심정(洗心亭) · 광제정(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1990년 지정), 신덕면 금정리에 수운정(전북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1995년 지정), 덕치면 물우리에 월파정(月波亭), 관촌면 덕천리에 운서정(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재, 1990년 지정)이 있다.

1988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임실필봉농악(任實筆峯農樂)이 있다.

희귀종으로는 임실읍 성가리 뒷산의 백로와 옥정호의 빙어(氷魚)가 있으며, 노목으로는 임실읍 감성리의 백송(白松)이 있다. 양대박(梁大樸)이 당시 선비들을 규합, 의병을 조직해 운암에 주둔한 1만 명의 왜적을 공격해 물리친 운암대첩지와 오수면 오수리의 의견비(전북특별자치도 민속자료, 1972년 지정)가 있다.

교육 · 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1413년(태종 13)에 창건된 임실읍 이도리의 임실향교가 있다. 서원으로는 1588년(선조 21) 설립된 신안서원이 임실읍 신안리에 있고, 1607년 창건된 덕암서원(德巖書院)이 지사면 원산리에 있으며, 영천서원은 1619년(광해군 11) 지사면 영천리에 세워져서 1686년(숙종 12)에 사액되었다.

이 밖에 지사면 방계리에 1654년(효종 5) 설립된 주암서원과 1704년 설립된 현주서원(玄洲書院), 1660(현종 1)년 설립된 청웅면 구고리의 학정서원, 1820년(순조 20) 설립된지사면 관기리의 관곡서원(館谷書院), 1793년(정조 17) 설립된 오수면 둔덕리의 삼계서원(三溪書院) 등이 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897년 오수면 둔덕리의 오수삼계학교(獒樹三溪學校)가 최초로 설립되었는데, 이 학교는 1917년 오수리로 이전하면서 오수공립보통학교로 되었다. 1901년 한학자인 심진표(沈鎭杓)가 성수영진소학교(聖壽永進小學校)를 설립했는데, 1908년 사립영진소학교로 되었다가 1910년 임실공립보통학교로 개편되었으며, 1906년 김영원(金榮遠)이 삼화소학교(三和小學校), 일명 사마재(司馬齋)학교를 설립하였다.

1946년 오수면 오수리에 오수중학교, 1952년 임실읍 이도리에 임실동중학교가 개교하였고, 1954년 오수상업고등학교가 개교해 1974년 인문계인 오수고등학교로 전환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5개교, 중학교 9개교, 고등학교 3개교, 예원예술대학교가 있다.

문화행사로는 기존의 소충제와 사선문화재를 통합(1999년 8월)한 소충사선문화제가 군민의 날인 매년 10월 5일을 전후하여 열리고 있다.

민속

이 고장에는 연날리기 · 널뛰기 · 윷놀이 · 쥐불놀이 · 달맞이 · 다리밟기 · 연등놀이 · 화전놀이 · 그네뛰기 등 많은 놀이가 전해오지만,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필봉 좌도풍물굿을 들 수 있다.

강진면 필봉리의 좌도풍물굿은 전통이 깊어 100여 년 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농악에는 들당산굿을 비롯해 날당산굿 · 당산제굿 · 샘굿 · 뜰볼비(밟이)굿 · 판굿 · 문굿 · 두레굿 · 장원리굿 · 이사굿 · 매굿 등이 있는데, 그 중 정초에 집집을 돌면서 뜰볼비굿을 하고 나서 날을 잡아 넓은 마당에서 밤을 지새며 벌이는 판굿이 유명하다.

신평면 용암리 죽치[竹峙]마을의 산제(山祭)와 등제(燈祭)가 유명하다. 약 300년 전에 이 마을에 살던 전주이씨가 도승에게 명당을 얻게 된 데서 불교식으로 시작되었다는 이 동제 중에서 등제는 일제강점기에 중단되고 산제만 지속되고 있다.

산제는 음력 정월 보름 경에 길일을 택해 거행한다. 정월 초사흗날 마을사람들이 모여 제일과 더불어 생기복덕을 보아 제주와 두 명의 제관을 정하는데, 이들은 제일 3일 전부터 목욕재계를 하고 어육을 삼가며 문 앞에 소나무와 대나무를 세우고 황토를 깔아 부정이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제일 전날 제관은 물황산 범바위로 가서 새로 우물을 파고 제삿날 밤에 불을 놓게 될 화목을 마련해 둔다. 제일이 되면 제주는 밤 9시쯤 횃불을 밝히고 제수를 보조자에게 짊어지게 하고 산에 오른다. 산에 도착하면 산신에게 바칠 메를 새 우물의 물로 지어 제물들을 진설하는데 돼지고기는 쓰지 않는다.

제는 1시경에 시작하는데 삼헌(三獻)을 하고 20매씩 한다발로 공물지라 하는 소지를 올린다. 마을사람들도 집집마다 등불을 밝히고 있다가 제관이 내려올 시각이 되면 산이 잘 보이는 곳에 모여 모닥불을 피우고 농악을 울리며 기다린다. 제관은 내려오다 새벽 4시경에 용두심마을에서 제물을 진설하고 용왕제를 지내며, 다음날에는 당산제를 지내는데 제수는 없고 농악을 울리며 절만 한다.

등제는 섣달 그믐날과 정월 초하루 · 초사흘 · 대보름 · 산제날에 지냈는데, 섣달이 되면 앞산의 큰 나무들에 줄을 매고 홍 · 황 · 백 · 흑의 술을 늘어뜨린 등을 단다. 매단 등불의 수는 마을의 호수와 같은데, 휘황히 빛을 내며 바람에 휘날리는 술은 장관을 이룬다.

제는 밤 10∼12시경에 지내며 이때 지난해를 무사히 지내게 해주심에 감사드리고 새해의 무사와 풍년을 기원한다. 제수에는 어육을 쓰지 않고, 김 · 무나물 · 탕국 · 산나물 · 메 · 떡시루 등을 진설한다.

설화 · 민요

이 고장에는 지명전설과 동물전설 등이 다수 전해오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는 「흔들바위와 남매의 우애전설」과 「주인따라 죽은 충마전설」을 들 수 있다. 「흔들바위와 남매의 우애전설」은 오수면 주천리의 매봉에 있는 흔들바위에 대한 유래담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온다.

옛날 양씨 성을 가진 오누이가 단란하게 살고 있었는데, 전쟁이 일어나자 오빠가 징발되어 싸움터로 나가게 되었다. 여동생은 매일 매봉바위에 올라 오빠를 기다리다 그만 지쳐 쓰러져 죽고 말았다. 그 뒤 장수가 되어 돌아온 오빠가 동생의 죽음을 알고 슬픔에 겨워 바위를 내리치며 애통해하는 바람에 큰 바위가 두 동강이 나서 흔들거리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주인따라 죽은 충마전설」은 홍석한(洪錫漢)의 충마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조 때 부안현감에 제수된 홍석한이 관직을 사임하고 돌아오는 길에 급환으로 죽고 말았다. 그가 평소에 사랑하고 소중히 양육했던 호마(胡馬)가 이 사실을 집에 알려 아들이 9일 장례를 무사히 치를 수 있었다. 그런데 장례를 치르는 동안 말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주인을 따라 죽었으므로 홍석한의 묘 아래 말을 묻고 그 충성스런 넋을 위로하게 되었다.

이 밖에도 효성이 지극한 과부가 도승의 도움으로 잉어를 얻어 시부모의 병환을 낫게 하였다는 「잉어소와 알초산 전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서로 그리워하다 죽은 두 처녀 · 총각에 대한 이야기인 「동자바위전설」, 산신령의 도움으로 포수 모양의 바위를 약담봉에 세워 호랑이를 쫓았다는 「포수바위전설」, 명당자리에 얽힌 「잉어명당전설」, 그리고 용이 승천하면서 꼬리로 바위를 치는 바람에 그만 평평하던 바위가 2m쯤 움푹 패었다고 하는 「두복용소전설(斗福龍沼傳說)」 등이 있다.

이 고장은 그 어느 곳보다도 노동과 노래가 한데 어울려 생생한 삶의 현장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 고장의 민요는 평야지역과 산간지역 곡조의 중간을 취하면서 섬세한 굴곡과 묘한 맛을 함축하고 있고 전승상태도 다른 지역보다 우수하다.

이 고장의 대표적인 민요로는 「문열가」 · 「연계타령」 · 「어휘싸오」 · 「경기산타령」등이 있다. 「문열가」는 일명 「이슬털이」라고도 하는데 아침에 처음 논에 들어가 일을 시작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가사내용은 다음과 같다.

“오늘도 하심심하여/노래한장 불러보세/건곤이 불노월 장자하니/적막강산이 근백년이라/칠산골산 높은봉에/홀로우는 가련추야…….”이 노래는 선후창의 구분이 미약하고 아무나 먼저 가사의 첫 대목만 내놓으면 이를 아는 사람은 다 제창할 수 있다. 모를 심을 때나 김을 맬 때나 일을 처음 시작한다는, 즉 일의 문을 연다는 뜻으로 ‘문열가’라고 한다.

「연계타령」은 모심을 때 부르는 노래로서 「문열가」를 부르다가 어느 정도 흥이 나면 이 노래로 넘어간다. 「문열가」보다는 좀더 빠르고 힘차며, 가사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산넘어에 소첩두고/밤길걷기 난감하다/오란데는 밤에가고/동네술집 낮에가자/일락서산에 해 떨어지고/월출동명에 달 솟아온다…… (중략)……에헤야노 아하헤헤/연계로구나.”

「어휘싸오」는 만두레(논을 마지막 매는 것) 때 부르는 노래로서 풍년에 대한 기원과 해학이 함께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임실 원님은 해우쌈 싸고 어휘싸오/남원 원님은 천엽쌈 싸고 어휘싸오……(중략)……우리 농부는 풍년쌈 싸세 어휘싸오…….”

「경기산타령」은 논일을 마치고 함께 그 해 농사를 제일 잘 지은 상머슴을 손가마에 태워가지고 마을로 들어가면서 부르는 노래인데 농사를 짓느라 애쓴 상머슴의 노고를 위로하는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사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금방오라 헤헤헤/한 몰람에 쏙소리 나무가 섯으되 바람이 부나 아니를 부나…… (중략)…… 5. 날 오라네 날 가라네/산골처자가 날 오라네/무엇할려고 날 오라나/혼자 먹기가 심심하여/둘이 먹자고 날만 오라네.”

이 밖에도 시집살이의 험난함과 고달픔을 내용으로 하는 「시집살이요」, 해학적 요소가 담겨 있는 「장타령」, 베를 짜면서 부르는 「베틀가」, 김맬 때 부르는 「기음타령」, 임에 대한 연정을 나타낸 「버선노래」 · 「한탄요」, 수를 놓으면서 부르는 「줌치노래」, 한글 자음을 해학적으로 풀어 놓은 「국문풀이」 등이 있다.

산업 · 교통

노령산맥의 동사면에 위치해 산지가 많은 지역으로서, 임야가 많고 경지면적은 2008년 현재 8,556㏊로 경지율이 14.3% 정도에 지나지 않으며, 가구당 경지면적은 1.48㏊로 전북특별자치도에서 완주군(1.34㏊)과 무주군(1.37㏊) 다음으로 적다.

경지면적 중 논이 6,053㏊로 70.7%, 밭이 2,503㏊로 29.3%를 차지하여 논농사중심의 주곡농업이 이루어진다. 평야는 오수천 연안인 오수면 일대에 가장 넓게 발달해 있으며, 삼계면과 임실읍에도 약간 발달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 · 보리 등의 주곡작물과 고추 · 무 · 배추 · 잎담배 · 인삼 등이다. 특히, 고추는 전국적으로 유명하며, 오수면 · 삼계면 · 청송면 · 삼계면 등의 산간지역에서는 무 · 배추의 고랭지농업이 행해진다.

최근에는 시설원예농업도 활발해 임실읍에서는 화훼가, 성수면에서는 딸기가 온실에서 많이 재배된다. 그 밖에 대마가 청웅면 · 강진면 · 운암면 등지에서 많이 재배되며, 인삼 · 참깨 · 들깨 · 땅콩 등이 생산된다.

임실읍은 우리나라 최초로 1968년에 치즈공장이 설립된 곳으로 일찍부터 축산업이 발달하였다. 젖소 사육은 1978년에 관촌 부근의 신평면 대리에 대규모 우유가공공장이 세워지면서부터 널리 보급되어, 관촌면 · 임실읍 · 성수면의 많은 농가에서 사육하고 있다.

그 밖에 돼지 · 산양 등도 많이 사육된다.

덕치면 · 강진면 등지에서는 양봉이 많이 행해지며, 밤 · 호두 · 은행 · 표고버섯 · 약초 등의 임산물도 많이 생산된다. 특히, 약초와 밤은 전북도의 주요 산지이며, 이 중 도 생산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약초는 강진면 · 덕치면이 주요 산지이다.

약용작물로 지황 · 독활 · 작약 등이 생산된다.

광공업의 발달은 미약한 편이다. 광업은 석회석 · 고령토 등의 비금속광물이 약간 채굴되었으나 현재는 전무한 상태이다. 공업은 신평면 대리와 오수면 오수리에 농공단지가 조성되어 있고, 전통공업으로 한지제조업이 발전하였으며 ‘신평지’로 유명하다. 덕치면 일중리에는 한지부업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시장분포 현황을 보면 군내에 6개소의 정기시장이 개설되어 있는데, 임실장은 임실읍 이도리에서 1·6일에, 오수장은 오수면 오수리에서 5·10일에, 강진장은 강진면 갈담리에서 2·7일에, 관촌장은 관촌면 관촌리에서 5·10일에, 신평장은 신평면 원천리에서 3·8일에, 운암장은 운암면 쌍암리에서 4·9일에 각각 개설된다.

오수장은 교통이 편리해 군의 남부지역에서 중심지 기능을 수행해 오수면 · 지사면 · 삼계면과 장수군 산서면, 남원시 일부에 상권을 형성하고 있으며, 시가지도 임실읍에 못지 않게 발달해 있다. 이들 시장에서는 주로 일용필수품과 쌀 · 고추 · 채소류 등이 거래되며, 오수장 · 강진장에서는 감, 신평장 · 운암장에서는 산나물 등의 거래가 활발하다.

특산물로는 운암면 금기리의 붕어, 청웅면 옥전리의 남양수시(감), 성수면의 송이버섯 등이 유명하다.

교통은 전라선 철도가 군의 동부를 통과하며, 관촌역 · 임실역 · 오수역 등이 있다. 철도와 나란히 전주∼남원간의 4차선 고속화도로가 통과하면서 여러 노선의 국도 · 지방도와 교차하면서 군의 교통축을 형성한다. 이 도로는 전라남도 순천 · 여수로 이어지며, 또한 남원에서 광주대구고속도로와 연결되어 남부지방과의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또한, 2011년에 개통한 순천완주고속도로가 임실을 지나며, 호남내륙을 연결하고 있다.

전주∼남원간의 국도는 동서방향의 여러 도로들과 교차하는데, 군의 중앙에는 장수∼신태인을 잇는 국도가 임실읍에서, 군의 북부에는 진안군 마령면∼완주군 구이면을 잇는 지방도가 관촌면에서, 군의 남부에는 장수∼순창을 잇는 지방도가 오수면에서 각각 교차한다.

군의 서부에는 전주∼순창을 잇는 국도가 통과하는데, 1989년운암대교의 준공으로 완주군 구이면을 거쳐 전주와 연결되어 운암면 · 강진면 · 덕치면 등 서부 산간지대의 교통이 매우 편리해졌다.

관광

이 군은 섬진강 상류의 아름다운 산수라는 지리적 조건으로 좋은 관광입지를 형성하고 있다. 그 수려한 경치를 일러 예로부터 구고팔경 · 방수팔경 · 운호팔경으로 노래해 왔으나 아직 개발이 미흡한 상태이다.

인공호수인 옥정호(玉亭湖, 일명 雲岩湖)를 중심으로 하는 일주도로는 그 경치가 매우 수려하다. 옥정호는 강진면 용수리에서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 일대 섬진강다목적댐으로 형성된 담수지역으로 정읍시 · 김제시 · 부안군일대 광활한 농토에 관개용수를 공급한다. 면적 약 16km에 달하는 호수 같은 저수지로 담수어족이 풍부해 경향각지에서 낚시꾼들이 모여들어 관광낚시도 많이 한다.

관촌면의 섬진강 상류 오원천변 절벽에 있는 사선대는 전망이 좋은 운서정이라는 누각이 있고, 그 방수리쪽에는 좋은 물이 있어 전주와 인근 주민들의 유원지가 되고 있다.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이용되고 유원지에는 축구장 · 테니스장 등 체육시설과 주차장 · 식당 등이 잘 갖추어져 있어 찾는 이가 많다. 해마다 이곳에서 사선제(四仙祭)가 열리고 있다. 이곳은 남원∼전주간의 국도변에 자리하고 있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성수면의 성수산은 산세가 중첩해 있고 기암괴석과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경치가 빼어나 찾는 이가 많으며, 백운동계곡 · 어름굴도 유명하다. 오수면 대정리의 대말방죽 주변에는 노송과 관란정이 있어 풍경이 수려해 소풍객이 많이 찾는다.

청웅면 일대의 경승지인 구고팔경(九皐八景)은 군내의 사대부들이 면내 경승지 팔경을 노래해 왔던 곳으로, 두만명월(斗滿明月) · 백이청풍(伯夷淸風) · 용추수성(龍秋水聲) · 이윤귀운(伊尹歸雲) · 발산모연(鉢山暮煙) · 효례어화(孝禮漁火) · 응봉고송(鷹峰孤松) · 백련낙조(白蓮落照)로 알려져 있고, 방수팔경(芳水八景)은 관촌면 오원천변의 경치를 노래한 것이다.

운호팔경(雲湖八景)은 신덕면 수천리를 중심으로 한 경승지를 말하는데, 상암모연(商巖暮烟) · 용동조운(龍洞朝雲) · 호치숙무(虎峙宿霧) · 사당춘초(麝春草) · 지강추월(芝岡秋月) · 죽림청풍(竹林淸風) · 등령낙조(燈嶺落照) · 도봉관수(棹峰觀水)라고 읊고 있다.

읍 · 면
  1. 임실읍(任實邑)

군의 중앙에 위치한 읍. 면적 67.73㎢, 인구 7,405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이도리이다. 본래 임실군 지역으로 임실읍내가 되므로 현내면 또는 일도면이라 하여 내두 · 외두 · 굴치 · 갈마 등 18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대곡면의 3개 리, 이인면의 9개 리, 신안면의 7개 리, 상북면의 일부를 병합해 임실면이 되었다. 1979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남부에 웅봉, 서부에 백이산 등이 있어 전체적으로는 산간분지이며 주변이 500m 정도의 산지이고 섬진강의 지류인 임실천이 동서로 지나고 천을 중심으로 고도 200∼250m 정도의 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평지는 주로 편마암상화강암이며, 산지는 서부가 마이산역암계통이고, 동부는 소백산변성암복합체에 속하는 결정편암으로 되어 있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 · 보리 · 담배가 많이 산출되고 축산업이 발달하였다. 1966년임실치즈공장이 설립되면서 낙농업도 괄목할 만한 발전을 했으며, 오원천 주변에 대규모 우유가공공장이 있어 젖소사육이 활발하다.

교통은 전라선철도와 전주∼남원간 국도, 임실∼진안간의 지방도, 전주∼성수간 국도, 전주 · 임실 · 순창간의 국도 등이 통과해 편리하나, 읍이 전주∼남원간 국도변에서 분지내측으로 들어가 있어 다소 불편하다.

문화유적은 대곡리에 두치봉수대, 성가리에 죽림암, 이도리에 임실향교, 신안리에 신안서원 등이 있다. 이 밖에 성가리의 백로서식지와 감성리의 백송 등이 있다. 이도(二道) · 성가(城街) · 오정(五亭) · 두곡(杜谷) · 갈마(渴馬) · 감성(甘城) · 대곡(大谷) · 정월(程月) · 이인(里仁) · 두만(斗滿) · 장재(藏財) · 신안(新安) · 현곡(玄谷) · 금성(金城) · 신정(新亭) · 망전(望田) 등 16개 리가 있다.

  1. 강진면(江津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50.56㎢, 인구 1,79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갈담리이다. 본래 임실군 지역으로 섬진강이 둘러 있으므로 강진면이라 하여 상강 · 신촌 · 대강 등 28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구고면의 이윤동을 병합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쪽에 필봉산(筆峯山, 632m), 북쪽에 백련산이 솟아 있고, 이를 중심으로 산악이 솟아 400∼450m의 산악지형이 발달해 있다. 남부에는 청웅면쪽에서 흘러온 갈담천이 운암강하류와 회전리에서 합류해 덕치면을 흘러 섬진강의 상류를 이룬다. 담배 등 밭농사 위주의 영세농업이 이루어지고 축산업도 활발하며, 밤 · 대추 · 감 등 산지의 산물이 많다. 1965년섬진강다목적댐이 축조되어 옥정호가 확대되면서 생활환경이 변해 가고 있다.

교통은 전주 · 임실 · 갈담 · 순창간의 국도와 전주 · 운암 · 갈담 · 순창 구간과 옥정호 일주도로(전주 · 갈담 · 칠보 · 정읍)의 개통으로 원활해졌다. 옥정호는 낚시터로 전국에 유명하다.

갈담(葛潭) · 백련(白蓮) · 부흥(富興) · 회진(會津) · 용수(龍水) · 옥정(玉亭) · 문방(文方) · 학석(鶴石) · 방현(訪賢) · 필봉(筆峯) 등 10개 리가 있다.

  1. 관촌면(館村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53.53㎢, 인구 3,83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관촌리이다. 본래 임실군 지역으로 임실읍내 북쪽이 되므로 상북면이라 하여 슬치 · 관촌 · 유산 등 1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북면의 상회 · 하회 · 대학 등 17개 리와 진안군 일서면 평지리 일부를 병합해 이곳 오원천의 이름을 따서 오천면(烏川面)이라 하였다가 1953년관촌면으로 개칭되었다.

면의 동남쪽에 고덕산(580m) · 성미산 · 방미산 · 박이뫼산 등 여러 산이 솟아 있어 전체면적의 80%가 임야로 되어 있다. 마이산에서 발원한 오원천은 사선대를 비롯한 많은 절경을 이루고, 만덕산에서 발원한 신전천을 막아 대규모 저수지를 만들어 관개용수로 사용한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 · 보리 · 고추 · 담배 등을 생산하고 낙농업도 성행하고 있다. 방수리의 쏘가리는 특산물이다.

전라선철도가 통과하고 전주∼남원간의 국도, 관촌∼진안, 관촌∼신덕면간의 도로가 교차해 교통이 편리하다. 사선대는 유원지로서,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이 개장되고 여름에는 축구 · 배구 · 테니스 등의 운동시설이 완비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덕천리에 영벽정 · 운서정, 상월리에 신흥사 · 분청사기요지, 신전리에 백자요지, 회봉리에 분청사기요지가 있다. 관촌(館村) · 용산(龍山) · 도봉(道峰) · 병암(屛巖) · 덕천(德川) · 슬치(瑟峙) · 방현(芳峴) · 신전(新田) · 상월(上月) · 회봉(回鳳) · 방수(芳水) · 복흥(福興) · 운수(雲水) 등 13개 리가 있다.

  1. 덕치면(德峙面)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2.09㎢, 인구 1,30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회문리이다. 본래 임실군 지역으로 덕치의 이름을 따서 덕치면이라 하였다.

이 면은 군내에서 가장 험준한 산악지대로 동부에 원통산, 서부에 회문산, 남부에 두류봉 등이 솟아 농경지는 매우 협소하다. 운암천이 면의 중앙을 흘러 섬진강 상류가 되고 거기에 회문평야가 좁게 발달해 있다. 일중천 · 사곡천을 이용해 보를 수축하고 관개를 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과 담배이며, 축산업 등이 성하다. 교통은 전주 · 순창 · 담양간의 국도가 통과하며 이 도로에 교통을 의존하고 있다. 문화유적은 물우리에 월파정, 회문리에 설보 등이 있다. 회문(回文) · 두지(斗芝) · 사곡(沙谷) · 가곡(佳谷) · 천담(川潭) · 장암(長巖) · 일중(日中) · 물우(勿憂) 등 8개 리가 있다.

  1. 삼계면(三溪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54.06㎢. 인구 1,68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삼계리이다. 본래 남원군 지역으로 돌고개[石峴]의 이름을 따서 석현면이라 하여 죽계 · 신평 등 10개 리를 관할하였다.

1895년임실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남원군 아산면의 오류 · 광제 등 9개 리와 오지면의 12개 리, 말천면의 9개 리, 남원군 성남면의 일부를 병합해 뇌천 · 후천 · 유천의 세 하천을 따서 삼계면이 되었다.

면의 서부는 감음산 · 원통산이 주봉을 이루고, 그밖에 산악들이 첩첩으로 있어 80%가 임야로 되어 있다. 노산(蘆山)에서 발원한 계천과 덕계천, 어은리에서 발원한 비천이 오수로 흘러 면의 동남 경계를 이루는 섬진강 상류를 형성한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 · 보리 · 담배 · 고추 등이 재배된다. 오수천의 은어, 어은리의 콩잎은 숙종 때 진상품이었다. 순창∼장수간의 지방도가 통과한다.

문화유적은 학정리에 석불, 산수리에 만취정, 후천리에 노동환가옥, 삼은리에 강촌사, 세심리에 광제정이 있다. 삼계(三溪) · 후천(後川) · 봉현(蓬峴) · 세심(洗心) · 학정(鶴亭) · 죽계(竹溪) · 홍곡(鴻谷) · 산수(山水) · 오지(梧枝) · 덕계(德溪) · 두월(斗月) · 뇌천(磊川) · 삼은(三隱) · 어은(漁隱) 등 14개 리가 있다.

  1. 성수면(聖壽面)

군의 동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60.36㎢, 인구 1,85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양지리이다. 본래 임실군 지역으로 임실읍내 동쪽이 되므로 상동면이라 하여 도인 · 비슬 · 양지 등 2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하동면의 10개 리, 상북면 비슬리 일부와 남면 봉산리 일부를 병합해 성수산의 이름을 따 성수면이 되었다.

동부에 성수산, 남부에 영대산, 북부에 고덕산이 있어, 서남쪽을 제외한 삼면이 모두 산지로 둘러싸인 산간지방이다. 영천과 평당천이 합류해 둔남천이 되어 중앙을 관류한다. 경지면적이 좁아 산지산업으로 양봉업이 발달하고 성수산에서는 송이버섯의 채취가 활발하다.

도로는 관촌 · 마령 · 진안간의 지방도와 면소재지에서 갈리는 지방도들이 있으나 교통은 불편한 셈이다.

문화유적은 양지리에 소충사가 있고, 성수리의 성수산에는 조선 태조가 썼다는 삼청동 어필각(御筆閣)과 상이암이 있다. 둔남천에서의 천렵과 풍혈동 관광은 여름에는 찾는 이가 많다. 양지(陽地) · 도인(道引) · 삼봉(三峰) · 태평(太平) · 성수(聖壽) · 왕방(枉訪) · 오봉(五峰) · 삼청(三淸) · 월평(月坪) · 봉강(鳳崗) · 오류(五柳) 등 11개 리가 있다.

  1. 신덕면(新德面)

군의 서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65.84㎢. 인구 1,49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수천리이다. 본래 임실군 지역으로 하신덕면이라 하여 수촌 · 율치 · 사기소 등 2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신평면의 지장 · 도곡 · 토고의 3개 리를 통합해 신덕면이 되었다.

노령산맥의 중산성 구릉분지로서 북부에 경각산 · 옥녀봉 · 갈미봉, 서북쪽에 치마산(567m) 등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전면적의 90%가 산악지대로 되어 있다. 경각산에서 발원한 각포천(角浦川)이 신덕리 · 신흥리의 산악부를 굽이쳐 흐르고 있으나 관개수리는 불량하다.

농업이 주산업이나 주곡작물 재배는 미미하고 담배 · 고추 · 인삼 등 밭농사와 산사면을 이용한 축산업이 행해지고 있다. 옛날에는 효간치(420m)와 불재(320m)를 넘어 전주와 연결되었으나 도로의 개통으로 그런 불편은 해소되었다.

문화유적은 금정리에 수운정, 신흥리에 백자요지가 있다. 수천(水川) · 삼길(三吉) · 신흥(新興) · 신덕(新德) · 조월(照月) · 월성(月城) · 지장(智長) · 금정(金亭) · 오궁(五弓) 등 9개 리가 있다.

  1. 신평면(新平面)

군의 중부에 위치한 면. 면적 33.70㎢, 인구 1,76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원천리이다. 본래 임실군 지역으로 새들(큰들)이 있어 신평면이라 하여 창인 · 대리 등 10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토고 · 도곡 · 지장리를 신덕면에 이관시키고, 상신덕면의 7개 리와 상북면의 일부를 병합해 신평면이 되었다.

섬진강변에 높이 200∼250m의 평탄면이 있고, 주변에 300∼400m의 고원이 있는데 이 고원이 진안고원의 남서부가 된다. 관촌쪽에서 흘러온 오원천이 면의 중앙을 관류해 평야를 이룬다. 물이 풍부해 관개가 편리하기 때문에 삼한시대 이후 취락이 형성되어 왔다. 주곡농업 외에 초지를 이용한 낙농업이 발달되었으며, 대리에 대규모 우유가공공장이 설립되어 있다.

관촌으로 나가는 도로와 전주∼남원간의 국도와 진안간의 도로에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용암리에 중기사지(中基寺址)와 석등 · 석불연화좌대가 있다. 원천(元泉) · 창인(昌仁) · 대(大) · 호암(虎巖) · 가덕(加德) · 덕암(德巖) · 용암(龍巖) 등 7개 리가 있다.

  1. 오수면(獒樹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40.53㎢, 인구 4,36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오수리이다. 본래 남원군 지역으로 둔덕면(屯德面)이라 하여 용정 · 신기 등 11개 리를 관할하였다.

1895년임실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남면의 남악 · 국평 등 14개 리와 하동면 대관리 일부, 오지면 어은리 일부, 남원군 덕고면 오수리와 대명리 일부를 병합해 둔남면이 되었다가 1992년오수면으로 개칭되었다.

면내에서 가장 지대가 낮은 지역인데, 면 소재지 부근의 평야지대는 해발 130m 정도의 저지대로 동서쪽은 높고 남북으로 장방형으로 길게 발달하고 있다. 장수 팔공산으로부터 떨어져나온 북부 산봉들이 달리고 섬진강 상류의 오수천(獒樹川)과 율천(栗川)이 흐르고 있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과 담배재배가 행해진다. 교통은 전라선 철도와 전주∼남원간의 국도, 순창∼장수간의 지방도가 교차해 교통은 편리하다. 오수는 조선시대 찰방역으로 중요한 호남로의 역참이었다.

문화유적은 오수리에 의견비와 석불, 둔덕리에 이웅재고가, 대명리에 해월암이 있다. 오수(獒樹) · 용정(龍井) · 신기(新基) · 둔덕(屯德) · 용두(龍頭) · 둔기(屯基) · 대정(大井) · 대명(大明) · 오산(梧山) · 주천(酒泉) · 오암(鰲巖) · 봉천(鳳泉) · 군평(君坪) · 금암(金巖) 등 14개 리가 있다.

  1. 운암면(雲巖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76.25㎢, 인구 1,82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쌍암리이다. 본래 임실군 지역으로 상운면이라 하여 광석 · 학산 등 13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하운면의 28개 리와 상신면의 고치리 · 대죽치리를 병합해 운암면이 되었다.

노령산맥의 고산준령이 뻗어 있으며, 그 중 백련산 줄기는 날개를 이루어 입석리의 배후 국사봉과 오봉산에 연결되고 있는 산악지형이다. 진안군 마이산에서 발원한 섬진강 최상류와 신덕면에서 발원한 지류들이 합류해 하천변에 소평야를 이루고 옥정호(운암호)로 흘러든다.

면내에는 산간계곡에 1925년 제1차 섬진강댐 준공으로 경지의 약 25%가 수몰되어 주민들은 호반의 산지를 개간해 올라가 생활하게 되었다.

주요 농산물은 담배 · 고추 · 참깨 · 감 · 밤 등이며, 1965년옥정리댐의 완공으로 수몰지역이 더욱 확대되어 경지면적의 70%, 가옥 800여 호가 수몰되었다. 이들 수몰민의 이주대책의 하나로 부안군 계화도 간척공사가 시행되어, 토지와 가옥이 분배되었으나 대부분은 간척지에서의 정착을 포기하고 고향의 산등성이를 일구는 방법으로 정착하였다.

담수어종이 풍부해 전국적인 낚시터로 명성을 얻어 주민 중에는 관광서비스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다. 옥정호반을 따라 정읍시 칠보면에서 강진면을 돌아 운암면을 일주하는 호반일주도로가 개통되고 운암교가 건설되어 정읍과 전주 · 순창으로의 교통이 편리해졌다.

문화유적은 쌍암리 · 사량리 등지에서 삼한시대의 지석묘와 석관묘 등이 발견되었다. 쌍암(雙巖) · 학암(鶴巖) · 선거(仙居) · 월면(月面) · 지천(芝川) · 사량(思良) · 입석(立石) · 용운(龍雲) · 운암(雲巖) · 청운(靑雲) · 마암(馬巖) · 운종(雲鍾) · 금기(金基) · 운정(雲井) 등 14개 리가 있다.

  1. 지사면(只沙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17.79㎢, 인구 1,42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방계리이다. 본래 거령현 지역으로 조선시대에 거령현이 폐지되고 지사방(只沙坊)이 되어 관기 · 대산 등 16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덕고면의 상리 일부와 장수군 외진전면 당동리 · 신덕리 일부를 병합해 다시 지사면이 되었다.

서북으로 덕재산과 옥녀봉 등이 있고 낮은 야산지대가 펼쳐진다. 오수천유역에 평야가 발달해 경지가 비교적 많고 비옥해서 주곡작물의 생산과 담배 재배도 활발하다. 면의 남부에 오수와 장수를 연결하는 도로가 있다.

문화유적은 영천리에 영천서원, 방계리에 주암서원 등이 있다. 방계(芳溪) · 관기(館基) · 원산(圓山) · 안하(雁下) · 금평(琴坪) · 영천(寧川) · 계산(溪山) 등 7개 리가 있다.

  1. 청웅면(靑雄面)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34.78㎢, 인구 1,51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구고리이다. 본래 구고현 지역으로 1394년(태조 3)에 임실군의 구고면이 되어 두복 · 양지 등 9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옥전면의 10개 리와 강진면의 서창리 일부를 병합해 청웅면이 되었다.

노령산지의 낮은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동쪽에 두만산, 서쪽에 백련산, 남쪽에 지초봉, 북쪽에 백이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두만산에서 발원한 청계천 · 옥전천, 지초봉에서 발원한 옥석천, 백이산에서 발원한 향교천이 백련산에서 발원한 구고천과 합류해 섬진강의 상류를 이룬다. 하천은 많으나 수량이 부족해 수리에 부족을 느끼고 있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쌀 · 보리 · 산나물 · 감이 생산되며, 옥전리 명동마을의 수시감은 진상을 했던 토산물로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문화유적은 구고리에 학정서원과 청웅성지가 있다. 구고(九皐) · 두복(斗福) · 향교(鄕校) · 옥전(玉田) · 석두(石頭) · 청계(淸溪) · 남산(南山) · 옥석(玉石) 등 8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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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지』(전라북도사편찬위원회, 1969)
임실군(www.imsi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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