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군 ()

대동여지도 중 전라남도 장성, 담양, 순창 부분
대동여지도 중 전라남도 장성, 담양, 순창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전라남도 북부에 위치한 군.
정의
전라남도 북부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담양군, 서쪽은 영광군, 남쪽은 광주광역시, 북쪽은 전라북도 정읍시와 고창군에 접하고 있다. 동경 126°35’∼126°55’, 북위 35°11’∼35°29’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518.30㎢이고, 인구는 4만 6360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0개 면, 292개 행정리(120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영천리에 있다.

자연환경

노령산맥이 뻗어 있어 북쪽은 입암산(笠巖山, 626m)·상왕봉(象王峰, 741m), 북서쪽은 방장산(方丈山, 734m)·문수산(文殊山, 621m), 서쪽에 고산(高山, 527m)·태청산(太靑山, 593m) 등이 전라북도 고창군·정읍시, 그리고 영광군과도 걸쳐 있고, 북동쪽에는 백암산(白巖山, 722m)이 있다.

노령(盧嶺, 276m)·솔재(松峴, 290m)·정재(汀峴, 216m) 등의 고개를 통해 전라북도와 영광군에 연결된다. 동쪽은 병풍산(屛風山, 822m)·장군봉(將軍峰, 557m)·불태산(佛台山, 822m) 등이 담양군과 경계를 이루며, 말단부에 200∼300m의 구릉이 진원면과 남면으로 뻗어 있다. 따라서 북동쪽은 중첩한 산악지대를 이루어 평야는 비교적 적은 편이다. 임야지대가 총면적의 62.8%를 차지한다.

북하면과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의 경계에 있는 백암산은 백학봉(白鶴蜂)을 비롯해 상왕봉·사자봉(獅子峰) 등이 연봉을 이루고 있다. 정상에 오르면 광주의 무등산(無等山)이 멀리 희미하게 보이고, 장성호(長城湖)가 눈 아래에 있다.

병풍산에서 발원한 대악천(大岳川)·용흥천(龍興川)이 영산강의 가장 긴 지류인 황룡강(黃龍江)의 본류를 이루고 장성읍 부근에서 월계천(月桂川)과 합류해 광주로 흐른다. 이 외에도 모현천·서삼천·장성천·평림천·북일천 등이 있다.

연평균기온 13.8℃, 1월 평균기온 0.1℃, 8월 평균기온 26.3℃, 연강수량은 1,129㎜이다.

역사

이곳에서 석기시대의 유물·유적이 발견된 바는 없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 유물·유적으로는 장성읍·북이면·서삼면 일대에서 발견된 고인돌군과 장성읍 영천리, 남면 행정리, 삼서면 유평리에서 발견된 석실분 및 이곳에서 출토된 반월형석도편·금제귀고리·토기편 등이 있다.

마한 54국 가운데 구사오단국(舊斯烏旦國)이 지금의 진원 지방에, 고랍국(古臘國)이 장성 지방에 비정되기도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백제의 영역에 들어간 뒤로는 백제의 5방 가운데 남방(南方)의 치소인 구지하성(久知下城)이 이곳에 있었다는 견해도 있다. 구지하성 외에 고시이현(古尸伊縣)·소비혜현(所非兮縣)·구사진혜현(丘斯珍兮縣) 등이 지금의 이 군 지역 내에 설치되어 있었다.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고시이현은 갑성군(岬城郡)으로 개칭되었고, 소비혜현은 삼계현(森溪縣)으로, 구사진혜현은 진원현(珍原縣)으로 개칭되어 갑성군의 영현이 되었다. 갑성군은 이성(伊城) 또는 오산현(鰲山縣)으로 불리기도 했었다.

고려의 건국 후 갑성군은 장성군으로 개칭되었는데 그 시기는 936년(태조 19)이나 992년(성종 11)일 것으로 짐작된다. 1018년(현종 9)에 장성군과 삼계현은 영광군의 속현이 되었고, 진원현은 나주목의 속현이 되었다. 1172년(명종 2)장성군과 진원현에 감무가 파견되었다.

1256년(고종 43) 차라대(車羅大)의 몽고군이 전라도를 공격하기 시작했는데 송군비(宋君斐)와 함께 이곳 주민들은 입암산성(笠巖山城)에 근거해 몽고병을 격퇴시켰다. 이는 전라남도 지역에서의 몽고병에 대한 항쟁으로서 주목된다. 고종 때 이곳 사람인 서릉(徐稜)은 효성이 지극해 한겨울에 청개구리를 구해 어머니의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1413년(태종 13)장성현과 진원현에 현감이 파견되었고, 진관체제하에서는 나주진관(羅州鎭管)에 속하게 되었다. 삼계현은 계속 영광군의 속현으로 되었다. 1600년(선조 33) 임진왜란의 피해로 장성현과 진원현이 극도로 피폐하자, 두 현을 병합해 치소를 지금의 장성읍 성산리로 옮겼다. 1655년(효종 6) 군비확장책으로서 입암산성을 수축하고 장성현을 도호부로 승격시켜 입암산성수진관(笠巖山城守鎭官)을 겸하게 하였다.

중종 때 기묘사화를 피해 낙향한 김인후(金麟厚)에 의해 이 지방에 성리학이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를 기리어 1590년(선조 23)필암서원(筆巖書院)이 설립되었고, 1662년(현종 3) 사액되었다. 또 송흠(宋欽)은 1540년(중종 35) 낙향해 삼계면에 관수정(觀水亭)을 짓고 문학활동을 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김경수(金景壽)는 금산전투의 소식을 듣고 그 해 7월 남문(南門)에서 창의해 의병을 모았다. 12월에 직산에서 왜군을 대파했으며, 이듬해 진주성전투에 참가해 순국하였다.

이곳 출신의 변이중(邊以中)은 화차(火車)를 개량해 행주산성전투에서 대승을 거두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조선말 외세의 침입기에 기정진(奇正鎭)은 위정척사운동을 전개해 많은 항일운동가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1894년 동학운동 때 황룡면 월평에서 동학군과 관군간의 대규모 전투가 벌어져 관군이 대패하였다. 1895년 관제개혁에 의해 전주부 장성군으로 되었고, 1896년전라남도 장성군으로 고쳐졌다.

1907년 초반 항일의병활동이 이 지역에서 주도되었다. 특히 기삼연(奇參衍)은 1907년 이곳 수련산에서 기병해 호남창의회맹소라 하고 수련산전투·법성포전투·추월산전투 등에서 큰 전과를 올렸다. 장성공원에 그의 애국정신을 기리는 비가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영광군 삼북면(森北面)·내동면(內東面)·현내면(縣內面)을 합해 삼계면으로, 삼남면(森南面)·외서면(外西面)을 합해 삼서면으로, 외동면(外東面)과 함평군 대화면(大化面)을 합해 동화면으로 하여 장성군에 편입하고, 갑향면(甲鄕面)은 담양군에 이관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 삼서면에서는 송주일(宋柱一)이, 장성면에서는 정선유(鄭善瑜) 등이 주도해 시위를 일으켰으며, 3월 25일을 기해 각 면에서 봉화를 신호 삼아 봉기하였다. 북이면 모현리에서는 4월 3일 촛대봉에서 시위를 일으켰다. 당시 이 군에서 시위에 참여한 인원은 약 1,500명에 달하였다. 1930년북삼면을 장성면에 합치고, 1931년 군청 소재지를 지금의 장성읍 영천리로 이전하였다. 1943년 10월 10일 장성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6·25전쟁 때에는 반공청년들이 태극결사대·광복형제단 등을 결성해 투쟁하였으며, 그로 말미암아 많은 피해를 당하였다. 1975년 10월 1일 장성댐의 공사로 수몰되는 북상면을 폐지하고, 1983년 2월 15일에 남면 삼태리 일부가 광주광역시에 편입되었다.

유물·유적

장성읍 수산리·장안리·안평리·용강리, 서삼면 용흥리, 북이면 원덕리, 북하면 덕재리, 삼계면 생촌리 등에 지석묘군이, 진원면 진원리에 선돌, 장성읍 영천리에 고분 등이 있다.

성지로는 북하면 신성리에 입암산성(사적, 1993년 지정)과 이척산성·구진성지, 진원면 진원리에 진원성(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삼성산성·삼계성지 등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북이면에 장성원덕리미륵석불(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 북하면 약수리에 백양사·백양사극락보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백양사대웅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백양사사천왕문(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백양사소요대사탑(보물, 2002년 지정)·청류암관음전(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90년 지정) 등이 있다.

이 외에 삼계면에 장성내계리오층석탑(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6년 지정), 장성읍에 성산리석탑·장안리봉암석불·수산리오층석탑(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진원면에 진원리오층석탑(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과 칠층석탑·다층석탑, 황룡면 와우리석탑, 북일면 박산리에 미륵불과 석불좌상 등이 있다. 사지로는 신흥사지·하청사지·불대산지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1394년(태조 3)에 창건된 장성읍 성산리의 장성향교(長城鄕校,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와 통인청(通引廳)을 비롯해, 장안리에 봉암서원(전라남도 기념물, 1981년 지정), 황룡면 필암리에 필암서원(사적, 1975년 지정) 등이 있다.

서원으로는 진원면 진원리에 장성고산서원(전라남도 기념물, 1982년 지정), 북이면 오월리에 송계서원(松溪書院)이 있다. 사우로는 북이면 만무리에 서림사(書林祠), 모현리에 오산사(鰲山祠), 황룡면 신호리에 수산사(水山祠), 삼서면 보생리에 만곡사(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북일면 성덕리에 용전사(龍田祠) 등이 있다.

정려비로는 백암리에 조영규정려(전라남도 기념물, 1985년 지정), 외에 북일면 박산리에 서능 정려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8년 지정)가 있다. 이 외에 황룡면 금호리에 장성 박수량 백비(전라남도 기념물, 2001년 지정), 서삼면 모암리에 칠현유적지(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삼서면 우치리에 금성나씨 삼강문(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이 있다.

고가로는 삼서면 우치리에 변종락고가(邊宗洛古家)·변동량고가(邊東樑古家)가 있다. 정자로는 장성읍 장안리에 기옹정(碁翁亭)·영사정(永思亭), 진원면 산동리에 청계정(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삼계면 사창리에 기영정(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내계리에 관수정(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등이 있다.

문헌으로는 진원면 만무리에 죽림사 고문서 일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8년 지정), 황룡면 필암리에 필암서원 문적 일괄(보물, 1975년 지정)이 있다. 또한 장성읍 안평리에 기옹 영정(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77년 지정), 삼서면 홍정리의 가산사에는 가산사 소장 익재 영정(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8년 지정)이 보관되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북하면 약수리에 백양사 비자나무 숲(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이 있다.

기타로는 삼서면에는 장성 대도리 백자 요지(사적, 1992년 지정)가 있다. 황룡면 황룡리에 요월정 원림(전라남도 기념물, 1985년 지정), 북이면 사가리에 장성 남문 창의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와 기삼연순국비(奇參衍殉國碑) 등이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는 1394년(태조 3)북일면에 오산향교(鰲山鄕校)가 창건되었다. 1600년(선조 33)진원향교(珍原鄕校)와 통합되어 장성읍 장안리 장자동에 이건되면서 장성향교로 되었고, 1658년(효종 9)장성읍 성산리로 옮겨졌다.

조선 중기 이후에 건립된 서원으로는 황룡면의 필암리필암서원을 비롯해 봉암서원·송계서원·고산서원(高山書院)·모암서원(慕巖書院)·학림서원(鶴林書院)·덕천서원(德川書院)·동산서원(東山書院) 등이 있었다. 그러나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덕천서원·모암서원·동산서원은 없어졌다. 이 밖에도 용전사·죽림사를 비롯해 20여 개의 사우가 건립되어 향학을 담당하였다.

근대교육기관으로는 1906년장성읍 성산리에 사립 장명학교(長明學校)가 최초로 설립되어 1907년 사립 장성학교로 개칭되었고, 1911년공립장성보통학교로 인가, 개교하였다. 이 밖에 1918년장성읍 성산리에 숭실학교(崇實學校)가 개교해 3·1운동 후 삼일학교로 개칭되어 6년간 운영되었다.

3·1운동 후 북이면 모현리에 오북의숙사립학교가 개교하였으나 일제의 박해로 4년 만에 폐교되었고, 황룡면 월평리에 설립된 사립 월평보통학교 역시 폐교되었다. 그러나 1920년대 이후 보통학교의 수는 급격히 증가하였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3개교, 중학교 8개교, 고등학교 4개교가 있다.

공공도서관 2개소가 있으며, 문화원이 설립되어 향토문화발전과 지역사회 미래상 정립에 진력하고 있다. 군민행사로는 매년 백양제(白羊祭)와 백암산국기제가 열리고 있다.

민속

이 고장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장원놀이·장태놀이·용굿놀이 등을 들 수 있다. 조선시대부터 뛰어난 학자들을 많이 배출한 곳으로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장원놀이가 성행되었다.

서당에서 글공부하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풍월짓기 내기를 한다. 장원으로 뽑힌 사람에게는 푸짐한 상품과 음식을 대접한 뒤 친구들이 손가마를 만들어 태워 주면서 즐겁게 논다. 그 답례로 장원한 사람도 자축연을 베풀어 술자리를 마련한다.

장태놀이는 동학군이 황룡전투에서 유래된 것으로 사람들이 두 패로 나뉘어 대나무로 만든 장태에 몸을 의지해 방어하고 이를 굴리면서 적진을 향해 전진하는 놀이이다.

용굿놀이는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신앙적 요소가 짙은 놀이이다. 음력 4월 중순이 지나도록 비가 내리지 않으면 사람들은 나무와 짚단을 가지고 산에 올라 봉화를 피우며 하늘에 고사를 지낸다. 그래도 비가 오지 않으면 산의 정상에 참대가지와 진흙으로 용의 머리를 만든 다음 무당과 농악대를 동원해 용의 주위를 돌면서 춤을 추며 축원을 올린다.

이 고장에서는 당산제 또는 촌제라고 불리는 동제를 지낸다. 마을마다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 제의 대상이 되는 신은 모두 다섯인데 주신인 천룡신을 비롯해 내당신·상당신·외당신·연신 등이 있다.

제관은 정월 초사흗날 마을총회에서 선출하는데 부정을 타지 않고 생기복덕에 맞는 남자라야 한다. 이 제관의 구성에서부터 동제의 행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온 마을은 동제의 열기에 빠져들고 각종 민속놀이가 이 기간 중에 거행되는 곳도 있다.

제일은 정월대보름이며, 제를 지내기 전 마을의 공동우물과 마을 입구에서 잡귀를 쫓기 위해 농악을 한 뒤 자정이 지나서 제를 올리게 된다. 이러한 동제를 통해 마을사람들은 지난해의 일들을 반성하고 효자·효부 등을 골라 표창함으로써 마을의 질서를 바로잡고 일체감을 다시금 확인한다.

설화·민요

이 고장에 전해오는 대표적인 설화로는 「누에전설」·「백양사전설」·「가래바위전설」 등이 있다. 「누에전설」은 다음과 같다. 옛날 마한시대에 무남독녀인 공주를 둔 왕이 있었는데 이웃나라와의 싸움에서 전세가 불리하게 되자 누구든지 적장의 목을 베어 오는 사람에게 공주를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이 말을 들은 군사들은 사기가 높아져 싸움에서 승리를 하지만 정작 적장의 목을 베어 온 것은 사람이 아닌 말이었다. 공주는 약속대로 말을 남편으로 섬기겠다고 했으나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긴 왕은 말을 죽이고 가죽을 벗겨 버렸다. 이에 공주는 매일 말가죽을 어루만지며 슬퍼하였는데, 하루는 그 말가죽이 공주를 감싸서 어디론가 날아갔다.

이듬해 어느 시골의 나뭇가지에서 말가죽이 발견되었고, 그 속에는 하얀 벌레가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벌레의 입은 말의 입을 닮았고 몸은 공주의 하얀 살결을 닮은 것이었다. 왕은 그 벌레를 잘 키우라고 명을 내려 전국에 퍼지게 되었다. 그 벌레가 바로 누에인데 누에가 고치를 짓는 것은 공주의 뛰어난 자수솜씨를 본받았기 때문이라 한다.

「백양사전설」은 다음과 같다. 백양사는 원래 백암사 혹은 정토사라고 불리던 절이었다. 조선 숙종 때 환양선사가 이 절에서 설법을 하는 중에 백양 한 마리가 내려와 열심히 설법을 듣는 것이었다. 설법이 끝나자 양은 눈물을 흘리며, 선사에게 절을 하고는 자신은 원래 신이었는데 하늘에 죄를 지어 양이 되었다고 말하고는 다시 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그 뒤 이 절이 백양사로 명칭이 바뀌었다 한다.

「가래바위전설」 또한 조선 초기에 살았다는 가래라는 기생에 얽힌 유래담을 갖고 있다. 그녀는 아름답고 총명했으나 출생이 미천해 기생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매일 갈재를 넘나드는 많은 선비들을 현혹시켰다. 그러던 어느 날 이곳을 지나던 선비 하나가 가래를 보고 요사스러운 계집은 없어져야 한다면서 그녀를 칼로 내려쳤다.

그 뒤 처용암이라 부르던 마을 옆의 바위가 가래바위로 바뀌어 불리게 되었다. 또한 언제인가 한 풍수가 이 바위 때문에 이 지방에는 미인이 많이 나지만 풍기가 문란하다면서 바위의 눈을 파버리는 바람에 지금도 이곳에서는 미인이 많이 나지만 애꾸가 많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 밖에도 도령과 백여우가 사랑을 하였다는 사연이 얽힌 「붓바위전설」, 꿈에 샘을 가르쳐 주어 찾게 되었다는 「서산보전설」, 거미모양의 장수 이야기인 「신거무전설」, 「견훤의 출생전설」, 절개의 표상인 「꽃무덤전설」 등이 전해 오고 있다.

이 고장에는 농업노동요로서 「들노래」·「밭노래」 등과 기타 「집짓는 노래」가 있으며, 「권마성소리」는 민속놀이의 흥을 북돋아 주고 상호간의 일체감을 증진시키는 구실을 한다.

대표적인 민요인 「들노래」는 상황과 노동형태에 따라 서로 다른 노래들로 구성되어 있다. 「들들노래」는 들에서 일을 시작할 때 부르는 노래이고, 「두엄내기노래」는 지게에 두엄을 얹고 등짐하며 부르는 노래이다.

「똘(고랑)치기노래」는 삽·괭이·가래로 고랑을 치며 부르는 노래이고, 「들내기노래」는 하루일을 마치고 끝냄을 알리는 노래이며, 「아롱저롱노래」는 들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 상머슴을 황소나 사다리에 태우고 부르는 노래이다.

또한 이 「들노래」는 「모찌기노래」·「모심는 노래」·「만드레 노래」·「김매기 노래」로 구성되었다. 「들들노래」는 “동이트면 소몰고 시금밭 수렁논에/아헤 아헤 히하 얼시구나/……이논농사 나라봉사 저논농사 선대공영/아아하 아하에 에해 해야절로.”처럼 부른다.

「두엄내기노래」는 “……바늘같은 허리에다 태산같은 짐을지고/어허허 어허허 어허허 애해야아/……앞산뒷산 불질러라 두렁엎어 콩을찍세/어허허 어허허 어허허 애해야아/이내신세 어이하여 지게목발 못면하나.”처럼 사회의 재화를 생산함에도 불구하고 고통스런 신세를 면치 못하는 민중들의 형상을 노래하고 있다.

「아롱저롱노래」는 “태고라 천황씨는 덕목으로 왕을했고/아롱 저롱 애농 대농/염제 신농씨는 농사짓기를 가르쳤고/아롱 저롱 애농 대농/땅좋고 물좋은데 신작로 나고…….”처럼 1년 농사를 마치고 보람차게 부르는 노래이다.

이 밖에 시집살이의 고통을 서사적으로 노래한 「시집살이노래」와 임상봉을 고대하는 「방아타령」 등이 있다. 「효자동이노래」는 아이가 건강하고 도덕적으로도 훌륭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내용의 아이 어르는 노래로서, “금자동아 옥자동아/칠가칠금 보배동아/……새암같이 깊었거라/하늘같이 높았거라/땅과 같이 두텁거라……부모게는 효자동아/형제간에 우애동아/동구간에 화목동아/나라에는 충성동아.”처럼 부른다.

산업·교통

농업용수와 산업용수로 이용되는 장성댐과 달성저수지(達城貯水池)·함동저수지(咸東貯水池), 그리고 황룡강을 비롯해 크고 작은 하천이 많이 있어 관개에 용이하다. 농업이 주업이며,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고구마·콩 등이고 딸기와 채소류·화훼류 등 원예작물의 재배도 한다. 2007년 현재 농가인구는 1만 6297명이며 농지면적은 1만 1639㏊이다. 산지의 사면을 이용한 양잠업도 발달해 생산이 도내 제1위로서 이 중 90% 이상을 수출하였다.

북이면 달성리에 있는 달성저수지는 달성제(達城堤)라 부르기도 하는데 노령산맥 중의 방장산 남사면 계곡물을 모아 만들었다. 1957년에 축조되었으며, 면적 17.86㏊, 저수용량 64만 7000t, 몽리면적 170.6㏊이고 몽리지역은 월계천 유역의 평야부이다.

삼서면과 삼계면의 경계에 있는 함동저수지는 고성산(古城山, 546m)에서 발원해 남류하는 삼계천(森溪川)의 물을 모아 만들었다. 1959년에 축조되었으며, 면적 171.2㏊, 저수용량 759만 8,000t, 몽리면적 1,416.5㏊이고 몽리지역은 삼서면과 광주광역시 광산구 지역을 흐르는 평림천(平林川)유역의 평야부이다.

예로부터 닥나무 생산이 많으며, 물이 좋아 장성읍·북하면·황룡면 등에서 가내공업으로 한지의 생산이 활발하다. 특산물로는 곶감이 유명하다.

광산으로는 장성읍 영천리의 구산광산(龜山鑛山), 덕진리의 덕진광산(德津鑛山), 유탕리의 유탕광산(流湯鑛山) 등에서 석회석을 채굴한다. 대규모의 공장으로는 이곳에서 생산된 석회석을 기반으로 한 시멘트공장과 제사·한천·알코올공장이 있다.

정기시장이 정립되어 가던 조선 중기 이 지역에는 읍시(邑市)·황룡시(黃龍市)·용산시(龍山市)가 있었다. 그 뒤 시장의 수가 증가해 고종 때에는 월평시(月坪市:옛 황룡시)·수산시(壽山市)·약수시(藥水市)·신흥시(新興市)·사가시(四街市)·사창시(社倉市) 등 6개의 5일장이 성행하였다.

1920년대에는 정기시장이 수산시·사창시·월평시 등 3개로 줄었다가 광복 이후 시장의 수가 증가해 신흥시·사가시가 부활되었다. 그러나 6·25동란 이후 신흥시는 폐쇄되었다. 장성읍 수산리에서 개장되던 수산장은 읍 소재지가 영천리로 옮겨짐에 따라 점차 쇠퇴하다가 6·25동란 이후 영천리에 장시(場市)가 열리게 되었다.

5일장으로는 황룡장·사창장·약수장·신흥장·사거리장 등이 있었으나 신흥장·약수장 등은 폐쇄되어 3개 시장만이 열리고 있다. 황룡면 황룡장이 4·9일, 삼계면 사창장이 2·7일, 북이면 사거리장이 1·6일에 각각 열리고 있다. 6·25사변 이후 1960년대 말에 이르기까지 군내의 정기시장은 비교적 활기를 잃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호남고속도로의 개통과 더불어 광주와 정읍을 잇는 교통이 원활해지고 농협연쇄점과 슈퍼마켓 및 상설점포가 증가하면서 재래의 시장은 그 규모나 중요성이 감소해 가고 있다.

광주광역시와 인접해 있고, 전라북도 정읍시와도 가까워서 값이 비싼 물품이나 많은 상품을 구입하고자 할 때는 광주나 정읍으로 나간다. 현재 약수장은 사가장(또는 사거리장)과 가까운 담양군 담양장에 소비자와 상인을 빼앗겨 소멸해가고 있다.

사가장과 사창장은 장이 없는 면들을 포용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황룡장은 장성읍과 인접해 장성읍의 정기시장 기능을 함과 동시에 장이 없는 북일면·서삼면의 전체 지역과 남면·진원면의 일부 지역을 대상으로 상거래 활동을 펴고 있다.

교통은 호남선이 북쪽으로는 노령산맥의 호남터널을 통과해 정읍시에 연결된다. 남쪽으로는 송정을 지나 광주와 목포에 연결된다. 호남고속도로와 광주∼정읍간의 국도는 철도와 마찬가지로 남북으로 통과한다. 2007년 12월고창∼담양간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서쪽으로는 서해안고속도로, 동쪽으로는 광주대구고속도로와 연결된다. 지방도는 장성읍을 중심으로 담양·함평·영광과 전라북도 고창군·순창군 등에 연결되어서 편리하다.

관광

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산국립공원을 중심으로 백암산·백양사·장성호 등의 관광지 및 관광자원을 보유한 전라남도의 대표적인 관광지이다.

호남고속도로에서 장성호를 지나 약수천을 따라 올라가면 백암산을 배경으로 백양사가 있고, 내장산 가인봉으로 이어지는 백학봉에 이르면 기암괴석이 단풍과 함께 절경을 이룬다. 백양사 동쪽으로 약수천을 따라가면 남룡폭포가 있고 백양사역을 지나면 남창계곡과 입암산성이 있다.

내장산국립공원의 백암산지구에는 집단 시설지구에는 숙박시설을 비롯해 각종 관광편의시설이 매우 잘 갖추어져 있다.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1971년 이후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가을철에 많이 찾는다. 황용강의 상류를 막아서 1976년에 완공한 장성댐은 주변의 풍광이 아름다워 군내에서 이름난 관광지의 하나가 되고 있다.

이 외에도 숲이 울창한 월성계곡, 방장산자연휴양림, 홍길동우드랜드, 서삼모암 삼림욕장 등이 있다.

축제로는 홍길동축제, 백양단풍축제, 백암산국기제, 생촌당산제 등이 있다.

읍·면
  1. 장성읍(長城邑)

군의 중동부에 위치한 읍. 면적 69.52㎢, 인구 1만 3499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영천리이다. 본래 장성군 지역으로 장성읍내 서쪽이 되므로 읍서면이라 하여 내기·외기·수산 등 21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읍동면(邑東面)과 읍서면(邑西面)이 통합되어 장성면으로 개칭되었고, 1930년북삼면과 북하면이 장성면에 편입되었다. 1943년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읍 소재지를 수산리에서 영천리로 이전하였다.

동부에 불다산, 남부에 불대산, 북부에 성미산 등이 있다. 황룡강이 읍의 중앙부를 북동에서 남서쪽으로 흐르며, 기산리에서 월계천과 합류하고 이들 두 하천 유역에 경지가 발달하였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면화·참깨 등이고 원예작물로는 딸기를 재배하고 있다. 영천리에는 생사를 생산하는 제사공장이 있으며, 영천리의 구산광산, 덕진리의 덕진광산, 유탕리의 유탕광산 등에서 석회석을 채굴하고 있다. 상오리는 예로부터 창호지와 장판지의 제지로 유명하며 알코올과 한천제조공장도 있다.

교통은 호남고속도로가 읍을 남북으로 통과하며, 담양·함평 및 광주광역시 등과 연결되는 지방도가 개설되어 있다. 철도 호남선이 통과한다.

문화유적은 장안리의 봉암서원과 기옹정·영사정·봉암석불, 성산리·수산리의 석탑을 비롯해 성산리의 장성향교와 통인청, 장안리의 기옹정, 안평리의 기옹영정이 있다. 영천리에는 국가에 길흉이 있으면 물빛이 변한다는 영천(방울샘)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2개 교, 고등학교 3개 교가 있다.

영천(鈴泉)·수산(壽山)·성산(聖山)·유탕(流湯)·단광(丹光)·기산(岐山)·장안(長安)·안평(安平)·부흥(扶興)·백계(白鷄)·용강(龍岡)·상오(上蜈)·야은(野隱)·덕진(德津) 등 14개 리가 있다.

  1. 남면(南面)

군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28.32㎢, 인구 3,56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분향리이다. 본래 장성군 지역으로 장성읍의 남쪽이 되므로 남일면(南一面)이라 하여 죽분·분향·궁산 등 1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이면(南二面)과 내동면 일부, 광주군 삼소지면 일부 지역을 병합해 남면이라 하였다. 1983년남태리 일부가 광주광역시에 편입되었다.

면의 서북쪽 경계는 200∼300m의 연속된 구릉이 자연적 경계를 이루고 남동쪽은 경지가 발달해 그 면적이 군내 제1위이다. 영산강의 지류인 극락강(極樂江)의 최상류 지역으로 진원면과 함께 영산강 유역의 대표적인 저평지에 해당되며, 특히 월정리 부근의 평야는 대표적인 저위 침식 평탄면이다.

1976년에 완공된 장성댐의 농업용수 개발로 수리안전답이 85%에 이른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고구마·감자이며, 무·배추 등도 재배하고 국도변에는 배·감 등의 과수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교통은 호남고속도로와 광주∼정읍간의 국도가 면의 동부를 통과하며, 그 외의 군도가 여러 갈래로 뻗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마령리에 양계사, 녹진리에는 조선 선조 때의 효자 공필장(孔弼章)의 행적을 기록한 효행비가 있다. 분향리에 영양 천씨와 곡부 공씨, 평산리에 광산 김씨, 삼태리에 광산 이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분향(芬香)·녹진(鹿津)·덕성(德星)·마령(馬嶺)·평산(平山)·행정(杏亭)·월정(月汀)·삼태(三台)·월곡(月谷) 등 9개 리가 있다.

  1. 동화면(東化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28.85㎢, 인구 2,02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구림리이다. 본래 삼계현 지역으로 고려시대에 영광군에 편입되고 조선시대에 외동면이라 하여 구산·장동·구룡 등 2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삼남면 일부, 함평군 대화면의 31개 리와 오산면(烏山面) 일부, 장성군 남삼면(南三面) 일부를 합해 외동면과 대화면의 이름을 따서 동화면이 되었다.

지형적으로 남북으로 길게 뻗은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면내에는 수련산(水蓮山,541m)·매양산(160m)·옥두봉(玉斗峰,140m) 등이 있다. 면의 서쪽은 200m 내외의 구릉의 연속으로 자연적인 면계를 이루며, 황룡강의 지류가 흐르는 중동부에 경지가 발달하였다.

주요 농산물은 쌀과 보리이며, 수출용 딸기의 주산지로서 400여 가구에서 재배하고 있다. 이 밖에도 복숭아·포도·사과·배 등의 과수재배를 많이 한다.

교통은 도로의 장성∼함평을 잇는 국도가 면을 통과한다. 동호리에 광산 김씨, 용정리에 함평 이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구림(九林)·용정(龍亭)·동호(東湖)·서양(西陽)·남평(南平)·남산(南山)·월산(月山)·구룡(九龍)·송계(松溪) 등 9개 리가 있다.

4.북이면(北二面)

군의 서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56.45㎢, 인구 3,07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사거리이다. 본래 장성군 지역으로 장성읍의 북쪽에 위치하므로 북이면이라 하여 직도·목란·원독 등 4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북일면 창암리 일부를 병합하였다. 1975년장성댐 건설로 북상면이 수몰, 폐지되면서 북상면의 오월·조양·수성 등 3개 리를 편입하였다.

면의 북쪽에는 방장산을 비롯해 노령산맥의 봉우리가 솟아 있어 산지가 많으며, 북쪽에서 남쪽으로 계곡이 형성되어 있다. 이 계곡을 따라 월계천이 지형을 크게 동서로 양분하며 흐르는데 그 유역에 농경지가 조성되어 있다. 방장산에는 674㏊에 이르는 대규모 자연휴양림이 있다.

산업은 농업 위주로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이다. 1978년왜성 사과 단지가 조성되었고 양송이의 생산이 많으며, 잠업이 활발해 뽕밭 면적은 삼서면에 이어 군내 제2위이다.

교통은 전라북도 정읍으로 이어지는 호남선과 호남고속도로가 지나는 교통의 요지로서 전라남도의 관문이다. 정읍∼광주간의 국도와 북이∼북하간의 지방도가 있다.

문화유적은 오월리에 송계서원, 만무리에 서림사·죽림서원, 모현리에 오산사·오산창의사, 원덕리에 미륵석불, 사거리에 남문창의비, 백암리에 조영규정려가 있다. 만무리에 곡부 공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사가(四街)·원덕(院德)·신평(莘坪)·달성(達城)·백암(白巖)·죽청(竹靑)·만무(晩舞)·신월(新月)·모현(茅峴)·수성(水城)·오월(鰲月)·조양(朝陽) 등 12개 리가 있다.

  1. 북일면(北一面)

군의 서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30.57㎢, 인구 1,561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흥리이다. 본래 장성군 지역으로 장성군 북쪽이 되므로 북일면이라 하여 광암·매남·제암 등 43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7개 리로 개편되었고, 1930년성산리 공평마을이 서삼면에 이관되었다.

전체적으로 분지의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월계천을 따라 면의 동부에 경지가 발달되어 있다. 산업은 농업 위주로 주요 농산물은 쌀과 보리이며, 양질의 밤이 생산된다. 특히 월계리 율리마을은 밤의 생산량이 많아서 ‘밤골’이라고 불린다.

교통은 면의 중앙을 동서로 통과하는 장성∼고창간 지방도와 북일·서삼·장성으로 통하는 군도가 있다.

문화유적은 성덕리에 용전사, 박산리에 호환(虎患)을 막기 위해 신라 말에 세웠다고 하는 미륵불과 고려시대 문하시중으로 효자인 서릉의 정려비각이 있다. 신흥리에 정선 전씨, 월계리에 밀양 박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신흥(新興)·박산(泊山)·오산(鰲山)·월계(月桂)·성산(星山)·성덕(聖德)·문암(文巖) 등 7개 리가 있다.

  1. 북하면(北下面)

군의 동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84.01㎢, 인구 2,42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약수리이다. 본래 장성군 지역으로 장성읍의 북쪽이 되므로 북하면이라고 하여 만전·신촌·한후 등 3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갑향면(甲鄕面) 일부, 북상면 일부, 담양군 광면(廣面) 일부를 병합하였다. 1975년 장성댐 건설로 북상면이 수몰, 폐지되면서 그 일부 지역을 편입하였다.

면내에는 병풍산·백암산·이암산 등 산지가 많아 임야 면적이 군내 1위이다. 따라서 군내에서 면적이 가장 넓지만 논의 면적은 가장 작다. 용두천·용흥천의 지류가 약수리에서 합류해 장성호로 흘러든다.

산업은 농업 위주로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이며, 특산물로 곶감·고로쇠약수·감장아찌·솔잎차가 유명하다. 이 밖에 더덕·고사리·버섯 등 산나물이 많이 나고 한지가 생산된다. 교통은 도로가 약수리∼중평리, 북이∼북하간의 지방도가 있다.

문화유적은 약수리에 백양사와 대웅전·극락보전·사천왕문·소요대사부도 등이 있으며, 백양사의 비자나무 분포 북한계 지대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 밖에 신성리에 입암산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약수(藥水)·월성(月城)·대악(大岳)·용두(龍頭)·중평(中坪)·성암(星巖)·대흥(大興)·쌍웅(雙熊)·덕재(德在)·신성(新城)·단전(丹田) 등 11개 리가 있다.

  1. 삼계면(森溪面)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66.02㎢, 인구 7,134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사창리이다. 본래 삼계현의 지역으로 조선시대에는 현내면이 되어 정각·백산 등 1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성군에 편입되면서 영광군 내동면 13개 리와 삼북면 30개 리, 외동면 일부, 삼남면 일부, 함평군 대화면 일부, 전라북도 무장군 원송면의 일부를 병합해, 옛 삼계현의 이름을 따서 삼계면이 되었다.

면내에 감투봉(404m)·한새봉(380m)·높은봉(305m)·서리봉(400m)·깃대봉(276m)·돌꼿봉(258m) 등이 있다. 평림천과 삼계천이 흐르는 유역에 평야가 발달되었다.

산업은 농업 위주로 주요 농산물은 쌀과 보리이며, 잎담배의 생산량이 많아서 군내 제1위이고, 딸기·인삼·사과 등도 생산하고 있다. 부성리에서는 젖소를 많이 사육한다.

교통은 장성∼함평을 연결하는 국도와 고창군 성송면과 대산면을 각각 연결하는 지방도가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상무대가 이전해 오면서 신도시 형태로 개발되고 있다.

문화유적은 내계리에 오층석탑과 관수정이 있으며, 사창리에 기영정, 부성리와 사창리에는 옛 성터가 있다. 능성리에 장흥 고씨, 내계리에 광산 김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사창(社倉)·월연(月淵)·주산(舟山)·상도(上道)·능성(綾城)·발산(鉢山)·수옥(水玉)·덕산(德山)·수산(秀山)·죽림(竹林)·생촌(生村)·부성(富城)·화산(花山)·신기(新基)·내계(內溪) 등 15개 리가 있다.

  1. 삼서면(森西面)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7.44㎢, 인구 3,26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대곡리이다. 본래 영광군 지역으로 옛 삼계현의 남쪽이 되므로 삼나면이라 하여 봉동·비금·죽산 등 4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외서면의 구적·월암 등 44개 리와 삼북면의 일부, 현내면의 일부, 함평군 장본면과 월악면의 일부지역을 합해 삼남면과 외서면의 이름을 따서 삼서면이라 하였다.

북부에 태청산, 서부에 구와산·월암산이 있으며, 여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농업용수를 제공한다. 그리고 동남쪽에 넓은 평야가 전개되어 함평평야와 연결되고 북쪽에는 구릉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과 보리이며, 이외에도 잎담배와 양잠도 하고 있다. 1979년왜성 사과 단지가 조성되었다. 교통은 도로의 함평∼담양간의 국도가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통과하며, 삼서를 중심으로 동서로 군도가 연결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대도리에 백자요지, 삼계리에 계산사(桂山祠), 홍정리에 가산사, 보생리에 만곡사, 두월리에 두동사(斗洞祠), 수양리에 수산사(首山祠) 등 많은 사우가 있다. 석마리에는 길쌈놀이가 전승된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대곡(大谷)·삼계(三桂)·유평(柳平)·학성(鶴星)·대도(大都)·소룡(小龍)·수해(水海)·우치(牛峙)·금산(禽山)·석마(石馬)·보생(寶生)·홍정(紅亭)·두월(斗月)·수양(首陽) 등 14개 리가 있다.

  1. 서삼면(西三面)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34.08㎢, 인구 1,68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장산리이다. 본래 장성군 지역으로 장성읍의 서쪽이 되므로 서삼면이라 하여 봉연·여고 등 30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북일면 성산리 공평(恭坪)마을을 송현리로 편입하였다.

면의 서북쪽은 대부분이 산지로 문수산·매남산(梅南山·458m)이 있다. 황룡강의 지류인 월계천이 장성읍과 경계를 이루며 남류하는 동남부 지역에 평야가 있다.

산업은 농업 위주로 주요 농산물은 쌀과 보리이며, 서북쪽 산지에서는 고로쇠약수를 비롯하여 고사리·더덕·도라지·다래·버섯 등 산나물과 곶감·감잎차·솔잎차 등이 많이 난다. 군도가 면의 동부를 남북으로 통과한다.

문화유적은 모암리에 있었던 모암서원의 옛 자리에 서릉을 비롯한 7현(七賢)의 단비(壇碑) 7좌가 남아 있다. 금계리와 장산리에 울산 김씨, 송현리에 보성 선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장산(莊山)·송현(松峴)·모암(慕巖)·대덕(大德)·취암(鷲巖)·금계(錦溪)·용흥(龍興) 등 7개 리가 있다.

  1. 진원면(珍原面)

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28.33㎢, 인구 3,60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선적리이다. 본래 진원현 지역으로 1600년(선조 33)장성현과 병합되어 장성군 동쪽이 되므로 내동면이라 하여 묘동·수촌 등 2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외동면 신촌·능산 등 24개 리, 남일면(南一面) 일부, 광주군 삼소지면 일부, 대치면 일부를 합해 이곳이 옛 진원현의 소재지이므로 진원면이라 하였다.

면내에는 북부에는 불태산이 있고 극락강의 진원천이 흐르며, 그 유역은 남면과 더불어 영산강 유역의 대표적인 저위침식평탄면에 해당된다. 면의 남쪽은 구릉이 산재한 저평지이고 북쪽은 산지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과 보리이며, 논의 이모작률이 높다. 구릉을 이용한 과수원이 많고 초지 조성이 편리해 낙농이 활발하며, 딸기·도라지 등도 재배된다. 교통은 도로가 광주광역시와 인접하고 장성∼담양간의 국도와 그 밖의 군도가 통과해 교통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진원리에 진원성과 오층석탑·고산서원, 학림리에 학림서원, 산동리에 청계정 등이 있다. 산동리에 울산 김씨, 상림리에 경주 정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가 있다.

선적(善積)·진원(珍原)·율곡(栗谷)·산정(山亭)·학전(鶴田)·산동(山東)·학림(鶴林)·상림(上林)·용산(龍山) 등 9개 리가 있다.

  1. 황룡면(黃龍面)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4.67㎢, 인구 4,51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월평리이다. 본래 장성군 지역으로 장성읍내 서쪽이 되므로 서일면이라 하여 다산·신촌·수산 등 11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서일면(西一面)의 11개 리, 서이면(西二面)의 27개 리, 삼남면의 17개 리, 영광군 외동면 일부, 함평군 대화면과 오산면의 일부를 편입해 황룡강의 이름을 따서 황룡면이 되었다.

면내에 옥녀봉(玉女峰, 220m)·매봉(219m)·월선봉(月仙峯, 241m)·삼봉(三峰, 128m) 등이 있어 서북부는 산지로 되어 있다. 이에 비해 남동부는 황룡강을 따라 넓은 평야가 전개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과 보리이고 딸기를 비롯한 고등소채가 재배된다. 황룡강에서 잡히는 은어와 천어(川魚)는 이 지역의 특산물이다. 장산리에서는 한천의 생산이 활발하며, 필암리에는 한지 부업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광산으로는 와룡리의 남일광산(南一鑛山), 월평리의 건동광산(健同鑛山)에서 석회석을 채굴하고 있다. 전체 주민의 약 10%가 상업에 종사하며, 조선 영조 이전부터 개장되었다고 하는 황룡장은 그 규모가 크다. 교통은 도로가 장성∼황룡간의 지방도가 있고 호남선이 옥정리를 통과한다.

문화유적에는 1975년 보물로 지정된 필암리의 필암서원 문적 일괄과 황룡리의 요월정 원림, 금호리의 백비, 신호리의 수산사가 있다. 또한, 황룡리에는 광산 김씨의 동족 마을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월평(月坪)·와룡(臥龍)·옥정(玉井)·황룡(黃龍)·신호(莘湖)·장산(長山)·필암(筆巖)·아곡(阿谷)·금호(金狐)·통안(通安)·맥호(麥湖)·관동(冠東)·와우(臥牛) 등 13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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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군(www.jangseong.go.kr)
장성교육청(www.jnjs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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