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군 ()

대동여지도 중 전라남도 장흥, 강진, 해남 부분
대동여지도 중 전라남도 장흥, 강진, 해남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전라남도 남부에 위치한 군.
정의
전라남도 남부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보성군·고흥군, 서쪽은 강진군·영암군, 남쪽은 완도군, 북쪽은 화순군과 접하고 있다. 동경 126°47∼127°02’, 북위 34°25∼34°52’에 위치한다. 면적은 622.41㎢이고, 인구는 4만 3513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3개 읍, 7개 면, 280개 행정리(136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 장흥로 21(건산리 715-11)에 있다.

자연환경

노령산맥과 소백산맥의 여맥이 이어져 노년기 잔구성 산지가 분포하고 있다. 북부는 비교적 고지대로 산지를 이루며, 남부는 해안지대로 간척사업이 이루어져 비옥한 해안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지질은 화감암·편마암 및 제4기 충적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쪽은 금성산(錦城山, 401m)·제암산(帝巖山, 807m)·골치산(骨峙山, 664m)·사자산(獅子山, 666m), 서쪽은 국사봉(國師峰, 613m)·부용산(芙蓉山, 609m)·수인산(修仁山, 561m) 등이 있다. 남쪽은 양암봉(陽巖峰, 465m)·천관산(天冠山, 723m), 북쪽은 국사봉·봉미산(鳳尾山, 506m)·가지산(迦智山, 510m), 중앙에는 억불산(億佛山, 518m)·용두산(龍頭山, 551m)·광춘산 등이 있다.

제암산은 장동면과 보성군 웅치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일명 곰재산이라고도 한다. 지형적으로 남동쪽 사면은 비교적 완만하지만, 북서쪽 사면은 급경사를 이룬다. 남쪽으로는 사자산·억불산·천관산, 북쪽으로는 금장산·용두산·봉미산 등이 뻗어 있고, 동쪽으로는 보성을 지나 고흥반도까지 그 여맥이 이어지고 있다.

산의 형태가 남성적이며, 커다란 계곡과 개울이 많다. 산 정상부는 넓은 풀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가장 높은 곳에 3층으로 된 바위가 있어 100여 명은 충분히 앉을 수 있다.

천관산은 관산읍과 대덕읍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옛이름은 천풍산(天風山)·지제산(支提山)이다. 가끔 흰 연기와 같은 이상한 기운이 서린다 하여 신산(神山)이라고도 한다. 장천재의 깊은 계곡과 치솟아 있는 산정 일대의 봉우리는 정말 아름답다.

억불산은 장흥읍과 안량면·용산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며, 지형적으로 남쪽 사면은 비교적 완만하지만, 북쪽 사면은 급경사를 이룬다. 정상에는 옛 봉수대가 있으며, 능선 끝에는 장흥 남부로 통하는 덕림재가 있다.

탐진강(耽津江)이 북서부를 남류하다가, 유치면에서 옴천천(唵川川), 장흥읍에서 금강(錦江) 등 여러 지류를 합류해 강진군을 지나 남해로 흘러든다. 그 밖에 홍거천(洪巨川)·남상천(南上川)·고읍천(古邑川) 등이 있다. 해안지대는 간척지가 발달하여 있다. 우산도·장재도·장관도 등 대부분의 섬들이 인공 제방으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기후는 동한난류가 흘러 비교적 기온이 온화한 해양성기후의 특징을 나타낸다. 연평균기온 12.9℃, 1월 평균기온 -0.1℃, 8월 평균기온 23.8℃, 연강수량은 1,963.3㎜이다. 특히, 여름철 태풍에 의한 집중 호우로 2,000㎜이상이 내려 많은 피해를 입기도 한다. 산간지대는 해안지대에 비해 고도에 따른 기온체감으로 2℃정도 낮다. 대개 첫서리는 10월 말경에 내리기 시작하고 늦서리는 4월 중순경까지 내린다.

역사

구석기·신석기 시대의 유물·유적은 발견된 바 없었으나 2002년 8월에 국도2호선 교량 터파기 공사 때 문화층이 드러났다. 조선대학교 박물관에서 2003년부터 7개월 동안 발굴조사를 진행해 유물 3만여 점을 발굴했다. 장흥 신북 구석기유적은 2008년 4월 11일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의 유물·유적으로는 장흥읍·관산읍·대덕읍·안량면 등 군의 전 지역에 걸쳐 흩어져 있는 고인돌군과 장흥읍 건산리의 유물 산포지 등에서 발견된 민무늬토기편·어망추·홍도편·반달돌칼 등이 있다.

마한시대에는 이곳에 건마국(乾馬國)이 있었던 것으로 비정되나 확실하지는 않다. 백제의 영역에 편입된 뒤로 이 지역에 오차현(烏次縣)·마사량현(馬斯良縣)·고마미지현(古馬彌知縣)·계천현(季川縣)·두힐현(豆肸縣) 등이 있었다.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오차현은 오아현(烏兒縣), 마사량현은 대로현(代勞縣), 고마미지현은 마읍현(馬邑縣), 계천현은 계수현(季水縣)으로 개칭되어 모두 보성군의 영현이 되었다. 두힐현은 강원현(薑原縣)으로 개칭되어 분령군(分嶺郡)의 영현이 되었다.

신라 말 경문왕 때 도의(道義)와 체징(體澄)에 의해 선종의 가지산문(迦智山門)이 보림사(寶林寺)에서 개창되어 선종구산문이 성립되기 시작하였다.

고려 초에 오아현이 정안현(定安縣)으로, 마읍현이 수령현(遂寧縣)으로 고쳐져서 영암에 예속되었다. 또한 대로현은 회령현(會寧縣)으로, 계수현은 장택현(長澤縣)으로 고쳐져 계속 보성군의 속현으로 있었다.

그 뒤 정안현은 인종 때 공예태후 임씨(恭睿太后任氏)의 고향이라 하여 장흥부로 승격되었다. 이 무렵 장흥부는 회령현·수령현·장택현과 영암군의 속현이었던 탐진현(耽津縣) 등 4현을 이속시켜 거느리게 되었다. 1265년(원종 6)회주목(懷州牧)으로 승격되었다가 1310년(충선왕 2) 다시 장흥부로 강등되었다.

1274년고려와 몽고의 연합군이 일본정벌 때 선박 제조의 임무가 부과되어 천관산 부근의 목재로 전함을 만들었다. 또한 동정군(東征軍)이 회주성에서 출발하였다. 고려 말기에는 왜구의 침입 때문에 수인산성·상잠성 등 많은 성을 쌓았다. 1379년(우왕 5)에는 철야현으로, 1389년(공양왕 1)에는 보성군으로 주민들이 옮겨가서 이곳은 공지가 되었다.

1392년(태조 1) 부사 황보 덕(皇甫德)이 수령현의 중녕산(中寧山)에 성을 쌓고, 부의 치소로 정하였다. 1413년(태종 13) 도호부가 되었고, 다음해중녕산의 성이 좁기 때문에 치소를 다시 수령현의 옛 터로 옮겼다. 세조 때 진을 두고, 진도·강진·해남 등을 관할하였다. 1555년(명종 10) 을묘왜변 때 왜구에 의해 부사 한온(韓蘊)이 전사하고, 부민이 큰 피해를 입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위대기(魏大器)·선세신(宣世臣) 등은 이순신(李舜臣)의 막하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그리고 김헌(金憲)·김응생(金膺生) 등은 조헌(趙憲)의 의병군에 가담해 금산싸움에서 순국하였다. 1599년권율(權慄)의 청에 의해 병영을 강진에서 장흥으로 이설했다가 1604년 다시 강진 구영(舊營)으로 옮겼다.

1652년(효종 3)장흥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659년 복구되었다. 1666년(현종 7) 감사 민유중(閔維重)의 건의로 진을 따로 두어 부사가 겸임하게 하다가 1683년(숙종 9) 진을 순천으로 옮겼다.

조선시대의 인물로는 중기의 백광훈(白光勳)이 문장과 명필로 유명했으며, 정조 때 위백규(魏伯珪)는 호남의 실학자로서 저명하였다. 1862년(철종 13)고제환(高濟煥)·정방현(鄭邦賢) 등이 주동해 민란이 일어났다.

1894년 동학운동 때 읍내의 석대에서 이곳 출신의 접주 이방언(李芳彦)이 이끄는 동학군이 관군·일본군과 접전을 벌여 동학군이 패함으로써 호남 지방의 동학운동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1895년나주부 장흥군으로, 1896년전라남도 장흥군으로 개편되었다. 이 때 대덕면 등에 딸린 섬은 모두 완도군에 이속시켰다. 1908년 심남일(沈南一)의 의병군이 유치면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큰 전과를 올렸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웅치면·회천면이 보성군에 편입되었고, 보성군 옥암면의 일부를 편입시켰다. 1940년 장흥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50년 6·25전쟁 때 3개월간 적의 치하에서 시달렸으며, 잔존 공비 때문에 큰 피해를 입었다. 1951년 7월 대규모의 토벌작전으로 공비는 거의 소탕되었다. 그러나 이 때 보림사가 소실되었다.

1974년 대홍수가 일어나 많은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1980년 12월 1일관산면과 대덕면이 각각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5년 11월 1일대덕읍에 회진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86년 4월 1일회진출장소가 회진면으로 승격되었다.

유물·유적

천관산과 억불산 주변에 고인돌이 수백 기 있으며, 특히 관산읍 방촌리에는 한곳에 100여기가 무리 지어 있다. 장흥읍 건산리에는 청동기시대의 주거지가 있으며, 곳곳에서 석기 등이 출토되고 있다.

산성으로는 장흥읍 건산리에 중녕산고성, 용산면 계산리와 안량면 수양리에 걸쳐 있는 학성, 관산읍의 성산리에 석남산성, 방촌리와 외동리에 회주산성과 천관산성 등이 있다.

이외에 장흥읍 기양리·남동리·남외리에 장흥성지, 회진면 진목리에 고장성, 회진리에 장흥회령진성(전라남도 기념물, 1987년 지정)·맹산산성, 유치면 대리에 장흥수인산성(전라남도 기념물, 1982년 지정) 등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유치면 봉덕리에 보림사가 있으며, 경내에 보림사 삼층석탑 및 석등(국보, 1962년 지정)·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1963년 지정) 등이 있다.

그곳에는 이 외에도 보림사 동 승탑(보물, 1963년 지정)·보림사 서 승탑(보물, 1963년 지정)·보림사 보조선사(보물, 1963년 지정)·보림사 보조선사탑비(보물, 1963년 지정)·대적광전(大寂光殿) 및 최근에 복원된 대웅전 등이 있다. 보림사사천왕문은 1981년 보물로 지정되었으나 1998년 지정 해제되었다.

관산읍 농안리의 천관사에는 천관사오층석탑(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6년 지정)·천관사석등(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6년 지정)·천관사 삼층석탑(보물, 1984년 지정) 등이 있다.

또한 대덕읍 연지리에 장흥탑산사지석등(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94년 지정), 장동면 북교리에 용화사약사여래좌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안량면 기산리에 미륵사석불(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8년 지정) 등이 있다.

이 밖에 장흥읍에 향양리석탑(向陽里石塔), 장평면에 용강리석탑(龍岡里石塔)·등촌리석탑(登村里石塔)·옥룡사여래좌상, 용산면 운주리에 부용사, 관산읍 방촌리에 장안사, 장흥읍 동동리에 신흥사, 장평면 용강리에 고산사석불입상(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8년 지정)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장흥읍 교촌리의 장흥향교(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 원도리의 장흥연곡서원(전라남도 기념물, 1974년 지정), 유치면 늑룡리의 강성서원(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과 예양서원(일명 오현사) 등이 있다.

또한 위백규가 수학했다고 하는 관산면 옥당리의 장흥장천재(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78년 지정), 안유(安裕)와 조선시대 6공신, 그리고 안중근(安重根)을 배향한 장동면 만년리의 만수사(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용산면 어산리의 영석재(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용산면 모산리의 월산재(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등이 있다.

또한, 장동면 반산리에 이순신 등을 배향한 반계사(盤谿祠)와 반계사유물일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88년 지정), 장흥읍 행원리에 행강사·석천사, 용산면 계산리에 충렬사, 부산면 용반리에 용호정(龍湖亭), 장흥읍 기양리에 창랑정(滄浪亭), 덕제리에 독취정(獨醉亭), 예양리에 영회단(永懷壇) 등이 있다.

고가옥으로는 관산읍 방촌리에 장흥 존재고택(국가민속문화재, 1984년 지정)·장흥 위성룡 가옥(전라남도 민속자료, 1986년 지정)·장흥 오헌고택(국가민속문화재, 2012년 지정), 장흥읍 평화리에 장흥 무계고택(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8년 지정)이 있다.

정자와 정원으로는 장흥읍 송암리의 장흥사인정(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장동면 만년리의 동백정(전라남도 문화재자료, 1988년 지정), 부산면 부춘리의 부춘정(富春亭)과 부춘정원림(전라남도 기념물, 1985년 지정), 용반리의 용호정원림(전라남도 기념물, 1985년 지정)이 있다.

문헌으로는 관산면 옥당리에 당포앞바다승첩지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와 지리지인 『환영지(寰瀛誌)』 등이 있다.

무형문화재로는 안량면 모령리의 한형준(韓亨俊)이 제와장(국가무형문화재, 1988년 지정)으로 지정되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용산면 어산리에 장흥 용산면의 푸조나무(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 관산읍 옥당리에 장흥 관산읍의 효자송(천연기념물, 1988년 지정)이 있다.

조선시대 도요지로서 용산면 월송리에 장흥 월송리 백자요지(전라남도 기념물, 1977년 지정)가 있으며, 원간섭기에 고려와 원나라 연합군의 일본정벌 때 무운장구를 위해 세웠다는 장승인 진서대장군(鎭西大將軍) 등도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는 1398년(태조 7)장흥읍 교촌리에 창건된 장흥향교가 최초의 교육기관이었다. 정치·교육·문화의 선구적 역할을 담당해 많은 유생들을 교육시켰다. 또한 지방 여러 곳에는 서당이 설치되어 한문을 전수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 향교의 교육 기능이 약화되고 많은 서원들이 세워졌는데, 1698년(숙종 24)장흥읍 원도리에 연곡서원이 설립되어 민정중(閔鼎重)·민유중 형제를 배향했으며, 1726년(영조 2)에 사액되었다. 어필각(御筆閣)이 있어 민정중이 1669년(현종 10) 중국의 예종으로부터 받은 친필 비례부동(非禮不動) 및 목판이 보관되어 있다.

1688년에 죽천서원이 설립되었다. 1702년유치면 늑룡리에 강성서원이 설립되어 문익점(文益漸)을 배향했으며, 1785년(정조 9)에 사액되었다. 1610년(광해군 2)장흥읍 예양리에 예양서원(汭陽書院)이 설립되어 신잠(申潛)을 배향했으며, 그 뒤 김광원(金光遠)·유호인(劉好仁)·남효온(南孝溫)·이색(李穡)을 추가 배향하였다.

그 밖에 충렬사·죽천사·양강사·포충사·기양사 등 많은 사우(祠宇)가 있어서 유생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근대교육기관으로는 1905년사립명진학교가 처음 개교되었으며, 창명보통학교로 개칭되고, 1911년공립장흥보통학교로 바뀌었다. 1918년장평공립보통학교, 1921년관산공립보통학교 등의 개교를 계기로 1면 1개 교의 교육체제를 갖추었다.

1930년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인 농잠실수학교가 설립되었으며, 1946년장흥중학교, 1952년관산중학교, 1955년장평중학교, 1951년장흥고등학교 등이 세워졌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5개교, 중학교 9개교, 고등학교 4개교가 있다.

장흥 지역에서는 전통문화예술제인 보림문화제가 열리며, 이 외에도 제암산철쭉제와 천관억세제도 하고 있다.

민속

이 고장의 대표적 민속놀이로는 고싸움과 줄다리기를 들 수 있다. 고싸움놀이는 줄다리기에 쓰이는 줄의 머리부분의 둥근 고를 서로 맞대고 하는 줄다리기의 전초전으로, 싸움의 승패는 고의 머리가 상대방 고의 머리를 위에서 아래로 덮치면 결정된다.

이 놀이는 줄 위에 탄 장정들과 열목을 멘 장정들과 뒷줄을 멘 사람들이 전후좌우로 들어주면서 호흡을 맞추어야 하므로 여간 힘든 시합이 아니다. 고싸움이 끝나면 본격적인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보통 탐진강을 사이에 두고 동서편으로 나뉘어 승부를 겨루는데 빨리 승부가 나지 않을 때는 하루가 걸릴 때도 있다고 한다. 지금의 장흥읍이 부동면과 부내면으로 분리되어 있었을 때, 양 면의 소년들은 정월 보름이 되면 돌싸움놀이를 벌였다.

소년들은 낮부터 논두렁에 불지르기를 하다가 달이 떠오르면 마을의 청년들과 합세해 예양강(汭陽江)을 사이에 두고 돌을 던지는 상투적 놀이를 펼쳤다. 이 때 돌을 던지되 절대 강을 건너서는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그 밖에도 성밟기·물길어붓기·중로보기 등의 민속놀이가 전승되고 있다.

용산면 상발리 남포마을에서 200여m 떨어진 곳에 소등섬이라는 작은 섬이 있는데, 음력 정월 보름이면 이곳에서 당제와 갯제가 행해진다. 10일이 되면 제주를 선출하고, 이 때부터 왼새끼줄을 꼬아 동구 밖에 금줄을 치고 금토를 뿌려 부정을 막는다. 제물은 제주와 화주가 장만하고, 음식을 만들 때 검식을 하면 안 된다고 한다.

제를 지내는 방식은 일반 제사와 같으나 제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은 제주와 화주뿐이므로 삼헌을 제주가 행하며, 화주는 집사를 겸한다. 따로 마련된 축문은 없고 제주가 구전해 오는 말로 마을의 풍농과 풍어, 무사고를 빈다.

당제가 끝나고 신호를 하면 밖에서 기다리던 주민들은 농악을 치면서 섬에 들어가, 섬 주위를 돌면서 제물을 뿌리며 당할머니에게 소원을 비는데 이 과정을 갯제라고 한다. 저녁 무렵 제가 모두 끝나면 주민들은 동네에 돌아와서 농악을 치며 밤새 즐긴다.

설화·민요

이 고장에는 「보림사(寶林寺)와 용소전설」·「며느리바위전설」·「형제바위전설」·「고동바위전설」 등 다수의 지명전설이 전해진다.

유치면의 보림사터는 원래 못이었다는데, 신라의 명승 지눌(知訥)이 절을 짓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던 중 이곳 가지산에 도달해 보니 풍수지리적으로 좋은 터였으나 불행히도 못이었다. 지눌은 이곳을 메우기 위해 사람들에게 눈병을 앓게 한 뒤 그 치료방법으로 누구든지 눈에 병이 있는 사람은 장흥 가지산의 못에 돌 한 덩이와 숯 한 덩이를 던져 넣으면 눈병이 낫는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이렇게 해서 못이 메워지자 이 안에 살고 있던 뱀·이무기들이 모두 나갔다. 그러나 청룡과 황룡만은 나가지 않고 버티고 있으므로 지눌이 지팡이로 쳐서 쫓아냈다. 못에서 쫓겨난 두 용은 현재의 용소(龍沼)에 이르러 서로 승천싸움을 벌이다가 백룡이 꼬리를 치는 바람에 산기슭이 도막나면서 패어 용소가 생겨났다.

결국 백룡은 승천했으나 청룡은 피를 흘리며 돌아다니다가 죽고 말았는데, 이때 넘은 고개가 현재의 피재이고 죽은 자리가 장평면 청룡리라 한다. 그리고 용소가 위치한 마을 이름도 용문동(龍門洞)이라 하며, 늑룡(勒龍)이라는 마을이 그 이웃에 있고, 부산면과 장평면의 경계에는 용두봉(龍頭峰)이 있다.

장흥읍 우목리 한돌 뒤에 솟은 억불산의 며느리바위에는 장자못계의 유래담이 전해 온다. 어떤 인색한 부자영감이 벌을 받아 홍수가 났는데, 물을 피해 산으로 가던 착한 며느리가 시아버지의 애절한 비명소리에 금기를 잊고 뒤돌아 보다 그만 돌로 굳어져 며느리바위가 되었다는 것이다.

제암산에 있는 형제바위에도 늙고 병든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산나물을 캐러 갔다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은 효성이 지극한 형제의 이야기가 전해 온다.

용산면 운주리 봉황마을에는 부용산이 있고 그 산봉우리 중에 고동바위가 있다. 그 내용은, 옛날 이 바위에 신령스러운 고동이 살아 마을에 일이 생길 때마다 황소울음소리처럼 큰 고동소리를 내어 마을사람들에게 좋고 궂은 일을 알렸다 한다.

이 밖에도 정절을 지키기 위해 자결한 처녀의 원혼이 복수를 하고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용천폭포전설」 등이 전한다.

이 고장의 민요로는 「모찌는 소리」·「모심는 소리」·「김매는 소리(들노래)」·「달구질소리」·「바느질소리」·「새쫓는 소리」와 같은 노동요들이 전승되고 있다. 「모찌는 소리」는 선소리꾼이 일어서서 못단을 던지며 앞소리를 메기면, 여럿이 “모∼모∼모∼에헤라 아하 모이히리요”라는 뒷소리를 받는다.

「모심는 소리」는 중중모리장단에 맞추어 부르는데 ‘에헤루 상사디여’라는 뒷소리가 따른다. 「김매는 소리」는 낮에 김을 맬 때, 선소리꾼이 모를 추면서 긴소리로 앞소리를 메기면 여럿이 “아리시구나 하아아 허어 마뒤어”라는 뒷소리를 받는다. 그러다가 날이 저물어 일을 재촉해 하루 일을 매듭짓고자 할 때, 선소리꾼이 굿거리장단의 자진모리로 앞소리를 메기면 역시 자진모리로 “뒤야허리 허날로”하는 뒷소리를 받는다.

집을 짓기 위해 터를 다지며 부르는 「달구질소리」는 중중모리장단에 맞추어 씩씩하고 흥겹게 부른다.

부녀자들이 바느질하면서 부르는 「바느질소리」를 들어보면 “짚이둥둥 모시베는 얕이나둥둥 맹지베는/오색물을 짙게디레 홍신둑을 마주놓고/동백나무 큰방맹이로 눈빛나게 다듬어내어/피중침시 침추레내어 마치잡어 옷을비어/……재간스럽게 지어왔다/구연좋은 우리벗은 맵시좋게 입으시고/동락서재 댕기신다……”처럼 옷감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다니는 과정을 노래하고 있다.

청춘과부의 신세를 비둘기와 대비시켜 부른 「청상요 靑孀謠」를 보면 “……노들강변에 비들기한쌍 불콩한낱을 물어다놓고/숫놈이물어서 암놈을주면 암숫놈이 어르는 소리/청춘과부가 기둥만잡고 뱅뱅돈다.”와 같다.

그 밖에 「산타령」·「담배씨노래」·「시집살이노래」·「도리깨타작소리」, 고싸움하면서 부르는 「고노래」·「파랑새노래」 등이 불리고 있다.

산업·교통

대부분이 구릉지대 및 평야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2008년 현재 경지면적 12,906㏊ 중 논 1만 328㏊ 밭 2,578㏊로 논농사 위주의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탐진강 유역을 중심으로 비옥한 평야가 형성되어 용반평야·부산평야·한들·석대들·영전들 등이 있다. 이외에 보성강·홍거천·남상천·연청천 등의 하천 연안에도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해안지대에는 간척사업이 이루어져 금촌농장·덕촌농장·관덕농장 등의 평야가 형성되어 식량 증산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또한, 주요 수자원으로 저산저수지·목단저수지·금산저수지·수동제일저수지 등을 비롯한 여러 저수지가 있어서 이 지역에 농업 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콩·감자·고구마·참깨·땅콩 등이 있다. 특산물은 인삼·잎담배·양송이·표고버섯·유채 등이다. 장흥읍 행원리 잣두들에서는 잔털이 없고 달고 연한 잣두무가 생산되며, 건산리에서는 농가 부업으로 건산 모시가 생산된다.

건산모시의 생산은 장흥읍·관산읍을 비롯해 여러 지역에서 농가부업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한산모시가 올이 가늘고 여성적인데 비해, 건산모시는 올이 튼튼하고 남성적이며, 실용적인 것이 특징이다.

판로가 전국적으로 확대되자 건산리에 모시베 직조공장이 설립되었으며, 건산모시라 하여 전국에 알려져,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새벽의 모시장은 거래가 활발하였다. 기온이 온화해 모시풀을 세 번까지 벨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현재는 인조 섬유의 보급으로 인해 점점 쇠퇴하고 있다.

부산면 유양리에서는 장흥유기(長興鍮器)가, 호계리에서는 호계죽석(虎溪竹席)이 생산되었으나 현재는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장흥유기는 약 250여년 전 나조대(羅朝大)가 유기를 만든 것이 효시이며, 그 뒤 여씨(呂氏) 문중에서 제조 기술이 전승되었다. 양질의 풍부한 찰흙과 제조 기술의 끊임없는 전승 및 장흥읍에 소재한 유기전이 있어 명산지로 알려졌다.

호계죽석은 농한기에 농가 부업으로 시작된 죽제품의 한 종류로 오늘날의 장판이다. 생산 과정은 대나무를 알맞게 잘라 일정한 너비로 쪼개고 얇게 떠서, 가로와 세로가 일정한 직각이 되게 맞추어 격자모양으로 짠다.

완성된 죽석은 잘 문지른 다음 물을 부어도 밑으로 새어 나오지 않아야 한다. 특히, 대나무의 매듭을 잘라 없애 버리고 한자 안팎의 대로 잘게 쪼개어 만든 것은 특품이라 하여 고가로 거래되었다.

연근해에서는 조개류와 김양식이 이루어지며, 특히 장흥김은 맛과 향이 독톡하다. 장흥의 동남해안 일대에서 생산되는 장흥김은 관산·대덕·회진 등지의 해안이 김의 주산지이며, 이곳 주민의 약 50%는 김생산에 참여하고 있다.

김생산량은 완도가 으뜸이지만, 장흥김도 맛과 향이 독특하고 품질이 우수하다. 연안의 바다에는 전어·멸치·숭어 등 각종 어류가 서식하고 있다. 탐진강의 은어는 여름철 이 지역의 명물이다.

한편, 시장은 상설시장 1개소, 정기시장 7개소가 열리고 있다. 상설시장은 보통 정기시장과 함께 서며, 장흥시장의 규모가 가장 크다. 정기시장은 5일장으로 장흥읍 장흥장이 2·7일, 관산읍 관산장이 3·8일, 대덕읍 대덕장이 5·10일, 용산면 용산장과 장평면 장평장, 회진면 회진장이 1·6일, 유치면 유치장이 4·9일에 열린다. 그 밖의 면은 가까운 곳에 있는 장을 이용한다.

특히, 장흥장은 전라남도 지방에서도 손꼽히는 대규모 장이며, 공산품의 계통 출하가 이루어지고 있다. 장흥장·대덕장에는 우시장이 열리며, 장흥은 인근지역의 소가 거래되고 있고, 대덕은 완도지역의 소가 거래된다. 주요 거래 품목으로 식료품·의류·야채·과일류·곡물류·생선류 및 생활용품을 공급하고 있다.

교통은 장흥읍을 중심으로 목포∼부산간의 국도가 이 군의 중앙부를 동서로 통과한다. 보성·강진·나주·영암 등을 연결하는 국도와 지방도 등의 도로망이 사방으로 뻗어 있어 편리한 편이다.

또한, 해상교통이 발달된 지역으로 회진면 회진항은 노력도(老力島)와 완도군 생일도(生日島)·조약도(助藥島) 등을 연결하는 유일한 항구이다. 그러나 항구 시설의 미비로 선박 통행에 불편을 주며, 폭풍이나 해일시에는 큰 피해를 입고 있다.

관광

가지산·천관산 등의 자연 관광자원과 인근의 사찰 및 문화재가 이 지역의 주요 관광지 및 관광자원이다. 가지산은 단풍이 울창해 주위경관이 아름다우며,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 보림사가 있다.

천관산은 산세와 경관이 뛰어나며, 천관사가 있다. 장흥읍에는 남산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인근에 부춘정·용호정·창랑정·독취정 등의 정자가 있어 여름철의 피서지이며, 낚시터로 잘 알려져 있다. 남산공원(南山公園)은 옛 장흥토성의 일부로, 반달띠 모양의 낮은 산에 있다.

안량면 수문리에는 수문포 해수욕장이 있어 매년 해수욕객이 증가하고 있다. 이 해수욕장은 경사가 완만하고 해안을 따라 흰모래가 1㎞ 가량 발달하고 있어 해수욕장으로 자연적 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 최근 인공조림으로 송림이 울창해 경관이 뛰어나며,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지리적으로 내륙의 주요 교통로와 떨어져 있는 관계로 관광 위락시설 및 편의시설이 미비한 실정이다. 따라서, 관광자원을 효율적으로 개발하기 위해서는 주요 관광도로의 확장과 관광지의 홍보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기존의 남해안관광권과 연계시켜야 한다.

읍·면
  1. 관산읍(冠山邑)

군의 중남부에 위치한 읍. 면적 76.00㎢, 인구 6,003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옥당리이다. 본래 수령현의 고읍면(古邑面) 지역으로서, 1886년고상면(古上面)·고하면(古下面)으로 분리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다시 고읍면으로 되었다. 1932년남하면(南下面)의 고마(叩馬)·죽청(竹靑)·하발(下鉢) 등 3개 리가 편입되어 천관산의 이름을 따서 관산면으로 되었다. 1980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동쪽은 소산봉(蘇山峰, 239m), 서쪽은 양암봉, 남쪽은 천관산, 북쪽은 부용산·노승산(老僧山, 339m) 등이 솟아 있으며, 300∼500m의 구릉성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성산천·농안천·부평천이 합류해 고읍천을 이루며, 읍의 북부를 가로질러 동류하다가 득량만으로 흘러든다.

하천 연안에는 비옥한 평야가 형성되어 벼농사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해안에는 방조제가 구축되어 장관도 등의 섬이 육지와 연결되어 있으며, 넓은 간척지가 조성되었다. 해안선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24㎞이며, 청정 해역으로 유명하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깨 등이다. 연근해에서는 숭어·장어 등이 어획되며, 김양식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교통은 강진·영암 등을 잇는 국도와 지방도가 연결되어 있으나, 지형적인 장애를 극복하고 도로는 포장되어 정비상태가 양호하다.

문화유적은 옥당리의 옥룡사지(玉龍寺址)내에 불상·석조여래좌상·당포앞바다승첩지도, 농안리의 천관사 내에 삼층석탑·오층석탑·석등, 방촌리·외동리의 천관산성지, 성산리의 석남산성지(石南山城址), 방촌리의 위성룡가옥·위계환가옥 등이 있다. 방촌리에는 호남 실학의 대가 위백규의 유물을 전시하는 전시관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옥당(玉堂)·죽교(竹橋)·남송(南松)·성산(聖山)·부평(夫平)·농안(農安)·용전(龍田)·방촌(傍村)·지정(枝亭)·신동(新東)·송촌(松村)·외동(外洞)·삼산(三山)·고마(叩馬)·죽청(竹靑)·하발(下鉢) 등 16개 리가 있다.

  1. 대덕읍(大德邑)

군의 남부에 위치한 읍. 면적 58.06㎢, 인구 4,258명(2008년 현재). 읍 소재지는 신월리이다. 본래 영암군 정안현(定安縣) 지역으로서, 완도군의 생일도·평일도 등 14개 섬을 합해 대흥면(大興面), 덕도(德島)와 노력도를 내덕면(萊德面)이라 하였다.

1895년 14개 도서가 완도군으로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대흥면과 내덕면을 병합해 대덕면으로 하였다. 1980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1986년회진면이 분면되었다.

북쪽은 천관산·양암봉·천태산(天台山, 549m) 등의 산지가 솟아 있으며, 중앙에는 비교적 넓은 평야가 형성되어 있다. 남부 해안에는 간척지가 조성되어 논으로 이용되고 있다. 대덕천이 읍의 중앙을 관류해 남류하다가 남해로 흘러드는데, 하천 연안에는 비옥한 평야가 형성되어 벼농사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잡곡·감자·콩·마늘·참깨 등이 있다. 연근해에서는 김양식, 신리 앞바다에서는 굴양식도 이루어진다. 교통은 관산·장흥과 강진군 마량 등을 잇는 국도와 지방도가 동서로 연결되어 있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연지리의 탑산사지(塔山寺址)·관죽전(官竹田)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신월(新月)·연정(蓮亭)·연지(蓮池)·도청(都廳)·잠두(蠶頭)·분토(分土)·신(新)·옹암(甕巖)·가학(駕鶴) 등 9개 리가 있다.

  1. 장흥읍(長興邑)

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읍. 면적 55.92㎢, 인구 1만 6483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기양리이다. 본래 장흥군 부내면(府內面) 지역으로서 1895년군내면으로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부서면(府西面)의 성불·복흥·영전 등 12개 리가 편입되어 장흥면으로 되었다. 1932년부동면(府東面)의 12개 리가 편입되고 1940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동쪽은 사자산, 서쪽은 수인산, 남쪽은 억불산·광춘산 등이 솟아 있으며, 분지를 이루고 있다. 탐진강이 읍의 중앙부를 관류해 남서류하다가, 송암리 일대에서 금강(錦江)과 합류해 강진군으로 흘러 남해로 흘러든다. 하천 연안에는 비옥한 평야가 형성되어 벼농사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감자·고구마·깨 등이며, 특산물로는 인삼·표고버섯 등이 있다. 교통은 기양리를 중심으로 강진·보성·영암 등을 잇는 국도와 지방도가 있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교촌리의 장흥향교, 원도리의 연곡서원, 예양리의 영회단, 송암리의 사인정, 기양리의 창랑정, 덕제리의 독취정, 평화리의 고영환가옥, 기양리·남동리의 장흥읍성지, 건산리의 중녕산고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 중학교 2개 교, 고등학교 2개 교가 있다.

기양(岐陽)·예양(汭陽)·평화(平化)·우목(牛目)·건산(巾山)·향양(向陽)·삼산(三山)·금산(錦山)·상(上)·해당(海堂)·축내(築內)·관덕(觀德)·원도(元道)·행원(杏園)·연산(蓮山)·성불(成佛)·사안(沙岸)·영전(永田)·송암(松巖)·덕제(德堤)·평장(坪場)·순지(蓴池)·충렬(忠烈)·교촌(校村)·남외(南外)·남동(南洞)·동동(東洞) 등 27개 리가 있다.

  1. 부산면(夫山面)

군의 중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38.00㎢, 인구 1,79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유양리이다. 본래 수령현 지역으로서, 1414년(태종 14)용계면으로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계면 4개 리와 부산면 5개 리를 병합해 부산면이 되었다.

서쪽은 기역산(騎驛山, 264m), 남쪽은 매봉(425m), 북쪽은 용두산 등이 솟아 있다. 탐진강이 면의 중앙부를 관류해 남류하는데, 하천의 유역에는 부산평야·용반평야 등의 비옥한 평야가 형성되어 벼농사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잡곡·깨 등이며, 특산물로는 표고버섯·유채·모시 등이 있다. 또한, 토끼·닭 등의 사육도 이루어지고 있다. 교통은 강진·보성·영암 등에 국도와 지방도가 연결되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부춘리의 부춘정과 부춘원림, 용반리의 용호정·용호정원림, 유양리의 금계사(金溪祠), 금자리의 금장사지(金藏寺址)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유양(柳楊)·내안(內安)·구룡(九龍)·부춘(富春)·지천(枝川)·용반(龍盤)·금자(金子)·호계(虎溪)·기동(基洞) 등 9개 리가 있다.

  1. 안량면(安良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51.15㎢, 인구 3,39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운흥리이다. 본래 안양면(安壤面) 지역으로서, 1886년안상면(安上面)·안하면(安下面)으로 분리되었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안량면으로 되었다.

동쪽은 골치산, 서쪽은 억불산, 북쪽은 사자산 등이 솟아 있다. 사자산에서 발원하는 월계천(月溪川)과 억불산에서 발원하는 수대천(水大川)이 합류해 홍거천을 이루며, 면의 서부를 남류하다가 득량만으로 흘러든다.

하천 연안에는 비옥한 평야가 형성되어 벼농사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해안에는 해안 평야가 이루어져 있으며, 장재도는 인공 제방으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잡곡·마늘·고추·양파 등이며, 수산물로는 키조개·피조개·꼴뚜기·낙지 등이 있다.

교통은 강진·보성 등을 잇는 국도가 연결되어 있으며, 목포∼여수간의 여객선이 운항되어 편리한 편이다. 주요 관광지로는 수문리에 수문포해수욕장이 있어 여름철의 휴양지로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문화유적은 기산리의 기양사(岐陽祠), 학송리의 충현사(忠顯祠), 수양리의 학성·사현사(四賢祠), 운흥리의 운곡단·포충사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운흥(雲興)·기산(岐山)·비동(飛東)·당암(堂巖)·해창(海倉)·사촌(沙村)·수문(水門)·수양(水養)·모령(茅嶺)·지천(芷川)·학송(鶴松)·신촌(新村)·수락(水落) 등 13개 리가 있다.

  1. 용산면(蓉山面)

군의 중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72.28㎢, 인구 2,71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접정리이다. 본래 영암군 정안현 지역으로서, 장흥부에 속하고 장흥읍 남쪽에 있다 하여 남면(南面)이라 하였다. 1886년남상면(南上面)·남하면(南下面)으로 분리되었다가, 1932년 다시 남면으로 고쳤으며, 고마·죽청·하발의 3개 리가 관산읍으로 편입되고 1940년용산면으로 되었다.

동쪽은 노승산, 서쪽은 괴바위산(477m)·부용산, 북쪽은 억불산·광춘산·연대봉(燃臺峰, 397m) 등이 있으며, 분지를 이루고 있다. 남상천이 면의 중앙부를 가로질러 동류하다가 득량만으로 흘러든다.

하천 연안에는 비옥한 평야가 형성되어 벼농사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잡곡·고추 등이며, 특산물로는 조개·표고버섯·유자 등이 있다. 연근해에서는 숭어·장어 등이 어획되고 있다. 교통은 강진·보성 등을 잇는 국도와 지방도가 있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월송리의 조선백자도요지, 어산리의 푸조나무와 당곡사(唐谷祠)·영석재, 계산리의 충렬사와 연대봉 아래 성지가 있다. 이 밖에도 모산리의 용강사(龍岡祠)·월산재(月山齋), 상금리의 수원백씨열녀비, 운주리의 부용사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접정(接亭)·운주(雲柱)·어산(語山)·월송(月松)·녹원(鹿院)·관지(觀池)·상금(上金)·하금(下金)·인암(印巖)·모산(茅山)·계산(桂山)·덕암(德巖)·풍길(豊吉)·상발(上鉢) 등 14개 리가 있다.

  1. 유치면(有治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122.11㎢, 인구 1,329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송정리이다. 본래 장택현(長澤縣) 지역으로서, 1886년유치면으로 되어 대리·방촌·덕촌 등 54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5개 리로 되었다.

동쪽은 삼계봉(三界峰, 504m)·가지산, 서쪽은 국사봉, 남쪽은 수인산 등이 있으며, 분지를 이루고 있다. 탐진강의 두 지류가 송정리 일대에서 합류해 남류하는데, 하천 연안에는 소규모의 곡저평야가 형성되어 벼농사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잡곡 등이며, 특산물로는 잎담배·표고버섯·더덕·고사리 등이 있다. 교통은 강진·영암 등을 잇는 국도가 연결되어 있으나, 지형적인 장애로 인해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봉덕리보림사의 삼층석탑·석등·철조비로자나불좌상·동부도·서부도·보조선사창성탑, 늑룡리의 강성서원, 대리의 수인산성, 용문리의 옹기도요지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송정(松亭)·대(大)·오복(五福)·신월(新月)·단산(丹山)·덕산(德山)·관동(冠洞)·반월(半月)·조양(朝陽)·신풍(新豊)·늑룡(勒龍)·용문(龍門)·봉덕(鳳德)·대천(大川)·운월(雲月)·원등 등 16개 리가 있다.

  1. 장동면(長東面)

군의 동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44.88㎢, 인구 1,515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북교리이다. 본래 장택현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용계면의 만년(萬年)·하산(霞山)·용곡(龍谷) 등 3개 리와 보성군의 모령리(茅嶺里)일부를 병합해 장동면이 되었다.

동쪽은 강산(江山, 320m), 서쪽은 용두산, 남쪽은 제암산, 북쪽은 금성산 등이 솟아 있으며, 분지를 이루고 있다. 보성강이 봉동리 일대에서 갈라져, 면의 북부를 가로질러 동류하다가 보성군으로 흘러든다.

하천 연안에는 비옥한 평야가 형성되어 벼농사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잡곡 등이 있으며, 특산물은 잎담배·표고버섯·유채·잎당귀·마포(麻布) 등이다. 교통은 강진·보성 등을 잇는 국도와 지방도가 연결되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북교리의 용화사약사여래좌상, 만년리의 동백정·만수사, 반산리의 반계사, 봉동리의 양강사(楊江祠), 배산리의 배산산성(盃山山城)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

북교(北橋)·봉동(鳳洞)·조양(朝陽)·배산(盃山)·반산(盤山)·용곡(龍谷)·만년(萬年)·하산(霞山) 등 8개 리가 있다.

  1. 장평면(長平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77.86㎢, 인구 2,637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용강리이다. 본래 장택현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남면(長南面)·장북면(長北面)을 병합해 장서면(長西面)이 되었다. 1936년부평면(富平面)의 23개 리를 병합해 장서와 부평의 이름을 따서 장평면이 되었다. 1973년장동면 광평리가 이 면에 편입되었다.

동쪽은 금성산·벽옥산(碧玉山,479m), 서쪽은 삼계봉·가지산, 남쪽은 용두산, 북쪽은 봉미산·군치산(郡峙山, 412m)·고비산 등이 솟아 있다. 보성강이 면의 서부를 남동류하다가 장동면과의 경계에서 갈라져서, 다시 북동류해 보성군으로 흘러 들어간다.

하천 연안에는 비옥한 평야가 형성되어 벼농사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깨 등이며, 특산물로는 인삼·누에고치·잎담배·유채 등이 있다. 교통은 화순·보성·강진·영암 등을 잇는 국도와 지방도가 연결되어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등촌리의 용강영당(龍岡影堂), 임리의 백동사(白洞祠), 녹양리의 황산사(黃山祠), 용강리의 고산사지(高山寺址)·탑동사지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용강(龍岡)·봉림(鳳林)·등촌(登村)·양촌(陽村)·축내(丑內)·저산(猪山)·우산(牛山)·병동(屛洞)·청룡(靑龍)·기동(岐洞)·선정(船亭)·광평(光平)·녹양(綠楊)·임(林)·내동(內洞)·어곡(漁谷)·복흥(復興)·진산(珍山)·두봉(斗峰) 등 19개 리가 있다.

  1. 회진면(會鎭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26.11㎢, 인구 3,38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회진리이다. 본래 대덕면 지역으로서, 1985년대덕읍 회진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1986년회진면으로 분면되었다.

동쪽과 남쪽은 남해에 접해 있으며, 동쪽의 덕도는 간척사업에 의해 관산읍·대덕읍과 연결되었다. 면이 동서로 분리된 지형을 이룬다. 대부분이 구릉지대와 간척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간척사업으로 형성된 해안평야가 벼농사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잡곡·감자·콩 등이다. 연근해에서는 해조류 양식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교통은 대덕·관산·장흥 등을 잇는 국도와 기타 지방도가 연결되어 있으며, 완도군의 금일읍과 신지면을 연결하는 정기 여객선이 매일 운항되고 있다.

문화유적은 진목리에 고장성, 신상리에 회진성지(會鎭城址)·삼세충효정(三世忠孝旌)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가 있다.

회진(會鎭)·진목(眞木)·덕산(德山)·대(大)·신상(新上) 등 5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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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고고학지명표』(최몽룡, 1975)
장흥군(http://www.jangheung.go.kr)
장흥교육청(http://www.jnjhe.go.kr)
문화재청(www.ch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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