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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田琦)

회화인물

 조선후기 「계산포무도」·「매화초옥도」·「설경산수도」 등을 그린 화가.   문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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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수도 / 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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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계산포무도」·「매화초옥도」·「설경산수도」 등을 그린 화가.문인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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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개성(開城). 초명은 재룡(在龍). 자는 이견(而見), 위공(而見), 기옥(奇玉). 호는 고람(古藍) 또는 두당(杜堂). 조희룡(趙熙龍), 유재소(劉在韶), 유숙(劉淑) 등과 매우 가깝게 지냈던 중인 출신으로 김정희(金正喜)의 문하에서 서화를 배웠다. 『호산외사(壺山外史)』의 ‘전기전(琦田傳)’에 의하면 “체구가 크고 빼어나며 인품이 그윽하여 진·당(晉唐)의 그림 속에 나오는 인물의 모습과 같다”고 하였으며, “그가 그린 산수화는 쓸쓸하면서도 조용하고 간결하면서 담백하여 원대(元代)의 회화를 배우지 않고도 원인(元人)의 신묘한 경지에 도달하였다”고 하였다. 또한 “그의 시화는 당세에 짝이 없을 뿐 아니라 상하 100년을 두고 논할 만하다”고까지 하였다.
추사파(秋史派) 가운데에서도 사의적(寫意的)주 01)인 문인화의 경지를 가장 잘 이해하고 구사하였던 인물로 크게 촉망받았다. 그러나 29세로 죽었기 때문에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하였다. 현존하는 작품들을 통해서 볼 때 주로 산수를 즐겨 그리면서 화훼에도 적지 않은 관심을 기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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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약포를 경영하는 동시에 서화의 매매에도 관여하였던 기록이 남아 있다. 유숙, 유재소 등과 더불어 중인시사 모임인 벽오사의 일원으로 활약하였다. 시사는 경아전 중인들을 중심으로 부와 문화적 수준을 갖춘 문인들이 모여 예술적 삶을 전개하는 모임으로 서 벽오사 활동은 전기의 작품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의 회화 세계는 스승인 김정희의 영향을 강하게 반영하고 있는 사의 지향의 남종 문인화풍(南宗文人畵風)과, 윤제홍(尹濟弘), 김수철(金秀哲) 등의 이색 화풍과 상통되는 참신한 경향의 화풍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표작인 「계산포무도(溪山苞茂圖)」는 남종 문인화풍의 간일한 필치와 간명한 구도에 의하여 이룩된 선미(禪味)주 02)가 깃든 화면이 특징이다. 「매화초옥도(梅花草屋圖)」와 화훼화 등에서 보이는 참신한 감각의 화풍은 투명한 설채(設彩)주 03)와 특이한 태점(苔點)에 의하여 이루어진 화면을 특징으로 한다.
전기의 화훼화는 감필체의 사의적 화훼가 주류를 이루며 용묵과 채색이 대담하면서도 신선한 색체를 사용한 점이 특징이다. 그 외에 중국의 역대 군신과 명현을 폭넓게 다룬 『만고제회도상(萬苦際會圖像)』(1854년)의 인물을 그리기도 하였다.
제작 연대가 알려져 있는 작품으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산수도」, 「설경산수도」, 「계산포무도」, 「한북약고도(漢北藥庫圖)」, 「기향하처도(騎向何處圖)」, 간송미술관 소장의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개인 소장의 「추산잡수도(秋山雜樹圖)」 등이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호산외사(壺山外史)

  • 『한국근대회화백년 1850∼195』(국립중앙박물관,1987)

  • 『한국회화사』(안휘준,일지사,1980)

  • 『우리나라의 옛 그림』(이동주,박영사,1975)

  • 『한국회화대관』(유복렬 편,문교원,1969)

  • 『근역서화징』(오세창,계명구락부,1928)

  • 「고람 전기(1825-1854)의 회화와 서예」(성혜영,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1995)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사물의 형태보다는 그 내용이나 정신을 치중하여 그리는 것
주02
세속을 떠난 담담한 맛
주03
색을 칠함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홍선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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