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부산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 때 순절한 부산첨사 정발(鄭撥)을 비롯한 여러 분을 모신 곳이다.
임진왜란 때 부산성에서 관문을 지키다 장렬히 전사한 충장공(忠壯公) 정발과 그를 따라 함께 순절한 군민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1766년(영조 42) 부산첨사 이광국(李光國)이 충장공의 순절지인 부산진성의 남문 자리에 단을 설치하였다.
정공단에는 공의 막료 이정헌(李庭憲), 첩 애향(愛香), 충노 용월(龍月) 및 무명 순절자들이 배향되었다. 1895년(고종 32) 갑오개혁으로 첨사 제도가 폐지되자 향사계(享祀稧)에서 제사를 계승하였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민족혼을 일깨운다 하여 제단을 없애려고 하였다. 향사계는 이에 굴하지 않고 단을 유지하였으나, 일본경찰의 탄압이 심하여 1942년에는 제단을 폐쇄하고 유물 비품도 몰수당하였다. 1945년 11월에 다시 향사계가 조직되었다.
제향은 매년 음력 4월 14일에 거행되고, 사단법인 정공단보존회(鄭公壇保存會)에서 맡고 있다. 경내에는 현재 외삼문 옆 비각에 '충장공정발전망비'가 있는데, 이는 1761년(영조 37) 경상좌수사 박재하(朴載河)가 세운 것이다. 원래 영가대(永嘉臺: 부산광역시 동구 범일동에 있던 조선 후기 통신사가 해신제를 지낸 누각.) 부근에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전차길 개설로 인해 현재 위치로 비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