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군 ()

대동여지도 중 강원도 정선 부분
대동여지도 중 강원도 정선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강원특별자치도 남동부에 위치한 군.
정의
강원특별자치도 남동부에 위치한 군.
개관

북쪽은 강릉시, 북서쪽은 평창군, 남쪽은 영월군, 동쪽은 동해시 · 삼척시 · 태백시와 접한다. 동경 128°30′∼128°59′, 북위 37°09′~37°35′에 위치한다. 면적은 1,219.72㎢이고, 인구는 3만 9197명(2015년 기준)이다.

행정구역으로는 4개 읍, 5개 면, 182개 리가 있다. 군청은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정선읍 봉양리에 있다.

자연환경

태백산맥이 북에서 남으로 뻗어가면서 강원특별자치도에 이르러 영동과 영서의 분수령을 형성하였는데, 정선군은 영서에 위치한다.

오대산맥에서 뻗어내린 상원산(上元山) · 가리왕산(加里旺山) · 비봉산(飛鳳山) · 벽파령(碧波嶺) · 성마령(星摩嶺) · 마전치(麻田峙) 등이 군의 우측을 이루었으며, 석병산(石屛山) · 중봉산(中峯山) · 갈래산(葛來山) · 백운산(白雲山) · 예미산(禮美山) 등은 좌측을 이루고 있다.

고양산은 군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화암면, 여량면, 임계면의 일부를 형성하였다. 갈래산(葛來山)은 동에서 서로 뻗어내려 우암산, 서운산, 기우산을 이루면서 조양산(朝陽山), 병방산(兵防山)을 끝으로 북쪽은 정선읍과 화암면의 일부가 되고 남쪽은 남면의 북반(北半)을 이루었다.

함백산은 서쪽으로 뻗어 영월로 가는 중간에 백운산(白雲山), 두위봉(斗圍峰) 등이 있으며 그 북쪽은 화암면의 일부를, 남쪽은 신동읍을 형성하였다.

남한강 상류가 관류하고 있는 정선에는 오대천, 석항천, 지장천, 용탄천, 어천, 골지천, 임계천, 송현천, 송천, 봉산천 등 10개의 하천이 있다.

평창군 대관령면에서 발원한 송천과 삼척시 하장면에서 발원한 골지천이 여량면에서 합류하고, 북평면 나전리에서 오대천과 합류하여 정선읍에 이르러, 화암면 백전리에서 내려오는 어천과 합류하며, 갈래산에서 발원하여 고한읍 · 사북읍 · 남면을 관류(貫流)하는 지장천과는 가수리에서 합류하여 남한강을 이루어 충청 · 경기 · 서울을 지나 서해로 유입한다.

내륙 산간에 위치하므로 대륙성 기후의 특성이 나타난다. 연 최고기온은 25.2℃이며, 최저기온은 -6.0℃이다. 2013년 연강수량은 1,250.2㎜이며, 2012년에는 965.1㎜이었다.

해발고도가 높은 산간 지역이 많으므로 고랭지의 분포가 넓다. 따라서 첫 서리가 빠르고 또한 늦게까지 서리가 내리므로 겨울이 길고 식물의 생육 기간이 짧다. 이른 봄에는 태백산맥과 동해의 영향으로 샛바람이 많이 불며 그 피해가 적지 않다.

역사

구석기시대에 인류가 거주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가까운 지역인 제천에서 구석기시대의 유물이 발견된 것으로 보아 남한강으로 연결되는 이 지역에서도 이른 시기부터 인류가 거주하였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측된다.

임계천과 구절천(九切川)이 만나는 강변과 북평면 남평리 강가에 고인돌군이 남아 있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현으로 668년(보장왕 27)에 잉매현(仍買縣)이라 불렸으며,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지금의 이름인 정선으로 개칭되어 명주(溟州)에 소속되었다.

고려시대에는 940년(태조 23)에 삼봉(三鳳)으로 불리었고, 1018년(현종 9)에는 주진군(朱陳郡)으로 개칭되고 지군사(知郡事)가 파견되었다. 1291년(충렬왕 17)에 도원군(桃源郡)으로 되었다가 1310년(충선왕 2)에 침봉군(沈鳳郡)으로 개칭되고, 1353년(공민왕 2)에 다시 정선군으로 환원되었다.

조선시대에는 1466년(세조 12)에 원주의 관할령이 되었으며, 이듬해 정선군으로 부활되어 조선 말기까지 계승되었다. 1895년에 강원도에서 충주부 관할로 이전되었고, 다음 해인 1896년에 13도제를 실시하면서 다시 강원도 관할이 되었다. 1906년에 강릉군 임계면 · 도암면과 평창군 신동면이 정선에 편입되어 6개 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1907년 11월에 임계역에서 일본의 조선 진출에 항거하는 의병들의 봉기가 일어나 100여 명이 접전을 벌였다. 같은 해 12월 정선읍에서 의병 50여 명의 항거가 있었으며, 1908년 6월에는 동면 몰운리에서 의병 120명이 교전하였다.

1919년에 3 · 1운동이 일어나자, 정선에서는 처음에 천도교인에 의해서 운동이 추진되었는데, 그 비밀 정보를 입수한 일제는 이들을 검거하였다. 이에 4월 1일에는 정선읍민 수백 명이 모여 태극기를 들고 만세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동면 · 남면 · 북면에서는 밤에 수백 명씩 산에 올라가 불을 놓고 만세를 불렀다.

1924년에 서면이 정선면에 병합되었고, 1931년에 도암면이 평창군에 편입되었다. 1935년에 정선면 일부가 평창군 진부면에, 신동면 일부가 영월군 상동면에 각각 편입되었다. 1948년에 신동읍 조동리에 대한석탄공사 함백광업소가 문을 열게 되면서 이 지역의 탄광 개발이 시작되었다.

1950년 6 · 25 당시 이 지역은 공산 치하에 들어갔고, 같은 해 9월 수복되었다가, 1951년 1월 다시 공산 치하에 들어갔으나 2월 아군이 북상하여 탈환하게 되었다. 1957년에 제천에서 영월을 잇는 철도가 정선군까지 연결되어 석탄 수송이 용이하게 되면서, 1959년에 사북지역의 탄전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에 이르렀다.

1973년 7월 1일에는 정선면과 동면 사북출장소가 각각 읍으로 승격되어 2읍 5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이때 삼척군 하장면 가목리와 도전리가 임계면에, 명주군 왕산면 구절리와 남곡리가 북면에, 신동면 천포리가 영월군에 각각 편입되었다.

1974년에 태백선이 완공됨에 따라 이 지역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석탄 공급지가 되었다. 그러나 1980년에 탄광 근로자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는 사북 사태가 발생하여 세간의 주목을 끌기도 하였다. 이해 12월 1일에는 신동면이 읍으로 승격되었고, 1985년에는 사북읍이 고한읍과 사북읍으로 나누어졌다.

1986년에 북면의 북평출장소가 북평면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에 임계면 봉정리가 북면에 편입되었다. 2009년 5월 1일에 동면이 화암면으로, 북면이 여량면으로 각각 개칭되었다.

유물 · 유적

정선군에는 2013년 기준으로 국가지정문화재 7개, 강원도지정문화재 11개가 있다. 국가지정문화재로는 보물 1개, 천연기념물 5개, 중요민속자료 1개가 있고, 강원도지정문화재로는 유형문화재 3개, 기념물 5개, 민속자료 1개, 문화재자료 2개가 있다.

선사시대 유적으로는 1935년에 조사된 여량면 여량리 고인돌 5기를 비롯하여, 정선읍 덕송리 고인돌 3기, 북평면 남평리 고인돌 2기가 있으며, 마제석검 · 토기 · 석촉 등 청동기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통일신라시대의 고분인 정선읍 신월리고분군은 1963년에 파괴되었으나, 임계면 봉산리 석곽묘에서는 1966년 긴목단지 1점이 발굴되었다.

정선읍 봉양리의 고려시대 고분에서는 1965년 청자주전자 · 청자대접이 발견되었고, 덕송리의 고려 고분에서도 1968년 청자상감석류국화문대접 · 청자상감초화문잔 · 청자상감삼조선문대접 · 청동수저 등이 각각 1점씩 출토되었다.

성지로는 정선읍 신월리의 정선읍성, 애산리의 애산성(愛山城) · 기우산성(祈雨山城), 임계면의 정선 송계리산성 및 고분군(강원도 기념물, 1995년 지정), 신동읍의 정선 고성리산성(강원도 기념물, 1994년 지정)이 있다.

불교문화유적으로는 고한읍 고한리의 정암사 수마노탑(국보, 2020년 지정) · 정암사 적멸보궁(강원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 정암사탑중수비 · 자장율사유골함을 비롯하여, 북평면 북평리의 석대동석탑(石坮洞石塔), 정선읍 용탄리의 벽탄사석탑(碧呑寺石塔) 등이 있다.

사찰로는 정암사 · 적조암(寂照庵) · 수광암(水光庵) · 우암사(雨巖寺) · 옥갑사(玉甲寺) · 성불사(成佛寺) · 수정사(水淨寺) · 보정사(普淨寺) · 성능사(成能寺) · 용운사(龍雲寺) · 환선암(喚仙庵) 등이 있다.

유교 문화재 및 고건축물로는 정선읍 봉양리의 정선향교(강원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 숙청당(肅淸堂), 광하리의 선암정(仙巖亭), 남면 낙동리의 서운재(瑞雲齋), 임계면 봉산리의 구미정(九美亭) 등이 있다.

숙청당은 비봉산(飛鳳山) 아래 정선향교의 문묘 대성전 동쪽에 있는 사우로, 중국의 5성(五聖)과 송조5현(宋朝五賢)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서운재는 정선전씨의 중시조 전훤(全愃)을 제사 지내는 재실이다.

구미정은 남한강 상류인 골지천 천변의 넓은 암석 위에 세워진 정자로, 이 정자를 중심으로 주위의 경치가 아홉 가지 특색이 있다고 하여 이러한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건물터로는 정선읍에 도원관(桃源館) · 관아터 · 향청터 · 읍창터 · 동창터 · 남창터 · 사직단터가 남아 있다. 고가옥으로는 정선읍 봉양리의 정선 상유재 고택(강원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 임계면 봉산리의 정선 수고당 고택(강원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이 있다.

이종후가에 있는 외재 이단하(畏齋李端夏) 내외 옷(국가민속문화재, 1965년 지정)인 중치막 · 대례복 · 누비저고리 · 봉대(鳳帶) · 도토락댕기 · 다래 · 용잠(龍簪)은 조선시대 의복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아울러 정암사의 자장율사금란가사(慈藏律師錦襴袈裟)도 의복사 연구의 중요 자료이다.

「정선아리랑」(강원도 무형문화재, 1971년 지정)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아우라지 나루터는 북쪽에서 흘러내려오는 구절천(또는 송천)과 남동쪽에서 흘러 들어오는 골지천이 여량면 여량리에서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나루터인데 예로부터 「정선아리랑」의 발상지로 전해지고 있다. 정선읍 봉양리의 비봉산 기슭에는 「정선아리랑」을 보존하기 위하여 세운 아리랑비가 있다.

절경으로는 정선읍 봉양리의 의상대(義湘臺), 화암면 몰운리의 몰운대(沒雲臺), 남면 무릉리의 찰어대(察魚臺), 낙동리의 관어대(觀魚臺)가 있다. 또한 사적지로는 남면 낙동리의 거칠현동(居七賢洞)과 백이산(伯夷山)이 있는데 이곳은 고려가 망할 때 고려의 일곱 신하가 숨어 살며 망국의 한을 품고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곳이라 전한다.

화암면 화암리의 화암굴(강원도 기념물 제33호), 정선읍 용탄리의 비룡굴(강원도 기념물, 1980년 지정)도 유명하며, 북평면 남평리의 의총(義塚)은 1906년 의병장 신광식이 이끌던 부대가 왜군과 격전을 벌이다 50여 명이 전사한 곳에 시신을 합장한 것이다.

천연기념물로는 화암면 화암리의 화암동굴(천연기념물, 2019년 지정), 고한읍 고한리 정암사의 열목어 서식지(천연기념물, 1962년 지정), 여량면 일대의 반론산(半論山) 철쭉나무 및 분취류 자생지(천연기념물, 1986년 지정)가 있다. 노거수로는 정선읍의 봉양리 뽕나무(강원도 기념물, 1971년 지정) · 봉양리 은행나무 · 가수리 느티나무 등이 있다. 정선읍 회동리에는 정선 강릉부 삼산봉표(강원도 유형문화재, 1994년 지정)가 있다.

교육 · 문화

조선시대에는 정선읍 봉양리 삼봉산(三峰山) 아래에 향교가 있었으나 대홍수로 유실되었다. 이때 이에 대한 기록은 없어졌으나 1110년(예종 5)에 창건된 것을 알려졌다. 그 뒤 1732년(영조 8)에 현감 신치근(申致謹)이 다시 봉양리에 정선향교를 건립하였으며 지금까지 10여 차례의 중수를 거쳐 보존되고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1912년 정선공립보통학교가 최초로 설립되었고, 그 뒤 1920년대에 임계공립보통학교와 화동(華東)공립보통학교가, 1930년대에는 벽탄(碧灘)공립보통학교와 여량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어 초등교육의 출발을 보게 되었다.

중등교육기관으로는 1946년 정선중학교가 정선읍 봉양리에, 1950년 정선종합고등학교가 역시 봉양리에, 1954년 화동중학교가 화암면 화암리에 각각 설립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은 초등학교 16개교, 중학교 9개교, 고등학교 7개교가 있다.

1984년 개원한 정선문화원은 정선아리랑제 등 각종 문화예술 행사를 주관하고 자료의 연구 결과를 출판하여 향토 문화의 계승 · 개발에 공헌하고 있다. 기타 문화단체 및 시설로는 공공공연장, 전수회관, 공공도서관, 문화의 집 등이 있다. 체육시설로는 실내체육관, 종합경기장 등이 있다.

민속

정선의 민속놀이로는 연날리기 · 윷놀이 · 널뛰기 · 놋다리밟기 · 줄다리기 등을 들 수 있다. 연날리기는 동지에서부터 정월 보름까지 성행하는 놀이로, 처음에는 연을 하늘 높이 띄우는 경기를 벌이다가 상원(上元)에는 ‘厄(액)’ 자가 적힌 연을 날려보냄으로써 한 해의 액을 없앨 수 있다고 믿는다.

옛날에는 유래가 있는 연이 떨어진 곳을 신성시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곳 여량면 여량리에서도 단종의 연이 떨어진 곳에 서낭당을 지어 왜거리성황사라 불렀다고 한다.

놋다리밟기는 대보름날 밤 처녀들이 달맞이 뒤에 하는 놀이이다. 처녀들이 일정한 장소에 모여 일렬로 앞사람의 허리를 붙들고 몸을 구부려 다리를 만들면, 선출된 소녀가 이들의 어깨를 밟고 건너간다. 이 때 위에 선 소녀가 “이 다리가 뉘 다리인고.”하고 선창하면 줄지은 여자들은 “청계상에 놋다리일세.”하고 받으면서 즐겁게 논다.

이 밖에도 영갈 또는 갈령이라고 부르는 행사가 있는데, 이는 모심기 전 소만(小滿) 때에 갈풀을 베는 행사로, 농경 습속에 속하는 행사이다.

정선에는 서낭당이 남아 있는 곳이 많아 ‘당고사’라 불리는 서낭당제를 지낸다. 대부분의 제가 정월과 3월 중에 거행되고, 당사가 없는 곳에서는 신목이나 신단(神壇)에서 제를 지낸다. 신위는 지역에 따라 다른데, 정선군의 경우에는 ‘성황지신’ · ‘토지지신’ · ‘여역지신’의 신위를 모시고 있다.

서낭제는 신앙 행사가 주된 내용이기는 하지만 정선에서는 신앙 행사 외에 마을의 일까지 맡고 있어 제의 모임에서 동회의 성격을 지닌 지역회의가 열려 마을의 대소사를 비롯한 공동 문제가 토의된다.

제의 비용은 마을에서 추렴하는데 임계면 임계리의 경우는 가구마다 백미 5홉 정도로 하고 있다. 헌관이나 유사로 천거된 사람은 제를 지내기 수일 전부터 대문에 황토를 깔고 금줄을 쳐 부정을 막고 근신한다.

특이한 동제로는 임계면의 ‘무연고자제’가 있는데, 이는 임계면에서 거주하다 죽을 때 연고자가 없어 재산을 면에 기증한 13명의 신위를 모시고 매년 10월 15일에 면내 유지가 한자리에 모여 합동제를 지내는 것이다. 제의 비용은 이들이 기증한 재산으로 충당하며, 전통적인 동제와는 신위도 다르고 제행 의식도 다르지만 면 전체가 합동으로 지내는 점에서 동제의 성격을 가진다.

설화 · 민요

산수가 수려하기로 이름난 정선에는 주로 지명 · 풍수설화가 많고, 간혹 도적이 등장하는 설화도 전해진다. 고려시대에는 이 고장의 지명이 무릉도원에서 유래한 ‘도원(桃源)’이었는데, 이와 관련되는 「계룡잠(鷄龍岑)의 비장지(祕藏地)」라는 설화가 있다. 이는 여량면 상원산(上元山)의 한 곳에 계룡잠이 비장되어 있다는 전설이다.

옛날에 포수 한 사람이 사슴을 쫓다 보니 사슴은 간 곳이 없고 암벽에 굴이 나 있었다. 포수가 그 굴 속으로 한참 들어가 보니 햇빛이 비치고 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으며 평화로운 별천지 세계가 있었다. 포수는 이곳을 나와 가족을 데리고 들어가 살 양으로 다시 찾아갔으나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당시 정선 사람들은 정선 어딘가에 이런 별천지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구영소전설」은 소(沼)에 얽힌 이야기이다. 옛날 벼슬을 너무나 하고 싶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한 신문녕(辛文寧)이라는 선비가 실망하여 이 소에 빠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뒤로 밤마다 이 고을 원님의 꿈에 산발을 하고 나타나 좌수(座首)를 시켜주지 않은 원한을 호소하였다.

이에 원님이 죽은 신문녕에게 좌수를 추증(追贈)하고 위령제를 지내주었더니 꿈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 소 이름을 선비 신문녕이 빠져 죽은 곳이라 하여 문녕소(文寧沼)라 하였는데, 와전되어 오늘날 구영소라 한다.

장자못전설인 「왕바위서리전설」도 전해진다. 정선읍에 황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중이 시주를 청하자 소똥을 주며 괄시하였다. 중은 황부자네가 곧 망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황부자는 화가 나서 머슴인 왕바우를 시켜 중을 잡아오도록 하였다. 그러나 중을 잡으러 나선 왕바우는 조양강(朝陽江)에서 화석이 되고 황부자네는 망해버렸다고 한다.

의상대와 화주일춘(化主一春) 설화는 정선읍 봉양6리에 있는 옛날 관음사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관음사에는 일춘대사라는 중이 있었는데, 불도에 정통(精通)하여 세인의 존경을 받아 왔다. 한때 일춘대사는 관음벼루 절벽 아래다 인마(人馬)가 통행할 수 있는 교량을 가설하겠다고 민가의 재물과 고철을 수집하였으나 당초의 약속과는 달리 약속을 어기고 이를 팔아 착복하여 부자(富者)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불문(佛門)에 죄를 얻은 대사는 얼마 후 부처님의 죄를 받아 큰 먹구렁이로 변해 통로를 가로막아 관음사를 찾아드는 행객(行客)은 끊어지고 절은 얼마 안가서 쑥대밭에 묻히게 됐다. 그로부터 십여 년 세월이 흘러간 후 어느 해 봄의 일이다. 때마침 청운(靑雲)의 뜻을 품고 서울로 과거보러 가던 선비 네 사람이 정선을 지나가게 되어 주막에서 유숙하였다.

그중 한 사람의 꿈에 백 살 노인이 머리에 송낙을 쓰고 목에는 백팔 염주를 걸고 점란가사에 구절죽장을 짚고 와서 합장하고 허리를 구부려 정중히 절을 하며 “나는 이곳 관음사에 있는 중으로 불문에 득죄(得罪)하여 뱀으로 변신된 지 오래였는데 지금 다행히 귀인을 만났으니 바라건대 공(公)은 노고를 아끼지 말고 화주일춘(化主一春) 네 자만 관음벼루 석벽에 새겨 왕래하는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하여 주면 공은 이번 과거에 급제할 것이며 소승도 불문의 죄를 면하게 될 것이니 내 말을 잊지 말고 꼭 새겨 달라.”라고 당부했다.

선비가 잠을 깨니 꿈이라 이상히 여겨 일행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주막 주인에게 사실을 물어보니 그런 일이 있다 하여 중의 말대로 글씨를 새길 것을 결심하니 같은 일행 중 자기 혼자 과거에 급제하기보다는 다 같이 급제하는 것이 옳지 않으냐 하며 네 사람이 뜻을 모아 한 자씩 화주일춘 넉 자를 새겨놓고 한양길을 떠났다.

그 후 신기하게도 모두 급제하여 금의귀향했으며 관음벼루 절벽에 가로누워 행인의 발길을 막던 구렁이는 자취를 감추고 행인은 마음 놓고 이곳을 통행할 수 있게 되었다 전한다. 이외에도 샘물이 한 해의 한발과 홍수를 예시하였다는 「영천설화(靈泉說話)」와 도적을 감화시킨 좌수의 이야기 등이 있다.

정선에는 다양한 민요가 전래되고 있으나 대표적인 것은 역시 「정선아라리」이다. 아리랑 중에는 「진도아리랑」 · 「밀양아리랑」 · 「강원도아리랑」 등이 있으나, 여전히 생활 속에서 활발하게 불리는 것은 「정선아라리」가 으뜸이다. 명칭에 있어서, 정선 사람들은 ‘아리랑’이라 하지 않고 꼭 ‘아라리’라고 한다. 그러므로 ‘정선아라리’라 명명하는 것이 올바를 것이다.

「정선아라리」는 정선군 자체에서뿐만 아니라 몇몇 대학의 학술조사반에 의하여 조사, 정리된 바 있는데 조사된 것만도 수 백 편에 이른다. 「정선아라리」는 개인적인 노동, 즉 김맬 때, 삼 삼을 때, 밭 맬 때, 나무할 때, 나물을 뜯을 때 등에 결부되어 불리는 노동요로서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

「정선아라리」에는 지역적 특성이 많이 나타나 있다. “한치 뒷산에 곤두레딱주기 나즈미맛만 같다면/ 고것만 뜯어먹어도 봄살어나지.”, “정선읍내 일백오십호 몽땅 잠들어라/ 임호장네 맏며느리 데리고 성마령 넘자.”처럼 지역적 사정과 특성을 제재로 한 아라리가 많다.

「정선아라리」는 편수가 많은 탓으로 생활에서 만나고 느끼는 모든 부면(部面)을 담고 있다. 즉 내용과 주제가 대단히 다양하다. 이런 까닭에 정선군에서 편찬한 『정선아라리』(1977)는 「정선아라리」를 수심편(愁心篇) · 산수편(山水篇) · 애정편(愛情篇) · 처세편(處世篇) · 무상편(無常篇) · 엮음편으로 분류하고 있다.

또한 사회적 · 시대적 흐름을 일별할 수 있을 만큼 아라리의 관심은 폭이 넓다. 예를 들면 “반달같은 우리오빠는 대동아전쟁 갔는데/ 샛별같은 우리올케는 독수공방 지키네.”라거나, 현재의 분단 현실을 아라리로 고민하고 있는 “사발그릇은 깨어지며는 세네쪽이 나고/ 삼팔선이 깨어진다며는 한덩어리로 뭉치네.”와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정선아라리」의 후렴은 부분적으로 조금씩 다른 경우도 있으나 대개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고개로 나를 넘겨주게.”의 한가지로 불린다. 그러나 이러한 후렴이 각 편마다 연결되어 불리는 것은 아니며 가끔 한 번씩 끼워 넣을 뿐이다.

「정선아라리」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또 가장 많이 불리는 가사는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이다.

「정선아라리」 중에 ‘엮음아라리’라 불리는 복잡한 율격의 노래가 있다. 가사는 “우리집에 서방님은 잘났던지 못났던지/ 얽어매구 찍어매구 장치다리 곰배팔이/ 노가지나무 지게에다 엽전십냥 걸머지구/ 강릉 삼척에 소금사러 가셨는데/ 백봉령 구비구비 부디 잘 다녀 오세요.”와 같다. 「정선아라리」는 미약하게나마 오늘날에도 재창작되고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 중 하나이다.

산업 · 교통

산간내륙지방이기 때문에 농경지는 그 규모가 작고 소규모 하곡평야와 하성단구 및 고위평탄면 등에 분포하고 있을 뿐이다. 2013년 기준으로 경지면적은 107.26㎢로 전체 면적의 8.8%를 차지한다. 그중 논이 7.99㎢, 밭이 99.27㎢로 밭이 훨씬 많다. 농가는 3,422가구, 농가인구는 8,634명으로 모두 감소 추세에 있다.

주요 농산물은 옥수수 · 콩 · 메밀 · 감자 · 대마 · 잎담배 등이며 천궁 · 황기 등의 약초도 재배된다. 최근에는 도로가 확장, 포장되어 교통이 편리해짐에 따라 여량면 · 임계면과 신동읍 등지에서 고랭지 채소의 재배가 활발하다. 임계면 반천리와 북평면 봉화치(烽火峙)에서는 장뇌(산양삼)가 재배된다.

한우 · 젖소 · 돼지의 사육은 감소 추세에 있으나 사슴 · 산양 · 오리 사육은 증가하고 있다. 산양은 정선읍 · 신동읍에서, 오리는 정선읍 · 화암면에서 많이 사육된다. 양봉은 꾸준하며 북평면이 중심지이다.

2013년 기준으로 임야는 1,042.54㎢로 전체 면적의 85.5%를 차지한다. 그중 국유림 618.83㎢, 공유림 75.98㎢, 사유림 305.02㎢이다. 임상별로는 입목지 986.79㎢ 중 침엽수가 351.87㎢, 활엽수가 363.38㎢, 혼효림이 271.54㎢이다.

임산물은 종실류가 중심인데, 대추가 여량면 · 남면 · 신동읍 · 화암면, 잣이 남면 · 화암면 · 정선읍, 도토리가 남면 · 고한읍 · 사북읍 · 여량면 · 북평면, 밤이 정선읍 · 임계면 · 화암면 · 북평면 · 신동읍 · 여량면 등에서 주로 생산된다. 송이 · 표고 등의 버섯류는 임계면과 화암면을 중심으로 생산되고, 산나물은 남면이 중심지이다.

정선군은 무연탄 · 금 · 구리 · 철 · 아연 · 중석 · 고령토 등의 지하자원이 매장된 지역이다. 원래는 금 · 은을 약간 채굴하는 정도였으나, 1948년 대한석탄공사 함백광업소가 신동읍에서 채굴을 시작한 이래 1959년부터 삼척탄좌가 고한에서, 1960년부터 동원탄좌가 사북을 중심으로 무연탄을 채굴함으로써 남한의 중요한 무연탄 산지로 발전되어 신동읍 · 고한읍 · 사북읍 등에 탄광취락이 발달했다.

그러나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에 의하여 무연탄이 감산됨에 따라 점차 쇠퇴하고 있다. 이 밖에 석회석은 신동읍과 남면, 금 · 은은 임계면, 철은 남면, 아연 · 고령토는 신동읍 · 정선읍에서 산출된다. 제조업의 발달은 미약하나, 1990년 남면 무릉리에 증산농공단지와 1993년 신동읍에 함백농공단지가 지정 · 개발되고 있어 앞으로의 성과가 기대된다.

상업활동은 예로부터 정기시장(5일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1770년대 군내에는 읍내장이 4 · 9일, 화암리 동면장이 1 · 6일, 별어곡(別於谷) 남면장이 2 · 7일에 개설되는 등 3개 시장이 있었으나 1883년대에는 군내장(읍내장) 1개만이 4 · 9일에 개설되었다. 1912년에는 읍내장이 2 · 7일, 임계면 송계리의 임계장과 남면 무릉리의 증산장이 5 · 10일, 신동면 예미리의 예미장이 4 · 9일에 개설되는 등 4개로 증설되었다.

1923년에는 읍내장 · 임계장 · 예미장 등은 개시일의 변동이 없었고, 남면 증산장이 폐쇄되는 대신 동면 화암장이 4 · 9일로 부활되었다. 또 북면 여량리의 여랑장이 신설되어 1 · 6일에 개설됨으로써 5개로 증설되었다. 1926년에는 1923년과 같은 5개의 장에 남면 문곡장(文谷場)이 3 · 8일에 개설되어 6개로 증설되었다.

1938년에는 읍내장 · 임계장 · 예미장 · 화암장 · 여량장 등은 변동이 없으나 문곡장이 5 · 10일로 바뀌고, 임계면 골지리에 골지장이 4 · 9일, 사북장이 3 · 8일에 개설되는 등 8개로 증설되었다. 1976년에는 읍내장(상설) · 임계장 · 여량장 · 사북장은 변동이 없으나 화암장이 3 · 8일로 바뀌고 나전장이 4 · 9일에 개설되어 6개로 감소되었다.

1994년에는 읍내장(상설) · 임계장 · 여량장 · 나전장은 변동이 없으나 화암장이 4 · 9일에 개설되는 등 5개로 감소되었고, 1995년에는 남면 무릉리에 증산장이 개장되었다. 한편, 사북읍과 고한읍에는 상설장이 개설되었다.

상수도는 1966년 4월 20일 정선읍 덕송리 상수도(당시 2,200T/D)를 기점으로 최초 사업인가 후 1971년 정선읍 지역에 급수를 시작하였다. 2013년 기준으로 군 전체에 78.4%의 보급률을 보이고 있는데, 사북읍이 96.4%로 가장 높다.

주택 보급률은 2013년 기준으로 100.18%로 단독주택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나 석탄산업 합리화 조치에 따른 지역경기 침체와 주민 이주로 인해 공가가 많이 생기고 있다.

광산지역의 발전과 함께 광산 근로자의 수요에 의하여 사북 연세병원과 근로복지공사 정선병원이 설립되어 광산 근로자와 일반인 및 농촌지역 주민들의 건강관리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지역주민의 의료수요 욕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보건소, 보건지소를 이전, 신축, 개 · 보수하여 포괄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다른 도시에 비해 병원 및 의사보유 현황이 매우 열악한 실정이다.

산간내륙지방이므로 주변지역과는 높고 험한 고개나 터널을 통하여 연결된다. 자동차 도로의 개설은 북동으로 북평과 연결되면서 시작되었고, 영월을 거쳐 제천으로 연결된 것은 일제강점기 후기부터이다.

정선읍을 중심으로 42번 국도가 평창군 · 동해시와, 35번 국도가 임계면을 남북으로 뻗어 강릉시 · 태백시와, 59번 국도가 남북으로 영월군 · 평창군과, 신동읍 · 사북읍 · 고한읍에는 38번 국도가 동서로 뻗어 영월군 · 태백시와 각각 연결된다.

철도는 1957년 신동읍의 예미, 함백까지 산업철도인 함백선(咸白線)이 개통된 이후 지하자원을 개발하기 위한 철도가 1966년에 예미∼증산∼고한까지 이어지고 그 뒤 황지까지 연장되어 영동선(嶺東線)과 이어지게 되었다.

1967년 증산에서 정선읍까지 정선선이 개통되었고, 이어 1974년 여량면의 구절까지 연장됨으로써 각종 자원의 수송이 원활해졌다. 한편 여량면 여량리에는 나루터의 기능이 상실된 아우라지 나루터가 있다.

관광

정선은 산간벽지로 교통은 불편하지만 산수가 아름답고 인심이 좋다. 그래서 예로부터 “울고 왔다가 울고 간다”는 말이 전해 오며, 고려 망국(亡國)의 한이 담겨 500여 년 간 민족의 노래로 불리어온 정선아리랑의 본 고장이다.

관광지로는 화암면의 화암팔경, 정선읍의 가리왕산, 여량면의 아우라지, 임계면의 구미정(九美亭) 등이 유명하다. 화암팔경은 화암면 화암리에 있는 절경 중 특히 아름다운 8곳을 가리키는 말로, 화암약수터 · 거북바위 · 용마소(龍馬昭) · 화암동굴 · 화표주(華表柱) · 신선암(神仙巖) · 설암[小金剛] · 몰운대 등이다.

화암약수터는 주변의 산세가 아름다워 설악산에 비길 만하고, 약수도 위장병 · 피부병 · 안질 등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설암은 옛날부터 소금강으로 널리 알려진 명승이다. 수천 척의 층암절벽이 하늘 높이 솟아 있는 기묘하고 장엄한 형상은 금강산을 방불하게 한다.

몰운대는 화암8경 중 제일 가는 곳이다. 층암절벽으로 된 천연의 누대로 100여 명이 앉을 수 있는 광활한 반석이 있고, 반석 아래에는 몰운계곡의 푸른 물이 폭포를 이루고 있다. 군내에서 제일 높은 가리왕산에는 주목과 잣나무 등이 자라고, 특히 산삼을 비롯하여 각종 약초의 산지로 유명하다.

이들 외에 고한읍의 정암사에는 수마노탑 · 적멸보궁 · 열목어 서식지가 있다. 남면에는 고려 유신들이 살았다는 거칠현동과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억새풀이 자라는 민둥산이 있다.

정선읍에서는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목문석(木紋石)과 칠보석(七寶石)이 채석되는데 이것으로 화병 · 항아리 · 재떨이 · 담배통 등의 석조 공예품을 만든다. 특히 정선 5일장이 널리 알려져 관광열차가 운행되고 있으며, 관광버스 및 승용차 등을 이용한 관광객의 수요가 크게 증가하여 지역경기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

지역 축제로는 읍 · 면별로 두위봉 철쭉제 등의 7개의 다양한 관광이벤트 행사를 개최하여 정선 관광홍보에 앞장섰으며 이를 통하여 지역주민들의 관광소득이 향상됨으로써 침체된 지역경기가 회생하는 국면을 맞이할 수 있었다.

특히 정선아리랑제를 개최하여 향토문화의 보존과 계승 발전 및 군민화합과 참여의 축제문화를 실현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정선읍 일대에서 매년 10월 펼쳐지는 정선아리랑제는 정선아리랑제위원회가 주관하며, 주요 행사는 칠현제례, 뗏목아라리 재연, 주막아라리 한마당, 정선아리랑 시연 등이 있다.

조양강 둔치에서 진행되는 조양강변축제는 피서철인 8월에 개최되며, 주관은 정선청년회의소가 담당하고 있으며, 주요 행사는 조양강변 음악회, 길거리 농구대회, 옥수수 먹기 대회, 수박 먹기 대회 등이 있다.

사북읍에서 개최되는 석탄문화제는 매년 6월경에 사북시장 복개천 광장에서 진행되며, 주관은 사북석탄문화제추진위원회가 담당하며, 주요행사는 산업전사 위령제, 사물놀이, 유라예술단 공연, 연탄만들기 등이 있다.

신동읍에서 펼쳐지는 두위봉 철쭉제는 매년 5월 말경에 개최되며 단곡계곡이 주 행사 무대이다. 함백청년회의소가 담당하고 있으며, 두위봉 산신제, 환경등반대회 등을 행한다.

화암면에서 개최되는 화암약수제 매년 4월 경에 시작하며, 화암약수제추진위원회가 주관한다. 주요 행사는 약수제례, 삼베 짜기, 삼베 삼기, 새끼 꼬기, 짚신 삼기 등이 있다.

남면에서 개최되는 민둥산 억새꽃축제는 가을 단풍철 축제로 명성이 높다. 민둥산 억새꽃추진위원회가 주관하며 등반대회, 산신제, 메아리대회, 약수 마시기 대회 등이 진행된다.

여량면의 아우라지 뗏목축제는 매년 7월 말에 펼쳐진다. 여량면번영회에서 주관하는데, 주요 행사는 뗏목 진수식, 목도시연, 아리랑경창 대회 등이 있다. 임계면의 감자축제는 매년 8월 임계중 · 고등학교와 임계초등학교에서 개최된다. 주요 행사는 면민노래자랑, 감자 깎기, 장승 깎기, 왕감자 선발, 감자 정량달기 등이 있다.

전시관 및 박물관으로는 문화 관광의 체험공간을 조성하기 위해 향토박물관과 금광촌이 2004년 7월 16일에 개관하였다. 종래에는 박물관의 역할이 유물의 수집, 보관, 전시 중심의 교육이었으나 최근에 와서는 우리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관광명소 및 일반인들이 쉽게 찾을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 향토박물관은 진열장 나열식 개념에서 탈피하여 디오라마 연출이나 축소모형 등의 다양한 전시기법을 활용함으로써 내외국인 모두가 특별한 지식이 없어도 정선의 생활문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금광촌은 우리나라 금광 역사의 상징성을 부여하고 금을 테마로 한 보고 느끼고 체험하며 쉴 수 있는 금광촌락을 구성하였다. 또 관광객들이 떠들썩한 분위기 속에서 전통음식을 맛볼 수 있는 저잣거리를 마련하여, 즐기는 가운데 전통문화를 체험하고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읍 · 면
  1. 정선읍(旌善邑)

정선읍은 역사상 잉매, 정선, 삼봉, 도원 등으로 지명이 자주 바뀌었으나 1353년(공민왕 2)에 다시 정선으로 개칭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선군의 군청 소재지로서 정치, 행정, 경제, 교육,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면적은 213.82㎢이고, 인구는 1만 1731명(2013년 기준)이다. 읍 소재지는 봉양리이다.

정선읍은 군내 최고 명산인 가리왕산을 비롯해 조양산, 비봉산 등이 겹겹이 에워싸고 있는 해발 300m 이상의 산간 계곡 지대로 전체의 82.8%가 임야로 구성되어 있다. 농경지는 전체 면적의 10.9%를 차지하고 있으며 전작 위주의 전형적인 농업지역으로 소규모 재배면적 및 경사지 재배로 영농의 기계화에 어려움이 있다.

남한강 상류인 조양강이 읍의 중심부를 흐른다. 넓은 들은 볼 수 없으나 산간계곡이 수려하여 관광지로서 천혜의 조건을 구비하고 있어 하절기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회동리와 용탄리 사이에는 석회암 지층의 카르스트 지형이 나타나며, 광하리에는 곡류의 절단에 의하여 형성된 구하도(舊河道)가 발달해 있어 학술적으로 중요시된다. 한편, 솔치재와 반점치에는 하성단구의 증거인 사력(砂礫)의 퇴적 지층이 잘 나타나 있다.

미곡의 생산은 부진한 편이나 옥수수 · 콩 등의 생산이 군내 1위이고, 채소 · 잣 · 밤의 생산과 양봉도 활발하다. 광물로는 석회석 · 고령토 · 무연탄 등이 산출된다.

42번 · 59번 국도가 읍의 중앙을 지나 평창군, 영월군, 동해시 등지와 연결된다. 한편, 정선선의 정선역이 있어 태백선과 연결되고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봉양리에 고학규가옥 · 숙청당 · 절터 · 고분 · 정선향교, 용탄리에 비룡굴, 덕송리에 지석묘, 광하리에 선암정 · 구미정 · 수교당, 애산리에 애산산성 및 정선읍성 등이 있다. 경승지로는 덕우리에 동계12경(東溪十二景)이 있다.

봉양(鳳陽) · 애산(愛山) · 북실(北實) · 신월(新月) · 덕우(德雨) · 여탄(余呑) · 덕송(德松) · 용탄(龍灘) · 광하(廣河) · 귤암(橘巖) · 가수(佳水) · 회동(檜洞) 등 12개 리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교(분교 1개교),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2개교가 있다.

  1. 고한읍(古汗邑)

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읍이다. 면적은 52.72㎢이고, 인구는 5,194명(2013년 기준)이다. 읍 소재지는 고한리이다.

본래 동면의 일부 지역으로 1962년 이래 동면 사북출장소가 사북 · 고한 · 직전 등 3개 리를 관할하다가, 1973년에 동면 사북출장소 관할 구역이 사북읍으로 승격되었다. 1985년에는 사북읍 사북출장소 관할이 사북읍으로, 고한리 일대가 고한읍으로 각각 분리되었다.

고한읍은 1951년에 임산물 반출을 목적으로 임산도로가 개설되면서 처음으로 자동차가 운행되었고, 1959년에 무연탄 개발이 시작되면서 비로소 외부인의 정착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교통이 불편하여 개발이 부진하다가 1969년에 태백선이 개통되고 전철화됨으로써 급속히 발전하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신흥 탄광도시가 되었다.

고한읍은 지역의 대부분이 해발 700m 이상의 고지대로 함백산 기슭에서 발원하여 흐르는 지장천변에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다. 석탄을 주 연료로 사용하던 1970년대는 우리나라 주요 에너지 공급지로 인구가 3만 5천 명을 상회하였다.

그러나 1989년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의 추진으로 2001년 10월 30일 삼척탄좌 정암광업소 폐광을 마지막으로 폐광지에서 고원관광도시로 변화하고 있는 곳이다. 정주여건 개선과 삶의 질 개선을 위해, 광역상수도 공급, 아파트 건립, ㈜삼탄 폐광부지에 고원스포츠센터 건립, 시장 현대화 사업 추진 등으로 청정고원관광도시로의 변화를 착실히 이루어가고 있다.

2006년에 개장한 강원랜드 골프장과 2008년에 개장한 강원랜드 하이원스키장으로 인해 계절별 테마가 있는 전국 제1의 고원관광지로 입지를 굳혀가고 있다. 또한 인근에 함백산(1,572m)과 백운산(1,426m)이 있어 자연을 즐기는 등산객이 자주 찾기도 한다.

읍 전체가 산간지대에 위치하기 때문에 경지면적은 1.09㎢로 군내에서 가장 좁으며, 논은 없고 밭농사만 행하여진다. 그리고 탄광 종사원을 상대로 한 젖소의 사육과 양돈이 활발하다. 주요 산물로는 무연탄 이외에 정암사의 사찰림에서 자라는 주목(朱木)이 유명하다.

38번 국도가 읍의 중앙을 동서로 지나서 사북, 정선 및 태백과, 414번 지방도가 고한과 태백을 연결하고 있다. 한편, 태백선의 고한역이 있어 영월 · 정선 · 태백 지역과 연결된다.

문화유적으로는 고한리에 정암사 수마노탑 · 정암사 열목어 서식지 · 정선 정암사 적멸보궁과 자장율사금란가사 등이 있다. 고한(古汗) 1개 리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1. 사북읍(舍北邑)

군의 남동부에 위치한 읍이다. 면적은 46.68㎢이고, 인구는 5,630명(2013년 기준)이다. 읍 소재지는 사북리이다.

본래 동면의 일부 지역으로 1962년 이래 동면 사북출장소가 사북 · 고한 · 직전 등 3개 리를 관리해 오다가, 1973년에 사북출장소 관할이 사북읍으로 승격되었다. 1985년에는 읍의 일부를 이루던 고한리 일대가 고한읍으로 분리되었다.

백운산(1,460m)을 비롯하여 지장산과 노목산으로 둘러싸인 해발 600m 이상의 산간 협곡에 자리한 사북읍은 광산 개발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강원랜드와 ㈜왕표화학이 입주하여 지역 경제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으며 농촌마을인 직전리와 사북1리는 배추 등 고랭지 채소와 황기 등 약초재배로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주목할 만한 특징은 석탄산업의 사양화에 따른 지역경기 침체와 급격한 인구감소로 위축된 지역을 살리고자 주민이 단합된 힘을 발휘하여 1995년에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 · 공포되어 고원관광도시로 거듭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2004년 3월 28일 사북 옹구지구에 카지노가 개장되어 하루 평균 4,000여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였고, 2006년 4월 골프장 개장, 2008년 11월 스키장 개장으로 종합 리조트로 발전하고 있다. 2004년 10월 31일에는 ㈜동원 사북광업소가 폐광되었다.

대부분의 지역이 산악지대로 경지면적은 4.09㎢에 불과하며 밭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주요 산업은 사북 일대의 석탄 산업이다. 1951년 임산물 반출을 목적으로 임산도로를 개설함으로써 처음으로 자동차가 운행되었고, 1959년 동고광업소(東古鑛業所)가 무연탄 개발에 착수하면서 비로소 외지인의 정착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교통이 불편하여 개발이 부진하다가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일환으로 태백선이 개통되고, 아울러 전철화됨으로써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신흥 탄광도시가 되었다. 무연탄 외에 직전리의 잣과 도토리가 유명하다.

38번 국도가 읍의 중앙을 통과하여 정선 · 태백과, 412번 지방도와 7번 군도가 화암면과 연결된다. 한편, 태백선의 사북역이 있어 영월군 및 태백시 지역과 연결된다.

사북(舍北) · 직전(稷田) 등 2개 리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1. 신동읍(新東邑)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읍이다. 면적은 119.85㎢이고, 인구는 3,895명(2013년 기준)이다. 읍 소재지는 예미리이다.

본래 평창군에 속하였으나 1906년에 정선군으로 편입되어 신동면이라 불리게 되었다. 1935년에 천포리와 석항리(石項里) 일부가 영월군 상동면 연상리(蓮上里)에, 다시 1973년 천포리 일부가 영월군에 이속되었으며, 1980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북쪽은 곰봉(1,015m), 서쪽은 고고산(高古山, 854m), 남쪽은 예미산 · 직운산, 동쪽은 죽렴산(竹簾山, 1,059m) 등의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북서쪽에는 남한강의 심한 곡류와 이에 따른 하성단구(河成段丘)가 고성리, 덕천리 등지에 발달되어 있다.

광복 직후까지 500가구 정도만이 거주해 군내에서 가장 인구가 희박한 지역이었다. 1948년에 대한석탄공사 함백광업소가 설립되어 석탄 개발이 시작되고, 산업철도인 함백선이 개통되면서 급격히 발전하여 신흥 탄광도시가 되었는데, 그 중심지는 예미리와 조동리였다.

1993년 10월 1일에 43년간 운영되던 대한석공 함백광업소의 폐광으로 함백지역에 공동화 현상이 발생하였다. 이후 대체산업 유치가 미흡하고 농업의 불확실성 등으로 이농현상의 지속과 장기적인 지역경제 침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폐광지역 진흥사업 일환으로 함백지역에 농공단지를 조성하여 기업체 유치에 기대를 모으고 있으나, 제조업체 유치는 지역 입지조건의 불리함과 사회 간접 자본 미비를 이유로 기업체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영월댐 건설과 관련 지역개발이 제한되었던 동강유역 일원을 주민 소득증대와 정주여건이 확충될 수 있는 생태관광(탐방) 시설 등 투자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

무연탄 외에 아연 · 석회석 · 고령토 등이 산출되고, 카바이드 공장이 있다. 함백에는 1993년에 함백농공단지가 지정 · 조성되고 있어 앞으로의 기대가 크다.

경지면적은 17.14㎢에 불과한데, 밭이 16.9㎢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벼농사는 예미 부근에서, 밭농사는 하성단구와 직운산 · 예미산 등의 중복(中腹)에 형성된 평탄면에서 영위되고 있다. 특산물로는 약초 생산이 군내 1위이며, 농산물은 옥수수 · 콩 등의 생산이 군내 2위를 차지한다. 육우와 돼지 사육이 활발하며, 그 밖에 고랭지 채소와 토종꿀이 비교적 많이 생산된다.

38번 국도가 읍의 중앙을 지나 영월 · 사북 · 태백과, 421번 지방도가 남면과, 6번 군도가 정선읍과 연결된다. 한편, 태백선의 예미역이 있어 영월군 및 태백시 지역과 연결된다. 문화유적으로는 고성리에 성지(城址)가 있다.

예미(禮美) · 가사(佳士) · 천포(泉浦) · 고성(古城) · 운치(雲峙) · 덕천(德川) · 조동(鳥洞) · 방제(芳堤) 등 8개 리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분교 1개교),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1. 남면(南面)

군의 중남부에 위치한 면이다. 면적은 127.77㎢이며, 인구는 3,487명(2013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문곡리이다.

본래 정선군 지역으로 군의 남쪽에 위치하여 남면이라 불리었으며, 11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5개 리로 개편되었다. 남면은 정선아리랑의 발상지인 거칠현동이 위치한 고장으로서 총면적의 86%가 임야이고 고랭지 전작 위주의 영농이 주민 대다수의 소득원이 되고 있다.

과거에는 무연탄 및 석회석 광산의 발전으로 지역 경기가 호황을 누려 왔으나 1989년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탄광이 폐광되어 현재는 다소 침체된 분위기이다. 그러나 철도교통의 중심지인 증산지역에 증산 5일장을 유치하여 주민생활의 편익 증진과 지역 특산품 판로를 개척해 가고 있다.

전국 5대 억새풀 지역인 민둥산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관광 상품화하기 위해 민둥산 억새풀 축제를 열고, 민둥산 관광열차를 운행하는 등 지역 이벤트 행사와 민둥산 관광 개발을 통해 많은 관광객을 유치함으로써 탄광지역에서 고원관광 도시로 변모를 꾀하고 있다.

주위가 지억산(芝億山, 1,117m) · 두위봉(斗圍峰, 1,466m) · 계봉(1,028m) · 곰봉(1,015m) 등 높고 험한 산들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평지는 거의 없다. 고한에서 발원하는 동남천(東南川)이 흐르면서 형성한 유평리 · 낙동리 부근의 침식면을 중심으로 약간의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무릉리의 민둥산역 북쪽 2㎞ 지점인 발근덕마을에는 해발 700∼800m에 이르는 삭박면(削剝面) 위에 석회암의 용식(溶蝕)에 의하여 형성된 카르스트 지형이 잘 발달되어 있어 학술적으로 중요시된다.

잣 · 도토리 생산은 군내 1위이고, 대추도 많이 난다. 무연탄 · 석회석 · 철 광산 등이 있고, 낙동리에는 희귀자원인 아비산 광산과 제련소가 있다. 또한, 낙동리의 선평(仙坪)양어장에서는 송어 · 잉어 · 초어(草魚) 등을 양식한다. 목재 생산은 군내 수위를 차지한다. 무릉리에는 1990년에 증산농공단지가 조성되었다.

38번 국도가 면의 중앙을 동서로 지나며 영월 · 사북 · 태백 등지와 연결된다. 59번 국도가 정선읍과, 421번 지방도 · 9번 군도가 화암면과 이어진다. 특히 태백선 철도가 남부를 지나고 증산에서 정선선이 분기하여 태백선 민둥산역, 정선선 별어곡역 · 선평역 등이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낙동리에 서운재 · 관어대, 무릉리에 찰어대가 있다. 또, 삼래약수(三來藥水)와 무릉도원(武陵桃園) 등의 관광자원이 있다.

문곡(文谷) · 무릉(武陵) · 유평(柳坪) · 낙동(樂洞) · 광덕(廣德) 등 5개 리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분교 1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1. 화암면(畫巖面)

군의 중동부에 위치한 면이다. 면적은 135.10㎢이고, 인구는 1,758명(2013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화암리이다.

본래 정선군 지역으로 조선 말기 동중(東中) 또는 동상면(東上面)으로 불렸다. 1906년에 동면이라 개칭되어 26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0개 리로 개편되었다. 1921년에 면사무소를 호촌리에서 현재의 화암리로 이전하였다. 2009년 5월 1일에 동면이 화암면으로 개칭되었다.

1962년에 사북 · 고한 · 직전의 3개 리를 관할하는 사북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73년에 사북출장소 관내가 사북읍으로 승격되면서 분리되었다.

화암면은 정선군 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21㎞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웃한 사북읍과 임계면, 삼척시 하장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해발 400m 이상의 산간지역으로 전작 및 고랭지 채소 위주의 농사를 짓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1930년경에는 금광이 성행하였으며 정선군 내에서 전기가 제일 먼저 들어올 정도로 외부 문명이 일찍 들어왔으나, 해방과 더불어 쇠퇴하고 지금은 소규모의 석회석 채굴 업체가 가동되고 있다.

이 지역은 예부터 그림바위라 칭할 만큼 주변이 기암절벽과 수려한 산간계곡으로 둘러싸여 있는 고장으로 화암동굴, 백전리 물레방아 등 풍부한 관광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관광개발을 통한 지역 발전이 기대되는 곳이다.

면 전체가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백전리에서 발원하는 동대천(東大川)이 북서류 하면서 유역에 약간의 침식면을 이루어 몰운리 · 화암리 · 석곡리 부근에서 약간의 농경이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주요 산물로는 약초 · 목재 · 표고버섯 등이 있으며, 특산물로 꿀 · 잣 등이 있다.

국도는 없으나 424번 지방도가 정선∼삼척 덕산, 421번 지방도가 예미∼임계 등지와 연결되고, 7번 군도가 건천∼사북, 9번 군도가 남면 문곡과 이어진다.

문화유적은 화암리에 화암동굴이 있다. 면내에 위치한 화암약수는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으며 소금강, 몰운대, 광대곡 등이 정선을 대표하는 관광지인데, 지방도가 모두 포장됨으로써 교통이 편리해졌다.

화암(畫巖) · 석곡(石谷) · 북동(北洞) · 몰운(沒雲) · 건천(乾川) · 호촌(虎村) · 백전(栢田) 등 7개 리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1. 여량면(餘糧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적은 139.40㎢이며, 인구는 2,197명(2013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여량리이다.

정선읍 북쪽에 있다 하여 북면이라 하였다. 본래 북면과 여량면의 2개 면이었는데, 1895년에 병합하여 문곡(文谷) · 남평(南坪) · 북평(北坪) 등을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문곡 · 남평 · 북평 · 나전(羅田) 등 9개 리로 개편되었다. 이때 면 소재지가 남평으로 되었다가 1932년에 여량리로 이전되었다.

1973년에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명주군 왕산면의 구절 · 남곡 등 2개 리가 편입되었다. 1986년에 북평출장소가 북평면으로 승격되어 분리되었고, 1989년에 임계면 봉정리가 편입되었다. 2009년 5월 1일에 북면이 여량면으로 개칭되었다.

1970년대에는 광업의 발달로 지역 경기가 호황을 누렸으나 정부의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관내 광업소가 모두 폐광되어 인구가 급격히 감소되고 있다. 산간 고지대라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농가당 영농 규모는 영세하며, 옥수수, 고랭지 채소, 고추, 마늘 등이 생산의 주종을 이룬다.

옥수수 생산이 가장 많아 이를 이용한 냉동 찰옥수수 가공공장이 준공됨으로써 안정적인 소득 보장을 가져와 옥수수 재배농가 및 지역경기 활성화에 큰 몫을 하고 있다.

면내에는 노추산 · 다락산(多樂山, 1,018m) · 상원산(上元山, 1,421m) · 갈미봉(葛味峰, 1,262m) · 반론산(半論山, 1,068m) · 고양산(高陽山, 1,151m) 등 1,000m 이상의 높은 산들이 솟아 있다. 여량의 아우라지에서 송천(松川)과 골지천(骨只川)이 합류하여 이른바 조양강(朝陽江)을 이루어 남서류한다.

예로부터 아우라지 나루터는 한양으로 목재를 나르던 뗏목의 시발점으로 매년 7월 말 아우라지 뗏목제를 개최하고 있다. 정선아리랑의 발상지인 이 고장은 아우라지의 맑은 물과 고양리 반론산의 산호동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철쭉 및 분취류 군락지, 율곡 이이와 설총의 위폐가 모셔진 이성대. 오장폭포 등 천혜의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여량 · 구절 등의 주요 취락은 하성단구상에 발달되어 있다. 단구면에서는 벼농사, 산록완사면에서는 콩 · 잎담배 등이 재배되고, 채소와 대추 생산은 군내 1위를 차지한다. 한편, 양봉 · 육우 사육과 목재 생산도 많다.

42번 국도가 면내를 동서로 가로질러 동해시 · 강릉시 등과 연결된다. 415번 군도가 남북을 관통하며 강릉시 왕산면과, 1번 군도가 임계면과 이어진다. 한편, 정선선의 종착지인 구절리역과 아우라지역이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여량리 · 봉정리 일대에 정선 반론산의 철쭉나무와 분취류 자생지가 있으며 무형문화재인 정선아리랑이 전한다. 여량의 아우라지 나루는 정선아리랑의 유래지인 동시에 주민들의 주요 휴식처이다. 그 밖에 항골약수 · 자연빙굴(氷窟) 등이 있다.

여량(餘糧) · 유천(柳川) · 고양(高陽) · 구절(九切) · 남곡(南谷) · 봉정(鳳亭) 등 6개 리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1. 북평면(北坪面)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이다. 면적은 140.76㎢이고, 인구는 2,679명(2013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북평리이다.

본래 북면 지역으로 1895년에 여량면과 병합되어 계속 북면에 속해 있으면서 북평출장소 관할로 있었다. 1986년 4월 1일에 북평면으로 승격되면서 북면에서 분리되었다. 즉, 1956년에 정선군 북면 남평리에 남평출장소가 설치되었고, 1981년에 남평출장소를 북평출장소로 명칭을 바꾸어 북평리로 이전한 뒤 면으로 승격되었다.

북평면은 철쭉이 군락을 형성하여 자생하는 지역으로 관광자원이 풍부하며 마을관리 휴양지 2개소와 가리왕산, 백석봉 및 우리나라 지도 모양의 독특한 형태를 갖춘 상정바위 등 명산이 위치하여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숙암리 지역은 밀원이 풍부하여 재래봉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으로 1975년에 재래봉 보호지구로 지정된 바 있다. 항골계곡에는 180여 개의「소망의 탑」이 거대한 돌탑군을 이루고, 그 주변으로 장승 18개와 각자의 소망을 담은 ‘소망의 항아리’ 220여 개를 설치하였다.

1999년 8월에는 북평면 나전2리 백석봉 입구에 인공폭포인 백석폭포를 설치하여 특색 있는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북평2리 국도 42호선 도로변으로는 음석, 남근석과 장승을 활용한 난향로원(蘭香路園)을 조성함으로써, 이곳을 지나가는 관광객과 주민들에게 자연의 신비함을 체험하는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북평면은 또한 현대식 시설이 완비된 농어촌 주택단지를 조성하기 위하여 1998년에 확정 시행된 문화마을과 농촌 휴양단지 조성사업이 2001년에 완공되었다. 1999년 11월에는 남평1리에 한국가스공사 정선연수원이 준공되어 여러 기관 및 단체들이 이곳을 찾아, 쾌적한 자연환경 속에서 심신수련 및 자신의 자아실현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백석봉(白石峰, 1,170m) · 올갑산봉 · 산정바위(1,006m) · 가리왕산 등 1,000m 이상의 높은 산들이 솟아 있다. 또 조양강이 관통하면서 장열리와 북평리 · 남평리 등지에 기름진 충적평야가 펼쳐져 군내 제2의 쌀산지를 이룬다.

양봉과 육우 사육이 활발하고, 목재도 많이 생산된다. 오대천 연안의 숙암리와 조양강 연안의 남평리에서는 송어 양식이 성하다. 특산물로는 약초와 장뇌(樟腦) 등이 있다. 한편, 나전탄광의 개발이 활발하였으나, 최근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에 의하여 폐광되었다.

42번 국도가 조양강 계곡을 따라 면의 남부를 동서로 가로질러 삼척시 · 강릉시 등으로 연결되고, 59번 국도가 오대천을 끼고 형성된 숙암계곡을 따라 평창군과 이어진다. 한편, 정선선의 나전역이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북평리에 석대동석탑, 남평리에 의총과 지석묘군이 있다.

북평(北坪) · 남평(南坪) · 문곡(文谷) · 나전(羅田) · 숙암(宿巖) · 장열(長悅) 등 6개 리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

  1. 임계면(臨溪面)

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이다. 면적은 243.60㎢이며, 인구는 3,739명(2013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송계리이다.

본래 강릉군에 속하였으나, 1906년에 정선군으로 이관되어 1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11개 리를 관할하였고, 1973년에 삼척군 하장면의 가목리, 도전리 등 2개 리가 편입되었다. ‘임계’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임계역이 있었던 데에서 유래한다.

임계지역은 정선군 농산물 생산량의 26%를 차지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지역으로 생활권은 강릉권에 속해 있다. 주요 농산물은 고랭지 채소, 감자, 옥수수 등이며 콩을 원료로 한 된장, 간장 등 가공식품 판매가 활성화되어 있다. 또한, 임계한우영농조합법인에서는 한우를 사육하여 정선지역은 물론 강릉까지 판매장을 갖고 있어 축산 농가의 판로를 확보하고 있다.

석병산 · 고적대 · 문래산 · 중봉산(中峰山, 1,283m) 등 높은 산들이 솟아 있다. 임계천 · 골지천 · 도전천(道田川) 등이 유역에 하성단구와 충적지를 형성한다. 직원리 일대 700∼800m 지역에는 석회암 용식지형인 돌리네가 발달하여 고산 카르스트를 이룬다.

경지면적은 20.57㎢로 정선읍에 이어 두 번째로 넓다. 군내 제1의 쌀과 감자 산지를 이룬다. 벼농사는 송계리 · 봉산리 · 낙천리 · 용산리 등이 중심지이다. 콩 · 메밀 · 표고버섯과 목재의 생산 및 양돈도 활발하다. 최근에는 교통의 발달로 고랭지 채소의 생산도 늘어나고 있다.

35번 국도가 면의 중앙을 남북으로 달리고, 42번 국도가 동서로 가로지르며 송계리에서 교차하여 강릉시 · 동해시 · 태백시 등으로 연결된다.

문화유적으로는 봉산리에 구미정 · 이종후가옥 · 이단하 내외분 옷, 송계리에 산성 및 고분군 등이 있다. 골지천의 구미정은 피서지로 유명하다.

송계(松溪) · 임계(臨溪) · 직원(稷院) · 봉산(蓬山) · 낙천(樂川) · 용산(龍山) · 문래(文來) · 덕암(德巖) · 반천(盤川) · 고양(高陽) · 도전(道田) · 가목(柯木) 등 12개 리가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교, 중학교 1개교, 고등학교 1개교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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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지』(강원도지편찬위원회, 1959)
정선군(www.jeongseon.go.kr)
집필자
원학희·송기호·박성호·유병용·최복규·옥한석·최승순·정장호|임호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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