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 7권 2책 목판본. 오명제는 명나라의 문인으로, 1597년(선조 301)에 임진왜란에 참전했다가 우리나라의 시를 모아 『조선시선(朝鮮詩選)』을 편집하였다. 1598년에 편집하여 1600년에 간행하였다.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오명제는 병부급사중(兵部給事中) 서관란(徐觀瀾)을 따라 조선에 들어왔다가 조선의 한시에 관심을 가지고 수집하기 시작했는데, 오명제 자신이 지은 서(序)에 의하면 “허균(許筠)이(삼형제 가운데) 가장 영민해서 (시를) 한 번 보면 잊지 않아, 동방의 시를 수백 편이나 외워 주었다”고 한다.
그는 당시 병조좌랑이던 허균의 집에 머물면서 허균이 외워 준 시를 바탕으로 『조선시선』을 편집했으므로, 허난설헌(許蘭雪軒)의 시가 58수, 허균의 시가 15수나 실렸다. 그 밖에 오명제와 자주 만났던 윤근수(尹根壽)·이덕형(李德馨) 등이 그의 편집을 도왔다.
권1에 오언고시 12명 28수, 권2에 오언고체 15명 27수, 권3에 오언율시 34명 56수, 권4에 오언배율 3명 3수, 권5에 칠언배율 27명 59수, 권6에 오언절구 28명 46수, 권7에 칠언절구 55명 121수, 합계 112명의 시 340 수가 실려 있다.
편집이 마무리되자 오명제는 조선에 함께 왔던 가유약(賈維鑰)·한초명(韓初命)·왕세종(汪世鍾)에게 교열(校閱)을 부탁하였다.
이 책은 곧 목각(木刻)에 들어갔는데, 한초명이 지은 「각조선시선서(刻朝鮮詩選序)」는 양경우(梁慶遇)의 글씨로 맨 앞에 실렸고, 오명제 자신이 이덕형의 방에서 지은 서(序)가 그 다음에 실렸으며, 본문 뒤에 허균이 지은 후서(後序)가 실려 있다.
권7 본문 끝에 “조선장원허균서(朝鮮壯元許筠書)”라는 글이 덧붙어 있어서 안진경체(顔眞卿體)로 쓴 본문이 허균의 글씨라는 주장도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중국으로 돌아가는 오명제에게 허균이 지어 준 시 「송送오吳참叅군軍ᄌᆞ子어魚대大형兄환還텬天됴朝」는 한자 앞에다 정음을 쓴 한시여서 중국에 정음의 존재를 알리기도 했는데, 이 시는 그 뒤 다른 책에도 그대로 실렸다.
이 책이 나오자 명말(明末) 청초(淸初)에 여러 종류의 ‘조선시선’이 간행되었는데, 특히 전겸익(錢謙益)의 『열조시집(列朝詩集)』 조선편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신라의 최치원(崔致遠)부터 조선 당대 허균까지 여러 시인들의 시를 골고루 편집했지만, 오명제 자신에게 지어 준 시들은 수준에 관계없이 모두 실어서 선시의 기준이 뒤섞인 흠이 있다.
그 동안 오명제가 편집한 『조선시선』 원본이 확인되지 않아서 『열조시집』을 비롯한 2차 자료를 가지고 연구했는데, 최근에 중국 북경도서관에 소장된 원각본이 발견되었다.
상책 45장, 하책 50장, 합계 95장본인데, “조선 선조 33년(명 만력 28년) 각본 2책”이라고 등록되었으며, 책갑의 제첨에 “명고려간본(明高麗刊本)”이라고 쓰여 있어서 명나라 때 조선에서 간행된 책임을 밝혔다. 영인본을 첨부한 교주본이 역시 중국에서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