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원 ()

목차
건축
인물
해방 이후 인천교육대학교 본관, 춘천교육대학교 본관 등을 설계한 건축가. 목수.
이칭
일양(一洋)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1년(고종 38)
사망 연도
1987년
본관
배천(白川)
출생지
평양
관련 사건
삼일운동
목차
정의
해방 이후 인천교육대학교 본관, 춘천교육대학교 본관 등을 설계한 건축가. 목수.
개설

본관은 배천(白川). 아호는 일양(一洋). 평양 출생. 대목(大木) 출신의 마지막 도목(都木)이다. 아버지 조득룡(趙得龍)과 어머니 김득구(金得救)의 삼남으로 출생하여 서당(書堂)에서 한학을 수업하였다.

활동사항

1919년 삼일독립운동 참가로 서울 마포에서 1922년까지 옥고를 치른 바 있으며, 1923년 이후부터 별세하기까지 건축인생의 외길을 살았다.

1923년 도목 한성룡(韓成龍)을 사사하여 한식대목(韓式大木) 수업을 받고, 1928년부터 근대건축의 설계 및 시공을 독학하여 목조·벽돌조·석조 건축에 종사하였다. 1931년 평양숭실전문학교 옆에 합명건설회사인 건평사(建平社)를 설립하여 전무(專務)가 되었고, 1936∼1945년 사장으로서 평안남북도와 황해도에서 활동을 하였다.

1940년 서울로 자리를 옮긴 그는 서울을 중심으로 하여 경기도·강원도에서 주로 활동하였는데. 1955년 서울 보성고등학교 본관(석조) 및 도서관(벽돌조)을 건축하였고, 1957년 현재의 인천교육대학교 본관과 현 춘천교육대학교 본관 및 도서관 등을 설계하였으며, 1965년 서울 보성고등학교 교사를 설계·시공감리하였다.

1967년에는 한식 목조건축 양식을 철근콘크리트조로 제작하는 방법을 시도한 서울여자상업학교 본관을 설계·시공감리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 서울여자상업학교 팔각정자의 교사를 비롯하여 베트남 사이공 시내의 2층팔각정자인 평화당(平和堂), 서울 삼청각(三淸閣) 정문 및 팔각정자, 수원의 29인순국열사사당, 부산의 천안사법당 등을 설계 및 감리하였다.

1981년≪한식목조건축설계원론 韓式木造建築設計原論≫(민음사)을 출판하였고, 건축계에서의 업적을 인정받아 1983년 한국건축가협회의 초평(艸平)건축상을 수상하였다. 1986년부터 ‘한식건축용어’를 집필하였으나 마무리하지 못한 채 별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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