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횡성(橫城). 자는 여시(汝時). 조준(趙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조응세(趙應世)이고, 아버지는 별좌 조진(趙進)이며, 어머니는 임해군(臨海君)의 사위 김진(金鎭)의 딸이다.
1582년(선조 15)에 생원에 뽑혔고, 1597년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 이조좌랑·지제교 겸 춘추관기사관을 거쳐 예문관검열 때 사관(史官)으로서 상하번(上下番)시에 무단출거하였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봉교·검열·예조좌랑·성균관전적·병조정랑·사서·성균관직강·세자시강원문학·찬의(贊儀)를 거쳐 지평이 되었는데 인혐(引嫌)해서 물러났다고 하여 체차(遞差)되었다.
교리·이조좌랑을 거쳐 1605년에 홍문록(弘文錄: 홍문관의 제학이나 교리를 선발하기 위한 제1차 인사기록)에 간택되고, 안악현감·병조정랑을 거쳐 1614년(광해군 6)에 성균관직강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