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왕의 첫째 왕비는 소판(蘇判) 김흠돌(金欽突)의 딸이었는데, 681년(신문왕 1) 8월 8일에 김흠돌이 모반하다가 죽음을 당하자 왕비도 죄를 입고 궁에서 쫓겨났다.
그리하여 683년 2월에 신문왕이 일길찬(一吉飡) 김흠운(金欽運)의 딸을 새왕비로 삼을 때, 지상은 왕명을 받고 납채를 맡아서 폐백 열다섯 수레, 쌀, 술, 기름, 꿀, 간장, 된장, 포, 식혜 135수레, 벼 150수레를 김흠운 집에 납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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