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시 ()

대동여지도 중 경기도 안성, 평택, 충청도 천안, 진천 부분
대동여지도 중 경기도 안성, 평택, 충청도 천안, 진천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충청남도 북동부에 위치한 시.
이칭
이칭
도솔
정의
충청남도 북동부에 위치한 시.
개관

동쪽은 충청북도 진천군과 청주시, 서쪽은 아산시, 남쪽은 세종특별자치시·공주시, 북쪽은 경기도 안성시·평택시와 접하고 있다. 동경 127°01′∼127°25′, 북위 36°37′∼36°57′에 위치한다. 면적은 636.07㎢이고, 인구는 60만 5776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개 구, 4개 읍, 8개 면, 18개 행정동(30개 법정동), 430개 행정리(148개 법정리)가 있다. 시청은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불당동에 있다.

자연환경

차령산맥이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달리고 있어 대부분 지역이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시의 동부에는 덕유산(德裕山, 412m)·위례산(慰禮山, 524m)·국사봉(國師峰, 360m) 등이 솟아 있다. 서부에는 성거산(聖居山, 579m)·흑성산(黑城山, 519m), 남부에는 광덕산(廣德山, 699m)·망경산(望京山, 600m)·국사봉(國士峰, 403m)·쌍령산(雙嶺山, 415m) 등 험준한 산이 솟아 있고, 공주·논산으로 통하는 관문인 차령(車嶺)이 있다.

북부는 낮은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군의 중앙에도 작성산(鵲城山, 497m)·은석산(銀石山, 455m)·개죽산(介竹山, 462m)·세성산(細城山, 218m) 등이 연이어 솟아 있다.

입장천(笠場川)·성환천(成歡川)이 시의 북서부를 북류하여 안성천(安城川)에 유입하며, 병천천(竝川川)이 지류인 광기천(廣基川)·산방천(山方川) 등을 합류, 동부를 남동류하여 미호천(美湖川)에 합류하고 있다. 이들 하천유역에는 풍세들·기미들·새교들·마루들 등의 평야가 형성되어 있으나 넓은 평야는 없다.

지질은 대부분 화강암과 화강편마암으로 되어 있다.

연평균 기온 12.5℃, 1월 평균기온 -1.9℃, 8월 평균 기온 25.8℃이며, 연 강수량 1562.4㎜이다. 서리는 10월 초순부터 내려 이듬해 4월 중순에 끝난다. 이처럼 기후는 한서의 차가 큰 대륙성기후의 특징이 나타난다.

역사

광덕면 대평리에서 동검, 병천면 봉황리에서 소형마제석부, 두정동에서 마제석검 유구석부(有溝石斧) 등의 유물이 출토되어 청동기시대에 사람들이 살았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이 지역의 역사가 기록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삼한시대로서 마한의 맹주격인 목지국의 터전이 현 직산 지역으로 비정되기도 한다. 이곳은 신라시대에는 대록군(大鹿郡)과 그 영현이었던 순치현(馴雉縣)이 있던 지역이다.

대록군은 본래 백제의 대목악군(大木岳郡)을 경덕왕이 개명하여 목주(木州)라 한 곳이다. 또, 백제의 온조가 옛 마한 지역을 통일하고 백제를 이룩할 때 환성(歡城)이라 한 곳으로, 또 위례성(慰禮城)이라고도 불렀는데 지금의 천안 입장면 호당리와 북면 운룡리에 있는 위례산성이 바로 그 유적이라고 전하나, 일부 학자들은 부인하고 있다.

뒤에 고구려가 세력을 장악했을 때에는 사산현(蛇山縣)이라 하였다. 순치현은 백제의 감매현(甘買縣)을 경덕왕이 개명한 것으로 풍세현(豊歲縣)이라 부른다.

고려시대 천안지역은 천안부와 그 영현인 풍세현과 직산현, 그리고 청주의 목주(木州)가 있었다. 천안부는 930년(태조 13) 삼국의 전략적 요충지인 동서 두솔(兜率)을 합해 천안부로 하고 도독을 두었다.

995년(성종 14) 환주(懽州)로 고치면서 도단련사(都團練使)를 두었다가, 1005년(목종 8) 단련사를 폐하고, 1018년(현종 9) 다시 천안이라 하고 지부사(知府事)를 두었다. 1310년(충선왕 2) 영주(寧州)로 고쳤다가 1362년(공민왕 11) 다시 천안부라 했는데 별호는 임환(任歡)이었다.

직산은 신라의 사산현을 고려 초에 직산이라 했으며, 1018년(현종 9)에 천안부에 내속(來屬)했고 뒤에 감무를 두었다. 풍세현은 신라의 순치현을 고려 초에 풍세현이라 했으며, 1018년에 천안부에 내속했는데, 별호를 자천(秭川)이라 하였다. 목주는 신라 때 대록군을 고려 초에 목주라 하여 청주에 예속시켰고, 1172년(명종 2)에 감무를 두었는데 별호를 신정(新定)이라 하였다.

성환읍 대흥리에 홍경사지가 있는데 시청 소재지는 천안시 불당동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곳은 갈래 길의 요충인 데다가 사람 사는 곳과 떨어져 있고, 무성한 갈대숲이 들판에 가득하여 행인을 자주 약탈하는 강도가 많으므로 고려 현종이 형긍(逈兢)스님에게 명해 절을 세우게 하고, 병부상서 강민첨(姜民瞻) 등이 이를 감독하여 집 200여 칸을 세우고 봉선홍경사라고 칭했다는 내용이 있다.

지금의 천안 지역은 청주목(淸州牧)에 속했던 천안군, 목천현, 직산현의 지역이었다. 천안군은 고려 초의 천안부로 태종이 1413년(태종 13)에 영산군(寧山郡)으로 고쳤다가 1416년에 다시 천안군으로 하여 인접 풍세현을 속현으로 하였다. 당시 천안의 호구는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506호에 2,385명이었다.

목천은 고려시대 목주로 조선에서도 그대로 이어 목천이라 하고 1413년에 현감을 두었다. 조선 초 목천의 호구 수는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404호에 2,286명이었다. 직산현은 고려시대의 직산인데 1393년(태조 2)에 환관 김연(金淵)이 명나라에 들어가 황제를 모시고 있다가 사신이 되어 돌아오자 직산을 지군사로 승격시켰다가 1401년(태종 1) 다시 낮추어 감무를 두었다.

1413년 직산에 현감을 두었으며, 1505년(연산군 11) 경기도에 이속되었다가 1507년(중종 2) 다시 충청도로 환원되었다. 임진왜란 후 평택현이 폐현되면서 직산에 합병되었으나, 6년 만인 1618년(광해군 10) 다시 분리되었다. 조선 초 직산의 호구는 『세종실록』지리지에 따르면, 553호에 2,111명이었다.

동면 구도리에서 살았던 세조 때의 문신 김일손은 춘추관의 기사관으로 있을 당시 『성종실록』의 사초에 세조의 잘못을 직필했다는 연유로 무오사화 때 희생당하였다.

인조 때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왕이 난을 피해 공주로 몽진하던 중 며칠 간 머물던 곳에 화축관(華祝館)을 세웠다. 그리고 이곳에 역대 제왕의 입비를 세우고 봉안하고 고을 원으로 하여금 매년 삭망에 제사를 드리게 하였다.

천안은 조선시대 삼남대로의 분기점으로 교통의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그 당시 목천에서 태어난 목천상씨(木川尙氏) 상진(尙震)은 명종 때의 영상(領相)으로서 조선조 3대 정승의 한 사람으로 불린다.

1895년(고종 32) 공주부 천안군이 되었다가 이듬해 충청남도 천안군으로 되었다. 1914년 천안·목천·직산 3군을 통합해 천안군이 되었다. 1920년 영성면(寧城面)을 천안면으로, 성산면(城山面)을 직산면으로 고쳤다. 1931년 천안면이 읍으로 승격하였다.

아우내는 한때 이름났던 고장으로 이동녕·조병옥·유관순 등을 배출시킨 곳이기도 하다. 1919년 3·1운동 당시 이화학당 학생이었던 유관순은 일제에 항거하여 3,000명의 시골주민들 선두에 서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어 7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끝내 순국하였다.

1963년 행정구역 변경 때 천안읍과 환성면을 합쳐 천안시로 승격·분리되고, 나머지 지역은 천원군으로 되었다. 1969년부터 1973년에 걸쳐 병천면 탑원리에 유관순열사의 애국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사우를 세웠다. 1973년 성환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2년 군청이 천안시에서 성거면의 현 위치로 이전되었다.

1983년 충세면 구룡리가 천안시에 편입되었고, 1985년 성거면이 읍으로 승격하여 2읍 10면을 관할하게 되었다. 1985년 독립기념관을 목천면 남화리 일대에 1987년에 완공하였다. 1991년 천원군이 천안군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995년 5월 10일 도농통합에 따라 천안시와 천안군이 통합되어 새로운 천안시가 되었다. 2002년 1월 1일 시조례 제508호로 직산면과 목천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2008년 6월 23일에 2개구(동남구, 서북구)가 설치되었다.

유물·유적

신석기 이전 유적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으나 청동기시대 유적은 나타나기 시작한다. 두정동·쌍룡동, 수신면 신풍리, 성남면 대흥리·석곡리에서 무문토기 중기단계의 집자리 유적이 조사되었다.

그리고 봉명동 무문토기 산포지, 성정동과 수신면 발산리의 고인돌유적, 성남면 신사리의 선돌유적이 있고, 봉양리에서는 마제석검이 출토하였다. 최근에는 백석동에서 무문토기 전기 중기의 집자리가 조사되었다.

원삼국시대 유적으로는 천안 청당동, 수신 장산리 등지에서 무덤들이 발견된다. 삼국시대 유적으로는 청당동·안서동·유량동, 풍세면 미죽리, 성거읍 천흥리·삼곡리, 성남면 대정리·용원리·대흥리능골·화성리, 수신면 신풍리, 광덕면 대덕리, 매당리, 목천읍 석천리 덧매기마을·석천리 먹방·덕전리 점말·서흥리 움말·지산리 능골유적, 북면 운용리에 천안 성거산 위례성(충청남도 기념물, 1998년 지정)이 있다.

관방유적으로는 청당산성(淸堂山城)·일봉산성(日峰山城)·월봉산성(月峰山城)·봉접산성(鳳接山城), 직산 용와산성(龍臥山城)·사산성(충청남도 기념물, 1997년 지정), 북면 운룡리에 위례산성(慰禮山城), 성거읍 천흥리의 성거산성(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목천읍 흑성산성(충청남도 문화재자료, 2000년 지정)·목천토성(木川土城), 성남면 천안 세성산성(충청남도 기념물, 1997년 지정), 풍세면 두남리산성(斗南里山城), 동면 광덕리산성(廣德里山城)·동성산성(銅城山城)·화계리산성(花溪里山城)·서림산성(徐林山城), 수신면 망경산성(望京山城)이 있다.

불교문화재로는 광덕면 광덕리의 광덕사 경내에 광덕사 대웅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광덕사 천불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광덕사 고려사경(보물, 1963년 지정)·광덕사 노사나불괘불탱(보물, 1997년 지정)·광덕사 삼층석탑(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광덕사 부도(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8년 지정)·광덕사 부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광덕사 석사자(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광덕사 감역교지(보물, 1997년 지정)·광덕사 조선사경(보물, 1997년 지정)이 있다.

그리고 성거읍 천흥리의 만일사 법당(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만일사 마애불(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만일사 석불좌상(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천안 성거산 천성사명 금동보살입상(충청남도 유형문화재, 2002년 지정정)·만일사 오층석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천흥사지 오층석탑(보물 제354호)·천흥사지 당간지주(보물, 1963년 지정), 천흥사지에서 출토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옮겨진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국보, 1993년 지정) , 안서동의 성불사(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천안 성불사 석조보살좌상(충청남도 문화재자료, 2004년 지정)과 수신면 백자리의 구룡사(九龍寺), 병천면 송정리의 약사암, 북면 은지리의 은석사(銀石寺), 직산읍 성월사(成月寺)가 있다.

이 밖에 삼룡동의 삼룡동 삼층석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목천읍 동리의 용화사 석조여래입상(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용화사지 삼층석탑, 응원리 석탑, 서흥리사지 석탑, 풍세면의 천안 삼태리 마애여래입상(보물, 1964년 지정), 성남면 봉양리사지 석탑, 성환읍 대홍리에 봉선홍경사 갈기비(국보, 1962년 지정)·홍경사지 석탑재, 수신면에 구룡사 부도 · 천안 장산리 석불입상(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97년 지정), 북면 대평리에서 출토되어 동국대박물관으로 옮겨진 보협인석탑(국보, 1982년 지정)이 있다.

사지로는 천안 유랑동 불당골 사지, 성환 홍경사지(弘慶寺址), 광덕면 개천사지, 매당리 사지·당하리 사지·행정리 사지·만복사지·자장리 절골사지, 동면 장송리 대동사지·장송리 자장사지·동산리 사지·수남리 사지·도명리 사지·도명리 원저골 사지, 광덕리 사지, 병천면 의관동 사지·관성리 안터사지·복다회 뒷골 사지·관성리 냉정동 사지·봉항리 사지·탑리 사지, 매성리 사지, 탑원리 사지, 북면 대평리 탑골 사지·명덕리 사지·오옥리 사지·남안리 사지, 목천읍 서천리 사지·서흥리2구 사지·보문사지(普門寺址)·용화사지(龍華寺址)·소사리 사지·교천리 사지, 성남면 대흥리 탑골 사지·봉양리 사지, 직산읍 추헐사지(秋歇寺址), 성거면 천흥사지(天興寺址)가 있다.

자기가마유적은 병천 봉황리·매성리·관성리 냉정골·관성리 안터·봉황리, 북면 대평리 불무골·대평리·사담리·용암리·양곡리 웃말, 목천 석천리·송전리·덕전리 유왕골·덕전리·서흥리·교촌리·지산리, 입장 호당리, 천안 구룡동 용평, 광덕 광덕리·보산원리 양지말·보산원리 사기소·만복동·지장리 석산·지당리 장곡, 성거 천흥리에서 발견되고, 와요지는 북면 오곡리, 광덕면 광덕리·죽계, 목천읍 지산리에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직산읍 군서리의 직산향교(충청남도 기념물, 1997년 지정), 목천읍 교천리에 목천향교(충청남도 기념물, 1997년 지정), 유량동의 천안향교(충청남도 기념물, 1997년 지정)가 있으며, 사우로는 육현사(六賢祠), 경모사(景慕祠), 충헌사(忠憲祠)가 있다.

관아건물로는 직산읍 군동리에 직산현 관아(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가 있다.

목천읍 남화리의 독립기념관내에 이광악 선무공신 교서(보물, 1988년 지정)가 있고, 북면 은지리에 박문수 초상(보물, 2006년 지정), 북면 원성동의 유호걸장군 영정 및 교지(충청남도 유형문화재, 2021년 지정), 성남면 봉양리의 홍진도선생 영정(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90년 지정) 등이 있다.

삼룡동의 영남루(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북면 은지리의 고령박씨 종중 재실(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7년 지정), 도원리에 천안 노은정(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97년 지정), 풍세면 삼태리의 전씨 시조단소(壇所) 및 재실(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7년 지정), 직산읍 군서리의 민익현 가옥(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7년 지정), 수신면 장산리의 홍대용선생 생가지(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96년 지정) 등이 있다.

수신면 장산리의 홍대용선생 묘(충청남도 기념물, 1996년 지정), 속창리의 한명회선생 신도비(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94년 지정), 용곡동의 홍양호 묘(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북면 은지리의 박문수 묘(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 오곡리에 신자경선생 묘(충청남도 기념물, 1988년 지정), 병천면 가전리에 천안 김시민장군 유허지(충청남도 기념물, 2004년 지정) 등이 있다.

병천면 탑원리에 유관순열사 유적(사적, 1972년 지정), 병천리에 아우내 3·1운동 독립사적지(충청남도 기념물, 1986년 지정), 목천읍 동리의 이동녕선생 생가지(충청남도 기념물, 1989년 지정) 등이 있다.

천연기념물로는 광덕면 광덕리의 천안 광덕사의 호두나무(천연기념물, 1998년 지정), 성황읍 양령리에 천안 양령리의 향나무(천연기념물, 2000년 지정)가 있다.

무형문화재로는 성정2동의 단청장으로 2001년 김준웅이 지정되었으나 2013년 지정해제되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는 천안향교·직산향교·목천향교가 있다. 천안향교는 조선 초에 창건된 것으로 1823년(순조 23)에 명륜당을, 1899년에 풍화루를 각각 중건하였다. 직산향교는 1398년(태조 7)에 직산읍 군서리에서 창건되었으며, 1588년(선조 21)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재건되었다.

목천향교는 1523년(중종 18)에 목천읍 교촌리에서 창건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여러 차례 중건하였다. 이 밖에 1649년(인조 27)에 병천면 병천리에 병천서원이 설립되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7년 민철훈(閔哲勳)이 직산읍 군동리에 세운 사립경위학교(私立經緯學校)가 최초이다. 이 학교는 1911년 일제에 의하여 직산공립보통학교로 되었다.

1908년 목천읍 서리에 설립된 보명학교도 1913년 목천공립보통학교로 개편되었다. 이 무렵 유관순의 아버지인 유중권(柳重權)이 병천면 병천리에 흥호학교(興湖學校)를 설립하여 독립정신을 고취시켰다.

이 외에도 1910년 이전에 이미 민족계 사학으로서 의성학교(義成學校)·영미학교(寧美學校)와 기독교계 사학으로서 북일학교(北一學校)·진명학교(進明學校) 등이 있었으나 일제의 탄압으로 1915∼1916년경에 폐교되었다.

1912년에는 현재의 천안초등학교의 전신인 천안공립보통학교가 설립되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현재의 성환초등학교·광덕초등학교 등이 설립되었다. 해방 후에는 양대·도장·도하 등의 초등학교가 설립되었다. 중등교육기관으로는 1930년에 현재의 천안농업고등학교의 전신인 천안공립농잠보습학교가 설립되었다.

중학교로는 1945년에 천안여자중학교가 설립되었으며, 그 뒤 많은 중학교가 각각 설립되었다. 1949년부터 1976년에 이르기까지 천안공업고등학교·천안여자고등학교·병천고등학교·천안고등학교·복자여자고등학교·중앙고등학교·천안상업고등학교·천안여자상업고등학교·목천고등학교·북일고등학교·성환고등학교가 각각 설립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71개교, 중학교 30개교, 고등학교 22개교, 특수학교 2개교가 있으며, 연암대학교, 백석문화대학교와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 상명대학교 천안캠퍼스, 백석대학교, 나사렛대학교, 남서울대학교, 한국기술교육대학교, 호서대학교 천안캠퍼스, 선문대학교 천안캠퍼스, 공주대학교 천안공과대학이 있다.

기타시설로는 천안도서관, 성환도서관, 쌍용도서관, 성거도서관 및 천안문화원이 있으며, 신문사, 공연장, 영화관, 화랑, 미술관, 시민회관, 복지회관, 청소년회관, 문예회관 실내체육관, 종합경기장, 정구장, 국궁장이 있다.

민속

이 고장의 대표적 민속놀이로는 거북놀이와 줄다리기를 들 수 있다. 거북놀이는 한가윗날을 전후하여 거행되는 놀이로 거북으로 가장한 사람들이 농악패를 동반하여 집집마다 돌면서 풍년과 무병장수를 기원해주고 그 보답으로 내온 음식을 먹으며, 밤새껏 즐기는 놀이이다.

줄다리기는 정월대보름에 지기(地氣)를 누르고 전염병을 예방하는 등 협동심을 기르기 위하여 오래 전 부터 성행하여오던 민속놀이이다. 특히, 병천 지방에서는 1978년경까지 3년마다 큰 규모로 거행되었으나 벼품종 개선으로 줄을 만드는 데 필요한 볏짚의 확보가 어려워 중단되었다.

줄다리기를 할 때에는 청장년의 남자와 15세 이하의 소년 및 부녀자들로 편을 나누어 청장년들은 수줄을 당기고 소년 및 부녀자들은 암줄을 당기는데, 암줄이 이겨야 그 해 풍년이 든다고 믿는다.

이 밖에도 남사당(男寺黨)놀이·씨름·윷놀이·그네뛰기·널뛰기·연날리기와 아이들놀이로 팽이치기·제기차기·사방치기·비석치기·앉은뱅이놀이 등이 널리 행하여지고 있다.

성거읍에 위치한 성거산은 군내의 명산인데, 고려 태조가 이곳에 산신이 머물러 있음을 믿고 제사를 올리고 산이름도 성거산이라 명명하였다 한다.

그 뒤 조선조에 들어와서도 태조·세조·현종 등이 온양온천에 행행(行幸)할 때면 이 성거산에 관원을 파견하여 치제(致祭)하게 하였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이 지방 곳곳에서는 지금도 산신제(山神祭)를 지내고 있다.

또한 입장면 호당리 위례산 서쪽 기슭에는 산신을 모셔놓은 당집이 있는데 이곳 주민들은 옛날부터 가뭄이 심하면 이곳 또는 위례산정에 있는 용샘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있다.

한편, 산간촌에서는 간혹 목주형(木柱形)이나 석주형(石柱形)의 장승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러한 마을에서는 대개 정월대보름에 정결한 자를 제관으로 선정하고 제물을 마련하여 장승제를 지낸다. 이때 제관은 집집마다 소지(燒紙)를 올리고 축문을 읽어 마을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한다.

설화·민요

이 고장에는 「고양이바위와 승려」·「입바위와 칠성바위」·「설렁바위전설」 등의 지명설화가 전하여오고 있다. 목천읍 남화리 동쪽의 백호부리에는 마치 고양이가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같은 형상의 고양이바위가 있다.

옛날 이 마을에 살던 심술쟁이가 마을을 망하게 할 심산으로 거짓으로 승려 행세를 하며 고양이바위를 깨어버렸는데, 곧 마을에는 질병이 크게 번져 쑥대밭이 될 지경이었다.

그때서야 심술쟁이는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깨어진 바위에 회를 발라 다시 붙이니 마을에 질병이 없어지고 평안하여졌다고 한다. 병천면 도원리에 있는 미륵당 부근에는 큰 바위가 우뚝 서 있는데 이 바위가 입바위이고, 그 아래에 북두칠성처럼 생긴 칠성바위가 있다.

이 입바위는 옛날 과거에 급제를 하였지만 종의 신분이라 하여 오히려 죽임을 당한 사람의 화신(化身)이며, 칠성바위는 그 사람의 일곱 아들들이 변하여 된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하여온다. 동면 장송리에는 안동김씨가 처음 정착하였다는 초석골이 있고 그 마을 앞 냇가에 바위가 하나 서 있어 설렁바위라 부른다.

바위 옆으로 소(沼)가 있어서 바위에 오르기만 하면 마음이 설렁거린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달리는 선랑(仙郎)이 떨어뜨린 바위였기 때문에 선랑바위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설렁바위가 되었다고도 한다.

이 밖에도 동면 화계리 감절에는 사모하던 한 여인의 넋을 위로하다가 생전 결혼을 못한 채 죽은 머슴의 바위라는 곰바위에 얽힌 전설이 전하고, 성남면 대정리에는 "불쌍하다, 저 색시. 괘씸하다, 저 중놈 행실 보아라." 하고 노래를 부르면 샘물이 부글부글 끓어서 솟아오른다는 「중샘전설」, 그리고 여러 갈래의 유형으로 전승된 「천안삼거리와 능수버들」 등이 전한다.

이 고장에는 「모내기노래」·「밭갈이노래」·「보리타작노래」·「베틀노래」·「물레노래」 등의 노동요들이 전승되고 있지만, 「새타령」·「흥타령」·「장타령」·「산타령」·「등타령」·「개고리타령」·「데그리핑핑타령」·「투전타령」·「소타령」 등 타령류의 노래가 대단히 우세하게 불리고 있다.

또 나물을 뜯으면서 불렀던 「나물노래」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잡아뜯어 꽃다지 쏙쏙뽑아 나싱개/ 주벅주벅 국수뎅이 바귀바귀 씀바귀/ 쪼가리쪼가리 박쪼가리 이개저개 지칭개/ 오용조용 말랭이 한푼두푼 돈나물……"처럼 나물이름을 들어 노래한다.

「흥타령」은 "천안삼거리 흥 능수버들은 흥 제멋에 겨워서 휘느러젓고나 흥/ 에루화 좋다 아이고대고 흥 성화가 났고나 흥/ 은하작교가 흥 딱부러졌으니 흥 건너갈길이 막연하고나 흥/ 에루화 좋다 아이고대고 흥 성화가 났고나 흥……"과 같이 부른다.

「산타령」은 "……우수년의 기생들이 저배타고 선유가자/ 선유는 하지마는 사공이없어서 어찌를하나/ ……금생려수가 아니어든 금이란말이 왠말이며/ 옥출곤 (장)이 아니어든 옥이란말이 왠말인가/ 산진이니 수진이냐……"처럼 부른다.

「강실도령노래」는 "강실강실 강실도령/ 강실책을 옆에끼고/ 삼간초간 지내가니/ 둥실둥실 동서방네 막내딸이/ 대문밖에 쑥나가서/ 저기저기 저도령님/ 우리집에 하루저녁 자고가세……해를따서 거죽하고/ 달을따서 안을넣고/ 무지개로 선을둘러/ 샛별로 상침놓아/ 용의발로 귀를쌓아……"처럼 부른다. 이 밖에 기러기·제비·까치·까마귀·꿩·파랑새·비둘기·잠자리 등을 노래한 어린이들의 동요가 많다.

매미를 잡을 때 부르는 「매미노래」는 "둥아는 올러가고 매아미는 나려오너라/ 여기는 이슬이 꿀맛 같다."처럼 한다. 또 "……달따러가세 별따러가세/ 명산대천에 별따러가세/ 뒷집 감따러가세……, 달따러가자 별따러가자/ 두부집영감 부랄따러가자."와 같은 어린이들의 꿈과 천진난만한 장난기가 있는 동요가 많다. 이 밖에도 「꼬리따기노래」·「숫자노래」·「문답노래」 등이 전한다.

산업·교통

전체인구의 약 6%가 농업에 종사하며, 총경지면적 156.07㎢ 중 논이 100.28㎢, 밭이 55.79㎢이다. 주요 농산물은 쌀·고추·사과·배·참외·포도·호두·잎담배 등이다. 쌀은 생산량은 적으나 질이 좋다. 고추는 도내 최대 경작면적을 나타내며, 수도권 청과물 시장의 시세를 좌우할 정도이다.

배는 평택과 교통이 편리한 성환읍·직산읍에서, 포도는 안성에서 가까운 차령산맥 기슭의 입장면과 성거읍에서 많이 생산된다. 성환읍의 참외는 이 지방 명산물이다. 호두는 광덕면에서 많이 재배되며, 잎담배 재배는 도 전체 경작면적의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구릉지가 많고 수도권과 인접하여 있어 낙농업이 성하다. 성환읍을 중심으로 직산읍·풍세면·병천면에 축산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성환읍에는 국립종축원이 있다.

광업은 곳곳에 금광이 있으며, 직산은 한때 사금산지로 유명하였으나 현재는 사양길에 접어들어 입장면과 성거읍 일대에서 소량의 금이 산출되고 있을 뿐이다. 제조업은 4개의 지방공단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기계·금속·반도체·전기·전자 등의 업종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상업활동은 예로부터 삼남대로가 갈라지던 곳이어서 일찍이 사람의 왕래와 물자교환이 활발하였다. 철도교통이 발달하면서 경부선·장항선의 교차점이 되어 상업도시로 발전하게 되었다. 근대에 와서 구시장이 철거되고 도시정비사업이 진행되면서 상설시장인 중앙시장으로 바뀌었으며, 이어서 천일시장(天一市場)·자유시장(自由市場) 등이 분리되어 점차 근대시장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중앙시장에서는 일용잡화·의류·어물, 천일시장에서는 의류·포목, 자유시장에서는 식품·생선류가 주로 거래되고 있다. 영성동에 청과물도매시장이 있고, 시내에는 서울∼부산 간 국도를 따라 사직동·대흥동·문화동 일대에 상가가 조성되어 있으며, 1980년대에 와서 백화점들도 개점하였다.

성환·입장·병천 등지의 농촌중심지에는 정기시장이 개설되고 있는데, 입장·병천장은 쇠퇴일로에 있다. 성환장에서는 쌀·마늘·고추 등 농산물 거래가 많으며, 그 밖에 수산물·가공식품·의류·신발류·농기구 등이 거래되고 있다. 입장·병천장에서는 지역 주민들의 농·축산물과 의류·생활필수품 등이 거래되고 있다.

교통은 경기도 평택시와 세종특별자치시 소정면으로 통하는 1번 국도, 아산시 배방읍으로 통하는 21번 국도, 아산시 음봉면으로 통하는 628번 지방도, 풍세면으로 통하는 623번 지방도, 성거읍으로 통하는 693번 지방도 등이 천안시내에서 교차되고 있다.

그리고 충청북도 진천군과 아산시 둔포면으로 통하는 34번 국도, 1번 국도 등이 성환읍에서 교차되고 있고, 기타 691번 지방도와 593번 지방도 등이 각각 북면과 수신면 일대에 개설되어 있다.

여기에 경부고속국도의 천안 인터체인지가 시내 입구에 개설되어 있으며, 2002년에 논산천안고속도로가 개통되어 도로교통이 대단히 편리하다.

또한 경부선철도가 남북으로 달리면서 성환역, 직산역 및 천안역에서 분기되고 있어서 철도교통의 요지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천안 인터체인지와 천안역은 충청남도 지역을 경부축과 연결해주는 교통의 중심요소이다.

관광

천안삼거리로 유명한 이 시에는 많은 명산·고찰과 문화유적들이 있으며, 교통이 편리하여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모여들고 있다. 이 시는 독립기념관·망향의 동산·삼일운동기념비·유관순사우 등이 있는 성역관광지이며, 국립종축원·성환목장 등의 산업관광도 유명하다.

관광코스는 천안역에서 천안삼거리의 영남루와 삼층석탑, 태조산의 각원사·남북통일기원청동대불·성불사를 거쳐 안서동의 천호지(天湖池), 왕지산(旺地山, 102m)의 왕지산성에 이르는 코스, 천안역에서 남산공원의 용주정(龍珠亭)에 이르는 코스, 천안시내에서 목천읍의 독립기념관과 북면 은지리의 은석사, 병천면 병천리의 삼일운동기념비로 이어지는 코스가 있다.

이 밖에도 천안시내에서 풍세면 상태리의 해선암마애불상(海仙庵磨崖佛像)을 거쳐 광덕면 광덕리의 광덕사로 이어지는 코스, 천안시내에서 성거읍 용방리의 망향의 동산과 천흥리의 천흥사지로 이어지는 코스, 천안시에서 성환읍의 국립종축원과 성환목장으로 이르는 코스가 있다.

특히, 천안삼거리는 풍치가 매우 아름다우며, 현재는 독립기념관으로 들어가는 길목이 되어 관광명소로 부각되고 있다.

또한 남산공원의 용주정은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어 봄·가을이면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고, 태조산에는 동양 최대의 좌불상인 남북통일기원청동대불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다.

또한 성환읍과 직산읍의 배, 입장면의 포도, 성환읍의 참외, 광덕면의 호도는 특산물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관광지가 천안시내와 근거리에 있어 관광객들이 천안시내에 있는 관광시설을 이용하고 있다.

읍·면
  1. 목천읍(木川面)

시의 중앙에 위치한 읍. 면적 63.09㎢, 인구 2만 7088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서리이다. 본래 목천현의 읍내가 되므로 읍내면이라 하여 동평·중포 등 32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목천군의 읍내면과 서면 지역이 목천면으로 개편되면서 천안군에 속하였다.

1963년에 천안군이 천원군으로 개칭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1991년에 천원군이 천안군으로 다시 개칭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고, 1995년에 천안군과 천안시가 도농통합형태의 천안시로 개편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2년 1월 1일 시조례 제508호에 따라 목천읍으로 승격되었다.

지형은 북동에서 남남서로 길게 뻗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차령산맥이 지나고 있어 성거산·유왕골고개·태조산·취암산·흑성산을 분수령으로 동쪽의 산방천·승천천 등 금강수계와 서쪽의 곡류천 상류수계로 나누어진다. 그 중 산방천 하류부의 장군평(將軍坪)이라 불리는 곡저평야는 상류부에 있는 용연저수지(龍淵貯水池)에 의해 관개되는데, 예로부터 맛좋은 쌀이 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잎담배의 재배도 성하다.

경부고속도로가 남부를 동서로 통하고 있으며, 이와 교차되는 길로 면의 서단을 지나는 경부국도, 서리와 병천면 병천리를 이어주는 횡단도로, 그리고 서리에서 송전리까지 가는 도로가 있다.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주곡농업이 외에도 도장리·신계리·운전리 등지에서 고추 등 채소재배와 돼지·한우 사육도 늘고 있다.

한때는 군의 행정중심지로 상거래가 활발했으나 1970년대에 들어오면서 천안과 병천의 시장권에 흡수, 상업활동이 부진한 상태이다. 문화유적은 동리 용화사의 석조여래입상·삼층석탑과 이동녕 생가, 서리의 이범석 생가(李範奭生家), 교촌리의 목천향교·흑성산성 등이 있다. 또한 독립기념관이 이 지역의 흑성산록에 건립되었고, 그 안에 이광악 선무공신 교서 등의 귀중한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다.

서리(西里)·동리(東里)·동평리(東平里)·남화리(南化里)·운전리(云田里)·지산리(芝山里)·교천리(交川里)·신계리(新溪里)·천정리(泉亭里)·교촌리(校村里)·서흥리(西興里)·덕전리(德田里)·송전리(松田里)·석천리(石川里)·응원리(應院里)·삼성리(三省里)·도장리(挑長里)·소사리(所仕里) 등 18개 리가 있다.

  1. 성거읍(聖居邑)

시의 중앙에 위치한 읍. 면적 31.45㎢, 인구 2만 838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저리이다. 본래 직산군 남쪽이 되므로 이남면이라 하여 천흥·저동 등 17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895년 이후 직산군 이남면(二南面)으로 17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직산군 동변면(東邊面)과 천안군 북이면(北二面) 일부를 합쳐 성거면이라 했으며, 천안군에 속하였다.

1963년에 천안군이 천원군으로 개칭되면서 그에 속하였다. 1982년 천원군청이 당시 천안시로부터 신월리로 이전되어 오면서 1985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1991년에 천원군이 다시 천안군으로 개칭되면서 그에 속했고, 1995년에 천원군과 천안시가 도농통합 형태의 천안시로 개편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지형을 보면, 남동부는 선캄브리아기 경기편마암복합체인 산지이다. 그 중 성거산은 고려 태조가 이곳이 산신이 계신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오늘날 읍의 명칭도 여기서 유래되었다. 석교리·신월리·오색당리 일대의 대보화강암 지대는 구릉성산지로 되어 있다.

입장천·천흥천(天興川) 유역에는 범람원이 발달되어 있는데, 천흥·남창(南倉) 등의 저수지에 의하여 관개되고 있다. 주곡농업이 주업이나 그 밖에 소우리·천흥리·송남리·모전리의 콩, 삼곡리·정촌리의 땅콩, 모전리의 참깨 등 밭작물도 많다.

이 밖에 문덕리에서는 젖소사육, 모전리·삼곡리에서는 사과·포도 등 과수재배가 중심을 이루는데, 특히 이들 과수 생산은 군내에서 가장 많고 질이 좋기로 이름나 있다.

천흥리에는 1994년에 설립된 지방공단이 있는데, 전자 및 기계업종을 주로 하는 12개 기업이 입지해 있어 2,000여 명이 고용되어 있다.

시장권은 입장·성환·시내권으로 나누어진다. 문화유적은 천흥리의 성거산성·천흥사지 당간지주·천흥사지 오층석탑을 비롯, 만일사의 법당·오층석탑·마애불·성거산 천성사명 금동보살입상 등을 들 수 있다.

관광지로는 요방리의 망향의 동산을 비롯하여 낚시터로 알려진 신월리의 신월저수지와 성거산계곡 등이 있어 찾는 이가 많다.

천흥리(天興里)·모전리(茅田里)·문덕리(文德里)·삼곡리(三谷里)·석교리(石橋里)·송남리(松南里)·신월리(新月里)·오목리(五木里)·오색당리(五色堂里)·요방리(料芳里)·정촌리(貞村里)·소우리(所牛里)·저리(苧里) 등 13개 리가 있다.

  1. 성환읍(成歡邑)

시의 북서단에 위치한 읍. 면적 56.97㎢, 인구 2만 8421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성환리이다. 본래 직산군 지역으로 직산읍내 서쪽의 세 번째 면이 되므로 삼서면(三西面)이라 하여 중리·외리 등 11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이서면(二西面)의 13개 리, 일서면 당곡리 일부, 이북면(二北面)의 12개 리를 병합해 성환도찰방(成歡道察訪)의 이름을 따서 성환면이라 했으며, 1973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1963년에 천안군이 천원군으로 개칭되면서 그에 속하였다. 1989년에 입장면 도하리가 편입되었고, 1991년에 천원군이 다시 천안군으로 개칭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1995년에 천안시와 천안군이 도농복합형태의 천안시로 개편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성환읍은 일제시대에 경부선 철도의 성환역을 중심으로 발달하여 일대의 농산물 집산지로 크게 성장했던 곳이나, 지금은 그 기능이 위축되어 있다.

지형은 이른바 저위평탄면에 해당하는 침식구릉면이 대부분이다. 산지로는 남동쪽의 성산(城山, 177m)과 남서쪽의 왕지산 정도이다. 중앙부를 북류하는 성환천은 충청남도와 경기도의 도계를 이루는 안성천에 합류되며, 이들 두 하천의 연변에는 충적평야가 분포한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성환천과 안성천 유역의 충적평야에서 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경기도 평택·안성 평야에 이어지는 이곳에서 생산되는 ‘경기미’는 품질이 좋아 전국에 출하된다. 또 이곳은 ‘개구리참외’의 별칭을 가진 참외 주산지로도 유명하다. 화강암의 구릉지대를 이용하여 과수재배와 목축업도 발전시켰다.

과수로는 배·복숭아·사과·포도가 생산되며, 특히 ‘성환배’는 근래 각광을 받고 있다. 북쪽 구릉지의 어룡리에는 1915년에 일본인이 설립한 성환목장을 전신으로 하는 국립종축원 본원이 있어서 일찍부터 우리나라 축산업 보급의 한 중심지가 되었다. 축산업이 발달하여 젖소가 충청남도 내에서 가장 많다.

과수원과 목장지대는 다른 농촌지역에서 보기 드문 근대적인 농촌 경관을 이루고 있다. 이러한 과수원과 목장지대는 이 지역에 밀어닥치고 있는 도시화와 공업화의 영향으로 점차 쇠퇴하고 있다. 성환에서 생산되는 축산물은 그동안 서울로 대부분 공급되었으나, 근래에는 부근의 가공공장으로 반입되는 양이 늘고 있다.

읍의 중앙을 경부선철도와 경부국도가 통과하며, 읍의 동쪽을 끼고 경부고속도로가 있어 교통은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대흥리의 봉선 홍경사 갈기비와 홍경사지가 있고, 복모리에는 수령 500년의 도지정 느티나무가 있다.

성환리(成歡里)·성월리(成月里)·매주리(梅珠里)·율금리(栗金里)·왕림리(旺林里)·신방리(新防里)·송덕리(松德里)·우신리(牛新里)·어룡리(魚龍里)·보모리(洑毛里)·신가리(薪佳里)·와룡리(臥龍里)·학정리(鶴井里)·대홍리(大弘里)·수향리(水鄕里)·안궁리(安宮里)·양령리(兩令里)·도하리(都下里) 등 18개 리가 있다.

  1. 광덕면(廣德面)

시의 남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 80.47㎢, 인구 4,530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흥리이다. 본래 천안군 지역으로 천안읍에서 멀다하여 원일면(遠一面)이라 하여 당하·자매 등 28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원이면(遠二面) 24개 리, 연기군 전동면 일부를 합해 광덕면이 되었으며, 천안군에 속하였다.

1963년에 천안군이 천원군으로 개칭되면서 그에 속하였다. 1991년에 천원군이 다시 천안군으로 개칭되면서 그에 속했고, 1995년에 천안군과 천안시가 도농통합형태의 천안시로 개편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광덕’이라는 이름은 산이 많아 덕이 있어 보인다는 데에서 연유한 것이다.

북쪽은 차령산맥의 주봉격인 광덕산·망경산·태화산(太華山, 456m), 남쪽은 봉수지로 이름이 있는 쌍령산·국사봉(國士峰) 등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풍세천과 곡교천 상류부에 두 개의 구조선이 형성되어 그 매적곡(埋積谷)에 범람원이 발달해 있다. 범람원에서는 주곡농업 이 외에도 마늘·무·배추·파·오이 등 채소와 참깨 재배도 활발하다.

지방명물 천안호도과자의 원료인 호도는 감과 함께 바람이 적은 곡간 경사지에서 재배되고 있는데, 약 10만 그루의 호두나무에서 생산되는 호도의 양이 전국 생산량의 약 30%에 이르고 있다. 이곳의 호도는 고려시대인 1290년(충렬왕 16)에 중국 원나라로부터 우리나라 최초로 들어온 것이다.

그 밖에도 국도변인 동부에서는 유축농업이 보급되어 기업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도로는 동단에 천안∼공주 간 국도가 남북으로 통하고 있으며,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소정리에서 신흥리를 지나 행정리로 이어지는 경부국도가 있다.

문화유적은 매당리에 이시백과 유청신의 신도비, 광덕리의 광덕사 경내에 대웅전·삼층석탑·부도·석사자·감역교지·광덕사 소장유물과 수령 400여 년의 호두나무가 있다. 또, 보물로 지정된 광덕사 고려사경은 동국대학교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신흥리(新興里)·광덕리(廣德里)·대덕리(大德里)·대평리(大平里)·매당리(梅堂里)·무학리(舞鶴里)·보산원리(寶山院里)·신덕리(新德里)·원덕리(院德里)·지장리(芝長里)·행정리(杏亭里) 등 11개 리가 있다.

  1. 동면(東面)

시의 동단에 위치한 면. 면적 43.24㎢, 인구 2,336명(2015년 현재). 면소재지는 동산리이다. 본래 목천군 동쪽에 멀리 있어 일원동면 또는 일동면이라 하여 반계·화산 등 28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목천군 일동면(一東面)과 이동면(二東面)을 합해 동면이라 하고 천안군에 편입시켰다.

1963년에 천안군이 천원군으로 개칭되면서 그에 속했고, 1991년에 천원군이 천안군으로 다시 개칭되면서 그에 속하였다. 1995년에 천안군과 천안시가 도농통합형태의 천안시로 개편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서림산(徐林山, 317m)을 분수령으로 하여 동쪽은 용두천, 서쪽은 녹동천 수계로 나누어진다. 그 주변에는 산정 석단으로 알려진 국사봉·덕유산과 북쪽의 몽각산(夢覺山, 403m), 서쪽의 동성산(銅城山, 238m), 진산인 남쪽의 서림산으로 둘러싸여 분지를 형성하고 있다.

서부의 하천유역 평야지대에서는 주곡농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밭농사의 비중도 비교적 높은 편이어서 참깨·들깨·담배·고추가 많이 생산된다. 제조업은 미약한 편이다. 상권은 인접한 병천과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간 노선이 T자형으로 만난다. 관광명소로는 행암리에 송시열(宋時烈)이 쓴 낙수암(落水巖)이라는 바위가 있고, 서림산고성(徐林山古城)이 있다.

수남리의 경주최씨(慶州崔氏), 덕성리의 밀양박씨(密陽朴氏), 화계리의 남원윤씨(南原尹氏), 송련리의 전주이씨(全州李氏)의 동족마을이다. 동산리(東山里)·구도리(求道里)·송련리(松蓮里)·광덕리(廣德里)·화계리(花溪里)·행암리(杏巖里)·덕성리(德星里)·죽계리(竹溪里)·장송리(長松里)·수남리(壽南里)·화덕리(花德里) 등 11개 리가 있다.

  1. 병천면(竝川面)

시의 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56.37㎢, 인구 6,542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병천리이다. 본래 목천군의 동쪽 가까이에 있으므로 근동면(近東面)이라 하다가 1895년 치랏골의 이름을 따서 갈전면으로 고쳐 상백전·하백전 등 27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몇 개 리를 합쳐 다시 갈전면(葛田面)으로 개칭하고 천안군에 속하였다.

1942년 병천면으로 개칭되었고, 1963년에 천안군이 천원군으로 개칭되면서 그에 속하였다. 1973년 동면 용두리와 수신면 복다회리를 편입시켰다. 1991년에 천원군이 천안군으로 다시 개칭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1995년에 천안시와 천안군이 도농통합형태의 천안시로 개편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으며, 복다회리(卜多會里)가 송정리로 개칭되었다.

북부와 매봉산(梅峰山, 210m) 이남은 선캄브리아기의 경기편마암복합체로 되어 있으며, 중부만이 대보화강암 지질로 되어 있다. 남북 방향의 구조선을 따라 광기천이 흐르다가 서원천(書院川)을 합해 다시 병천천 분류와 합류된다. 남쪽의 곡간에 매적곡이 발달되어 있을 뿐, 험준한 산지지형이다.

병천천 유역인 가전리·송정리 등 범람원에서는 주곡농업이 성하지만, 그 밖에 오이·들깨·마늘·고추·골파의 생산이 많다. 교통은 면의 남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천안∼진천 간 국도가 나 있다. 북은 봉항리, 남은 수신면으로 가는 길이 이와 교차되고 있다.

문화유적은 병천리의 기미독립기념비와 아우내 3·1운동 독립사적지, 탑원리의 아우내장터의 유관순 생가 등 유관순열사유적이 있다. 용두리에는 조병옥의 생가 터가 있다. 용두리의 고흥유씨(高興柳氏), 가전리·용두리·송정리의 안동김씨(安東金氏)의 동족마을이다.

병천리(竝川里)·가전리(佳田里)·탑원리(塔院里)·도원리(桃源里)·매성리(梅城里)·관성리(冠星里)·봉항리(鳳項里)·송정리(松亭里)·용두리(龍頭里) 등 9개 리가 있다.

  1. 북면(北面)

시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58.54㎢, 인구 4,866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오곡리이다. 본래 목천군의 북쪽이 되므로 북면이라 하여 회촌·운암 등 39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천안군에 편입되었다.

1963년에 천안군이 천원군으로 개칭되면서 그에 속했다가, 1991년에 천원군이 다시 천안군으로 다시 개칭되면서 그에 속하였다. 1995년에 천안군과 천안시가 도농통합형태의 천안시로 개편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남북방향의 구조곡을 중심으로 동쪽은 개죽산·은석산·작성산, 서쪽은 성거산·서금재(467m) 등의 산지로 둘러싸여 있다. 그 사이를 병천천과 은석천이 흐르고 있다. 골짜기를 따라 천안∼진천 간의 도로에서 갈라진 도로가 남북으로 나 있으나 교통은 불편한 편이다. 병천천과 산방천이 합류되는 곳에는 통미들이 형성되어 있어 맛좋은 쌀이 생산된다.

산지가 많아 경지율은 18.2%로 낮으며, 주곡농업 이 외에 사담리·전곡리의 고추, 매송리의 담배, 사담리의 참깨 등 밭작물이 많고 매송리에서는 밤이 생산되고 있다. 젖소 사육지도 늘어가고 있으며 납안리와 매송리에는 대규모 농장이 있다.

문화유적은 은지리의 온석사·박문수 묘(충청남도 문화재자료, 1984년 지정)·고령박씨 종중 재실, 운룡리의 위례산성, 오곡리의 신자경선생 묘·봉황사(鳳凰寺) 등이 있다. 동족마을로는 온지리의 무송유씨(茂松庾氏), 용암리의 청주곽씨(淸州郭氏) 마을이 있다.

오곡리(梧谷里)·납안리(納安里)·대평리(大坪里)·매송리(梅松里)·명덕리(命德里)·사담리(沙潭里)·상동리(上東里)·양곡리(陽谷里)·연춘리(延春里)·용암리(龍巖里)·운룡리(雲龍里)·은지리(銀芝里)·전곡리(典谷里) 등 13개 리가 있다.

  1. 성남면(城南面)

시의 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33.01㎢, 인구 3,683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사리이다. 본래 목천군 지역으로 세성산의 이름을 따서 세성면(細城面)이라 하여 운교·화원 등 15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19개 리와 수신면·서면 일부를 합해 성남면이라 하여 천안군에 편입되었다.

1963년에 천안군이 천원군으로 개칭되면서 그에 속했고, 1991년에 천원군이 천안군으로 다시 개칭되면서 그에 속하였다. 1995년에 천안군과 천안시가 도농통합형태의 천안시로 개편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북쪽에는 세성산이 솟아 있고, 서쪽과 남쪽은 원호꼴의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이다. 금강 상류인 승천천 유역에는 수성평야라 불리는 넓은 범람원이 발달되었는데, 대정저수지(大井貯水池)에 의하여 관개되고 있다. 경지율은 약 38%로 군내에서 상위에 속하며, 평야지대에서는 주로 주곡농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밭작물로는 신사리·용원리의 고추, 봉양리·신사리·화성리의 마늘, 대흥리·신사리의 무를 비롯, 배추·수박 등 채소와 특용작물로 담배가 많이 생산된다. 경부고속도로가 면의 북동에서 동으로 통하고 있으며,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으로 가는 도로가 T자형으로 교차되어 교통이 매우 편리한 곳이다.

문화유적은 화성리에 동학혁명군이 패전한 세성산성지가 있고, 신사리에 청룡사(靑龍寺)·보광사(普光寺) 등의 사찰이 있다. 관광지로는 예로부터 이름이 있는 대정리의 초정약수터가 있다. 용원리·화성리에는 수령 500여 년의 도지정 느티나무가 있다.

신사리(新沙里)·대정리(大井里)·대화리(大花里)·대흥리(大興里)·봉양리(鳳陽里)·석곡리(石谷里)·신덕리(新德里)·용원리(龍院里)·화성리(花城里) 등 9개 리가 있다.

  1. 수신면(修身面)

시의 남동부에 위치한 면. 면적 25.88㎢, 인구 2,488명(2015년 현재). 면 소재지는 속창리이다. 본래 충청좌도 청주목의 지역으로 들이 넓고 물이 깊으므로 수심면(水深面)이라 하다가 그 뒤 수신면으로 고쳐 발산·한신 등 21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천안군에 편입되었다.

1963년에 천안군이 천원군으로 개칭되면서 그에 속했고, 1991년에 천원군이 다시 천안군으로 개칭되면서 그에 속하였다. 1995년에 천안군과 천안시가 도농통합형태의 천안시로 개편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동쪽은 바라박산에서 시작하여 새남산·매봉산, 남쪽은 망경산이 있고, 서쪽은 성남면과의 경계에 이르기까지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이다. 그 중앙부를 속새말내를 합하는 병천천이 동류하며, 그 유역은 성남면에 이어지는 곡창지대이다.

논농사가 위주이지만 전작도 전체 경작지의 약 44%로 비교적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평야지대의 주곡농업 이 외에 구릉지대인 백자리·신풍리 등지에서 참깨·고추 등이 생산되어 집하장을 통해 출하된다. 또한 백자리에서는 양잠과 느타리버섯 재배가 성하며, 장산리의 집단양계와 요업이 특기할만하다.

하천의 방향을 따라 경부고속도로가 나 있으며, 북의 병천면과 남의 세종특별자치시 전동면을 잇는 도로가 통하고 있어 도로교통상의 요지이다. 해정리에 수령 500년의 도지정 느티나무가 있다. 해정리의 남양홍씨(南陽洪氏), 백자리의 경주이씨(慶州李氏)의 동족마을이다. 속창리(涑倉里)·신풍리(新豊里)·해정리(海亭里)·백자리(百子里)·발산리(鉢山里)·장산리(長山里) 등 6개 리가 있다.

  1. 입장면(笠場面)

시의 북부에 위치한 면. 면적 42.74㎢, 인구 1만 99명(2015년 현재). 면소재지는 하장리이다. 본래 직산군 이동면 지역으로 입장장의 이름을 따서 입장면이라 하여 기로촌·사장 등 15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직산군 삼동면 지역과 이북면 일부를 합해 입장면이 되면서 천안군에 편입되었다.

1963년에 천안군이 천원군으로 개칭되면서 그에 속하였다. 1989년에 도하리가 성환읍에 편입되었고, 1991년에 천원군이 천안군으로 다시 개칭되면서 그에 속하였다. 1995년엔 천안시와 천안군이 도농통합형태의 천안시로 개편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지형은 북동부에 도림산(道林山), 남쪽에 부소문이고개·위례산 등이 솟아 있고, 중부 이북은 ㄴ자형으로 흐르는 입장천 유역에 넓은 충적범람원이 발달해 있다. 그리고 그 양쪽에는 100m 내외의 대보화강암 침식구릉지형이 발달해 있다. 경부고속도로 및 국도가 남북 방향으로 지나고, 동서 방향의 지방도가 교차되어 교통이 매우 편리하다.

토양이 비옥한 지대여서 남부산지 지역을 제외한 전지역에서 주곡농업이 성하며, 오이·포도 등 과채류가 많이 생산된다. 특히, 알이 굵은 거봉포도는 전국 생산량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생산된다. 이곳에서는 논 이 외의 밭은 거의 전부 포도 재배에 이용되고 있으며, 포도밭은 논에도 많이 들어섰다.

고속도로 주변에서는 무·배추를 재배하여 집하장을 통하여 수도권으로 출하된다. 또 연곡리·도하리·기로리에서는 젖소가 많이 사육되며, 신두리·용정리·효계리·시장리에서는 한우, 양대리에서는 돼지를 많이 사육하고 있다. 하장리시장은 지방상거래의 중심을 이루며, 그 밖에 상권은 천안시내와 성환에 속해 있다.

문화유적은 호당리에 위례산성, 양대리에 3·1독립만세기념탑이 있다. 효계리에는 수령 500년의 도지정 느티나무가 있다. 홍천리의 신안주씨(新安朱氏), 호당리의 풍천임씨(豊川任氏), 신두리의 파평윤씨(坡平尹氏), 산정리의 울산이씨(蔚山李氏), 도하리의 해주오씨(海州吳氏), 가산리의 진보조씨(眞寶趙氏)의 동족마을이다.

하장리(下場里)·상장리(上場里)·기로리·도림리(道林里)·양대리(良垈里)·홍천리(弘泉里)·호당리(虎堂里)·시장리(侍壯里)·효계리(孝溪里)·신덕리(新德里)·신두리(新頭里)·용정리(龍井里)·흑암리(黑巖里)·산정리(山井里)·연곡리(延谷里)·가산리(可山里)·유리(柳里)·독정리(獨井里) 등 18개 리가 있다.

  1. 직산읍(稷山面)

시의 북서부에 있는 읍. 면적 30.50㎢, 인구 2만 1762명(2015년 현재). 읍 소재지는 삼은리이다. 본래 직산현의 서쪽이 되므로 서변면이라 하여 군서·신대 등 5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직산군이 천안군에 편입되면서 서변면(西邊面)·일서면·북이면 일부를 합해 성산면(城山面)이라 했던 것을 1916년 옛 이름을 따라 직산면으로 고쳤다.

1963년에 천안군이 천원군으로 개칭되면서 그에 속했고, 1991년에 천원군이 천안군으로 다시 개칭되면서 그에 속하였다. 1995년에 천안군과 천안시가 도농통합형태의 천안시로 개편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2002년 1월 1일 시조례 제 508호에 따라 직산읍으로 승격되었다.

중앙부의 성환천 유역과 동부의 입장천 유역은 충적평야를 이루고 있으며, 양전(良田)·마정(馬井) 등의 저수지에 의하여 관개되고 있다. 그 나머지는 대부분 쥐라기 대보화강암의 침식준평원을 이루며, 아산군 음봉면과의 경계인 서쪽의 용암산(龍巖山, 149m)·용와산(龍臥山, 238m) 일대만이 낮은 잔구성산지로 남아 있다.

경부선 철도와 국도가 중앙부를 남북으로 통과하고 있으며, 동서로 달리는 도로가 이와 교차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경지율은 54%로 높은 편이며, 주곡농업 이 외에도 참외·무·배추 등 채소와 사과·포도·배·복숭아 등 과실도 많이 생산된다.

구릉지대가 많고 성환 낙농지대와 이웃하고 있어 상덕리·남산리·군동리·군서리 등을 중심으로 젖소의 집단사육지가 조성되어가고 있다. 상권은 남부는 천안시내, 북부는 성환에 각각 속하여 있다.

문화유적은 군동리의 직산현 관아·호서계수아문, 군서리의 직산향교·민익현 가옥 등이 있다. 마정리의 한산이씨(韓山李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군동리(郡東里)·군서리(郡西里)·남산리(南山里)·판정리(板井里)·마정리(馬井里)·모시리(毛枾里)·부송리(富松里)·삼은리(三隱里)·상덕리(上德里)·석곡리(石谷里)·수헐리(愁歇里)·신갈리(新葛里)·양당리(良堂里)·자은가리(自隱加里) 등 14개 리가 있다.

  1. 풍세면(豊歲面)

시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30.25㎢, 인구 4,512명(2015년 현재). 면소재지는 풍서리이다. 본래 풍세현의 지역으로 조선시대에 천안군 대동면이 되어 보성·신기 등 12개 리를 관할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원서(遠西)·대동(大東)·소동(小東) 등 3개 면을 합쳐 1개 면으로 만들면서 옛 이름을 따서 풍세면이라 했으며 천안군에 속하였다.

1963년에 천안군이 천원군으로 개칭되면서 그에 속하였다. 1991년에 천원군이 다시 천안군으로 개칭되면서 그에 속했고, 1995년에 천안군과 천안시가 도농통합형태의 천안시로 개편되면서 그에 속하게 되었다.

곡교천과 풍세천이 Y자형으로 합치는 곳으로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해 있다. 남쪽의 태화산에 이어지는 산줄기가 풍세천에서 끊기고, 나머지는 거의 해발 100m 내외의 구릉지대이다.

평야지대에서는 주곡농업 이 외에 오이·고추·무 등 채소와 잎담배가 많이 생산되며, 양잠도 성하다. 전 지역에서 부업으로 한우 사육이 이루어지며, 보성리·용정리·풍서리 등 도로변에서는 젖소가 사육된다.

지방 상거래의 중심이던 풍세시장은 1970년대 들어 자연 소멸되고 천안상권에 흡수되었다. 경부선철도가 통과하며 천안∼광덕 간, 광덕면의 매당리∼행정리 간의 도로 및 이와 T자형으로 갈라져 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 소정리로 통하는 길이 있다. 문화유적은 삼태리의 전씨 시조단소 및 재실과 삼태리 마애불이 있다.

동족마을로는 풍서리·용정리의 성주현씨(星州玄氏), 남관리의 천안전씨(天安全氏) 마을이 있다. 풍서리(豊西里)·가송리(佳松里)·미죽리(美竹里)·두남리(斗南里)·남관리(南館里)·삼태리(三台里)·용정리(龍井里)·보성리(寶城里) 등 8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대동지지(大東地志)』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0)
『한국지리』지방편(권혁재, 법문사, 1996)
『우리고장 충남: 환경과 역사』(충청남도 교육위원회, 1986)
『한국관광자원총람』(한국관광공사, 1985)
『한국지지』지방편Ⅱ(건설부국립지리원, 1984)
『천원군지』(천원군지편찬위원회, 1984)
『충남교육사』(충청남도교육위원회, 1982)
『한국지명요람』(한글학회, 1982)
『충청남도지』(충청남도지편찬위원회, 1979)
『천원군지』(천원군, 1969)
천안시(www.cheonan.go.kr)
충청남도천안교육청(www.cncae.go.kr)
집필자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