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군 ()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충청북도 서부에 위치했으며 청주시에 통합된 군.
정의
충청북도 서부에 위치했으며 청주시에 통합된 군.
개관

동쪽은 보은군과 괴산군, 서쪽은 세종특별자치시, 남쪽은 대전광역시, 북쪽은 진천군과 접하였다. 동경 127°16′∼127°50′, 북위 36°25′∼36°47′에 위치하였다. 면적은 814.13㎢이었고, 인구는 14만 8063명(2008년 현재)이었다. 행정구역으로는 2개 읍, 12개 면, 582개 리가 있었다. 군청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북문로에 있었다. 2014년 7월 1일부로 청원군이 청주시에 통합됨으로써 통합 청주시가 출범하였다.

자연환경

동쪽의 군계에는 괴산군 보광산(普光山, 520m)에서 남쪽으로 좌구산(座龜山, 657m)·미동산(米東山, 545m)·국사봉(局師峰, 564m)·피반령(皮盤嶺, 547m)·샘봉산(461m)으로 이어지는 산맥이 옥천군 대성산(大聖山, 705m)에 연결되고 있다.

좌구산에서 분기한 상당산맥(上黨山脈)이 남서쪽으로 구녀산(九女山, 499m)·상당산(上黨山, 491m)·선도산(仙到山, 546m)·관봉(冠峰, 407m)·시루봉(255m) 등을 연결하여 청주시 동쪽을 에워싸고 있다. 서쪽 경기도와의 도계를 이루고 있는 차령산맥은 서림산(徐林山)·솔림산(率林山)·망경산(望京山) 등의 산봉이 있으나 잔구성 산지에 불과하다.

청주시가의 서쪽은 부모산(父母山, 282m)·팔봉산(八峰山, 291m)·봉무산(鳳舞山, 346m) 등이 있으나 대부분 200m 이내의 구릉성 산지를 이루고 있다. 그리하여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으로 동부는 산악지대이고 서부는 평야와 파랑상의 잔구성산지를 이루고 있다.

동쪽에 위치한 노령산맥을 분수령으로 서쪽에는 금강수계, 동쪽에는 남한강수계를 이루고 있다.

주요 하천은 금강과 미호천·보강천(寶崗川)·무심천(無心川)·조천(鳥川)·병천천(並川川)·외천천(外川川)·백천(白川)·용두천(龍頭川)·성암천(聖巖川)·동막천(東幕川)이 있다. 남한강 수계에는 인경천(仁景川)·미원천(米院川)·중리천(中里川)·구룡천(九龍川)·감천(甘川, 호점내) 등의 하천이 있다.

미호천과 그 지류인 성암천·봉강천·병천천 유역에는 넓은 충적평야를 발달시키고 있다. 남한강의 상류 달천(達川)의 상류인 감천 주변의 낭성면 관정리·성대리, 미원천 주변의 미원면 미원리·운암리 등 양 하천유역에도 비교적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하고 있다.

연평균기온은 12°C, 1월 평균기온 0.4°C, 8월 평균기온 25.2°C로서 기온의 연교차는 26°C에 달한다. 한랭 건조한 긴 겨울과 온난 다습한 여름이 계속되는 대륙성 기후를 나타내고 여름철에는 가끔 집중다우로 홍수의 피해를 입고 있다. 연강수량은 1,216.5㎜이다.

역사

구석기시대의 유적으로 문의면 노현리의 두루봉동굴과 문의면 문덕리의 샘골유적 등이 발견되었다. 또 문의면의 덕류리·문산리와 가호리 진사골, 신대리 형강(荊江)마을 등지에서 뗀석기가 출토되고 있어 구석기문화 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

신석기시대의 유물·유적은 가덕면·강외면 등지에서 발견되고 있다. 청동기시대의 유물·유적이 북일면·북이면·남일면·문의면 등지에서 발견되어 일찍부터 이 지역이 사람 살기에 적합했음을 알 수 있다. 삼한시대에는 지금의 문의면에 마한의 한 소국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삼국시대에는 백제가 먼저 이 지역을 차지하여 상당현(上黨縣) 혹은 낭비성(娘臂城)·낭자곡(娘子谷)이라 하였고, 문의면 지역을 일모산군(一牟山郡)이라 하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685년(신문왕 5)에 서원소경(西原小京)이 설치되었으며, 757년(경덕왕 16)서원경으로 승격되고 동시에 일모산군이 연산군(燕山郡)으로 개칭되었다.

940년(태조 23)에 청주로 개칭되었고, 983년(성종 2) 전국에 12목(牧)이 설치될 때 청주목으로 승격되었다. 995년 12목이 12절도사 체제로 개편되자, 다시 청주로 되어 절도사가 파견되다. 1012년(현종 3) 절도사 대신 안무사(安撫使)가 두어졌다가 1018년 다시 청주목으로 되었다.

한편, 연산군은 청주목의 속현이 되었으며, 1172년(명종 2)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었다. 1259년(고종 46) 최의(崔竩)가 제거되고 위사공신(衛社功臣)에 책봉된 박희실(朴希實)의 내향(內鄕)이라 하여 문의현으로 승격되었고 현령이 파견되었다. 충렬왕 때에는 문의현이 가림현(嘉林縣)에 병합되었다가 곧 복구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충청도 관할의 청주목과 문의현으로 존속하였다. 1449년(세종 31) 충청도관찰사가 청주목의 판목사(判牧事)를 겸하게 하였다가 곧 폐지되었다. 세조 때 청주목에 진(鎭)이 두어졌으며, 속현으로 청천현(靑川縣)과 주안향(周岸鄕)이 있었다.

1464년(세조 10) 왕이 난치병을 치료하기 위해 초정약수터에 들렀으며, 이에 앞서 세종도 이곳에 행차하였었다. 현재 이곳에 남아 있는 ‘주왕’이라는 지명은 ‘왕이 머물렀다’는 ‘住王(주왕)’에서 연유하였다 한다.

1505년(연산군 11) 이곳 사람이 환관 이공신(李公臣)을 죽인 사건으로 청주목이 폐지되어 인근 고을에 분속되었다가 중종 초에 다시 청주목으로 복구되었다. 1591년(선조 24) 해미(海美)에 있던 병사(兵使)가 청주목으로 옮겨졌고, 1594년에는 옥천(沃川)에 있던 진(鎭)이 옮겨졌다.

또한 선조 때에는 문의현이 임진왜란 때 황폐되었으므로 청주목에 예속되었다가 1609년(광해군 1)에 다시 분리되어 문의현으로 되었다. 1656년(효종 7) 이곳의 종 억이(億伊)가 주인을 죽인 사건으로 청주목이 서원현(西原縣)으로 강등되었다가 1667년(현종 8)에 청주목으로 복구되었다.

1680년(숙종 6) 생원 박상한(朴尙韓)의 기우제 제문 중에 반역의 뜻이 있다 하여 다시 서원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689년청주목으로 복구되었다. 1728년(영조 4)에는 이인좌(李麟佐)의 난으로 서원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740년청주목으로 복구되었다.

1777년(정조 1)에도 역적 효임(孝任)의 태생지라 하여 서원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812년(순조 12)에 다시 복구되었다. 또한 1826년에 역적 박형서(朴亨瑞)의 태생지라 하여 서원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835년(헌종 1)에 청주목으로 복구되었다. 1862년(철종 13)에 역적 김순성(金順性)의 태생지라 하여 서원현으로 강등되었다.

1870년(고종 7)에 다시 청주목으로 복구되었으며, 1888년에는 문의현이 청주목에 예속되었다. 1894년 동학혁명을 진압하던 관군 70여 명이 강외면 싸움에서 모두 죽자, 목사 임택호(任澤鎬)가 그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청주 남석교(南石橋) 밖에 단을 지어 제사를 지내고 모충단(慕忠壇)이라 이름하였다.

1895년청주군과 문의현으로 분리되었고, 다음해 13도제의 실시와 함께 충청북도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오창면 도방리(道方里) 일부가 충청남도 천안군에 편입되었고 충청남도 대전군 구칙면(九則面) 상산리(上山里) 일부가 청주군에 편입되었다. 1930년양성면과 용흥면이 합해져 문의면이 되었으며, 1931년청주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46년 6월 1일청주읍이 부(府)로 승격됨에 따라, 청주군의 나머지 지역이 청원군으로 되었다. 1963년 1월 1일사주면(四州面) 일원이 청주시로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남이면의 행산리·산수리가 부용면에, 석곡리가 강서면에, 북이면 초중리가 괴산군 증평읍으로 각각 편입되었다.

1983년 2월 15일강내면 황탄리 일부가 강외면에, 문의면 죽암리가 현도면에, 북이면 학평리가 북일면에, 강서면 일원과 낭성면 산성리, 남일면 방서리, 강내면 석소리가 청주시로 편입되었다.

1987년 1월 1일에는 강내면 부탄리(浮灘里)가 월탄리로 명칭 변경되었고, 남이면 죽림리와 강내면 정봉리·신촌리가 청주시로 편입되었다. 1989년 1월 1일북이면 석화리 일부가 북일면 세교리에, 부용면 외천리 일부가 남이면에, 낭성면 성대리가 미원면에, 보은군 회북면 마동리·마구리·묘암리와 회남면 염치리가 문의면에 각각 편입되었다.

1990년 4월 1일에는 남일면의 지북리·평촌리·운동리·월오리·장암리, 남이면의 장성리, 북일면의 주성리·외하리·외평리·외남리·오동리·정북리·정상리·정하리·주중리가 청주시로, 가덕면 노현리가 문의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3월 1일강외면 심중리 일원이 충청남도 연기군 전동면으로, 연기군 동면 갈산리 일원이 부용면에 편입되는 도간 경계 조정이 이루어졌다. 2000년 1월 1일에는 북일면이 내수읍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승격되었다. 2004년 7월 30일에는 남이면 1개리, 현도면 4개리, 옥산면 1개리, 오창면 1개리가 분구되었다. 2006년 12월 28일오창면이 오창읍으로 승격되었다.

2014년 7월 1일에 청원군이 청주시에 편입되어 통합 청주시가 됨으로써 과거 청원군 관할 2개 읍(내수읍·오창읍), 11면(가덕면·강내면·강외면·남이면·남일면·낭성면·문의면·미원면·북이면·옥산면·현도면)이 청주시에 편입되었다. 내수읍·오창읍·북이면은 청주시 청원구에, 가덕면·남일면·낭성면·문의면·미원면은 청주시 상당구에, 오송읍(강외면이 승격)·강내면·옥산면은 청주시 흥덕구에, 남이면 현도면은 청주시 서원구에 각기 편입되었다. 이와 더불어 과거 청원군 부용면 관할 8개 리(부강리·노호리·등곡리·금호리·갈산리·문곡리·행산리·산수리)가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으로 편입되었다.

유물·유적

문의면 노현리의 두루봉동굴에서 중기 구석기시대의 동물화석과 뼈연모·타제석기류 등이 출토되었다. 문덕리의 샘골유적, 구룡리의 작은용굴을 비롯하여 문산리·가호리·신대리 등지는 구석기시대 유적지로 알려져 있다.

또한, 가덕면 노동리의 입석, 미원면 수산리와 북일면 학평리의 지석묘, 문의면 도원리와 가호리의 선돌 및 고인돌 등 청동기시대 유물이 곳곳에 남아 있다.

강내면 석화리와 남이면 양촌리, 문의면 덕류리 김생사지(金生寺址), 북이면 서당리·내둔리 등지에서는 청동기시대의 마제석검·석촉과 무문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가덕면 병암리에 백제 계통의 고분을 비롯하여 강외면 상봉리, 북이면 장양리, 내수읍 학평리 등지에 삼국시대의 고분군이 있다.

역시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이는 북이면 부연리의 낭비성(娘臂城)·노고성(老姑城), 미원면 대신리의 구녀성(九女城), 문의면 미천리의 양성산성(충청북도 기념물, 2002년 지정) 등의 성터가 20여 개나 남아 있어 당시 관방(關防)시설의 상태를 보여준다. 남성골 산성은 2003년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가 2012년 해제된 후 세종특별시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주요 불교문화재로는 남이면 사동리의 안심사대웅전보물, 1980년 지정)·청원안심사세존사리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안심사 영산회 괘불탱(국보, 1997년 지정)·청원안심사비로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이 있다.

또한 문동리의 동화사석조비로사나불좌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90년 지정), 내수읍의 청원비중리일광삼존불상(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석불입상·석조광배·석조여래입상, 가덕면의 청원계산리오층석탑(보물, 1969년 지정), 문의면 문덕리의 청원월리사대웅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0년 지정)·산덕리금동여래입상이 있다.

그리고 미원면 대신리의 구려사파불(句麗寺破佛), 가덕면 병암리의 화림사지(花林寺址) 석불 및 석탑, 상야리의 백족사삼층석탑(白足寺三層石塔), 오창면의 탑리석조비로자나불상과 괴정리석조여래입상, 북이면 영하리의 석조여래좌상·흥복사지석탑(興福寺址石塔) 등이 있다.

유교문화재로는 문의면 미천리의 문의향교(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와 문의현 관아의 객사로 쓰였던 문산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78년 지정)을 비롯하여 백록서원(白鹿書院)·덕천서원(德川書院)·체화서원(棣華書院)·죽계서원(竹溪書院)·검암서원(儉巖書院)·서계서원(書溪書院)·국계서원(菊溪書院) 등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조선 고종 때 철폐되었다가 근년에 복원된 것들이다.

또한, 북이면 내추리 문숙공영당(文肅公影堂)의 윤관영정(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7년 지정), 가덕면 인차리 구봉영당(九峰影堂)의 신숙주 초상(보물, 1977년 지정), 옥산면 덕촌리의 정수충영정 및 영정중모기(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7년 지정), 낭성면 관정리의 묵정영당(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1년 지정)과 귀래리의 단재영정각(丹齋影幀閣), 북일면 원통리 죽림영당(竹林影堂)의 을축갑회도 및 죽림갑계문서(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3년 지정) 등이 있다.

남일면 신송리의 체화당사(충청북도 기념물, 1987년 지정), 내수읍 비중리의 홍양사(鴻陽祠), 옥산면 국사리의 충현사(忠顯祠) 등이 있다.

이 밖에 내수읍 비중리의 삼세충효문(충청북도 기념물, 1984년 지정)이 있다.

고가옥으로는 남일면 고은리의 청주 고은리 고택(국가민속문화재, 1984년 지정), 부용면 부강리의 세종 홍판서댁(국가민속문화재, 1984년 지정), 가덕면 인차리의 신형호고가(申鑅浩古家,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5년 지정), 낭성면 호정리의 청주과필헌(충청북도 민속문화재, 1989년 지정), 문의면 문산리의 청주 노현리 고가(충청북도 무형문화재, 2003년 지정), 청주 부강리 고가(충청북도 유형문화재, 2003년 지정), 청주관정리고가(충청북도 문화재자료, 2003년 지정) 등이 있다.

현도면 중척리에는 지선정(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2년 지정), 시목리에는 월송정(月松亭), 미원면 옥화리에는 세심정(洗心亭) 등의 정자가 있다.

북이면 대율리의 최명길묘소(충청북도 기념물, 1984년 지정)·최명길신도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0년 지정), 금암리의 손병희선생유허지(충청북도 기념물, 1979년 지정), 낭성면 관정리의 신중엄신도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7년 지정)가 있다.

또한 귀래리의 단재신채호사당 및 묘소(충청북도 기념물, 1993년 지정, 남이면 수대리의 박광우 묘소 및 신도비(충청북도 기념물, 1987년 지정)·박광우묘출토유물(충청북도 민속문화재, 1982년 지정), 남일면 가산리의 한란(韓蘭) 묘소 및 신도비(충청북도 기념물, 1987년 지정), 옥산면 신촌리의 박훈신도비(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95년 지정), 국사리의 강감찬장군추모비가 있다. 부용면 금호리에 보만정및검담서원묘정비는 2002년 충청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으나 2012년 해제 이후 세종시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그리고 낭성면 무성리의 청주영조태실(충청북도 기념물, 1984년 지정), 문의면 산덕리의 청원산덕리태실(충청북도 기념물, 1993년 지정) 등이 있다.

문의면 문산리의 조선왕조의궤(보물, 2016년 지정)가 있다. 또 강내면 월탄리에는 밀천군박숭원삼등공신녹권(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988년 지정)이 있다.

문의면 문산리에는 청원문산리석교(충청북도 유형문화재, 2003년 지정)가 보존되어 있다.

미원면 계원리에는 청원신선주(충청북도 무형문화재, 1994년 지정)가 전승되고 있다.

강외면 공북리에는 수령 700년 된 청원강외면의 음나무(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가 있다.

설화·민요

삼국시대의 성이 많은 이곳에는 축성설화(築城說話)가 다수 전해지고 있다. 미원면과 내수읍 사이에 있는 구녀성은 아홉 딸이 쌓았다는 데서 붙여진 명칭으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아들 하나와 딸 아홉을 가진 홀어미가 있었는데 남매간에 사이가 나빠 내기를 시켰다. 아들은 나막신을 신고 서울에 다녀오고 딸들은 성을 쌓는 내기였다. 성이 다 될 무렵까지 아들이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속으로 아들이 이기기를 바라던 홀어미는 팥죽을 쑤어 딸들에게 먹게 하였다.

결국 내기에 진 딸들이 자신들이 쌓아놓은 성의 꼭대기로 올라가 차례로 몸을 던져 죽었다. 비로소 자신의 옹졸함을 깨닫게 된 아들은 산속에 숨어 일생동안 그들 자매들의 명복을 빌다 죽었다.

북이면에는 노고성에 대한 전설도 전해온다. 어느 집안에 보통 사람 이상으로 힘센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항상 다투므로 산신이 내기를 시켰다. 시어머니는 성을 쌓고 며느리는 산을 허물어 들을 만들게 하였다. 시합이 끝날 무렵 시어머니가 이길 공산이 커지자, 며느리를 불쌍히 여긴 산신이 시어머니의 가죽치마를 뜯어놓는 등 훼방을 놓아 결국 며느리가 이기고 시어머니는 쫓겨났다. 그 때 쌓은 성이 노고성이라 한다.

이 밖에도 고구려의 연개소문이 신라의 첩자에게 속아 궁궐터로 자리를 잡았다가 산신의 도움으로 빠져나가 살아났다는 대국터〔大國垈〕 전설을 비롯하여, 병자호란 때 출전한 의병 박동명(朴東明)의 혼백이 고향으로 오던 중 끊어진 곳이라는 몽단이고개〔夢斷嶺〕전설이 있다.

또한 천년 후에 이곳으로 물이 넘어갈 것을 어느 도승이 예언했다는 무너미고개〔水越峙〕, 쌀이 떨어지지 않아 굶주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는 쌀고을〔米院〕, 어느 처녀가 두꺼비를 키워 괴물을 죽이고 살아났다는 오창(梧倉)의 지네장터 전설 등 지명설화가 많이 전해지고 있다.

이 지방에 유포되어 있는 여러 형태의 민요 중에 「베틀노래」는 옛날 시골에서 부녀자들이 베를 짜며 부르던 여성노동요로서, 언어적 측면에서 볼 때 가장 완벽에 가까운 형태로 여겨진다. 베짜기는 단시간 내에 이루어지는 작업이 아니다. 한 필의 베틀을 짜기 위해서는 4, 5일씩 걸려야 했기 때문에 내용도 자연히 길어져 서사적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상상력 속에서 고달픈 노동을 아름답게 미화시켜 베짜는 자신을 월궁(月宮)의 선녀로, 베틀을 달나라의 계수나무로 비유하였다. 이 「베틀노래」의 절정은 서울 갔던 낭군이 죽어 칠성판에 누워 돌아오는 장면의 묘사이다. 이 부분은 상당히 길어져 이 노래의 주제재를 이루는데 이는 비극적 정서의 극한인 죽음·눈물·한(恨) 등으로 집약될 수 있다.

「베틀노래」가 개인 노작(勞作)의 결과라면 「집터다지는 노래」나 농업노동요인 「모찌는 노래」·「논매는 노래」·「운상가(運喪歌)」 등은 공동노작의 과정에서 생성되었기 때문에 앞소리를 뒷소리가 받쳐주는 형식으로 되어 있다.

「집터다지는 노래」에는 집터다지는 과정을 묘사하면서 여러 가지 인생덕담이 삽입되어 있다. ‘에헤야 지저미호’하는 뒷소리는 노동을 흥겹게 이끌어주는 반면에 집 짓는 일과 삶을 희망적으로 인식하도록 하면서 반복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는 비극적 정서나 삶의 부정적 의식이 나타나지 않는데 이는 이 지역 주민들의 안정된 생활상을 암시해주기도 한다.

이러한 삶의 인식태도는 「운상가」에서도 나타난다. 이것은 삶과 죽음의 의미를 우주 자연의 큰 섭리로 깨닫게 됨을 보여준다.

그 밖에 이 지역의 민요들은 대부분이 농업노동요이다. 이들은 여기저기서 단형조(短型調)의 노래가 삽입되어 장형을 이루고 있는 형태가 많다. 이는 긴 노동시간에 흥을 돋우고 노동효과를 높이기 위해 늘여 부른 것임을 알 수 있다.

내용에서는 비교적 평이한 삶의 인식적 태도로부터 우러나온 감정의 표현이 많아서 정서적 측면에서 별 다른 굴곡이 없고 삶의 긍정적인 태도와 표현을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특색이다.

그리고 「모찌는노래」의 받는 소리는 대개가 ‘뭉쳐라 정쳐라 에헤야 못자리 뭉쳐 주게’로 되어 있는 것도 특색이다. 또한 「가래질노래」가 있는데, 이는 「미호천방축노래」와 같은 기능의 노래이다. 「가래질노래」도 미호천 방축을 제재로 하고 있다.

반면에 「가래질노래」는 4·4조의 선소리를 받쳐주는 뒷소리 ‘에·일성 가아·래·야’가 온다. 그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에·일성 가아·래·야/ 에·일성 가아·래·야/ 추로지신님의 성김을 받아/ 에·일성 가아·래·야/ 우리대본에 방둑가래로다.”한편, 「미호천방축노래」는 뒷소리가 없다는 점이 특색이다.

관광

관광 명소는 명승지·천연기념물·문화재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중 명승지로는 대청호반·옥화구경(玉花九景)·구룡산(九龍山) 등이 있다.

대청호(大淸湖)는 문의면 덕유리의 금강상류에 완성된 국내 최대의 인공호수로서 댐 주변에 전망대와 휴게소가 있다. 부근에는 민속촌이 건설되었으며 호반에는 청남대(淸南臺)가 자리 잡고 있다.

옥화구경은 박대천(博大川) 유역의 9경으로서 청석굴(靑石窟)·용소(龍沼)·천경대(天鏡臺)·옥화대(玉花臺)·금봉(錦峰)·금관(金寬)숲·가마소뿔·신선봉(神仙峰)·박대소(博大沼) 등을 말하는데, 금관유원지는 유명하다. 구룡산은 문의면과 보은군 회북면에 있는 산으로 산봉우리에 노인성전이 있었던 명산으로 옛날 문의의 선비들이 자주 드나들던 곳이다.

천연기념물로는 초정약수(椒井藥水)와 부강약수가 있다. 초정약수는 북일면 초정리의 천연광천수로서 세계적으로 유명하며 현재 스파클을 생산, 판매하고 있으며, 부강약수는 부용면 문곡리의 광천수이다. 이들 약수터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문화관광자원으로는 낭성면 관정리의 묵정영당·신중암신도비, 무성리의 영조대왕 태실유적, 가덕면 계산리의 5층석탑, 인차리의 보한재(保閑齋), 신숙주의 영정, 남일면 고은리의 이항희가옥, 가산리의 한란묘소 및 신도비, 신송리의 채화당사, 남이면 시동리의 안심사 대웅전·세존사리탑·탑비·괘불·마애비로사나불, 문의면 문산사, 문덕리의 월리사대웅전 등이 있다.

또한 현도면 중척리의 지선정, 부용면 부강리의 유계화가옥, 강내면 월탄리의 박숭원 2등공신록권, 강외면의 공복리 음나무, 북이면 대률리의 최명길 신도비, 내추리의 윤관영정, 금암리의 손병희선생유허비, 내수읍 원통리의 죽림갑계문서 등의 문화관광자원이 있다.

교육·문화

조선시대의 교육기관으로는 1615년(광해군 7)현도면 하석리에 설립된 노봉서원(魯峰書院)과 1683년(숙종 9)문의면 미천리에 창건된 문의향교가 있다. 이어 1695년 쌍천서원(雙川書院)이 낭성면 무성리에, 금담서원(黔潭書院)이 부용면 금호리에, 덕천서원(德川書院)이 가덕면 노동리에 설립되었다.

옥산면에 송천서원(松泉書院)이 설립되었는데 1871년(고종 8) 철폐되었다가 1976년오창면 양지리에 재건되었다. 1699년에는 기암서원(機巖書院)이 오창면 기암리에 설립되었고, 이어 1701년에는 국계서원이 내수읍 국동리에, 체화서원이 남일면 가산리에 설립되었다. 1717년에는 서계서원(西溪書院)이 미원면 옥화리에 설립되었으나 고종 때 철폐되었으며 지금은 주일재(主一齋)라는 건물만 남아 있다.

이 밖에도 숙종조에 검암서원이 가덕면 병암리에, 1738년 죽계서원(竹溪書院)이 북이면 용계리에, 1760년(영조 36) 봉계서원(鳳溪書院)이 옥산면 환희리에 설립되었으나 고종 때 철폐되었다. 최근 들어 지방유림에 의해 복건되었다. 조선 중기 곡수서원(曲水書院)이 옥산면 금계리에 설립되어 많은 유생들을 배출시켰으나 역시 고종 때 철폐되었다.

근대학교의 설립은 사립학교령에 의해 1906년 사립 덕신학교(德新學校)가 옥산면에, 1909년 사립 문흥학교(文興學校)가 문의면에 개교한 것이 신교육의 시작이다. 이어 1917년 사립 내수공립보통학교와 부강공립보통학교, 1919년 오창공립보통학교가 각각 개교하였다.

교육기관으로는 2008년 현재 초등학교 29개 교(분교 5개 교), 중학교 10개 교, 고등학교 8개 교와 충청대학·주성대학과 한국교원대학교·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공군사관학교가 있다.

문화행사로는 청원문화재가 청원문화원의 주관으로 매년 9월에 개최되고 있다.

종교기관은 불교사찰 66개, 천주교성당 13개, 개신교교회 158개가 있다.

민속

이 지역에서도 다른 지방과 마찬가지로 농악·줄다리기·씨름·널뛰기·그네뛰기 등의 민속놀이가 행해져오고 있다.

이 중에서도 줄다리기는 이 지역에서 연례적으로 행해지던 민속행사였다. 정초부터 아이들이 집집에서 짚을 모아 줄을 꼬기 시작하는데, 굵기가 아이들 한 아름 되는 굵은 동아줄을 암줄과 수줄 두 개를 만들고 길이도 수십 자가 되게 한다. 또, 동아줄이 너무 굵으므로 사람이 쥐고 당길 수 있도록 새끼줄〔子繩〕을 매어단다.

동아줄이 다 되면 정월보름날 동네 젊은 사람들이 편을 갈라 각각 줄을 높이 메고 소리를 지르며 넓은 마당에 가져다 머리를 맞대어놓고, 수줄을 암줄 고리에 넣고 굵은 나무를 끼워 줄이 빠지지 않도록 하고, 각 편에서 한 사람씩 줄 위에 올라와 지휘를 한다.

줄당기기가 시작되면 남녀노소 모두 모여 응원하고 진 편은 이긴 편에게 한턱을 내며, 줄은 끝난 다음에 태워버린다. 이 줄다리기는 30년 전만 해도 북일면 일대에서 성대한 행사로 치러졌다. 현재는 하나의 줄로 중간에 표지를 해놓고 서로 당기는 줄다리기가 각 학교에서 행해지고 있다.

이 지역의 동제는 산간지방을 중심으로 하여 비교적 보전상태가 좋은 편이다. 동제는 산신제(山神祭)·서낭제·장승제·탑제(塔祭)·탑제사·수살제(水殺祭)·동고사(洞告祀) 등의 명칭으로 불리는데 제사의 진행이나 금기사항 등은 거의 같다. 산신제는 현도면 중삼리, 미원면 성대리, 가덕면 한계리, 문의면 소전리(산신령제), 부용면 문곡리(수살제와 함께 지냄), 북이면 신기리, 옥산면 가락리 등지에서 지내고 있다.

가락리의 경우 산신제를 지낸 뒤에 미호천변에서 용왕제를 지낸다. 장승제는 남녀 장승을 모시는데, 미원면 쌍이리(장성거리고사), 가덕면 수곡리(석장승), 문의면 미천리, 옥산면 수락리 등지에서 지내고 있다. 탑제·탑제사는 돌탑이나 비석을 위해 거행하는데 남이면 척산리, 부용면 등곡리·금호리, 가덕면 인차리 등지에서 이어지고 있다.

수살제는 동네의 수호신(수살)을 모시는데 가덕면 행정리(은행나무 한 쌍과 석장승 한 쌍)와 금거리(느티나무), 남일면 고은리(버드나무 두 그루)와 은행리(암수 은행나무 두 그루, 거리제), 미원면 중리(느티나무), 옥산면 장동리(동구의 느티나무와 탑) 등지에서 지내고 있다.

낭성면 추정리에서는 큰 서낭과 작은 서낭을 모셔놓고 서낭제를 지낸다. 오창면 화산리(느티나무), 강내면 다락리에서는 목신제를 지낸다. 제의 절차는 다른 지방과 차이가 없으며, 제일은 주로 음력 정월 14일 밤이다. 다만, 미원면 운룡리의 수살제는 음력 11월 3일에, 가덕면 한계리의 산신제는 음력 10월 3일에 지낸다.

산업·교통

경지면적은 논 1만 1661㏊, 밭 6,869㏊(2008년 현재) 등 총 1만 8530ha로서 논이 밭보다 탁월하여 대표적인 들은 화죽들·오창들·팔결들·남촌들·연진마루들·뒷들 등으로서 충청북도 최대의 곡창인 미호평야(美湖平野)를 전개하고 있다.

미곡 이외에도 잡곡·두류·서류 등의 식량작물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잡곡으로는 옥수수와 콩·팥의 두류, 감자·고구마 등의 서류가 많이 재배된다. 수박·호박·토마토·오이 등과 배추·양배추·상추·무·당근·파·고추·마늘·생강 등의 채소류가 생산된다. 과실류로는 사과·포도·복숭아·배·감 등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특용작물로는 들깨·참깨·땅콩 등이 생산된다.

최근 청주시의 인구증가와 고속도로 등의 편리한 교통으로 식량생산에서 근교농업 형태로 전환되고 있다. 임산물로는 밤·대추·호두·은행·버섯·도토리·산나물 등이 많이 생산된다. 축산물로는 한육우·젖소·돼지·개·닭·오리·산양·토끼·사슴 등이 많이 사육되고 있다. 미호천유역의 옥산면에는 낙농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광공업은 48개의 광구 중 5개 광구가 가행되어 주로 석회석이 생산되고 있다(2008년 현재). 관내에는 현도지구·내수지구·부용지구 등의 농공단지가 있어 제조업체 1,410개소, 건설업체 256개소, 도소매 및 소매업체 1,605개소, 숙박 및 음식점업체 1,577개소, 운수업체 686개소, 부동산임대 215개소, 오락문화및 운동관련 서비스업 181개소, 교육서비스 298개소, 기타공공수리 및 개인 서비스업 824개소 등이 있다.

상업활동은 1988년까지만 해도 관내에는 미원·문의·부용·옥산·오창·북일장 등 6개의 정기시장이 있었으나 1989년 모두 폐쇄되고 현재 미원장과 문의장 등 2개의 정기시장만 남게 되었다.

미원은 청주∼보은간의 중간 지점에 있는데 미원장은 옛날 쌀안장이라고도 불렸다. 한때는 불무골·원닥골·메나리골·방죽골·새논들·물래동 등 인근마을의 주민들이 모여 성시를 이루었으나 청주와 보은의 시내버스가 연결됨으로서 크게 쇠퇴하였고 지금은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다.

문의는 인근 지방의 교통의 요충지고 내륙문화의 집산지였다. 『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 의하면 벌꿀·자초·복령·안식향·감·쏘가리·게 등의 토산품이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옛 문의장은 면 소재지였던 문산리에 있었으나 수몰 후 미천리로 옮겨졌다. 미천리는 청주∼신탄진간의 교통이 편리하므로 쇠퇴일로를 걷고 있고 주변에는 상설상점들이 들어서고 있다.

교통은 도청 소재지인 청주시를 중심으로 청주∼조치원, 청주∼충주, 청주∼신탄진, 청주∼보은간의 국도와 청주∼진천, 가덕∼미원, 강내∼옥산∼중평, 청주∼옥산, 남일∼신탄진간의 지방도 등이 있다. 서쪽 부근에 경부선 철도, 중앙부에 충북선 철도, 경부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 등이 있어 매우 편리하다.

읍·면
  1. 내수읍(內秀邑)

군의 북동단에 위치한 면. 면적 55.36㎢, 인구 2만 3219명(2008년 현재). 읍소재지는 마산리이다. 본래 청주군 지역으로서 상당산(上黨山)의 바깥쪽이 되므로 산외일면(山外一面)이라 하여 초정·우산 등 3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북강내일면(北江內一面)의 정북·정상 등 24개 리, 서강내일상면(西江內一上面)의 정북리와 북강외이면(北江外一下面)의 탑동, 북강외이면(北江外二面)의 누촌리, 산외이면(山外二面)의 5개 리가 병합되어 청주읍내의 북쪽이 되므로 북일면이라 불렸다.

1946년청주읍이 부로 승격됨에 따라 청원군에 이속되었고 1973년초중리가 괴산군 증평읍에 이속되었다. 1983년 북이면 학평리가 편입되었으며, 2000년북일면의 명칭이 변경되어 읍으로 승격되었다.

남쪽은 좌구산에서 구녀산·상당산·우암산(牛巖山)으로 연결되는 산맥이 가로막고 있고 북쪽은 완만한 남고북저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구녀산 서사면에서 발원한 내수천(內秀川)이 서류하여 입상리에서 미호천에 합류하고 있다.

대부분의 농경지는 내수천과 미호천 유역에 집중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을 비롯하여 팥·녹두·감자·고구마·토란·양배추·마늘·파 등과 사과·복숭아·잎담배도 생산된다. 그 외에도 들깨 재배와 한우의 사육도 활발하다. 임산물로는 대추와 산나물이 많이 생산된다. 북일면은 군내에서 가장 제조업이 성하다.

교통은 서쪽에 충북선 철도가 남북으로 주행하면서 내수역이 있고 청주∼충주간과 청주∼진천간의 국도가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정하리의 마애비로사나불좌상, 비중리의 일광삼존불상, 원통리의 을축갑회도 및 죽림갑계문서가 있고 비중리의 삼세충효문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와 전문대학인 주성대학이 있다.(2008년 현재) 마산(馬山)·내수(內秀)·구성(九城)·국동(菊洞)·묵방(默坊)·은곡(隱谷)·도원(桃源)·풍정(楓井)·덕암(德巖)·형동(荊東)·세교(細橋)·비상(飛上)·비중(飛中)·저곡(楮谷)·우산(牛山)·초정(椒井)·원통(源通)·입상(立上)·입동(立東)·신안(新安)·학평(鶴平) 등 21개 이가 있다.

  1. 오창읍(梧倉邑)

군의 북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 80.20㎢, 인구 3만 7026명(2008년 현재). 면 소재지는 장대리이다. 본래 청주군 지역으로 북쪽 강 바깥이 되므로 북강외일하면(北江外一下面)이라 하여 가곡·가동·가서 등 31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북강외일상면(北江外一上面)의 도암·동천 등 26개 리, 서강외이상면(西江外二上面)의 강정리(江亭里), 청안군 서면의 여상(呂上)·여중(呂中)·여하(呂下) 등 3개 리가 병합되어 오근부곡(梧根部曲)과 창리(倉里)의 이름을 따서 오창면이라 불렸다. 1946년청주원이 부로 승격됨에 따라 청원군에 이속되었다. 2006년 읍으로 승격되었다.

서쪽에 서림산(徐林山, 301m)·약사산(藥師山, 245m)·솔림산(率林山), 동북쪽에 불당산(佛堂山, 246m) 등이 있어 서부지역은 구릉지가 발달되고 있으나 동부지역은 미호평야가 전개되어 충청북도 최대의 곡창지대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을 비롯하여 콩·팥의 두류와 참깨·들깨·땅콩 등의 특용작물과 사과 등이 있다. 임산물로는 표고버섯·대추 등이 많이 생산된다. 축산업으로는 한우와 오리 등이 사육되고 있다.

교통은 서쪽에 경부고속도로, 동부지역에 중부고속도로와 청주∼진천간의 국도를 비롯하여 면 소재지인 장대리를 중심으로 서쪽의 두릉리, 동쪽으로 여천리를 잇는 지방도가 중앙부를 동서로 연결하고 있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탑리에 석조비로사나불좌상, 창리에 석조보살입상, 장대리에 석조약사여래좌상, 석우리에 동고정(東拷亭)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 중학교 2개 교, 고등학교 2개 교가 있다.(2008년 현재) 여천(呂川)·화산(華山)·유(油)·일신(日新)·모정(慕亭)·학소(鶴巢)·원(院)·복현(卜峴)·장대(場垈)·양지(陽地)·창(倉)·주성(主城)·송대(松垈)·도암(桃巖)·괴정(槐亭)·가곡(佳谷)·석우(石隅)·상평(上坪)·기암(機巖)·탑(塔)·농소(農所)·신평(新坪)·중신(中新)·후기(厚基)·용두(龍頭)·가좌(佳佐)·두릉(杜陵)·성재(盛才)·백현(栢峴)·화산(花山) 등 34개 리가 있다.

  1. 가덕면(加德面)

군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49.80㎢. 인구 4,636명(2008년 현재). 면소재지는 인차리이다. 본래 문의군 동쪽이 되므로 동면(東面)이라 하여 지촌·죽리·게산 등 22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읍내면(邑內面)의 우항(牛項)과 삼항(三項)의 2개 리와 남면(南面)의 시남리(時南里), 북면(北面)의 성남리(省南里), 회인군 동면(東面)의 지경리(地境里), 북면의 계산(桂山)·수곡(首谷)·시동(枾洞)의 3개 리, 청주군 남일상면(南一上面)의 하검(下儉)·병암(屛巖)·상검(上儉)·증거(曾居)·신흥(新興) 등 9개 리가 병합되어 가덕산(加德山)의 이름을 따서 가덕면이라 하고 청주군에 편입되었다.

1946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낭성면의 한계리(閑溪里)와 남일면의 상야리(上野里)가 병합되었고 청주읍이 부로 승격됨에 따라 청원군으로 이속되었다. 1990년 4월 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노현리(蘆峴里)가 문의면에 편입되었다.

동쪽에 선두산(先頭山, 527m)·백족산(白足山, 472m)·피반령(皮盤嶺, 547m) 등의 준봉이 있고 서쪽에는 무심천(無心川)이 흐르고 있어 동고서저의 지형을 이루고 있다. 무심천 유역에는 곳곳에 곡저평야를 이루고 있어 미작이 성하다. 임산물로는 밤·버섯·약초·산나물 등이 많이 생산된다.

10개의 광구 중 1개만 가행되고 있는데 연간 석회석 17만 400M/T이 생산되고 있다.(광구 수는 못 찾았습니다. 석회석 16만 9270M/T이 생산되고 있음. 2004년) 비금속 광물업체와 제지·인쇄·식료품·담배 등의 제조업이 성하다.

도로는 북부에 청주∼보은간의 국도가 가로질러 교통은 편리하고 청주와는 1일 생활권을 이루고 있다. 계산리의 피반령(皮盤嶺)에는 보은읍과 연결되는 포장도로가 있어 여름철이면 피서객들이 많이 찾고 있다. 문화유적은 계산리에 오층석탑, 인차리에 보한재·신숙주영정 등이 있고 병암리에 검암서원과 회림사, 청룡리에 어서각(禦書閣)과 청룡사, 행정리에 충신문, 시동리에 장암사, 상야리에 열녀문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2008년 현재) 인차(仁次)·청룡(靑龍)·행정(杏亭)·삼항(三項)·국전(菊田)·상대(上垈)·노동(蘆洞)·수곡(首谷)·시동(枾洞)·병암(屛巖)·금거(金居)·내암(內巖)·상야(上野)·한계(閑溪)·계산(桂山) 등 15개 리가 있다.

  1. 강내면(江內面)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30.10㎢, 인구 1만 1062명(2008년 현재). 면 소재지는 탑연리이다. 본래 청주군 서쪽 연강의 안쪽이 되므로 서강내이하면(西江內 二下面)이라 하여 부탄·탑연·월곡 등 1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서강내이상면(西江內 二上面)의 28개 리, 서강내일하면(西江內 一下面)의 이교(泥橋)·신촌(新村)의 2개 리, 남차이면(南次二面)의 삼기리(三岐里)가 병합되어 강내면이라 불렸다.

1946년청주읍이 부로 승격됨에 따라 청원군으로 이속되었고 1983년황탄리 일부가 강외면에 편입되었다. 1987년부탄리가 월탄리로 명칭이 변경되었고 정봉리와 신촌리가 청주시로 이관되었다.

부모산(父母山)·은적산(恩積山)·계미산(械미山) 등이 있으나 고도 300m 이하로서 대부분이 구릉지이고 서쪽 면계는 미호천 하류에 해당되어 비옥한 넓은 충적평야가 전개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을 비롯하여 무·배추·오이·호박·상치·시금치·참외·수박 등이 생산된다. 신촌리 일대의 미호천 제방을 중심으로 젖소와 양계사육도 활발하다.

교통은 충북선 철도를 비롯하여 청주∼조치원간의 국도와 경부고속도로가 있어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월탄리에 충청사와 2등공신녹권이 있고 그 외에도 다락리에 효자문, 탑연리에 효자정문, 석화리에 인산지수정(仁山智水亭), 학천리에 열녀문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 전문대학인 충청대학과 한국교원대학교가 있다(2008년 현재). 연정(蓮亭)·궁현(弓峴)·저산(猪山)·당곡(唐谷)·산단(山壇)·다락(多樂)·태성(台城)·사곡(寺谷)·황탄(黃灘)·월탄(月灘)·탑연(塔淵)·석화(石花)·사인(俟仁)·월곡(月谷)·학천(鶴天) 등 15개 리가 있다.

  1. 강외면(江外面)

군의 북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 40.71㎢, 인구 1만 901명(2008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오송리이다. 본래 청주군 서쪽에 있는 강의 밖이 되므로 서강외일하면(西江外一下面)이라 하여 장천·오송·동평 등 2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서강외일상면(西江外一上面)의 호계·쌍청 등 28개 리가 병합되어 강외면이라 불렸다. 1946년청주읍이 부로 승격됨에 따라 청원군에 이속되었고 1983년강내면 황탄리 일부를 편입하였다.

북부는 동림산(東林山, 457m)·시루봉·병마산(兵馬山)이 산재하고 있어서 저산성 산지이나 중부이남은 충북 최대의 미호평야의 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동쪽에는 천북천(泉北川), 서쪽에는 상조천(上鳥川), 남쪽에는 미호천이 흐르고 있다. 평야의 중심부에 돌다리방죽이 있어 모든 경지는 수리안전답이 되고 있다.

미곡의 곡창지대로서 많은 쌀이 생산되고 있고, 사질양토, 편리한 교통과 수리시설 등으로 주요 농산물은 배추·오이·참외·수박·파·당근 등의 채소류와 복숭아·감·배 등의 과실류가 많이 생산되고 있다. 당근은 군내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고 있다.

미호천 유역에는 낙농단지가 조성되어 육우·젖소·닭·돼지·사슴 등이 많이 사육되고 있다. 임산물로는 밤·은행이 많이 생산된다. 그리고 제지·인쇄·전기·전자 제품과 비금속제품 등이 생산되고 있다.

도로는 경부선과 충북선, 경부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 등이 가까이 있고 청주∼조치원간의 국도가 동서로 연결되어 교통은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연제리의 악건정(樂健亭)과 효자정문, 서평리의 악가정(樂佳亭)과 효자문 등이 있다. 공북리의 음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가 있다.(2008년 현재) 호계(虎溪)·상정(桑亭)·공북(拱北)·쌍청(雙淸)·만수(萬水)·연제(蓮堤)·궁평(宮坪)·오송(五松)·동평(東坪)·서평(西坪)·봉산(蜂山)·정중(正中)·상봉(上鳳) 등 13개 리가 있다.

  1. 남이면(南二面)

군의 남서부에 위치한 면. 면적 48.82㎢, 인구 7,311명(2008년 현재). 면 소재지는 척산리(그대로)이다. 본래 청주 남쪽에서 둘째가 되므로 남이면이라 하여 장성·가중·가남 등 25개 이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가북(駕北)·가중(駕中)·가남(駕南)·농촌리(農村里)가 사주면(四州面)에 이속되었다.

1946년청주읍이 부로 승격됨에 따라 청원군으로 이속되었다. 1973년행산리(杏山里)와 산수리(山水里)가 부용면, 석곡리(石谷里)가 강서면에 각각 편입되었다. 1987년 죽림리(竹林里), 1989년 부용면 외천리담안이 청주시에 편입되었다.

중앙부의 동쪽에는 망월산(望月山, 266m), 서쪽에는 팔봉산(八峰山, 291m)이 있고 그 사이에 외천(外川)이 남류하고 있으며, 서쪽에는 백천천(白川川), 동쪽에는 양촌천(陽村川)이 흐르고 있다. 대부분이 구릉성 산지이나 백천천과 양촌천 유역에는 곡저평야가 곳곳에 산재하고 있다.

청주시에 인접하고 있어 채소재배가 성하여 미나리·가지를 비롯하여 무·오이·고추·생강·토란·참깨 등의 채소가 생산되고 있다. 축산업으로는 한우와 젖소가 많이 사육되고 있고, 임산물로는 밤·도토리·은행·버섯·산나물 등을 많이 생산된다.

교통은 중앙부에 경부고속도로가 남북으로 달리고 있고 청주∼신탄진간의 국도가 있어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사동리의 안심사(安心寺)에 대웅전·세존사리탑·탑비·괘불·마애비로사나불·파석불좌상(破石佛座像)·석탑부재(石塔部材)·다라니경목판(陀羅尼經木板) 등이 있다. 그 외에도 문동리의 동화사 석조비로사나불좌상, 수대리의 박광우 묘소 및 신도비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가 있다.(2008년 현재) 척산(尺山)·외천(外川)·사동(寺洞)·산막(山幕)·비룡(飛龍)·구미(九尾)·갈원(葛院)·팔봉(八峰)·상발(上鉢)·구암(九巖)·석실(石室)·석판(石坂)·대련(大連)·수대(秀垈)·문동(文東)·가좌(佳佐)·양촌(陽村)·가마(駕馬)·척북(尺北) 등 19개 리가 있다.

  1. 남일면(南一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35.18㎢, 인구 8,046명(2008년 현재). 면 소재지는 효촌리이다. 본래 청주읍내의 남쪽이 되므로 남일하면(南一下面)이라 하여 대촌·방서·평촌 등 2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남일상면의 행정·가서·학산 등 34개 리와 산내이하면(山內二下面)의 안인(安仁)과 원동(院洞)·월오(月午)·상월(上月)·중월·하월·거죽(居竹)의 7개 리가 병합되어 청주군의 남쪽에 있으므로 남일면이라 불렸다. 1957년상야리(上野里)가 가덕면, 1983년방서리(方西里)와 1990년장암·지북·운동·월오·평촌 등이 청주시에 편입되었다.

동쪽 면계에는 선도산(先到山, 546m)·관봉(冠峰, 407m)·태봉(胎峰, 255m)이 솟아 있다. 서쪽에는 무심천(無心川)이 북류하면서 청주분지의 일부를 형성하면서 논농사가 활발하다. 특작물로는 양배추·파가 유명하고 각종 채소류와 과실류의 생산도 많다. 임산물로는 표고버섯·은행·도토리·산나물이 많이 생산된다. 제조업으로는 비금속·가구목재 등의 공업이 우세하다.

교통은 청주∼보은, 청주∼문의간의 도로가 있어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고은리에 이항희가옥, 가산리에 한란묘소 및 신도비, 신송리에 채화당사 등이 있다. 이 외에도 은행리에 지씨(池氏)충효문, 효촌리에 경효자묘(慶孝子墓)와 경효자문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분교 1개 교)가 있다(2008년 현재). 가산(駕山)·화당(花塘)·고은(高隱)·두산(斗山)·은행(銀杏)·문주(文注)·황청(黃淸)·송암(松巖)·가중(佳中)·신송(新松)·효촌(孝村)·쌍수(雙樹) 등 12개 리가 있다.

  1. 낭성면(琅城面)

군의 동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59.56㎢, 인구 2,495명(2008년 현재). 면 소재지는 이목리이다. 본래 청주군 지역으로 상당산 안쪽이 되므로 산내이하면(山內二下面)이라 하여 한오·거죽·양지 등 2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산내이상면(山內二上面)의 한오·문박 등 17개 리, 산내일면(山內一面)의 마전(馬田)·상인경(上仁景)·하인경(下仁景)의 3개 리, 남일상면(南一上面)의 적리(赤里), 송정(松亭) 2개 리, 보은군 주성면(朱城面)의 평동(平洞) 일부가 병합되어 낭성산성(琅城山城)의 이름을 따서 낭성면으로 개명되었다.

1946년 행정구역 변경으로 청주읍이 부(府)로 승격됨으로서 청원군에 이속되면서 한계리가 가덕면에 편입되었고 1983년산성리가 청주시, 1989년성대리가 미원면에 편입되게 되었다.

북쪽 상당산(上黨山, 491m)을 정점으로 동쪽은 인경산(仁景山, 528m), 서쪽은 선도산(先到山, 546m)·선두산(先頭山, 527m)·백족산(白足山, 472m), 남쪽은 살티재·국사봉 등으로 둘러싸인 산악분지로서 상당산에서 발원한 호정천(浩亭川)이 중앙부 골짜기를 남류하여 박대천(博大川)과 합류하고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을 비롯하여 양배추·수박·사과 등의 재배가 활발하고, 임산물로는 밤·대추·버섯·은행 등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도로의 경우는 남부지역에 청주∼보은간의 국도가 있고 대부분의 지역이 청주시에 인접해 있지만 교통은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관정리에 묵정영당·신중암신도비, 무성리에 영조대왕 태실유적, 관정리에 보한재·신숙주사당·백석정(白石亭), 귀래리에 신채호묘소, 이목리에 낭성사와 이정사(梨亭祠), 호정리에 신오식(申五植)고가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가 있다.(2008년 현재) 관정(官井)·귀래(歸來)·추정(楸亭)·호정(浩亭)·이목(梨木)·갈산(葛山)·삼산(三山)·무성(武城)·현암(玄巖) 등 12개 리가 있다.

  1. 문의면(文義面)

군의 최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93.30㎢, 인구 5,228명(2008년 현재). 면 소재지는 미천리이다. 본래 문의군 읍내가 되므로 읍내면(邑內面)이라 하여 덕유·기산·상장 등 1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북면(北面)과 일도면(一道面)·남면(南面), 청주군의 남일상면(南一上面)의 각 일부가 병합되어 양성산의 이름을 따서 양성면(養成面)이라 불렸다. 1930년용흥면(龍興面) 전부가 병합되어 문의면으로 개칭되었다. 1946년청주읍이 부로 승격됨에 따라 청원군으로 이속되었다. 1983년죽암리가 현도면으로 이속되었고 1989년보은군 회남면 염치리와 회북면 묘암리·마동리·마구리가 편입되었으며 1990년가덕면 노현리가 편입되었다.

동쪽에 봉대대(峰大臺)·샘봉산(461m), 서쪽에 봉무산·구봉산(370m) 등이 솟아 있고 그 사이에 대청호가 있어 많은 지역이 수몰되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을 비롯하여 감·포도 등의 재배가 활발하고, 임산물로는 표고버섯·호두·은행·도토리·산나물도 많이 생산된다. 비금속광구 3개소가 가행되어 연간 1,300M/T의 규석이 생산되고 있다.

교통은 청주∼신탄진간의 국도와 문의∼회북간의 지방도가 있어 교통은 편리한 편이다. 문산리는 과거 조선시대에 문의현이었고 수몰되기 전에 문의면의 소재지였던 곳이다. 이 곳에는 동헌터·사형장터·석교·문산관(文山館) 등의 역사유적이 있었지만 1980년 12월 대청댐의 준공으로 수몰되었다.

문화유적은 문산리에서 이건된 미천리의 문산관, 문덕리에 월리사와 대웅전· 후불탱화(後佛幀畫)·부도·사적비·금장비(禁葬碑)·동종(銅鐘) 등이 있다. 그 외에도 미천리에 문의향교, 상상리에 기산사우(箕山祠宇)와 노현리에 삼효자비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교가 있다(2008년 현재). 문산(文山)·미천(米川)·남계(南溪)·상장(上長)·산덕(山德)·구룡(九龍)·괴곡(槐谷)·문덕(文德)·소전(所田)·후곡(後谷)·가호(佳湖)·신대(新垈)·품곡(品谷)·두모(斗毛)·도원(桃源)·등동(登洞)·묘암(妙巖)·마구(馬九)·마동(馬東)·염치(鹽峙)·노현(蘆峴)·덕유(德留) 등 22개 리가 있다.

  1. 미원면(米院面)

군의 동남단에 위치한 면. 면적 129.62㎢. 인구 6,038명(2008년 현재). 면 소재지는 미원리이다. 본래 청주군 지역으로 상당산 안쪽이 되므로 산내일면(山內一面)이라 하여 방촌·국촌·항동 등 6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산내이상면(山內二上面)의 굴암·운동·운서 등 30개 리와 보은군 주성면(朱城面) 봉황리(鳳凰里) 일부가 병합되어 미원장(米院場)의 이름을 따서 미원면이 되었다. 1946년청주읍이 부로 승격됨에 따라 청원군으로 이속되었고 1989년낭성면의 성대리(城臺里)가 병합되었다.

북단의 좌구산이 남서쪽으로 뻗어 구녀산·인경산(仁景山, 582m)으로 이어지고 남단은 신선봉(神仙峰)·주봉(周峰), 중앙부는 산지 등으로 되어 있는 산악지역이지만 미원리를 중심으로 미원분지가 발달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을 비롯하여 수수·옥수수·감자·고구마 등이 생산되고 그 외 고추·배추·파·당근 등의 재배가 활발하고 임산물로는 은행·표고버섯·산나물·대추·은행 등이 많이 생산된다.

금속광 1개, 비금속광 4개 등 총 5개의 광구가 가행되어 연간 1,800M/T의 규석이 생산되었으나 현재는 생산되지 않고 있다.

교통은 청주∼보은간의 국도와 미원∼청천간의 포장도로가 있어 편리하다. 운암리 청석교 옆의 미원동굴(靑石洞窟)은 석회암 지대에 형성된 100여m의 비교적 길고 큰 수평동굴로서 속칭 청석다리굴로 불리고 있다. 이곳은 민간인들이 용왕에게 아들을 낳도록 비는 기도소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문화유적은 미원리에 충효정문·효자정문, 쌍이리에 산제당, 운교리에 함벽정(含碧亭), 대덕리에 대덕사(大德寺), 운룡리에 운룡사(雲龍寺), 화창리에 정문(旌門), 가양리에 신효자정문(申孝子旌門)·익재영당(益齋影堂), 수산리에 충효문과 효자문, 옥화리에 추월정(秋月亭)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2008년 현재). 미원(米院)·쌍이(雙耳)·중(中)·내산(內山)·구방(九芳)·기암(基巖)·운교(雲橋)·대덕(大德)·운룡(雲龍)·화원(花源)·용곡(龍谷)·수산(壽山)·기암(岐巖)·가양(佳陽)·화창(禾倉)·종암(鍾巖)·대신(大新)·운암(雲巖)·옥화(玉花)·월룡(月龍)·금관(錦寬)·어암(漁巖)·계원(桂院)·성대(城臺) 등 24개 리가 있다.

  1. 부용면(芙蓉面)

군의 남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 35.00㎢, 인구 7,773명(2008년 현재). 면 소재지는 부강리였다. 본래 문의군 지역으로 삼도면(三道面)이라 하여 상외천·하외천·상삼 등 2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북면의 죽암리 일부와 이도면(二道面)의 등동이 병합되어 부용면이라 하여 청주군에 편입되었다. 1946년청주읍이 부로 승격됨에 따라 청원군으로 이속되었다. 1973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남이면 행산리(杏山里)와 산수리(山水里)에 편입되었고 1989년외천리 담안마을이 남이면으로 이관되었다.

노고봉(老姑峰, 305m)이 제일 높을 정도로 저산성 구릉지대로서 서쪽 상반부의 박천천 유역은 기다란 하곡평야가 발달해 있고 청주∼부강간에는 좁은 곡저평야가 형성되어 있으며, 금강변에는 하안단구가 발달하고 있어 경지는 협소하다.

논이 밭보다 2배 이상 많고 수리시설도 잘 정비되어 많은 미곡이 생산되고 있다. 무·배추·마늘·참깨·포도 등도 많이 생산된다. 임산물로는 표고버섯·밤·은행·호두 등이 생산된다. 부용농공단지가 조성되어 골판지·상자·원지 등과 화학·석탄 등의 제품이 생산되고 있다.

교통은 중앙부에 경부선 철도가 남북으로 관통하고 매포역과 부강역이, 동단에는 경부고속도로가 있으며, 청주∼부강간과 부강∼대전간의 도로가 있어 교통은 매우 편리하다. 외천리의 부강약수는 유명하고 부강리 덕바위 마을 계곡의 부강약수장 유원지에는 연중 많은 휴양객이 몰려든다. 문화유적은 부강리에 유계화가옥, 문곡리에 수덕사(修德寺)·충효비·효자정문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2008년 현재). 부강(芙江)·노호(蘆湖)·등곡(登谷)·금호(黔湖)·갈산(葛山)·문곡(文谷)·행산(杏山)·산수(山水) 등 8개 리가 있었으나,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으로 모두 편입되었다.

  1. 북이면(北二面)

군의 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47.46㎢, 인구 6,443명(2008년 현재). 면 소재지는 신대리이다. 본래 청주군 지역으로 상당산(上黨山) 바깥쪽이 되므로 산외이면(山外二面)이라 하여 초중·장촌·금대 등 3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북강내이면(北江內二面)의 18개 리, 북강내일면 일부와 북강내일상면 일부, 북강내이면(北江內二面)의 일부와 산외일면의 38개 리가 병합되었고 청주읍내 북쪽의 둘째가 되므로 북이면이 되었다.

1945년 행정구역 변경에 의해 용기(龍基)·용산(龍山)·진암(陳巖)·은암(隱巖)의 4개 리가 진천군 초평면에 이속되었고 1973년초중리가 괴산군 증평읍에, 1983년학평리가 북일면에, 1989년석화리 일부가 북일면에 편입되었다.

동쪽의 구녀산에서 북쪽으로 뻗은 낮은 산맥이 있을 뿐 곳곳에 구릉지가 산재한 준평원으로서 동고서저의 지형을 나타내고 있다. 구녀산에서 발원한 내수천(內秀川)이 남쪽 면계를 이루면서 넓은 곡저평야를 이루고 있고, 북쪽의 보강천과 서쪽의 미호천유역에는 넓은 평야가 전개되어 있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 이외에도 콩·고추·마늘·상치·참깨·잎담배 등이 생산되고 있다. 구릉지에는 목초가 풍부하여 한우·산양·돼지 등이 사육되고 있다. 종이제품·레미콘·P.P포대 등의 공업도 발달하고 있다.

충북선 철도와 청주∼충주간의 국도가 남북으로 달리고 있어 교통은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대율리에 최명길신도비와 묘소, 내추리에 윤관영정, 금암리에 손병희선생유허비, 용계리에 죽계서원(竹溪書院)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3개 교가 있다(2008년 현재). 신기(新基)·신대(新垈)·현암(玄巖)·서당(西堂)·대길(大吉)·석화(石花)·영하(靈下)·선암(仙巖)·호명(虎鳴)·토성(土城)·부연(釜淵)·장재(長才)·금암(琴巖)·광암(光巖)·송정(松亭)·금대(琴臺)·옥수(玉水)·내추(內楸)·추학(楸鶴)·장양(長陽)·용계(龍溪)·석성(石城)·화상(花上)·화하(花下)·내둔(內屯)·대율(大栗) 등 26개 리가 있다.

  1. 옥산면(玉山面)

군의 북서단에 위치한 면. 면적 65.49㎢, 인구 1만 1270명(2008년 현재). 면 소재지는 오산리이다. 본래 청주 서쪽 강의 바깥이 되므로 서강외이하면(西江外二下面)이라 하여 환희·천내·동포 등 2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서강외이상면(西江外二上面)의 사정·덕수 등 18개 리, 서강내이하면의 6개 리, 북강외이면(北江外二面)의 2개 리가 병합되어 오산(烏山)의 이름을 아름답게 일컬어 옥산면이라 불렸다. 1946년청주원이 부로 승격됨에 따라 청원군에 이속되었다.

동쪽은 국사봉, 서쪽은 동림산(東林山, 457m)·시루봉(255m) 등이 솟아 있다. 그 사이에 병천천과 용두천이 합류하여 천수천(天水川)이 되어 남단에서 동쪽면계로 서남류하는 미호천으로 흘러 들어간다. 미호천 유역에는 넓은 충적평야가 발달하고 있고 천수천 유역에는 곳곳에 넓은 곡저평야가 발달하고 있다.

경지면적을 보면 논이 밭보다 3배나 많은데 미곡을 비롯하여 수박·참외 등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미호천 유역의 낙농단지에서 많은 젖소가 있고 그 외 돼지·닭·사슴 등도 사육되고 있으며, 임산물로는 대추·도토리·산나물 등이 생산된다. 여러 업체에서는 식료품·담배제품·아스콘·석재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교통은 중앙부에 경부고속도가 남북으로 달리고 있고 옥산휴게소가 있으며 오산∼청주, 오산∼중평간의 지방도가 있어 편리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촌리에 문절공영당(文節公影堂)과 열부지씨정문, 환희리에 남강사당(南岡祠堂)·삼정승묘(三政丞墓)·열녀문, 동림리에 박판서묘(朴判書墓), 장남리에 장남사(樟南寺), 국사리에 강감찬장군묘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개 교(분교 1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가 있다.(2008년 현재) 오산(烏山)·덕촌(德村)·신촌(新村)·환희(歡喜)·가락(佳樂)·동림(東林)·금계(金溪)·장동(墻東)·사정(沙亭)·수락(水落)·장남(樟南)·소로(小魯)·국사(國仕)·남촌(南村)·호죽(虎竹) 등 15개 리가 있다.

  1. 현도면(賢都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 면적 43.47㎢, 인구 4,491명(2008년 현재). 면 소재지는 선동리이다. 본래 문의군 이도면(二道面)이라 하여 상삼·중삼·죽전 등 16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일도면의 오가·상석 등 19개 리, 삼도면의 마포리, 충청남도 회덕군 구측면(九則面) 상산리(上山里) 일부, 삼도면(三道面)의 신촌(新村)일부, 마포(馬浦) 일부가 병합되면서 현도산(賢都山)의 이름을 따서 현도면이라 하여 청주군에 편입되었다. 1946년청주읍이 부로 승격됨에 따라 청원군으로 이속되었고 1983년문의면 죽암리가 편입되었다.

동쪽 면계에 봉무산·구봉산(370m) 등이 솟아 있고 서쪽에 노고봉(老姑峰, 305m)이 있고 중앙부에도 곳곳에 구릉지가 발달되어 있다. 북쪽의 옥포천에는 넓은 곡저평야가 있으나 남면계의 금강유역에는 좁은 평야가 있을 뿐이다.

주요 농산물로는 쌀을 비롯하여 고구마와 양봉이 유명하다. 임산물로는 은행·밤·도토리·대추·산나물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죽전리의 농공지구는 총 6만 7937㎡의 면적에서 산업용 유압크레인, 다목적 소방차 특장화, 리모콘 콘트롤, 유압실린더 등이 생산되고 있다.

교통은 중앙부에 경부고속도로와 청주∼대전간의 국도가 남북으로 뻗어 있고 서부에는 경부선 철도가 있어 매우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중척리에 지선정과 선동리에 오대남(吳大南)의 충신문, 우록리에 하연(河演)의 영당, 단계리에 삼효정(三孝亭), 현도산 남쪽에 현암사 등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2개 교, 중학교 1개 교, 고등학교 1개 교와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가 있다(2008년 현재). 선동(鐥洞)·상삼(上三)·중삼(中三)·죽전(竹田)·우록(友鹿)·시동(時東)·하석(下石)·노산(老山)·달계(達溪)·매봉(梅峰)·양지(陽地)·중척(中尺)·시목(枾木)·죽암(竹巖) 등 14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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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관광자원총람』(한국관광공사, 1985)
『한국지지』(건설부국립지리원, 1984)
『문화재지』(충청북도, 1982)
『내고장전통가꾸기』(청원군, 1982)
『충청북도지』(충청북도지편찬위원회, 1975)
『한국지명총람』(한글학회, 1970)
청원군(www.pur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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