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8년(태종 8) 수원도호부(水原都護府) 기관(記官)으로서 딸이 명나라에 진헌(進獻) 되는 처녀로 선발됨에 따라 특별히 삼군부중군부사정(三軍府中軍副司正)에 제수되었다.
이듬해 다시 명나라에 들어간 딸로 인해 명으로부터 5품의 홍로시소경(鴻臚寺小卿)에 제수되었다. 이후 조선 정부로부터 월봉(月俸)과 별사전(別賜田)을 받는 우대를 누렸고, 세종 초까지 수차에 걸쳐 흠문기거사(欽問起居使)와 명사영위사(明使迎慰使)가 되어 조선과 명의 외교에 참여한 뒤 홍로시소경으로 졸하였다.
출신이 미천하고 배운 바가 없었고, 명의 관직을 제수받은 것을 기화로 오만하고 무례한 행동을 하여 세인의 많은 비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