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벽 ()

질암집
질암집
유교
인물
조선 후기에, 성균관전적, 규장각초계문신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중온(仲蘊)
질암(質庵)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762년(영조 38)
사망 연도
1813년(순조 13)
본관
경주(慶州)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성균관전적|규장각초계문신
정의
조선 후기에, 성균관전적, 규장각초계문신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중온(仲蘊), 호는 질암(質菴). 아버지는 최종섭(崔宗燮)이며, 어머니는 아주신씨(鵝州申氏) 신도하(申道河)의 딸이다. 아버지는 예학(禮學)을 깊이 연구하였으며 이상정(李象靖) 등과 학문적인 왕래가 많았다.

생애 및 활동사항

1783년(정조 7)에는 소과(小科)와 친림전시(親臨殿試)에 응시하여서 한 해에 급제를 하여 성균전적(成均典籍)에 제수되었다. 1784년(정조 8) 예조좌랑(禮曺佐郞)에 천거되었으나 어린 나이에 벼슬길에만 분주하면 장차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하고 나아가지 않았으며, 이광정(李光靖)의 문하에서 『심경(心經)』『근사록(近思錄)』 등을 배웠다.

1790년에는 규장각초계문신(奎章閣抄啓文臣)에 선보(選補)되어 정조의 총애를 받았다. 그 후 사간원정(司諫院正)과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 등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1800년 정조 승하 후에는 향리에서 후진 양성에 힘썼다. 그는 정통 주자학의 입장에서 도가(道家)·불가(佛家)·예수교 등 이단을 배척하였으며, 특히, 『시경(詩經)』에 대한 연구가 많았다. 저서로는 『질암집(質菴集)』 6권이 있다.

참고문헌

『정조실록(正祖實錄)』
『질암집(質菴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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