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세한(世翰). 자는 성집(成執, 聖執), 호는 농고(農膏). 경상북도 흥해 출신.
농업과 교사생활을 하였다. 을미사변과 단발령사건에 반대하여 1896년 의병 400여명을 규합, 안동의병장 김도화(金道和)의 의진에 들어가 아장(亞將)이 되어 좌익장으로 활약하다 해산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재거, 영천의병장 정용기(鄭鏞基)와 합세하여 도찰사(都察使) 정환직(鄭換直)과 활약하였다. 1908년 정환직 사망 후 의병장으로 추대되어 청하 · 청송 · 영천 · 의성 등지에서 항전하였으나 밀정의 밀고로 붙잡혀 대구지방법원에서 10년형을 선고받고 복역중 단식투쟁 끝에 순사(殉死)하였다. 아들 최산두(崔山斗) 역시 옥중에서 순사하였다.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