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잡지는 1940년 8월『조선일보』·『동아일보』 양대 신문이 강제 폐간당한 후 동아일보 기자였던 양재하(梁在廈)가 중심이 되어, 조1941년 2월 1일 조선춘추사(朝鮮春秋社)에서 A5판 300여쪽으로 펴냈다.
제2권 제1호가 창간호인 것은 원고가 검열에 걸려 통과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발행 초기는 우수한 논문들도 많이 수록되어 있었으며, 또한 문학란의 내용도 충실하였으나 차차 쪽수가 줄어들었으며, 나중에는 일제의 침략전쟁에 협조하고 내선일체화운동(內鮮一體化運動)을 지지하는 등 친일지로 전락하게 되었다.
일제가 우리말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지면의 반을 일본어로 편집할 것을 강요하는 데 항거하여 1941년 4월『문장(文章)』·『인문평론(人文評論)』 등이 자진 폐간한 뒤도 『조광(朝光)』지와 더불어 친일적인 성격을 띤 채 계속 간행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잡지나마 있었기에 『문장』·『인문평론』 등과 같은 순수문예지가 폐간된 뒤도 문인들의 작품이 발표될 수 있는 길이 남아 있었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다 하겠다. 1944년 10월 1일 통권 39호로 종간되었다가, 광복 후인 1946년 4월 1일 속간되었으나 곧 없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