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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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사각형의 평면코트 중앙에 네트를 치고 라켓을 이용하여 공을 네트 위로 주고 받으며 승패를 겨루는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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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직사각형의 평면코트 중앙에 네트를 치고 라켓을 이용하여 공을 네트 위로 주고 받으며 승패를 겨루는 경기.
내용

경기의 종류는 개인전과 단체전이 있다. 개인전에는 단식·복식·남녀혼합복식이 있고, 단체전에는 4단식 1복식·5단식 2복식 등이 있다. 좁은 장소에서 적은 인원으로도 즐길 수 있으며 운동 자체가 과격하지 않아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

또한 축구·농구 등 다른 스포츠와는 달리 체격적인 요인으로 승패가 좌우되는 바가 적기 때문에 한국인에게 유리한 종목이기도 하다.

탁구대는 높이 76㎝, 가로 152㎝, 세로 274㎝이며, 네트는 높이 15.25㎝이다. 경기장은 탁구대 1대를 놓고 할 경우 최소한 14×7m의 경기장에 천장 높이가 4m이상 되어야 한다. 탁구대는 단단한 목재로 만드는데 윗면을 코트라 부르고, 중앙에는 초록색 그물로 된 네트를 양쪽 지주에 팽팽히 쳐서 설치한다. 볼은 셀룰로이드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지름 3.72∼3.82㎝, 무게 2.40∼2.53g의 경도가 일정한 백색이나 황색계통의 구체여야 한다.

라켓은 크기·모양·무게에 제한이 없으나 본체는 목재여야 하며, 표면은 규정된 고무로 양면 또는 한면을 싼다. 이때 고무는 색깔이 짙은 단일색이어야 하며 광택이 나면 안 된다. 경기의 시작은 서브권을 가진 자가 서브를 넣으면서 이루어지는데, 이때 넘어온 볼을 자기측 코트에 한 번 바운드한 뒤 상대방 코트에 넘겨 이를 계속함으로써 경기가 진행된다.

일단 넘어온 볼을 상대방 코트에 넘기지 못하면 상대방측이 득점을 하게 되며 서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서브는 2개씩 번갈아가며 넣으며 어느 경우에나 득점은 1점씩이며 11점을 선취하면 이긴다. 이러한 경기를 3회 하여 2승하는 쪽이 승리하는 방법과 5회 하여 3승하는 쪽이 승리하는 방법이 있다.

코트의 교대는 1게임이 끝날 때마다 실시한다. 복식의 경우도 단식과 거의 같으나 서브를 넣은 다음 두 사람이 번갈아 볼을 치게 된다. 서브는 언제나 오른쪽 하프 코트에서 넣고 역시 같은 쪽에서 받는다. 경기에 사용되는 기본기술에는 스트로크·스매시·서브·리시브 등이 있다.

스트로크란 볼을 라켓으로 치는 타구법을 말하는 것으로서 날아오는 볼의 성질에 따라 타구하는 방법이 달라진다. 즉, 드라이브·루프 드라이브·스핀·탑 스핀 등에 사용되는 롱 스트로크·쇼트 스트로크·컷 스트로크가 있다. 스매시는 높이 떠오른 볼을 위에서부터 강하게 쳐 넘겨 득점을 하는데 결정적인 구실을 하는 타법으로 포어핸드 스매시와 백핸드 스매시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서브는 탁구의 기본 기술 중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서브에서 제3구 이후의 작전을 연결시킴으로써 게임의 적극성과 주도권을 잡을 수 있고 바로 공격의 수단이 되기도 한다. 서브의 종류에는 톱 스핀 서브, 백 스핀 서브, 사이드 스핀 서브, 너클 서브 등이 있다. 리시브란 상대방의 서브를 받아 쳐 넘기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상대방 서브의 종류·형태·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즉, 상대 선수가 전진형인지 중진형인지 후진형인지에 따라서 리시브의 위치도 달라지게 되며 또한 리시브 기술에 있어 전후 또는 좌우의 우세에 따라 그 위치가 달라지게 된다.

탁구의 발생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남아프리카·인도 등 영국 식민지에 살던 영국인들이 테니스에서 힌트를 얻어 더위를 피하여 실내에서 놀 수 있는 유희로서 방바닥에 네트를 설치하여 볼을 넘기고 받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처음에는 코르크나 고무 또는 실을 둥글게 감아 만든 볼을 사용하였으나 1898년 영국의 깁(Gibb. J.)이 셀룰로이드 볼을 고안하여 오늘날까지 사용하고 있다.

라켓도 초기에는 나무판이나 손을 사용하였다가 가죽을 펴서 붙인 라켓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것들이 오늘날의 탁구로 발전하였다고 볼 수 있다. 흔히 핑퐁이라고 불리는 탁구경기는 1924년 일본을 통하여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었다. 같은 해 1월 경성일일신문사 주최 핑퐁경기대회를 효시로 다음해 제2회 대회에서는 300여 명의 선수들이 참가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이후 급속한 보급과 발전을 가져와 1928년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YMCA)에서 제1회 조선탁구대회가 개최되었고 1932년 명치신궁대회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우승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1945년 11월 조선탁구협회가 발족되어 전국선수권대회를 개최, 국제진출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1952년 제1회 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에 참가한 것을 시작으로 국제대회에 참가하여온 우리 나라는 1956년 일본 동경에서 열린 제23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여자 5위, 남자 14위를 차지하였고 1971년 3월 일본 나고야(名古屋)에서 열린 제31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도 여자 단체 3위, 남자 8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1973년 4월 유고슬라비아의 사라예보에서 열린 제32회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는 이에리사·정현숙(鄭賢淑) 등이 주축이 된 여자탁구가 당당히 우승을 차지하여 한국탁구사에 찬란한 금자탑을 수립하였다.

우리나라 탁구는 중국의 드높은 벽에 부딪혀 번번이 패하여 중국을 누르기 위한 피나는 연습이 진행되었다.

그리하여 1983년 12월 바레인에서 개최된 제1회 아시아청소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남자 유남규(劉南奎)·이정학(李正鶴)·박지현(朴知賢)·배종환(裵鍾煥), 여자 이계선(李桂仙)·김인순(金仁順)·김영미(金英美)·최윤희(崔潤姬) 등이 세계 최강인 중국을 누르고 남자단체·남자개인단식·남자개인복식·남녀혼합복식·여자개인단식·여자개인복식 등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1973년 사라예보세계선수권대회의 여자단체전우승 이래 세계 강호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또한 1986년 서울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김완(金浣)·안재형(安宰亨)·유남규 등이 주축이 된 남자단체전, 양영자(梁英子)·현정화(玄靜和) 등이 주축이 된 여자단체전, 개인단식의 유남규 등이 우승을 하였으며, 은메달 1개, 동메달 6개를 획득하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대회에서는 여자복식에서 양영자·현정화, 남자단식의 유남규가 각각 금메달을 획득하여 세계 탁구계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이후 1989년 세계선수권대회 혼합복식(유남규·현정화) 우승, 1990년 북경아시아경기대회 남자단체, 여자복식 금메달, 1991년 남북단일팀 여자단체 우승, 1993년 세계선수권 여자단식(현정화) 우승, 1994년 히로시마아시아경기대회 남자복식 우승 등 꾸준히 정상권의 실력을 유지해오고 있다.

1998년 현재 등록된 선수는 1,841명이며 탁구 애호인의 저변이 확대되어 국민건강 증진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으며 나아가 국위선양의 초석이 되고 있다. 국제대회로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아시아탁구선수권대회가 있고 종합대회로는 올림픽대회 및 아시아경기대회에 탁구경기가 있다.

국내대회로는 전국남녀종별선수권대회, 대통령기 전국남녀시도대학대회·문화관광부장관기 전국남녀학생종별선수권대회·전국남녀종합선수권대회 등이 있다. 1998년 현재 삼성생명·대우증권·제일모직·대한항공·현대·한국마사회 등의 실업팀이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참고문헌

『정관』(대한탁구협회, 1998)
『대한체육회 70년사』(대한체육회, 1990)
『운동경기사』(나현성, 보문사,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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