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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산시집(太白山詩集)

    현대문학문헌

     1910년 2월 최남선이 월간 잡지『소년』에 게재한 시가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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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목명태백산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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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1910년 2월 최남선이 월간 잡지『소년』에 게재한 시가집.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1910년 2월 『소년』에 게재된 연작시가(連作詩歌)로, 단행본은 아니지만 시집이라 이름 붙여진 최초의 근대적 시가집이다. “이 시집을 도산선생에게 바친다.”는 작자의 서문과 함께 「태백산가 太白山歌」·「태백산부 太白山賦」·「태백산의 사시(四時)」·「태백산과 우리」 등 8편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가운데 「태백산가」(其一)와 「태백산과 우리」는 7·5조의 창가체이며, 「태백산가」(其二)는 변형된 4·4조의 가사체, 「태백산부」·「태백산의 사시」는 자유시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형태상의 특징은「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한 바 있는 최남선이 자유시의 형태를 더 이상 발전적으로 진전시키지 못하고 종래의 가사체나 창가체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이 시집은 저자가 아직도 뚜렷한 시 의식이나 장르 의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였음을 드러내고 있다. 다만, 산문에 대칭되는 것이 시라는 막연한 장르 의식을 가지고 시(詩)와 가(歌)가 미분화된 상태 속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여러 가지 형태상의 시도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내용면에서 이 시집은 그전의 창가가사나 신체시에 비하여 상당히 진보된 면모를 보여준다. 「태백산부」나 「태백산의 사시」는 형태상에 있어서도 「해에게서 소년에게」보다 진일보한 자유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 용어 구사의 대담성이나 적절한 비유, 간결하면서도 힘찬 표현 효과 등이 그 이전의 시가들에 비하여 몇 걸음 앞서 있는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제재면(題材面)에서도, 「해에게서 소년에게」로 대표되는 초기의 시가들이 주로 바다를 노래하고 있는 데 비하여 이 『태백산시집』은 산을 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자가 추구하던 사상이나 이념의 변모가 암시되고 있다.
    그의 시가에서 바다가 새로운 세계를 향하여 열려 있는 공간이며 개화된 문명을 받아들이자는 진취적인 자세의 표상이라면, 산은 민족얼의 구심점으로서 닫혀 있는 공간이며 위기에 직면하여 조국과 민족을 지키자는 자아각성의 표상이다.
    또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젊은이다운 건강성을 바탕으로 넓고 밝고 씩씩한 것을 노래할 때의 제재가 바다로 나타났다. 반면에 이와 같은 새로운 세계로부터 문명개화가 채 자리잡히기도 전에 밀어닥친 국가와 민족의 파국에 대한 자위적인 정신무장이 산, 그 가운데서도 태백산으로 나타났다 할 것이다.
    이 『태백산시집』이 발표된 시기를 전후하여 저자는 「태백호 太白虎」·「태백의 님을 이별함」·「태백에」 등 일련의 태백산을 노래한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다. 이는 경술국치라는 역사적 시련기에 처하여, 그가 바다의 광활성과 개방성보다는 산의 고고성과 폐쇄성을 택하였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저자의 전환은 단순한 제재의 변화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개방적인 자세에서 폐쇄적인 자세로 위축되는 시 의식의 변화까지도 포함한다. 때문에 근대적인 자유시로 발전하지 못하고 복고적인 시조의 세계로 되돌아가는 결과를 빚게 된 것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최남선과 이광수의 문학  (신동욱 편, 새문사, 1981)

    • 「태백산시집과 에튜우드」(정한모,『문학사상』,1972.12.)

    • 「육당시가의 유형과 전환적의미」(김학동,『시문학』,1981.3.)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정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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