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속적인 성장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헌법〉에 의거하여 1972년 8월 3일 ‘경제의 안정과 성장에 관한 대통령의 긴급명령 15호’를 발포하였다. 이 조치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업의 부담경감과 재무구조개선을 위한 기업보유사채의 조정이다. 모든 기업은 1972년 8월 2일 현재 보유하고 있는 사채를 모두 정부에 신고하여야 하며, 신고된 사채는 1972년 8월 3일자로 월리 1.35%, 3년 거치 후 5년 분할상환의 새로운 채권채무관계로 법에 따라 조정되거나 차주기업(借主企業)에 대한 출자로 바꾸도록 하였다.
둘째, 금융기관은 2000억 원의 특별금융채권을 발행하여 한국은행에 인수시키고, 여기서 조달된 기금으로 기업에 대한 대출금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일정한 대출금을 연리 8%, 3년 거치 후 5년 분할상환의 장기저리대출금으로 대환(貸換)하도록 하였다.
셋째, 담보능력이 약한 기업에 대한 금융기관의 대출을 원활히 하기 위하여 정부는 중소기업신용보증기금 및 농림수산업자 신용보증기금에 각각 10억 원씩 출연하고, 여타 금융기관은 신용보증기금을 설치, 앞으로 5년간 대출금 중 0.5%에 해당하는 금액을 기금에 출연하여 기금의 10배 한도 안에서 신용보증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넷째, 정부는 산업합리화자금을 설치하여 합리화기준에 순응하는 기업에 대하여는 장기저리자금을 대여하고 세제상의 특전을 준다.
다섯째, 중요산업의 고정설비투자에 관한 감가상각률의 할증률을 현행 30%에서 40% 내지 80%까지 인상한다.
여섯째, 국내자원을 이용하는 투자에 대하여는 법인세 또는 소득세의 투자공제율을 현행 6%에서 10%로 인상하고 그 적용의 대상을 대폭 확대한다. 일곱째, 재정의 신축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지방교부세, 지방교육 재정교부금 및 도로정비사업의 법정교부금을 폐지하고 매년 예산에서 이를 정한다.
이러한 내용의 이 조치는 민간투자와 고용증가 둔화현상에 따른 당면한 경기부진의 타개를 병행하겠다는 장단기목표를 함께 가지고 있었다.
이와 동시에 이 조치의 일환으로 인플레이션의 단절을 위한 5개항의 경제정책이 추진되었다. 그 내용은 ① 금융기관의 1년이상 정기예금금리를 연 16.8%에서 12.0%, 상업어음 대출금리를 연 19.0%에서 15.5%로 인하하고, ② 환율을 1달러 당 400원 선에서 유지하며, ③ 공공요금의 인상을 억제하고, ④ 물가상승률을 연율 3%내로 억제하며, ⑤ 1973년도 예산규모의 증대를 최대한 억제한다는 것이었다.
이 조치는 자본주의 경제질서 하에서는 파격적인 긴급조치로, 기업에게는 막대한 경제적 특혜를 준 것이었다. 특히 사채의 신고와 동결조치는 사채를 쓰고 있는 기업과 사채권자에게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조치였기 때문에 그 충격은 매우 컸다. 그리고 사채신고로 드러난 사채규모가 엄청나게 큰 것이어서 다시금 일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신고된 사채신고실적은 채권자 신고액이 3,570억 원, 채무기업 신고액이 3,456억 원으로, 채무자가 없는 신고는 뒷처리에서 제외되었으므로 이 조치에 따라 동결된 사채총액은 3,456억 원이었다. 이는 1971년 말 총 통화의 31.9%와 국내신용의 30.1%에 상당하는 규모였다.
한편 정부는 1972년 8월 10일 30만 원 미만의 사채를 즉시 해제하는 등 소액사채에 대하여 특별구제조처를 마련하였다. 이 조치의 결과 기업은 임시적으로 채무의 압박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장기적인 안목에서 보면 기업이 아무리 많은 부채를 지더라도 우선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불건전한 인식을 심어 주었다. 이 조치로 사채의 중압에서 벗어난 기업은 1973년 이후 전개된 인플레이션으로 더욱 그 채무의 실질적인 부담을 덜게 되었다.
결국 이 조치는 그 목적의 타당성이나 달성여부를 불문하고 불건전한 경영방식이 오히려 유리하다는 우리 나라 특유의 기업풍토를 초래하였다는 평가를 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