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군 ()

대동여지도 중 경상남도 하동, 전라남도 광양 부분
대동여지도 중 경상남도 하동, 전라남도 광양 부분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경상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군.
이칭
이칭
낙노국, 한다사군
정의
경상남도 서남부에 위치한 군.
개관

동쪽은 진주시·사천시, 서쪽은 전라남도 광양시·구례군, 남쪽은 남해군, 북쪽은 산청군·함양군 및 전라북도 남원시와 접한다. 동경 127°35′∼127°56′, 북위 34°57′∼35°20′에 위치한다. 면적은 675.52㎢이고, 인구는 5만 259명(2015년 기준)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개 읍, 12개 면, 319개 행정리(108개 법정리)가 있다. 군청은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읍내리에 있다.

자연환경

지세는 소백산맥의 지맥이 남쪽으로 뻗어 군의 북쪽에서 험준한 준봉으로 올랐다가 다시 남쪽으로 가면서 차츰 낮아져 남해에 이른다. 북쪽 군계에는 명선봉(明善峰, 1,586m)·형제봉(兄弟峰, 1,433m)·덕평봉(德坪峰, 1,522m)·영신봉(靈神峰, 1,652m) 등이 있다.

동쪽에는 삼신봉(三神峰, 1,284m)·주산(主山, 831m)·우방산(牛芳山, 570m)·옥산(玉山, 614m)·이명산(理明山, 570m), 서쪽에는 황장산(黃獐山, 942m)·신선봉(神仙峰, 600m)·형제봉(兄弟峰, 1,115m), 남쪽에는 연대봉(蓮臺峰, 447m)·금오산(金鰲山, 849m) 등이 있다.

하천으로는 북쪽의 진안고원에서 발원하여 남동쪽으로 흐르는 섬진강(蟾津江)이 군의 서쪽 경계를 이루며 남해로 흘러든다. 섬진강의 지류로 화개면 대성리에서 발원한 화개천(花開川)이 남쪽으로 합류하며, 청암면 묵계리에서 발원한 횡천강(橫川江)은 남류하여 군의 중앙부인 횡천면을 지나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화개천은 약 20㎞에 달하는 화개계곡을 만들어 절경을 이루고, 횡천강은 유역에 비옥한 충적평야를 형성한다. 그밖에 악양면 시리봉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섬진강에 합류하는 악양천(岳陽川), 이명산에서 발원하여 고전면을 지나 남쪽으로 흘러 섬진강에 흘러드는 주교천(舟橋川), 지리산에서 발원하여 옥종면을 지나 동남쪽으로 흘러 남강에 흘러드는 덕천강(德川江) 등이 있다.

기후는 남부 및 남해안기후대로 볼 수 있는데, 남부기후대는 북쪽의 산간지구, 남해안기후대는 남해안에 면한 지구에서 나타난다. 연평균기온은 13.8℃, 1월 평균기온은 0.2℃, 8월 평균기온은 25.3℃인데, 산간지역의 연교차는 이 수치보다 훨씬 큰 편이다. 연강수량은 연평균 1,512.8㎜로서 우리나라의 최다우지역에 속한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에 관입한 화강암·화강편마암·화산암류가 복잡한 산악 지형을 형성하며 기타 하천유역에는 퇴적층에 의한 충적암이 주로 나타난다. 식생은 온대남동부 및 난대가 동시에 나타나고 중부형도 일부 분포하는데, 전나무·편백·해송·삼나무·리기다소나무·오동나무 등이 다양하게 자란다.

역사

하동군 지역은 섬진강 유역의 서남부와 남강 유역의 동부지역으로 갈라져 있는데, 청동기시대의 유물·유적은 이 두 지역에서 고르게 발견되고 있다. 삼한시대에는 변한의 낙노국(樂奴國)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삼국시대에는 가야연맹권에 속하여 다사성(多沙城)이라 불렸다.

후에 백제의 세력에 들어가 한다사군(韓多沙郡)이라 불리었는데, 이때 섬진강은 백제와 일본 간의 교통로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통일신라시대에는 757년(경덕왕 16)에 하동군이라 개칭되었다.

성량현(省良縣: 뒤에 金良部曲이 됨)·악양현(岳陽縣: 본래 少多沙縣)·하읍현(河邑縣: 본래 浦村縣) 등의 영현도 모두 이때 개칭된 것이다. 828년(흥덕왕 3)에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金大廉)이 차 종자를 가져와 왕이 지리산에 심게 했는데, 이때부터 차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

1018년(현종 9)에 진주목의 속군이 되었으며, 악양현은 진주의 영현이 되었다. 1172년(명종 2)에 감무를 설치했는데, 이때 군에서 현으로 강등된 듯하다.

1414년(태종 14)에 남해현을 합하여 하남현(河南縣)이라 하고 현령을 두어 진주목에 소속시켰다가 이듬해 다시 하동현으로 분리·환원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의하면, 세종 때 하동현의 호구수는 340호 1,208인, 악양현은 61호 181인이었다.

1518년(중종 13)에 악양·화개 지방이 진주와 거리가 멀어 관곡의 수납에 어려움이 많다 하여 악양에 의창(義倉)을 설치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이듬해인 1593년에 왜군은 진주성을 함락하고 하동까지 침입해 와 읍성을 불태웠으며, 읍내는 일시에 폐허가 되는 피해를 당하였다.

정유재란 때에는 왜군이 섬진강을 통하여 호남으로 진출하면서 주변의 쌍계사 등 대소 사찰을 불태우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하동에서는 읍의 위치에 대한 논의와 변동이 자주 일어나, 1661년(현종 2)에 읍의 위치를 횡포(橫浦)로 옮겼다가 1679년(숙종 5)에 다시 구읍으로 환원하였다.

1702년(숙종 28)에 읍민들의 진정으로 교통이 편리한 섬진강변의 현재 읍내로 옮기고, 동시에 화개·악양·진답(陳畓)·적량(赤良) 등 4개 면을 하동으로 이속시켰다. 이듬해 다시 진답면의 소재[牛嶺]로 옮겼다가, 1704년(숙종 30)에 진답면 두곡리의 섬진강변으로 옮기면서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1730년(영조 6)에 읍의 터전이 좁고 평탄하지 못하다 하여, 5리 정도 떨어진 나동(螺洞)으로 옮겼다가 1745년에 부사 전천상(田天祥)이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1759년 하동부의 호구 수는 3,832호 1만 7289인이었다. 1895년(고종 32)의 지방관제 개편에 따라 도호부에서 군으로 환원되어 진주부에 소속되었다.

1906년에는 동부의 청암·북천·옥종 지방의 9개 마을이 진주군에서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진주군에서 편입된 지역을 북천·가종·옥동·청암 등 4개 면으로 통합했으며, 곤양군의 금양면·서면을 편입하면서 서면을 남면으로 개칭하였다. 1915년에는 전라남도 광양군 다압면 섬진리 일부를 편입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에는 4월 3일부터 동월 20일까지 하동장을 비롯한 진모·옥종·화개 등에서 수많은 군중이 독립만세를 외쳤으며, 이로 인해 많은 인사가 살해 또는 투옥되었다. 1933년에 가종면·옥동면을 합하여 옥종면으로, 금양면·남면을 합하여 금남면으로 각각 개칭하였다.

1938년에는 하동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48년 10월에는 여수·순천사건으로 화개·악양·청암 등 3개 면의 일부가 소개되는 등 피해가 적지 않았으며, 한국전쟁 때에도 그 여파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

1955년 7월 1일에 옥종면 원계리가 진양군으로 편입되었으며, 1966년에는 화개면에 신흥(新興)출장소, 1969년에는 청암면에 위태(葦台)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68년에는 경전선이 개통되었고, 1973년에는 남해고속도로가 군 남부를 관통함으로써 지역발전에 커다란 계기가 마련되었다.

1983년에는 옥종면 중태리가 산청군 시천면에 이속되었다. 1986년에는 금남면에 갈사(葛四)출장소가 설치되었다가, 1989년 4월 1일에 금성면으로 승격되었다. 또한 이 해 1월 1일에 금남면 술상리가 진교면에, 옥종면 법대리 일부가 병천리에 편입되었다.

1992년에 군청 소재지가 읍내리의 현위치로 이전하였다. 1996년 3월에는 화개면 신흥출장소가, 1998년 9월에는 청암면 위태출장소가 폐지되었다. 2002년 12월에는 청암면 위태리·궁항리·회신리가 옥종면으로 편입되어 1읍 12면으로 현재에 이른다.

유물·유적

청동기시대의 유적으로는 적량면 동산리, 양보면 운암리에 남아 있는 지석묘와 하동읍 읍내리, 진교면 진교리, 횡천면 월평리, 청암면 궁항리, 양보면 장암리, 금남면 덕천리 등지에서 출토된 마제석기 등이 있다. 이 지역의 서남부인 섬진강 유역과 동부인 남강 유역에서 청동기시대 전부터 사람들이 거주하였을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신라 때에는 반야봉(般若峰)에서 섬진강에 이르는 50여 리의 화개계곡이 신라 불교의 일대 중심지를 이루기도 했는데, 1627년(인조 5)에 간행된 『진양지(晉陽誌)』 불우조(佛宇條)에는 쌍계사(雙磎寺)·신흥사(神興寺)·의신사(義神寺) 등 53개에 달하는 대소 사찰·암자들이 기록되어 있다.

화개면 운수리에 있는 지리산 쌍계사(경상남도 기념물, 1974년 지정) 경내에는 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 1962년 지정)을 비롯하여 쌍계사 승탑(보물, 1963년 지정), 대웅전(보물, 1968년 지정), 대웅전 삼세불탱(보물, 2003년 지정), 팔상전 팔상탱(보물, 2003년 지정),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보물, 2003년 지정) 등이 있다.

이외에도 일주문(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팔상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명부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나한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적묵당(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 설선당(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육조정상탑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천왕문(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금강문(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등의 건조물과 쌍계사석등(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 팔상전 영산회상도(보물, 1987년 지정), 불경책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쌍계사마애불(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 등의 문화재들이 보존되어 있다.

산중에는 국사암(國師庵), 불일암(佛日庵), 칠불암 등의 암자가 있는데, 칠불암은 가락국의 일곱 왕자가 보옥선사(寶玉禪師)를 따라 출가하여 2년간 수도 끝에 성불하였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고찰이다.

금남면 중평리에는 금오산 마애불(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93년 지정), 악양면에는 정서리 석조여래입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이 있다. 화개면 범왕리에는 칠불사 아자방지(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 탑리에는 탑리 삼층석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이 있다.

북천면 직전리에는 이명산 석불사지(경상남도 기념물, 1974년 지정)와 이명산 마애석조여래좌상(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이맹점(理盲岾)은 현 동쪽 20리 지점에 있다. 전설에는, 동경(東京) 비보산(裨補山) 꼭대기에 옛날 용지(龍池)가 있었다. 이 때문에 동경 사람은 소경이 많으므로 많은 사람이 괴로워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은 동경과 어떠한 인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교문화재로는 하동읍 읍내리의 하동향교(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83년 지정), 옥종면 정수리의 옥산서원(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과 두양리의 두방재(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 월횡리의 경현사(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90년 지정)가 있다.

청암면 중리리에는 신라 경순왕의 사당인 경천묘(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와 금남사(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5년 지정), 화개면 덕은리에는 주자(朱子)·정여창(鄭汝昌)·김굉필(金宏弼) 등을 모신 덕은사(德隱祠)와 최치원의 사당이었던 금천사(琴川祠) 등이 있다.

양보면 운암리에는 운암영당 고운선생 영정(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79년 지정), 청암면 중리리에는 목은 이색선생 영정(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83년 지정) 등의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금남면 중평리에는 정기룡장군 유품(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991년 지정)과 사당인 경충사(景忠祠)·정기룡장군 유허지(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91년 지정) 등이 있다. 화개면 운수리에는 청학루(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팔영루(경상남도 문화재자료, 1983년 지정), 하동읍 읍내리에는 섬호정(蟾湖亭) 등이 있다.

산성으로는 남해안 고전면 고하리의 고현성(古縣城), 옥종면의 하동 북방리 고성산성(경상남도 기념물, 1994년 지정), 악양면 평사리 섬진강변의 하동 고소성(사적, 1966년 지정)이 대표적인데, 고소성은 웅장한 석성으로 신라 때 축성된 것이라 한다. 금남면 중평리에는 하동 금오산 봉수대(경상남도 기념물, 1993년 지정)가 있다.

하동읍 광평리의 하동송림(천연기념물, 2005년 지정), 악양면의 하동 축지리 소나무(천연기념물, 2008년 지정), 화개면의 하동 범왕리 푸조나무(경상남도 기념물 제123호), 옥종면의 두양리 은행나무(경상남도 기념물, 1983년 지정) 등의 기념물이 있다.

교육·문화

하동에서 가장 오래된 조선시대 교육기관은 1415년(태종 15) 하동현에 훈도 1인을 두고 창건된 향교이다. 그 뒤 1459년(세조 5년)에 지금의 고전면 고하리에 다시 건립된 하동향교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3년(선조 36)에 중건되었고, 1736년(영조 12)에 지금의 하동읍 읍내리로 이전되었다.

하동향교에서는 교생 50명을 정원으로 유학을 가르쳤으며 조선 후기에 와서는 유림의 학업을 권면하기 위한 양사재(養士齋)가 관비로 세워지기도 하였다. 그밖에 화개·악양·적량 등지에도 향교가 건립되었으나 현의 폐합으로 모두 조선 중기 이전에 없어졌다.

서원으로는 1698년(숙종 24) 양보면 감당리에 영계서원(永溪書院)을 설립하여 정여창의 위패를 봉안하고 원생을 가르쳤으며, 화개면 덕은리의 금천사에서는 최치원의 영정을 봉안하고 선비들을 교육하였다. 그밖에 옥종면 정수리에 옥산서원, 옥종면 북방리에 옥동서원이 있었고, 청암면 중리리에 금남사, 북천면 서황리에 경인사(景仁祠) 등이 있었다.

근대 교육기관으로는 1904년 쌍계사 경내에 보명학교(寶明學校)를 개교한 것이 시초이다. 이어 1906년에 옥진학교(玉珍學校), 1907년에 지금의 하동초등학교가 개교했다. 1920년대에 들어와서 각 면에 학교가 세워졌다. 1930년에 하동농업보습학교와 1947년에 하동중학교가 개교함으로써 중등교육이 실시되었다.

2015년 현재 교육기관으로는 초등학교 17개교, 중학교 10개교, 고등학교 5개교가 있다.

민속

대표적인 민속놀이로는 메구치기를 들 수 있다. 매년 음력 정월 초에서 보름경까지 농악패인 걸꾼들이 농악을 울리며 집집을 돌면서 풍년을 기원해 주고 악귀를 쫓는다. 이를 ‘메귀친다’라고 하며 집안에서 치는 것을 ‘집돌랑친다’라고 말한다.

걸꾼들은 먼저 마을을 한 바퀴 돈 다음 집집마다 방문을 하는데 이때 상쇠잡이가 대문에 서서 풍물의 장단에 맞추어 “주인, 주인, 문 여소. 문 안 열면 갈라요.”라고 하면 주인이 반겨 맞아들인다. 그러면 마당에서 풍물을 치면서 한 바퀴 돌고는 “메구야, 잡귀 잡신은 쳐내고 명과 복은 쳐들이소.”라고 기원한다.

다음에는 풍물을 치며 부엌에 들어가 조왕솥 앞에서 빌고 큰채 뒤꼍에 가서 “앞으로 봐도 천석꾼, 뒤로 봐도 천석꾼”이라고 천석꾼 기원을 한 뒤 계속 장소를 옮겨 한지둥(큰방)에서 자식 기원, 고방에서 재물 기원, 장독에서 음식 기원 등을 차례로 한 다음 마당을 몇 바퀴 돌고는 다음 집으로 향한다. 이때 집 주인은 술과 음식을 대접하고 곡식이나 돈을 주는 것이 상례인데, 여기서 모인 곡식과 돈은 마을의 공동 사업에 쓰인다.

동제는 청암면의 당산제가 대표적이다. 이곳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에 당산신을 모시는 당산제를 지내는데, 마을사람 중에서 궂은 일이 없는 정결한 사람을 제관으로 선정하여 주관하게 한다. 제수로는 각종 과일과 해산물을 쓰고, 유교 절차에 준하여 제가 진행된다. 제사를 잘못 모시면 마을에 해가 있다고 믿어 제 기간 동안 제관을 비롯한 마을사람들은 엄격하게 금기를 지킨다.

설화·민요

하동은 지리산과 섬진강이 에워싸고 있는 수려한 지리적 조건으로 인하여 지형 지물에 관한 설화가 많다. 그중의 하나가 방정맞은 여자 유형의 「노루목전설」이다. 화개면 운수리의 신촌마을과 이웃 정금마을 사이에 노루목[獐項]이라는 산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이 산은 본래 정금마을에 있던 산이었는데 어느 날 이 산이 정금마을에서 신촌마을로 걸어왔다고 한다. 신촌마을의 한 부인이 빨래를 하다가 이를 보고 놀라 고함을 질렀기 때문에 산은 그 자리에 서 버리고 현재의 노루목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이 산이 조금만 더 신촌마을 쪽으로 옮겨 왔더라면 이 일대가 도읍이 되어 번창하였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한다.

또한, 바위나 봉우리에 대한 금기 전설도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다. 옛날 어느 장군이 사용하던 갑옷·투구·장검이 들어 있어 손을 대면 천둥이 친다는「농바위전설」(횡천면 횡천리), 도둑으로 변신한 지네가 숨었던 바위로서 사람이 손을 대면 비가 오지 않는다는 「꽃집터전설」(금성면 갈사리) 등이 있다.

화개면 쌍계사 계곡의 불일폭포 아래 있는 용추(龍湫)에는 「쌀 나오는 구멍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밖에 매봉티[每峙]에서 늘 범을 만나 타고 다녔다는 진감국사, 환학대(喚鶴臺)에서 학을 부르고 마적대(馬跡臺)에는 용마의 발자취를 남긴 최치원 등 인물전설도 많이 전승되고 있다.

이외에도 「섬진강 두꺼비 전설」, 「세이암 전설」, 「용추 쌀바위 전설」, 「금오산 달님별님 이야기」, 「두곡리 고래들 이야기」 등이 전해오고 있다.

이 고장의 민요는 경상남도 서부, 특히 거창·산청·함양 등지의 민요와 많은 부분이 엇섞여 있다. 「쾌지나칭칭」은 인근 지방의 특징을 노래하고 있어 흥미롭다. “동구마천 큰애기들은/ 곶감깎기로 다나간다/ 산래골 큰애기들은/ 딱깎기로 다나간다/ … 지청천변 큰애기들은/ 지정떡장사로 다나간다/ … 의신바닥 큰애기들은/ 횃장작패기로 다나간다/ 쾌지나칭칭나네 …”처럼 부른다.

또, 「모내기노래」가 여러 가지로 불리고 있는데 이 중에서 「산중이앙가」는 “모시적삼 새장삼에/ 나무아미타불/ 모시고깔 새고깔에/ 나무아미타불/ … 머리깎고 중되면은/ 나무아미타불/ 부모님봉양 누가할꼬/ 나무아미타불/ 앞논에다 모를 부어/ 나무아미타불/ 잡나락이 태반일세/ … 중놈대가리 다듬자.”처럼 부르는데 매우 해학적이다.

「길쌈노래」는 “올라갔다 올라갔다 우리전지 장안인디/ 건네전지 잠잤던가 건네전지 잠잤던가/ 장안이네 장안이네 우리전지 장안이네 …”처럼 부른다.

여러 「시집살이노래」도 기능은 길쌈 노동요인 경우가 많은데, “명지 창옷을 입자니 때가묻고/ 개자니 살이지고 짓만잡아 걸어놓고/ 오동장속 까까수는 베기좋고 있어놓고/ 아들딸 삼형제는 키울듯이 낳아놓고 …”처럼 부르는 것이 그 한 예이다.

한편, 임진왜란 때 불렸다는 「하동의병군가」가 전승되고 있는데 “조선군사 눈물이다/ 눈물을 밥을삼고/ 한검을 벼개삼고/ 송침을 울음삼고/ 살썩이는 말만한다.”와 같이 부른다.

동학혁명을 노래한 동요는 “… 아래녘새야 위턱새야 전주고부 녹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두류박 딱딱우여/ 봉준아 봉준아 전봉준아/ 양에야 양철을 짊어지고/ 놀미 갱갱이 패전했네.”와 같다.

이 밖에도 「첩노래」·「청춘가」·「신중이앙가」·「진주낭군」·「보리타작노래」·「질꾸내기[路軍樂]」·「진주난봉가」·「나물뜯는노래」·「각거리」·「잠노래」·「화투타령」·「사리랑정령」·「의암요」·「그네노래」 등 많은 민요들이 전승되고 있다.

산업·교통

산업구조는 2012년 기준으로 농림어업이 67%, 광업·제조업이 2.6%, 서비스·기타가 30.4%이다. 농경지 면적은 112.55㎢(2012년 기준)로서 전체면적 중 경지면적이 점유하는 비율은 16.7%이다.

경지이용상황을 보면 2012년 기준으로 논이 84.23㎢, 밭이 28.32㎢로서 논밭의 점유비는 논이 74.8%, 밭이 25.2%이다. 이처럼 논으로의 이용률이 밭보다 3배 가까이 우세하게 나타나고 있는 이유는, 관개나 용수이용이 유리한 산간분지나 횡천강 및 섬진강 등의 하천유역에서 주로 논농사를 짓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송원저수지·광포저수지·궁항저수지 등에서도 관개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농가호수는 2012년 기준으로 1만 2401호, 농가인구는 3만 8572명으로 전체인구에 대한 농가인구율이 76.4%에 달하여 도내의 시·군 중 농업활동에 대한 산업의존도가 매우 높은 지역이다. 전업농가는 9,258호로 전체 농가의 74.7%에 해당한다.

주요 농산물로는 주곡인 쌀 외에도 쌀보리·맥주보리·콩·고구마·기타 잡곡 등이 있고, 고추·참깨·마늘·양파·잎담배 등의 특용작물, 배추·무 등의 채소류와 과실류의 생산도 많은 편이다. 농촌 인구의 감소로 과수원이 크게 늘고 있으며 배나무·감나무·밤나무를 심은 경지가 늘고 있다. 특히, 화개면에서 생산되는 차는 작설차라 하여 화개잎차로 유명하다.

산악지대에서는 각종 약재·산나물·밤 등이 채취되며, 차의 재배와 대나무의 생산도 많다. 영농의 다각화로 축산업도 성한 편인데, 한우·돼지·산양·닭·사슴·꿀벌 등의 사육도 행해지고 있다.

수산업은 금남면에서 멸치·가자미 등이 어획되고 있으며, 김과 패류의 양식도 일부 행해지고는 있으나, 인접한 광양제철소로 인한 부근 수역의 오염으로 어업은 차츰 쇠퇴해가고 있다. 섬진강 하류에서는 지역의 대표적인 향토음식인 재첩 채취가 이루어진다.

광업은 7개소에 21명(2012년 기준)이 종사하고 있는데, 주로 북천면·옥종면·청암면에 있는 고령토광산에서 고품위의 고령토가 생산된다. 제조업은 294개소에 1,070명(2012년 기준)이 종사하고 있다. 상업 및 서비스업은 3,115개소 11,770명(2012년 기준)이 종사하고 있다.

시장은 상설시장 1개와 정기시장 10개가 운영되고 있는데, 과거부터 하동읍·진교면·옥종면 등에서는 지역의 특산물과 현대적 상품이 이 장을 통해서 거래되는 전통을 유지해 왔다.

하동군은 진주·광양만 광역개발권 중심부에 위치하여 지방산업단지 조성으로 광양만권 공업벨트와 진사 첨단 산업단지와 연계 개발 가능하다. 하동군이 포함되어 있는 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은 광양제철의 생산기능과 연관산업을 전략수출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하여 설정되었으며 경제자유구역청 하동지소가 2005년에 설치되어 하동군의 경제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교통은 2번 국도가 사천군과 전라남도 광양시와, 19번 국도가 남해군과 전라남도 구례군과, 59번 국도가 전라남도 광양군과 연결된다. 경전선철도가 군의 중앙을 지나며 남해고속도로가 군의 남부를 통과한다.

관광

하동군은 국립공원 지리산의 장엄함과 섬진강의 평화스러움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 곳으로 곳곳에 경승지와 고찰 및 유적이 많아 연중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하동포구 80리’라고 일컬어지는 섬진강 하류는 흰모래 사장과 울창한 송림으로 절경을 이루는 이른바 한국의 다뉴브이다.

보통 하동포구라 부르며 죽순이 나는 대나무 밭과 흰모래와 소나무가 잘 어울려 절경을 이룬다. 더구나 봄의 꽃, 가을의 단풍은 원색의 수를 놓고, 강 위에 떠 있는 흰 돛단배는 한 폭의 그림과 같다. 하동읍 광평리 섬진강변에는 하동송림이라 하여 2㎞ 길이에 약 5,000평 정도 되는 곳에 300년 이상 된 노송의 숲이 있으며, 섬진강 인도교와 멀리 경전선철도가 바라다보이는 백사장에는 활터가 있다.

유행가가 작곡되어 불릴 정도로 유명한 이 포구는 60여 년 전만 해도 섬진강을 이용한 수운으로 수백 척의 어선이 정박하였으나 지금은 강이 점점 메워져 배가 들어 오기 힘들고 도로 이용이 늘어나 한가하다.

섬진강의 상류 협곡을 따라 올라가면 중국의 악양팔경(岳陽八景)을 연상하게 하는 악양루(岳陽樓)·동정호(洞庭湖)·고소산성 등 빼어난 경승지가 유명하다. 섬진강 지류인 화개천의 화개계곡에 자리잡은 신라의 고찰 쌍계사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보물급 불교문화재가 산재하여 있는데다가 주변에 절경을 이루는 곳이 많다.

특히 쌍계사로 들어가는 화개동구 10리 벚꽃 길은 봄철이면 벚꽃터널로 일대 장관을 이룬다. 쌍계사 북동쪽 4㎞에 있는 불일폭포(佛日瀑布)는 지리산의 유일한 폭포로 사계절 마르지 않으며, 못 위로 날아오르는 학의 모습과 어우러져 속세를 떠난 비경을 안겨 준다.

청암면 묵계리에 있는 청학동마을은 우리 고유의 풍습을 지니고 문명을 거부하는 이방지대로 알려져 있다. 이곳 주민들은 학교교육을 거부하고 서당교육을 받으며 전통적인 한복을 입고 머리를 기르는 등 전통 생활풍속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곳이 유명해지면서 등산객 등 외부인의 방문이 잦아지고 있어 은둔지로서의 청학동 성격은 달라지고 있다.

그밖에 진주암 일대의 청학계곡은 아름다운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하동읍 흥룡리 계곡의 와룡폭포(臥龍瀑布)가 여름의 더위를 식혀 주고, 향교 뒷산의 섬호정(蟾湖亭)은 섬진강의 절경을 조망하기에 좋다. 남해고속도로와 국도가 잘 정비되어 있고 지리산국립공원을 비롯한 오염되지 않은 경승지가 산재하여 관광지로서 크게 각광을 받고 있다.

매년 이루어지는 하동군민의 날 행사는 군민의 화합과 애향심을 고취하기 위해 문화예술 및 농악, 씨름, 줄다리기 등 민속놀이와 다양한 체육 경기를 펼치는 한마당 축제이다. 화개면 운수리 차시배지 일원과 진교면 백련리 찻사발 도요지에서 펼쳐지는 하동야생차 문화축제는 정부 지정 문화관광축제로서 야생차의 역사적 전통과 한국의 전통적인 차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행사이다.

이 고장을 배경으로 쓴 대하소설 『토지』의 문학적 가치를 되새기기 위한 문학예술축제인 토지문학제가 매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서 진행된다. 평사리문학대상·토지백일장·시낭송·문학강좌 등으로 이루어진다. 이외에 화개면 화개장터 팔각정에서 이루어지는 고로쇠약수제와 화개장터 일원에서 이루어지는 화개장터벚꽃축제 등이 있다.

하동읍 읍내리의 하동문화예술복지회관은 2001년에 개관하였으며 대·소공연장 및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악양면 평사리에 자리 잡은 평사리문학관은 소설 『토지』의 주무대인 최참판댁 가옥과 연계하여 하동 및 지리산 일대와 관련한 문학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2005년에 건립되었다.

화개면 운수리의 차문화센터는 이 고장의 특산물인 야생차의 홍보를 위하여 2003년에 설립되었다. 2005년 개관한 화개면 운수리의 차체험관은 녹차잎따기, 녹차만들기의 전 과정을 체험하고, 전통다례를 배우는 공간이다.

적량면 고절리의 하동공설운동장은 1992년에 완공되었는데, 면적은 25,124㎡이고 10,000석의 관중석과 인조잔디구장으로 되어있다. 고절리에 위치한 하동실내체육관은 면적이 1,152㎡이다.

읍·면
  1. 하동읍(河東邑)

군의 중서부에 위치한 읍이다. 면적은 29.53㎢이고, 인구는 1만 834명(2015년 기준)이다. 읍 소재지는 읍내리이다. 본래 진주목 지역으로, 묵은 논이 많이 있다 하여 진답면(陳沓面)이라 했는데 1702년(숙종 28)에 하동군에 편입되었다. 1895년(고종 32)에 덕양면(德陽面)으로 고쳐서 광평·원동 등 1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팔조면(八助面)의 문도(文島)·목도 등 8개 리와 전라남도 광양군 다압면의 섬진리 일부를 병합하여 8개 리로 개편되었다가 1933년에 하동면으로 고치고 1938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북쪽은 구재봉·분지봉(分枝峰) 등이 있는 험준한 산지이나 동쪽에는 섬진강의 지류인 횡천강이 남쪽으로 흐르다가 섬진강과 목도리에서 합류하여 넓은 백사장을 형성한다. 서쪽 읍 경계를 이루는 섬진강은 남해로 흘러들면서 광평리·신기리·목도리 일대에 넓은 평야를 형성하는데, 목도리는 과거 섬이었으나 제방을 쌓음으로써 육화(陸化)되었다.

산업은 평야지대를 중심으로 농사가 이루어지는데,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콩 등 식량작물과 참깨·아주까리·유채·저마 등 특용작물 및 각종 채소가 생산된다. 산지 사면에는 임산물이 풍부하며 섬진강 연안의 자연제방에 과수원이 많이 있으며, 축산업으로 한우·돼지·닭·산양 등을 사육하는 농가가 많다.

교통은 경전선이 읍의 중앙을 가로지르며 2번 국도가 동서로 연결된다. 또 19번 국도가 남북으로 연결되며 섬진강의 수운도 이용할 수 있다. 문화유적은 읍내리의 하동향교와 섬호정이 있다. 광평리는 섬진강 하류의 백사장과 하동송림이 유명하며, 이곳에 있는 하상정은 궁도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읍내(邑內)·비파(琵琶)·광평(廣坪)·신기(新基)·목도(牧島)·흥룡(興龍)·화심(花心)·두곡(豆谷) 등 8개 리가 있다.

  1. 고전면(古田面)

군의 서남부에 위치한 면이다. 면적은 36.18㎢이고, 인구는 2,553명(2015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범아리이다. 본래 하동군 지역으로서 마전역(馬田驛)의 이름을 따 마전면이라 하여 성천·지소(紙所)·대덕 등 11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고현면(古縣面)의 명교·성평 등 7개 리와 팔조면(八助面)의 신월(新月)·사평(沙坪) 등 6개 리를 병합하면서 고현과 아전의 이름을 따서 고전면이라 하고 8개 리로 개편되었다.

대부분이 산지지역으로 북쪽에 정안산(鄭晏山, 448m)을 비롯한 크고 작은 구릉지가 이어지며 남쪽으로 갈수록 낮아진다. 계곡 사이로 농경지가 발달하였으며 남서쪽으로 흐르는 주교천이 섬진강으로 흘러들며 하류지역에 비교적 넓은 농경지를 형성하고 있다.

농업이 주산업이며 농작물로는 쌀을 비롯하여 보리·콩 등의 식량작물과 참깨·유채 등의 특용작물 및 채소가 생산된다. 산록에서는 한우·닭·돼지·산양 등이 사육되며, 사료작물로 호밀도 재배된다. 특산물로 섬진강 하구에서 나는 갈대로 만든 노화(蘆花)비가 유명하다.

교통은 19번 국도가 면의 서쪽을 남북으로 지나가고 남해고속도로가 동쪽 일부 지역을 통과하며 여러 군도가 각 면과 연결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고하리에 고현성(古縣城)이 있는데 조선 세종 때 왜병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석성으로 둘레가 570m, 높이가 약 4m이며, 우물터·못터의 흔적이 남아 있다.

범아(泛鵝)·성천(城川)·신월(新月)·명교(銘橋)·고하(古河)·성평(星坪)·대덕(大德)·전도(錢島) 등 8개 리가 있다.

  1. 금남면(金南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이다. 면적은 43.31㎢이고, 인구는 4,110명(2015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노량리이다. 본래 곤양군(昆陽郡) 지역으로서 서면(西面)이라 하여 삼천(三川)·영천(永川)·궁항(弓項) 등의 1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하동군 마전면(馬田面)의 나팔(羅八)·내도(內島) 등 5개 리를 병합하여 하동군에 편입되면서 10개 리로 개편되었다. 1933년에 금양면(金陽面)의 노량·대치·중평·술상(術上) 등 4개 리가 편입되었다. 1986년에 금남면 갈사출장소를 개설하고, 1989년에 갈사출장소가 금성면으로 승격되었다.

북쪽에 금오산, 남쪽에 연대봉 등 구릉성 산지가 곳곳에 분포하고 대송리와 덕천리에서 발원한 석천(石川)이 서쪽으로 흘러 주교천으로 흘러들면서 하류에 농경지를 형성하고 있다. 주산업은 농업이며, 주요 농산물로는 참깨·마늘·배추 등이 생산된다. 경사지에서는 산양·소 등의 사육이 활발하며 산지에서는 밤이 많이 생산된다.

근해에서 가자미·멸치 등이 어획되고 양식업이 활발하며 특히 김이 유명하다. 교통은 19번 국도가 남해대교로 남해군과 연륙되어 북서쪽으로 지나가며 노량에서 진교로 이어지는 1002번 지방도가 동쪽으로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송문리에 임진왜란 때 의병들이 쌓았다는 민보성(民堡城)터가 약 500m 남아 있다. 중평리에는 금오산봉수대와 마애불이 있으며, 임진왜란 때 공적을 세운 정기룡장군의 업적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경충사가 있다. 대치리에는 3·1운동 유공자 정재운(鄭在雲)의 묘가 있다.

노량(露梁)·중평(仲坪)·대치(大峙)·송문(松門)·대송(大松)·계천(鷄川)·덕천(德川)·진정(眞正)·대도(大島) 등 9개 리가 있다.

  1. 금성면(金城面)

군의 남부에 위치한 면이다. 면적은 22.27㎢이고, 인구는 3,789명(2015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궁항리이다. 본래 금남면에 속하였으나 1986년에 갈사출장소가 설치되었다가 1989년에 면으로 승격되었다.

면의 북동쪽에 용산(龍山, 153m), 북서쪽에 두우산이 있으며, 남쪽은 광양만에 면하여 넓은 간석지가 형성되어 있다. 남해안에는 갈도(葛島)·구와도(拘臥島) 등의 유인도와 무인도들이 있다. 갈도는 갈사교(葛四橋)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주산업은 농업으로, 벼농사가 주로 행하여진다. 북쪽 산록에는 궁항·광포(廣浦) 등의 저수지가 있어 농업용수를 공급해 준다.

수산업은 과거부터 갈도에서 김 양식이 성하였다. 특히, 갈도와 고포리 사이의 좁은 바다는 해수와 하수가 교차되는 곳으로, 이곳에서 생산되는 김은 맛이 특이하여 일제강점기 때에는 전량이 공출되었다. 1960년대 이후에는 주로 수출용으로 생산되었으나 1980년대에 인근 광양만에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해안생태계에 변화가 일어나 현재는 김 양식이 거의 중단되었다.

가덕리에는 하동화력발전소가 위치한다. 교통은 남해고속도로가 면의 북부를 달리고 광양제철소를 연결하는 59번 국도가 면을 통과한다. 궁항(弓項)·가덕(加德)·갈사(葛四)·고포(高浦) 등 4개 리가 있다.

  1. 북천면(北川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이다. 면적은 32.95㎢이고, 인구는 1,957명(2015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직전리이다. 본래 진주목 지역으로서 대야천면(大也川面)이라 하여 상촌(上村)·화정·중촌(中村) 등 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0년에 하동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북면(北面)의 계산(鷄山)·직전·사평 등 5개 리와 곤양군 초량면의 일부를 병합하하면서 북면과 대야천(大也川)의 이름을 따서 북천면이라 하여 6개 리로 개편되었다.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동쪽에 계명산(鷄明山, 370m), 남쪽에 이명산 등이 솟아 있다. 방화리 계곡에서 발원한 대야천이 동쪽으로 흘러 초량강(草梁江)과 합류하며 계곡에 농경지를 형성한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 등의 식량작물과 고추·배추·참깨·마늘 등의 특용작물, 감·밤 등의 과일이 생산된다. 경사지에서는 소·닭·산양 등의 사육이 활발하며 산지에서 약재가 생산된다. 고급 도자기 원료인 고령토가 생산되어 화정리의 하동광산을 비롯하여 사평리·서황리 등지에 광산이 있다. 교통은 2번 국도가 면의 중앙을 동서로 지나가며 사방으로 지방도와 군도가 연결된다.

문화유적은 직전리의 이명산에 이명사석불사지와 이명산마애석조여래좌상이 있고 절터도 남아 있다. 각종 사기그릇이 흩어져 있고 옥정리에는 3·1운동 때의 독립운동가 이홍식(李弘植)의 묘가 있다. 서황리·화정리에는 김해김씨 동족마을이 있다.

직전(稙田)·방화(芳華)·사평(沙坪)·옥정(玉亭)·서황(西黃)·화정(花亭) 등 6개 리가 있다.

  1. 악양면(岳陽面)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이다. 면적은 52.64㎢이고, 인구는 3,883명(2015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정서리이다. 본래 악양현으로 1702년(숙종 28)에 하동군 악양면이 되어 미점·축지·신덕 등 1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화개면의 봉대·하평·평사 등 7개 리와 덕양면의 상개치(上開峙)·하개치의 2개 이를 병합하여 14개 리로 개편되었다.

해발 600m 이상의 높은 산지가 대부분으로 동쪽에 칠성봉(七星峰, 899m), 서쪽에 형제봉·신성봉, 북쪽에 시리봉 등이 솟아 있다. 면의 중앙 계곡에 악양천이 북에서 남서쪽으로 흐르며 농경지를 형성한다. 특히 하류지역에 넓은 평야를 이루면서 섬진강으로 흘러들고 있다.

농업이 주산업이며 농작물로는 쌀을 비롯하여 보리·잡곡 등과 참깨·마늘 등이 생산되고, 축산업으로 한우·돼지·닭 등이 사육된다. 대나무가 많이 생산되어 죽제품으로 농가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교통은 19번 국도가 면의 남부를 지나고 지방도와 군도가 악양천을 따라 개설되어 있다. 문화유적은 평사리에 고소성이 있는데, 성벽은 둘레 약 800m, 높이 3.5∼4.5m, 두께는 밑이 6m, 위가 2m인 사다리꼴의 단면을 한 견고하게 쌓은 석성으로 남북에 두 개의 성문터가 남아 있다.

동정호는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침공했을 때 이 호수를 보고 중국 악양의 동정호와 닮았다 하여 명하였다 한다. 그밖에 신흥리에 신흥사지, 정서리에는 가야사람이 쌓았다고 하는 다사성(多沙城)과 석조여래좌상이 있다. 축지리에는 도기념물로 지정된 소나무가 있으며, 정동리에는 전주이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정서(亭西)·미점(美店)·축지(丑只)·신대(新垈)·신성(新星)·신흥(新興)·중대(中大)·등촌(登村)·매계(梅溪)·정동(亭東)·입석(立石)·봉대(鳳臺)·평사(平沙)·동매(東梅) 등 14개 리가 있다.

  1. 양보면(良甫面)

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면이다. 면적은 34.41㎢, 인구는 2,109명(2015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운암리이다. 본래 하동군 지역으로서 서량곡면(西良谷面)이라 하여 통정·신청(新靑)·박달 등 14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외횡포면(外橫浦面)의 상서(上西)·상동(上東)·감당(甘棠) 등 12개 리와 내횡포면(內橫浦面)의 구여동 일부를 병합하여 서량곡과 외횡포의 이름을 따서 양보면이라 하면서 7개 리로 개편되었다. 서쪽에 정안산, 동쪽에 이명산 등 사방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으며 계곡의 물이 구릉지대 사이를 흘러서 좁은 농경지를 이루고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이며, 그밖에 채소와 잡곡 등이 생산되고 산간지대에서는 밤이 많이 산출된다. 특산물인 참다래와 밤호박이 일본으로 수출되고 있다. 경사지에서는 한우·닭·산양 등을 사육한다.

문화유적은 운암리에 지석묘와 운암영당 고운선생 영정이 있다. 장암리의 정안산 산정에는 산성이 있는데 고려 무신정권 때의 지방토호였던 정안(鄭晏)의 거점이었다고 하며, 서쪽은 횡천강이 흐르고 사방이 험준한 절벽으로 천연의 요새를 이루고 있다.

또한, 박달리에는 학방사(鶴放寺)터와 성치산성(城峙山城)이 남아 있으며 통정리에 정재백(鄭在伯)의 묘가 있다. 운암리에 김해김씨, 박달리에 진양정씨(晉陽鄭氏)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통은 1003번 지방도가 남북으로 지나가고 군도가 면내를 연결하나 불편한 편이다. 운암(雲巖)·장암(長巖)·감당(甘棠)·우복(愚伏)·통정(桶井)·박달(朴達)·지례(知禮) 등 7개 리가 있다.

  1. 옥종면(玉宗面)

군의 북동부에 위치한 면이다. 면적은 87.82㎢이고, 인구는 4,609명(2015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청룡리이다. 본래 진주군 지역으로서 운곡면(雲谷面)이라 하여 병천·원해(遠海)·가덕(加德) 등 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0년에 하동군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북평면(北坪面)의 대동(大洞)·추동(秋洞)·법대 등 7개 리와 정수면(正水面)의 정수·동곡(桐谷)의 2개 리를 병합하면서 옥산의 동쪽이 되므로 옥동면이라 하고 7개 리로 개편되었다. 1933년에 가종면(加宗面)의 전역을 병합하여 옥동과 가종의 이름을 따서 옥종면이 되었다.

면의 북서부는 높은 산지지역으로 우방산·정개산(鼎蓋山, 520m)·사림산(士林山, 574m)·월봉산(月峰山, 349m)·옥산(614m) 등이 솟아 있다. 동남부지역은 덕천강이 산청군과 동쪽 경계를 이루며 흐르는데 유역에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다.

농업이 주산업이며 주요 농산물로 쌀을 비롯하여 콩·보리 등의 식량작물과 고추·배추·무·참깨 등의 특용작물이 생산된다. 도자기 원료인 고령토가 많이 채굴되는데 양구리·두양리·안계리·월횡리 등지에 광산이 있다.

문화유적은 정수리의 옥산서원, 두양리의 두방재와 두양리 은행나무가 있고, 문암리에서 정수리·대곡리에 이르는 평야와 낮은 구릉 일대는 선사시대의 즐문토기·무문토기 등이 출토되는 유적지가 산재하였다. 북방리에 있는 고성산성은 동학혁명 때 동학군의 거점이었으며, 정개산에도 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밖에 안계리에 종천서원(宗川書院), 양구리에 하한정(夏寒亭)이 있다. 북방리에는 진양정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통은 1005번과 1014번 지방도가 각 면으로 연결된다. 2003년에 청암면 궁항(弓項)·위태(葦台)·회신(檜信) 등 3개리를 편입하여 청룡(靑龍)·두양(斗陽)·종화(宗化)·안계(安溪)·문암(文巖)·월횡(月橫)·병천(屛川)·법대(法大)·양구(良邱)·대곡(大谷)·북방(北芳)·정수(正水) 등 15개 리가 있다.

  1. 적량면(赤良面)

군의 서부에 위치한 면이다. 면적은 41.71㎢이고, 인구는 2,253명(2015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관리이다. 본래 진주군 지역으로서 1702년(숙종 28)에 하동군에 편입되어 상삼동(上三東)·중삼동(中三東)·동점(銅店) 등 17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팔조면(八助面)의 상여(上汝)·하여(下汝)·강선(降仙)·석교(石橋)·고절의 5개 리를 병합하여 6개 리로 개편되었다.

북쪽에 칠성봉(七星峰, 899m), 서쪽에 구재봉·분지봉 등 높은 산들이 있으며 동남부는 북서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횡천강과 합류하여 남동쪽으로 흐르며 농경지를 형성하고 있다. 농업이 주산업이며 주요 농산물로는 쌀을 비롯하여 보리·콩 등의 식량작물과 고추·마늘·참깨 등의 특용작물이 생산된다. 또 산지에서는 밤이 많이 생산되며 경사지에서는 한우·산양 등의 사육이 활발하다.

문화유적은 동산리에 지석묘가 있으며 동리에는 정인지의 묘소가 있다. 고절리에는 김해김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통은 2번 국도가 면의 남부를 지나고 지방도가 나 있으나 불편한 편이다. 관(館)·서(西)·동(東)·우계(牛溪)·동산(東山)·고절(高節) 등 6개 리가 있다.

  1. 진교면(辰橋面)

군의 동부에 위치한 면이다. 면적은 49.92㎢이고, 인구는 6,870명(2015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진교리이다. 본래 하동군 지역으로서 하동 읍내 동쪽이 되므로 동면(東面)이라 하여 월운·갑정(甲井)·구영(九永) 등 1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고현면(古懸面)의 안심동(安心洞)과 곤양군 금양면(金陽面)의 진교동 일부를 병합하여 월운·관곡·고리 등 6개 리로 개편되었다. 그 뒤 진교리가 번창함에 따라 1918년에 진교면으로 고쳤다. 1933년에 금양면의 고룡·양포·안심 등 3개 리를 편입하였다. 1963년에는 9개 리로 개편되었고, 1989년에는 금남면 술상리가 편입되어 10개 리가 되었다.

진교라는 명칭은 진교리 하평(下坪)마을에 있는 ‘민다리’에서 유래되었다. 옛날 이 곳에 용이 숨어 살아 동네사람들이 다리를 놓았으나 비만 오면 떠내려가므로 이를 딱하게 여긴 도승이 금오산에서 부부바위를 밀고 와서 다리를 놓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북부에 이명산, 남부에 금오산이 솟아 있으나 북쪽에서 발원한 관곡천(冠谷川)이 남동쪽으로 흘러 하류에 넓은 상평평야(上坪平野)를 형성하고 있다. 평야지대를 중심으로 농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주요 농작물은 쌀이다. 그밖에 채소·고구마 등이 생산되고 한우와 닭의 사육도 활발하다. 고급 도자기의 원료인 고령토와 유리의 원료인 규사가 채굴된다.

남해고속도로가 면의 중앙을 동서로 지나간다. 교통은 1002번과 1003번 지방도와 군도가 사방으로 연결되어 편리하다. 문화유적은 진교리에서 마제석기가 출토되었고 삼층석탑이 있다. 또, 고리리에는 대흥사(大興寺) 절터가 남아 있고 백련리에는 조선 초기에 도자기를 굽던 도요지가 있다. 진교리에는 김해김씨 동족마을이 있다.

진교(辰橋)·양포(良浦)·백련(白蓮)·안심(安心)·월운(月雲)·송원(松院)·고리(古梨)·관곡(冠谷)·고룡(古龍)·술상(述上) 등 10개 리가 있다.

  1. 청암면(靑巖面)

군의 북서부에 위치한 면이다. 면적은 75.63㎢이고, 인구는 1,738명(2015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평촌리이다. 본래 진주군 지역으로서 푸른 바위가 많아 청암면이라 하였으며 1906년 하동군에 편입되어 묵계·상리·답동(沓洞)·중리 등 13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8개 리로 개편되었다. 1998년에 위태출장소가 폐지되었다.

북쪽에 삼신봉·주산, 서쪽에 시리봉·칠성봉, 남쪽에 갈미봉(397m) 등 높고 험준한 산들이 있는 산악지대이다. 묵계리에서 발원한 횡천강이 서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면서 계곡에 좁은 농경지를 형성하고 있다. 농업이 주산업으로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콩 등의 식량작물과 마늘·배추·무 등 특용작물이 생산되고 산지에서는 약재·밤이 많이 생산된다. 교통은 1003번과 1014번 지방도가 횡천강을 따라 지나간다.

문화유적은 궁항리의 유물 포함층에서 마제석기들이 출토되었으며, 중리리에 금남사·목은 이색선생 영정, 그리고 경순왕을 추모하기 위한 경천묘가 있어 매년 2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상리리에 있는 면 지정 보호수인 백일홍이 있다. 수령 250년, 높이 15m, 둘레 3m로 개천에 용이 두 마리 살았는데 승천 후 그 자리에 두 그루의 백일홍 나무가 솟아났다는 전설이 있으며 주변에 용이 기어다닌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밖에 묵계리에 묵계사·회남사(回南寺)·내원사(內院寺) 등의 사찰이 있다. 묵계리의 청학동마을은 주민들 모두 독특한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에 일명 도인촌으로 불린다. 중리리에는 김해김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평촌(坪村)·명호(明湖)·중리(中梨)·상리(上梨)·묵계(默溪) 등 5개 리가 있다.

  1. 화개면(花開面)

군의 북부에 위치한 면이다. 면적은 134.38㎢이고, 인구는 3,476명(2015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탑리이다. 본래 하동군 지역으로서 화개면이라 하여 부춘(富春)·신기(新基)·검두(儉頭)·영당(影堂) 등 39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봉대(鳳臺)·대촌(臺村)·하평(下平)·평사(平沙) 등의 리가 악양면에 편입되면서 14개 리로 개편되었다.

면의 북부는 지리산국립공원에 속한다. 북쪽에 영신봉·칠선봉(七仙峰, 1,576m)·덕평봉·형제봉·명선봉·토끼봉(1,534m), 동쪽에 삼신봉, 서쪽에 통꼭봉 등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험준한 산악지대이다. 북부에서 발원한 화개천이 중앙부를 관류하여 계곡 부근에 좁은 농경지를 형성하면서 남쪽의 섬진강으로 흐른다.

주요 산업은 농업으로 쌀·보리·콩 등이 소량 생산되고 마늘·참깨 등과 약재·밤·산나물 등이 생산된다. 산지에서 산양·한우 등이 사육되며, 차의 시배지로 작설차가 유명하다.

문화유적은 운수리의 쌍계사가 있는데 경내에는 대웅전·팔상전·명부전·적묵당·설선원·금강문·천왕문·일주문 등의 건조물을 비롯하여 진감선사대공탑비·석등·부도·마애불, 그리고 신라시대 고승 육조대사(六祖大師) 혜능(慧能)의 두골을 안치한 육조정상탑전(六祖頂相塔殿) 등 많은 불교문화재가 있다.

섬진강에서 화개천을 따라 반야봉까지 약 20㎞의 화개계곡은 신라 이후 지리산 남쪽의 불교 중심지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쌍계사까지 약 6㎞의 계곡 길은 길 양쪽의 벚나무가 끝까지 늘어서서 봄철의 장관은 말할 것도 없고 사시사철 물과 나무와 기암이 어우러져 수려한 풍치를 이룬다.

반야봉 중간 기슭에는 칠불사가 있는데 신라 효공왕 때 담공선사(曇空禪師)가 세운 절로서 승방인 아자방은 이중 온돌방으로 1,000년이 넘도록 한 번도 개수한 일이 없고 한 번 불을 때면 60일간 온기를 유지했다고 하나 6·25 때 불타고 말았다. 그밖에 덕은리에 덕은사·금천사, 탑리에 삼층석탑, 운수리에 청학루·팔영루가 있다. 덕은리에는 김해김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통은 19번 국도가 섬진강을 따라 지나가며, 1023번 지방도가 화개천을 따라 개설되어 있다. 탑(塔)·부춘(富春)·덕은(德隱)·삼신(三神)·정금(井琴)·운수(雲樹)·용강(龍岡)·범왕(凡旺)·대성(大成) 등 9개 리가 있다.

  1. 횡천면(橫川面)

군의 중앙부에 위치한 면이다. 면적은 34.49㎢이고, 인구는 2,078명(2015년 기준)이다. 면 소재지는 횡천리이다. 본래 하동군 지역으로서 내횡포면(內橫浦面)이라 하여, 죽전(竹田)·수월(水月)·토덕(土德) 등 25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적량면과 청암면의 일부를 병합하여 7개 리로 개편되었으며, 1916년에 횡천강의 이름을 따서 횡천면으로 개칭되었다.

서쪽에 갈미봉, 남쪽에 정암산 등 대체로 해발 300m 이상의 높은 산지에 둘러싸여 있다. 청암면에서 발원한 횡천강이 북서쪽에서 흘러 들어와 면의 중앙을 관류하며 소규모의 농경지를 형성하고 남쪽의 섬진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농업이 주산업이며 주요 농산물로는 쌀·보리·콩 등의 식량작물과 참깨·마늘 등의 특용작물 및 밤·약재가 생산되며, 경사지에서 한우·돼지·닭 등이 사육된다.

문화유적은 월평리에서 마제석검·마제석촉 등이 출토되었고 남산리에는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고분군이 있다. 또, 남산리에는 고려 말 왜구의 침입 때 격전이 벌어져 수천 명이 전사하였다는 원동산성(院洞山城)이 있다. 전대리와 학리에 김해김씨의 동족마을이 있다.

교통은 2번 국도가 면의 남쪽을 지나고 59번 국도가 옥종면과 연결된다. 횡천(橫川)·전대(田垈)·애치(艾峙)·여의(如意)·월평(月坪)·남산(南山)·학(鶴) 등 7개 리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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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대동지지(大東地志),』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하동통계연보』(하동군, 2013)
『지방행정구역요람』(행정자치부, 2000)
『하동군지』(하동군지편찬위원회, 1992)
『한국관광자원총람』(한국관광공사, 1985)
『한국지지』(건설부국립지리원, 1985)
『내고장전통가꾸기』(하동군, 1983)
『한국지명요람』(건설부국립지리원, 1983)
『경상남도지』(경상남도지편찬위원회, 1978)
『신증하동군지』(하동군지편찬위원회, 1972)
하동군(www.hadong.go.kr)
집필자
이성학·김덕현·박경원·김무조·정삼득·김성언·여증동·이희열·오건환·최덕주·반용부·김동호·김기혁|배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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