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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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물품 하역
수입물품 하역
산업
개념
화물수송 과정에서 짐을 싣고 내리는 일체의 운반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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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화물수송 과정에서 짐을 싣고 내리는 일체의 운반활동.
내용

하역은 철도·화물자동차·항공기 등의 화물에 대한 육운과 선박의 화물에 대한 해운으로 나눌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의 하역은 거의 인력에 의존하는 작업이었으나, 전후에는 각종 하역기계 및 컨테이너 등 기기 개발에 따른 하역 체제의 합리화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해운하역에서는 여전히 인력의존도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편, 지난 날 하역합리화는 개별하역작업의 기계화·능률화에 두었으나, 지금은 화물을 일정 표준적인 중량 또는 용적으로 미리 정리·통합하여 그것을 일관되게 기계력으로 하역·수송하는 유닛로드시스템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역은 운송의 연계작업 중에서 행하여지는 특수한 용역생산 형태의 하나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하역업이 국민경제에 미치는 비중의 중대성과 업무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법으로 사업자와 사업내용 등을 규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철도의 경우에는 <철도소운송업법>에 따라서 대통령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건설교통부장관의 면허를 받은 자가 물품의 철도차량에의 적재 또는 화차하역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철도의 경우 소운송업자가 하역업자의 법적인 명칭이다.

한편, 육운과 해운의 교차지점인 항만에서 행하여지는 항만하역업은 <항만운송사업법>에 의하여 설립과 경영이 규제받고 있다. 이 법에 따르면 항만운송사업을 항만하역사업·검수사업·감정사업 및 검량사업의 네 종류로 구분하여, 이를 영위하고자 하는 자는 해양수산부장관의 면허를 얻도록 함으로써 항만운송에 있어서의 질서와 항만운송사업의 발전 및 공공복리를 증진하고자 하고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기능면에서 볼 때 하역은 해운의 초기 형태인 견사해운(遣使海運)이나 조운(漕運)의 경우에 있어왔으나, 이것은 해운의 보조적 수단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우리 나라에서 하역이 교통용역생산의 주체로서 기능적으로 분리되고 이를 업으로 하는 하역업자가 처음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1876년(고종 13) 2월 강화도조약에 따른 부산항의 개항에서 비롯되었다.

그 뒤 1880년의 원산항 개항, 1883년의 인천항 개항은 봉건사회 조선이 국제사회로의 등장을 의미함과 동시에 일본식민지자본의 유입을 가능하게 한 문호의 개방이었다. 여기에서 일제는 식민지 수탈을 위한 기초로서 근대적 토지제도와 화폐제도의 확립에 착수하였고, 철도·도로·항만 등 사회간접자본의 창설에 노력하였다.

일제강점 후 항만확충은 계속 시행되었고, 중국대륙 침략전쟁이 점차로 확대됨에 따라 병참전초적 필요성에서 항만설비의 확충은 계속적으로 추진되었다. 항만이 항만으로서의 기능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방책으로서 해운과 하역의 분화가 불가피하게 되었다.

자본주의 이전인 조선봉건사회의 연안해운 위주의 항만에서 하역작업을 전담하였던 주체는 객주(客主)였다. 그러나 이러한 객주는 하역을 전업으로 하였던 하역업자는 아니었고, 다만 상업부문 중에서의 객주가 타업종과 더불어 겸업하고 있었다.

이때 하역은 십장(什長)이라 불리고 있는 조두(組頭)가 담군(擔軍)을 중심으로 하여 수요에 응하였다. 오늘날 항만운송사업에 있어서도 이러한 십장제도가 그대로 존속하여 노무공급권을 가진 항운노동조합의 하부조직인 각 항만마다 분회장을 중심으로 한 연락원에 의하여 노무공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항만하역의 경우 자본주의의 도입에 의하여 항만하역의 주체가 항만운송사업이라고 하는 기업형태를 갖추고 있다고 하나, 경영에 있어서의 이러한 특이점은 항만하역이 가지는 용역생산객체의 특이성에서 연유한다.

즉, 항만하역은 상시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선박의 기항에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하역량의 기복이 대단히 심하다. 따라서 항만운송사업은 상용근로자를 유지할 수 없다. 여기에서 노무공급을 노동조합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긴다.

한편, 육운의 경우에도 하역의 형태는 항만하역의 경우와 비슷하다. 우리 나라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이 1889년에 개통된 뒤 처음에는 철도회사가 하물운송업무 전반을 전담하였다.

그러나 1905년 을사조약 강제체결 이후 일제상품의 유입과 우리 나라 농산물 수출의 증대에 따라 철도회사의 능력만으로는 하물의 집배를 감당해낼 수 없어 일반업자에게 소운송업을 영업하게 함으로써 육운하역의 기능적 분화가 이루어졌다.

이렇게 출발한 하역업계에서 1980년대까지 노무공급은 해운과 육운으로 구분되어 이루어졌다. 그것은 하역노무공급권을 전유하고 있는 노동조합이 부두노동조합과 운수노동조합으로 나뉘어 있었던 점에서도 명백하여진다.

물론 하역형태에 있어 항만과 육운의 경우 상이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부터 우리 나라에도 서서히 닥쳐오기 시작한 일관수송체계(一貫輸送體系)라고 하는 유통혁신으로 하역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물량의 대량수송을 위한 선박의 대형화·전용화에 따라 하역도 기계화되었으며, 하역이 종래의 육체노동에서 기계화된 전문적 지식노동형태로 변화하게 되었다. 또한 육운과 해운의 명백한 작업관할구분도 애매하여졌다. 이런 결과로 노동조합도 항운노동조합으로 통합 개편되었다.

특히, 국제화 속에서 무역입국을 지향하고 있는 우리 나라의 경우에 있어서는 이러한 세계적인 추세에 민감하게 대응하여 항만하역 능력을 높이기 위한 개발을 추진하였다. 육운에 있어서도 철도화물 수송능력과 하역능력의 꾸준한 발전을 위한 투자가 병행되고 있다. 더욱이 20세기 말부터 전개된 지식정보화시대를 맞아 전자상거래가 활발해 지면서 이제 물류의 흐름에 중핵을 맡은 하역도 새로운 전기에 도래하였다.

즉, 과거에는 제조업 중심의 경제 패턴이었지만 이제는 서비스업의 비중이 점점 높아져 가고 있다. 이에 따라 유통산업의 중요성이 커져가면서 이제 물류업은 괄목할 만한 변신을 하고 있다.

독특한 서비스의 유통업체가 등장하는가 하면 외국계 유통업체의 국내 진출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한편으로 전자상거래가 발전하면서 물류의 중요성과 물류인에대한 인식도 새롭게 인식되고 있다.

더욱이 21세기 새롭게 전개될 세계화에 대비, 한반도 종단철도(TSR)와 러시와 연결되는 시베리아 횡단철도(TKR) 등의 건설도 예상하면서 현재 전개되는 서비스와 정보산업의 발전을 종합적으로 총합, 분석하는 총체적 시스템의 물류비젼을 점진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할 것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조선운송주식회사 10년사』(조선운송주식회사, 1940)
『대한통운사』(대한통운사편찬위원회, 1967)
『한국해운항만사』(해운항만청,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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