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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약학
개념
우리나라에서 발달된 고대 의약이 중국 · 일본 등 한자문화권 지역의 의약과 교류되면서 연구, 전승되어 온 학문. 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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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우리나라에서 발달된 고대 의약이 중국 · 일본 등 한자문화권 지역의 의약과 교류되면서 연구, 전승되어 온 학문. 의학.
내용

고대 중국의 통치자로 전해지는 황제(黃帝)가 그의 천사(天師)인 기백(岐伯)·귀유구(鬼臾區) 등과 더불어 인간의 수명·생식·섭생·생리·병리·질병·치료법 등의 원리를 문답한 것을 기록한 ≪황제내경 黃帝內經≫과 역시 고대 중국의 통치자로 전해지는 신농(神農)이 자연계의 식물·동물·광물 들을 직접 맛을 보아 하루에 70가지 독(毒)을 만나면서 그 성질·기미(氣味)·효능을 밝혀낸 것을 기록한 ≪신농본초경 神農本草經≫이라는 고전의약서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 두 원전(原典)은 저자나 저술연대가 분명하지 않으며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에 방사(方士)들이 당시 전해지고 있는 의약 지식들을 모아서 황제·신농 등의 전설적인 통치자들의 권위를 가탁(假託)하여 저술한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그 뒤 후한시대에 이르러 장중경(張仲景)이 ≪상한론 傷寒論≫과 ≪금궤요략 金匱要略≫을 저술하여 비로소 실용적인 임상치료서가 나왔고, 황보 밀(皇甫謐)이 ≪침구갑을경 鍼灸甲乙經≫을 저술하여 새로이 침구치료법이 개발되었으며, 도홍경(陶弘景)이 ≪본초경 本草經≫을 저술하여 비로소 체계적인 약물학서가 나왔다.

고대로부터 동양문화의 뿌리가 되어온 음양설(陰陽說)과 오행설(五行說)을 근본으로 한의학의 원리도 이루어졌다. 음양설이란 인간을 포함한 자연계의 삼라만상을 음과 양의 상대성(相對性)·상보성(相補性)·상련성(相聯性) 등의 원리로 관찰, 추리하는 학설이다. 예를 들면 하늘과 땅, 불과 물, 낮과 밤, 동(動)과 정(靜), 남과 여 등으로 상대, 비유하여 관찰하는 것이다.

따라서 움직이고, 빛나고, 덥고, 올라가고, 퍼지고, 늘어나는 것들은 양성현상(陽性現象)이라 하며, 정체하고, 어둡고, 차고[冷], 내려가고, 줄어들고, 가라앉는 것들은 음성현상(陰性現象)이라 한다. 한 단위의 사상(事象)을 태극(太極)이라 하고, 이 태극은 음현상과 양현상이 조화·융합·통일된 상태로서 유지되며, 인체도 바로 음과 양의 조화·융합·통일된 한 태극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오행설이란 역시 자연계의 삼라만상을 오류군(五類群)인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의 다섯 무리로 유추하여 이 5개 군의 서로간의 생(生)하고 극(克)하는 관계에 따라 만물의 조율과 질서가 유지되고, 이로써 자연의 삼라만상이 생멸(生滅), 진화, 발전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체 내의 모든 장기(臟器)도 이 5개 군으로 유추하여 서로간의 생과 극하는 질서와 조율에 따라 삶을 영위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인간의 질병이란 체내의 음과 양의 부조화와 오행군의 괴리상태를 뜻하는 것이고, 또 진찰이란 바로 질병의 증후들을 관찰하여 음양 또는 오행의 부조화상태의 정도를 파악하는 것이며, 따라서 치료는 약물·침·뜸 그 밖의 여러 방법으로 인체의 부조화상태인 음양과 오행현상을 조화, 정상이 되도록 바로잡아 주는 것이 된다.

(1) 조선시대 이전

중국의 고대의학이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은 고조선 이후 한사군시대부터이다. 특히 낙랑군이 중국과 밀접하게 문화교류를 함으로써 의학도 낙랑군을 통하여 고구려·백제·신라의 순으로 전파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이미 원시의약(原始醫藥)이 발달되어 있었으며, ≪황제내경≫ 안에 “폄석침술(砭石鍼術)이 동방(東方)에서 전래하다”라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조선시대부터 돌침술과 뼈침술 등이 발달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우리 나라에는 좋은 약재들이 많이 생산되어 ≪본초경≫에 우리 나라에서 나는 약물들의 효능이 실려 있고 이 약물들을 이용한 치료처방도 기록되어 있다. 이 밖에 일본의 ≪의심방 醫心方≫이라는 의서에는 ≪신라법사방 新羅法師方≫·≪백제신집방 百濟新集方≫ 등 우리나라 의약처방들을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은 물론 일본에까지 우리나라 의약이 전파되었음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고대의학은 주로 민간 경험을 통한 약방의학(藥方醫學)이 발달되어 왔다. 삼국시대에는 ≪고구려노사방 高句麗老師方≫·≪백제신집방≫·≪신라법사방≫ 등의 처방서가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제중입효방 濟衆立効方≫·≪향약구급방 鄕藥救急方≫·≪동인경험방 東人經驗方≫ 등의 방서(方書)가 있었다. 여기에서의 의학 논리들은 주로 중국에서 들어온 한의서에 따른 그 의론(醫論)들이 그대로 전습되고 있었다.

(2) 조선시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종전과 달리 독자적인 의약학 수립을 위해 연구,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세종의 명에 의하여 노중례(盧重禮)·박윤덕(朴允德) 등이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쳐 전해 오는 국내의 모든 의약방서와 민간 경험방들을 수집해서 당시 중국에서 통용되던 의학논리에 맞추어서 3년에 걸쳐 85권의 ≪향약집성방 鄕藥集成方≫을 편찬하였다.

여기에는 당시 우리나라 궁중이나 민간에서 널리 쓰이던 경험처방 1만 706방과 침·뜸법 1,476법이 실려 있는데, 우리나라 의약서로서는 가장 뚜렷한 현존 의서이다. 세종은 ≪향약집성방≫에 만족하지 않고 당시의 모든 의학지식을 한데 모아 우리나라 의학 발달의 기틀을 삼고자, 유성원(柳誠源)·전순의(全循義) 등 16인에게 명하여 국내의 의약서는 물론 중국의 의서 153종과 멀리 인도의 불교 의서까지 섭렵하여 3년에 걸쳐서 ≪의방유취 醫方類聚≫ 266권을 완성해 놓았다.

≪의방유취≫는 당시 통용되던 의약서의 모든 이론과 약방들을 한데 모아 이를 총론과 병증별(病證別)로 분류하여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체계로 유취, 편집한 것이다. 분류 종목이 80부문이나 되며 세종목(細種目)은 총 1만여 항목에 달하는 방대한 의서로서, 당시의 한의학술의 전모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미 ≪향약집성방≫과 ≪의방유취≫의 편찬으로 국내 의약방과 중국의 의학이론을 망라하여 우리나라의 독자적인 의학연구의 기틀이 잡히게 되자 이에서 더 발전하여 이것을 우리 한민족의 민족의학으로 승화시킬 필요가 생겼다. 그리하여 1596년(선조 29) 선조의 명에 따라 양예수(楊禮壽)·허준(許浚) 등이 내의원(內醫院)에 편찬국을 설치하고 동방최고, 최량의 의학서인 ≪동의보감≫을 편찬하기에 이르른다.

≪동의보감≫ 서문에 선조가 허준 등 편찬자들에게 분부한 “요즘 중국에서 들어오는 의학서들을 보면 모두가 대수롭지 않고 오히려 호번(浩繁: 넓고 크고 번다함) 하여서 기준할 만한 것이 없다.…… 고대로부터 전해온 약방이라 할지라도 번잡하고 실용성이 적은 것은 버리고 정갈한 것만 모아서 정연하게 집성하라. 이로써 궁벽한 촌이나 서민들로 하여금 질병의 고통과 비명의 횡액을 면하게 하고, 우리 나라에서 산출되는 많은 약재들을 하나하나 재심, 분류하여 우리 백성들이 의료에 대한 지식을 쉽게 체득할 수 있도록 하라”는 내용이 있다.

이와 같이 ≪동의보감≫의 편찬은 그 뜻이 우리 민족에 적합한 의약을 연구, 개발하는 데 있었음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동의보감≫은 그 뒤 10여 년에 걸쳐서 드디어 허준에 의하여 전체 25권이 완성되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역시 민족의학적인 체재로 우리 실정에 맞게 질병을 분류하고 이에 따른 실용 처방들을 배열해 놓았다.

또한 민간에서 통속적으로 응용할 수 있는 침·뜸·안마·도인(導引)까지 조사하여 실었으며, 우리나라 산야에서 나는 약재의 채취법·제약법은 물론 약재의 이름을 한글로 적어 서민들이 채취, 이용하기에 편하도록 하였다. 이와 같이 ≪동의보감≫의 완성으로 비로소 우리 민족의학의 수립이 실현되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중국과 일본에도 ≪동의보감≫이 전파되어 우리나라 의학의 우수성을 널리 선양했다.

멀리 고조선시대부터 돌침[砭針]·뼈침[骨針]술이 발달되었던 우리 나라는 중국대륙과 교류하여 중국의 침구술을 발전시키기도 하였고, 또한 중국의 침구술이 우리 나라에 전파되어 성행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침구술도 조선시대에 와서는 우리나라 독자적으로 연구를 진행하여 여러 가지 새로운 치료술이 개발되었다.

선조 때의 허임(許任)은 자신의 침술경험을 토대로 하여 자침수기(刺針手技)에 따른 새로운 보사법(補瀉法)을 연구해냈고, 인조 때의 이형익(李馨益)은 장기간의 실기연구(實技硏究)로 번침법(燔針法: 일종의 불침)을 개발하여 임금에게서 높은 벼슬을 받기도 하였다. 또한, 사암도인(舍岩道人)은 오행침법(五行鍼法)이라는 독특한 경락(經絡) 침술을 개발하였는데, 이 침법은 현재 일본에서 경락치료법이라 하여 널리 응용되고 있는 침법이다.

조선 말기, 즉 서양문물이 들어오기 시작된 1900년 전후의 우리나라의 한의학은 침략세력인 일본의 말살정책과 또한 과학적으로 다듬어진 새로운 서양의학의 유입으로 말미암아 점차로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퇴조의 기운 속에서도 이 전통민족의학을 연구하여 새로운 학설을 천명한 위대한 의학자가 있었으니 바로 사상체질의학을 발명한 이제마(李濟馬)이다.

이제마는 자신이 연구한 체질의학설을 천명하기 위하여 1893년(고종 30) 저술 시작 2년 만에 ≪동의수세보원 東醫壽世保元≫ 3권을 써 놓고, 그 뒤 7년에 걸쳐서 이 체질의 학설을 직접 증명해보기 위하여 전국을 순회하며 1만여 명의 사람들을 접진(接診)하여 그 실증을 얻었다고 한다[표].

[표] 사상체질분류

체질 분류 태 양 인 태 음 인 소 음 인 소 양 인
장기의 강약 폐 강대, 간 약소 폐 약소, 간 강대 비 약소, 신 강대 비 강대, 신 약소
용모의 특징 뒤통수가 발달하고
체구가 단정함.
얼굴이 둥굴거나 타원 형이고 몸의발육이 좋 음. 몸이 앞으로 굽고 기골이 작고 뼈가 굵은 편임. 상체가 발달하고 아래는 가늘며 눈 매가 예리함.
품성과 기질 단정 강직하고 자존 심이 강하며 의욕적 임. 의젓 신중하고 믿음 직하며 욕심이 많고통이 큼. 내성적이고 치밀하 며 소극적이고 온 순함. 활발하고 사교적이 며 민첩하고 명쾌 함.
잘 걸 리 는
질 병
눈병·소화불량·각 기병 천식·중풍·심장병· 치질·변비 급만성위장병·냉 증·배앓이·우울 증 급만성신장병·요 통·성기능장애· 정신병
좋 은 음 식 다래·앵두·포도· 조개·메밀·모과 쇠고기·콩·도라지· 율무 닭고기·양고기· 당근·양배추·인 삼 돼지고기·해삼· 녹두·참외·구기 자
적합한 직업 발명가·연구인 실업가,정치인,단체의
대표자,지도자
종교가·교육자· 학자·노력가 상업인,외교가,군인
체 질 상 의
단 점
독전적이며 비타협적 이어서 주위와 잘 어 울리지 않음. 욕심이 많고 음흉하기 도 하며 겁쟁이일 수 도 있음. 강자앞에서 비겁해 지기 쉽고 꽁생원 이며 소극적임. 경박하고 화를 잘 내며 표변적이고 침착하지못함.

사상체질학설은 사람의 체질을 태음인(太陰人)·태양인(太陽人)·소음인(少陰人)·소양인(少陽人)의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는데, 이 체질은 태어날 때부터 장기(臟器)의 대소와 기능의 강약에 따라 결정되며, 일생 동안 변하지 않고 삶의 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자신의 체질에 따라 성격·거동·식성·심리·능률·환경적응 등에 차이가 있고, 그러므로 사람마다 그 체질에 따라 거처·음식·환경·직업 등에 적정을 기해야 하며, 같은 질병이라도 체질에 따라 치료법과 약의 효능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체질학설은 개개인의 보건·영양·생활섭생·예방의학에까지 적용되며, 따라서 독특한 체질생리학과 체질병리학을 성립하게 하였다. 이제마의 이러한 체질학설은 서양의학의 혈액형분류법 또는 체형분류법보다 먼저 천명된 것으로, 체질의학 개발의 효시이며 우리나라 의학의 자랑이라 할 수 있다. 1900년 전반기 일제통치하에서의 한의학은 일제의 정책적 배제 때문에 극도로 쇠퇴하여 그 잔명을 유지해 오는 데 그쳤다.

(3) 광복 이후

1945년 광복 후에 비로소 소생의 기운을 맞이하여 1952년 한의사제도의 도입과 한의과대학의 설립 등으로 학술연구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에는 한의학의 전반적인 내용을 정리, 대학 교과서 편찬에 착수하여 결실을 보았고, 1970년대에는 마침 중국 한의학이 미국에 소개되면서 일어난 한의학의 국제적 확산에 편승하여 서울에서 세계학술대회를 개최하는 등, 우리나라 한의학이 국제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제 한의학은 점차 세계의학으로 확산되고 있으며, 서구 여러 나라에서도 이 의학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추세는 결과적으로 동서의학(東西醫學)의 비교연구와 나아가서는 동서의학의 자연적인 접합을 이룰 것이며, 새로운 제3의학의 탄생을 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추세에서 볼 때 그 동안 이 의학을 민족의학으로 키워온 우리나라로서는 하루바삐 국가적인 연구기관을 설립하여 한의학을 국가 차원에서 현대화하고 국제화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참고문헌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의방유취(醫方類聚)』
『동의보감(東醫寶鑑)』
『동의수세보원(東醫壽世保元)』
『한의약서고』(김신근,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7)
『한국의학사』(김두종, 탐구당, 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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