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흥본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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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본궁
함흥본궁
건축
유적
북한 함경남도 함흥시 사포구역에 있는 조선전기 제1대 태조 이성계 관련 궁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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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북한 함경남도 함흥시 사포구역에 있는 조선전기 제1대 태조 이성계 관련 궁궐.
내용

정전의 정면 5칸(15m), 측면 3칸(9.15m)의 합각지붕건물로, 이성계(李成桂)가 왕이 된 뒤 자기 조상들이 살던 집터에 새로 집을 짓고, 거기에 4대조상들의 신주를 차려놓고 제사를 지내게 하던 곳이다.

그리고 왕의 자리에서 물러난 다음에는 이 건물을 본궁이라 부르며 여기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이 건물은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고, 1610년(광해군 2)에 개수하여 17세기 말경에 다시 지었으며, 6·25사변 때 일부가 파괴되었으나, 전후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하여 대부분이 복구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정전과 이성계 조상들의 위패를 두었던 이안전(移安殿), 누각인 풍패루(豊沛樓) 등이다. 정전은 5포식 두공(枓栱)에 겹처마의 합각지붕을 얹었다.

앞 면에서 두번째 기둥 줄에는 칸마다 문을 달고 그 앞에 툇마루를 놓고 난간을 돌렸으며, 툇마루 기둥 위에는 두공을 올렸는데 기둥 위에 서로 다른 크기의 첨차를 3개 겹쳐 놓았다. 정전의 천장은 대들보의 높이에 소란반자를 낮게 대어 방안이 아늑하도록 하였으며, 모두 단청을 입혀 장엄하면서도 아담하다.

이안전은 정면이 3칸, 측면이 3칸에 단익공 겹처마집이며, 정면 가운데칸에는 4개의 세살문을 달고 양 옆칸에는 외닫이문을 달아 중심을 강조하였고, 모두 단청을 아름답게 입혔다.

안삼문 바깥 동남쪽에는 2층다락인 풍패루가 서 있는데, 정면이 3칸(9.3m), 측면 2칸(6.9m)이며 2익공식 두공을 얹은 겹처마합각지붕이다. 2층다락 둘레에는 난간을 돌렸으며, 풍패루가 그 앞에 인공적으로 만든 연못에 그림자를 드리운 모습은 그림과 같이 아름답다.

그 전에는 중심축에서 서쪽으로 전사청(典祀廳 : 제사에 쓰는 물건들을 보관하던 곳)과 재실(齋室 : 제사를 준비하는 방) 등 부속건물들이 더 있었다고 한다.

이 궁은 정원도 잘 되어 있는데 외삼문에서 내삼문까지는 약 26m, 내삼문에서 정전까지는 약 60m로서 그 사이에 이루어진 뜰에는 고목이 울창하게 우거져 본궁의 건물들을 깊숙이 감싸주고 있다. 특히, 300여 년을 넘은 반송은 희귀한 천연기념물로 보존되어 오고 있다.

함흥본궁과 관련하여 ‘함흥차사(咸興差使)’라는 말이 있는데, 1398년(태조 7) 권좌를 둘째 아들[定宗]에게 물려주고 함흥본궁에 내려와 살던 이성계가 형과 동생들을 죽이고 권좌에 오른 방원[太宗]에 대한 분풀이로 그가 보낸 사신을 모조리 죽여 버린 데서 ‘심부름을 가서 돌아오지 않거나 아무 소식이 없는 사람’을 일컫게 되었다. 조선시대의 건축술과 정원술을 보여 주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참고문헌

『북한의 자연지리와 사적』(통일원, 1994)
집필자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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