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공암(孔巖: 서울특별시 양천구). 초명은 허평(許評). 첨의중찬(僉議中贊) 허공(許珙)의 아들이다.
1279년(충렬왕 5) 김방경(金方慶)의 아들 김흔(金欣) 등 의관자제(衣冠子弟) 25명 중의 한 사람으로 뚤루게[禿魯花: 볼모]가 되어 대방공 왕징(帶方公 王澂)을 따라 원나라에 갔으며, 1286년(충렬왕 12) 궁전배장군(弓箭陪將軍)으로서 낭장(郎將) 김심(金深)·설지충(薛之忠)·왕유소(王維紹) 등 9명과 원나라에 갔다.
또, 1291년(충렬왕 17) 장군으로서 상장군 유비(柳庇)와 함께 원나라에 가서 세자의 환국을 요청하였다. 1297년(충렬왕 23)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가 되고, 1307년(충렬왕 33)에는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로 승진하였다.
충선왕이 즉위하여 관제를 개혁하자 민조상서(民曹尙書)가 되었고, 이후 동지밀직사사 판봉상시사 동지자정원사(同知密直司事判奉常寺事同知資政院事)를 거쳐 1310년(충선왕 2) 양천군(陽川君)으로 봉해지고, 이어 검교정승(檢校政丞)에 제수되었다. 시호는 양숙(良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