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 출신. 양민의 신분으로 무과에 급제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경상우도의 병마절도사 민영(閔泳)의 막하로 종군하여 척후장(斥候將)이 되었다.
광주(廣州) 쌍령(雙嶺)의 경안교(慶安橋)에서 청병(淸兵)을 만나 7, 8명을 죽이고, 이튿날 적의 대규모 공격에 대항하여 군사를 이끌고 싸워 격퇴시켜 그 용맹을 떨쳐 허장군(許將軍)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이러한 군공(軍功)으로 훈련원첨정을 지내고, 남해현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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