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임극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후기 회령부사, 함경도남병사, 오위도총부부총관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인수(仁叟)
이칭
허불(許佛)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796년(정조 20)
본관
양천(陽川)
주요 관직
김해부사|나주토포사(羅州討捕使)|전라좌수사|내금위장
정의
조선후기 회령부사, 함경도남병사, 오위도총부부총관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인수(仁叟). 할아버지는 수군절도사 허정(許晶)이며, 아버지는 허성(許聖)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조현명(趙顯命)의 추천으로 선전관에 오른 뒤, 1770년(영조 46) 영종진방어사(永宗鎭防禦使)·황해도수군절도사를 거쳐 여주목사가 되었다.

이 때 선정을 베풀어 고을 백성들로부터 그 청덕(淸德)에 대한 칭송이 자자하였으나 환곡미(還穀米)를 남김없이 지급하였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1776년 재기용되어 정주목사로 있을 때 흉년을 당하였는데, “내가 차라리 조정에 죄를 지을지언정 차마 백성들이 죽어가는 것을 볼 수 없다.” 하고 환곡을 모두 풀어 구제한 까닭에 다시 파직당하였다.

그 뒤 김해부사·장단부사·나주토포사(羅州討捕使)·전라좌수사·내금위장 등을 역임한 뒤, 1789년(정조 13) 신설된 장진부를 맡아 개척사업에 공을 세웠다.

이후 회령부사·함경도남병사를 지낸 다음 1795년 금위중군(禁衛中軍)·오위도총부부총관으로 있다가 이듬해 병사하였다.

지방관으로 있을 때 백성을 애호함이 두텁고 죄인을 다룸에 있어서도 함부로 하는 예가 없어 주민들로부터 ‘허불(許佛)’이라 불렸으며 40여년 관직에 있었지만 재물에 뜻이 없어 죽은 뒤 장례를 치르기 어려울 만큼 청빈하였다 한다.

참고문헌

『이계집(耳溪集)』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