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영섭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나아갈 길』, 『신생 조선의 출발』 등을 저술한 작가. 친일반민족행위자.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6년 12월 29일
사망 연도
미상
출생지
서울
정의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나아갈 길』, 『신생 조선의 출발』 등을 저술한 작가. 친일반민족행위자.
개설

1906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현영남(玄永男)이었으나, 1931년 현영섭(玄永燮)으로 개명했다. 아마노 미치오[天野道夫], 히라노 히데오[平野永男], 쿠도 히데오[工藤永男]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했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25년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듬해 경성제국대학 예과에 입학해 1928년 수료했으며, 같은 해 동대학 법문학부 문학과에 입학해 1931년 졸업했다. 졸업 후 무정부주의자가 되어 중국·일본에서 남화한인청년연맹(南華韓人靑年聯盟) 조직원으로 활동했다.

1935년 11월 일본에서 활동하다가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이듬 해 5월 석방되며 전향했다. 1936년 『조선급만주(朝鮮及滿洲)』 9월호에 실린 「정치론의 한 토막」이라는 글에서 조선어 폐지, 조선인 생활의 일본화, 내선(內鮮) 결혼 등을 주장했으며, 이후 각종 글과 강연을 통해 ‘내선일체(內鮮一體)’를 일관되게 강조했다. 1937년 1월 녹기연맹(綠旗聯盟)에 가입해 편집국 서기 겸 녹기연구소 연구원이 되었고, 8월 녹기연맹 이사를 맡았다.

1937년 9월 『북지사변과 조선(北支事變と朝鮮)』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 책의 내용은 일본의 중국 침략 정당성과 중일전쟁 이후 내선일체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조선총독부가 지원해 수만 부가 배포되기도 했다. 1938년 1월에는 내선일체에 대한 이론을 체계화 하고 조선인의 나갈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조선인의 나아갈 길(朝鮮人の進むべき道)』을 출간했다. 1939년에는 “내선일체를 위해서는 언어· 풍속까지도 일체가 필요하다”며 조선어 폐지와 일본어 상용을 주장하는 내용의 『신생 조선의 출발(新生朝鮮の出發)』을 출간했다. 1940년 1월 내선일체실천사의 이사를 맡아 기관지인 『내선일체』에 여러 편의 친일 논설을 발표했다. 1940년 12월 김동환·이광수 등과 함께 황도학회를 결성하고 이사가 되었으며, 1941년 10월 황도사상 보급 등을 내걸고 조직된 정학회(正學會)에도 참여했다. 1943년 9월에는 국민총력조선연맹 연성부 촉탁에 임명되어 활동하기도 했다. 해방 직후 일본으로 도피해 주일 미국대사관에서 근무했으며, 1949년 8월 반민특위에 의해 반민족행위자로 불구속 송치되었다.

2009년 11월 27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에서 발표한 일제강점기 말기 친일반민족행위 관련자 중 문화 부문 학술 명단에 포함되었다.

참고문헌

『친일인명사전』3(민족문제연구소, 2009)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보고서』Ⅳ-19(2009)
『민족정기의 심판』(1949)
『친일파 군상』(1948)
『애국대연설집(愛國大演說集)』(1940)
『신시대』2(1941.2)『총동원』2-1(1940.1)
『녹기(綠旗)』2-1∼5-1(1937.1∼1940.1)
『동양지광(東洋之光)』7(1939.7)
『신생 조선의 출발(新生朝鮮の出發)』(현영섭, 1939)
『조선인의 나아갈 길(朝鮮人の進むべき道)』(현영섭, 1938)
『조선급만주(朝鮮及滿洲)』346(1936.9)
『특고외사월보(特高外事月報)』(1935.12)
『조선총독부관보』
집필자
김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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