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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익철(玄益哲)

근대사인물

 일제강점기 통의부 위원장, 조선혁명당 중앙책임비서, 상해임시정부 군사학편수위원회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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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일제강점기 통의부 위원장, 조선혁명당 중앙책임비서, 상해임시정부 군사학편수위원회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키워드
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호는 묵관(默觀). 평안북도 박천 출신이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후 만주로 망명, 재만동포의 자치기관이며 독립운동단체인 한족회(韓族會)에 가입하였다.
1920년 동지들과 관전현 향호구(寬甸縣香沪溝)에서 광한단(光韓團)을 조직하고, 일제의 주구기관 파괴와 밀정 숙청에 진력하였다. 1921년 일본경찰에 붙잡혀 3년간 복역한 뒤 다시 만주로 탈출하였다.
1924년 통의부(統義府)에 참여하여 위원장에 임명되었고, 1926년 길림에서 고려혁명당(高麗革命黨)을 결성하였다. 1927년 여러 단체를 통합하여 국민부(國民府)를 조직하고, 중앙집행위원장에 추대되었다.
1929년 국민부 내에 조선혁명당(朝鮮革命黨)을 조직하였다. 그러나 1930년 당간부들이 일본군에 의해 사살 또는 체포되는 불운이 겹치자, 당조직을 개선하고 중앙책임비서가 되어 당업무를 총괄하며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1931년 외교교섭차 봉천(奉天)에 갔다가 일본경찰에 붙잡혀 신의주지방법원에서 7년형을 선고받았다. 신의주형무소에서 복역중 병보석되자 일본경찰의 감시를 피하여 재차 만주로 탈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1937년 일제가 중일전쟁을 도발하고 본격적인 대륙침략 전쟁을 일으키자, 한국독립당·한국국민당·조선혁명당 등의 3개 단체와 하와이·멕시코 등지에서 조직된 6개 한인단체와 연관하여 한국광복진선(韓國光復陣線)을 결성, 항일전선을 재정비하였다.
1938년 일본군의 중국 침략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충칭[重慶]으로 이전하자, 한국광복진선도 충칭으로 옮겨 임시정부를 후원하며 항일투쟁을 계속하였다. 같은 해 임시정부 군무부 산하에 군사학편수위원회(軍事學編修委員會) 위원으로 임명되어 조성환(曺成煥)·유동열(柳東說)·지청천(池靑天)·김학규(金學奎) 등과 함께 활동하였다.
그리고 이해 5월 창사[長沙]에서 김구(金九)·지청천·유동열 등과 회합하고 있을 때, 전 조선혁명당 간부로 일본경찰과 내통하고 있던 이운환(李雲煥)에게 저격당하여 현장에서 죽었다. 이 사건이 독립운동사상 가장 치욕적인 창사사변[長沙事變]이다. 임시정부에서는 수십 년간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 노력한 업적을 찬양하여 국장으로 장례식을 거행하였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상훈과 추모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신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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