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은 비록 무생물적인 물질로 되어 있지만, 흙이 구성하는 환경은 흙과 더불어 생활하고 있는 숱한 종류의 생물들과 더불어 하나의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예컨대, 수많은 종류의 토양미생물·토양소동물, 그리고 식물의 뿌리가 이른바 흙의 생활권에서 토양생태계를 이루며 에너지의 흐름과 물질순환의 차원에서 개체수준 이상의 거시적인 생명현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토양생태계의 생명현상이란 바로 흙의 생활권이 가지고 있는 기능을 말하는데, 그것은 이른바 흙과 그곳에 서식하는 생물의 협력작용으로 수행되는 생물지화학적 작용(生物地化學的作用), 청소작용(淸掃作用), 질소교정작용(質素矯正作用), 각종 영양소의 저장작용 및 생물학적 평형의 유지 등이 그 기능의 전부이다. 흙과 생물이 구성하는 토양생태계에서 생물이 없는 흙의 세계는 그러한 기능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흙의 오염이란 흙과 생물이 구성하는 토양생태계에서 토양생물의 사멸과 흙의 작은 입자에 미치는 물리화학적 변성을 초래함으로써, 위와 같은 토양생태계의 기능을 상실하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흙이 중심이 되는 토양생태계를 오염시키는 오염원으로서 흙의 환경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살균제·살충제이다.
또, 각종 산업시설에서 흘러나오는 중금속을 함유한 폐수가 농업용수를 통하여 흙으로 퇴적되는 경우와, 역시 산업시설의 굴뚝 또는 교통기관의 배기가스에서 누출된 아황산가스 및 질소화합물이 공기 중에서 산성비의 형태로 토양을 흠뻑 적심으로써 흙을 산성화시키는 것도 그 예의 하나이다.
그밖에 분해되기 어려운 고형물질의 쓰레기, 수은전지의 폐기물도 도시 및 인구의 성장과 함께 오염원으로 무시하지 못하는 요인의 하나가 되고 있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지구환경에서 볼 때 국소적이기는 하나 에너지 개발이라는 필요성 때문에 원자력 발전이 날로 증가하므로, 예기하지 못한 폭발사고나 빈번한 방사능 물질의 누출이 흙의 오염원으로 추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의 폭발사고는 흙의 생태적 기능뿐만 아니라 인간의 주거환경에도 오랫동안 위협적인 오염원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이상에서 열거한 흙의 오염원은 대략 다섯 가지로 대별할 수 있는데, 그 하나하나의 오염원이 흙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살펴본다.
① 살충제·제초제·살균제 : 일반적으로 농약이라 불리는 이러한 화학적 물질들이 생산이 기대되는 흙의 생태계에 유입되는 필요성에 대하여서는 누구나 알고 있고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확실하게도 그러한 농약을 사용하면 흙의 생태계에서 기대되는 생산성을 5배 이상 식량생산의 형태로 증가시킬 수 있고, 또한 녹색혁명(green revolution)을 통하여 입증된 바 있다.
농약은 흙의 터전에서 수행되는 영농의 수단에서는 획기적인 효과가 있었지만, 흙에 잔류하는 유기인제·유기염소제·유기수은제 등과 같은 강력한 농약은 흙에서 분해되지 않고 장기간 잔류하면서 그 독성을 흙의 생태계에서 발휘하고 있음이 문제로 남게 된다.
흙에 오염된 농약이 먹이사슬을 통하여 결국 인체에까지 도달된다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토양미생물을 치사시킴으로써 흙의 생태계는 무생물적 요소인 물질만 남게 되어 그 기능을 상실한다.
흙에 서식하는 질소고정균의 죽음은 질소고정의 부재를 뜻하며, 흙을 비옥화시키려고 퇴비를 공급하여도 유기물은 분해균이 없는 까닭에 부숙(腐熟)하지 않아 비료가 되지 않는다. 또한, 흙의 생산기능에 중요한 구실을 하는 지렁이를 비롯한 원생동물(原生動物)까지도 죽여 버림으로써 흙의 생태계는 극도로 약화되는 것이다.
현재 사용 중인 농약은 116개 품목에 200여종 이상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농약에 저항성을 가지게 되는 해로운 생물이 출현하는 까닭에, 이 방면에 종사하는 이들에 의하여 좀더 독성이 높고 오랫동안 자연계에 잔류할 수 있는 농약이 개발되고 있다. 따라서, 농약이 흙에 오염되는 정도는 인구의 증가와 함께 점차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② 산업폐수 : 인간이 요구하는 재화의 종류가 늘어가는 만큼 산업시설 또한 다양하고 수적으로 급증하고 있다. 각종 산업시설에서 폐수의 형태로 배출되는 물은 여러 가지 성분을 함유하고 있지만, 흙의 생태계에 오염원이 되는 중요한 성분은 수은·납·비소·카드뮴·아연 및 계면활성제(界面活性劑)가 함유되어 있는 경우이다. 이러한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 폐수가 농업용수의 이용과정에서 흙에 농축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중금속 따위는 그 자체가 독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토양생태계의 생물들에게 급성 또는 만성의 영향을 끼치게 되므로 흙의 생태계를 약화시킨다.
미세한 흙의 입자는 독성이 있건 없건 많은 종류의 무기물을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이 있으므로 이 저장되어 있는 각종 성분―중금속을 포함한―을 생산자에게 공급하게 되고, 결국은 먹고 먹히는 연쇄과정을 통하여 사람의 몸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생물의 몸 안에 섭취된 중금속은 쉽게 생체 밖으로 배출되지 않기 때문에 그야말로 난처한 오염원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 흙은 중금속의 간접적인 공급원 구실을 하는 셈이다.
흙에 사는 토양세균의 어떤 것은 수은과 같이 물에 녹지 않는 물체를 메틸화작용(methylation)으로 물에 녹는 형태로 바꾸어줌으로써, 지하수의 형태로 스며들어 상수도오염의 길이 되기도 한다. 중금속으로 오염된 흙의 생태계는 반영구적으로 기능을 잃는 셈이다. 한편, 가정하수에서 유래된 계면활성제도 토양생물의 죽음 또는 약화를 초래한다는 보고가 있다.
③ 산성비 : 산성비는 일반적으로 발전소에서 석탄·기름·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의 연소에서 나오는 아황산가스·산화질소에 의해서, 각종 산업시설의 공정과정에서, 또는 교통기관의 내연기관에서 배출되는 가스들이 공기 중에 존재하다가 햇빛에너지에 의하여 묽은 황산과 질산이 되어 비의 형태로 내리는 것이다. 고도로 공업화된 일부지역에서는 염산도 함유되어 흙을 적신다. 생태학적으로 산성비는 pH 5.5 이하의 비를 의미한다.
최근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Christian Science Moniter』지에 발표된 세계의 산성비 분포를 소개하면 스웨덴과 미국의 동북부가 4.0, 일본이 4.5, 미국의 동부와 노르웨이 및 남미대륙의 북부가 4.8∼4.9, 미국의 중부와 아시아 및 아프리카가 6.0, 한국이 5.0이었다.
산성비가 흙을 적시면 흙의 생태계는 산성화되는 것은 분명하다. 산성화가 되면 흙의 작은 알갱이는 각종의 무기 및 유기영양소의 저장기능을 상실한다. 즉, 흙의 생태계에 존재하는 각종 영양소는 생물에게 이용되는 기회가 적어지고 반면 소멸될 기회만 많아진다.
따라서, 흙의 입자는 조밀하게 결합되어 딱딱한 흙이 되고, 이곳에 서식하는 생물들은 호흡이 곤란하게 되어 생산성도 떨어지고 생물지화학적 작용과 질소고정능력도 떨어진다. 무기 및 유기영양소의 소멸은 물론이고 중금속의 오염 정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어 중금속이 지하수오염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산성화된 흙의 생태계는 생물계의 평형을 깨게 된다. 일반적으로 산성의 조건을 좋아하는 곰팡이무리가 극도로 번성하게 되어 흙에 근거를 둔 식물에 병원균으로 작용하여 식물이 병드는 경우가 많아지게 된다.
반면, 대부분의 세균은 산성조건에서 생활력이 약화되므로 세균에 의한 질소고정 물질분해, 영양소의 순환과정이 극도로 약화되어 흙의 생태계는 병든 상태에서 숨만 쉬고 살아가는 셈이 된다.
④ 고형폐기물 : 가정 및 산업시설의 쓰레기는 과거와는 달리 점차 분해되기 어려운 물질과 수은전지와 같은 독성폐기물의 함유비율이 높아진다는 사실과 함께 폐기량도 인구증가에 비례하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쓰레기 처리방법도 주로 흙에 묻어 버리는 방법을 취하고 있으므로 이는 분명히 무시 못할 흙의 오염원이라 할 수 있다.
흙에 묻힌 쓰레기는 비록 오랜 시간이 경과하여도 흙의 입자가 되지 못하는 고분자물질, 영양원이 되지 못하는 물질이 대부분이므로 매몰된 최초의 형태로 잔류하여 흙의 생태적 기능은 가지지 못한다.
현재의 쓰레기더미와 같은 환경에서는 토양생물의 균형있는 번식과 기능을 기대할 수 없으며, 흙의 생태계라기보다는 오직 무생물적인 물질의 축적을 의미하는 죽음의 토양이며 토지의 변형에 불과한 것이다. 쓰레기로 형성된 땅에서 기대할 만한 것은 오직 위생적으로 불량한 축조물의 확대뿐이다.
⑤ 방사능 물질 : 원자력 물질이 군사적 및 평화적으로 이용된 이후부터 대기·수질 및 흙의 방사능 오염문제는 항상 관심의 표적이었으나 환경학적으로는 대기와 수질계의 그것만이 문제점으로 제기되었다.
그 이유는 공기와 물은 오염원의 확산이 용이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흙은 오염원의 확산이 어려운 불연속적인 매질(媒質)이기 때문에 방사능 물질의 경우 얼마나 농축되어 있는가가 중요시되었다.
이를테면, 원자탄의 시험장, 투하지역, 방사능에 노출된 지역, 생태계의 변화조사는 빈번하였으나 흙의 생태계에 미치는 조사는 사실상 많지 않았다. 그러나 방사능 물질도 흙의 입자에 의하여 저장, 축적되고, 이 축적된 방사능 물질의 물리화학적 성질로 인하여 흙의 생태계에 서식하는 생물군에 생물학적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많은 기초실험의 결과로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방사능 물질이 흙에 축적되면 이는 곧 흙의 생산체제에 도입되므로 무의미한 생산일 수밖에 없으며, 인간의 주거환경과도 관계없는 ‘격리된 땅’일 수밖에 없다.
또한, 방사능 물질이 높은 수준으로 흙에 오염되면 토양미생물의 치사에 이르기도 하며,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원폭 세례를 받고 살아남은 인간집단의 비정상적인 활동처럼 흙의 생태계에서의 구실도 비기능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