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토 작업
객토 작업
과학기술
개념
땅거죽의 바위가 분해되어 이루어진 무기물과 동식물에서 생긴 유기물이 섞여서 이루어진 물질을 가리키는 과학용어.
내용 요약

흙은 땅거죽의 바위가 분해되어 이루어진 무기물과 동식물에서 생긴 유기물이 섞여서 이루어진 물질을 가리키는 과학용어이다. 역사시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경 사회에서 흙은 만물을 생장시키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 건축의 재료이자 토기 등 필요한 물품의 재료였고 사람이 살다가 되돌아갈 거처였던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삶에서 신앙의 대상으로 승화되거나 고향의 상징이 되기도 했다. 지금도 인간 식생활 재료의 주된 원천인 땅은 산업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산성비, 화학 비료, 살충제 등으로 오염되어 신음하는 역설적인 상황을 맞고 있다.

정의
땅거죽의 바위가 분해되어 이루어진 무기물과 동식물에서 생긴 유기물이 섞여서 이루어진 물질을 가리키는 과학용어.
개설

토양학적으로는 이러한 정의는 흙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는 하지만 완벽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흙의 근원은 원천적으로 화성암이 비, 바람 및 생물학적 작용으로 일컬어지는 풍화작용으로 분해된 물질이 주가 되고, 여기에 물과 공기가 침투되어 흙의 성분을 이루는 것이다.

흙의 작은 입자에 결합되어 있는 물은 물에 용해된 가스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염류를 함유하고 있는 까닭에, 흙은 토양학적 측면에서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고 이해하는 것이다.

첫째는 암석의 분해 또는 암석 이외 물질의 분해에서 생겨난 광물질(mineral matter)인데, 이것은 결정구조나 산화물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둘째는 화석시대에서부터 생물에서 유래된 성분으로 간주하는 탄산석회와 인산화합물 및 비교적 환경요인에 영향을 덜 받는 유기물이 그것이다.

셋째는 시간적으로 볼 때 최근에 토양에 첨가된 식물과 미생물의 잔존물체를 들 수 있다.

넷째는 흙의 구성부분으로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는 물, 소위 결합수(bound water)이다.

토양에 존재하는 물은 두 가지의 형태로 존재하는데, 흙의 작은 입자에 결합되어 있는 상태의 결합수와 비교적 물의 이동이 자유롭게 이루어지는 자유수(free water)가 그것이다. 흙의 성분인 물의 형태는 전자인 결합수이며, 후자는 흙의 성분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자유수란 쉽게 말하여 펌프 따위의 인양기구로 퍼올려지는 일반적인 지하수를 생각하면 된다. 결합수는 여러 종류의 가스와 무기염류를 물에 녹아 있는 상태로 보존하는 구실을 한다.

그러므로 흙이란 암석에서 유래된 광물질, 장구한 세월에 걸쳐 생물에서 생겨난 탄산칼슘·인산화합물·유기물, 비교적 시간적으로 일천한 생물체의 잔존물, 그리고 결합수가 작은 입자로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한편, 흙과 땅·토지의 상관관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흙이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물질 또는 생물체의 분해물과 물로써 된 작은 알갱이의 집합체인 반면, ‘땅’이라는 낱말은 다분히 개념적인 뜻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즉, 하늘[天]과 대립된 뜻의 온갖 사물이 존재한다는 의미와, 일반적으로 경제성과 생산의 터전을 의미하는 소유관계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흙과 땅은 흙의 존재와 구성을, 그리고 인간의 경제적 소유성을 다분히 내포하는 상호관계가 있는 셈이다. 한편, 토지라는 어휘는 일정한 구획을 가진 땅거죽 부분과 법률에서 정한 한도 안의 땅속을 생산, 특히 농업생산의 요소가 되는 특질로서 이르는 말로, 사법상 소유권의 대상이 되는 땅의 부분적 구획을 말한다.

흙의 이용

우리 민족은 일찍부터 원시적 농경(農耕)으로 토지와 인연을 맺어온 민족이다. 식물의성장·결실이라는 자연의 변화과정을 인간의 힘과 책임으로 재현하는 농경생활은, 식물 그 자체나 식물의 계절적 순환 또는 식물을 만들어내는 대지(흙) 등을 둘러싸고 곡령관(穀靈觀), 죽음과 재생관, 지모신관(地母神觀), 기타 여러 가지의 주술적·종교적 관념이나 관습·행사 등을 발생하게 하였다.

유목민족 등과 달리 농경민족에게 흙과 땅은 먹을 것을 제공하는 단순한 농경지로만 인식된 것이 아니다. 그들에게 흙과 땅은 태어난 곳이자 되돌아가야 할 숙명적인 근원지였다. 즉 흙을 일구고 그 흙 속에 식물을 키워 양식을 장만하며, 흙을 이겨 지은 집에서 삶을 살아온 그들에게는 흙과 땅이 가장 크고 유일한 은혜적 존재이고 안식처였다.

설혹 홍수·혹한·가뭄 등 혹심한 자연의 횡포를 겪어 때로는 헐벗고 굶주리며 살아가게 되어도 그들은 그들을 태어나게 하고 생활의 터전을 주고 또 마지막에는 다시 돌아가야 할 흙과 땅을 순박함과 참됨으로 버리지 않았으며, 인간적인 삶의 아픔을 흙과 땅에 호소하며 살아 왔다.

이러한 생각들이 절실한 삶 속에 승화되어 흙과 땅을 수호신적인 존재, 은혜적인 존재,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는 계기를 낳았다. 우리 민족에게 흙이란 현실적으로 농토·농민생활·경제·재산, 그리고 소유를 의미하였다. 경제활동의 중심이자 생활의 터전이며, 생명이 달려 있는 곳이 흙이고 땅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까닭에 한치의 땅을 더 얻는다는 것은 곧 재물과 복을 얻는 일이며, 한치의 땅을 잃는다는 것은 삶의 한 부분을, 생명의 한쪽을 잃어버리는 것을 뜻하였다. 비옥하며 넓고 좋은 땅에 대한 희구는 현세적인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세에까지도 연장하려는 집착이 어느 민족보다 강하였다.

농업적 측면

농사에서 흙을 이용하는 것은 논·밭·과수원·목초지 등의 경작지로 쓸 때이다. 경작을 좌우하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흙과 관계가 되는 것은 토양이다.

토양은 광물성입자와 물·공기·유기물(有機物)로 이루어진다. 이것을 토양의 삼상계(三相系)라고 한다. 작물재배에 적합한 토양의 삼상 분포는 광물성입자, 즉 고상(固相)이 45%, 유기물이 5%, 물과 공기가 각각 25% 정도씩 섞여 있는 것이 좋다.

또 토양구조상 일차적 토양입자(土壤粒子)만을 단립구조(單粒構造)라 하는데, 이 단립에 미생물·검(gum)·점토·산화철·유기탄소 등의 접착물질이 한데 뭉쳐서 입단(粒團)을 구성한다.

토양구조가 단립이냐 혹은 입단이냐에 따라서 흙 속의 통기나 통수성이 달라진다. 농경지의 토양은 입단을 형성시켜야 한다. 입단구조를 유지하려고 갈아두기나 유기물질의 투여, 석회질 투여 등의 방법을 쓴다.

토양의 화학적·이학적·미생물학적인 여러 성질이 종합된 것을 지력(地力)이라 하는데, 식물양분량(植物養分量)의 많고 적음으로 표시되며 양분량이 많은 토양일수록 지력이 높다.

적절한 토양구조와 지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경작지는 지속적으로 흙갈이·객토(客土)치기 또는 시비(施肥)사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토양의 반응은 식물의 생육에 중대한 영향을 주며, 중성 또는 미알칼리성인 때가 가장 좋고 심한 산성, 심한 알칼리성은 식물에게 좋지 않다.

심한 산성토양을 개량하는 데는 직접 석회를 뿌리거나 퇴구비(堆廐肥)·녹비(綠肥) 등의 유기물을 주며 인산질비료(燐酸質肥料)의 사용이 유효하다. 한편, 알칼리성 토양을 개량하는 데는 복토, 비음식물(庇蔭植物)의 재배, 유황분의 사용으로 알칼리의 중화를 얻고 동시에 퇴구비 등의 유기질비료를 사용한다. 비옥한 경작지를 얻기 위하여 비료를 주게 되는데, 시비는 재배하는 작물에 따라 인위적으로 비료성분을 공급하여주는 것이다.

시비는 토양·기후·작물 등에 따라 다르다. 짚·잡초·낙엽 등을 퇴적하여 부식시킨 비료를 퇴비라고 하며, 퇴비 속에 있는 유기물은 흙 속에서 미생물의 작용으로 변해간다. 퇴비는 흙의 보수성(保水性)을 증가시키며, 흙을 갈기 쉽게 만들고 물리성을 좋게 한다. 그 밖에도 퇴비는 흙의 흡비력(吸肥力)을 증가시키고 화학성 개량에도 도움이 된다.

한편, 경작지의 토층을 개량하고 토지생산성을 높이기 위하여 다른 곳의 흙을 넣어주는 것을 객토치기라 하는데, 객토에는 입토식(入土式)과 적토식(積土式)이 있다.

입토식 객토는 경작지의 토성이 좋지 않을 때 하며, 적토식 객토는 경작토층이 얕을 때 흙을 보충하거나 토지가 낮아서 배수가 불량할 때 지면을 높일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일들이 계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을 농지개량사업이라고 한다.

농지개량은 기본적으로 흙과 물, 그리고 작물의 유기적 관계를 적정하게 유지하도록 하여 생산물의 질과 양을 높이려는 것이 목적이다. 농지개량사업에는 수리사업(水利事業)에 의한 관개와 배수로 적정한 수량의 조절, 개간이나 간척사업에 의한 농경지의 확장, 경지정리에 의한 농토의 생산기반의 정리와 정비, 농로의 설치 등이 포함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1960년대까지는 관개·배수에 중점을 두고 수리사업이 진행되었으며, 1960년대 이후에는 토지개량사업으로 전환하고 수리는 물론 개간·간척·경지정리 등을 망라하게 되었다. 이것이 다시 1970년대에 와서 농지기반에 관한 부분을 농지개량사업이라고 정의하면서, 농토의 개량·개발·보전 및 집단화와 농업의 기계화에 의한 농업생산성 증대를 꾀하게 되고 농촌근대화를 촉진하였다.

기술적·공학적 측면

인류가 1만여년 전 촌락을 이루며 살기 시작한 이래, 생토(生土)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었으므로 모든 대륙에서 집 짓는 데 쓰는 주요건축재료로 삼았다.

오늘날에도 세계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생토에 의존한 흙집에서 살고 있다. 또한, 흙은 집뿐만이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사회의 물리적·정신적 발달을 반영하는 기념물 축조에도 사용되었으며, 세계 도처에 잔존하는 고고학상의 유적들도 거의가 흙으로 세워진 도시들에서 발견되었다.

그뿐 아니라 대부분이 흙으로 축성된 중국의 만리장성(萬里長城)과 같이, 흙의 내구력으로 인해서 도시가 방어된 많은 흔적물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을 볼 때 인류의 창조의욕은 흙이라는 재료를 통하여 풍부하게 표현, 발달되었음을 알 수 있다.

흙의 특성 중에는 열을 차단하는 성질이 있어서 실내의 온도를 조절하는 데 유효하다. 이러한 까닭에 흙을 지혜롭게 쓰면 지역의 기후에 알맞은 집을 얻을 수 있어 쾌적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여러 나라 혹은 여러 지역에서 흙으로 집이나 성곽을 축조한 전통적 기법은 두 가지 방법이 지배적이었다.

첫째는 피세 드 테르(pisé de terre)라는 방법으로, 거푸집 속에 흙을 다져넣은 뒤 굳어지면 거푸집을 들어내는 방법이다.

둘째는 아도브(adobe)인데, 이것은 일정한 형태의 틀로써 흙벽돌을 찍어내어 햇볕에 말린 뒤 벽체나 아치형 반자, 지붕 등을 축조하는 데 사용한 방법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흙벽[土壁]을 축조하는 데 이와 흡사한 두 가지 전통적 기법을 썼다. 하나는 두꺼운 널빤지로 거푸집을 만든 뒤 그 속에 여물이 섞인 반죽된 흙을 넣고 회방아로 찧어가며 키를 높여 가는 방법이고, 또 한가지 방법은 목침만한 크기로 흙벽돌을 만들어 쌓고 안팎으로 매흙질하여 벽을 치는 방법이다. 흙벽에 사용되는 흙은 차진 진흙이 좋으며, 진흙에다 짚·여물이나 지릅대의 껍질을 썰어넣고 이겨서 쓴다.

이렇게 만들어진 벽을 초벽(初壁)이라 하며 흙을 덧바르는 새벽질이 뒤따른다. 새벽질에는 찰흙·멍개흙·석비레·백토(白土) 등의 흙을 쓴다. 여기에 다시 강회[生石灰]를 덧바르기도 하는데 강회·백토·모래를 같은 비율로 섞어서 쓴다. 이것을 삼화토(三華土)라 한다. 이 밖에도 우리 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써온 흙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몇 가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진흙 : 황토(黃土)라고도 한다. 대체로 붉은 기가 짙은 흙이지만 지역에 따라 푸른 기가 있거나 검은 기가 있는 것도 있다. 물을 붓고 이기면 차져서 찐득거리고, 마르면 단단해진다. 토담을 치거나 초벽하는 데, 기와를 잇거나 맞담을 쌓을 때, 구들을 놓거나 거는 데 쓰인다.

② 찰흙 : 기와나 벽돌을 만드는 데 쓰는 흙이다. 화강암 중에서 장석질(長石質)이 풍화에 의하여 분해된 것으로, 지극히 작은 입자로 접착력이 높고 가소성이 풍부하다. 회갈색이나 엷은 회색을 띠며, 옹기를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

③ 멍개 : 매흙질하는 데 쓰는 흙이다. 갯가나 흙탕물이 지나간 자리에 앙금으로 앉는 부드럽고 고운 흙이다.

④ 모래 : 오랜 세월 동안 잘게 부서진 돌부스러기인데, 그것이 있는 위치에 따라 모래흙과 물모래로 나눈다. 모래흙은 80% 이상 모래를 포함한 흙을 말하고, 물모래는 개울이나 바닷가에서 채취한 모래를 말한다. 또 모래는 굵기에 따라 새박모래·세모래와 굵은 왕모래로 나눈다.

⑤ 모래흙 : 부서진 돌의 종류에 따라 백토 또는 석비레라고 한다. 백토는 화강암이 풍화된 모래가 섞인 흙으로 추사라고도 하며, 석비레는 푸석돌이 섞인 흙으로 편마암이 풍화된 것이다. 이 흙을 이겨서 쓰면 굳은 다음 돌처럼 단단하게 되어, 입사기초(立砂基礎)나 흙담·삼화토 등을 만드는 데 쓰인다.

목구조의 한옥에서는 다른 기법을 써서 토벽을 만든다. 한옥에서는 기둥 사이에 외를 얽은 다음 여기에 잘 이긴 흙을 흙손을 써서 바른다. 이 벽을 초벽 또는 새벽이라고 한다. 초벽은 한쪽부터 시작해서 맞벽을 다른 한쪽에 쳐서 마무리짓는다.

이 초벽 위에 다시 흙을 덧바르는 작업을 새벽질한다고도 하고 사벽(砂壁)한다고도 한다. 시골집에서는 사벽 대신에 매흙질을 하는데, 초벽 위에 진흙을 몽당비나 맨손으로 덧바르는 것이다.

흙은 한옥의 지붕에 중요한 재료이다. 지붕에서는 서까래가 바탕이 된다. 이 서까래 위에 산자(橵子)를 엮어 그 위에 흙을 얹는데 이것을 보토라고 한다. 나무가 조금도 드러나보이지 않도록 지붕 전체에 고루 흙을 덮는다.

이때 쓰는 흙은 잘 이긴 진흙이다. 진흙은 질이 좋고 차진 것으로 회방아 찧듯이 짓이겨진 것이 좋다. 빈틈없이 얹으며 다부지게 밟아서 나무 틈새에 흙이 박히도록 하여야 좋다. 이렇게 깐 진흙은 단열과 방수의 구실을 한다.

진흙을 덮은 다음에는 곱게 부스러진 백토나 황조사(黃粗砂)를 그 위에 붓는다. 이 흙은 새흙 또는 새우흙이라고 부르며 메진 백토에 굴린 진흙을 버무려 이긴 흙이다. 이는 처마 부분으로부터 받아 올라가 용마루에 이르며, 이 흙을 받으면서 물매의 곡선을 조성한다. 서까래 밑은 내부에서 제물반자가 되는데 이때 서까래 사이사이에다 앙토(仰土)를 발라 주어 치장한다. 이것을 연등천장이라고 한다.

한옥의 기초는 주로 달구질로 한다. 달구질은 집을 지을 터전의 기반을 일차적으로 견고하게 다지는 작업이다. 달구는 굵은 통나무를 써서 만들거나 큼직한 돌덩이를 다듬어서 만든다. 통나무에 손잡이를 단 것을 나무달구라 하고, 돌덩이에 줄을 매어 만든 것을 돌달구라 한다. 여럿이 구성진 노래에 맞추어서 달구를 올렸다 놓으면 그것이 땅을 내려치면서 단단하게 다진다.

이때 소금물이나 잿물을 뿌려가며 작업하는 수도 있는데, 땅과 맞닿는 나무 부분이 쉽게 썩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기둥이 오는 부분에는 초석(礎石)을 놓거나 입사기초를 형성한다. 입사기초는 사토를 넣어가며 다져서 만든 기초이다.

한편, 흙이 토목에서 이용되는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흙댐(earth dam) : 흙을 사다리꼴로 쌓아올려 만든 댐이다. 흙댐은 댐의 여러 가지 종류 중 토석재료를 써서 축조하는 필댐(fill type dam)에 속하는 댐이다. 우리 나라에서도 오래 전부터 관개용 저수지에 흙댐을 구축하였다.

흙의 성질에 따르면 입자가 고운 것은 물을 통과시키지 않으나 물에 잠기면 허물어지기 쉽고, 입자가 거친 것은 반대로 물은 통과시키지만 안정도가 크다. 따라서 근대식 흙댐은 중앙부에는 점토질 흙을 채우고 겉면에는 거친 흙을 쌓아올려 롤러로 다져서 만든다.

댐의 경사면은 상류 쪽에는 콘크리트나 암석을 써서 물결에 의한 세굴(洗掘)을 막고, 하류 쪽에는 잔디를 심어서 빗물의 침식으로부터 보호한다.

홍수 때 저수지 물이 넘쳐흐르면 붕괴될 우려가 있으므로 커다란 홍수로를 만들어서 조절한다. 흙댐은 시공법에 따라 물다짐흙댐과 반물다짐흙댐으로 나뉜다. 우리 나라에서 대표적인 것은 안동댐과 덕동댐이다.

② 토성(土城) : 성은 적의 습격에 대비하여 주거방어의 형태로 축조된 것이다. 이 성을 흙으로 토축(土築)한 경우 토성이라 하는데, 선사시대의 것은 토루(土壘)라고도 한다. 원래 토축이었던 것도 뒤에 석축으로 개축되어서 남은 유적이 많지 않다.

우리 나라에 유적으로 남은 토성은 백제 초기에 축성된 풍납토성(風納土城)이 있으며, 부소산성(扶蘇山城)도 토축산성으로서 그 둘레가 2,000m나 된다.

고려시대에는 거란과 여진의 침략을 막으려고 압록강구에서 정평(定平)에 이르기까지 천리장성을 축조하였는데, 산정을 이용한 부분은 토축이었다. 개성의 성벽과 서울의 성곽도 처음에는 토축이었으며, 임진강의 파주 적성면(積城面)에 있는 육게토성은 축조 연대가 확실하지 않다.

③ 도로 : 조선시대 및 그 이전의 도로는 대부분이 보행자와 우마·가마가 지나갈 정도의 도로로서, 2∼5m의 너비로 된 좁은 길이었다. 그 명칭도 위치나 크기에 따라 오솔길·논두렁길·골목길·큰길·행길 등으로 불렸으며, 뒤에 새로 크게 뚫은 길을 신작로라고도 하였다. 자연상태의 도로는 토사도인데, 이 토사도도 천연토사도와 사점토도(砂粘土道)가 있다.

예술적 측면

흙은 오랜 세월 동안 인류의 문화발전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어 왔다. 우리의 생활주변에는 흙을 다양하게 가공하여 실용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 많다. 이 중에는 높은 예술적 가치를 지닌 것도 있어서 인류의 문화를 대변해 준다. 토기·토우(土偶)·도기·자기·와전(瓦塼) 등이 그것이다.

① 토기 : 토기가 지니고 있는 중요성은 과거 이를 제작한 종족의 정신적 또는 경제적 변천과정을 자세히 보여 준다는 데 있다. 토기는 깨어지기 쉬운 까닭에 자주 만들어야 하였으므로, 그 당시 사람들의 생활감각을 비교적 있는 그대로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선사시대에서 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유약(釉藥)을 바르지 않은 것을 통틀어 토기라 부르지만, 재료나 제작기술면에서 차이점이 있다.

예를 들어 흙의 성분과 가공방법에 따라 질그릇[土器]·오지그릇[甕器]·사기그릇[磁器]으로 나누어 부르고, 기와도 질기와·오지기와 등으로 구별하고 있다.

질그릇은 신석기시대에 본격적으로 제작되었으며, 농경목축경제시대에는 비축용 기물로서 이용되어 인류문화 발전에 큰 변혁을 가져다주었다. 질그릇은 진흙으로 빚은 그릇으로 잿물을 씌우지 않아 윤기가 없는 것이며, 초기의 것은 흡수력이 크고 심한 것은 물이 새는 경우도 있었다.

오지그릇은 진흙으로 빚어서 초벌 굽고 오짓물을 입혀 구운 것으로 도기(陶器)라고도 한다. 사기그릇은 백토로 만든 그릇으로 높은 온도로 굽고 유약칠을 한 다음 재벌구이를 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700∼850℃ 정도의 온도로 구운 것을 토기(earthen ware)라 하고, 1,100℃ 이상의 온도로 구운 경질의 것을 석기(stone ware)라고도 한다.

토기는 시초에 노천요에서 구웠기 때문에 높은 온도가 아니었다. 고분시대에 들어오면서 등요(登窯)를 사용하여 토기를 만들 수 있어서 회도기술(灰陶技術)을 익혀서 썼다.

토기문화는 무늬가 없는 무문토기문화와 빗살무늬토기[櫛文土器]문화로 대별되는데, 이 밖에도 무늬가 솟은 토기[隆起文土器]와 무늬를 찍은 토기[押捺土器]가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압록강·대동강·한강·낙동강 등의 강 언저리와 동해안에서 선사시대의 토기가 발견되었다. 그밖에 회도기술로 구운 토기가 부산의 김해패총, 마산의 성산패총 같은 데서 발견되어 김해식토기라 부른다.

토기 중 특이한 것은 항아리로 된 관이다. 이 항아리관[甕棺]은 선사시대부터 그 증거가 발견되는데 이것은 흙으로 빚은 토기항아리를 맞물려서 그 속에 시체를 넣은 것으로, 항아리 두 개로 이루어진 것이 대부분이고 때로는 밑이 없는 항아리를 가운데에 끼운 세 개의 항아리로 된 것도 있다.

항아리무덤은 철기시대부터 삼국시대에 이르는 사이에 부여·공주·김해·대구·경주 등과 나주·영암·무안을 중심으로 확산되었으며, 멀리는 평양지역에서도 발견된다. 나주군에서 발견된 것은 단단한 경질토기로 된 큰 항아리무덤으로 시신과 함께 부장품도 같이 묻힌 것이 확인되었다.

② 토우 : 흙으로 만든 인형을 일컫는다. 넓은 의미에서 사람의 형상을 갖춘 것만이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동물이나 생활용구, 그리고 가옥 등 모든 형태를 표현한 것들까지 포함하여 일컫는다. 토우는 장난감으로 만든 경우도 있고, 주술적 우상으로서의 성격을 가진 것, 무덤에 넣는 부장품으로 만든 것 등이 있다. 그 중에서도 주술적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는데, 신에게 바치는 희생용이나 기원과 숭배의 대상으로 쓰인 경우가 많다.

그 밖에도 무덤 속의 부장품으로서나 죽은 자를 위한 봉사자 구실을 하는 토우도 있다. 예를 들어, 출산을 기원하여 상징적으로 여체를 과장되게 만든 것이나 남근(男根)을 크게 나타낸 것도 있다. 우리 나라의 경우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신라시대의 것이 가장 많고 그 모양 역시 다채롭다. 고려시대의 것은 그 예가 거의 없다.

신라토우는 토기항아리나 고배(高坏) 등 용기의 어깨나 목·뚜껑 등에 장식으로 붙은 것이 많다. 토우로 장식된 항아리 등은 인체의 과장된 표현이나 아주 사실적인 성행위의 표현을 통하여 풍요한 생산력을 빌거나 뱀·개구리 등으로 벽사(辟邪)의 뜻을 나타내어 씨앗 등을 저장하는 용기에 달았다. 그밖에 제사용의 술을 빚어 담던 그릇에도 장식으로 쓰였다.

토우는 그리스나 로마에서도 테라코타 형식으로 장난감 또는 애완용으로 사용되었고, 메소포타미아의 신석기유적과 영국의 신석기유적 등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앙소문화시대(仰韶文化時代) 이후 토우가 보인다. 은대(殷代)에 와서는 토우를 토용(土俑)이라 하였다. 일본에서는 조몬시대(繩文時代) 중기 이후 독립된 토우의 출토례가 두드러지며, 야요이시대(彌生時代)에서는 토우가 줄어들고 고분시대(古墳時代)에는 하니와(埴輪)라는 독특한 토우가 출토되었다.

우리 나라 조선시대에는 토우를 도자기로 만들어 무덤에 넣는 경우가 많았다. 이것을 명기(明器)라고 불렀으며, 인물이나 동물을 본뜬 생활용품이 주를 이루었다.

③ 기와 : 흙을 빚어 날기와를 만들 줄 알면서부터는 기와지붕이 생겨났고, 기와를 대량으로 구워 생산하면서 기와집들이 곳곳에 지어질 수 있게 되었다.

옛날에는 기와를 손으로 두드려 만들었는데,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기와를 만드는 데 쓰이는 점토는 사람이 메로 치거나 소에게 밟게 하여 점토 속의 기포가 없어질 때까지 잘 이긴다. 이겨 다져진 흙을 납작한 판자 모양으로 만들어, 슬쩍 거풍(擧風 : 바람을 쐬어 습기를 걸러내는 일)하여 꾸덕꾸덕해질 즈음에 기와틀에 올려 완성한다.

이렇게 하여 완성된 기와를 ‘날디새’라 불렀다. ‘디새’는 기와의 옛말이고 ‘날’은 굽지 않은 생것이라는 의미이다. 기와는 수키와·암키와, 그리고 암수키와에 ‘드림새’를 붙인 막새기와 등으로 구성되어, 이들에 여러 가지 무늬·글자·기록을 새기는 등 장식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으며, 규모가 크고 고급건축일수록 그 꾸밈이 더욱 다채로웠다.

민간신앙적 측면

인간에게 흙과 땅은 절대적 힘을 가진 생존과 삶의 근간이다. 따라서, 인간은 흙을 떠나서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흙과 깊이 친화하고 늘 넓은 땅을 희구하여 왔다. 민속에 나타난 여러 놀이나 행사는 이것이 상징적으로 표출되거나 신앙화되어 인습적으로 전해 내려온 것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삶의 터전인 흙을 대상으로 다양한 놀이를 전개, 발전시켜 왔다. 두꺼비집짓기·땅뺏기놀이·지신(地神)밟기 등의 놀이가 대표적인 예이다.

두꺼비집짓기는 모래터에서 헌 집과 새 집을 바꾸자고 노래하며 모래로 집을 짓는 놀이이다. 땅뺏기놀이는 봉건적 내부 모순의 하나였던 토지에 대한 지배층의 압제를 극복하며 더 넓은 삶의 터전을 쟁취하기 위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이 놀이는 가위바위보를 하여 이길 때마다 손뼘으로 호를 그려가며 자기 땅을 확대하여가는 놀이이다. 이 놀이의 명칭은 곳에 따라 땅재먹기·땅뺏기 등으로 불리고 있다.

지신밟기놀이는 지신을 위로하여 한 해의 풍년·안택(安宅)·무병장수·초복을 빌며 악귀를 몰아내고 착한 신을 불러들이는 놀이이다.

우리 나라 민속놀이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지신밟기놀이도 한 해가 시작되는 정월 초순에서 정월 보름에 이르는 사이에 행하여진다. 한 마을이 한 뜻으로 선두대·농악대·가장행렬을 형성하여 서낭당 앞에서 산주지신풀이를 하고 온 마을을 돌며 지신을 밟는다.

집에는 원래 주인방에 조상신, 마당 복판에 터주신, 대청에 성주신, 부엌에 조왕신, 주부가 거처하는 방에 삼신신, 그밖의 잡신으로 여섯 신이 있는데, 터주신은 이 여섯 신 중의 하나이다.

지신밟기는 집마다 마당놀이를 하고 나서 대청·큰방·부엌·우물·장독·곳간·대문 등을 차례로 돌며 풀이를 한다. 집주인은 이들에게 돈과 음식을 대접하는데, 여기에서 모인 돈은 마을의 공동기금이나 지역사회의 공익사업에 사용되는 것이 통례이다.

이것은 악함을 물리치고 옳은 일을 되새기며 한 마을의 공동관심사를 함께 논의, 결정하는 공동체의식에 바탕을 둔 것이다. 또,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모든 우주만물에 정령과 신이 있다고 믿어 왔으며 흙에 대하여서도 마찬가지였다. 흙과 땅속에는 지신·터주신·지모신이 있어서 우리 인간의 생사·화복·길흉을 좌우한다고 믿어 이들을 섬겼으며, 고수레 같은 행위를 하는 까닭도 이에 연유한다.

상징적 의미

흙에는 정신적인 의미가 있다. 즉, 고향으로서의 땅과 흙이다. 그 땅에서 태어났으며 조상의 피와 땀이 섞인 흙에서 자신의 뿌리와 가치관을 찾는 토착적 생각이 땅과 흙을 고향이라는 생각에 연결시키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태어난 땅과 흙에서 떠날 수 없고 어느 때고 되돌아가야 했다. 또 흙은 물과 더불어 자연의 근간으로, 인생은 흙에서 태어나 흙 속으로 돌아가는 것이 그 행로라 생각하였다. 이것을 환토관(還土觀)이라 한다.

이 모든 생각이 자기가 태어난 땅과 흙에 향수를 가지게 하고 동경의 대상이 되도록 하여 조국이라는 말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따라서, 사람들은 현대에 와서도 잃어버린 흙을 되찾고 자기의 설 땅을 찾으려고 갈등과 고통, 수난의 과정을 겪고 있다.

문명의 발달로 흙에 대한 이러한 사상이 위축되고 비인간적인 도시화·규격화 등의 현상이 점차 깊어짐에 따라 현대인은 역으로 흙과 함께 하는 생활, 흙과의 친화와 교류, 흙으로의 회귀 등을 추구하게 되었다.

또 하늘이 자칫하면 감찰적 사명을 가지고 군림하는 두려운 대상으로서 차갑게 느껴지기 쉬운 것과는 대조적으로, 땅에 뿌리박은 사상에는 서민적인 분위기와 함께 포용적인 온화함을 느끼게 하였다. 하늘의 사상이 지배층의 생활이념의 근본이 된다면, 땅의 사상은 피지배자의 입장에 있는 서민층의 사상이나 신앙을 뒷받침하는 기반이라 할 수 있다.

원시시대 사람들이 처음 흙을 자각하였을 때, 그것은 일종의 수호신적 성격을 띤 것으로 느꼈다. 여기에서 대지를 신앙의 대상으로 섬기는 계기가 생겼다. 이것을 지모신관(地母神觀)이라 한다. 지모는 모든 사물의 영원한 생명적 근원을 의미한다. 모든 것은 그것에서 태어나 그것으로 돌아가며 또 그것 자체이다.

까닭에 흙은 남성적 하늘에 대한 배우자로서의 여성적 대지가 되기도 한다. 즉 땅은 태초에 하늘에 의해 수태하여 천지창조를 하였다. 지모의 사상은 농업적 전통에서 발생하며 농경적인 풍요를 희구하는 데서 태어났고, 흙은 이로써 한층 은혜적인 존재로 인식되어 땅에서 생산되는 곡물과 함께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우리 나라에서는 흙 중에도 황토(黃土, 朱土)가 벽사(辟邪)의 힘이 있다고 믿었다. 때문에 제를 올리는 곳이나 출산을 하였을 때 금줄과 함께 황토를 뿌려놓거나 뭉쳐놓았다. 이렇게 해서 악귀나 부정의 출입을 막았다.

서낭제를 올릴 때 왼새끼 금줄을 둘러치고 황토를 깔아놓는 예도 그런 연유에서이며, 문 앞에 황토를 놓았을 때 들어가면 부정을 탄다고 하였다. 경복궁 앞을 황토현(黃土峴)이라고 이름지은 것도 다분히 그런 뜻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흙이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친화력을 가졌다는 생각은 철저하여서 흙을 밟고 살아야 건강하고 탈없이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흙은 기복(祈福)의 대상이었고 재산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흙을 쓸어버리면 복이 나간다고 여겨서 마당을 쓸 때면 집 안쪽으로 쓸어야 했다.

이 밖에 오행(五行)에서는 생각하는 것이 ‘土’에 속하여, 생각 ‘思’의 한자는 밭 ‘田’ 밑에 마음 ‘心’을 붙인 것으로 마음의 밭을 갈아 다스린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또 음양으로 볼 때 ‘土’는 음이며 오장 배열에서는 비장(脾臟)이 토에 속한다.

그리고 ‘金·木·水·火’에 토기가 없는 데가 없다고 하였다. 우리 민족은 땅속의 세계를 죽음의 세계로 생각하였다. 따라서, 귀신의 혼백이 땅에서 올라온다고 믿었으며, 중생들은 자기가 지은 죄업으로 지하의 감옥인 지옥에 갇혀서 고통을 받게 된다고 여겼다.

흙을 다룬 문학작품

농촌의 자연, 토속적인 성격, 농민의 생활실태 등을 잘 나타낸 흙의 문학으로는 이광수(李光洙)의 <흙>(1932), 이무영(李無影)의 <흙의 노예>(1940)·<흙을 그리는 마음>(1935)·<제1과 제1장>(1939)·<농민>(1954), 박경리(朴景利)의 <토지> 등이 있다.

이광수의 <흙>은 귀농사상(歸農思想)을 주제로 하여 쓴 계몽소설로서, 흙을 소재로 하여 민족의 혼을 간직하지만 가난하고 무식한 농민을 위하여 시혜적인 계몽자·설교자의 자세를 취한 작품이다.

<흙>의 주인공 허숭은 자신의 뿌리를 농촌에서 확인하며, 조상의 피땀이 섞인 흙을 떠나서는 자신의 가치관을 찾을 수 없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다. 그 밖에 성격과 환경이 다른 여러 명의 주변인물들이 결국은 흙을 찾아 농촌으로 돌아오게 된다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시골을 전혀 모르는 정선은 간통사건으로 철도에 투신하여 다리를 잘리고 살여울에 와서 남편을 돕게 되며, 기생인 선희는 도시생활을 청산하고 살여울에 와서 유치원을 짓고 농촌아이들을 위하여 헌신적인 생활을 하게 된다.

갑진은 허숭의 인품에 감화되어 검불랑에 들어가 개간사업에 헌신하며, 허숭은 사회적 지위와 재산·가정을 버리고 단순한 농민 속에서 이상과 참된 인간성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 나무들을 다 찍어내고 나무뿌리를 캐내고 살여울 물을 대느라고 보를 만들고, 그리고 그야말로 피와 땀을 섞어서 갈아놓은 것이다. 그 논에서 나는 쌀을 먹고 숭의 조상과 순의 조상이 대대로 살고 즐기던 곳이다. 순과 숭의 뼈나 살이나 피나 다 이 흙에서, 조상의 피땀 섞인 이 흙에서 움돋고 자라고 피어난 꽃이 아니냐.”라는 본문에서도 소설의 성격과 분위기를 잘 파악할 수 있다.

이무영은 남달리 농토에 애착을 가지고 농촌을 사랑하였던 작가로, 흙을 문학으로 삼고 흙으로 회귀한 농민문학의 선구자이며 농촌에 파묻혀 살면서 이 땅의 농민문학의 광맥을 찾은 성실한 광부였다.

그는 흙을 사랑하고 영락한 농민을 지극히 사랑한 반면 악질적인 지주나 중농을 증오하였다. 아울러 그의 작품도 농촌 삶의 어려움을 표현함으로써 농촌세계의 재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흙의 노예>에서는 농촌의 대중인 소작농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심각한 이야기를 전하여주고 있다. 소작농들이 일제의 식민지통치와 지주의 가혹한 이중착취 속에서 혹사당하는 것을 보고 작가로서 그것을 그대로 넘겨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은 주인공의 아버지가 “찾어, 땅.” 하는 외마디를 남긴 채 숨을 거두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농민>에서는 토호들의 가련한 희생물로서 갖은 수탈과 학대를 당해 온 비천한 농민들이, 동학군의 힘을 빌려 골수에 맺힌 양반 토호에 대한 원한을 풀고자 하는 반항정신마저 풍기고 있다.

<제1과 제1장>의 주인공 김수택은 좀처럼 얻기 어려운 신문사 기자직을 그만두고 낙향을 한다. 기자생활이 작가생활을 망쳐놓은 것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반겨 맞는 아버지와 함께 수택의 농촌생활은 시작되며, 아버지 김영감은 아들에게 모든 농사일을 정성껏 가르친다.

그 해 수확은 소작료·비료대·지세까지 떼고 나니 벼 여남은 섬뿐이었다. 사람들이 말리는 것도 가리지 않고 수택은 볏가마니를 지고 휘청거리는 다리로 눈물과 코피를 쏟으면서도 “내일은 우리 논 닷마지기의 타작이다.”라고 즐거워하였다는 이야기이다.

<제1과 제1장>에서는 흙냄새에 대한 그리움이 도시적 삶에 대한 반작용인 동시에 삶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관점으로 표현되었다. 본문내용 중 한 구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흙내였다. 그것이 흙내라는 것을 인식한 순간 일찍이 그가 어렸을 때 듣던 아버지의 음성이 바로 귓전에서 울리는 것을 느꼈다. ‘사람은 흙내를 맡아야 산다. 너도 공부를 하고 나선 나와 농사나 짓자.’……그러나 조소하던 그 말이 지금 그의 마음을 꾹하니 사로잡는 것이었다. ‘집으로 가자, 흙을 만지자.’, ‘흙냄새를 싫어하는 것이 사람이냐?’”

박경리는 땅이나 대지가 아닌 <토지>로 제목을 정하고 이를 다시 ‘농토로서의 토지’, ‘고향으로서의 토지’라는 두 관점에서 글을 전개하였다. <토지>는 이 땅과 땅 위에 살고 있는 숱한 형태의 삶과 그 삶들의 관계·가치관·인생관을 함축하고 있다.

박경리는 이처럼 다양한 인간들과 그들의 정서 및 사유를 통하여 전통사회의 붕괴와 가치관의 몰락, 인간관계의 파탄을 묘사하면서 각양의 인간상들이 이같은 사회적 변모 속에서 어떻게 고민하고 패배하며, 혹은 어떻게 극복하고 생존하여왔는가를 거시적 관점으로, 그러나 미시적 치밀성을 가지고 포착하고 있다.

흙의 오염과 대책

오염의 원인

흙은 비록 무생물적인 물질로 되어 있지만, 흙이 구성하는 환경은 흙과 더불어 생활하고 있는 숱한 종류의 생물들과 더불어 하나의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예컨대, 수많은 종류의 토양미생물·토양소동물, 그리고 식물의 뿌리가 이른바 흙의 생활권에서 토양생태계를 이루며 에너지의 흐름과 물질순환의 차원에서 개체수준 이상의 거시적인 생명현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토양생태계의 생명현상이란 바로 흙의 생활권이 가지고 있는 기능을 말하는데, 그것은 이른바 흙과 그곳에 서식하는 생물의 협력작용으로 수행되는 생물지화학적 작용(生物地化學的作用), 청소작용(淸掃作用), 질소교정작용(質素矯正作用), 각종 영양소의 저장작용 및 생물학적 평형의 유지 등이 그 기능의 전부이다. 흙과 생물이 구성하는 토양생태계에서 생물이 없는 흙의 세계는 그러한 기능이 존재할 수 없다.

그러므로 흙의 오염이란 흙과 생물이 구성하는 토양생태계에서 토양생물의 사멸과 흙의 작은 입자에 미치는 물리화학적 변성을 초래함으로써, 위와 같은 토양생태계의 기능을 상실하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흙이 중심이 되는 토양생태계를 오염시키는 오염원으로서 흙의 환경에 가장 큰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은 살균제·살충제이다.

또, 각종 산업시설에서 흘러나오는 중금속을 함유한 폐수가 농업용수를 통하여 흙으로 퇴적되는 경우와, 역시 산업시설의 굴뚝 또는 교통기관의 배기가스에서 누출된 아황산가스 및 질소화합물이 공기 중에서 산성비의 형태로 토양을 흠뻑 적심으로써 흙을 산성화시키는 것도 그 예의 하나이다.

그밖에 분해되기 어려운 고형물질의 쓰레기, 수은전지의 폐기물도 도시 및 인구의 성장과 함께 오염원으로 무시하지 못하는 요인의 하나가 되고 있다.

그리고 현재로서는 지구환경에서 볼 때 국소적이기는 하나 에너지 개발이라는 필요성 때문에 원자력 발전이 날로 증가하므로, 예기하지 못한 폭발사고나 빈번한 방사능 물질의 누출이 흙의 오염원으로 추가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의 폭발사고는 흙의 생태적 기능뿐만 아니라 인간의 주거환경에도 오랫동안 위협적인 오염원으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이상에서 열거한 흙의 오염원은 대략 다섯 가지로 대별할 수 있는데, 그 하나하나의 오염원이 흙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살펴본다.

① 살충제·제초제·살균제 : 일반적으로 농약이라 불리는 이러한 화학적 물질들이 생산이 기대되는 흙의 생태계에 유입되는 필요성에 대하여서는 누구나 알고 있고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확실하게도 그러한 농약을 사용하면 흙의 생태계에서 기대되는 생산성을 5배 이상 식량생산의 형태로 증가시킬 수 있고, 또한 녹색혁명(green revolution)을 통하여 입증된 바 있다.

농약은 흙의 터전에서 수행되는 영농의 수단에서는 획기적인 효과가 있었지만, 흙에 잔류하는 유기인제·유기염소제·유기수은제 등과 같은 강력한 농약은 흙에서 분해되지 않고 장기간 잔류하면서 그 독성을 흙의 생태계에서 발휘하고 있음이 문제로 남게 된다.

흙에 오염된 농약이 먹이사슬을 통하여 결국 인체에까지 도달된다는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토양미생물을 치사시킴으로써 흙의 생태계는 무생물적 요소인 물질만 남게 되어 그 기능을 상실한다.

흙에 서식하는 질소고정균의 죽음은 질소고정의 부재를 뜻하며, 흙을 비옥화시키려고 퇴비를 공급하여도 유기물은 분해균이 없는 까닭에 부숙(腐熟)하지 않아 비료가 되지 않는다. 또한, 흙의 생산기능에 중요한 구실을 하는 지렁이를 비롯한 원생동물(原生動物)까지도 죽여 버림으로써 흙의 생태계는 극도로 약화되는 것이다.

현재 사용 중인 농약은 116개 품목에 200여종 이상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농약에 저항성을 가지게 되는 해로운 생물이 출현하는 까닭에, 이 방면에 종사하는 이들에 의하여 좀더 독성이 높고 오랫동안 자연계에 잔류할 수 있는 농약이 개발되고 있다. 따라서, 농약이 흙에 오염되는 정도는 인구의 증가와 함께 점차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② 산업폐수 : 인간이 요구하는 재화의 종류가 늘어가는 만큼 산업시설 또한 다양하고 수적으로 급증하고 있다. 각종 산업시설에서 폐수의 형태로 배출되는 물은 여러 가지 성분을 함유하고 있지만, 흙의 생태계에 오염원이 되는 중요한 성분은 수은·납·비소·카드뮴·아연 및 계면활성제(界面活性劑)가 함유되어 있는 경우이다. 이러한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 폐수가 농업용수의 이용과정에서 흙에 농축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중금속 따위는 그 자체가 독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토양생태계의 생물들에게 급성 또는 만성의 영향을 끼치게 되므로 흙의 생태계를 약화시킨다.

미세한 흙의 입자는 독성이 있건 없건 많은 종류의 무기물을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이 있으므로 이 저장되어 있는 각종 성분―중금속을 포함한―을 생산자에게 공급하게 되고, 결국은 먹고 먹히는 연쇄과정을 통하여 사람의 몸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생물의 몸 안에 섭취된 중금속은 쉽게 생체 밖으로 배출되지 않기 때문에 그야말로 난처한 오염원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이 경우 흙은 중금속의 간접적인 공급원 구실을 하는 셈이다.

흙에 사는 토양세균의 어떤 것은 수은과 같이 물에 녹지 않는 물체를 메틸화작용(methylation)으로 물에 녹는 형태로 바꾸어줌으로써, 지하수의 형태로 스며들어 상수도오염의 길이 되기도 한다. 중금속으로 오염된 흙의 생태계는 반영구적으로 기능을 잃는 셈이다. 한편, 가정하수에서 유래된 계면활성제도 토양생물의 죽음 또는 약화를 초래한다는 보고가 있다.

③ 산성비 : 산성비는 일반적으로 발전소에서 석탄·기름·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의 연소에서 나오는 아황산가스·산화질소에 의해서, 각종 산업시설의 공정과정에서, 또는 교통기관의 내연기관에서 배출되는 가스들이 공기 중에 존재하다가 햇빛에너지에 의하여 묽은 황산과 질산이 되어 비의 형태로 내리는 것이다. 고도로 공업화된 일부지역에서는 염산도 함유되어 흙을 적신다. 생태학적으로 산성비는 pH 5.5 이하의 비를 의미한다.

최근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 Christian Science Moniter≫지에 발표된 세계의 산성비 분포를 소개하면 스웨덴과 미국의 동북부가 4.0, 일본이 4.5, 미국의 동부와 노르웨이 및 남미대륙의 북부가 4.8∼4.9, 미국의 중부와 아시아 및 아프리카가 6.0, 한국이 5.0이었다.

산성비가 흙을 적시면 흙의 생태계는 산성화되는 것은 분명하다. 산성화가 되면 흙의 작은 알갱이는 각종의 무기 및 유기영양소의 저장기능을 상실한다. 즉, 흙의 생태계에 존재하는 각종 영양소는 생물에게 이용되는 기회가 적어지고 반면 소멸될 기회만 많아진다.

따라서, 흙의 입자는 조밀하게 결합되어 딱딱한 흙이 되고, 이곳에 서식하는 생물들은 호흡이 곤란하게 되어 생산성도 떨어지고 생물지화학적 작용과 질소고정능력도 떨어진다. 무기 및 유기영양소의 소멸은 물론이고 중금속의 오염 정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어 중금속이 지하수오염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산성화된 흙의 생태계는 생물계의 평형을 깨게 된다. 일반적으로 산성의 조건을 좋아하는 곰팡이무리가 극도로 번성하게 되어 흙에 근거를 둔 식물에 병원균으로 작용하여 식물이 병드는 경우가 많아지게 된다.

반면, 대부분의 세균은 산성조건에서 생활력이 약화되므로 세균에 의한 질소고정 물질분해, 영양소의 순환과정이 극도로 약화되어 흙의 생태계는 병든 상태에서 숨만 쉬고 살아가는 셈이 된다.

④ 고형폐기물 : 가정 및 산업시설의 쓰레기는 과거와는 달리 점차 분해되기 어려운 물질과 수은전지와 같은 독성폐기물의 함유비율이 높아진다는 사실과 함께 폐기량도 인구증가에 비례하는 것이 특징이라 하겠다. 쓰레기 처리방법도 주로 흙에 묻어 버리는 방법을 취하고 있으므로 이는 분명히 무시 못할 흙의 오염원이라 할 수 있다.

흙에 묻힌 쓰레기는 비록 오랜 시간이 경과하여도 흙의 입자가 되지 못하는 고분자물질, 영양원이 되지 못하는 물질이 대부분이므로 매몰된 최초의 형태로 잔류하여 흙의 생태적 기능은 가지지 못한다.

현재의 쓰레기더미와 같은 환경에서는 토양생물의 균형있는 번식과 기능을 기대할 수 없으며, 흙의 생태계라기보다는 오직 무생물적인 물질의 축적을 의미하는 죽음의 토양이며 토지의 변형에 불과한 것이다. 쓰레기로 형성된 땅에서 기대할 만한 것은 오직 위생적으로 불량한 축조물의 확대뿐이다.

⑤ 방사능 물질 : 원자력 물질이 군사적 및 평화적으로 이용된 이후부터 대기·수질 및 흙의 방사능 오염문제는 항상 관심의 표적이었으나 환경학적으로는 대기와 수질계의 그것만이 문제점으로 제기되었다.

그 이유는 공기와 물은 오염원의 확산이 용이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흙은 오염원의 확산이 어려운 불연속적인 매질(媒質)이기 때문에 방사능 물질의 경우 얼마나 농축되어 있는가가 중요시되었다.

이를테면, 원자탄의 시험장, 투하지역, 방사능에 노출된 지역, 생태계의 변화조사는 빈번하였으나 흙의 생태계에 미치는 조사는 사실상 많지 않았다. 그러나 방사능 물질도 흙의 입자에 의하여 저장, 축적되고, 이 축적된 방사능 물질의 물리화학적 성질로 인하여 흙의 생태계에 서식하는 생물군에 생물학적 영향을 준다는 사실은 많은 기초실험의 결과로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방사능 물질이 흙에 축적되면 이는 곧 흙의 생산체제에 도입되므로 무의미한 생산일 수밖에 없으며, 인간의 주거환경과도 관계없는 ‘격리된 땅’일 수밖에 없다.

또한, 방사능 물질이 높은 수준으로 흙에 오염되면 토양미생물의 치사에 이르기도 하며,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원폭 세례를 받고 살아남은 인간집단의 비정상적인 활동처럼 흙의 생태계에서의 구실도 비기능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염의 방지와 대책

지구환경에서 1㎝ 두께의 흙을 만드는 데는 몇 백년이 소요되는 것으로 계산된다. 그러한 까닭에 흙의 생태계는 순수하게 보존되어야 하며, 이는 흙의 생태적 기능을 보호한다는 목적과 합치한다. 오염현상은 비교적 빠른 시간에 진행되고 피해는 즉시 나타나지만, 생태계의 기능회복은 당초의 시작에서보다 더 많은 시간을 요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른 경우와 마찬가지로 흙이 생태계에 미치는 오염을 방지하는 근원적인 해결책은 50억을 웃도는 인구의 증가를 억제하는 길이다. 먹고살아야 하고 편하고 유쾌하게 살고자 하는 인간집단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한 식량증산은 불가피하며, 각종 편의시설과 재화가 생산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모든 생산의 형태는 땅에서 이루어지므로 생산의 부적 귀환(負的歸環)의 결과는 앞에서 언급해 온 각종 오염원의 발생을 초래하는 것이다.

각종 오염원의 발생과 확산을 방지하는 방법은 부분적으로 가능하다. 예컨대, 농약의 사용 대신에 생물이 생물을 방제하는 데 이용되는 천적(天敵)을 개발하거나, 산업폐수가 농업용수에 혼합되지 않도록 법적 제도를 강화하는 방법 등이 있다.

또한, 산성비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연료사용의 대체나 연료사용의 기술적 개발이 가능하며, 산성화된 흙의 경우는 석회를 뿌려서 중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고형폐기물의 경우는 난분해성 물질을 선별하여 재생산을 도모함과 동시에 흙에 파묻는 방법 이외에 소각 및 화학적 처리를 병행함이 바람직하다.

방사능 물질의 오염은 현재로서는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특수 지역과 원폭 시험장의 흙의 생태계에서 심각하기는 하지만 국소적이다. 방사능 물질의 오염을 방지하는 길은 원자력 시설의 기술적 개발과 인류의 양심에 전적으로 좌우된다고 하겠다.

결론적으로 위와 같은 각종 오염원에 대한 부분적 방지와 대책은 가능하지만, 폭발적 인구증가에 따른 근원적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흙의 생태계 오염 방지는 폭발적 인구증가를 어떻게 둔화시킬 수 있는가의 방법과 상통하며, 그 대책으로는 흙의 생태계가 인간의 최후 최대의 생존적 터전임을 정치·경제·문화·교육의 여러 분야에서 최우선적인 현실과제로 협력하여 다루어야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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