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구 ()

관악구청
관악구청
인문지리
지명/행정지명ˑ마을
서울특별시 서남부에 위치한 구.
정의
서울특별시 서남부에 위치한 구.
개관

동쪽은 서초구와 경기도 과천시에 인접해 있고, 서쪽은 시흥대로를 경계로 구로구와 연해 있으며, 남쪽은 관악산을 경계로 경기도 안양시와 접해 있다. 위치는 동경 126°53'~126°59', 북위 37°25'~37°29'이다. 면적은 29.57㎢이고, 인구는 50만 9663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21개 행정동(3개 법정동)이 있으며, 구청은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에 있다.

자연환경

남쪽은 관악산, 서쪽은 호압산(虎壓山), 동쪽은 우면산(牛眠山)을 연결하는 산지를 경계로 과천시·안양시 등과 지형적으로 격리되어 있다. 이들 산지 북사면과 안양천(安養川)으로 유입하는 마장천(馬場川)의 강가에 발달한 침식곡(浸蝕谷)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남태령(南泰嶺)은 서울과 과천을 연결하는 교통로의 구실을 하고 있다.

관악산은 서울의 조산이다. 한강을 경계선으로 강남의 서쪽 벌판에 우뚝 솟아 강북의 북한산과 마주하고 있다. 한강 유역의 낮은 평지 위에 얹혀 있고, 또 주위에 큰 산들이 많지 않아 유달리 큰 산으로 보인다. 관악산은 험준한 산세에 깊은 골짜기들과 기암괴석이 갖가지 모습으로 곳곳에 박혀 있다. 골짜기와 등성이에 15개가 넘는 절·암자가 있다. 마장천은 관악산에서 발원하여 북류하다가 북서쪽으로 흐름을 바꾸어 안양천과 합류한다. 이 강은 대부분이 복개되어 도로로 이용되고 있는 한편 배수로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연평균 기온은 13.0°C, 1월 평균기온은 -0.2°C, 8월 평균기온은 27.°C, 연 강수량은 1,681.9㎜이다.

역사

삼한시대 마한에 속했던 시흥 지역은 근초고왕(346∼375) 때 백제에 의해 정복되고, 이후 396년(광개토왕 6)에 정복되어 고구려 영역이 되었다. 관악구 지역의 지명을 찾아볼 수 있는 고문헌은 『삼국사기(三國史記)』이다. 관악구 봉천동, 신림동 지역은 고구려 때에 잉벌노현(仍伐奴縣)·장항구현(獐項口縣)·율목군(栗木郡)으로 불렸으며, 통일신라 시기 757년(경덕왕 16)에는 곡양현(穀壤縣)·장구군(獐口郡)·율진군(栗津郡)으로 개칭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금주(衿州)라 불렸는데, 금주는 현재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으로 983년(성종 2)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강감찬(姜邯贊, 948∼1031)장군이 태어난 곳이다. 강감찬장군과 관련된 일화로 봉천4동과 신림2동을 경계로 하여 자리 잡고 있는 관악산의 능선인 청룡산(靑龍山) 이야기가 있다. 장군이 말을 타고 이곳을 지나다가 산이 유달리 푸른 것을 보고 능(陵)자리로서 좋은 곳이라고 하여 청능산(靑陵山)이라고 불렀다 한다. 이 고장 출신인 명장 강감찬장군의 호국정신과 위업을 기리고 추모하기 위해 낙성대 인헌제를 올리고 있다.

오늘날의 관악구 지역은 조선시대에는 경기도 시흥군 동면 지역과 과천군 하북면의 일부였다. 관악구의 명칭이 유래된 관악산(冠岳山)은 원래 과천현(果川縣)의 주산이며 경기오악(京畿五岳) 중의 하나로 소금강(小金剛)의 이름이 있다. 비록 태산은 아니지만 준령과 천년노수(千年老樹)의 원시림과 양대 폭포가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한 십여 봉우리의 골짜기마다 수십의 사암이 산재하여 춘하추동으로 변하는 아름다운 경치가 가히 소금강이라 이를 만하여 예로부터 사람들이 즐겨 찾는 경승지였다. 관악산은 풍수지리적으로 화산(火山)이라 전래되어 부근 및 서울 주민들이 경외하여 왔다. 조선 초기 궁궐터를 정하는데 관악을 정남(正南)으로 하면 궁성을 위압하여 국가가 편안치 않다는 무학대사(無學大士)의 주장과 정남으로 하여도 한강이 있어 무방하다는 정도전(鄭道傳)의 주장이 대립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경복궁을 재건할 때 관악의 화기를 누르기 위하여 물짐승인 한 쌍의 해태 조각상을 광화문 앞에 안치하였다. 또 산중 도처에 유지(溜池) 같은 흔적이 많은 이유는 관악의 화기를 누르기 위해 호(湖)와 지(池)를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관악의 주봉인 연주대(戀主臺) 위에 만들어진 작은 연못 또한 관악의 지세를 막으려던 하나의 흔적이다.

일제가 우리나라를 강점한 지 4년 후인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1913년 12월 9일 공포)를 발포하여 전국의 행정구역을 자의적으로 조정하였다. 이때 지금의 관악구 지역은 경기도 시흥군 동면이었다.

이후 이 지역은 별다른 변동이 없다가 1960년대에 이르러 서울시의 급속한 인구증가 추세로 교통, 주택, 보건위생 및 공안유지 등의 여러 문제가 누적되었고, 이에 도시의 일반적인 기준 변경 및 행정구역 등의 대폭적인 개편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1963년 3월 1일 서울시의 행정구역 확장으로, 현재의 관악구 지역은 영등포구에 편입되면서 관악출장소에서 행정을 맡게 되었다. 1960년대 중반 도시재개발사업으로 철거민 정착촌을 곳곳에 산재시키자 관악구의 봉천동과 신림동이 철거민 정착촌의 전형을 이루게 되었다.

1968년 1월 1일 서울특별시조례 제491호로 관악출장소가 폐지되어 영등포구의 직할로 편입되었다.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인구로 구간의 불균형이 심화되어 1973년 7월 1일 관악구가 영등포구에서 분리 신설되었다. 관악구에 편입된 지역은 현재의 동작구 노량진동, 본동, 상도동 등 9개 동, 서초구의 방배동, 서초동, 반포동, 잠원동, 양재동 및 현재의 관악구 지역인 봉천동, 신림동이었다. 1980년 4월 1일 관악구 지역의 노량진동, 상도동 등을 분리시켜 동작구를 신설하고, 방배동 일원과 사당동 일부를 강남구로 편입시켰다. 또한 사당동 일부는 관악구에 편입시켜 남현동으로, 1988년 1월 1일에는 구로구 독산동 일부가 관악구 미성동(구 신림11동)에 편입되었다. 2008년 9월 1일 서울특별시관악구조례 제779호에 의거 21개 행정동으로 통폐합하면서 행정동의 명칭을 변경하여, 보라매동·은천동·성현동·중앙동·청림동·행운동·청룡동·낙성대동·인헌동·남현동·신림동·신사동·조원동·미성동·난곡동·난향동·서원동·신원동·서림동·삼성동·대학동 등이 탄생하였다.

유물·유적

서울 남현동 요지는 1976년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는데, 현재 거의 파괴된 형태로 보전되어 있다. 밭으로 사용되던 약 200평의 터에 흑토기가 깔려 있었고, 격자문(格子文)과 자리무늬(繩蓆文)의 토기호 파편이 산재되어 있었다. 이 토기편들은 백제 중기∼후기에 속하는 것으로, 이곳이 한강변에 자리 잡은 백제시대의 유일한 가마터였음을 알 수 있다.

사찰로는 관음사, 자운암, 약수암 등이 있다. 관음사는 신라시대 895년(진성여왕 9)에 도선대사가 창건한 비보사찰의 하나이고, 자운암은 1396년(태조 5)에 무학대사가 창건했다. 그리고 약수암은 세종 때 무명대사가 창건하였다. 봉천동 마애미륵불좌상(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976년 지정)은 1630년(인조 8)에 새겨진 조선시대 불상이다.

낙성대(落星垈)는 강감찬이 태어난 곳으로, 그가 출생할 때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고 하여 이 생가터를 낙성대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공원 동쪽에 사당을 지어 ‘안국사(安國祠)’라 하고 영정을 모셨으며, 정면에는 외삼문인 안국문과 내삼문을 세웠고, 문안에는 본래의 낙성대 터에 있던 낙성대 삼층석탑(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972년 지정)을 옮겨와 안치하였다. 그곳에 1974년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된 강감찬 생가 터(낙성대)를 세워놓았다. 1988년 이후 9, 10월이면 ‘낙성대 인헌제’라는 명칭의 제례의식과 민속놀이 등의 문화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신도비로는 정정공 강사상 묘역(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997년 지정)과 효민공 이경직 묘역(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1997년 지정)이 있다. 정정공 강사상 묘역은 1713년(숙종 39)에 세워진 신도비이다. 정정공 강사상은 우의정과 영중추부사를 지냈으며, 사후 아들 인이 호성공신에 책록되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이경직 묘역은 1668년(현종 9)에 세워진 효민공 이경직(1577∼1640)의 신도비이다. 그는 승문원에서 처음으로 벼슬을 시작하여 강화유수로 있다가 병사할 때까지 도승지, 호조판서 등 많은 관직을 거쳤다.

삼성산 성지에는 한국천주교회사에서 최초의 서양인 선교사 앵베르 주교와 모방, 샤스땅 신부의 유해가 모셔져 있다. 1839년 기해교난(己亥敎難) 때 새남터에서 효수형으로 처형된 후 1843년 삼성산으로 이장되었다.

서울 신림동 굴참나무(천연기념물, 1982년 지정)는 참나무과에 딸린 낙엽교목이며 높이 18m, 가슴높이 둘레 1.9m 가량 되는 노거수이다. 전설에 의하면 약 1,000년 전에 강감찬 장군이 이곳을 지나다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나서 현재와 같은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서울 구 벨기에영사관(사적, 1977년 지정)은 1900년 5월 우리나라에 온 벨기에 전권위원인 방카르에 의해 1903년 착공되어 1905년에 준공된 건물로 원래 지어진 곳은 중구 회현동 2가 72―2번지였으나 1982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벽돌과 석재를 혼용하면서 현관과 발코니의 이오니아식 석주 등은 독특한 고전주의 건축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 외 향온주(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1993년 지정), 대금정악(국가무형문화재, 1968년 지정)이 있다. 향온주는 멥쌀과 찹쌀로 빚은 맑은 술로, 조선시대 양온서라는 관청에서 빚어 대궐 안으로 들여보내던 전통 궁중주이다. 대금정악은 대금으로 궁정이나 관아 및 풍류방에서 연주하던 음악으로, 우아하고 바른 음악이다.

교육·문화

관악구 지역은 구 중심부를 남부순환로와 지하철 2호선이 관통하여 교통이 편리하고, 관악산 도시자연공원이 위치하고 있어 교육·문화·자연환경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서울 서남권의 청정주거도시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한국 지성의 요람인 서울대학교가 있다.

2015년 현재 초등학교 22개교, 중학교 16개교, 고등학교 17개교, 특수학교 2개교, 대학교 1개교, 대학원 4개교가 있으며 특히 관악아동발달센터, 서울정문학교, 삼육재활학교는 장애특성별 치료교육 활동을 강화하여 장애인들에게 밝은 내일을 심어주고 있다. 직업전문학교로 금성미용전문학교, 경원직업전문학교, 서울산업정보학교, 한훈직업전문학교 등이 있고, 관악구 평생학습센터, 관악아트홀·관악중앙도서관 등 문화 인프라가 잘 갖추어진 교육도시이다.

문화시설로는 공연장, 문화의 집, 영화관, 도서관 등을 비롯하여 지역 문화예술의 증진을 위해 활동하는 관악문화원이 있다. 전통 야외 소극장은 전통문화와 미풍양속을 재현하고 선보이는 서울의 대표적 관광명소이다. 영화관으로는 시네캠퍼스 디지털영화관, 프리머스시네마가 있으며, 관악문화관은 문화관람실을 비롯한 문화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지역언론기관으로 관악구청신문, 관악새소식, 관악구보 등이 있다.

관악산 일대는 1975년 서울대학교가 이전해오고 지하철 2호선이 개통되면서 개신교 개척교회 위주의 판도로 변화하였다. 1980년대에는 선교의 황금어장으로 각광을 받았다.

관악구의 대표적인 전시관은 서울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남서울분관)이 있다. 박물관은 호림박물관과 한국카메라박물관, 서울대박물관이 있다. 호림박물관은 토기·도자기·회화·전적·금속공예품 등 1만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이 중 44점이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한국카메라박물관은 1850년부터 1990년까지 세계에서 희귀한 카메라 700여 점과 렌즈, 액세서리, 유리건판필름사진 등 총 1,500여 점의 카메라가 전시되어 있다. 19세기에 제작된 카메라들과 역사적인 카메라들의 내부를 볼 수 있도록 구분하여 전시하고 있으며 초기 다게레오타입의 사진과 유리건판필름, 슬라이드 등도 관람할 수 있다.

신림동에는 신림체육센터·제2구민운동장, 봉천동에는 구민종합체육센터·구민운동장이 있다. 신림체육센터, 구민종합체육센터는 수영장, 헬스, 강당, 교육실 등이 갖춰져 있다. 구민운동장은 배구장, 축구장, 농구, 테니스장을 갖추고 있으며, 제2구민운동장은 간이체육시설, 다목적운동장, 관람석이 갖춰져 있다.

민속

무동답교(舞童踏橋) 놀이는 관음사 절 아래 승방벌[승방평: 僧房坪]이라는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전통 민속놀이였으나 일제 강점기에 사라졌다. 또한 남현동 도당(都堂)은 사당동 사거리가 생기면서 없어졌다.

설화·민요

관악구에는 관악산 북쪽 기슭 낙성대에서 출생한 고려의 강감찬장군과 관련된 일화가 많이 있다. 그가 하늘의 벼락방망이를 없애려 산을 오르다 칡덩굴에 걸려 넘어져 벼락방망이 대신 이 산의 칡을 모두 뿌리째 뽑아 없앴다는 전설도 있고, 작은 체구인 강감찬이지만 몸무게가 몹시 무거워 바위를 오르는 곳마다 발자국이 깊게 패었다는 전설도 있다. 이 전설들을 뒷받침해 주듯 관악산에서는 칡덩굴을 별로 볼 수 없고, 곳곳의 바위에 아기 발자국 같은 타원형 발자국들이 보인다.

한편 관악산 제2광장에서 서울대 등산로를 올라가다 보면 오른쪽에 열녀암(烈女巖)이라는 바위가 있다. 이와 관련된 설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옛날에 아낙이 남편과 아들, 딸을 낳고 잘 살고 있었는데 이를 시기한 마음씨 나쁜 아낙의 남편이 남자를 찾아와서 “사냥하러 가자”고 유인하여 먼 곳으로 가 살해하고 돌아와서 열녀를 유혹하여 보았으나 열녀는 유혹을 완강히 물리쳤다. 한편 남편이 살해된 사실을 모른 아낙은 아이를 등에 업고 관악영산을 근거로 하여 널찍한 망부대에서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도하였다. 이 갸륵한 정성에 감동한 하늘이 복두꺼비와 바둑이를 보내 열녀를 다른 짐승으로부터 지켜주었다. 그리고 결국 쉬지 않고 기도를 계속한 열녀에 하늘이 감동하여 그 가족이 화석으로 변했다는 내용이다.

산업·교통

관악구의 전체면적은 29.57㎢로 이 중 59.7%가 녹지지역이다. 상업지역은 1.2%에 불과하고 39.1%가 주거지역으로 이루어진 환경도시이다. 관악구는 1965년경까지만 해도 시가지 조성이 안 되어 고립된 상태였지만, 개발이 시작되면서 짧은 기간에 서울의 주요한 주택지구로 발전하였다. 지하철 2호선이 구의 중앙을 동서로 관통하고, 도로가 구 내외를 동서남북으로 연결하고 있어 교통의 요충지를 형성하고 있다. 남부는 관악산을 중심으로 개발제한구역이었기 때문에 공장지역을 형성하지 못하고, 이 지역의 유휴노동력(遊休勞動力)을 대상으로 하는 소규모의 섬유·전자·가발·농약공장 등이 각처에 분산되었다. 1975년 서울대학교가 이전함으로써 지하철 2호선 봉천동 사거리와 신림동 사거리가 상업중심거리로 발전하였다. 서울대학교의 이미지 쇄신과 함께 이 지역에 취해진 여러 도시 하부구조에 대한 내실화는 관악구를 살기에 적당한 신흥 주택 지역으로 변화시키는 밑거름이 되었다. 관악산과 낙성대는 구민뿐만 아니라 서울시민이 즐겨 찾는 휴식처이며, 관악산 일대의 그린벨트 및 산록을 제외하고는 개발이 크게 진전되었다.

남부순환로와 지하철 2호선이 구 중심부를 관통함으로써 강남 지역, 영등포 지역의 연결이 원활하다. 관악산 북사면에 위치한 서울대학교에서 각각 봉천동·신림동을 지나 상도동에서 합해지는 관악로와 신림로가 간선도로를 이루고 있다. 또한 남태령을 넘어 과천, 안양, 수원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확장되어 수도권 남부도시로부터 서울 유입의 관문적인 교통의 요충지이다.

강남 지역과 영등포 부도심을 동서축으로 연결하는 남부순환로와 관악로, 신림로를 중심으로 은철길, 쑥고개길, 독산동길, 문성골길, 신대방길, 난곡길, 낙성대길 등이 구 내외를 동서남북으로 연결하고 있다.

1984년 지하철 2호선이 구의 중앙을 동서로 관통하여 강남 및 영등포 지역과의 교통이 원활해졌다. 2호선 서울대학교역을 중심으로 봉천동역, 신림동역이 교통의 요충지이며 상업중심거리로 발달하였다.

관광

남쪽 관악산 북사면에 서울대학교가 자리 잡고 있으며, 관악산과 낙성대는 구민뿐만 아니라 서울시민이 즐겨 찾는 관광지이다. 관악산 호수공원은 정자, 모교, 분수, 파고라, 석구상 및 시비, 화계 등이 설치되어 있으며 관악산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학가 역세권인 신림사거리는 하루 유동인구가 30만 명이나 되는 거대 상권으로 대형쇼핑몰 신림르네상스가 개관하였다. 롯데백화점을 중심으로 수많은 음식점, 카페 등이 들어서 있다. 롯데백화점 관악점은 고유의 고급스러움을 유지하면서도 지역 밀착형 백화점으로 편리한 주차시설과 교통망이 장점이다.

신림동에는 굴다리시장 83호, 남부중앙시장, 봉천동에는 봉천제일종합시장, 봉천중앙시장, 벼룩시장 등이 있다. 신림동에는 신림역 주변에 순대촌이 형성되어 있고, 신림 9동 주변 일명 ‘녹두거리’라고 불리는 곳은 고시촌과 먹자골목이 있다. 과거에는 서울대 학생운동의 동네로, 막걸리를 마시며 사회개혁을 논하는 서울대 학생들이 삼삼오오 몰려들었다고 한다. 현재는 준유흥가로 발전되어 서울대 학생들의 술과 밥을 공급하는 객주가 역할을 하고 있다.

낙성대 인헌제와 관악산 철쭉꽃 축제가 매년 개최되는데, 낙성대 인헌제는 고려의 명장 인헌공 강감찬 장군의 호국정신과 위업을 기리는 구민 추모제향이고, 관악산 철쭉꽃 축제는 관악구 고유의 문화와 지역의 역사성이 담긴 특성 있는 행사이다. 관내 민관단체와 주민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참여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이외에 관악구민의 날은 구민의 지역 공동체 의식과 자긍심을 북돋우고 화합과 단결을 도모하기 위한 행사로 기념식과 구민상 시상식 등을 거행한다. 구민체육대회는 고유의 민속경기와 현대체육이 함께 어우러지는 구민축제행사로 생활체육의 활성화 및 고장에 대한 자긍심을 고취하며 건전놀이 문화 보급으로 구민화합과 명랑한 사회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청소년음악축제는 청소년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청소년 놀이문화의 활성화와 건전한 여가 활동을 위해 보라매공원 등에서 연2회 개최되는 축제로 청소년과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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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연보』(관악구청, 2005)
『서울민속대관』11(서울특별시,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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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연혁고』13(서울특별시사편찬위원회, 1989)
『서울의 가로명연혁』(서울특별시, 1986)
『서울의 전통문화』(서울특별시, 1982·1986)
관악구(www.gwanak.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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