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쪽은 충청북도 청주시와 보은군, 동쪽은 계족산을 경계로 동구, 남쪽은 중구와 서구, 서쪽은 갑천을 사이에 두고 유성구와 접한다. 동경 127°23'∼127°30', 북위 36°20'∼36°28'에 위치한다. 면적은 68.68㎢이고, 인구는 19만 6839명(2015년 현재)이다. 행정구역으로는 12개 행정동(26개 법정동)이 있다. 구청은 대전광역시 대덕구 오정동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성치산(城峙山) · 계족산(鷄足山) 등 높은 봉우리가 있지만, 대전 중심지 쪽으로는 완사면이 넓게 나타난다. 북쪽으로는 대청호(大淸湖)가 있으며, 서쪽으로는 갑천(甲川), 중앙부에는 용호천(龍湖川)이 흐르고 있어, 유역에 비옥한 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대덕구는 내륙분지에 위치해 한서의 차가 큰 전형적인 대륙성 기후를 보인다. 평균기온은 13.9℃이며, 1월 평균기온 -0.5℃, 8월 평균기온 25.9℃로 연교차가 26.4℃에 이른다. 강수량은 편차가 심해 적을 때는 828.7㎜(2001년), 많을 때는 1,748.9㎜(2003년)를 기록한 적도 있으나, 보통 1,500㎜ 안팎이다.
한밭 지역은 선사시대인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거주해왔으며, 청동기시대에 이르러 부족국가 마한의 변방에 속하였다. 삼국시대에는 백제가 마한을 정복하고 공주로 천도하면서 우술군(雨述郡)이라 하였으며, 군사 요충지로 기능하였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루면서 문무왕(文武王)이 주 · 군 · 현을 재정비하게 됨에 따라 비풍군(比豊郡)에 속하였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1018년(현종 9) 주 · 군 · 현 개편으로 공주군 산하에 속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1413년(태종 13) 전국을 팔도로 나누게 되면서, 이 지역은 충청도로 편입되어 회덕군, 진잠군으로 개칭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 1일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회덕군, 진잠군과 공주군, 현내면이 통폐합되면서 대전군이 설치되었고, 회덕읍 내에 있던 군청이 대전으로 이전되었다. 이후 1932년 충청남도청이 공주에서 대전읍으로 옮겨오게 되면서 이 지역은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1935년 대전읍이 부로 승격됨에 따라 대전군이 폐지되었고, 대전부의 잔여지역으로 대덕군이 창설되었다.
해방 후인 1949년 8월 15일 지방자치법 실시에 따라 대전부가 대전시로 개칭되었고, 충청남도의 1시 14군에 대덕군이 속하게 되었다. 1963년 1월 1일 대덕군의 일부인 유천면과 회덕면의 3개 리(대화리, 오정리, 용전리), 산내면의 4개 리(옥계리, 삼정리, 호동리, 가오리)가 대전시에 편입되었다.
1973년 7월 1일 북면과 유성면이 각각 신탄진읍, 유성읍으로 승격되었다. 1983년 2월 15일 유성읍 및 회덕면 전역과 구즉면의 3개 리(문지, 전민, 원촌리와 용산리 일부), 탄동면의 8개 리(신성, 가정, 도룡, 장동, 내동, 화암, 덕진, 하계리), 진잠면의 5개 리(교촌, 대정, 용계, 학하리, 내동), 기성면의 3개 리(가수원, 도안, 관저리)가 각각 대전시로 편입되었다.
1987년 1월 1일에는 진잠면 계산리가 대전시로 편입되었고, 1989년 1월 1일, 1읍 6면 81법정리 중 진잠면 남선리를 제외한 대덕군 일원이 모두 대전직할시로 편입되었고, 동시에 신탄진 지역의 4개 동과 오정동, 대화동, 회덕1동, 회덕2동 등 8개 행정동을 관할하는 대덕자치구가 설치되었다.
1990년 1월 1일 회덕2동이 회덕2동과 중리동으로 분동되어 9개 행정동이 되었고, 1991년 9월 1일 중리동이 중리동과 법동으로 분동 되어 10개 행정동이 되었다. 1994년 12월 26일에는 동구 가양동 일부가 대덕구 비래동에, 유성구 전민동 · 탑립동 · 봉산동 일부가 대덕구 신대동 · 와동 · 문평동에 편입되었으며, 대덕구 비래동 일부가 동구 가양동에 편입되었다.
1995년 1월 1일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대전직할시 대덕구가 대전광역시 대덕구로 개칭되었다. 1996년 1월 1일 법동이 법1동과 법2동으로 분동되어 대덕구는 11개 행정동, 25개 법정동을 관할하게 되었다.
1997년 12월 26일에는 신탄진동사무소 관할구역 내의 석봉동이 신탄진동으로 명칭 변경되었다. 1999년 8월 6일 동구 용전동 일부가 대덕구 중리동으로 편입되었고, 1999년 12월 31일 중리동 일부가 오정동으로 편입되었다.
2003년 1월 16일 회덕1동이 회덕동으로, 회덕2동이 송촌동과 비래동으로 분동되어 12개 행정동, 26개 법정동이 되었다. 2005년 11월 1일에는 비래동 일부가 송촌동으로, 송촌동 일부가 비래동으로 편입되었다.
대덕구에 위치한 전통 건축물로는 회덕 동춘당(보물, 1963년 지정), 회덕 쌍청당, 대전 동춘당 종택(정침, 가묘, 별묘), 옥류각, 송애당, 제월당 및 옥오재, 송용억 가옥, 취백정, 어사 홍원모 영세불망비, 오정동 선교사촌, 민평기 가옥 등이 있다. 회덕 쌍청당, 옥류각, 송애당, 제월당 및 옥오재는 전부 1989년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대전 동춘당 종택은 2016년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으며, 송용억 가옥은 1989년 대전광역시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취백정은 1989년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고, 어사 홍원모 영세불망비는 1991년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으며, 오정동 선교사촌은 2001년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정려(旌閭)로는 은진송씨 정려각(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1993년 지정), 고흥유씨 정려각 및 비(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1996년 지정), 이시직공 정려각(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1994년 지정), 송기문 효자 정려각, 차윤주 · 차윤도 효자 정려각 등이 있다.
산성은 계족산성(사적, 1991년 지정), 질현성(대전광역시 기념물, 1989년 지정), 우술성(대전광역시 기념물, 1989년 지정), 성치산성(대전광역시 기념물, 1993년 지정), 이현동 산성(대전광역시 기념물, 1993년 지정), 장동 산성 등이 있다.
불교유적에는 용화사 석불입상(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1997년 지정), 비래사 목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2014년 지정), 예념미타도량참법 권34, 78(보물, 1993년 지정), 이현동 석불 등이 있다.
문헌은 초려 이유태 유고(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1989년 지정), 권준의 준호구(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1989년 지정), 운부군옥(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1989년 지정), 윤돈 등의 동복화회입의(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1989년 지정), 조천신장(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1989년 지정), 농암진적(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1989년 지정), 설교시첩(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1997년 지정), 동국사략(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1989년 지정), 삼강행실도(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1989년 지정), 청구풍아(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1989년 지정) 등이 있다.
무형유산은 장동 산디마을 탑제, 들말 두레소리, 그리고 전통 민속주인 송순주등이 있다. 장동 산디마을 탑제는 1998년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었고, 들말 두레소리는 2002년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송순주는 2000년 대전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기념물은 비래동 고인돌(대전광역시 기념물, 1997년 지정)이 있다.
민속문화유산은 법동 석장승(대전광역시 민속문화재, 1989년 지정)이 있다.
문화유산자료로는 회덕향교 대성전(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1989년 지정), 양성당 제영(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1989년 지정), 문정공 왕고간독(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1989년 지정), 화산세가 필적(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1989년 지정), 박인년 교지(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1989년 지정), 갑진북정록(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 1997년 지정) 등이 있다.
대덕구의 교육기관은 초등학교 21개교, 중학교 12개교, 고등학교 5개교, 특수학교 1개교와 한남대학교가 있다.
의료시설로는 종합병원, 병원, 의원, 치과병(의)원, 한방병(의)원, 보건소가 있다.
복지시설로는 대전종합사회복지관, 대덕종합사회복지관, 법동종합사회복지관, 중리종합사회복지관, 노인전문요양원, 대덕구 노인종합복지회관 등이 있다.
문화공간으로는 1994년 설립된 대덕문화원을 비롯하여 목상동의 대덕문화체육관, 대덕청소년수련관, 청소년문화의 집, 대덕문예회관, 신탄진도서관, 안산도서관, 회덕문화의 집, 신탄진문화의 집, 송촌문화의 집 등이 있다.
대덕구의 장동 산디마을 탑제는 대전광역시 무형유산으로 1998년 7월 21일 지정되었다. 대덕구 장동 산디마을 입구 숲 거리에는 2기의 탑이 위치해 있는데, 숲 거리 왼쪽 언덕에 돌무더기를 쌓아 놓은 것이 할아버지 탑으로, 크기는 둘레 1,030㎝, 높이 220㎝이고, 맞은편 냇가 건너 자리하고 있는 할머니 탑은 둘레가 880㎝, 높이 180㎝이다. 마을 사람들은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흗날 이곳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기 위한 탑제를 지내고 있다. 이 탑이 어느 시기에 쌓아졌고, 또 언제부터 탑제를 지내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마을 사람들은 이 마을의 탄생과 함께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읍내동에서는 당아래 거리(장승)제가 벌어진다. 본래 당아래 마을 주택가에 있던 장승은 현재 당산 주유소 길 건너편 원촌교 방향 약 30m 부근에 위치해 있다. 장승을 세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다만 예부터 마을에 질병이 잦아 이를 막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전해진다. 장승은 자연석 그대로의 선돌인데, 중간 부분이 굽어지고 머리 부분이 뭉뚝하게 생긴 것이 얼굴 또는 남성의 성기를 닮았다. 장승의 크기는 높이 76㎝, 몸통둘레 86㎝, 목둘레 63㎝, 윗부분 둘레 74㎝이며, 돌의 재질은 화강 편마암이다. 매년 음력 정월 열 사흗날 저녁에 거리제를 지낸다.
용호동 하용호 마을 입구 양쪽에는 2개의 탑이 있는데, 이곳에서 용호동 하용호 탑제가 벌어진다. 탑의 규모는 매우 작으며, 형태는 잡석을 쌓아 놓은 돌무더기 위에 머릿돌이 올려져 있는 모습이다. 탑이 세워지고 제를 지내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부터이다. 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날 저녁, 공동으로 탑제를 지내는데, 「마을 일동 장승제」라고도 부른다.
대덕구에는 많은 구전설화가 내려오고 있다. 동물에 관련된 것으로는 「첫날밤에 호식 당할 팔자」, 「호랑이 죽이고 아이를 구하다」, 「호랑이 잡은 토끼」, 「호랑이와 교회」, 「아이 업어간 호랑이」, 「소금장수 눈에 구렁이로 보인 금덩이」, 「원 노릇 오래 할수록 원망 듣는다」, 「은혜 갚은 호랑이」, 「애장골 지네와 두꺼비는 상극」, 「짚신장수와 은혜 갚은 자라」 등이 있다.
또한 풍수에 관련된 이야기로는 「화장실 자리가 명당 터」, 「해골을 메고 다니는 사람」, 「머슴이 명당 잡기」, 「도시락 주고 명당 터 얻은 총각」 등이 있다.
이밖에 복 · 행운과 관련된 이야기인 「활 잘 쏘는 행세를 한 사람」과 보은 · 응징에 관련된 이야기인 「노적가리와 금덩이」, 「말 잘하는 남생이」, 「도국과의 결의형제」, 「만인 적덕하여 복 받은 총각」 등이 있다. 또한 치부 · 횡재와 관련된 이야기로는 「한쪽 눈 잃은 풍수」, 「참새 무당」 등이 있고, 효 · 불효와 관련해서는 「효자와 동삼」, 「머리 깎고 춤추는 효부」, 「효자와 딸기」 등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인물과 관련된 이야기로는 「이현룡과 김진희」, 「유매암 선생」, 「고성이씨 시조와 이괄」, 「안종국 이야기」 등이 있다.
그 외에도 재치, 지혜, 배짱, 바보, 자식, 제사, 혼령, 도깨비, 운명, 팔자, 아내, 불륜, 배신, 깨우침과 관련된 많은 구전설화들이 내려져 오고 있다.
한편, 들말 두레소리는 목상동 문평 일대에서 전해지고 있는 농업 농요이다. 목상동은 대전 대덕구에서 면적이 가장 작은 법정동이며, 목상동에 소속된 문평은 지리적으로 대덕구 북서쪽 끝 지역으로, 갑천 하구와 금강 상류가 만나는 지점의 넓은 평야지대에 위치해 있다.
문평의 마을들은 넓은 평야에 위치하고 있어 생업이 농업이었고, 예부터 농사와 관련된 두레 풍속이 다른 지역에 비해 활발하였다. 때문에 문평의 들말 두레와 소리는 이 지역 토박이들을 중심으로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다.
전승되고 있는 노래로는 「지경다지는 소리」, 「모찌기 소리」, 「모심는 소리」, 「논맴소리」, 「보리타작 소리」, 「지경다지기 소리」, 「상부소리」 등이 있으며, 신일동 을미기공원 내에 들말 두레 전수회관이 건립되어, 두레소리의 맥이 이어지고 있다.
1989년 대전광역시 편입 이후, 대덕구에는 신탄진 제2지구 구획정리, 중리 택지 개발, 법동 지역의 대단위 아파트 건설, 송촌동 선비마을 아파트 입주 등이 이루어졌다. 대덕구의 전체 면적은 68.68㎢로 대전광역시 면적의 12.7%를 차지하고 있으며, 산업구조는 광공업 58.5%, 서비스업 41.4%, 농업 · 어업 0.1%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경부, 호남고속도로의 회덕 인터체인지와 경부, 호남선 철도가 통과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전의 관문인 경부 고속 대전톨게이트(T · G)가 있는 대전의 교통 중심지이다.
대덕구 대화동에 위치한 대전공업단지는 제1단지와 제2단지로 구성되어 있고, 수도권 소재 공장의 지방 분산과 대전시내 소재 공장 정비에 따라 조성되었다. 서쪽에 갑천과 대전천이 흐르고 있어 풍부한 공업용수를 확보하고 있으며, 노동력 또한 풍부하다. 조립식 금속기계 · 장비 제조업과 화학 · 석탄 · 고무 · 플라스틱 제조업 등이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대전 1·2 산업단지는 대덕구 대화동과 읍내동 일원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전광역시 산업시설의 지방분산 수용 및 지역경제 활성화를 목적으로 조성된 조립금속 업종 중심 산업단지이다. 금속, 석유화학, 섬유 등 1차 산업의 약 130여 개의 중소기업체들이 입주하고 있다. 인근 산업용재 유통단지와 연계하여 정밀가공, 부품, 소재산업 등 벤처기업을 집중 유치하고 있다.
대전 3·4 산업단지는 대덕구 문평동, 목상동, 신대동, 신일동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중부권 도시산업 생산 기반 구축과 지역경제 활성화, 그리고 급증하는 신규 공장과 기존 시가지 내 산재해 있는 이전 대상 공장의 용지 확보를 위해 조성되었다. 국토 중심부에 위치하고 경부, 중부, 호남고속도로의 분기점으로 교통이 편리하다는 점, 대청호와 금강의 풍부한 수자원 확보가 용이하다는 점, 저평지라는 점 등이 단지 조성에 유리한 조건으로 평가되었다. 규모가 크고, 경쟁력 있는 중공업 위주의 산업체를 선정, 유치함으로써 지역 내 제조업 발전에 큰 파급효과를 가져왔고, 생산실적 비율에서도 지역 내 총생산의 21%를 차지함으로써 높은 생산효과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다산관, 장영실관 및 협동화 단지에 업체가 입주하고 있어 첨단 벤처산업단지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대덕밸리는 대덕연구단지를 중심으로 대전과학산업단지, 대전 3·4단지, 계룡대 및 자운대, 유성관광특구, 둔산행정타운, 기존 구 도심산업을 연결하는 틀이자 성장축으로 출발하여, 벤처기업의 요람인 대전을 중심으로 충남 천안 · 아산의 테크노파크, 충북 청주 · 오창의 과학산업단지, 전북 전주 · 익산의 신 벤처육성지구를 아우르는 중부권 삼각지를 지향하고 있다. 대덕연구단지에는 공공기관, 기업부설연구기관, 정부출연기관, 정부투자기관, 고등교육기관, 지원 기관 등이 입주하여 있다.
대덕구 미호동에 위치한 대청댐은 1975년 3월에 공사에 착수하여 1980년 12월 완료하였다. 댐 완공으로 댐 하류 지역의 홍수피해를 경감시키는 한편, 하류지역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또한 경제성장과 인구증가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대전, 청주, 전주, 군산 등 충청 및 호남 지역에 생 · 공용수를 공급하고 있으며, 연간 2억 4000만㎾의 전기를 생산해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와 함께 대청댐 물홍보관은 중부권에 유일한 물홍보관으로서 연간 200만 명이 넘는 내방객들에게 다양한 전시기법을 통해 유한자원인 물을 아껴 쓸 수 있도록 홍보하고 체험하게 하는 산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편 대덕구의 중부 일원의 계족산(鷄足山)은 대덕구를 지키는 큰 산이자, 회덕의 주산(主山)이다. 계족산의 산세는 거칠지 않고, 완만하여 대덕을 애워싼 금강 및 갑천과 더불어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자연미를 연출하고 있다.
계족산성은 계족산 위에 있는 테뫼식 산성(산 정상을 둘러쌓은 성)이다. 이 성의 주위는 약 1.2㎞이며,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북녘의 높이는 10.5m에 달하고, 상부 폭은 4.2m이며 동벽이나 남서벽은 이보다 조금 낮다.
동춘당(同春堂)은 조선 효종 때 대사헌, 병조판서, 이조판서를 지낸 송준길(宋浚吉)이 낙향하여 자신의 호를 따서 지은 별당으로, 송시열(宋時烈)이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조선시대 별당 건축의 한 표본으로 들 수 있으나, 구조는 비교적 간소하고 규모도 과히 크지 않다. 오른쪽 4칸이 대청이고, 왼쪽 2칸이 온돌 방인데, 전면에는 쪽마루를 깔았으며 온돌 방의 벽 아랫부분에는 머름을 대었다. 주춧돌은 사각형의 귀가 높은 초석을 사용하였는데, 조선 후기의 주택 건물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양식이다.
1995년 6월에 개장한 장동 삼림욕장은 148㏊의 자연 삼림을 그대로 이용한 도심 근교 휴식공간이다. 체육 모험 놀이시설 20여 류와 쉼터, 기타 편의시설 등을 갖추고 있으며, 비포장 순환도로 5㎞와 계족산성을 연결하는 등산코스는 대전 지역 주민, 학교, 직장의 극기훈련 및 단체 산행 연수에 많이 이용되고 있다. 도시 근교에 위치하여 이용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고, 계족산성 등 문화유적을 함께 볼 수 있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매년 1월 1일에는 새해맞이 축제가 계족산 정상 계족산성 남문지 광장에서 벌어진다. 참가자들은 계족산성까지 일출 등반을 한 뒤 봉화대 점화에 맞춰 소망을 담은 촛불을 밝히고 여명을 맞는다.
매년 4월에는 신탄진 담배인삼공사 일원에서 2,600그루의 벚꽃이 만발하는 신탄진 봄꽃 축제가 열린다. 구민의 화합과 전진을 도모하기 위하여 1989년부터 개최되었으며, 관광객의 참여를 위한 각종 행사와 웃다리 농악, 목상동 들말 두레놀이 시연 등이 벌어진다.
대덕구 서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으로 대화동 제1·2 산업단지와 중리동에 인접하고, 동쪽으로 동구의 용전동 · 홍도동, 남쪽으로 동구의 삼성동, 중구의 중촌동과 인접해 있으며, 서쪽으로 대전천을 자연 경계로 서구의 삼천동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
동명의 유래와 관련해서는 이곳에 살던 어느 선산곽씨(善山郭氏)의 호(號)가 오물재(五勿齋)였는데, 여기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는 설과 우물가에 오동나무가 있어 오정(梧井)이라 불렀다는 설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내동(內洞) · 노동(櫓洞) · 상오리(上梧里) · 봉촌(鳳村)의 각 일부와 외남면 동산리(東山里)의 일부가 오정리(梧井里)로 병합되어, 대전군 내남면에 편입되었다. 1935년 대전읍이 대전부로 승격되면서 대덕구 지역의 일부가 대전부에 편입되고, 일부는 신설된 대덕군 회덕면에 편입되었는데, 1963년 회덕면의 3개 리(대화리, 오정리, 용전리)가 대전시에 편입되면서 오정동이 되었고, 대화동을 통합하여 관할하다가 1971년 북부출장소의 관할 구역이 되었다.
1983년 대화동이 분리되고, 1977년 동구에 편입되었다가 1989년 신설된 대덕구에 편입되었다. 오정동은 1990년 동구의 홍도동 일부를 편입하면서, 대덕구청 소재지가 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행정동인 오정동은 행정동명과 법정동명이 같다.
주거에 비해 임야가 차지하는 비율은 약 13% 밖에 되지 않으나, 1970년대까지는 약 80%가 농경지였다. 번화가는 대덕구청 앞 오거리 도로변에 집중되어 있다. 대덕구청 · 오정동파출소 · 오정동우체국 등의 공공기관과 한남대학교가 있으며, 농수산물 도매시장이 있다.
주요 간선도로로는 북부를 가로지르는 서구대덕구 국도와 중앙부를 관통하는 오정동동구 국도가 있다.
대덕구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으로 당산 너머 읍내동과 접경을 이루고, 서북쪽에 갑천이 흘러 유성구의 원촌동 · 도룡동과 자연 경계를 이룬다. 동쪽으로는 중리동 · 회덕2동과 인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오정동, 서쪽으로는 대전천과 유등천이 합류해 서구의 삼천동, 유성구 도룡동과 자연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 지역은 예부터 벼농사가 잘 되어 대화(大禾)라고 불리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구만리(九萬里) · 율사동(栗寺洞) · 법동(法洞) 일부 지역이 대화리로 병합되어 대전군 내남면에 편입되었다. 1935년 대전읍이 대전부로 승격되면서 신설된 대덕군 회덕면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대전시에 편입되어 리를 동으로 고쳐 대화동이라고 하고, 오정동에 통합되었다.
1971년 북부출장소의 관할 구역이 되었고, 1977년 구제 실시로 동구에 편입되었다. 1983년 오정동에서 분동되었고, 1989년 신설된 대덕구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행정동인 대화동은 행정동명과 법정동명이 같다.
이전에는 주거에 비해 임야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았으나, 1970년 이후 대전 제1·2 산업단지가 조성되어, 임야가 약 14%, 공장 부지가 약 40%를 차지하게 되었다.
대화파출소 · 대화소방파출소 · 대화우체국 · 근로자종합복지관 등의 공공기관이 있으며, 경부선의 대전조차장역이 있다.
주요 간선도로로는 동쪽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17번 국도와 경부선 철도가 있다.
대덕구 중남부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에 삿갓봉이 솟아 있어 신탄진동의 이현동 · 용호동과 경계를 이루고, 북쪽의 태악산, 서당고개 너머로 덕암동(상서동 · 평촌동)에 인접해 있다. 동쪽으로는 성재산의 연봉이 솟아 있어 동구 대청동(추동 · 주산동 · 효평동)과 접경을 이루고, 남쪽으로 동구 가양동 · 용전동, 서남쪽으로 중리동 · 법동과 인접해 있다. 서쪽에 갑천이 흘러 유성구의 구즉동 · 전민동과 자연 경계를 이루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대전군 내남면과 북면 장동 관할 지역이 되었다가 1935년 대전군이 폐지되면서 신설된 대덕군 회덕면에 편입되었다.
1983년 대전시의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대전시 동구에 편입되면서 과거 회덕현의 이름을 따서 행정동을 회덕동이라고 하였고, 회덕1동과 2동으로 분동하여 회덕1동에 읍내동 · 연축동 · 신대동 · 와동의 4개 법정동을, 회덕2동에 송촌동 · 법동 · 중리동 · 비래동의 4개 법정동을 통합 관할하였다.
이후 회덕동은 1989년 대덕군 폐지와 함께 신설된 대덕구에 편입되었고, 1990년 중리동이 분리, 독립되었다. 1994년에는 동구 가양동 일부 지역이 비래동에, 유성구의 전민동 · 탑립동 · 봉산동 일부 지역이 신대동에, 비래동 일부 지역이 동구 가양동에 각각 편입되었고, 1995년 읍내동 일부 지역이 법동에, 비래동 일부 지역이 송촌동에 각각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회덕파출소 · 한국수자원공사 · 상수도송촌정수사업소 · 수질검사소 · 회덕우체국 · 장동우체국 · 비래동우편취급소 · 한국도로공사 충청지역본부 · 대한적십자혈액원 · 장동보건진료소 등의 공공기관이 위치해 있으며, 경부선 철도 회덕역이 있다.
주요 간선도로로는 중앙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경부고속도로와 17번 국도가 있으며, 경부고속도로의 회덕분기점과 대전 인터체인지가 있다.
대덕구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동구 비룡동, 남쪽으로는 가양동, 서쪽으로는 송촌동과 법동, 북쪽으로는 동구 효평동 · 추동과 접하고 있다.
백제시대에는 우술군, 신라시대에는 비풍군, 고려 초기에는 회덕현, 1018년(현종 9) 이후에는 공주부, 조선 초기에는 회덕현, 그리고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편 이후에는 회덕군 산내면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대양리와 신촌을 합하여 비래리라 하고, 대전군 산내면에 속하였으며, 1935년 11월 대덕군 회덕면에 편입되었다. 1983년 2월 대전시의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대전시 동구 비래동이 되었고, 1989년 1월 대전시의 직할시 승격에 따라 대전직할시 대덕구 비래동이 되었으며, 1995년부터 대전광역시 대덕구 비래동이 되었다. 행정동은 회덕2동이다.
동명과 관련해서는 마을 북동쪽에 비래암이라는 암자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꿩이 매에게 쫓겨 이곳으로 날아왔다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대덕구 남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동쪽으로는 비래동, 남쪽으로는 용전동, 서쪽으로는 중리동, 북쪽으로는 법동과 접하고 있다.
백제시대에는 우술군, 신라시대에는 비풍군, 고려 초기에는 회덕현, 1018년(현종 9) 이후에는 공주부, 조선 초기에는 회덕현에 속하였고, 1895년(고종 32) 이후에는 지방관제 개편에 따라 회덕군 내남면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비래리와 중리 일부가 합쳐져 송촌리가 된 뒤, 대전군 내남면에 속했다가 1935년 11월 대덕군 내남면에 편입되었다. 1983년 2월 대전시가 확장되면서 대전시 동구에 속하게 되었고, 1989년 1월 대전시의 직할시 승격에 따라 대전직할시 대덕구 송촌동이 되었으며, 1995년부터 대전광역시 대덕구 송촌동이 되었다. 행정동은 회덕2동이다.
동명은 은진송씨 가문이 대대로 집성촌을 이루고 살았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윗송촌 · 양지뜸 · 욧골 · 음지말 · 팽전말 · 학댕이 · 홈통골 등의 옛 마을과 금바위 · 매봉산 · 진날등 등의 야산이 있으며, 사찰로는 대원정사와 보덕사가 있다.
대덕구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법동, 동쪽으로는 회덕2동 · 비내동과 인접해 있고, 남쪽으로는 동구 용전동, 서쪽으로는 대화동과 인접해 있다. 1970년대 이후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인해 도시로 발전하였다.
과거 회덕군 내남면 관할로 회덕읍내와 송촌의 중간 지역이라 하여 중리(中里)라고 부르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봉동(峰洞) · 오정리(梧井里) · 상오리(上梧里) · 법동(法洞)의 각 일부가 병합되어 중리라고 하였고, 대전군 내남면에 편입되었다. 1935년 신설된 대덕군 회덕면에 편입되었다. 1983년 회덕면의 전지역이 대전시 동구로 편입되면서 중리동이라고 하였고, 회덕2동에 통합된 후 1989년 신설된 대덕구에 편입되었다. 1990년 회덕2동에서 분리 독립되었고, 1995년 송촌동 일부 지역을 편입하여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행정동인 중리동은 행정동명과 법정동명이 같다.
1970년대까지는 대부분이 논밭이었고, 구봉산을 중심으로 한 구릉성 야산 지역이었으나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대지 약 50%, 도로용지 30%, 임야 10%가 되었다.
번화가는 남부를 가로지르는 국도변과 중앙부를 관통하는 도로변에 집중되어 있다. 중리동파출소 · 중리동우체국 · 상수도관리사무소 등의 공공기관과 중리취수장이 있다.
주요 간선도로로는 남부를 가로지르는 서구~대덕구 국도와 중앙부를 관통하며 17번 국도로 이어지는 지방도로가 있다.
대덕구 동남부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으로는 읍내동, 동쪽으로는 송촌동 · 비래동, 서쪽으로는 대화동, 남쪽으로는 중리동과 인접해 있으며, 특히 동북쪽에 계족산 · 매봉이 솟아 있다.
동명은 계족산 · 매봉의 깊은 골짜기에 찬 샘물이 났다고 하여 범샛골 · 법천리(法泉里 · 法川里)라 불렸고, 법천사가 있었다고 하여 법적골 · 범적골이라고도 하다가 이후 법동(法洞)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대전군 내남면에 편입되었다가 1935년 대덕군 회덕면에 편입되었다. 1983년 대전시 동구에 편입되었고, 회덕2동과 통합되었다. 1989년 대덕군 폐지와 함께 신설된 대덕구에 편입되었고, 1990년 중리동과 통합된 후, 1991년 중리동에서 분리되어 법동이 신설되었다. 1995년 읍내동 일부 지역을 편입하였고, 1996년 법1·2동으로 분동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법정동인 법동은 행정동인 법1·2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법동은 경부고속도로를 중심으로 동북쪽 개발제한구역과 서남쪽 도시형 시가지 구역으로 구분된다. 남쪽 지역은 주로 논농사 지역이었으나 근래에 주택지로 개발되어 98% 이상이 아파트 단지로 조성되어 있다. 따라서 주거에 비해 임야가 차지하는 비율은 매우 낮은 편이다.
대전동부경찰서, 대전동부소방서, 대전지방국세청, 동대전세무서, 법동소방파출소, 법동보건지소, 법동우체국 등의 공공기관이 있다.
주요 간선도로로는 동쪽에 경부고속도로 · 중앙부를 관통하는 17번 국도가 있다.
대덕구 동북단 금강 연안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에 금강이 흘러 충북 청원군 현도면 노산리 · 하석리 · 덕유리와 자연 경계를 이루고, 동쪽에 대청호를 경계로 충북 청원군 문의면 신대리 · 후곡리 · 가호리와 접경을 이루고 있다. 남쪽에는 삿갓봉이 솟아 있어 회덕1동의 장동과 접경을 이루고, 서쪽의 석봉동, 서남쪽 덕암동과 산지로 경계를 이루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대전군 북면에 편입되었고, 1935년 신설된 대덕군 북면의 관할이 되었다. 1973년 북면이 신탄진읍으로 승격됨에 따라 신탄진읍이 되었으며, 1989년 대덕구에 편입되어 신탄진동이 되었다.
주거에 비해 임야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편으로, 부수동의 삼산천(三山川) 유역에 비교적 넓은 농경지와 큰 촌락들이 발달되어 있었으나, 1980년 대청댐이 완공되어 대부분의 농경지와 촌락들이 대청호에 잠기게 되었다.
대지 · 도로 등은 3.5% 밖에 되지 않으며, 도시화 지역은 신탄진역을 중심으로 한 일부 지역뿐이다. 번화가는 신탄진역 앞 도로변에 집중되어 있다.
대덕구 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에 금강이 흘러 충북 청원군 현도면 양지리와 자연 경계를 이루고, 동쪽 서당골고개 · 덕운고개 너머 신탄진동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 남쪽으로는 덕암동, 서쪽으로 목상동과 인접해 있다.
동명은 이 지역 산봉우리에 돌이 많은 데서 유래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촌(新村) · 내동(內洞), 자운리(慈雲里) · 달송리(達松里) · 덕운리(德雲里), 구즉면 가작리(佳作里) 각 일부가 석봉리로 병합되었고, 대전군 북면에 편입되었다. 1983년 대전시 동구에 편입되어 리를 동으로 고쳐 석봉동이 되었고, 1989년 대덕군 폐지와 함께 신설된 대덕구에 편입되었다. 행정동인 석봉동은 행정동명과 법정동명이 같다.
북면의 행정 · 교육 중심지이며, 1925년 경부선 신탄진역이 신설된 뒤 행정 · 교육기관들이 생기고, 일찍이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경지 면적은 약 1.5% 밖에 되지 않으며, 번화가는 중앙부를 가로지르는 32번 국도변과 중앙부를 관통하는 도로변에 집중되어 있다.
대덕구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에 금강이 흘러 충북 청원군 현도면의 양지리 · 노산리와 자연 경계를 이루고, 동쪽에 솟은 산봉우리 너머 신탄진동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 남쪽으로는 회덕1동과, 서쪽으로는 목상동이 인접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이동(泥洞) · 덕운리(德雲里) · 석봉리(石峰里) · 목하리(木下里)의 각 일부 지역이 덕암리로 병합되었고, 대전군 북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상서 · 평촌의 2개 리를 통합하였고, 1989년 신설된 대덕구에 편입되어 덕암동이 되었다. 1995년에는 일부 지역이 상서동에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행정동인 덕암동은 법정동인 덕암동 · 상서동 · 평촌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이 농경지였으나 경부선 철도가 생기고, 담배공장인 신탄진 제조창이 들어서면서 철도 · 공장용지가 40%를 차지하게 되었고, 농경지는 없어졌다.
덕암동우체국, 한국담배인삼공사 신탄진 제조창, 담배인삼공사 연수원, 대전철도차량정비창 등의 공공기관이 있다.
주요 간선도로로는 서쪽에 경부고속도로가 있고, 중앙부를 경부선 철도와 17번 국도가 남북을 관통하고 있다.
대덕구 서북단에 위치하고 있다.
북쪽으로 흐르는 갑천이 금강과 합류하여 청주시 서원구 현도면 양지리(구 청원군 현도면 양지리)와 자연 경계를 이루고, 동쪽에는 구릉이 뻗어 덕암동 · 석봉동과 접경을 이룬다. 서남쪽에는 갑천이 흘러 회덕1동, 유성구 구즉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서부의 대부분 지역은 대전 제3 산업단지가 들어서 있고, 제4 산업단지 부지가 조성되어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 있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목중리(木中里) · 목하리(木下里) · 신흥리(新興里)의 각 일부 지역이 목상리(木上里)로 병합되어, 대전군 북면에 편입되었다. 1973년 문평리(文坪里)와 신대리(新垈里)를 통합하였고, 1989년 신설된 대덕구에 편입되어 목상동이 되었다. 1994년 유성구 봉산동 일부 지역이 신일동 · 문평동에 편입되었고,1995년 신일동 일부 지역이 문평동과 목상동에 각각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행정동인 목상동은 법정동인 목상동 · 신일동 · 문평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거에 비해 임야가 차지하는 비율이 약 10%로 적으며, 대전 제3·4 산업단지가 들어서 공업용지가 80%가 되었다.
대전북부경찰서, 목상동파출소, 대덕우체국, 문평소방파출소, 환경관리공단 대전사업소, 한국화학시험연구원 등 공공기관과 대전 제3·4 산업단지, 폐수종말처리장 · 폐기물매립장 등이 위치해 있다.
주요 간선도로로는 중앙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경부고속도로, 71번 국도가 있으며, 경부선 철도, 경부고속도로 신탄진 인터체인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