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용평면은 영동고속도로가 통과하는 교통의 요충지로 둔전동과 방덕동을 병합하여 용전리라 불렀으며, 둔전동 일대에서 전승되었으므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 평창지역에는 1970년대 진부 · 대화 · 방림 · 백옥포 · 장평 · 미탄 · 유천 등지에 농악대가 있었으며, 평창읍 중리 농악이 오랫동안 지역대표성을 갖고 활동했다. 이후 이와 쌍벽을 이룬 백옥포농악의 전승이 끊기자 이를 계승한 용전농악이 형성되었고, 이것이 둔전평농악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평창농악이 각종 행사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1977년인데, 그 가운데 백옥포농악이 이석제 · 신수화 등의 노력으로 전국규모의 행사에서 각광을 받다가 1978년 제19회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면서 전국에 알려졌다. 백옥포농악의 전통을 계승한 둔전평농악은 용전농악이라는 이름으로 1993년 제11회 강원도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종합우수상을 받고, 이후 지속적으로 발전을 거듭하여 2001년 제19회 강원도 민속예술축제에서 둔전평농사놀이로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2002년에는 제43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 강원도 대표로 참가하여 문화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하였다.
둔전평농악은 영동권, 특히 강릉농악의 영향을 받았으나 영서지역 농악도 일부 수용하여 개성있는 농악놀이를 형성하였다. 특히 농사풀이와 동고리받기, 서낭굿 등은 강원도 농악의 독창적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2003년 4월 25일 강원도 무형문화재(현, 무형유산)로 지정되어 전승 보존되고 있다.
이 농악의 특징은 빠른 쇠가락과 춤사위의 흥겨움, 소박한 동작으로 이루어지는데 영동농악과 영서농악의 장점을 살린 중간적 형태를 취하고 있다. 판굿에서 농사풀이와 황덕굿이 쓰이는 것은 영동농악과 같고, 무동이 법고와 같이 편성되어 쾌자를 걸치고 고깔을 쓰는 것은 영서농악과 같다. 쇠가락채에 천부당만부당 가락을 외가락으로 길게 치는 방식은 영동농악과 같고, 길군악에서 칠채를 치는 것은 영서농악의 영향으로 보인다. 이밖에 판굿에서 독특하면서도 지역성을 살린 가락을 계승하고, 직접 새끼를 꼬아서 만든 ‘퍽상’이라는 상모를 쓰고 열두발 상모돌리기와 십이채 등 개성적인 놀이판과 가락을 계승하고 있다. 평창둔전평농악은 강원도 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이래 예능보유자 이종현과 김은영을 중심으로 전승 및 보급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2005년 7월 1일 교육보조자로 최승철 · 이두한 · 김철규 · 고완재 등이 지정되었다. 한편, 평창둔전평농사놀이보존회가 결성되어 그 전승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최근 산업사회로의 급격한 이행과 농촌지역의 기계화작업으로 고유한 농촌민속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실정에 가장 기초적인 민속인 농악이 전승 보존되고 있음은 매우 의의 있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