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화지산 유적 ( )

부여 화지산 유적 전경
부여 화지산 유적 전경
고대사
유적
국가유산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이궁지로 추정되는 건물터.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부여 화지산 유적(扶餘 花枝山 遺蹟)
분류
유적건조물/유물산포지유적산포지/육상유물산포지/역사유물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사적(2001년 01월 04일 지정)
소재지
충남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105번지 외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이궁지로 추정되는 건물터.
개설

부여 궁남지 동쪽에 위치한 화지산은 백제 사비시대의 이궁지(異宮址)인 망해정(望海亭)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발굴조사 결과 백제시대에 건립된 초석건물지와 분묘, 목책시설 등 다양한 유구가 확인되어 백제시대 이후 계속적으로 거주지 또는 묘역으로 활용되었음이 밝혀졌다.

입지 및 연혁

화지산은 부여읍내의 북쪽에 자리한 부소산에서 남쪽으로 약 2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해발 48m의 낮은 산으로 서쪽으로는 궁남지가 있고 군수리사지가 동서로 나란히 위치하고 있으며 동남쪽으로는 왕포천이 흘러간다. 화지산 서편 기슭은 백제 사비기의 이궁지(異宮址)가 있었던 곳으로 전해 오고 있으며, 부근에는 어정(御井)이라는 유구도 있다. 『삼국사기』백제본기 의자왕 15년 조의 ‘왕궁 남쪽에 망해정(望海亭)을 세웠다’는 기록과 화지산 주변의 경관을 고려할 때 망해정은 화지산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었다.

조사경위

부여군이 도시자연공원을 조성계획의 일환으로 화지산에 ‘백제 오천 결사대 충혼탑’과 국제 조각공원을 조성하고자 2000년 국립문화재연구소(현, 국립문화유산연구원)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에서 조선시대에 걸친 건물지 · 분묘 · 목책시설 등 다양한 유구와 함께 기와류 · 토기류 · 자기류 등 많은 유물이 확인되어 충혼탑은 산 아래 평지에 건립되고 발굴지역은 2001년 사적으로 지정하여 보존되었다.

내용

백제시대 건물지는 6기가 확인되었는데 그 중 사비기 이전에 해당하는 것으로 건물2동은 도랑을 판 다음 그 안에 원형의 기둥을 조밀하게 세우며 벽체를 조성한 것으로, 공주 정시산 유적 등에서 보이는 대벽건물지(大壁建物址)와 유사하다. 방어시설인 목책(木柵) 유구도 사비천도 이전에 화지산 일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비기에 해당하는 유구로는 초석건물지들이다. 문지로 추정되는 건물지 1은 정면이 궁남지 쪽을 향하고 있으며 마사토를 다져 쌓은 적심토 위에 초석을 놓았으며 규모는 남-북 4칸, 동-서 1칸이다. 사비기의 건물들은 백제 무왕(武王)대에 조성된 망해정 또는 이궁지와 관련된 건물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건물지 8은 산의 경사면을 깎아 평탄하게 조성한 후 세운 백제건물지로 아궁이와 연도시설이 잘 남아 있는데, 아궁이 주변과 북편기단을 따라 조성한 배수구 내에는 다량의 백제토기와 굴뚝시설의 일부인 연가(煙家)와 연통토기(煙桶土器)편이 출토되었다.

화지산에서는 분묘유적도 상당수 확인되었다. 그중 사비기에 해당하는 것으로는 합구식 옹관묘가 있으며, 백제멸망 이후 통일신라-고려시대에 조성된 장골용기도 확인되었다. 그 외의 무덤은 주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 조영된 것들이다.

특징

건물지 8에서 출토된 굴뚝 상부를 장식하는 연가(煙家)와 이에 끼워 굴뚝 역할을 하는 연통토기(煙桶土器)는 고구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며 부여, 익산지역 등 백제 중심지역서 출토되는데 기와를 사용한 격이 높은 건물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화지산 일원은 청동기시대부터 생활의 무대가 되었으며 사비기 이전에는 옹관, 목관을 조영하고 대벽건물(大壁建物)을 조성하는 등 토착세력의 근거지가 되었다가 사비기(泗沘期)에 이르러 국가가 경영하는 지역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화지산: 유적발굴조사보고서』(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2002)
『화지산: 일대 지표조사보고서』(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1998)
관련 미디어 (1)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