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파공작원 ()

국방
개념
광복이후 한국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로부터 2002년 12월 31일까지의 기간에 걸쳐서 군 첩보부대에 소속되어 특수임무를 하였거나 이와 관련된 교육훈련을 받은 자. 특수임무수행자.
이칭
이칭
특수임무수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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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광복이후 한국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로부터 2002년 12월 31일까지의 기간에 걸쳐서 군 첩보부대에 소속되어 특수임무를 하였거나 이와 관련된 교육훈련을 받은 자. 특수임무수행자.
개설

북한의 후방을 교란시킬 목적으로 양성된 공작원은 적 생포 및 사살, 적군진지 및 주요시설 폭파, 적지에서 각종 테러를 통한 사회혼란 야기, 첩보수집, 첩보망 구축 등을 주된 임무로 하였다. 한국전쟁기부터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시기까지 약 1만여 명의 공작원이 북한에 보내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2년 이후 이들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되면서 보상이 진행되었다.

연원 및 변천

1970년대 초반 한국군의 육군, 해군, 공군은 각기 첩보부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육군은 1951년 3월 육군본부 정보국 HID(Headquarters of Intelligence Detachment, 공작과)를 첩보전담부대로 독립시켰고, 1961년 AIU(Army Intelligence Unit)로 명칭을 변경했다. 해군은 조선인민군 해군의 도발과 선박 피랍에 대응하기 위해 1954년에 UDU(Underwater Demolition Unit)를 창설했고, 공군도 1954년에 첩보부대인 OSI(Office of Special Investigation)를 창설했다. 이들 상설 북파부대 외에도, 1968년 북한 124부대의 청와대 기습 이후, 이에 대한 보복을 위한 목적으로 육군에 선갑도 부대, 해병대에 MIU, 공군에 684부대(실미도 부대) 등을 새로 창설하였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에서 남북은 공작원 파견을 자제하기로 합의함으로써 그 후로는 공작원을 파견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다.

내용

북파공작원은 크게 1950년대와 1960년대 이후 북파자로 구분된다. 1950년대 북파자는 구월산 부대출신 등 대부분 월남한 이북출신이 대상이었고, 이들 중 실종자 및 전사자는 90%에 이르렀다. 또한 1950년대 북파자는 임무가 끝난 후 영장이 나와 다시 입대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들은 북한 인민군 복장을 위장 착용하고 북파되어 육 · 해 · 공군의 보급지원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모든 것을 자급자족으로 해결하였고, 임무 수행 중에 부상을 당하거나 자결 또는 자폭한 이들이 많았다. 특히 1953년 휴전 후 최후까지 육군첩보부대 제1교육대에 있었던 사람들은 제대증이 아닌 ‘귀향증’이 발급되어 다시 군으로 복귀해야 했다. 특히 제1교육대 활동 중 부상을 당한 사람들은 현역이 아니라는 이유로 상이군인에 해당하는 대우도 받지 못하였다.

1960년대 이후 북파자에는 이북출신과 고아 등 무연고자, 범죄자 등이 포함되었고, 1960년대 후반에야 이 조직이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운용되어 실종자 및 전사자가 10% 정도로 감소하였다. 채용방식도 3년 또는 4년 등의 일정 기간을 정해 채용하였고, 채용 시 일정한 보수가 지급되었으며, 작전성과가 뛰어난 경우 성과급도 지급되었다. 계약이 만료되면 비밀유지 각서를 쓰게 한 뒤 해고하였고, 당사자가 사회복귀를 원하지 않을 경우 군인으로 특채된 경우도 있었다.

현황

북파공작원의 규모는 정확히 집계되지 않지만 한국전쟁기부터 1972년 7월 남북공동성명 발표시기까지 정부는 약 1만 명이 넘는 공작원을 북한에 보낸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이 중 실종처리 된 인원만 7,726명이다. 과거에는 북파공작원의 존재 자체가 정전협정 위반이기 때문에 근무사실조차 부정되었다. 하지만 2002년 북파공작원의 존재를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최초로 내려지고, 국회에서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북파공작원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되고 본격적인 보상 작업이 시작되었다.

참고문헌

『은닉된 분단의 희생자: 북파공작원 리포트』(김성호, 통일외교통상위원회 2000년도 국감자료집, 2000)
집필자
이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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