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일 ()

근대사
인물
일제강점기 제3차조선공산당사건과 관련된 사회주의운동가.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82년(고종 19)
사망 연도
1938년
출생지
함경북도 길주
관련 사건
제3차조선공산당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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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제3차조선공산당사건과 관련된 사회주의운동가.
개설

함경북도 길주 출신. 1910년대 중반∼1930년대 중반에 중국과 러시아의 연해주 지역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하면서, 일제의 탄압을 받아 3차례에 걸쳐 13년 가까이 옥고를 치룬 항일혁명가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길주에서 서당과 농림학교를 마친 뒤 일본의 강제적인 한국병합에 분개하여 북간도(北間島)로 이주하고서 길동기독학당(吉東基督學堂) 법정과를 졸업하고 민족교육에 투신하였다. 이후 북간도 지역 한인 단체인 간민교육회(墾民敎育會)와 간민회(墾民會) 간부로 활약하는 한편, 비밀항일결사단체인 광복단(光復團) 단장으로 활약하였다. 이 시기에 나자구사관학교(羅子溝士官學校, 동림무관학교)가 설립되었을 때에는 학생을 모집하였으며, 러시아혁명 이후에는 연해주로 이동하여 1918년 5월 하바로브스크에서 창당된 한인사회당(韓人社會黨)의 선전부원으로 활동하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 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 상설의원이자 내무부원으로 활약하면서 독립선언 등 연해주의 3.1운동을 이끌었다. 이후에는 개조된 한인사회당의 의원으로 선출되어 연해주 각지의 한인 청년들과 연락하면서 독립군과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1920년 2월∼3월에는 재건된 대한국민의회 의원으로 ‘3·1독립선언기념회’ 서기직을 맡아 행사를 주도하였고, 한인신보(韓人新報) 총무로서 반일적 언론활동을 전개하였다. 이와 동시에 3월 14일에 한인사회당 선전부장으로 선출되어, 일본군 철퇴를 선동하는 ‘신일본개조동맹회’ 명의의 ‘경고문’ 5만부를 시베리아 주둔 일본 군대에 배포할 계획을 추진하다가 29일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국내로 압송되어 5년형을 받고 청진 감옥에 복역 중 1923년 7월 8일에 12명의 장기수들과 감옥을 탈출하다가 체포되어 추가로 4년형을 받았다. 여러 차례 감형으로 1927년 9월 16일에 만기출옥하였다.

그 뒤 1927년 12월 20일경 조선공산당(朝鮮共産黨)에 가입하였고 신간회(新幹會) 중앙집행위원으로 활약하였다. 1928년에는 중국 국민당 및 만주의 고려혁명당과 연락을 취한 일로 3년간 재류금지 처분을 당하였는데, 이를 위반하였다고 하여 8월경 간도 일본영사관에 체포되어 1개월의 옥고를 치루었다. 이후 동아일보 길주지국 기자로 근무하다가 1929년 7월 4일 제3차조선공산당사건(‘ML당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된 뒤 1930년 2월 25일에 5년형을 선고받았다. 석방된 뒤에는 러시아 연해주로 다시 망명하여 하바로브스크에서 주(州)직업동맹 인쇄소 교정담당자로 일하다가, 1937년 3월 18일에 체포되어 1938년 4월 15일 사형선고를 받았으며, 5월 11일에 하바로브스크에서 총살되었다. 1957년 3월 13일에 원동주 군사재판에서 범죄 무혐의가 입증되어 복권되었다.

상훈과 추모

2007년에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러시아극동 및 북만주 지역 배일선인 유력자명부』(국가보훈처, 1997)
『성재 이동휘 일대기』(반병률, 범우사, 1998)
「선봉」(1923. 8. 11)
『現代史資料』第27卷, 第29卷(姜德相·梶村秀樹 編, みすず書房, 1977)
Koreitsy-Zhertvy Politicheskikh Repressii v SSSR(고려인−소련 정치적 탄압의 희생자들)(Ku Svetlana, Moskva, Izdatel’stvo “KimKor”, Kniga Pervaia,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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