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조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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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피복노동조합
청계피복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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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민주성 회복을 위하여 1970년대 수도권 지역 경공업 부문 노동자들이 벌인 사회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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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노동조합의 자주성과 민주성 회복을 위하여 1970년대 수도권 지역 경공업 부문 노동자들이 벌인 사회운동.
내용

민주노조운동이 등장했던 배경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1970년대 노동자 수의 급격한 증가를 들 수 있다. 1962년부터 1975년까지 ‘대탈출’이라고 할 정도로 750만 명에 이르는 농촌인구가 대도시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 결과 1970년대 한국사회의 노동자 비중은 급격히 높아졌다.

둘째, 1970년 11월 13일 전태일 분신사건이 영향을 미쳤다. 이 사건은 당시 전 국민에게 고도로 내면화 되어온 반공이데올로기로 인해 노동운동을 불온시해 온 억압과 금기 기제에 문제를 제기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또한 노동자들이 생존권확보와 인간다운 삶을 찾기 위해 스스로 노동조합운동에 적극 가담할 수 있도록 정당성을 제공해주었다.

셋째, 당시 유일한 노동조직인 한국노총은 노동자의 조직이 아니라 노동자들 위에 군림하는 노동자 억압기구로 변해가고 있던 상황이었다. 따라서 1970년대 들어 각성된 의식을 지닌 노동자들이 새롭게 노조를 결성하거나, 기존의 어용노조를 뒤집고 새로이 출범해 한국노총 및 산별연맹과는 성격을 달리 하는 새로운 노조운동을 모색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민주노조운동은 경공업 중심의 여성노동자들이 중심을 이루었다. 1970년대 등장한 유신체제는 한국노총을 중심으로 노동조합운동이 국가와 자본에 투항할 것을 강제했다. 이에 서울과 인천 지역의 몇몇 단위노조는 투항을 거부한 채 종교계의 지원 속에서 새로운 노조운동을 모색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노조가 어용화되는 가운데 어용화하지 않은 민주노조가 생성되었으며, 이는 정도와 성격의 차이는 있으나 종교계를 중심으로 지식인 및 민주화운동세력과의 연계 속에서 등장했다. 운동방식 역시 종교계와의 연계 속에서 규정되었다.

민주노조운동은 1970년 청계피복 노조결성을 비롯해 1972년 원풍모방노조 민주화와 동일방직노조 민주화,1973년 콘트롤데이타 노조결성,1974년 반도상사 노조결성, 1975년 YH무역 노조결성 등 신규노조 결성 및 어용노조 민주화를 통해 전개되었다. 이러한 조직들은 노동법 체계상 한국노총 산하 산별연맹의 지부나 분회 형태로 존재했지만 노조운영뿐 아니라 운동방식 등에서도 한국노총과 전혀 달랐다.

민주노조운동의 특징을 보면 첫째, 노조가 앞장서 소그룹 활동에 힘을 쏟았다. 예로 청계피복노조에는 삼동친목회, 아카시아회, 횃불회 등이 결성되어 1970년 내내 청계노조 활동의 근간이 되었다. 또 동일방직 노조는 도시산업선교회를 통한 소그룹 활동, 원풍모방 노조는 노조간부들이 일상적으로 소그룹을 조직해 조합원의 50% 이상이 소그룹 활동에 참여했다.

둘째, 민주노조들은 어용노조와는 달리 조직력을 강화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활동’을 벌였다. 민주노조들은 자체의 교육계획에 따라 조합원교육, 간부교육을 자주 실시했다. 나아가 청계피복노조의 노동교실, YH무역노조의 녹지야학 등과 같이 노조 외부에 독자의 교육기관을 설치해 노동자들의 교육활동에 힘을 기울였다. 또한 노조의 자체 교육 이외에 크리스찬아카데미 등 외부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받기도 했다.

셋째, 노동3권을 거의 행사할 수 없는 극도로 억압된 유신체제 아래에서 대부분의 노조들은 교섭권이나 파업권 사용에 대해 엄두도 낼 수 없었지만, 민주노조들은 농성, 시위, 태업, 준법운동 등의 단체행동을 통해 임금인상과 노동조건을 개선했다. 그 밖에도 1974년 원풍모방노조의 회사재건투쟁, 1975년 청계피복노조의 노동시간단축과 다락방철거투쟁과 1977년 노동교실사수투쟁, 1976년과 1978년 동일방직노조의 노조수호투쟁, 1979년 YH무역노조의 폐업반대투쟁 등이 일어났다.

이러한 조합원 중심의 투쟁을 전개하던 민주노조들은 1970년대 후반기 협신피역 노동자 민종진의 가스질식사 항의 공동시위를 비롯해, 1978년 동일방직·원풍모방·해태제과 등 노동자 30여 명의 기독교 방송국 점거 농성, 동일·원풍·삼원·방림·남영나이론 등 노동자 6명의 17개 교단 여의도 연합예배장 시위 등 공동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1970년대 민주노조운동은 1980년대 초 전두환 정권에 의해 1981년 청계피복노조 강제해산을 시작으로, 1982년 원풍모방 노조 강제 해산까지 모든 활동이 중지되었다.

참고문헌

『노동자 자기역사를 말하다』(역사학연구소, 서해문집, 2007)
『여공 1970년대: 그녀들의 반(反)역사』(김원, 이매진, 2005)
『1970년대 산업화초기 한국노동운동사 연구』(성공회대학교 사회문화연구원,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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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유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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